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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선의 꿈

  • 작성자 김필구
  • 작성일 2020-09-10
  • 조회수 615

1.

 

“악!”

 

숨에 먹힌 비명소리와 함께 상체가 일으켜진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지연이 마른세수를 하며 거친 숨을 가다듬는다. 무언가에 쫒긴 사람마냥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심장 쪽에 손을 올려 한참을 숨을 고르던 지연이 한숨을 내쉰다. 또 꿈이다. 이 지긋지긋한 꿈들.

 

“미치겠네, 이거 언제 끝나…….”

 

피곤해 죽겠네. 지연이 거뭇하게 그늘이 내려앉은 눈가를 매만지며 투덜거린다. 올해로 18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3달째 쉬지 않고 나오는 꿈들에 시달리는 중이다.

 

 

2.

 

이 지겨운 꿈의 시작은 한 여자아이의 등장이었다. 한유선. 지연과 같은 반 여학생이다. 지연의 꿈에 나올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냥 가끔 어색하게 인사할 정도의 반 친구. 도대체 왜 그의 꿈에 나온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백지연은 기억하고 있다. 이 맥락을 알 수 없는 등장이 언제부터였는지. 어느 여름날 밤, 백지연의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다.

 

 

3.

 

“지연아!”

 

양 갈래로 땋은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한유선이 웃는다. 활짝 웃은 얼굴이 제법 귀여웠다. 지연은 교실 문 한쪽을 잡고 멍하게 그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한 여름의 태양빛이 한유선의 뒤로 비춰진다. 마치 한유선이 빛을 내는 모양새다. 그걸 가만히 바라만 보는데, 한유선이 얼른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며 팔을 잡아챘다. 지연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보았다.

 

“유선, 유선아. 갑자기 왜 그래?”

 

닿은 팔이 불에 댄 듯 놀라는 지연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보던 한유선이 말한다.

 

“너야말로 왜 그래? 우리 사이에 이런 걸로 놀라기는!”

“……무슨 소리야?”

 

떨떠름한 얼굴의 지연을 부루퉁하게 바라보던 한유선이 말한다. 무슨 소리긴! 우리 친해진지가 벌써 4달인데 왜 그래! 유선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지연이 생각했다. 아, 이거 꿈이구나.

 

그래. 그건 꿈이었다. 아주 지독한 꿈의 시작.

 

 

3.

 

꿈은 지연이 한유선과 교내를 이리저리 쏘다니며 놀고는 함께 하교를 하며 끝이 났다. 꿈에서 깨어난 지연은 조금의 피곤함을 느꼈지만 아침에 졸린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무시했다. 그것보다 꿈이 더 중요했다. 지연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한유선의 모습이 신기했다. 쟤가 저렇게 많이 웃는 애였나? 의외로 당찬 구석도 있고……. 한참을 한유선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 차렸다.

 

“아니, 근데 왜 하필이면 유선이래? 나 걔랑 별로 안 친한데?”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반에서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그 애와 도대체 무슨 접점이 있었기에 자신의 무의식에 나온단 말인가? 지연은 찝찝한 기분으로 등교를 준비했다. 오늘 등굣길에는 한 번 인사나 해볼까, 하고 생각하며 말이다.

 

 

4.

 

그때는 몰랐다. 한유선을 이렇게 자주 꿈에서 만날 줄은. 그리고 끝없는 꿈의 늪에 빠질 줄은. 그 7월의 여름날, 한유선을 처음 본 이후로 지연은 줄곧 꿈을 꾸었다. 잠만 자면 꿈을 꾸었다. 종류는 다양했다. 로맨스, 스릴러, 공포, 판타지……. 접점을 알 수 없는 꿈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그냥 꿈을 많이 꾸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게 이주일, 삼주일이 지나도록 꿈이 멈추지 않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왜, 꿈을 계속 꾸는 거지?

 

미칠 노릇이었다. 몇 주째 쉬지 않고 꿈만 꿔대니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자 늘어난 건 졸음과 예민함뿐이었다. 낮잠을 자도 꿈을 꾸고, 밤잠을 자도 꿈을 꾸니,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병원에도 가볼까 생각했지만, 강한 수면제를 제외하고는 방법이 없어 보여 시도도 못하고 끝내버렸다. 수면제를 먹기에 지연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녀야하는 학생이었다. 잘못하면 선생님한테 찍힐까봐 겁나기도 했다.

 

백지연은 조금 울고 싶었다.

 

 

5.

 

그런 지연의 사정과는 별개로 한유선은 주에 한 번씩은 꼭 나왔다. 지연이 꾸는 꿈 중에서는 그나마 양호하고 괜찮은 꿈이었다. 한유선이 나오는 꿈은 늘 같았다. 교실에서 만나서, 하루 종일 학교에서 노닥거리다가, 하교 즈음에 잠에서 깨는 패턴이었다. 노닥거리는 것만 매번 조금씩 달랐지, 패턴은 똑같아서 이제는 꿈에서 깰 때를 외울 지경이었다. 꿈속의 한유선도 마찬가지였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지연을 보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외친다.

 

“지연아!”

 

 

-

 

 

한유선은 늘 지연을 보며 밝게 미소 지었고. 또, 귀염성있게 조잘조잘 거렸다. 지연이 그것에 익숙해질 즈음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지연은 한유선이 꿈에 나오는 날이면 그를 오래토록 관찰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한유선이 꿈에 나오는 걸 보고 이번에는 좀 괜찮은 꿈이려니, 하고 안심했던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한유선이 진짜 친구인 것처럼 느껴졌을 때인지. 지연은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한유선과 현실의 한유선이 같은 사람인지 궁금했다. 둘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가끔 관찰하다가 꿈인 줄 알고 친한 척할 뻔 했을 때는 정말 큰 일 날 뻔하기도 했었다.

 

 

6.

 

그날도 한유선이 나오는 꿈을 꾼 날이었다. 지연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한유선이였으니, 한유선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은 한유선에 대해 알아봐야할 시점이었다. 지연은 한유선과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친해져야 뭐라도 알아내지 않겠느냐는 판단이었다. 마침 오늘 짝을 바꾸어, 한유선의 짝꿍과 이야기를 해서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주머니에는 군것질 거리로 사둔 막대사탕을 쑤셔 넣고, 한유선에게로 다가갔다. 전보다 거뭇해진 눈가를 휘며 지연이 미소 지었다.

 

“안녕, 유선아.”

 

주머니 속 막대사탕 두 개를 건네며 방긋 웃었다.

 

“이거 먹을래?”

 

한유선은 조금 주춤거리다 사탕을 받고는 고맙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7.

 

한유선. 한유선. 한유선. 왜 하필 그 애일까. 지연이 가라앉은 눈으로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나간 그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한유선은 지연의 꿈에 나왔고, 하릴 없이 노닥거렸다. 한유선과 친해지기까지 했건만, 알아보겠다던 일은 크게 진전이 없다. 한유선은 정말로 이 일과 관계가 없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나오는데.

 

“지연아! 여기 음료수 사왔어. 골라!”

 

지연은 생각하다 말고 한유선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유선의 손에는 청포도 주스와 오렌지 주스가 있었고, 지연은 꿈에서 늘 했던 것처럼 오렌지 주스를 가져갔다. 그러자 한유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한유선이 말했다.

 

“어! 너 청포도 좋아하잖아. 근데 오렌지 먹어도 돼?”

“응. 너도 청포도 좋아하잖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한유선이 조금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근데 내가 청포도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아차. 지연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지연의 청포도 사랑은 이미 반 전체에서 유명한 것이었으나 한유선은 아니었다. 지연이 곧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너 청포도랑 어울리잖아.”

 

지연이 조금 어색한 얼굴로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던졌다. 별로 납득이 될만한 말은 아니었으나 한유선은 여전히 밝은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지연은 의아했으나 대충 넘어갔다는 생각에 그냥 넘겨버렸다. 꿈에서의 한유선이 청포도를 좋아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연은 그저 웃었다.

 

 

8.

 

“지연아!”

 

또다. 한유선이 나오는 꿈. 친해진 이후에는 더욱 익숙해진 부름에 슬며시 입 꼬리를 당겼다. 후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의미없는 노닥거림의 연속이었다. 옥상에 올라가기도 하고, 방송실로 들어가 교내 방송도 해보고, 꿈이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이제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도 없는 학교가 어색하지 않았다. 신나게 복도를 뛰어다니는 한유선을 보며 지연이 미소 지었다.

 

 

-

 

 

과학실 책상에 앉은 한유선과 손장난을 치며 킥킥 웃었다. 이제 그만 하라며 그의 어깨를 툭 치려는데 손이 엇나가 허공을 밀어버렸다. 지연의 중심이 무너지고, 그 방향은 한유선을 향해 쏠렸다. 지연이 한유선 위로 무너져 내리고, 한유선의 머리를 보호하려 그의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곧.

 

두 입술이,

 

맞닿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 둘 모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얼빠지게 있는데. 먼저 상황 판단을 한 지연이 벌떡 일어난다.

 

“미, 미안. 아니. 그게. 난 그냥. 아…….”

 

한유선이 그에 무어라 말하려하는데 그 순간, 풍경이 일그러지며 지연은 잠에서 깨어난다.

 

 

-

 

 

“이런 미친.”

 

지연이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칠 것 같았다. 지금, 같은 반 친구를 상대로……. 계속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신경 쓰여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생겨버렸다. 지연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미친, 백지연. 오늘 유선이 어떻게 볼 건데!

 

 

9.

 

사실 지연을 미치겠는 건, 따로 있다. 한유선과 입을 맞춘 그, 그 감촉이. 꿈인데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장면이, 감촉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지연은 아주 그냥 미치겠다고 생각했다. 사고이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를 상대로 어떻게 그런.

 

게다가 더욱이 문제인 것은, 그 입맞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날 지연은 종일 아프다며 엎드려있는 것으로 한유선을 피할 수 있었다.

 

 

10.

 

신기하게도 한유선과 지연은 3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사이에 절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기뻐하며 두 손을 마주잡았다. 이따금 지연은 꿈에서 있었던 사고가 떠올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무시할 수 있었다.

 

“유선아, 우리 빨리 가서 뒷자리 차지해버리자.”

“그래! 얼른 가자.”

 

지연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빙긋이 웃어보이며 한유선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은 조금 뜨거웠지만 견딜만 했다. 둘은 이번 해에도 친구일 것이다.

 

 

11.

 

지연의 예상대로 둘은 3학년이 되어 지옥 같은 입시를 함께 치루며 더욱이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제는 매일 전화를 하지 않으면 잠에 들기가 힘들기까지 했다. 둘은 정말 절친한 친구였다. 이제 졸업까지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졸업사진도 찍었고, 수시도 치뤘고, 수능까지 다 쳤다. 둘 다 같은 지역의 대학에 붙어 같이 자취를 하자며 이야기를 나눌 즈음이었다. 양가 부모끼리도 이제 어느 정도 안부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어 허락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성 싶었다.

 

그래, 그렇게 마무리 될 이야기였다.

 

꿈속의 한유선이 고백하기 전까지는.

 

 

12.

 

“좋아해.”

 

뭐라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연은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지 가늠해보기 위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크게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지연은 멍하게 한유선을 바라보았다. 한유선의 눈동자는 결연해 보였다. 한유선이 다시금 소리내어 말했다.

 

“지연아, 좋아해.”

 

지연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내리치며 중얼거렸다.

 

“미친, 세상에.”

 

꿈에서 깨어났다.

 

 

13.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바로 지연이 한유선을 피해다닌지 일주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늘은 대망의 졸업식이다.

 

지연은 여전히 한유선을 피해다니기 급급했다. 주변 친구들이 이유를 물어도, 한유선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와도, 지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꿈속의 절친이 고백해서 피한다고 그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지연은 아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작년의 꿈과 더불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서 머리를 그냥 벽에 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더욱이 문제인 것은, 한유선의 그 고백이 별로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유선은 친구다. 여자인 것은 제쳐두고 일단은 그의 아주 절친한 친구란 말이다. 그런 친구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이 말을 들었을 때의 한유선의 반응이 무서웠다. 지금까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았느냐는 말을 들을 바에야 그냥 다시는 안 보는 게 나았다.

 

……사실 다신 안 보는 건 조금 두렵긴 하다.

 

 

14.

 

지연은 졸업식이 끝나고 빠르게 부모님에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즈음이었다. 코너에서 한유선이 나타났다. 지연이 피할 틈도 없었다. 한유선은 나타나자마자 지연의 손목을 잡아챘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움직임이었다. 지연이 그에 무어라 반응하려 할 때였다. 한유선이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지연아. 왜 나 피해?”

“무, 무슨 말이야?”

 

지금 당장은 한유선과 이야기 할 정도로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지연은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유선은 그리 놔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내가 꿈속에서 고백한 거 때문에 그래?”

“뭐?”

 

지연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한유선을 보았다. 지금 그가 들은 말이 사실인지 가늠해보려 했으나 이런 것을 가늠할 수 있을 리가. 지연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한유선을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한유선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한유선이 보였다. 지연은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꿈속에서…… 그러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 네가 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지연이 말문이 막힌 듯 가만히 서있자 한유선은 눈물이 떨어질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연을 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했어. 내가 네 꿈에 들어가서 고백했는데, 너는 욕하고 나가고. 그 이후로 계속 피하니까…….”

“네가 나 싫어진 줄 알고…….”

“자, 잠깐. 나 너 안 싫어하거든. 그 반대거든.”

 

기어코 눈물을 떨구고만 한유선을 보다 못한 지연이 말을 가로챘다. 더 이상 말을 하게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한유선이 오해 할만 했다. 마지막이 욕이고 그 이후로는 피해 다녔으니까. 오해 할 이유가 충분했지만 일단 지연은 그에게 물을 것이 있었다.

 

“한유선.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너 내 꿈에 대해 어떻게 알아? 어떻게 들어왔어?”

“어? 아니. 그게…….”

 

한유선이 울다 말고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시작했다.

 

 

14.

 

그러니까 요지는 이거였다. 한유선은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꿈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걸로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에게 가서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했는데. 2학년이 되고 등교하기로 한 첫 날 지연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연과 친해지고 싶어 꿈속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지연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네가 나오는 꿈 이외의 다른 꿈을 꾸게 된 건?”

“그건…… 내가 네 꿈에 들어가면서 꿈의 문을 열었는데, 그 사이로 다른 것들이 들어간 모양이야. 미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이야기였다. 지연은 잠시 분노했으나, 이내 가라앉혔다. 지금까지 그를 괴롭힌 꿈을 만든 당사자를 앞에 두어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기에는 한유선이 너무 소중했다. 아무렇게나 신경질 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일단 그 고백 싫지 않았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한유선과의 일들이 싫지 않았으니까.

 

지연은 결심했다.

 

 

15.

 

“야, 한유선.”

“어, 어?”

“솔직히 화가 안 나는 건 아닌데.”

“……응.”

“일단 이것만 말할게.”

“꿈속에서 깔짝대지 말고 현실에서 꼬셔.”

“그래……, 아니, 뭐?”

 

지연은 당황한 티가 역력한 한유선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 딴 애들이랑 사진 찍으러 갈 거니까, 이따 연락 안 받으면 죽을 줄 알아.”

“……으응. 알겠어.”

 

한유선이 붉게 물든 얼굴로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은 그런 그를 두고 뒤를 돌아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인 지연의 귓가가 붉었다.

김필구
김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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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현

    누군가의 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특별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너무 예측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아쉬웠어요. 두 주인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대사로 처리되어서 아쉬웠고요. 둘만의 미묘한 감정들이 느껴질 수 있는 장치를 다양하게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추천드리고 싶은 글은 조우리 소설가의 꿈에서 만나 입니다. 비슷한 설정을 다루고 있어요. 퇴고에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0-10-11 21:55:36
    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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