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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도시 에큐메노폴리스

  • 작성자 dragonfly
  • 작성일 2020-04-08
  • 조회수 838

행성도시 에큐메노폴리스
1장 : 에큐메노폴리스
“이봐 루카스, 그만 자고 일어나!”
누군가가 루카스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루카스가 게슴츠레 눈을 뜨자, 친구 앤드류의 얼굴이 앞에 보였다. 루카스가 잠을 자던 집 밖에서는 여러 가지 시끄러운 교통수단의 소리, 눈치 없는 거주자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몇 시인데 난리야, 앤드류.”
루카스가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 일어나, 이제 네가 나가야 해.”
“제발 여유 시간 좀 가져, 앤드류.”
“일하고 왔으니까 피곤하다니깐. 비켜. 이제는 내가 쉴 차례야.”
대화를 마친 루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작업복을 입기 시작했다. 루카스가 투박하게 생긴 안전복을 걸치자, 바람 때문에 옆에 있던 종이 하나가 흔들렸다. 종이는 앤드류의 것이었는데, 종이는 드넓은 들판에서 어린 앤드류가 가족과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이런 종이를 사진이라고 했지, 앤드류?”
“어, 맞아, 용케도 이름은 기억했네.”
“근데 주위 풍경이 이상한데? 어디서 찍은 거야?”
지구의 자연 풍경에 익숙하지 않은, 아니, 본 적이 없는 루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앤드류에게 물었다.
“저게 내가 애기 때 살던 지구의 모습이야. 지금은 너무 많이 황폐화되고 사람들이 대부분 이곳으로 이주 해 와서 사람이 살 곳이 못 돼. 사진 속 모습이 여기랑은 많이 다른데, 아름답지 않아?”
“모르겠어. 자, 이제 나가 봐야지. 이번에는 어디를 작업하더라?”
“맨 북쪽 지지대. 좀 오랫동안 가야 돼. 이것저것 작업이 많아. 뭔 놈의 지지대에 무슨 그렇게 주문이 많은지 몰라.”
침대에 누우며 투덜거리는 앤드류를 뒤로하고 루카스는 밖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거대한 건물들과 구조물이 층층이 쌓인 풍경이 펼쳐졌고, 그 광경은 사방팔방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루카스는 스피더를 타고 작업 현장으로 나섰다. 스피더는 일종의 오토바이 개념의 교통수단인데, 반중력 장치를 이용해 지면에서 약간 떨어진 채 이동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루카스가 도로로 나오자, 수많은 호버들이 이동하는 하늘 길, 지면 길이 보였다. 하늘 길은 지구로 따지면 비행항로 같은 개념이고, 호버는 비행형 자동차와 같은 개념이었다. 호버는 우주까지도 비행이 가능했지만 스피더의 경우에는 최신 고급 기종만 비행이 가능했다. 루카스의 스피더는 고물이라서 지면 길을 통해 작업 현장으로 가야 했다.
루카스가 타고 질주하는 스피더 양옆에는 거대한 거미줄처럼 뻗어 나오는 거대한 뼈대와 그 뼈대에 한껏 의지하여 거대하게 자리 잡은 건축물들이 한없이 펼쳐졌다. 복잡한 지지대와 거대한 건축물들 사이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호버랑 스피더들이 하늘 길이나 지면 길을 활용하여 질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크게 놀라워할 광경이었으나 루카스는 익숙한 풍경이라 덤덤하게 스피더를 몰기만 했다.
“한 시간 좀 안 걸렸네요. 근처에 살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루카스가 북쪽 지지대에 도착하여 안면 있는 작업 감독관에게 말을 걸었다. 북쪽 지지대는 너무 거대했기에 육안으로 형태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했는데, 그 두께만500km에 달했다.
“그래, 15분 늦었으니까 그 만큼은 수당에서 뺀다?”
“네?!”
“변명은 소용없는 거 알지? 에큐메노폴리스를 지탱하는 지지대니까, 그 만큼 성실히 일하도록 해. 너희가 하는 일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다음부터 지각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에큐메노폴리스는 우주로 진출한 인류와 외계종족들 공생하며 살아가는 ‘행성도시’를 일컫는 말이다. 행성도시는 그 지면부터 핵까지가 모두 인조적인 물질,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냥 행성 그 자체를 도시로 보면 된다. 그 지름은 12,000km로 지구와 비슷하다. 에큐메노폴리스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중심부는 “코어”라고 불리며 에너지 생산을 담당한다고 하나 세부 정보는 기밀 사항이라서, 고위 군사 관계자 등 소수의 관계자만 출입 가능했고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게 거대한 규모의 덮개로 가려져 있었다. 맨 위쪽 (지면)의 거주 지역 에서는 우주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서 재력가들이, 그 아래쪽(지하)으로 내려갈수록 가난한 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루카스와 앤드류도 지하 거주자들 주 하나였다.
에큐메노폴리스에는 열 개의 발전시설이 돌아가기 때문에 햇빛이 없이도 지낼 수 있었지만 항성의 빛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기에 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상태였고, 항성의 골디락스 존(생물체가 살 수 있는 항성과 행성 간 거리범위)에는 루카스가 사는 최초의 에큐메노폴리스 프로타부터 베타, 감마, 에타까지 7개의 에큐메노폴리스가 일렬로 위치했다. 루카스는 태어날 때부터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살았지만 앤드류는 어릴 적에는 지구에서 살았으며 열 살 이후로는10년이 넘게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루카스는 고속 승강기를 타고 고지대에 위치한 북쪽 지지대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그 규모는 엄청나게 거대해서 지지대인지 대륙의 일부인지도 구별 못 할 수준이었다. 프로타의 거대한 시설들은 모두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건축해나간 결과물이었기에, 꾸준한 보수와 개선이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 기반지대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 지름만 2000km가 넘는 기반지대는, 에큐메노폴리스의 형태를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10개의 주요 지지대들이 튼튼하게 고정되어 제 역할을 사고 없이 수행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기반지대는 양 극점 부근에 위치했고, 주요 지지대들은 모두 기반지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왔다. 그 형상은 마치 지구의 경선이 남극점과 북극점을 이으며 뻗어 나온 모습과 동일했다.
“덜컹덜컹”
승강기 바닥에서 떨리는 소리가 나자 루카스가 소리의 진원지를 돌아봤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승강기 시설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옆을 돌아봤는데, 그곳에는 작업복 차림을 한 동료가 아래를 보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승강기 발밑에는 수많은 건축물들과 호버들이 수천 미터 아래에서 보였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이면 똥오줌을 싸고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 번 그런 사람이 루카스의 바지에다 그런 짓을 해 버렸던 기억이 떠올라 루카스는 승강기 구석 쪽으로 물러나 떨고 있는 사람과 슬그머니 거리를 두었다.
“루카스, 너는 신호부품을 시그널 – 100 모델로 갈아 끼워줘.”
어느새 감독관이 올라와 지시했다.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지을 뻔 하다가 표정을 고치고는 물었다.
“시그널 – 100이요? 그건 지지대에 쓰기에는 너무 고급 모델인걸요. 그건 이 기반시설에 쓰기에는 부적절할 텐데요.”
“그러게, 나도 이런 걸 왜 여기다가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기존에 있던 신호부품 들도 고급 모델이니까 과거부터 이런 고급 신호부품을 써오고 있는 거지.”
감독관이 대답했다.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상부의 지시에 의문을 품은 표정이었다.
“아, 저 신참은 네가 지금부터 잘 관리해. 지금 벌벌 떨고만 있으니까.”
감독관이 승강기에서 마주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뭐라구요?!”
루카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묻자 감독관이 쌩하니 가버렸다. 루카스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지시대로 신참을 관리하러 갔다.
“신호부품”이란 일종의 센서 역할을 한다. 신호부품들은 지지대 내부에 설치되어서 균열 여부를 전파로 탐지한 다음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시그널 – 100 모델은 균열탐지 뿐만이 아니라 명령어 송수신 등, 더 광범위한 신호 체계를 담당할 수 있는 고급 모델이었다.
몇 시간 뒤 루카스가 일을 끝내고 승강기에서 내려오자 감독관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게 보였다.
“어이, 왜 이렇게 늦게 끝났어?”
“아, 신참 관리하느라 늦었네요. 이렇게 높은 거 무서워하는 사람 처음 봤는데. 그럴 거면 이런 일에 지원하지 말라고 말하려다 그냥 참았네요.”
“그러긴 하지만, 사실 아래층 사람들의 경우에는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게 힘들겠지. 고급 교육의 기회조차 잡기 힘드니까. 아, 루카스. 너 기분 나쁘라고 한 말 아니다.”
“뭘요. 전 이제 가볼게요. 빨리 저녁 먹어야 되요. 원래 같으면 벌써 잘 시간인데.”
루카스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스피더에 올라탔다. 시동이 걸린 스피더는 덜그럭 소리를 내며 덜덜거렸다.
“루카스, 너 이거 스피더는 좀 바꿔야겠는데? 이거 사고라도 나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자칫하면 폭발한다고. 아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
“에이, 이거 백만 크레딧 넘게 주고 중고로 겨우 구한 건데 바꾸긴 아깝잖아요. 솔직히, 재정적으로 못 바꾸는 처지기도 하구요. 그리고 교통비는 좀 비싸잖아요? 전 괜찮아요.”
루카스는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집을 향해 달렸다. 지면에 위치한 상류층 도시의 모습은 화려했다. 높게 형성되어 웅장한 고급 주거 시설, 거대한 홀로그램과 광고들, 아름다운 도시 밖 우주의 풍경, 각종 호버들과 고급 스피더까지. 특히 스피더의 경우 루카스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지고 싶어 했으나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이 화려한 도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그저 눈앞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못 느꼈다.
루카스는 도시를 뒤로 하고 점점 화려한 불빛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서민들의 지하층 도시로 스피더를 몰았다. 일단 당장 저녁거리를 사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집 앞쪽에 있는 식료품점에 뱃가죽을 잡고 들어갔다.
식료품점에는 갖가지 식재료가 가득했다.
“고기, 고기, 고기를 먹어야 돼.”
루카스는 최대한 싼 고기를 찾았으나 대부분 당장 지갑에 들어있는 돈을 상회하는 가격대였고, 아니면 심하게 맛이 없는 고기들이어서 사실상 당장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없었다.
“청년, 가격이 걱정이라면 이거 어때?”
주인아주머니가 베타에서 온 습지나무 뿌리를 내밀며 물었다.
“어떡하지? 이거 사면 앤드류가 또 맛없다고 뭐라 뭐라 잔소리할 텐데. 근데 가격이..”
루카스는 가격과 앤드류의 입맛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나 다른 채소들을 사면 지갑 사정이 다시 빈털터리가 될 게 뻔해서 일단 습지나무 뿌리를 사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루카스는 스피더 주차장에 주차를 한 다음 집을 향해 걸어갔다.
“으흥~ 으흥~”
아파트 앞의 작은 공간에서 앤드류가 허리를 숙인 체 흥얼거리며 자신이 키우는 이상한 식물에 물을 주는 게 보였다.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에큐메노폴리스에서 구하기 힘든 흙을 구해다가 식물 키우는 데 쓰는 걸 보면 신기한 친구였다.
“뭐야, 또 토마토에 물 줘? 그거 토마토 맞던가?”
루카스는 인사 대신 말을 걸었다.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너 이거 실컷 물주고 나면 동네 노숙자들이 허락도 안 받고 먹어버린다고. 너도 알지 않냐.”
“그래? 난 네가 계속 훔쳐 먹은 줄 알았는데?”
“이자식이..”
앤드류와 루카스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아파트 승강기에 들어갔다. 앤드류와 루카스가 살고 있는 호 문 앞에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아파트 현관 앞에도 붙어 있었는데, 무심코 흘겨보고 지나갔던 쪽지였다.

루카스가 한 번 한숨을 쉬고는 앤드류를 뒤돌아보자, 앤드류도 똥 씹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음, 사실 대충 예상은 하던 상황이었잖아? 다음에 생각하고 밥이나 지어 먹자고.”
앤드류는 일단 위안하는 말을 하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루카스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사온 습지나무 뿌리를 꺼내들었다.
“으엑, 그거 또 사왔냐? 그거 맛없다고. 무슨 일주일은 묵은 해초 씹는 맛이란 말이야. 어?! 계속 말하는데...”
습지나무 뿌리를 본 앤드류는 역시나 조잘조잘 잔소리를 시전 했다.
“야, 근데 해초가 뭐냐?”
“...됐다, 말을 말자, 그냥. 어쨌든 네가 사온 거니까, 맛있게 요리해서 먹기나 하자.”
지구에 살아본 적 없는 루카스의 벙 찌는 물음에 앤드류가 체념하고 대답했다. 비릿한 냄새를 내며 요리가 완성되었고, 루카스는 덤덤하게, 앤드류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질겅질겅 줄기를 씹으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다음에 토마토가 익으면 내가 요리해 줄게. 이것보다는 맛있을 거다.”
앤드류가 줄기를 삼키면서 선언을 했다. 밥을 다 먹고 잘 준비를 할 때 즈음, 밖에서 어떤 할머니의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게 소리를 치는 모양이었지만 웅얼웅얼 거려서 명확한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다.
루카스가 호기심에 현관문을 10cm 정도 열고 밖을 내다보자, 늙은 노파 한 분이 아파트 복도를 따라서 걸으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내용은 대충 세상의 말세가 온다느니 우린 끝났다느니 뭐 그런 내용이었다.
“사는 게 힘든 분인가 보네.”
“또 다시 그들이 온다! 종말이 머지않았어! 처참하게 모든 게 파멸될 거다!”
루카스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는 계속해서 외쳐댔다.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게 사명인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저게 뭐지?”
루카스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그것은 할머니가 손에든 어떤 금속 메달이었는데, 새겨진 문양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마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불빛이 깜박거리는 게 보였다. 할머니는 그 메달을 주시하면서 중얼거렸다.
“오지 마! 여기가 어디라고! V-1구역, V-1구역..”(V는 대(大)구역, 1은 소(小)구역이다.)
자세히 보니 그 금속은 “루젠티윰” 같았다. 약간의 충격을 가해주면 빛이 나는 성질이 있는데, 충격을 얼마나 강하게 주느냐에 비례하여 빛의 세기도 달라진다. 강도나 전기 전도성 등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 공업적 가치까지 높은 금속이기에 가격대도 매우 높다.
“루젠티윰인가? 저거 굉장히 귀한 건대 어떻게 저 할머니한테 있는 거지? 무엇보다 불량배한테 안 빼앗기게 주의하셔야 할 텐대?”
어느새 앤드류도 고갤 빼꼼 내밀고 노파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복도를 다 돌아다닌 뒤에 여전히 중얼거리며 아파트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가자, 루카스와 앤드류는 빨리 씻고 각자 이층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앤드류는 머리맡에 난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에는 노후화된 저급 아파트부터 저 위에 위치한 번화가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보였고, 그 위쪽에는 거대한 뼈대들이 건축물과 에큐메노폴리스의 기초를 이루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을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내는 요란한 소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바깥 풍경을 무심히 지켜보던 앤드류의 눈이 뉴스가 나오는 전광판에 꽂혔다.
“야, 루카스. 아까 그 할머니가 막 V-1구역 거리면서 중얼거리지 않았어?”
“그랬지. 여기는 D-4구역인데 무슨 상관이야?”
“거기에서 “침투자” 가 한 마리 나타났데. 민간인들이 제압하려다 공격받았다는데?”
“뭐? 등급은 뭐야?”
“미확인이래. 뒷골목에서 공격받아서 증인들이 없나봐. 그러니까 등급 설정을 못하지.”
“침투자”들은 에큐메노폴리스에 수십여 년 동안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종족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침투자들은 우주의 서로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의문의 존재인 “차원의 문”이 열릴 때 나타난다고들 하나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극소수다. “침투자”들의 지능이나 신체능력은 천차만별인데, 정체를 들키면 짐승처럼 공격해대는 개체도 있는 반면 인간이나 외계인으로 완벽히 위장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개체도 있으나 에큐메노폴리스에 침입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고 다닌다는 공통점을 가지기에 정부는 동일세력으로부터 나온 생물체들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다가 들키면 도주하거나 공격한다는 특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세워놓은 위험등급은 다음과 같다.
1등급 : 다수의 대구역 또는 하나 이상의 에큐메노폴리스 전체 병력이 진압에 필요한 개체
2등급 : 한 개 대구역의 모든 병력으로 진압 가능한 개체
3등급 : 다수의 소구역이 위험할 수 있는 개체
4등급 : 세 개 미만의 소구역 병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개체
5등급 : 하나의 소구역 병력으로 진압할 수 있는 개체
6등급 : 불특정 다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개체
7등급 : 불특정 소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개체
에큐메노폴리스 역사상 1등급의 침투자가 발생한 적은 딱 한 번으로, 여덟 번째 에큐메노폴리스 세타가 뒤늦게 다른 에큐메노폴리스들이 집합한 항성계로 오는 도중 도움 요청을 보내기도 전에 파괴된 전무한 사건이었다. 이는 에큐메노폴리스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꼽히지만, 사상자의 흔적이 거의 모두 사라져서 정확한 인명피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2등급이나 3등급의 침투자가 발생하는 건 손에 꼽히는 수준이며, 4등급의 침투자가 나타날 경우엔 해당 소구역 주변 반경 50km 지역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게 된다.
5등급의 경우 출현 보고가 들어오는 즉시 소구역 1개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어 진압하는 매우 가끔 발생하는 비상상황이며, 6등급, 7등급의 침투자 출현은 몇 달에 한 번씩 발생할 정도로 빈도가 높은 편이다. 이번에 나타난 침투자는 7등급이나 6등급인 모양이었다.
“그 할머니, 정신이 이상하신 걸 수도 있지만 범상치 않은데. D-1구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잖아.”
“글쎄다, 우연일 수도 있고.”
두 친구는 서로 잡담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루카스는 일어나서 일하러 갈 채비를 서둘렀다. 이번에는 루카스와 앤드류가 동시에 다른 곳으로 일하러 나가는 상황이라서 둘 다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는 작업복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앤드류, 이번에는 걸어가?”
“어. D-3구역 하수도 시설에 보강공사 하러 가.”
“와, 냄새 구역질나겠네. 수고하고, 잘 씻어! 집에서까지 냄새나면 가만 안 둔다!”
“하, 저번에 싸워서 누가 이겼더라?”
루카스는 하루 전 작업했던 북쪽 기둥 기반기설로 스피더를 몰았다. 기반 시설의 아주 일부분만 시야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터무니없이 거대해 보였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을 보듯이 말이다.
“야, 어젯밤에 사고 소식 들었어? 결국 네 명은 사망했다던데. 아직 침투자가 안 잡혔대.”
“언론에서는 7등급이라고 하니까 금방 잡히겠지, 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어젯밤에 속보로 보도되었던 침투자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7등급 침투자이지만 아직 잡히지는 않았다니 뭔가 불안했다.
“행성 수비대는 뭘 하는 거야. 7등급짜리 한 마리 처리 못 하고 말이야.”
동료들의 말에는 “행성 수비대”에 대한 말이 가끔씩 오갔다. 행성 수비대는 침투자를 포획 및 사살하거나 다른 적군으로부터 에큐메노폴리스를 보호하는 군대의 개념이었다.
“아, 근데, 이번 침투자가 타고 온 비행선을 찾아냈다던데?”
말이 들리기 무섭게 직원용 전광판에서 침투자의 비행선을 찾아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을 통해 비행선의 내부가 보였는데, 의외로 잘 개량된 비행선으로 보였다. 조종간에는 마치 초신성이 작렬하는 듯한 강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을 보고 무언가 마음속에 걸리던 루카스를 툭툭 치면서 감독관이 말을 걸었다.
“루카스, 일 할 준비는 됐어?”
“아, 네. 오늘도 신호부품 갈아 끼워야 하나요?
“아니, 오늘은 좀 안전한 거. 아마 모터를 좀 업그레이드해야 되나봐.”
“모터도 엄청 크지 않나요? 전혀 안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 그 신참은 다른 데서 일한다. 같이 일하게 거기로 보내주랴?”
“생각해보니 모터에서 일하는 게 낫겠네요. 감사합니다.”
루카스가 어깨를 풀며 스피더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일터에서 보았던 비행선의 문양이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지나가는 호버 버스에 나붙은 신형 스피더 광고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앤드류가 저녁 요리하려나? 혹시 모르니까 장은 봐야겠네. 아, 깜박하고 집에서 지갑 안 들고 왔다.”
루카스는 애써 딴 생각을 하며 주차장에 스피더를 주차했다.
“와 할머니, 이걸 어떻게 갔고 있어? 비싸 보이는데! 크크.”
“야, 이거 A구역 경매에 내놓으면 수백억 크레딧은 족히 벌겠는데?”
“아, 할머니, 보니까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은데 내놔요.”
그 옆쪽에는 동네 양아치 네 명이 어젯밤에 봤던 할머니에게서 루젠티윰 메달을 빼앗으려 들고 있었다. 루카스는 참견하려다가 참고 경고의 신호로 제일 세 보이는 사람에게 눈초리를 주었다.
“야, 넌 뭐야?”
눈이 마추친 양아치는 루카스를 불러 세웠다. 루카스는 잠깐 주춤하는가 싶더니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괜한 일에 끼어들었다가 손해를 보기는 싫었다.
“허, 고물덩이나 타고 온 새끼가 눈치주네. 재수 없게.”
양아치가 루카스의 스피터를 발로 차자 루카스의 손 근육이 움찔했다.
“이봐, 할머니, 이제 질렸으니까 내 놔!”
곧이어 할머니를 폭행하려 하자 루카스가 폭발했다.
“야! 그만해라?”
“어이구, 화나셨어요? 무서워라.”
가장 센 양아치가 루카스 코앞까지 다가와서 도발하고는 루카스의 턱을 가격했다.
“...오냐, 해 보자는 거냐? 너는 잘 걸렸다.”
루카스가 비틀대며 일어나더니 “뻑”소리를 내며 자신을 때린 양아치의 미간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맞은 양아치가 비틀대자 루카스는 자신이 심했나 싶어서 멈칫했다. 그러나 양아치의 어깨 넘어로 발로 맞은 자신의 스피더 범퍼가 함몰된 게 눈에 들어왔다.
“너희들 꼼짝말고 기다리고 있어. 아주 걸레짝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루카스는 파손된 자신의 스피더를 보고는 격분하며 말했고, 다시 자세를 잡고 반격을 준비하는 양아치한테 연타를 날렸다. 루카스의 주먹에 여러 대 얻어맞은 우두머리가 기절해서 쓰러지자 나머지 셋은 허겁지겁 도망가기 시작했으나, 루카스는 벽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서 주차장 셔터를 닫으며 양아치들을 가둬 버렸다.
“어딜 가냐? 아직 안 끝났단다, 얘들아?”
“으하아아아악!!”
곧이어 루카스의 살기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양아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쿵쾅거리고 퍽퍽 거리며 서로 때리고 밀쳐대는 소리가 들려오자, 밖을 지나는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구가 닫힌 주차장을 흘겨보며 지나쳤다.
루카스와 양아치들과의 싸움이 모두 끝나자, 주차장 내부는 쥐 죽은 듯이 얌전해졌다. 곧이어 셔터가 열리면서 주차장 내부의 광경이 바깥에 드러났는데, 그 안에는 코피를 흘린 체 루카스에 의해 테이프로 포박당한 세 명의 양아치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들 온 몸에 멍이 든 상태로 결박을 푸려고 시도했지만, 루카스가 옆에서 노려보자 행동을 멈추었다.
“저 놈이 진짜 깡패네..”
양아치 하나가 불만 섞인 말을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뭐라했니?”
“아, 네?”
몇 분 뒤 모든 양아치들의 입에도 테이프가 묶이게 되었다. 팔다리와 입까지 테이프에 묶인 양아치들은 윽악거리며 뭐라고 욕을 하듯 소리쳤는데 입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탓에 루카스의 귀에는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못했다.
포박당한 채 읍읍거리는 양아치들 저 옆에서 아까 전 자세 그대로 앉아 상황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루카스의 눈에 들어오자, 그는 안부를 묻기 위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2장 : 조우
“할머니, 괜찮아요?”
루카스가 주차장 구석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지만, 할머니는 이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듯이 루젠티윰 메달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어, 청년, 고마워. 이 매달이 엉뚱한 데 안 넘어가게 지킬 수 있었구만.”
할머니는 자신보다 메달을 중시하는 듯했다. 루카스는 메달의 문양을 확인하고 내심 크게 놀랐다. 초신성이 밝게 타오르며 작렬하는 문양, 그것은 침투자의 비행선에 새겨진 문양이랑 동일한 문양이었다.
“할머니, 이 메달은 어디서 나왔어요?”
“이거? 이건...”
할머니는 대답하길 주저했다. 루카스는 대답을 강요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묻지는 않았으나 메달이 매우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메달의 문양으로 미루어 볼 때, 침투자와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깊어졌다.
“음..아니에요, 할머니. 전 이제 가볼게요. 나중에 양아치들이 허튼 짓 하면 불러주세요. 다음번엔 아주 그냥 요절을 내 버릴 테니깐.”
루카스가 말하면서 묶어있는 양아치 한 명을 바라보자, 몰래 루카스를 째려보던 양아치가 황급히 시선을 회피했다. 루카스는 집으로 들어갔다.
“으.. 안돼, 가까워진다. 공포가 다가온다.”
루카스가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갈 때 즈음, 할머니는 빛을 서서히 강하게 뿜어내기 시작하는 메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야~, 이게 무슨 냄새야?”
루카스는 집에 먼저 와서 토마토를 요리하는 앤드류를 보고 감탄했다. 솔직히 인정하긴 싫었지만, 습지나무 뿌리보다는 맛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봐봐. 내가 맛있을 거라고 했잖아?”
앤드류는 우쭐해졌다.
“아, 루카스. 몇 분 전에 주차장이 잠기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너는 안 다쳤어?”
“어...무슨 일 있었어? 동네 건달들이 패싸움을 했나 보네. 그런 애들이랑 자칫 휘말리면 많이 위험하니까 너도 조심해.”
루카스는 시치미를 딱 땠다.
앤드류가 요리하고 있는 사이, 루카스는 홀로그램 휴대폰을 통해 뉴스를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직 침투자가 잡히지는 않았고, 행성 수비대가 거리를 좁혀가며 수사를 진행 중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7등급으로 예상되는 침투자다 보니 투입 병력이 비교적 적어서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 루카스. 듣자하니 D-3구역에서 침투자가 목격되었다고 하던데.”
“뭐? 그럼 4km정도 떨어진 곳이잖아. 위험한 거 아냐?”
“일단 무조건 주의해야지. 일단 계속 속보나 들어보자고.”
루카스와 앤드류는 침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식사를 했다. 6등급이나 7등급의 출현은 일 년에 서너 번 내외로 발생하나 보통 A구역 같은 고급 시설에서 정보를 캐고 다니지 D구역같은 서민층과 빈민층이 사는 곳에서 나타나는 일은 드물어서, 이번 사태는 공포심을 조금 더 가중시켰다.
“아, 잘 먹었다. 나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올게.”
“야. 설거지는 안하고 어딜 나가!”
루카스는 앤드류한테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주차장에 묶인 양아치들에게로 향했다.
그것도 칼을 하나 들고서.
루카스가 칼을 들고 양아치 한 명한테로 다가가 입에 붙인 테이프를 뜯어내자,
“흐익, 살, 살려주세요. 모, 모든 거 잘못...죽이지는 말아주세..”
하고 애걸복걸 빌기 시작했다. 너무 센 테이프를 사용해서 양아치들을 묶어놔서 그런지, 입 주변에 빨간색으로 테이프 자국이 남아서 루카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뭔 소리야. 테이프가 질겨서 끊으려면 칼이 필요해서 들고 온 거야.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나 심문 잘하는데 한번 해 줄까?”
루카스는 장난삼아 한 말이었지만 양아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양아치의 두 눈에는 루카스의 얼굴이 주차장의 불빛을 등진 상태로 보였기 때문에 루카스의 그림자가 진 얼굴 위에 두 눈이 번뜩이는 , 과장해서 광기에 찬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그 때, 메달을 가진 할머니가 황급히 달려오면서 루카스에게 무언가를 외쳤다. 루카스는 할머니가 밤만 되면 이상해지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청년, 위험해! 당장 집으로 들어가!!”
하고 진심으로 공포에 떨며 외친 걸 알아차리는 순간 무언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젯밤과는 다른, 더 다급하고 심각한 분위기였다.
루카스가 찰나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저 뒤쪽에서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검정색 그림자가 서서히 올라왔다. 루카스는 하수도 시설을 정비하는 사람이 올라오는 줄 알았으나, 그런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생물체였다.
“으..!”
할머니는 그 형상을 목격하고는 겁에 질렸다. 루가스는 할머니가 꼭 쥔 메달을 바라보았는데, 메달에 새겨진 초신성의 문양 안에서, 붉은색의 격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루카스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침투자다!!”
침투자는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의 생김새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드러나 피부는 검정색 피부로 둘러싸여 있었고, 두 눈은 불타는 것처럼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기에 그 모습은 인간의 형체와 비슷했으나 인간이나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에서 살아가는 외계종족과 계를 달리하는 다른 존재임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 보는 생물에 대한 두려움이 루카스의 온 신경에 퍼졌다.
“뭐야, 저 정도가 7등급이라고?”
루카스는 침투자의 강력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저 정도가 7등급이면 그 이상의 것은 어떤 두려움을 몰고 올지 상상이 안 되었다. 뒤쪽에서 크게 악악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포박당한 양아치들도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게 분명해 보였다.
침투자는 맨홀에서 나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얼마 살날이 남지 않은 고령자보다는 건장한 청년인 자신이 더 위협적일 텐데 왜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는지 루카스는 의문에 휩싸였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니, 침투자가 보는 건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들고 있는 밝게 빛나는 메달이었다. 메달을 자세히 노려보던 침투자는 갑자기 분노하듯 정색하더니 비로소 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더러운 반역자!!”

“뭐?!”
루카스가 혼돈에 휩싸인 그 때 침투자는 자신의 팔에서 날카로운 가시를 생성하더니 할머니에게 던졌다.
“위험해! 피해요!”
루카스가 재빨리 할머니를 옆으로 밀어냈으나 오른쪽 어깨에 가시가 깊게 박혀 버렸다. 만에 하나 루카스가 아무 조치도 안 했다면 그대로 할머니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을 터였다.
“할머니, 정신 좀 차려 봐요! 젠장, 아무나 좀 도와줘!”
루카스는 돌발 상황에 떨리는 손으로 할머니의 상처를 압박하며 외쳤다.
“뭐야,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집 안에 있던 앤드류의 귀에 루카스의 외침이 들리자 앤드류가 급히 아파트 밖을 향하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앤드류는 설마설마 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마음을 다잡으며 계단을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네놈은 감히 반역자를 감싸는 것이냐. 같은 패로 봐도 되겠네?”
침투자는 손톱을 날카로운 가시처럼 생성해내며 루카스에게 걸어왔다. 루카스는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친다 해도 죽음이 기다리고 도망에 성공하더라도 주위에 있는 할머니나 양아치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루카스는 양아치들이 들고 있던 기다란 나무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행성 수비대가 올 때 까지만 버티는 거다.”
루카스는 두 손으로 몽둥이를 꼭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루카스의 신체 내부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올라왔다.
“반역자 편을 들다니. 갈기갈기 찢어주마.”
침투자는 오히려 분노를 하며 루카스에게 달려들었다. 왜 민간인을 공격해 놓고 자신이 화를 내는지 알 수 없는 심리였다.
침투자가 쉴 새 없이 내지르는 주먹과 손톱에 루카스는 힘의 차이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밀리게 되었다. 온 몸에 근육통이 찾아왔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대를 얻어맞았는지 피도 흐르고 있었다. 침투자의 발길질에 루카스는 앤드류가 토마토를 키우기 위해 만든 정원의 금속 울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1m 즈음 되는 길이의 엉성한 금속 막대로 만든 울타리였기에, 분리하면 무기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행동 전환을 할 틈도 없이 날카로운 손톱이 날아오자 몽둥이로 막아야 했다. 그러나 단단한 손톱은 몽둥이를 파고들었고, 나무에 대한 경험이 적은 루카스는 생각보다 약한 나무의 강도에 당황했다.
침투자가 루카스의 몽둥이를 쳐내자, 루카스는 두 손을 이용해 손톱을 막았다. 아무리 루카스가 힘을 짜내도 압도적인 신체적 능력 차이에 루카스는 밀리고 있었던 반면 침투자의 표정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루카스가 아무리 두 팔에 힘을 주어 막아도 침투자는 여유롭게 루카스를 밀어붙였고, 가까워진 그의 손톱이 루카스의 가슴팍을 찌르려 하기 시작했다.
“야, 거기 시커멓게 생긴 놈! 여기를 봐라!”
갑자기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고함소리의 주인은 앤드류였다. 앤드류는 루카스의 스피더를 침투자의 몸에 겨눈 채 소리를 치고 있었다. 스피더가 필요할 때마다 루카스가 빌려주어서 잠금장치 해제방법을 아는 모양이었다.
“루카스, 너 이거 스피더는 좀 바꿔야겠는데? 이거 사고라도 나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자칫하면 폭발한다고.”
루카스의 머릿속에 전날 들었던 일터 감독관의 조언이 스쳐 지나갔다. 앤드류의 의도를 파악한 루카스는 침투자가 앤드류에 한눈 판 사이 재빨리 옆으로 도망쳤다.
앤드류는 스피더를 신속, 신중하게 조준했다. 만약에 조준에 실패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기에 창고에 부딪힌다면 창고 건물에 충돌하도록 조준했다. 앤드류는 스피더의 모드를 급가속으로 설정한 뒤에 스피더가 발진하자마자 뛰어내렸다. 엄청난 가속력으로 속도를 높이던 스피더는 충돌한 침투자를 범퍼에 매단 채로 창고 건물에 부딪혀 화려하게 폭발했다.
커다란 화염과 연기가 창고 건물을 둘러쌌지만, 방심할 수 없었기에 앤드류와 루카스는 울타리에 쓰인 금속 막대기를 몇 개 뽑아들고 화재현장으로 다가갔다.
한쪽 벽이 무너진 채로 불타는 창고 건물 앞에 다다른 앤드류와 루카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불길을 뚫고, 간신히 살아남은 침투자의 신체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근육과 장기들이 파괴되어서 골격구조가 보일 지경이었고, 그 골격마저도 성치 못했다.
“아직이야! 막대기를 찔러 넣어!”
두 친구는 끝까지 살아남아 발악하는 침투자의 몸속으로 네 개의 금속 막대기를 찔러 넣어 폭발에 약해진 목뼈를 압박했다. 약해진 근력으로 두 사람의 압박을 비등하게 방어하던 침투자의 목뼈가 부러지자, 침투자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며 목숨을 잃었다. 침투자의 이미지는 일반적인 생물의 모습이라기보다 마치 살생용 인간형 짐승의 모습에 더 가까워서, 루카스와 앤드류는 자신들이 지능형 생물을 죽인건지 무지성 짐승을 죽인건지 헷갈려했다.
“우리가 생물을 죽였어. 말도 할 줄 아는..”
사실 에큐메노폴리스 헌법에 의거하면 침투자들을 살생하는 것이 합법일 뿐 아니라 오히려 권장하지만, 지능이 있는 생물을 죽였다는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에큐메노폴리스의 사회는 현재 침투자와의 전쟁 상태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침투자를 죽이는 것은 적군을 사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뭐야, 저기 봐!”
루카스는 무언가를 보고 앤드류를 불렀다. 골목 저편에서, 군사용 호버를 타고 행성 수비대 대여섯 명이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첨단 장비로 무장한 상태였다.
“맙소사, 저 두 명이 7등급 추정 개체를 잡은 거야?”
수비대 팀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혼잣말을 했다. 아무리 7등급이라도 나름 불특정 소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준의 능력을 지녔기에 두 명이 첨단장비도 없이 해치우기는 어려웠다. 그 일을 루카스와 앤드류는 해낸 것이다.
“이번 개체는 7 – L형 개체로 보이네요. 상황에 따라 6등급 하위원의 위험도를...”
상황 정리에 나선 팀원들을 뒤로 하고 수비대의 리더는 뒤에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루카스와 앤드류에게 다가갔다.
“당신들이 이 침투자를 잡은 겁니까?”
“아, 예..”
“훈련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냥.. 스피더를 운 좋게 명중시키니까.. 운이 좋은 거였죠.”
두 친구는 최대한 겸손히 대답했지만, 리더는 루카스 몸에 난 상처들을 보고 절대로 쉽게 잡은 것이 아니라는, 두 친구가 용기를 가지고 싸워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맞다! 저기 주차장에 할머니 좀 도와 줘요. 테이프에 묶인 사람들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루카스의 말에 수비대원들은 서둘러서 할머니를 이송,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처가 꽤 깊어.”
“과도 출혈의 위험성이 있어. 계속 압박해.”
“감염이 안 되게...”
수비대원들의 긴박한 목소리가 호버 내부에서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는 메달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그 때, 리더가 다가와서 물었다.
“음.. 혹시 당신들, 혹시 수비대원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네?!”
“최근에 일곱 에큐메노폴리스의 침투자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대원들의 사기가 알게 모르게 낮아지는 상황인데, 우리는 당신들처럼 때로는 무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해요.”
루카스와 앤드류는 순간 멍했다. 자신들은 불가피하게 침투자와 싸웠을 뿐인데, 마치 덧셈 문제 하나 풀어냈다고 대학이 입학을 부탁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럴 거면 공개적으로 신청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미 그러고 있죠. 그러나 지금은 한 명이라도 사람이 필요합니다. 관심 있으면 이 지문 으로 연락해요.”
리더는 자신의 지문 정보를 넘겼다. 그걸 휴대폰에 연결하면 자동으로 지문의 소유주에게 연락이 갈 수 있었다.
“...네, 알겠..”
앤드류가 우물쭈물 대답하는 사이 리더는 순식간에 호버를 타고 떠나고 있었다. 침투자의 시체는 연구 목적으로 가지고 간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해진 사이, 루카스와 앤드류는 멍해진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 방금 전에 뭐냐? 우리가 누구랑 싸웠다가 누구랑 대화했지, 아마?”
“음, 어, 그랬지, 암.”
“그래, 집에나 돌아가자.”
“어, 맞다, 저기 묶여있는 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야? 풀어줘야지.”
“아, 맞다 넌 먼저 올라가 있어. 내가 해결하고 올게.”
앤드류가 올라간 사이 루카스는 양아치들을 묶어놓은 테이프를 풀고는 다시 심경을 건드렸다간 어쩌고 하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은 뒤 돌려보냈다.
루카스는 하루 동안에 경험한 일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메달의 정체, 메달과 침투자 비행선 마크의 초신성 문양의 상징, 할머니가 공격받은 이유, 그리고 할머니가 “반역자”인 이유, 행성 수비대, 그리고 소중한 스피더의 폭발 등.. 루카스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이틀 후, 주말

“아무래도 연락을 해야겠어!”
루카스는 불끈 손을 쥐며 다짐했다.
“어, 진심이야? 네가 계속 일만 주구창창 하니까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런데 너 행성 수비대에 지원할 용기는 있는 거야?”
앤드류가 방 안에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사실 루카스는 행성 수비대에 지원하는 것 보다는 메달에 관한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메달이 침투자가 가깝게 접근할수록 밝게 빛을 발했던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행성 수비대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활약할 수 있음이 틀림없었다. 루카스는 리더한테 연락을 한 뒤 모처럼 휴일인데 귀찮다는 앤드류를 끌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야, 거기 무서운 데 아니야?”
“걱정 마. 우리를 추궁하려는 눈치는 아녔어.”
“겉으로 착한 척 했다가 속아서 들어가자마자 막 심문하고 고문하고 그럴...”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앤드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약속 장소는 A구역에 위치한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행성 수비대 본부였다. A구역 특유의 웅장하고 거대한 첨단 건축물들답게 본부 역시 웅장했다. A시의 하늘에는 인공 대기의 푸른 빛 사이로 은하수가 빈 공간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는 지하에 위치한 D구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루카스는 부러움을 느꼈다.
“통성명이 늦었네요. 전 아밀레아입니다. 본래는 훈련 조교 역을 맡고 있지만 긴급 신고를 받고 급히 팀을 꾸려서 오게 되었습니다.”
만나기로 했던 리더가 나와서 인사했다. 상냥한 인상에 앤드류는 살짝 걱정을 덜어낸 표정이었다. 세 사람은 본부에 위치한 아밀레아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대화를 시작했다. 아밀리아는 우선 행성 수비대의 역할 규칙, 계급 구조 등을 설명했으나, 루카스는 집중을 하면서도 메달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잡고 있었다. 그 때,
“...그리고 숙식은 모두 제공하죠.”
하는 아밀레아의 목소리가 루카스의 귀에 들어왔다.
“어, 네?! 숙식을 제공해요?”
“그럼요. 나중에 5등급 단계 이상의 병력에 들어가게 되면 개인소유의 고속 스피더도 제공합니다.”
그 대답에 루카스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잠깐 친구랑 의논하겠다고 부탁한 뒤에 앤드류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앤드류는 심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눈빛이 역력했고, 루카스도 그런 앤드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을 넘어 앤드류의 바람대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일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도 문제들은 있었다. 특히나 두 친구가 사는 아파트가 재개발 지역에 들어간 이 시점에서, 돈을 받고 아파트를 나간다고 한다고 쳐도 살 만한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다. F구역 같은 슬럼가에는 구입할 수 있는 집이 있다고 쳐도, 그런 곳은 범죄자가 판을 치기에 루카스와 앤드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공간도 아니었다. 행성 수비대 지원을 포기한다면 결과적으로 자유는 자유지만 비참한 자유가 두 친구를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루카스가 잠시 앤드류를 설득하자, 현실을 직시한 앤드류는 루카스의 의견에 금방 찬성했다. 두 친구는 행성 수비대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3장 : 행성 수비대
“저희는 행성 수비대에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루카스가 아밀레아의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러면 훈련도 소화를 해야 합니다. 아무나 행성 수비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밀레아의 대답에 루카스는 내심 주춤하더니 앤드류의 얼굴을 살짝 보고는 훈련을 수료하겠다고 대답했다.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 저번에 부상을 입으셨던 그 할머니 있잖아요?”
루카스는 이야기를 꺼낼 틈이 나자 주제를 할머니에 관련된 것으로 바꾸었다. 아밀레아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흥미를 보이자, 루카스는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할머니가 아마 손바닥만큼 커다란 메달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나요?”
“그러셨죠. 응급치료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요.”
“그럼 지금 만나러 가야 해요. 그 메달, 침투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밀레아는 알 수 없는 루카스의 말에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앤드류는 이 친구가 드디어 돌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음, 어, 좋아요. 어차피 병문안 자체는 자유니까.”
아밀레아는 우선 할머니를 만나러 가도록 허락했다. 아밀레아가 두 친구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뒤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아밀레아를 불러 세웠다.
“아밀레아, 민간인을 여기 데려온 거야? 그거 규율 위반인 거 몰라?!”
“진정해. 며칠 전에 두 명이서 침투자를 잡았다는 뉴스 들어본 적 있지? 그 사람들이야.”
아밀레아가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그 뉴스조차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소시민이 침투자를 잡으면 그 공을 치하할지언정 그 증거를 덮고 정부가 세운 업적으로 돌리다니, 저열하기 짝이 없구나.”
아밀레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쨌든, 내가 책임지고 들여온 사람들이야. 훗날에 행성 수비대를 이끌만한 인재들이니까 안심해도 좋아.”
아밀레아가 다시 대답하자 상대는 알겠다는 듯이 물러났다. 아밀레아는 아무래도 행성 수비대 내에서 어느 정도 신용이 있는 인물인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의 호버를 태우고 할머니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까지 안내했다. 가는 도중에 앤드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물어보자, 루카스는 아마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직 루카스 또한 마음 속 의문만 커질 뿐 메달과 할머니의 진실을 알지 못했으나 메달에 관한 사실이 행성 수비대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제임을 직시하고 있었다.
병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수많은 기자들이 앞 다투어 병원 앞에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행렬은 할머니가 있는 병실 앞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제 좀 조용하세요! 지금 당신들이 취재하려는 상대가 70세가 넘는 부상당한 고령자인 걸 모르는 겁니까!”
병원 관계자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이가 70세 이상인 고령자를 상대로 취재를 하려 들다니 환자에 대한 정보가 매우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루카스는 기자들의 취재대상이 메달을 가진 할머니라는 것을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언론사에 그녀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때문에 기자들이 몰려왔던 것이다.
아밀레아가 자신의 신분증을 관계자에게 보여주자,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제쳐두고 할머니가 있는 병실에 일행을 안내했다.
“할머니, 이제 몸이 조금 괜찮아요?”
“아..청년, 와 주었네. 안 그래도 자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할머니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루카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자네가 궁금해 한 메달에 관한..아니, 더 넘어서 내 과거를 이해해 주려고 하는데.. 다 죽어가는 노인의 넋두리를 들어주겠나?”
할머니는 마지막 힘을 써서 루카스에게 마음속의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며칠 전에 보았던 공포와 광기에 차서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자식에게 전해주는 온화한 할머니의 모습에 가까웠다.
“...기자들이 저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 바로..내가 60년 전 파괴되었던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에서 살았던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이야.”
할머니의 첫마디에 루카스, 앤드류는 물론 아밀레아까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타는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1등급 침투자의 공격을 받은 곳이었다.
“내가 세타에서 살고 있던 세타는 알 수 없는 한 시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침투자들로 인해 곤혹을 치루고 있었지. 내가 20살 때, 강력한 힘을 지녔던 침투자가 세타의 군사 방어망을 뚫고 사라졌어.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세타 상공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우주의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존재인 차원의 문이 열렸지...그리고 침투자들의 군주가 그곳에서 나타났어.”
할머니의 증언으로 인해 침투자들은 하나의 조직으로부터 내려오는 존재임이 입증되었다. 할머니가 말을 하는 사이, 기자들 또한 통제를 뚫고 이 소식을 부랴부랴 보도하고 있었다.
“... 그 군주는, 여태까지 들어본 어떤 강력한 생물이나 무기의 힘을 터무니없이 능가했어.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의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자, 군주는 순식간에 세타의 기반시설을 모조리, 처참하게 파괴했지. 순식간에 도시들과 지지대들이 뜯어져 나갔어.
...세타 측에서는 황급히 다른 에큐메노폴리스에게 구조요청을 타진하려 했으나, 모든 것은 소용없었어. 군주는 너무나 강력하고 빨라서... 저항할 동기조차 증발하게 만들었지...”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역사상 딱 한 번 나타났던 1등급 침투자는 침투자가 아닌 침투자들의 군주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군주는 자신의 능력으로 차원의 문을 만들어낸 뒤 침투자들을 이 우주에 보내서 자신이 흡수할 문명들의 위치를 찾게 명령했던 것이다.
“결국 세타의 거주자들은 모두 제국에서 살아가기로 했고, 그렇게 군주는 모든 세타의 인원들을 함선에 수용하고는 차원의 문을 통해 세타의 사람들을 자신의 제국으로 이동시켰어.
나는 그렇게 해서 40년 가까이 그 군주의 제국에서 살아갔지.
침투자들이 살아가는 제국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발전되었으며, 질서정연했어. 게다가 생각보다 많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였으나 나는 여전히 고향 에큐메노폴리스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실수를 저질렀지.”
할머니가 말하는 과거 자신의 실수는 아무래도 저번에 마주쳤던 침투자가 “더러운 반역자”라고 외친 것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나는 자유롭게 넓은 우주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 우주선 비행사가 되었고, 이방인 출신이 최초로 제국의 파일럿이 된 기념으로 내가 가진 이 메달을 받았지. 일종의 특권이었어.. 이 메달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어. 아마 청년도 봐서 알다시피 제국 출신의 군인(침투자)이나 함선이 다가오면 빛을 발하는 능력이 있지.”
“어느 날, 노련한 중년의 파일럿이 된 나는 70여명의 침투자들을 우주선에 싣고 군주가 열어 둔 차원의 문을 통과해 에큐메노폴리스에 투입시키는 작전에 참여했었어. 나는 조종사로서 조종석에 앉았지. 차원의 문을 통과한 순간, 나의 파괴된 채 방치된 고향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가 보이자 나는 어리석게도 심각한 향수에 휩싸인 나머지 저 멀리서 순찰을 도는 전투용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정부소속 함선에 몰래 구조요청을 보내고 말았어.
..결국 함선은 구조 요청을 받아들였지. 나의 이기적인 그리움 때문에 나를 제외한 70명의 침투자들은 그대로 행성 수비대에 잡혀서 처형당했고, 나는 그들의 분노 섞인 단말마를 들으며 함선을 타고 에큐메노폴리스의 사회로 복귀하게 되었지. 그 이후로 20년이 지나도록, 나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왔어.”
루카스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침투자가 동료의 보복을 위해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할 목적으로 메달을 계속 지켜봤었고, 침투자 때문에 매달에서 빛이 나는 상황에서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져 밤마다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현재에는 각 에큐메노폴리스에 한 마리의 침투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침투자들의 군주가 과거 할머니의 배신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해 한 번에 많은 병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한 번에 한 침투자만 투입시키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의식을 잃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말할 수 있는 비밀도 모두 끝나 버렸다.
“호흡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빨리 산소를 보충해!”
의료진들과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을 뒤로 하고 루카스, 앤드류, 아밀레아 세 사람들은 병실 앞 대기실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대기실의 홀로그램에서는 할머니에 관한 속보가 쏟아졌고, 결국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의 유일한 생존자가 사망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방송되었다. 의료기술이 크게 발전한 에큐메노폴리스 문명이었지만, 사회를 피해 다니며 살아온 할머니는 노후화와 부상까지 겹치며 당시로서는 짧은 삶을 산 셈이었다.
할머니의 사망소식이 언론에서 다뤄진 이후에는 할머니의 과거와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 참사에 대한 진실, “군주”에 대한 보도가 하이라이트로 다뤄졌다.
물론 할머니가 지은 죄도 있었지만, 그녀가 20년에 달하는 인생의 일부를 침투자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았던 것을 떠올리며, 루카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침투자들의 탈출을 막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수비대로서의 임무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침투자를 한 마리라도 살려 보낼 시 곧이어 군주가 위치를 보고받고 차원의 문을 내려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수비대의 역할은 더더욱 중한 셈이었다.
병원에서 나온 두 친구는 바로 다음 날부터 본부에서 시작되는 행성 수비대 훈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후 아밀레아한테 이야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저번에 아밀레아가 이야기 했듯이 최근 침투자들의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고, 이는 군주가 더 적극적으로 일곱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의 위치파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칫하면 전무후무한 피해와 손실을 일으키는 거대한 전투가 벌어질 수 있었기에, 루카스와 앤드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스피더가 부서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후버 버스를 타고 각자의 일터에 가서 자신들이 행성 수비대에 지원했음을 알리러 갔다. 매우 요직이 아닌 이상, 직원이 행성 수비대에 지원하면 기존 일을 그만두는 것을 순순히 허락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다지 거북함을 느끼는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많이 친해진 사람들도 많은데, 아쉽네.”
루카스는 씁쓸해하며 감독관에게 행성 수비대 지원 보고를 하기 위해 다가갔다.
“...음, 그렇구나. 행성 수비대에 지원한다니. 중요하고도 위험한 일이니까, 네가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길 기도할게.”
감독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최근에 우리 팀이 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같이 못해서 섭섭하네. 네가 임무 수행은 잘 하니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예? 그 프로젝트가 어떤 건가요?”
“뭐, 비상시에 한 사람의 두뇌에 연결한 뒤 뉴런 신호를 증폭시켜 모든 행성의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라는데? 증폭기가 달린 마스크가 본체고, 그것과 연동되는 시스템의 기반시설이나 비상부품들을 만드는 게 우리 일이지. 비상상황에 여러 사람의 도움 없이 단 독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가 봐.”
감독관이 알고 있는 정보는 거기까지 인 듯 했다. 상당히 커다란 프로젝트인 듯 했으나 세부적인 정보나 목적은 해당 부서 고위층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 루카스.”
감독관의 시원한 인사를 끝으로 루카스는 자신이 몸담았던 일터와의 작별을 고했다. 루카스가 아파트에 들어간 뒤에 얼마 안 있어서 앤드류도 일을 마무리하고 들어왔다.
“이 아파트,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팔아야 되나?”
“재개발 된다니까 수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두 친구는 아쉬운 마음으로 아파트를 정리하고 필요 없는 가구들을 처분하기 시작했으나 워낙 검소하게 지내서인지 정리할 것들이 딱히 없었다. 아파트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전광판에는 여전히 할머니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할머니의 삶에 대해 보도하며 공감 여론까지 형성하고 있었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이런 식으로 주목받으면 억울하지 않나요.”
루카스는 아주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생겨난 동시에 에 관한 뉴스는 왜 안 나오는지 궁금증이 일어났다. 앤드류가 정리한 짐들을 껴안고 코를 골며 자는 사이, 루카스는 의심과 궁금증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루카스는 가 꽤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이기에 정부에서 할머니에 대한 소식을 언론에 퍼뜨려 뉴스의 화제를 전환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거기까지, 루카스도 어느새 잠에 들었다.
“일어나, 앤드류, 늦었어!”
다음 날 아침, 루카스가 앤드류를 잡아 깨웠다.
“와, 여섯 시네. 얼른 가자. 무슨 놈의 훈련 시작을 이렇게 일찍 하냐.”
두 친구는 호버를 타고 행성 수비대의 본부로 향했다. 다음부터는 행성 수비대 소속의 셔틀 호버를 탈 터이니, 아파트뿐만 아니라 민간 호버 버스도 작별이었다.
호버는 마치 원숭이가 복잡한 나무 정글을 이동하듯이, A구역의 높디높은 빌딩 상공과 깊은 지하상가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시민들을 이송했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별로 보지 못한 웅장하고도 짜릿한 광경에 매료된 사이, 호버는 두 친구들은 행성 수비대 본부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앞에는 아밀레아가 나와 있었다.
“아, 드디어 오셨네요. 이곳은 나름 상하관계가 있는 조직이니 훈련을 시작하는 순간 제가 여러분한테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끝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훈련 생들이 올 테니, 광장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아밀레아는 어디론가 급히 걸어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본부 앞 광장에 호버가 몇 차례 다녀가더니 수백 명의 훈련생들이 광장에 모여들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 조용! 지금부터 훈련 시작에 관한 안내를 시작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압도하며 우렁찬 명령어가 광장에 울리자, 루카스와 앤드류도 흠칫하며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소리의 진원지는 광장 앞 중간이었고, 그 곳에는 어림잡아 키가 190cm는 넘는 거구의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A구역의 수비대 지휘를 맡는 와이어트 대령이라고 한다. 특별하게 이 자리에 서서 훈련생들의 훈련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에서 살아가는 천문학적 수의 생명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이니 모든 훈련에 죽을 각오로 임하도록 한다.”
와이어트가 강인하고도 다소 냉정한 분위기의 연설을 하자, 루카스는 자신이 비로소 행성 수비대 훈련생을 지원했다는 걸 실감했다. 훈련 시작에 대한 안내와 행성 수비대 훈련생으로서의 마음가짐에 관한 연설을 마친 후,
“지금부터 A-1조 훈련생들의 교관부터 차례대로 소개한다.” 하는 와이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말을 들어보니 온갖 지역에서 행성 수비대 훈련을 실시하는 모양이었고, 그 중 하나가 루카스가 소속되어있는 조였다. 에큐메노폴리스의 인구가 엄청난 만큼, 새로 들어오는 훈련생들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니 각 지역으로 나뉘어져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속한 A-1조는 50명 규모로, 광장의 사람들은 몇 개의 조로 나눠진 상태였다.
그 찰나에, 루카스의 뒤쪽에서 따가운 시선과 함께 킬킬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싶어서 살짝 뒤를 돌아보려는 때 와이어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훈련 조교를 맡게 된 아밀레아 플로레스 조교다.”
이윽고 루카스를 포함한 모든 인원이 경례를 하자, 아밀레아도 경례를 하였다. 방금 전까지 자유롭게 대화했던 아밀레아가 이번 훈련 조교였기에,
‘와 이런 우연도 있구나.’
하고 루카스는 내심 놀라워했다. 물론 아밀레아가 본인이 직접 두 친구의 행성 수비대 지원을 요청했기에 자신이 두 친구들을 책임지겠다는 의도로 자신의 조 인원으로 편성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밀레아는 7~6등급짜리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갈 사람들을 선발하는 훈련을 진행하며, 5등급 침투자 처리 반 선발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뽑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침투자가 상정 외로 너무 강하면 다른 등급을 맡는 사람들로 군사력을 보충할 수는 있었지만, 6~7등급을 처리할 훈련만 받아온 대원이 5등급을 상회하는 침투자를 막기에는 능력적 결여가 존재하기에 때문에 대원들의 목숨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탈락제도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7등급이나 6등급짜리 침투자처리 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플라즈마 건, 격투술, 그리고 침투자 출현 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한 스피더 고속 운전 기술을 훈련받아야 했는데, 애초에 스피더를 좋아하는데다 러시아워의 도로를 스피더로 질주하며 출퇴근을 하던 루카스에게 스피더 훈련은 쉬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훈련을 수료해서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으로 승급하면 개인 스피더를 받을 수 있어!’
루카스는 이전에 사무실에서 아밀레아한테 들었던 말을 상기시키며 사기를 북돋았다.
“좋아, 이제 설명은 끝났고, 기숙사를 안내받으니까 조교들의 지시를 잘 따르기 바란다!”
와이어트의 목소리에 아밀레아와 몇몇 조교들이 앞장서서 줄을 세우자, 몇 개의 조들이 모두 흩어져 각 조들이 묵을 기숙사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은 몇 개의 동이 있어서 그 규모가 상당히 거대했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있는 줄이 다른 줄과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야야, 저 새끼다. 크크”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거칠게 루카스와 어깨를 부딪혔다. 순간 주춤하며 루카스와 앤드류가 뒤를 돌아봤으나 범인은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뭐냐, 저 자식은?”
앤드류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뒤를 돌아보자, 루카스가 말렸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여기는 엄격한 조직 사회라서 시비를 걸면 거기서 그치지 싸우려 들진 않을 테니까. 우리도 그래서는 안 되고.”
두 친구는 운 좋게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기숙사 안은 매우 간단했는데, 이층침대에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비록 내부는 단순했으나 첨단 기술이 사용된 장치가 많아서 오히려 아파트에서의 삶보다 편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도 몇 권 꽂혀 있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침투자에 관한 도감도 있었다. 그곳에는 해부도까지 그려져 있어서 어디가 급소인지까지 명시해 놓았다.
“와, 급소는 목뼈나 심장 부위, 얼굴이래. 사람과 비슷한 급소를 가졌지만, 급소라고 해도 철저히 파괴시켜야만 제거에 성공할 수 있대.”
앤드류가 도감을 잠시 구경하며 말했다.
두 친구가 한창 방 안을 돌아볼 때, 안내방송이 울렸다.

4장 : 훈련
루카스와 앤드류는 구내식당으로 들어갔다. 훈련생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분위기가 맴돌았다. 다른 훈련생들 눈치 보는 분위기, 친한 친구들끼리 히죽거리는 분위기, 다른 사람들 구경하는 분위기(루카스, 앤드류처럼), 친해질 사람들 찾는 분위기 등. 물론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다.
한창 앤드류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루카스의 등 뒤에서 또 다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야, 루카스. 아까 너한테 시비건 애들이 쟤들이야?”
루카스와 마주보고 식사를 하던 앤드류는 루카스를 보고 낄낄거리던 일행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루카스가 뒤돌아보자,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 일이 없던 척 했기에 루카스는 누가 자신을 보고 그렇게 놀려대는지 알 수 없었다.
“신경 끄자, 앤드류. 훈련이나 기대하자고.”
“루카스, 넌 너무 긍정 마인드야.”
루카스와 앤드류는 화제를 전환하여 다시 그들만의 잡다한 대화를 펼쳤다.
두 친구는 식사를 마치고 재빨리 기숙사의 방으로 올라가 훈련복으로 갈아입었다. 루카스는 상냥한 인상만 한껏 풍기던 아밀레아가 어떤 분위기를 자아내며 훈련을 진행할지 기대하고 있었다.
격투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 루카스와 앤드류 주변에는 같이 훈련을 받는 동기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 사이에서, 루카스 등 뒤에서 히죽거리던 무리들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야, 우리 큰일났다.”
앤드류가 무언가를 보고 중얼거렸다. 앤드류의 눈에는 지쳐서 땀을 줄줄 흘리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바로 이전 타임에 격투술 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이었다.
훈련장 내부에는 의문의 도구들이 가득했다. 사람 한 명이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캡슐이랑 다양한 무기들이 가득했는데, 루카스는 격투장에서 쓰는 무기라면 단검이나 몽둥이 모형이 다일 줄 알았으나 커다란 플라즈마 건 모형이랑 고온열선이 장착된 나이프 등 생소한 모형으로 구현된 무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는데, 침투자를 상대로 일반적인 무술에 쓰는 도구를 사용하면 유효타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격투술 훈련에 참가한 훈련생들, 모두 환영합니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 마 여기에는 격투술이 왜 필요한지 짐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왜 배우는지 감도 못 잡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밀레아가 존댓말을 쓰되 말투가 엄격한 톤으로 바뀌자 루카스는 내심 놀랐다. 사람의 말투가 이렇게 극적으로 변하다니.
“여러분들은 실전에서 슈트를 입으니 신체능력이 향상될 것이기에, 만약 7등급에 준하는 침투자를 마주치면 힘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격투술 하나 익히지 못하고 근접전을 한다면 몸놀림이 민첩한 침투자의 맹공격에 밀려서 죽게 될 터이니, 격투 훈련을 가볍게 여겨서 다른 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할망정 남에게 위험요소 되는 피해를 끼치지 않길 바랍니다.”
훈련생들이 긴장하자, 아밀레아는 본격적인 훈련 방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밀레아의 설명은 각종 격투술의 개념으로 시작했다.
전제 : 격투술은 7등급에 준하는 침투자에 유효하며 6등급부터는 무효하지만 7등급의 출현빈도가 가장 높은 만큼 필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한 원거리 전투를 진행하기에 너무 높은 고강도 훈련을 할 필요는 없다.
1. 플라즈마 건을 사용한 격투술은 침투자가 근접전으로 기습했을 경우 플라즈마 건의 몸체를 이용해 방어 및 공격을 하는 격투술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방어력이 높은 기술이다.
2. 고온열선 나이프를 이용한 격투술은 기타 무장 해제 상태에서 침투자와 싸울 때 고온열선 나이프를 이용해 신경 및 급소를 태워 무력화시키는 격투술이다. 민첩성과 치명적인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실패 시 아래의 격투술로 즉시 전환해야 하며. 신속, 정확성이 요구된다.
3. 일반 격투술은 슈트의 방어력과 공격력 향상기능을 이용해 오직 맨몸의 움직임으로 침투자를 무력화하는 격투술로, 모든 무장이 해제된 최악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가장 민첩성이 빠른 기술이지만 맨몸으로 부딪히기에 가장 위험성이 높은 기술이다.
4. 유인 캡슐은 가상 실전 훈련장으로, 침투자의 전투방식을 분석해 만든 가상의 침투자를 상대하는 훈련으로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아밀레아는 설명을 마친 뒤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는 지 예시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밀레아가 예시를 위해 합을 보여줄 상대를 고르는 그 때, 루카스가 눈에 들어왔다.
“루카스 훈련병, 이리로 나와 봐요.”
아밀레아는 플라즈마 건 모형을 집어 들더니 루카스를 불렀다.
“나 뭐 잘못한 거 없는데 왜 부르시지?”
루카스가 마음속으로 떨면서 앞으로 나오자, 아밀레아는 플라즈마 건 모형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뒤 공격하는 모습을 시범으로 보였다.(아프지 않게) 물론 그 상대는 루카스였기에, 루카스는 플라즈마 건을 이용한 공격 및 방어기술 합을 보여주는 동안 계속 굴욕을 당해야 했다.
아밀레아의 시범에 얼굴이 바닥에 철푸덕 부딪히며 넘어진 루카스는 시범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로 자신을 냉소적인 표정으로 한껏 놀려대는 예닐곱 정도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낯익은 얼굴이 하나 껴 있었는데, 저번에 루카스가 실컷 패버렸던 그 양아치의 두목격인 녀석이었다. 훈련복에는 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야,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지? 사회 환원 정책 때문에 강제로 들어온 건가? 저런 애들이 자진해서 여기 올 리가 없는데.”
루카스는 짧은 찰나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자, 이렇게 해서 시범이 끝났습니다. 오늘은 플라즈마 건을 이용한 격투술을 배우고 다음 번에는 고온열선 나이프를 다룰 겁니다. 이제 두 명이서 짝지어 사십 분 동안 제가 시범 보인 걸 서로 연습하세요. 마지막에 짝을 못 찾은 사람은 저랑 합을 맞출 겁니다.”
하고 아밀레아가 말하자 모두들 짝을 지었다. 당연히 루카스는 앤드류랑 짝을 맞추었고, 덱스터 무리는 그들끼리, 다른 훈련생들도 친구끼리 아니면 손에 잡히는 애들끼리 후다닥 짝을 맞추었다.
“삼십 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과 짝지어 사십 분 동안 연습하세요!”
아밀레아의 지시에 훈련생들은 재빨리 짝을 바꾸어 연습했다. 루카스와 앤드류도 흩어져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과 연습을 진행했다. 이렇게 아밀레아는 다양한 훈련생들이 서로 만나게 유도함으로서 훈련생간의 유대감을 키우도록 했다.
“내가 먼저 할.. 아니 네가..”
서로 어색한 상태로 훈련하다 보니 위와 같은 수줍은 대화가 훈련장을 메웠다.
합을 맞추는 훈련이 끝나자, 아밀레아는 격투장 안의 모든 훈련생들을 불러 모았다. 훈련생들 중에는 동작을 잘 기억해서 온전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재능파, 느릿느릿 하고 다소 부족하지만 끝까지 훈련에 잘 참여한 노력파(루카스, 앤드류), 아밀레아한테 질문만 하다가 시간을 놓쳐버린 재능 부족파, 딴 짓거리 하는 사람(덱스터) 등 여러 부류가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합을 아무리 잘 맞춘다고 해서 실전에 무조건 강한 게 아닙니다. 이제 배웠던 동작을 실전에 사용하는 훈련을 할 겁니다. 부여된 번호 순서대로 캡슐에 들어가 주세요. 실시간으로 캡슐에 저장되는 각자의 전투 데이터를 제가 보고 평가하겠습니다.”
아밀레아의 지시에 훈련생들은 차례대로 캡슐에 들어갔다. 훈련복에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자신의 차례를 알 수 있었다.
“쿠당탕 콰당... 아, 잠깐, 악!”
캡슐 안에서는 사람의 의자와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나오는 외마디 비명이 간간히 들려왔다. 앤드류는 비교적 초반부에 훈련을 완료한 채 대기 중이었고, 한참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루카스는 30분 쯤 지나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와, 이거 흥미로운데?”
캡슐 안에 들어간 루카스가 생각했다. 캡슐에는 얼굴 전체를 덮는 헬멧이 있었고, 바닥은 마치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는 러닝머신처럼 생겨서 캡슐 안에서는 걷고 뛰고 구르고 오만 짓을 할 수 있었다. 헬멧을 쓰자, 플라즈마 건을 들고 수트를 입은 채로 골목에 홀로 남겨진 상황의 가상현실이 펼쳐졌다. 기온부터 촉감, 소리까지 모든 게 현실 같았다.
루카스가 긴장한 채 가상현실 속을 걷고 있던 그 때, 측면에서 갑자기 침투자가 뛰어 들어왔다. 루카스가 재빨리 플라즈마 건을 세워서 방어하자, 침투자와 루카스는 서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침투자가 자세를 바로잡고 루카스를 공격하려 하자 루카스는 플라즈마 건의 몸체로 침투자의 팔을 막아낸 뒤 개머리판으로 침투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침투자가 비틀거리며 입을 크게 벌려 루카스를 물어뜯으려 하자 루카스는 재빨리 총구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침투자는 손톱을 만들어내 플라즈마 건을 집고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런, 완력으로는 절대적으로 내가 밀려. 이대로 가면 당할 거야.”
루카스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아까 숙소에 있던 도감에는 라고 적혀 있었지. 도감을 읽어줘서 고맙다, 앤드류.”
루카스는 앤드류가 도감을 읽으며 했던 말을 떠올렸고, 발을 이용해 침투자의 목을 힘껏 내리쳤다. 내리치기를 몇 번 반복하자 침투자의 힘이 풀리더니 움직임이 멈추었고, 이내 가상현실도 끝이 나며 루카스는 캡슐 밖으로 나왔다. 긴장해서인지 얼굴은 땀에 젖어 있었다.
“성공했어?”
“어. 네가 급소를 말해준 덕분이야.”
“다행이네. 나도 급소를 노려서 성공했어.”
루카스가 대기 중인 앤드류에게 가서 남은 시간 동안 대화했다.
“자자, 이제 격투 훈련이 모두 끝났으니 개인 평가를 내리겠습니다.”
아밀레아가 격투훈련 마무리를 선언했다. 평가해야 하는 인원은 총 50여명 정도였기에 아밀레아는 최대한 요약해서 평가를 내려 빨리 마무리하도록 노력했다.
“앤드류 훈련생은 이번 격투 훈련에서 동작을 잘 익힌 것 같군요. 신속하게 기술을 사용해 서 급소를 공격해 상황을 정리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훌륭했어요.”
앤드류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덱스터 훈련생은 동작 연습을 잘 익히지 않았나 보네요? 이번에 훈련받은 동작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무작정 덤볐다는 데이터가 산출되었는데. 이번이 처음이라서 이해할 수 있지만 다음에도 계속 이러면 개인의 태도가 불성실한 겁니다.”
아밀레아의 일침에 덱스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훈련생들이 심한 혹평을 듣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덱스터의 반응은 과민했다. 아밀레아는 덱스터가 알게 모르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루카스 훈련병은 처음에 삐끗했고 동작을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공격받아 넘어 진 상황에서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고 급소를 공격해 상당히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했네요. 숙소에 꽂혀 있는 도감을 잘 읽은 모양입니다. 잘 했어요.”
루카스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자 덱스터는 루카스와 아밀레아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윽고 덱스터는 아밀레아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의 눈이 차갑게 말하고 있었다.
‘뭐가 불만이지, 훈련생?’
뒤를 이어 매우 우수한 평가를 받는 훈련생이 등장했다.
“48번 훈련생(무명)은 상당히 좋은 근력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가장 빠른 기록으로 침투자를 제압했군요. 체력도 매우 좋아서 심박수도 안정하다니, 대단해요.”
루카스와 앤드류도 무명의 훈련생을 보고 놀랐다. 실제로 체력이 너무나 좋아서인지 표정 자체가 전혀 지치지 않은, 무감각한 표정이었다.
“...좋아요, 이제 평가까지 모든 격투 훈련이 마무리 되었으니 숙소로 가서 휴식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는 플라즈마 건 사격훈련을 할 테니 방송을 잘 들으십시오.”
아밀레아의 끝맺음 후에 훈련생과 아밀레아 양쪽에서 경례를 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루카스와 앤드류도 자신들의 기숙사를 향해 들어갔다.
“와, 팔이 다 아프네. 이거 생각보다 힘들다.”
앤드류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아, 맞다. 루카스, 내가 봤는데 그 덱스터라는 놈이 계속 너를 아니꼽게 보던데? 무슨 일 이라도 있었어?”
루카스는 잠시 주춤했다가 이전에 양아치들과 조우했던 이야기를 앤드류에게 털어놓았다.
“그거 쪼잔한 놈이네. 잘못을 먼저 한데다가 졌으면 인정을 해야 할 거 아냐.”
앤드류가 발끈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덱스터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루카스는 자신이 상관을 하지 않으면 덱스터도 질려서 물러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두 친구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방송이 울렸다.

이번에도 아밀레아 조교의 지도하에 훈련을 받아야 했다.
“와, 체력적으로 50명의 인원을 연달아 감독하는 게 가능한가?”
루카스가 아밀레아의 체력에 감탄했다. 분명한 건 훈련생들을 양성하는 임무는 대단히 중요한 임무이기에 어떤 조교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듣기로 플라즈마 건 훈련은 격투 훈련보다는 쉽다던데?”
루카스가 앤드류에게 말하자 아픈 팔을 주무르던 앤드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격 훈련은 살생능력이 없는 플라즈마를 뿜어내는, 1:1 크기의 플라즈마 건 모형으로 진행되었다. 루카스는 마치 서바이벌을 하듯이 가상 침투자를 때려잡는 훈련을 할 줄 알았지만, 처음에는 플라즈마 건의 작동 법을 익히거나 사격 정확도를 강화하는 지루한 훈련이 이어졌다.
“...좋아요,...분발하세요,...아직 부족해요,...훌륭하군요...”
아밀레아가 각 사람을 돌아보며 사격실력을 시험했다. 첫술에 배부르겠냐는 말이 있듯이 첫 사격 경험이라 정확도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아밀레아는 반복되는 훈련이 중요하다며 훈련생들을 격려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니죠. 아까 설명할 때 뭘 들은 겁니까?”
물론 잔소리를 듣는 훈련병도 있었다. 덱스터도 그 중 하나였는데, 그의 얼굴은 아까 전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음, 루카스 훈련병은 잘 하네요. 꾸준히 훈련받아서 실력을 발전시키세요.”
아밀레아의 칭찬이 루카스에게 향하자, 덱스터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어쩌려고 저런 표정을 짓지?”
루카스의 가장자리 시야로 덱스터의 얼굴이 비치자 루카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사격 훈련장 안에 냉랭한 공기가 흐른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밀레아는 사격 훈련의 종료를 알렸다.
“사격 훈련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18시가 넘었으니 다들 저녁을 받으러 들어가세요. 모 두들 수고했습니다.”
이어서 경례가 끝난 뒤에 모든 훈련생들이 사격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덱스터도 줄에 뒤섞여서 사격장을 나가다가 아밀레아를 한 번 대놓고 노려보았다. 아밀레아는 덱스터를 불러 세우려다가 그냥 참았다.
“덱스터 걔 있잖아, 거의 이제 너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데?”
“음.. 내 생각에는 그 친구 분을 못 삭이는 성격이야.”
루카스와 앤드류는 조용히 덱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야, 드디어 제대로 된 고기를 먹어 보네. 하하!”
저녁식사를 배급받은 루카스와 앤드류는 행복에 겨워 죽었다. 그동안 습지나무 뿌리 등 줘도 안 먹는 음식을 먹어 와서 비위가 강해진 와중에 훈련소에서 먹는 고기는 만찬이었다.
“아, 이거 부족한데? 더 받을까?”
“이 돼지 같은 놈아, 그만 먹어.”
“돼지도 지구 동물이야? 잘 모르겠는데..”
떠들어대는 루카스와 앤드류, 그리고 그들과 말을 트기 시작한 친구들을 향해 덱스터가 다가왔다. 덱스터가 자기의 양아치 무리를 데리고 루카스의 뒤를 지나치자, 앤드류가 루카스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덱스터는 그릇에 가득 담긴 음식물과 음료수를 루카스에게 모두 쏟아 냈다. 루카스의 옷은 물론 얼굴에까지 음식물이 쏟아졌고, 일제히 시끄럽게 떠들던 수십 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앤드류가 눈이 반쯤 뒤집혀 달려들려 했으나 루카스가 조용히 손을 들어 말렸다.
“왜 가만히 있냐? 여기가 조직사회라서 쫄려, 새끼야?”
“아무것도 안 하고 지휘나 해대는 교관한테 칭찬이나 듣고 있으니 아주 좋아서 죽겠네?”
덱스터 일행들이 킬킬댔다. 그 때, 주변에서 싸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야?”
누군가가 덱스터의 어깨를 잡자 덱스터가 뒤돌아봤다. 그 주인공은 아밀레아 교관이었다.
“하, 교관 납시었네. 이렇게 졸병들 싸움 구경하실만한 시간이 있나 봐요, 아가씨?”
덱스터가 대들자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상황에 중심에 있던 루카스는 서서히 옆쪽으로 몸을 피했다.
“싸움 구경할 시간은 없지만, 졸병들 버릇을 고쳐줄 시간은 있어.”
아밀레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무서운 속도로 덱스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자, 덱스터가 침을 튀기며 식탁 위로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루카스를 경멸하며 놀리던 덱스터 무리도 조용해졌다.
“이게 나를 쳤어!”
덱스터가 이성을 잃고 발악하며 아밀레아한테 덤비자 아밀레아가 발차기로 덱스터의 턱을 명중시키며 쓰러뜨렸다. 그걸로 끝이 나지 않았는지 아밀레아는 비틀 비틀 일어나는 덱스터의 팔을 꺾어서 바닥에 넘어뜨린 후 무릎으로 덱스터의 가슴팍을 찍어 눌러 무력화시켰다.
“우리는 지금 침투자, 그 이상의 상대와 전쟁 중에 있는데 그런 우리를 서로 앙숙으로 만 드는 네가 정말 한가한 놈이야.
침투자들이 서로 편을 가르는 걸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서로를 도발하는 걸 본 적이 있어? 아니, 그들은 하나의 목적 앞에 충성하는 존재이며, 동료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 그런 협동심 있는 적을 상대하는 와중에 너 같은 놈이 끼어들어 오면 그 때는 네가 이 전쟁의 패인이 되는 거야.”
아밀레아는 차갑게 덱스터를 권면했다.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다면 나가. 말리지 않으니까.”
아밀레아가 결박을 풀고는 구내식당 밖으로 빠져나가자,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훈련생들은 빨리 식사를 끝내고 도망치듯 나갔다. 몇몇 훈련생들은 루카스의 몸에 달라붙은 음식물을 떼어주고 있었다.
“내가 혼자 해도 되는데, 고맙다, 너희들. 이제 진짜 괜찮으니까 내가 정리할게.”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스와 앤드류, 그리고 덱스터 무리들이 식당에 남겨졌다.
“네 분에 못 이겨서 살지 마, 덱스터. 그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면 사회는 널 외면할거고 조교님 말처럼 남에게 피해나 끼치게 되니까. 여기까지야. 앞으로 이번 일에 대한 얘기는 안 꺼낼게.”
루카스는 통증에 바닥에 엎드려 끙끙대는 덱스터를 붙잡아 일으키며 말한 뒤 앤드류와 함께 숙소로 향했다.
“...너희는 나가고 싶으면 나가. 나는 강제로 들어왔으니까 사실 수비대를 나가지도 못해.”
덱스터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하자 다들 주춤거리더니 서서히 식당을 빠져나가서 훈련 기권신청을 하러 갔다. 에큐메노폴리스 사회에서 훈련 기권은 굉장한 흠이 되는 경력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즐거움만 추구하는 무리이다 보니 자존심은 어딘가 팔아치운 걸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보낸 뒤, 덱스터는 식당의 불이 꺼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다가 기숙사 숙소로 돌아갔다. 그가 생각하며 걷는 복도는 발자국 소리만 울려 퍼질 정도로 조용했다.
그 시각, 루카스네 기숙사 방
“야.. 아밀레아 교관님 생각보다 세더라..”
숙소에 돌아와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던 정적을 깨부수며 앤드류가 입을 열자, 루카스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생 소집부터 두 차례의 잇따른 훈련, 덱스터의 행동, 그리고 아밀레아의 역변과정은 두 친구의 정신 상태를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첫 인상에는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이렇게까지 단호하고 엄격하게 변하는 것은 두 친구가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안내 방송이 기숙사에 방송되었다.
<훈련생 여러분, 오늘 저녁시간은 휴식기간입니다. 자유 시간을 보내되 허가 없이 방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내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됩니다. 기상 시간은 6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료해야 하는 훈련의 양은 점점 늘어났다. 격투술의 경우 플라즈마 건을 이용한 격투술 뿐만 아니라 고온열선 나이프, 그리고 일반 격투술까지 더 다양한 격투술을 훈련했고, 플라즈마 건 훈련의 경우 정확도를 높이는 반복훈련과 함께 움직이는 가상의 침투자를 쏘는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생 48번!(무명) 3분 48초! 완벽하다! 1등이야!”
“루카스, 3분 52초! 훌륭하다. 2등!”
“...앤드류, 3분 59초! 잘 했다. 13등!”
루카스의 실력은 상대적으로 스피더 훈련에서 빛을 발했지만, 스피더 훈련에서도 역시 루카스를 압도하는 훈련생이 존재했다. 며칠이 넘게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훈련생들은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자신의 실력이 어느 수준쯤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가려면 조 하나를 이루는 인원수 50명 중 10등 이내의 성적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제 루카스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이 아닌, 더 높은 목표달성을 위해서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훈련 시작 후 4주 뒤.
“루카스! 중간 성적 확인표가 전송됐어!”
앤드류가 홀로그램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루카스에게 중간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성적표는 1등부터 10등까지 표 형태로 작성되어 있었다.

A – 1조 훈련생 중간 성적
1등 훈련생 : 48번
2등 훈련생 : 루카스 앤더슨
.
.
.
7등 훈련생 : 앤드류 그레이
최종 결과는 킬링 로봇 훈련이 마감된 후 공개됩니다.

다행이도 1등부터 10등 사이에 루카스와 앤드류가 속해 있었다. 마지막에 시행되는 훈련 ‘킬링 로봇’은 어느 방식의 훈련인지는 몰랐으나 아마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가기 위해 수료해야 하는 훈련 중 마지막 단계임은 틀림없었다.

5장 : 가까운 어딘가에

중간성적을 확인하던 두 친구의 귀에 방송 내용이 들어왔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수많은 훈련생들이 플라즈마 건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아밀레아가 훈련을 시작하려 하자 한 훈련생이 자진해서 상황을 보고했다.
“조교님, 아직 48번 훈련생이 오지 못했습니다.”
“아, 그 훈련생은 온 몸에 원인불명의 알레르기성 발진이 너무 심하게 돋아서 훈련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룸메이트가 없어서 어느 경로로 알레르기 반응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네요. 오늘 훈련장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십시오.”
48번 훈련생이 아픈 모양이었는데,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내는 강인한 훈련생이 아플 수도 있다니 의외였다.
“상황이 심각한데. 4주째 메달에서 강한 빛이 나오고 있잖아.”
행성 수비대 본부 지하,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의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연구원들의 시선은 진공 박스 안에서 붉은색의 강한 빛을 내는 메달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연구된 정보가 무엇이지?”
“순도 100%의 루젠티윰으로 이루어져 있는 메달인데, 의문의 방식으로 작동되는 진동체가 내장되어 있어서 특정 상항에 몸체에 충격을 주어 빛을 발산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침투자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입니다.”
정보실장이 메달에 관한 정보를 보고받고 직접 실험실에 내려오자 연구원들이 보고했다.
“정보실장이다. 메달에서 4주째 빛이 나온다는 건 예삿일이 아냐. 4주 전에 이곳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든 정보를 확인...”
“으악!”
정보실장이 정보실 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도중, 연구실 저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저, 저, 저거 좀!”
당황해서 자리를 피하는 연구원 아래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부수고 나오고 있었다. 그 존재는 지하시설로 몰래 잠입한 뒤에 위층에 위치한 연구실 바닥을 뚫어 버리는 방법으로 연구실을 침입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무언가는 검정빛의 바닥에서 빠져나오며 인간형의, 검정빛 몸을 드러냈다.
“저게 대체 뭐야!”
“막아 어떻게든... 으악!!”
이윽고 그 존재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사방에서 연구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시험관이 깨지는 소리, 넘어지는 소리, 비명소리가 한데 뒤섞여서 연구실은 순식간에 끔찍한 혼돈의 현장으로 변해 갔다.
몇 분 뒤, 전체 기숙사에 사이렌과 함께 비상 방송이 송출됐다.

상황이 알려지자 아밀레아는 즉시 훈련생들을 기숙사 방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아밀레아는 빨리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훈련 중에 있던 모든 훈련생들은 기숙사 방으로 침착하고 질서 있게 이동했다. 그러나 공식 처리 팀도 침투자가 나타나면 긴장하는 판에, 훈련생들 사이에서는 입으로 표현 못 할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비상방송이 또 다시 울렸다. 연이어 두 번째로 들려오는 비상방송에, 기숙사 방 안팎으로 공포감이 잔뜩 섞인 공기가 맴돌았다. 행성 수비대의 본부가 뚫린 적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더욱이 공포는 커져만 갔다.
“팍, 팍, 팍”
이윽고 전등이 차례차례 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하 제어실로 침입해 기숙사의 모든 두꺼비집을 내려버린 모양이었다. 이미 시간은 밤이라서 기숙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빌어먹을, 제어실이 뚫린 건가. 처리 팀 대원들을 아무나 지하 제어실로 파견해, 어서! 그리고 경비원들은 복도와 훈련생들을 지키도록 한다.”
방 밖에서 관계자들의 긴박한 명령과 대화가 잠시 오갔다. 이윽고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 기숙사를 둘러쌌다. 루카스와 앤드류도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로 몇 층 아래 지하 제어실에 침투자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말이다.
“계단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위쪽으로 가고 있어!”
“뭐야, 안 보이잖아!”
“으아악!!”
곧이어 아래층 복도를 지키는 경비원들의 외침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그들의 공포에 질린 소리는 기숙사의 사람들을 일제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아래층의 경비원들을 공격한 침투자가 위층으로 조용히 올라오고 있는지,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문 바로 바깥에서, 아래층을 잇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경비원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잠깐, 이거 인간인데? 어, 어?! 아냐! 내 앞이다!”
“아아악!”
침묵이 끝나기 무섭게 무서운 비명소리와 함께 문 밖의 경비원들이 공격받고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문을 박차고 나가 싸울지 말지 내적갈등을 겪고 있던 그 때, 경비원 한 명이 루카스네 기숙사 방의 문에 던져진 후 쓰러지는 소리가 나자 두 친구는 약속한 듯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찰나, 두 친구의 눈에는 쓰러진 여러 명의 경비원들의 모습이 스쳐 보였다.
“아, 너도 도와주려고 나간 거야?”
루카스가 어둠 속에 서 있는 훈련생의 옷을 입은 사람을 짚으며 물었다. 그 때, 기숙사의 불이 켜지며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앤드류가 짚은 사람은 알레르기 때문에 훈련에 불참했던 48번 훈련생이었다. 알레르기가 그쳤는지 피부는 말끔했고,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아, 다행이네. 발진이 모두 가라앉았..”
말을 걸던 루카스가 무언가를 보고 주춤했다. 루카스가 본 것은 48번 훈련생이 잠시 손을 풀며 본의 아니게 조금 들어낸, 두 손으로 품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 물건에는 초신성이 폭발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붉은 빛이 나고 있었다.
당황하는 두 친구 뒤에 쓰러진 경비원의 통화 장치가 갑자기 작동되었다.
“경비원들에게 알린다! 지하 제어실은 아무도 없었고, 두꺼비집은 우리가 다시 올려놓았다. 이제 침투자를 찾아서 포획한 뒤 도난당한 메달 찾기에 집중한다. 응답하라. 경비원? 이봐, 경비원! 아무나 연락 줘!”
발신된 대화를 듣자마자 두 친구는 48번 훈련생을 바라보곤 깨달았다.
‘48번 무명 훈련생, 네가 침투자구나.’
이와 동시에 48번 침투생, 즉, 침투자는 루카스를 공격했다. 일반 격투술을 이용해 루카스는 방어했지만, 몇 미터 뒤로 날아가 버렸다. 루카스는 통증을 참으며 다시 일어났고, 쓰러진 경비원이 소지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런, 고온열선 나이프가 아니잖아?!”
두 친구는 속으로 투덜댔다. 고온열선 나이프가 아닌 이상 단시간에 침투자의 신경을 손상시키는 건 어려웠으며, 수트를 입지 않아서 힘의 차이가 심하기에 격투전에서 두 친구가 밀릴 가능성은 높았다.
두 친구가 나이프를 들어 올리자 침투자도 기다렸다는 듯이 메달을 내려놓고 손톱을 길게 뻗어냈다. 훈련생으로 위장하여 보란 듯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혼란스러웠다.
앤드류는 왼쪽, 루카스는 오른 쪽에서 침투자를 공격했다. 한 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적인 침투자의 공격을 피해서, 두 친구는 뒷목 부근에 나이프를 꽃아 넣었다.
“어지간히 훈련을 열심히 했구나. 아주 무모한 용기를 가졌네.”
아주 잠시 주춤하며 고통스러워하던 침투자가 다시 자세를 잡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안 끝났어! 압박해!”
루카스와 앤드류가 뒷목에 꽂힌 나이프를 두 손을 이용해 더 들이밀자, 침투자가 두 친구의 손목을 잡으며 방어했다. 그러나 일반 나이프는 목뼈를 뚫고 신경을 손상시키기에 부족했고, 인간의 힘으로는 방어하는 침투자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다. 두 친구의 손목을 잡은 침투자가 손의 악력을 높이자, 오히려 두 친구의 손목이 공격받는 상황이 되었다.
“포기하면 안 돼!”
두 친구가 고통을 견디며 나이프를 밀어 넣었지만, 침투자는 단단하게 두 친구의 손목을 잡고 앞쪽으로 던져 버렸다. 침투자는 본격적으로 두 친구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손톱을 더 길게 생성했는데, 그 길이가 10cm는 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찔리면 내장이 파열될 게 틀림없었다.
두 친구는 통증을 삼키며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나이프를 들고 다시 덤볐지만, 침투자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나이프를 잡은 후에 두 친구의 팔과 몸통을 걷어차 떨쳐내 버렸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충격으로 인해 다시 벽으로 밀쳐지자, 침투자는 둘을 주시하며 공겨굥 손톱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공격용 손톱의 길이는 10cm가 넘었기에 한 번이라도 찔렸다간 내장이 파열될 게 뻔했다.
두 친구의 한쪽 팔에 각각 타박상이 생긴 상황, 부상은 불가피했다. 침투자가 두 친구에게 달려들려는 그 때, 복도 뒤쪽에서 순찰을 돌던 아밀레아 교관이 나타나서 침투자의 다리를 향해 플라즈마 건을 발포했다. 플라즈마 건에서 뿜어져 나온 빛 덩어리는 침투자의 다리에 맞으며 푸른 색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플라즈마 건으로 맞은 고통에 침투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플라즈마 건에 맞은 한쪽 다리는 근육은 물론 뼈까지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침투자는 바닥에 떨어진 메달을 챙긴 후 도주를 시도했다.
아밀레아는 지체하지 않고 팔, 복부, 양쪽 다리에 플라즈마 건을 쏴서 명중시켰고, 침투자는 불구 상태가 되어 쓰러졌다. 작은 상처는 즉시 재생이 가능한 침투자지만, 플라즈마 건에 맞은 이상 상처 복구는 불가능했다. 아밀레아는 메달을 손에 꼭 쥔 침투자의 손목을 쏴서 메달을 빼앗는데 성공한 뒤 재빨리 보고했다.
“여기는 아밀레아 조교. 두 훈련생이 용기를 낸 덕분에 메달 수습에 성공했습니다. 침투자 는 무력화했으니 상황 수습 팀을 보내 주십시오.”
상황이 끝나자 주변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침투자는 변신상태를 유지하기 힘 들었는지, 아니면 체념했는지 검은빛 인간형 생물체의 형상, 즉,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곧이어 수습 팀이 몰려왔고, 침투자는 숨이 붙은 채로 온 몸이 묶여 어딘가로 실려 갔다. 사태가 수습된 후, 용기를 치하하여 루카스와 앤드류에게 가산점이 부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훈련생 48번이 제외된 이상 루카스는 이미 1등이었기에 효과가 그다지 없었지만, 종합순위가 7등이었던 앤드류는 10등 내 안정권으로 올라서서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 셈이었다.

몇 시간 뒤, 격리실

격리실은 주로 행성 수비대 내부 문제아들이나 범죄자들을 가두어 놓는 곳으로, 행성 수비대 본부 깊숙한 보안지대에 위치했다. 그 곳에 방금 전 사지가 크게 다친 침투자가 실려서 들어왔다. 침투자의 끈질긴 생명력은 치명상을 몇 개나 입음에도 숨을 붙들어 두고 있었다.
“잠시 뒤에 심문이 있으니까 안정하고 있어라.”
관계자들이 숨을 헐떡이는 침투자에게 툭 말을 건네고는 사라지자, 침투자가 갇힌 격리실의 불이 소등되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괜히 큰 욕심을 가진 게 화근이었다.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지 못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군주님.’
어두움이 둘러싼 침묵 속에서, 침투자는 조용히 생각했다. 몇 십 분 뒤 온 몸의 통증이 가라앉고 호흡이 안정되자, 불이 다시 켜지며 관계자들이 들어왔다. 곧이어 관계자들이 예고했던 대로 심문이 시작되었다.
“침투자, 네가 여기에 무슨 목적으로 들어왔는지 말해라. 만약 심문에 협조적이지 않으면 너를 포함한 생포된 다른 침투자들을 모두 죽이겠다.”
사실 침투자는 발견 즉시 사살되었기에 다른 생포된 침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원활한 심문 진행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침투자는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으나, 자신이 맡은 메달 관련 일은 이미 언론을 통해 정보가 퍼질 대로 퍼졌기에 굳이 메달에 관련된 비밀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동료의 목숨이 자신 때문에 끊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심문에 순순히 임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곳에 침투해 인간으로 변장해 살고 있는 도중, 동료들이 당신네 조직에 죽어 나가자, 임무 진행의 위협을 느껴 이곳에 침투해서 정보를 탈취 후 차원의 문을 통해 나의 세계로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 때 우리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는 마크(메달)가 이곳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속보를 통해 들었다. 그 배신자 때문에! (배신자는 할머니를 지칭하는 말이다.)
...어쨌든 메달이 이곳에 탈취 되는걸 막아야겠다고 생각해 훈련생으로 위장 후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다 이렇게 된 거다.”
침투자의 대답이 돌아오자, 관계자는 질문을 이어갔다.
“메달 탈취 후에 도망치면 될 것을, 왜 바로 도주하지 않았지?”
“그놈의 욕심이 화근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기 위해 메달 탈취 후 다시 훈련생으로 위장해 기숙사로 숨어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발각되어서 이렇게 잡히기까지 한 것이다.”
“알았다. 그럼, 네놈들은 왜 에큐메노폴리스에 잠입해 정보를 얻어가려 하는 거냐? 그런 너희들의 행동으로 인해 일곱 에큐메노폴리스의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침투자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군주에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함부로 다루기 어려웠지만 자신이 에큐메노폴리스 사회에 얌전히 잠입해 있던 때 언론을 통해 군주에 대한 정보와 추측이 온 사회에 드러났음을 깨닫자 침투자는 조금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그건 나의 군주가 이곳을 흡수하기 위해 실시하는 발판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왜 그러는 거지? 우리의 전력이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
“헛소리하지 마! 그건 군주님이 신중하셔서 그런 거다. 군주님은 다른 세력의 군대가 강인해서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아니다. 단언하는데, 이 3차원의 우주에서 군주님보다 강력한 생물체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침투자는 당당하게 자신했다.
“어떻게 자신하지?”
“60년 전, 군주님이 직접 에큐메노폴리스 하나를 반파시킨 것은 다들 알고 있을 텐데. 그 쯤 이면 충분히 자신할 만할 거다.”
그 때, 침투자를 심문한다는 말을 듣고 프로타 행성 수비대 장관이 찾아왔다. 이윽고 장관은 자신의 측근 몇몇을 제외하고 모든 관계자들이 격리실에서 나가도록 지시했다.
“그래. 군주라는 자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군, 침투자. 혼자의 힘으로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를 반파시킨 건 무시 못 할 수준이지.”
측근들을 제외한 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장관은 직접 침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라고 그보다 못할 줄 아나? 아니지. 그자가 우리한테 전쟁을 걸어오면, 네 조국과 군주마저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
장관은 침투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네 동족을 두어 차례 생포해 심문을 진행한 결과, 그 군주라는 작자의 이름까지 알아냈다. 그 녀석 이름은..”
“제논.”
침투자가 장관의 말을 끊으며 받아쳤다. 그의 입장에서 이방인인 에큐메노폴리스 장관이 군주의 이름, 제논을 ‘녀석’이라는 호칭을 인용하며 부르기를 원치 않았다.
“잘 알고 있네. 네 군주 이름이니 아는 게 당연하지. 만약 미래에 제논이 후회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우리를 잘못 건드려서 생긴 일일 거다. 너희들은 백성으로서 제논보고 그 삐딱한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조언했어야 했다. 일이 계속 커지면, 제논뿐만 아니라 네 고향의 모든 시민들이 멸망할 거야.”
장관은 심문을 마치고 밖에 나간 관계자들을 호출한 뒤 조용히 명령했다.
“저 침투자의 심문을 마쳤다. 더 이상 위험부담이 되는 생물을 둘 순 없으니 행성 수비대 침투자 처리 규칙대로 소각하라.”
명령을 받은 관계자들은 경례를 한 뒤 침투자를 소각실로 끌고 갔다.
“이봐!”
침투자는 마지막 힘을 다한 목소리로 장관을 불러 세웠다.
“너희들이 백만 년을 발버둥 쳐도 군주를 이길 수는 없다.”
침투자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얌전히 소각실로 실려 갔다. 자신의 동료들이 소각장에 끌려가서 모두 죽은 것과 자신도 소각장으로 간다는 것을 듣지 미처 못 한 채로.
메달이 침투자들의 집중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행성 수비대는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메달이 행성 수비대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위기이기도 했지만, 더는 못 얻을 기회이기도 했다.
“메달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이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했다. 에큐메노폴리스 바깥 우주 공간에 메달을 보관하면 사회적 공간이 침투자에게 피해를 입을 확률은 적어졌지만, 동시에 침투자의 유무를 파악할 기회도 없어지기에 의미가 없었고, 결국 일곱 에큐메노폴리스의 행성 수비대 위원회에서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행성 수비대 기밀 연구시설에 메달을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메달 보관 건에 대하여는 입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하세요. 저번처럼 정보가 언론에 유출 되었다가 피해 입는 사고가 터지면 안 됩니다.”
위원회 임원들은 정보 누설을 경계하여 단합했고, 이를 행성 수비대 관계자들에게 해당 소식을 빠르게 전해주었다.
“메달은 행성 수비대 기밀 시설에서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이 소식은 고위 관계자들이나 조교들에게 발송되니, 기타 직원들이나 훈련생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위와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의 모든 행성 수비대 관련 시설로 배포되었다.

6장 : 타이탄 베이스
시간이 지나 훈련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마지막 훈련인 킬링 로봇 훈련의 시작도 머지않았다는 소식이 훈련생들에게 전해졌다. 각종 훈련이 반복되면서 전반적인 훈련생들의 실력은 처음에 비해 현저히 올라간 상태였다. 훈련 초기에 불량한 테도를 보이던 덱스터 마저도 서서히 실력을 올려갔다.
“좋습니다, 덱스터 훈련생.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니까 실력이 오르고 있네요.”
덱스터가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기 시작하자 아밀레아의 입에도 덱스터에 대한 격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밀레아의 일침이 효과가 있었는지 덱스터는 모범적인 태도로 훈련에 임했지만, 아직 루카스와는 서로 말을 하기에 다소 어색한 사이였다. 어느 날, 플라즈마 건 훈련이 끝난 후 아밀레아가 훈련생들을 모아 어떤 정보를 전달했다.
“내일부터는 킬링 로봇 훈련을 할 예정이니, 방송을 잘 따라주십시오. 킬링 로봇 훈련이 최종 성적을 판가름 낼 것입니다.”
아밀레아가 말한 내용은 킬링 로봇 훈련의 시작이었다. 모든 격투 훈련과 스피더 훈련, 플라즈마 건 훈련을 마무리해 킬링 로봇 훈련을 받을 준비가 된 훈련생들은 고무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훈련생들 중 5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만 킬링 로봇 훈련 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6-7등급 침투자 처리 팀에 잔류하고 싶으면 킬링 로봇 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신청서를 오늘 내로 행성 수비대 홈페이지에 올려 주십시오.”
아밀레아가 곧이어 추가 정보를 알려 주었다. 루카스처럼 5등급 처리 팀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만 킬링 로봇 훈련을 수료해야 했기에, 6-7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몇몇 훈련생들은 킬링 로봇 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신청을 접수했다.
루카스는 당연히 신청서를 내지 않았고, 절친 앤드류 역시 잔류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킬링 로봇 훈련을 받기로 한 사람은 최종 40명. 이 중 10명이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 될 수 있었으며, 나머지 30명은 다음 기회를 잡거나 6-7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으로 잔류해야 했다.
“킬링 로봇 훈련을 수료할 훈련생들은 다들 짐을 싸 주시기 바랍니다. 킬링 로봇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E구역의 타이탄 베이스에서 지내야 하거든요.”
아밀레아는 위와 같이 지시하고는 하루 훈련을 마무리했다.
“루카스, 너 타이탄 베이스 알아?”
“거기 폐허지대 아녔어? 막 커다란 이상한 종족도 돌아다니는..”
타이탄 베이스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알고 있는 루카스와 앤드류가 속닥거렸다. 타이탄 베이스가 행성 수비대의 관리 하에 있는 군사 기지라는 것이 공식적인 정보지만, 그 주변이 소규모의 유령도시처럼 꾸며져 있어서 마치 도시괴담에 나올법한 마을을 연상시켜 불안감을 자아내는 장소였다. 특히 그 내부에서 커다란 생물체를 봤다느니, 혹은 큰 기계음이 들린다느니 하는 정보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타이탄 베이스는 그다지 편한 인상을 주는 공간은 아니었다.
“타이탄 베이스는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 훈련장이 있는 수많은 군사기지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들이 훈련을 받으러 가기로 배정된 기지이니 크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친구를 포함한 훈련생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자 아밀레아는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아파트에서 옮겨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또 짐을 싸네. 그나마 양이 적어서 다행이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급히 방 안으로 돌아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두 친구의 방 밖에서는 타이탄 베이스에 갈 마음에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는 마음을 한껏 품고 떠들어대는 여러 훈련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리 A구역의 근사한 야경을 가까이서 볼 시간이 거의 없을 텐데, 구경 좀 하자.”
앤드류가 기숙사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다음 날부터 폐허지대에 둘러싸인 타이탄 베이스에 가기 때문에 당분간 못 볼 번화가의 야경을 보자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행성 수비대 본부의 거대한 건물과 빌딩들, 수많은 호버들과 우주선이 뿜어내는 화려한 불빛이 자태를 뽐냈고, 하늘 위의 저 먼 공간에서도 행성 수비대 소속 전함들과 정거장이 불빛을 비추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최근에 침투자가 행성 수비대 본부까지 침입한 상황에서 잘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에큐메노폴리스의 모습은 아이러니했다.

루카스와 앤드류가 잠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안내방송이 울리자, 두 친구는 후딱 씻고 나서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식당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잔류하려는 사람들은 일상과 같은 표정을 지었고, 두 친구처럼 떠나려는 사람들은 떨리는 표정을 지었고, 안면식이 생긴 동료들과 짧게 작별인사를 미리 하는 훈련생들도 있었다.
“저기.”
갑자기 루카스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나도 타이탄 베이스에 가니까, 잘.. 해봐라.”
덱스터였다. 그는 말을 길게 걸기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짧게 말을 하고는 도망치듯 자신이 식사를 할 자리로 돌아갔다. 뭐지? 싶기도 하고 그나마 사이가 편해진 것 같아서 안도감도 들었지만, 아직 한 문장 이상의 대화를 나누기에는 많이 어색한 사이였다. 두 친구는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짐을 챙기러 올라갔다.

광장 집합을 촉구하는 방송이 울려 퍼질 때 쯤 루카스와 앤드류는 광장에 멀뚱하게 서서 훈련생들이 빨리 집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훈련생들이 하나 둘 짐을 싸서 오더니 저번에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집합했던 것처럼 수백 명이 광장에 모여 들었으나, 잔류 인원들이 모두 빠졌기에 처음 대비 100여명 좀 넘게 적은 인원이 광장에 집합했다.
“훈련생들, 모두 집합을 마쳤나?”
와이어트가 소리치며 훈련생들에게 묻자, 빠르게 인원 점검을 끝낸 훈련생들이 “예!”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에큐메노폴리스의 생명들을 책임지는 훈련생들이다! 그 책임감을 지고 비록 탈락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타이탄 베이스에서의 훈련을 수료하길 바란다.
그럼, 여기까지 하고. 각 조들은 각자의 조교들이 이끄는 버그로 출발하도록 하라.”
와이어트의 말이 끝나자, 아밀레아가 루카스의 A-1조 앞에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각 조들이 광장 외곽으로 물러나자, 광장의 중심에 커다란 호버 셔틀들이 착륙하기 시작했다. 호버 셔틀 여러 대가 한꺼번에 흙먼지와 요란한 엔진 음을 일으키며 착륙하자 훈련생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서 탑승들 해요. 이걸 타고 타이탄 베이스로 향합니다.”
아밀레아가 호버를 타라고 지시하자 A-1조의 모든 인원들이 호버 셔틀에 탑승했다. 호버 셔틀의 총원은 60명으로, 조 하나 규모의 사람들이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와아아, 올라간다!”
“으, 안전운전 해 주세요!”
호버 셔틀이 급상승하자 몇몇 훈련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떨어지면 죽기밖에 더 하는 건 없으니까 걱정 마라.”
아밀레아가 안심 시키려는 차원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 안심이 되진 않았다. 적정 고도까지 상승한 호버 셔틀들은 타이탄 베이스를 향해 전진했다.
호버 셔틀들은 훈련생들을 싣고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의 번화가를 넘어 외곽지역으로 비행했다. 띄엄띄엄 번화가가 펼쳐졌지만, 점점 지면 도시 답지 않은 서민층 동네가 펼쳐졌고, 어느새 E구역 다다랐다.
“곧 타이탄 베이스가 나오니 내릴 준비를 하십시오.”
아밀레아가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아니나 다를까, 호버 아래로는 폐허가 된 유령도시가 펼쳐졌고, 그 중심부에는 거대하고 견고하게 생긴 군사기지 건물이 보였다. 그 회색빛의 투박하고도 튼튼한 건물 외벽에는 “타이탄 베이스” 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건물 안팎으로 키 4m가량의 거대한 인간형 생물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 저거 뭐야?”
“엄청 크네. 그 소문에 들리던 생물체인가?”
훈련생들은 훈련장의 규모와 생물들의 크기에 놀랐다.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규모가 큰, “타이탄” 베이스였다.
호버 셔틀들이 타이탄 베이스의 광장 상공에 집결하자, 거대한 생물들과 다른 관계자들이 나와서 착륙을 보조했다. 타이탄 베이스 관계자들의 보조 하에 착륙한 호버 셔틀에서 내린 모든 훈련생들은 조교들의 지시에 따라 각 조에 맞춰서 줄을 섰다.
“이곳 타이탄 베이스에서는 킬링 로봇 훈련을 진행하여 5등급 침투자 처리 대원들을 선발합니다. 탈락하는 사람의 경우 본부로 돌아가 6-7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 될 것이고, 합격한 사람들은 전투기 훈련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아밀레아가 타이탄 베이스에서의 훈련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 되면 그 이상 등급의 침투자가 나타났을 시 대규모 전투에 파견되는 등 상정 외의 비상상황에 처해질 가능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에, 간단한 전투기 조종 실력도 갖추어야 했다.
“전투기 훈련의 경우 합격/불합격 시스템이 없으며,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 된 이후에 받는 상정 외의 상황을 대비한 훈련입니다.
자, 그럼 기숙사를 안내할 테니 따라 오십시오. 방 멤버는 처음과 같습니다.”
아밀레아는 훈련생들을 안내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조의 조교들도 설명을 마치고 훈련생들을 기숙사로 안내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4m 신장의 거대한 생물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호버 아래에서 보던 그냥 덩치만 큰 종족의 인상이라기 보단, 지적인 면과 호전적인 면이 합쳐진 강인한 생물처럼 보였다.
두 친구는 기숙사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방의 구조는 저번 기숙사와 동일했으나 창문이 없어서 보다 딱딱하고 더 “군사시설 같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기야 창문이 있어도 주변이 폐허라 딱히 볼 게 없겠다.”
“왜, 군사시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 군사용 전투기나 호버 봐봐. 근사하지 않냐?”
루카스와 앤드류는 짐을 다 풀고 이층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훈련생들이 방 안 정리를 끝마쳤을 때 쯤, 안내 방송이 모든 기숙사에 울렸다.

방송을 듣고 루카스는 이 기지에 상주하며 점점 상징화 되어간 타이탄 종족 때문에 이 기지 이름이 타이탄 베이스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와, 타이탄들은 얼마나 먹는 거야?”
점심시간, 루카스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들고 동족이랑 같이 식사하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타이탄 한 마리를 보고 놀랐다.
“키가 4미터는 되니까. 인간의 열 배는 넘게 먹겠는걸. 봐봐, 저기 음식 들어있는 통에 20L라고 쓰여 있잖아. 저걸 혼자서 다 먹는다는 거지.”
루카스의 옆자리에 앉은 외눈박이 외계인이 대답했다.
“와, 저게 보여? 시력도 좋다. 눈 이 한 개인데 두 개 있을 필요 없겠네?”
앤드류가 맞장구쳤다.
“음, 그렇지. 우리 종족은 인간처럼 눈이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없어.”
“뭐가 인마?!”
앤드류와 외눈박이가 티격태격 하는 사이 식사시간이 끝났고, 곧이어 이어진 안내방송에서 A-1조부터 A-3조는 식사 후 13시 30분 까지 광장에 다시 집결하라는 내용을 전했다.
“이거 뭐야, 설마 기합주려는 거 아니야?”
앤드류가 루카스의 귀에 대고 조용히 묻자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기합은 무슨, 쫄보 자..”
“넌 입 좀 다물어!”
외눈박이가 놀리자 앤드류가 소릴 지르며 발끈했다.
광장에 모이는 조들의 훈련생들이 전원 집합하자, 조교들은 각자 자신의 조를 이끌고 첫 번째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타이탄 베이스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할 수 있었다. 본부 건물은 지면에서 200m넘게 위로 솟아 있었고, 그 면적도 상당했다. 본부 건물에서 수백m 정도 떨어진 앞쪽에는 ‘전투항공 지구’가 위치해서 일종의 공군기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때문에 타이탄 베이스 주변에 크고 작은 전투기들과 군사용 호버들이 이착륙하며 볼거리를 자아냈다.
루카스가 훈련장을 따라 이동하며 정신없이 타이탄 베이스의 풍경을 구경하던 중, 상공에서 거대한 호버가 굉음을 내면서 훈련생들 위를 지나쳤다. 몇몇 훈련생들은 거대한 호버가 드리우는 그림자와 커다란 엔진소리에 놀라서 움찔하기도 했고, 고개를 들어 위를 정신없이 쳐다보는 훈련생들도 있었다.
호버의 크기는 여태껏 보지 못한 수준으로 거대했는데, 길이 70m, 높이 10m를 상회했다. 호버의 몸체를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합금장갑 겉에 “타이탄 베이스 – 캐리어”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서 호버의 이름이 캐리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역할에 걸맞게 한쪽 측면을 다 덮는 크기의 덮개 문이 달려 있어서 마치 뚜껑이 열리듯 몸체가 개방되어 커다란 짐들을 싣거나 내릴 수 있는 구조였다.
“캐리어 처음들 보나? 앞으로 질리게 보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
아밀레아가 놀라는 훈련생들에게 말했다. 모두에게 공적으로 말하거나 지시할 때는 엄격한 분위기가 묻어 있는 존댓말을 쓰지만 부수적인 이야기를 할 때 반말을 사용하는 게 어쩐지 정이 있어보였다.
훈련생들은 조교들의 안내에 따라 100명이 탈 수 있는 커다란 승강기에 몸을 실었는데, 그 승강기는 건물 한 층이 통째로 움직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거대했다. 승강기는 훈련생들을 싣고 아래쪽 층계로 하강했다.
승강기 바깥으로 타이탄 베이스의 깊고 거대한 지하층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간 안에 전투기들과 호버들이 대량으로 대기하는 모습이 마치 항공모함 내부 같았다. 훈련생들은 제어층 바로 위, 즉, 훈련생들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깊은 층까지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타이탄 베이스 훈련소 지하입니다. 타이탄 베이스 지하시설 아래로는 거대한 지지대가 위치해 있어서 지하의 주거구역과는 거리차가 있으니 지하 구역과 서로 피해를 주고받지 않으며 대규모 훈련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아밀레아가 훈련생들을 향해 짧은 안내를 했다. 타이탄 베이스에서는 소음을 일으킬 만한 대형 훈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타이탄 베이스 지하시설과 지하 주거구역 사이에 소음을 완충해 줄 수 있는 두께 수 km의 거대한 지지대가 위치해 있어서 주거지역 미칠 수 있는 소음 피해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훈련생들은 승강기에서 내려서 그들이 받을 훈련과 조우했다. 지하층의 경우 한 층의 높이가 30m기에 훈련생들이 내린 공간은 무섭게 거대했다. 그 공간의 벽면에는 5m키의 로봇들이 줄지어 수십 대가 고정되어 있었으며, 타이탄 종족들과 관계자들이 주변을 분주히 오가며 로봇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벽에 줄지어 설치된 로봇의 팔에 적힌 검정색 글씨를 볼 수 있었다.

“킬링 로봇”

7장 : 최종선발
“저 로봇들이 여러분이 작동 법을 훈련할 킬링 로봇입니다. 이 로봇들을 얼마나 잘 다루냐 에 따라, 여러분들의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으로의 진출 혹은 탈락이 결정됩니다.”
아밀레아가 설명을 이어갔다. 아밀레아는 킬링 로봇의 기능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이어갔는데, 그녀가 설명한 킬링 로봇의 간단한 제원은 다음과 같았다.
높이 : 500cm
무게 : 2800kg
속력 : 달리기 60km/h, 부스터 가동 시 110km/h
무장 : 평균 8cm 밀폐 장갑, 190cm 손목 나이프(2개), 플라즈마 캐논, 초고열선
킬링 로봇들은 5등급 이상의 침투자 처리에 사용되는 병기로, 타이탄 베이스 인근에서 살아가는 종족인 타이탄들의 골격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킬링 로봇들은 보통 5등급 이상의 침투자를 복잡한 시내에서 폭격 없이 처리하기 위해 사용된다.
“여러분들은 킬링 로봇과 ‘일체화’ 과정을 거친 뒤 가상현실 훈련을 받고, 이후에 훈련용 로봇을 통해 대련을 한 뒤 최종 선발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은 일체화 훈련을 할 테니 잘 협조해 주십시오.”
아밀레아는 안내를 마친 뒤 A-1조를 훈련생 번호순대로 정렬시켰다. 곧이어 1번부터 3번이 각자 한 대의 킬링 로봇의 몸체에 들어갔다. 킬링 로봇 몸체 안에는 사람 한 명이 반쯤 앉은 자세로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안전했지만, 처음 해 보는 훈련생들은 바닥에 떨어질 까봐 눈을 크게 뜨고 겁을 먹는 사람이 과반수였다.
“으, 잠깐, 머리가 아파요.”
“그만, 그만!”
일체형 과정이 힘든지 코피를 쏟거나 빈혈 증세를 보이는 훈련생들도 몇몇 속출했다. 이런 케이스의 사람들은 그 증상의 강도에 따라 잠시 휴식하거나 회복제를 투여했다.
“4, 5, 6번 훈련생 차례입니다.”
어느새 앤드류가 나와서 일체화 훈련을 받았다. 사다리를 타고 킬링 로봇의 몸체 안으로 들어가 몸을 고정시킨 앤드류와 나머지 두 훈련생은 아밀레아한테 어떤 설명을 듣더니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일체화 훈련에 돌입했다.
“음... 뭔가 신기한 경험이야. 한번 직접 해 봐. 어떤 특별한 게 있는지.”
훈련을 마친 앤드류가 나오며 루카스한테 흘리듯 말했다. 루카스는 15분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례를 맞았다.
“37번, 38번, 39번 훈련생, 모두 나와 주십시오.”
37번인 루카스는 재빨리 나와 사다리를 타고 킬링 로봇의 몸체에 앉았다. 루카스와 지면 사이의 거리는 2m정도로, 떨어질까 봐 불안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루카스가 앉자마자 고정 장치들이 루카스의 팔을 제외한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여러분, 이 마스크 보이죠? 마스크에 부착된 ‘일체화 블록’을 여러분이 앉은 공간 앞에 있는 돌출부에 끼우면 곧 일체화 훈련이 진행될 겁니다. 뇌에 오가는 모든 신호를 분석해 킬링 로봇과 정신을 일체시키는 작업인데, 쉽게 생각하면 정신은 그대로고 몸만 킬링 로봇 으로 바뀌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블록을 끼우면 차렷 자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그럼 고정 장치가 팔을 잡아준 뒤 출입을 위해 열려있는 대형 덮개도 닫힐 겁니다. 시작하세요.”
루카스는 일체화 블록을 마스크에서 떼어내 몸 앞의 돌출부에 끼워 넣었다.
차렷 자세를 한 루카스의 팔이 모두 고정되자, 루카스는 자신의 의식이 다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눈앞에 여러 가지 파동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펼쳐졌고, 곧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며 시야가 밝아졌다. 루카스의 눈앞에는 킬링 로봇 시점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우와! 뭐야, 신기하잖아?”
그야말로 몸만 키 5m의 로봇으로 바뀐 느낌에 루카스는 감탄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발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킬링 로봇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고정 장치들이 손발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일체화 과정을 겪는 훈련생들이 흥분하거나 당황해서 우발적으로 로봇을 움직여 사고를 내는 것을 방지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적응들 되었나? 그럼 킬링 로봇 가슴팍의 붉은 색 덮개를 살짝 눌러서 연 뒤, 안의 버튼을 강하게 누르십시오. 그럼 일체화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아밀레아의 지시대로 루카스를 포함한 세 명의 훈련생들이 행동하자, 모두들 일체화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 때 눈앞에 보인 장면은 일체화 과정이 되던 순간에 보이던 장면을 반대로 되감는 모습을 보는 것과 비슷했는데, 수많은 파동이 만들어내는 터널을 지나가는 건 특히나 똑같았다. 앤드류는 일체화 블록을 다시 마스크에 끼운 뒤 로봇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야, 앤드류, 네가 말한 대로 신기했...!”
루카스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픽 고꾸라졌다가 도로 일어났다.
“루카스 훈련생, 빈혈 증세가 있는 것 같으니 회복제를 먹고 앉아요. 이상한 증세가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상황이니까 안심하고.”
아밀레아가 그 장면을 보고 루카스한테 지시했다. 루카스는 훈련을 마치고 대기중인 앤드류 옆에 가서 쉬기로 했다. 모든 훈련생들이 한 번 일체화 훈련을 진행한 뒤, 조금의 대기시간 후 몇 번 더 훈련이 진행되었다.
“얼마나 더 하는 거야?!”
반복훈련에 훈련생들은 위와 같이 생각하며 힘들어했다. 일체화 훈련이 물리적인 힘을 크게 소모하는 훈련은 아니었지만, 킬링 로봇에 의식을 맞추는 것 자체가 난이도 있는 일이었기에 아밀레아는 훈련생들이 반복을 통한 적응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아밀레아의 유도가 먹혀 들었는지, 처음 할 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단 세 번째의 일체화 훈련이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무래도 뇌가 일체화 훈련에 적응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녁식사 후 23시까지 지유시간이지만, 가능하면 지하 1층에 있는 일체화 훈련 소규모 연습실에서 반복 연습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 훈련 방법은 연습실에 직접 가면 읽어볼 수 있을 겁니다. 정신적인 힘을 많이 쏟아냈을 테니까, 올라가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휴식하세요.”
아밀레아가 훈련을 마무리하자 A-1조의 모든 훈련생들이 기숙사로 올라갔고, 뒤이어 A-2, A-3조도 훈련을 마치고 뒤따라 기숙사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확실히 몸 쓰는 것보다도 어려운데.”
“난 어지러워서 토하는 줄 알았어.”
훈련생들의 조용한 잡담소리가 그들을 지상으로 실어 나르는 승강기 안에 퍼졌다.
“야, 루카스, 너 저녁에 일체화 훈련 연습실 갈 거야?”
“그래야지. 좀 쉬면 체력 회복되니까, 뭐.”
루카스와 앤드류도 다른 이들 못지않게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최종적으로 킬링 로봇 훈련을 우수하게 수료하는 게 중요했기에, 힘들더라도 반복 훈련을 다짐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일체화 훈련 소규모 연습실에 두 친구가 들어왔다. 그 곳에는 몇 명의 훈련생들이 이미 훈련 중에 있었는데, 그 훈련 방식이 신기했다. 먼저 일체화 작업을 할 수 있는 마스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블록을 꽂을 수 있는 돌출부, 그리고 홀로그램 생성기까지 구비되어 홀로그램 로봇에 일체화 작업을 하는 듯 했다.
“좋아, 아까 전에 반복 훈련은 했으니 좀 더 익숙하겠지.”
앤드류와 루카스가 자신감을 가지고 일체화 작업에 돌입하자, 홀로그램 로봇이 두 대 켜지며 두 친구의 정신이 각각 하나의 로봇으로 들어왔다.
“와, 이거 움직일 수 있다.”
“야, 이거 장비도 사용할 수 있는데?”
로봇은 의식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의지대로 무장을 활성화하거나 해제할 수도 있었다. 두 친구가 어린이마냥 신나하는 사이,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눈 많은 애들도 훈련하네?”
순간 앤드류가 조종하는 가상 로봇이 멈칫했다. 안면근육이 없어서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홀로그램 로봇의 몸을 한 앤드류였지만, 정색하고 있다는 것을 루카스는 알아챌 수 있었다.
‘재수 없는 외눈박이 자식이다.’
앤드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 나도 일체화 작업 완료했으니까, 같이 탐구 좀 해 보자.”
외눈박이가 제안했다. 홀로그램 로봇의 형태나 기능들이 킬링 로봇과 유사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괜찮은 제안이었다.
“좋아, 네 이름이 뭐였지?”
“마티.”
“좋아, 마티. 우선 로봇의 기능들이 어떤 게 있는지 가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가능하다면 한 번 겨뤄 보자고.”
루카스가 외눈박이 마티의 제안을 승낙했고, 앤드류는 툴툴거리며 수동적인 찬성을 했다. 앤드류는 빨리 마티랑 가상대결을 해 이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좋아, 쉽다. 모든 장비는 의식대로 작동해. 마치 내 몸처럼.”
“그런대 좀 어색하다. 무장이 튀어나오는 게 내 몸이 변하는 느낌이 들어.”
“익숙해지겠지. 봐봐! 고온열선을 작동시키니까 네 로봇의 장갑이 붉게 가열되고 있어.”
세 친구들은 서로 활발히 대화하며 일체화 훈련에 적응했다. 곧이어 세 친구들은 서로의 로봇으로 대련도 해 보며 각 무장들의 효과를 체험했다. 세 명이 잠깐 쉬는 동안, 루카스는 휴대폰에 대련 훈련으로 얻은 정보를 입력한 뒤 저장했다.
1. 플라즈마 캐논 : 로봇과의 전투에서 장갑을 일부 깨뜨리는 효과가 있었음.
침투자와의 전투에서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
2. 초고열선 : 로봇과의 전투에서 상대 로봇의 장갑을 깨뜨리지 못했으나 고온의 열을
이용, 내부 시스템에 손상을 입힘. 침투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음.
3.나이프 : 상대 로봇의 장갑을 깨뜨리거나 찔러서 무력화 시킬 수 있었음. 근접전 최고
무기이며 침투자에게 유효타를 입힐 수 있음. 다만 침투자의 몸이 재생 가능
하다는 특성상 급소를 정확히 노려야 효과가 있음.
“하,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
“뭐래, 벌레같이 눈 많은 놈이.”
그 사이 앤드류와 마티는 가상 로봇으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친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세 시간이 넘게 신나게 일체화 훈련을 연습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해도 머리가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안내 방송이 울리자 두 친구는 훈련복을 훌렁 챙겨 입고 방 밖으로 나갔고, 그 사이 침대에 있는 장치가 이불을 정리했다.
식당에서 두 친구는 마티를 만나서 자연스럽게 같이 식사했다. 역시 앤드류와는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 누가 대련에서 졌다, 아니다 져 준 거다 하면서 말싸움을 하는데 이제는 둘 사이의 말다툼이 진심이 아닌 장난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일체화 훈련 복습과 킬링 로봇 기동 훈련이 진행되었다. 일체화 훈련의 복습 과정에서 두 친구와 마티를 포함한, 자유 시간동안 연습장에서 꾸준히 일체화 작업을 훈련했던 훈련생들은 이어지는 킬링 로봇 훈련을 다른 이들에 비해 깔끔하게 소화했다.
킬링 로봇 기동 훈련은 벽에서 고정이 풀린 킬링 로봇에 들어가 일체화 작업을 한 뒤 직접 움직여보는 훈련이다. 돌발 상황을 대비해 기동 훈련에는 무장이 달려 있지 않은 훈련용 로봇을 사용했는데, 반복된 기동훈련과 대련훈련의 흔적으로 장갑에는 크고 작은 흠집이 많이 나 있어서 마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전투용 로봇 같았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적응한 것 같네요. 자유 사간에 계속해서 연습실에 들러 훈련하도록 하세요. 일체화 작업과 기동훈련을 철저하고 오래, 틈틈이 연습하는 게 기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무장을 직접 활성화하고 해제하는 훈련을 할 겁니다. 간단하지만 자칫 실수하면 큰 사고가 터질 수 있는 훈련이니 마음속에 늘 주의하고 있으십시오.”
아밀레아는 주간 훈련을 종료했다.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30분 정도 공백이 생기자, 루카스와 앤드류는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쐬었다. 건물 밖이라 해도 타이탄 베이스의 한복판이기에, 군사용 호버랑 스피더들이 대기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저거 봐봐!”
“말이 되는 건가?”
갑자기 저편에서 훈련생들과 관계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시선은 홀로그램 전광판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전광판 안에서는 속보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다수의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침투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체가 발생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관계자들마저 놀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출현 빈도가 너무 높잖아. 침투자 파견 수가 늘어난 모양인데?”
“이 근처에서 침투자가 나타날 확률도 농후해. 대기조의 수를 늘려야겠어.”
관계자들은 뉴스가 끝난 전광판을 뒤로 하고 대화를 하며 위치로 돌아갔다. 전광판에서 나온 속보로 인해서 저녁 식사 시간은 한층 더 짙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지난날 제논에 관한 정보가 언론을 통해 모든 에큐메노폴리스에 퍼진 상황에서, 행성 수비대 관계자 뿐 아니라 많은 수의 주민들이 ‘침투자들의 출현빈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무언가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 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알고 있었다.
“저 하늘 위에 지나다니는 함선들을 봐봐. 우리의 전력도 막강해.”
훈련생들은 서로 안심시키는 대화를 하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저녁식사 후, 훈련생들은 안내에 따라 킬링 로봇의 무장 활성화/해제 훈련을 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은 마치를 내려다보는 제어실처럼 생긴 감독실 이었고, 감독실 앞쪽 아래로는 높이 20m, 양옆 80m정도의 커다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공간과 감독실 사이는 투명한 도금 강화유리가 설치되어 있어 혹시 모를 돌발 상황으로부터 감독실을 보호했다.
“저기 아래쪽 공간에 킬링 로봇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일 겁니다. 일단 지금은 단순하게 무장을 활성화시키고 꺼보기만 할 거고, 추후에 이곳 에서 최종 선발과정인 대련 시험까지 진행될 예정이니 그렇게 알아 두십시오.”
아밀레아는 간단히 설명을 마치고 바로 훈련생 순서에 따라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의 방식은 상당히 간단해서, 이전에 세 친구들이 홀로그램으로 연습했던 것처럼 킬링 로봇의 무장을 켜고 끄면 되는 것이었다. 일체화 훈련이 킬링 로봇 훈련의 기초이기에 무장을 다루는 능력도 얼마나 일체화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나에 따라 그 실력이 갈렸다. 연습을 많이 한 훈련생은 무장을 자유자재로 활성화시키거나 해제했지만, 일체화 훈련이 미숙한 훈련생들은 무기를 잘 켜지 못하거나 넘어지기까지 했다.
“이건 훈련이니 실수가 허용되지만, 최종 대련 시험이나 실전에서는 실수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대련시험까지 시간이 있으니 틈틈이 연습하도록 하십시오.”
아밀레아는 실수하는 훈련생들을 향해 위로와 주의가 섞인 조언을 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동안 어떤 유형의 태도로 훈련생들이 생활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아밀레아는 알고 있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세 시간동안 자유시간이니, 휴식을 취하거나 연습실 에서 훈련을 익혀도 됩니다. 해산.”
곧이어 그녀는 하루 훈련을 종료했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약속한 듯 일체화 훈련을 연습하러 연습실로 향했고, 마티도 곧 그들을 뒤따랐다.
“일체화 훈련을 계속 하면 머리가 아프니까, 진통제 좀 사가지고 올게.”
“계속 먹으면 오히려 두통이 심해진다니까, 적당량만 사 와!”
루카스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잠시 진통제를 사러 타이탄 베이스 소재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에는 다양한 음식들과 군것질거리가 가득했고, 바깥에 난 창을 통해서 외부 풍경과 소음이 간간히 들려왔다. 루카스는 편의점 창문 너머 보이는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지구의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한다!”
“현재 공개된 최강의 병기가 들어오는 거다!”
루카스가 내다본 바깥 풍경은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분주하고 긴장감이 넘쳐 보였다. 루카스는 속으로 혹시 ‘침투자가 나타났나?’, ‘군기 잡나?’, ‘설마 벌써부터 군주가 오는 건가?’하며 오만 생각을 했다. 다른 훈련생들도 심상찮은 분위기에 호기심을 느껴서 주변에 서성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관계자들이 엄포를 놓으며 통제했기에, 루카스처럼 창문을 통해, 혹은 저 멀리서 상황을 구경하는 게 다였다.
“야, 뭐야?”
“몇 분 안 걸리니까 구경 좀 하자.”
앤드류와 마티도 연습실에 가는 도중 이상한 분위기에 위층으로 올라가 전투항공 지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길이 60m정도의 유선형 우주선이 전투항공 지구에 착륙했다. 그 우주선에는 이라는 모델명이 적혀 있었다.
“? 그건 입자 이름 아닌가? 이런 우주선이 있었어?”
루카스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밖을 보는 사이, 타키온의 무장장치에 어떤 무기가 양쪽에 두 개 부착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해당 무기는 사람의 팔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는데, 타키온에 장착되기까지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굉장히 조심스럽고 정교한 장착작업을 받는 아주 귀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에.. 뭐지? 무기에 뭔가 적혀 있는데 멀어서 보이질 않아. 마티라면 보고도 남았을 텐데.”
루카스는 타기온에 장착된 무기의 이름을 확인하려 애를 썼지만 끝내 이름을 볼 수 없었기에, 잠시 신경을 끄기로 하고 진통제를 산 뒤 연습장으로 향했다. 그 무렵 앤드류랑 마티도 연습장에 돌아와 일체화 작업과 무장 다루기를 훈련 중이었다.
‘어, 쟤도 열심히 하잖아?’
연습장에 돌아온 루카스는 혼자서 훈련을 진행 중인 덱스터를 바라보고 내심 놀랐다. 덱스터와 일체화 작업을 한 킬링 로봇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운 걸로 보아 자신의 실력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는 게 느껴졌다.
‘상황이 되면 같이 훈련하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마음이 내키지 않네.’
루카스는 지난날 있었던 마찰 때문에 덱스터를 다루길 꺼려했기에, 그를 지나쳐 앤드류랑 마티에게 가서 같이 훈련을 진행했다. 계속되는 연습실 안의 반복훈련 속에서, 세 친구들의 실력이 나날이 향상 되는 게 느껴졌다.
취침시간이 다가오며 자유시간이 끝나가자, 연습실에서의 훈련도 마무리 되었다. 그 무렵 루카스의 머릿속에 아까 봤던 타키온 우주선과 거기에 장착된 의문에 무기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앤드류랑 마티에게 질문했다.
“얘들아, 너희들 아까 전투항공 지구에서 뭐 본 거 있어?”
“어. 분위기가 심상찮은데 어떻게 못 보고 배기겠냐.”
“혹시 타키온 우주선에 장착된 무기 이름 봤어? 특히 마티 너는 시력이 좋으니까 충분히 보고도 남을 것 같은데.”
“무기 이름은 ‘플레어’였어. 그게 어떤 건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나중에 정보를 찾아봐.”
마티는 자신이 본 내용을 알려주었다. 세 친구는 그렇게 하루 훈련을 마치고 각자의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루카스는 마티가 알려준 무기와 타키온의 정보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으로 정보를 검색했다.

타키온 :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이 개발한 가장 빠른 전투기로, 대량의 고성능 무기 탑재가 가능하다. 속력으로 인한 무서운 마찰열을 견디기 위해 가공 루젠티윰 합금이 코팅되어 있다. 루젠티윰 값이 매우 비싸며 개발과정에서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에
하나의 에큐메노폴리스에 단 30대만 존재한다.

플레어 : 3등급 이상의 강함을 지닌 침투자를 잡기 위해 만든 최첨단 대량 살상 무기로서,
팔뚝 크기만큼 소형화와 개량화가 진행되어 전투기에 장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들지는 않는다.
에큐메노폴리스의 공식적으로 알려진 병기 중 가장 희귀하며 비싸기에 대량으로 생산하긴 힘들다. 플레어 하나는 원자폭탄 수백 배의 강함을 지녔다.
“와, 뭐야. 저런 게 우리 눈앞에서 도착하고 장착되고 난리를 친 거네.”
앤드류도 궁금증이 생겼는지 루카스 옆에 붙어서 함께 정보를 읽으며 말을 했다.
“저런 게 왔으면 1등급짜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거 아냐.”
“최근에 침투자들이 크게 발생했잖아. 그거 때문에 이런 강력한 무기를 배치하는 거지.”
방 밖에서 다른 훈련생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타키온 전투기와 플레어의 등장은 훈련생들이 흥분하게도 만들었고, 혹은 긴장하게도 만들었다.
“야, 이거 정보가 빠른데?! 전투항공 기지 어디에 배치되는지도 나와 있어!”
루카스가 어떤 게시 글을 보고 놀랐다. 그 계시 글에 들어가자, 타키온 전투기와 플레어가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지구 – 7 격납고에 들어간다는 고급 정보가 현장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었다.
“야, 앤드류. 이거 좀 봐봐.”
루카스가 앤드류에게 정보를 보여주려는 찰나, 해당 계시 글은 쓰인 지 지 8초 만에 삭제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고급 정보라서 정부나 행성 수비대 측에서 삭제시킨 모양이었다.
‘아니다, 앤드류. 방금전에 계시 글이 삭제됐네. 대충 타키온이랑 플레어가 전투항공 기지 - 7번 격납고에 들어왔다는 정보였어.’
루카스가 빨리 말을 바꿔 앤드류에게 정정하여 말하는 순간, 그는 아차 싶어서 강조하듯 덧붙여서 말했다.
“내가 실수했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이 정보가 침투자들 귀에 들어가면 얼마나 일이 커질지 모르는데 말이야.”
그 말에 앤드류는 잘 알겠다는 듯 루카스를 바라보며 끄덕이며 입단속을 철저히 하기로 다짐했다. 아마 이번 일로 행성 수비대의 정보처리 직원들이 유출 정보를 삭제하느라 애를 좀 먹을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보가 소량 유출되었습니다. 타키온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안 돼. 그 동안 새로운 유출정보가 다시 나타날 거야. 최대한 빠져나간 정보를 삭제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꼭 골칫거리가 되는 작자들이 있다니까.”
그 시각 행성 수비대의 정보처리 부서에 분주한 분위기가 흘렀다.

며칠이 지나 훈련이 반복되어 일체화 작업, 로봇 기동, 무기 활성화/해제훈련이 일상처럼 익숙해지고 가상 킬링 로봇 전투 훈련까지 진행된 무렵, 아침 식사 후의 분위기를 깨우는 안내방송이 A-1조의 기숙사에 방송됐다. 모든 A-1조의 훈련생들이 광장으로 집합하는 길, 훈련생들의 표정은 어떤 스케줄이 자신들을 기다리는지 예상한다는 듯이 모두들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리 광장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아밀레아 앞으로 A-1조의 훈련생들이 집합하자, 아밀레아는 새로운 스케줄을 설명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킬링 로봇 훈련을 받았고, 그 훈련들이 반복되어 모두들 킬링 로봇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그 실력을 나누고 선발할 차례입니다. 오늘 마지막 과정인 대련 시험이 진행됩니다.
대련 시험은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 되기 위한 종합성적에 반영되는 과정일 뿐이지만, 반영 점수가 가장 큰 만큼 만전을 가하여 참여해 주십시오.”
아밀레아는 짤막한 안내를 마치고 대련이 있을 으로 향했다. 제어실에서는 아밀레아와 심사위원들이 모니터에 나타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평가를 하는 공간이, 그 아래에는 대련 시험이 있을 커다란 공간이 펼쳐졌다. 각 사람이 시험을 볼 때는 뒤의 훈련생들이 전략을 짜지 못하도록 나머지 훈련생들을 외부 대기의자로 분리시키고, 시험을 본 훈련생들은 제어실 안에서 모든 훈련이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1번부터 차례대로 훈련생들이 시험을 치르러 대기의자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그렇게 앤드류, 마티까지 시험을 보러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자, 루카스는 본격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모든 훈련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새 루카스 차례가 다가왔고, 루카스는 훈련장의 거대한 공간 안에 배치된 킬링 로봇에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 일체화 작업을 진행한 후 앞에 놓인 사다리를 구석으로 치워 놓았다. 루카스의 준비가 완료되자마자 루카스에게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한 쪽 벽이 열리더니 안에서 대련용 로봇이 한 대 튀어나왔다. 대련용 로봇은 침투자처럼 손톱을 생성하더니 루카스에게 뛰어올랐다.
‘나이프.’
루카스가 생각하자 양 손목에서 나이프가 솟아났다. 행성 수비대 측에서 대련 시험을 위해무장이 없던 훈련용 로봇에 임시로 무장을 설치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로봇의 팔을 휘두르며 루카스 또한 공격하자 두 로봇의 나이프와 손톱이 서로 긁히며 불꽃을 튀겼다. 몇 차례에 걸쳐 방어와 공격을 주고받은 후 두 로봇의 손톱과 나이프가 맞물리며 부딪히자 둘은 대치상태가 되었다. 둘 중 하나의 힘도 밀리지 않자 루카스는 부스터를 발동해 대련용 로봇의 자세를 압박하며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한 대련용 로봇은 발차기를 해서 루카스를 멀리 떨어뜨린 뒤 반격을 준비했다. 발차기에 넘어진 루카스의 훈련 로봇이 다시 공격해오자, 대련용 로봇의 얼굴이 갈라지더니 불기둥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실전 훈련장의 거대한 공간 내부가 고온의 화염으로 달아올랐다.
‘불꽃의 온도가 너무 높아. 이러다 장갑이 녹아내리면 내부 시스템이 모조리 손상될 거야.’
루카스는 재빨리 두뇌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화염을 피해 회피한다 해도 불기둥이 따라왔고, 이글거리는 불이 시야를 방해해 정확한 상황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틀렸다. 무언가 하나를 희생해야 돼. 나이프가 좀 아깝긴 하지만, 나이프를 희생시켜서 화염을 방어해 다른 무장과 시스템을 보호하자. 불기둥을 뚫어가면서 거리를 좁힌 후에 반격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야.’
루카스는 나이프 두 개를 방패처럼 펼쳐서 최대한 넓은 면적의 로봇 몸체를 화염으로부터 보호했다. 곧이어 그는 다시 부스터를 발동해서 빠른 속도로 대련용 로봇에게 달려갔다.
나이프가 빨갛게 달아오르며 휘어지고, 곧이어 녹으며 사라지자마자 루카스의 훈련 로봇과 대련용 로봇이 큰 소리를 내며 격돌했다. 큰 충격에 대련용 로봇은 밀려나 뒤쪽 벽에 부딪혔으나 다시 자세를 다잡고 불기둥을 일으키려고 했다.
루카스는 재빨리 대련용 로봇의 머리 측면을 가격해 불기둥이 옆을 보게 만들었고, 목을 짓누르며 급소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대련용 로봇은 잠시 발버둥을 치더니 왼쪽 손의 손톱을 뽑아낸 후 목을 압박하는 루카스가 탄 로봇의 팔을 잡고는 찌르기 시작했다. 대련용 로봇이 악력을 높일수록 루카스 쪽 로봇의 팔 장갑이 우그러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루카스가 반격을 위해 고온열선을 발동시키자, 손바닥에서 고온의 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루카스가 왼손으로 손목, 오른손으로 목을 고연열선으로 가열시키며 공격하자 대련용 로봇은 남은 오른쪽 손을 이용해 루카스의 로봇 장갑을 뚫으며 팽팽한 전투를 이어갔다.
‘대련용 로봇이 무력화 될 때까지 버티는 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야.’
루카스는 재빨리 판단을 내리고는 왼손을 플라즈마 건으로 변형시켰다. 루카스로부터의 방어가 풀린 대련용 로봇의 왼손이 오른팔 장갑을 완전히 우그러뜨리는 순간, 루카스가 쏜 플라즈마 건이 대련용 로봇의 목어 적중하며 폭발했다.
플라즈마 건에 맞은 자리는 녹아내리며 불꽃을 튀겼고, 곧이어 대련용 로봇은 무력화되며 쓰러졌다. 루카스는 상황이 마무리됨을 인지하고 모든 무장을 해제했다.

안내 방송에 루카스가 구석에 치워놓았던 사다리를 가져와서 앞에 펼쳐 놓았다. 사다리가 없는 실전 상황이라면 상황 종료 후 안전하게 로봇을 눕힌 뒤에 내려와야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다음에 시험을 치룰 훈련생들이 정석적으로 로봇에 탑승할 수 있도록 로봇을 세워둔 채 사다리를 이용해 내려와야 했다.
루카스가 일체화 작업을 해제한 후 사다리에서 내려오자, 관계자가 제어실 위로 올라와서 모든 훈련생들이 시험을 마칠 때 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루카스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제어실 한쪽 방으로 들어가자 시험을 마친 훈련생들이 대기 중에 있었다. 루카스는 앤드류, 마티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물었다.
“잘 본거 같아?”
“어. 너는?”
“괜찮은 듯.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다행이 앤드류와 마티는 시험을 무난하게 본 것 같았다. 시험을 마친 훈련생들 중에는 시험을 잘 치룬 것 같아서 얼굴이 활짝 펴진 사람부터(감정을 잘 못 숨기는 타입) 자신의 실력에 실망한 나머지 주변을 향해 침울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유형의 반응이 존재했다. 마지막 번호의 훈련생이 대련시험을 마치자, 아밀레아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여러분, 모두 수고했습니다. 이제 킬링 로봇 훈련이 종료되었으니, 최종 선발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죠. 점심식사 후 14시 까지 광장으로 집합하면 최종 선발 결과가 발표될 예정 이니, 잘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밀레아가 킬링 로봇 훈련 종료를 선언한 뒤, 훈련생과 아밀레아는 경례를 주고받은 후 해산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많은 훈련생들은 서로에게 대련 시험이 어땠는지, 이겼는지 졌는지 물어보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망했다니, 무조건 자신 있다니, 안 끝나서 강제로 시험이 종료됐다니 하는 다양한 훈련생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루카스는 ‘와, 저렇게 시험을 치룬 훈련생들도 있구나.’ 하며 남의 대화에 살짝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일단 내가 너보단 잘 봤지.”
“무슨 헛소리냐.”
어쩐지 서로 안 다투고 조용해서 이상했던 앤드류랑 마티는 드디어 서로 누가 잘했다 못했다 하면서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밥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점심식사를 마친 훈련생들은 전원 광장에 집합했다. 루카스가 속한 A-1조는 물론, 다른 조들도 모두 킬링 로봇 훈련 일정을 마쳤는지 광장에 집합해 있었다.
얼마 뒤, 아밀레아를 포함한 조교들이 각자 자신이 통솔하는 조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이 최종 선발 결과임을 다들 짐작하고 있었기에, 모든 훈련생들은 숨죽인 채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A-1조에서 선발된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을 최종 순위대로 발표한다.”
아밀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등, 루카스 엔더슨!”
1등은 루카스였다. 다른 훈련생들이 박수를 쳐주는 동안, 루카스는 기쁨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시 뒤,
“4등, 앤드류 그레이!”
“5등, 아르케나르 마티!”
앤드류와 마티도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앤드류는 마티를 이긴 것에 좋아 죽고 있었고, 마티는 차마 기뻐하지 못하고 분해했다.
“10등, 덱스터 그리피스!”
아밀레아의 훈계를 받아서인지 마음을 바꾸고 훈련에 열심히 임한 덱스터는 처음에 하위권의 실력을 보여주다가 무려 10등에 오르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1등부터 10등까지, A-1조에서 선발된 모든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에 대한 발표가 끝났다.
“어, 내가 왜 뽑혔지?”하고 말하며 어안 벙벙한 훈련생부터 자신이 당연히 뽑힐 줄 알았는지 탈락했다는 결과를 접하고 실망감을 드러내는 훈련생까지, 최종 선발에 대한 훈련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다른 조의 훈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렇게 타이탄 베이스에서의 훈련도 모두 끝났습니다. 탈락한 사람들은 다시 본부로 돌아간 뒤 각자의 위치를 배정 받을 것이고, 선발된 대원들은 여기에서 전투기 훈련까지 추가로 수료하게 됩니다.
어찌 되었건 여러분들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행성 수비대 대원들입니다. 다들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선발된 대원들, 아쉽게도 선발에 실패한 대원들. 모두 축하합니다.”
최종 선발 대원 발표는 훈련생들과 조교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빠르게 끝이 났다.
그 날 저녁, 최종 선발에서 탈락한 훈련생들은 호버 셔틀을 타고 본부로 돌아갔다. 그들은 6-7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으로서 각자의 위치를 배정받고 행성 수비대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탈락한 훈련생들이 떠난 후, 이번엔 선발된 훈련생들 아니, 새로 영입된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들에게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모두들 광장에 집합하자, 각 조의 조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한 조에 10명이 남았기에 모든 조의 인원을 합쳐도 한 명의 조교가 통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는 이제 새로 들어오는 훈련생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다른 팀의 조교를 맡게 됩니다. 아마 저를 타이탄 베이스에서 볼 수는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공식적으로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이니,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고 훈련하면서 시민들의 목숨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을 기르십시오. 이상입니다.”
아밀레아는 짧게 말을 마치고 A-1조와 작별했다.
“모든 조들은 앞을 바라봐 주십시오!”
갑자기 광장 앞에서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새로운 조교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전 최종 선발에 합격한 여러분들의 전투기 조종 훈련을 지휘하게 된 멀컨 조교입니다.”
소개가 시작되자마자 앤드류의 안면근육이 씰룩거렸고, 마티는 이러는 앤드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기를 띠었다. 루카스는 뭐지 싶어 조교를 자세히 바라보고는 깨달았다.
‘아, 외눈박이네.’
아무래도 마티가 앤드류를 시도 때도 없이 놀려먹다 보니 앤드류는 외눈박이 종족에 대한 노이로제가 걸린 듯 했다.
“앞서 들은 적이 있겠지만, 전투기 훈련은 여러분들이 5등급 이상의 강력한 침투자를 상대 하게 되는 상정외의 비상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받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에는 합격이나 불합격, 점수 시스템이 없죠. 대신, 강한 침투자들을 상대로 전투 시 여러분들이 수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게 해 주는 경험이 될 겁니다. 이전 훈련에 비해 수료해야 하는 시간 은 적지만,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십시오. 이상입니다.”
멀컨 조교는 전투기 훈련에 대한 안내와 조언을 마쳤다. 곧이어 커다란 호버 한 대가 광장에 착륙하고 내용물을 드러내자, 루카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에게 주어지는 스피더였다.
“이야, 이거 제타에서 수입한 거잖아?! (에큐메노폴리스 – 제타의 공업기술이 뛰어나다.)”
“이게 정가로 사면 얼마야? 1400만 크레딧은 될 거 같은데?”
다른 대원들도 이 스피더가 좋은 건 아는지 흥분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진정으로 스피더를 좋아하는 루카스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띠며 부품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야, 루카스 쟤 저렇게 행복해가지곤 오늘 밤 못자겠다.”
“그러니까. 근데 이 스피더 받는 건 나도 되게 좋은데?”
루카스를 바라보며 앤드류랑 마티가 속닥거렸다.
“이 스피더들은 목숨을 걸고 침투자와 싸우는 여러분들을 위해 제타 공업에서 특별히 제작 한 모델입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의지하고 믿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런 스피더 같은 귀한 자원들을 의미 있게 쓰십시오. 스피더 격납고는 관계자들이 안내를 해 줄 겁니다. 해산!”
멀컨 조교는 위의 말을 끝으로 퇴장했다. 곧이어 관계자들이 두어 명 나와 개인 스피더 격납고를 안내했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1층에 위치했지만 꽤 구석에 위치해 있어서 외부인이 찾기란 어려웠다.
모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루카스와 앤드류는 잠을 청했지만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에 눈이 쉽게 감기지 않았다.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의 기반시설이나 뼈대를 보강하는 공사업체 직원에서 행성 수비대의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으로 직업이 바뀌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기에,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이봐, 앤드류, 자고 있어?”
“...”
루카스는 마음을 가라앉힐 겸 대화나 해 보려고 앤드류를 불렀지만, 태평하게 곯아떨어진 앤드류로부터는 아무 반응도, 응답도 없었다.

8장 : 전투 - 폐허지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Z-1구역, 행성 수비대 비밀기지

“미미하지만, 메달에서 특이한 빛의 변화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메달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비밀기지 연구소장에 보고했다.
“이봐, 지금 에큐메노폴리스에 숨어있는 침투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인가? 메달에 빛이 난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니지. 오히려 빛이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야.”
“기존에 7,6,5등급을 나타내던 빛과는 성질이 다릅니다. 하위 등급의 침투자가 접근했던 경우 붉은색 빛이 났지만, 이번에는 푸른색입니다. 더 강한 침투자가 활동을 시작했거나 새로 프로타에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구원은 수집한 자료와 데이터를 보여주며 연구소장에게 대답했다. 연구소장은 자료를 깊이 들여다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음, 자네 연구는 고려해 볼 사항들이 있네. 좋아, 이 현상에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보고하겠네.”
연구소장은 연구원에게 대답하고는 행성 수비대 정보기관에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비밀리에 대국민 감시 시스템을 가동합시다. 메달의 푸른색 빛의 변화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을 찾아내서 미행을 붙이구요. 단, 메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빛과 푸른색 빛을 혼동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물론 붉은색 빛도 무시할 수 없지만, 위험요소가 큰 푸른색 빛이 나타내는 침투자를 제거하는 게 우선입니다.”
상황을 파악한 행성 수비대의 정보기관은 재빨리 침투자 수사에 들어갔다. 대국민 감시 시스템이 활성화되자, 행성 수비대의 관리 하에 있는 인공지능이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에 살아가는 모든 거주자들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파악, 메달의 푸른색 빛과 비교해가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편, 타이탄 베이스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가 나란히 앉아 홀로그램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투기 훈련이 모두 진행된 후, 어느 기지에 배치되기를 희망하는지 홈페이지를 통한 설문 조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리고 추린 선택지가 몇 개 있었는데, 아래와 같았다.

1. A 베이스 :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했으며 주변 인프라가 뛰어난 기지

2. 타이탄 베이스 : 주변이 폐허지대인데다 딱딱한 느낌이 있지만, 가장 익숙한 기지. 관계자들이 실전 훈련에 가장 효과적인 기지라고 자랑을 해대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3. D 베이스 : 루카스와 앤드류가 지리적으로 잘 아는 D구역에 위치한 기지. 그러나 분위기 가 살벌하다고 한다. 주변지역이 슬럼가라 기강을 잡아두려고 그런 듯하다.

세 친구들이 잠시 고민을 하던 그 때, 앤드류가 결심한 듯 자신의 휴대폰으로 선택지 하나를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여기 있자. 관계자들이 그렇게 자랑을 하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말이야.”
“누구 맘대로?”
마티가 장난 식으로 대꾸했다. 표정이 딱히 반대한다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일단 앤드류에게 따지고 보는 성격의 마티였다.
“무사하고 싶으면 그냥 말 좀 곱게 듣자, 나의 친한 친구야?”
앤드류가 눈알을 부라리며 마티를 노려봤다. 그의 웃음 섞인 표정이 상당히 섬뜩한 나머지 마티와 루카스는 순간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어디든 좋아. 그럼 이곳에 잔류하기로 하자고.”
루카스와 마티도 타이탄 베이스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세 친구가 설문을 끝내자마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왜 이곳 관계자들이 타이탄 베이스가 가장 훈련이 효과적이라고 자랑하는지 알겠네. 과거 도시였으면 우리가 실전 훈련을 수행하기 안성맞춤이잖아?”
“침투자와의 전투는 많은 경우 도시에서 벌어지니까, 도시 지형에서의 전투에 익숙해져야 해. 한번 신청 해 보자고.”
루카스와 앤드류는 재빨리 신청 페이지에 접속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아니, 간만에 훈련시간이 줄어서 시간이 비나 싶었는데, 왜 또 다른 걸 하고 난리야.”
마티는 뭔가 불만족이었지만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고, 두 친구를 따라 폐허지대에서 실전 전투연습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13시 30분
전투기 훈련은 안전이나 공간의 문제로 인해 가상현실로 진행되었다. 전투기 조종 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을 재현하는 헬멧을 착용한 체 특수 제작한 위자에 앉아서 침투자를 포격하거나 추적하는 비행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전투기의 조종방식이 스피더와 비슷한데다 조종사들이 쓰는 헬멧이 신경 속도를 올려주고 중력 가속도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는 효과가 있어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으아아악!”
물론 위처럼 조종을 잘못 한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건물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 실감나는 가상현실에 놀라서 몸부림을 치는 대원도 있었기에 나머지 대원들은 웃음을 억눌러야 했다. 15시 30분이 되자, 멀컨이 훈련을 종료했다.
“오늘 전투기 훈련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모두들 방금 경험해서 알다시피, 전투기 훈련은 생각보다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아요. 조종법이 몸에 잘 베이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멀컨 교관과 대원들은 서로 경례를 주고받은 후 해산했다. 아직까지 루카스는 훈련생이 아닌 정식 대원의 지위에서 이렇게 교관과 경례를 주고받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야, 30분도 안 남았어. 홈페이지 들어가서 실전 전투연습 신청완료 됐는지 확인해 보자.”
마티가 루카스와 앤드류에게 말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문구가 하나 떠 있었다.

다행이도 세 친구가 비교적 신청을 빨리 한 편이라 모두 신청에 성공했다.
“야, 근데 제 1게이트까지는 거리가 좀 있는데, 15분밖에 안 남았어.”
“스피더를 뭐 하러 줬을까?”
“아.”
세 친구들은 받은 개인용 스피더를 타고 제 1 게이트까지 질주했다. 최신형 모델이라 속도가 확연히 빨랐고, 비행까지 가능했다. 앤드류랑 마티는 속으로 성능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지만, 저 앞에서 루카스 혼자 신나서 이리 꺾고 저리 꺾고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별의별 난리를 치고 있었다.
제 1 게이트 앞에는 커다란 수용시설 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폐허지역에서 사용하도록 마련된 훈련용 로봇들이 줄지어 배치돼 있었다. 그것들은 대련 시험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임시적으로 무장이 장착된 로봇들로, 조만간 세대교체가 될 오래된 로봇들이었다. 건물 안 저편에서는 불꽃과 함께 로봇을 해체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해체된 로봇의 부품들은 신세데 킬링 로봇을 생산하기 위해 재사용시설로 옮겨졌다. 세 친구들이 신청을 완료함을 관계자에게 보여주자, 실전 전투연습 허가가 내려졌다. 세 친구들은 각자 훈련용 로봇에 탑승, 일체화 작업을 진행했다.
“잠깐 기다려요.”
폐허지대에 나가기 전, 관계자는 한쪽 벽에 설치된 모니터에 다가가 지문 인식을 한 다음 이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상대할 적은 알아서 나타날 테니 걱정 마십시오. 폐허지대는 지상, 지하로 봉쇄되어 있으니 상대를 놓쳐도 괜찮습니다.”
관계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건물 한 쪽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폐허지대가 펼쳐졌다. 드문드문 반파된 건물들과 널브러진 호버들이 눈에 띄었는데, 도시와 도시가 층층이 겹쳐 마치 세포 같은 조직체를 이룬 에큐메노폴리스의 입장에서는 죽은 세포인 셈이었다. 그나마 폐허가 된 후 타이탄 베이스의 관리 하에 들어가 훈련지구가 된 점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이봐, 어디서 기계음이 들리지 않아?”
앤드류가 속삭이며 말하는 소리가 로봇의 무전장치를 통해 들려왔다. 로봇들이 한 팀으로 출동하면 자동으로 무전 장치가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아직. 조심스럽게 이동하자.”
루카스와 마티가 응답했다. 유령도시에서 적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큰 긴장감을 불러오는 일이었는데, 차라리 버려진 건물의 어두운 한구석에서 귀신이 튀어나오면 덜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 잠깐, 소리가 들려!”
“다행이 한 군데인 것 같아. 우리도 접근하되 경계는 철저히 하자.”
루카스와 마티도 뒤따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상대도 로봇이었는지 기계음이 들려왔는데, 그동안 왜 폐허지대 안에서 기계음이 들린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셋이잖아. 각자 한 길을 맡아서 살펴보자.”
루카스의 제안에 세 친구들은 각자 한 갈래의 길을 맡아서 상대해야 되는 로봇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스의 “아! 여기!”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전투가 벌어졌다.
상대 로봇의 크기는 2m 정도로, 1대 1 상황에서 루카스의 로봇의 힘에 밀리는 수준이었지만, 순발력과 잔기술을 사용해 루카스의 공격을 피해 다녔다. 안에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인공지능 로봇이라 마음껏 공격하거나 다뤄도 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걸 잡으려면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실랑이 끝에 루카스가 상대 로봇의 팔을 잡는 데 성공, 곧바로 목을 공격하려고 하자 상대 로봇은 팔을 끊어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약아빠진 좁쌀만 한 로봇 같으니!’
도주 방식을 보고 열이 뻗친 루카스를 뒤따라 앤드류, 마티도 추격을 개시했다. 도주하던 로봇은 폐허지대의 지하구역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 그 속으로 도주하려고 했다. 그 순간, 루카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늦었다! 침투자가 지하구역으로 도망친다면 훨씬 복잡하고 많아지는 구조물 탓에 수색이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니까 실전 상황에서는 절대 허용하면 안 돼. 이런 식으로 실전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훈련을 하는 거구나.’
루카스가 급히 플라즈마 건을 활성화 시켜 발사, 도주하는 로봇의 다리를 명중시켰다.
“내가 잡을게!”
그 직후, 앤드류가 외치며 움직임이 느려진 로봇을 몸을 날려 잡았다. 앤드류의 로봇, 도주 중인 로봇 둘이 몸이 엉켜 같이 지하구역으로 미끄러졌지만, 앤드류가 꽉 붙들고 있어 도주의 위험성은 적어 보였다.
앤드류가 나이프를 활성화시켜 상황을 종료하려는 순간, 상대 로봇이 홀로그램을 띄우며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뭐?!”
앤드류는 찰나 주춤하더니 경고 내용을 파악하고는 한쪽 팔로 눈을 재빨리 가렸다. 그러자 마자, 상대 로봇의 머리로부터 밝은 섬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얘들아! 한 쪽 손으로 잡고 있는데 빛 때문에 공격할 수가 없어!”
앤드류가 도움을 요청하자 루카스와 마티가 앤드류를 도와주러 접근했다.
“야, 이거 눈부셔서 나도 도와 줄 수가 없는데?”
루카스 또한 상황이 안 좋았지만, 마티가 자신의 눈에 보호막을 생성하더니 응답했다.
“나는 괜찮아. 내 눈은 밝은 빛도 잘 버티거든.”
“네 녀석 쓸모 있는 구석도 있었네?!”
앤드류가 대답하는 사이, 마티는 나이프를 활성화해 상대 로봇의 목을 찌르자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도 확 꺼져 버렸다. 주변이 밝아졌다가 갑자기 어두워지자, 마치 밤에 불을 켜지 않은 건물 안에 들어온 것 마냥 주변이 어두워 보였다.
“나 없었음 어쩔 뻔 했냐.”
마티가 눈앞에 생성한 보호막을 거두면서 공치사를 하자, 루카스와 앤드류가 인정한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앤드류는 일부러 굉장히 세게 쳐서 마티가 탄 로봇이 주춤거렸다.)
“야, 이거 두 마리가 더 있는데?”
분위기가 풀어진 그 때 루카스가 저 멀리 돌아다니는 로봇들을 지목하며 말하자, 나머지 둘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다시 추격에 돌입했다. 두 로봇들이 모두 소탕될 때 까지, 세 친구들이 조종하는 로봇의 소리와 작전을 주고받는 무전 소리들이 폐허지대 안을 메웠다.
9장 : 전투 – 혈전
며칠 뒤,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A-1구역 행성 수비대 본부
한 연구원이 급히 행성 수비대 정보처리 부서에 데이터를 첨부한 메시지를 발송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이 메시지가 정보처리 부서에 들어오자, 부서 담당자가 행성 수비대 임원들에게 로봇 사용 허가를 요청했다.

행성 수비대 임원들에게서 허가가 내려지자, 곧장 미행용 로봇이 출격했다. 미행용 로봇은 에큐메노폴리스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순찰용 로봇과 외관이 비슷했으나, 미행 및 실시간 정보 전달에 특화된 기술을 탑재하고 있었다.

타이탄 베이스 기숙사

방송이 들린 후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가 확인해 보니 각자 37번, 5번, 19번 킬링 로봇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훈련생이 되자마자 부여받은 번호와 동일했다.
“와, 이러니까 진짜 대원이 된 게 실감난다.”
세 친구들은 묘한 긴장을 느끼면서도 설렘에 휩싸였다.
“야, 시간도 남는데, 우리가 맡은 로봇들이나 구경하러 가보기나 하자.”
“그래, 그럼 구경하고 나서 나간 김에 바로 폐허지대 훈련 해볼까?”
“그건 안 돼. 나 근육통 있어.”
“그건 진통제만 먹으면 끝 아니냐.”
서로 신나서인지, 셋은 킬링 로봇이 배치된 격납고로 향하며 서로 떠들었다.

한편, F-8구역

미행용 로봇이 꾸준히 행성 수비대를 향해 정보를 송출하며 잠재적 침투자를 미행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미행을 이어가는 도중, 잠재적 침투자가 뒤를 돌아보자 로봇은 알고리즘이 내리는 경고로 인해 움찔거렸다. 그러나 임무 완수를 제 1의 목표로 두는데다가 감정도 못 느끼는 로봇이기에, 묵묵히 미행을 수행했다.
잠재적 침투자는 점점 뒷골목으로 들어갔고, 그로 인해 미행용 로봇이 자연스레 몸을 숨길 수 있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행용 로봇은 주변 건물을 드나들며 최대한 들키지 않게 미행 임무를 이어갔다.

로봇 시스템과 행성 수비대 정보처리 부서 직원들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때, 미행용 로봇은 응답 대신 영상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잠재적 침투자와 의문의 다른 사람이 한 명 조우한 채로 서 있었다. 둘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조용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미행용 로봇은 현장 뒤 건물 안에 들어가 숨은 채 해당 언어를 분석, 통역내용을 행성 수비대 정보처리 부서 직원들에게 송출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처음인가?”
“그래. 너는 여기서 어떤 정보를 얻었지?”
“언어, 교육, 좌표 등 다양하지. 역시나 우리 제국에 대한 인식은 한없이 부정적이더군.”
이로써 두 사람 모두 침투자임이 드러났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침투를 완료해 자신이 얻은 정보를 말해주는 자는 7등급에 준하는 개체이나, 메달이 푸른 빛을 발산하게 만든 침투자는 아니었기에 로봇이 집중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였다.

미행용 로봇과 정보처리 부서 직원들은 급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때, 로봇이 송출중인 영상 메시지에서 미행해 오던 침투자가 말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전부터 나를 따라오는 로봇이 있다는 걸 느꼈거든?”
위와 같이 말한 뒤, 그는 뒤통수의 세포를 변형해 안구를 만들어 내 미행용 로봇을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로봇에 경고를 보내자마자, 침투자는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미행용 로봇의 몸통을 뚫어 버렸다. 모든 공격은 순식간에 일어나 로봇이 미처 반격하지도 못했다.

미행용 로봇이 마지막 메시지를 전송한 뒤 자폭하자, 주변 수m 반경이 폭발에 휩싸였다. 4등급 침투자의 외피 일부가 잠깐 벗겨졌지만 그는 아무 타격도 입지 않은 듯 금세 외피를 재생시켰다.
폭발로 인해 견물 외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7등급 침투자는 치명상을 입어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였다.
“즉시 4등급 침투자 출현 경보를 발령해라! 인근 지역에 설치된 감시망을 4등급 침투자에 모조리 집중시켜서 도주경로를 파악해라!”
행성 수비대 직원들 사이에 비상이 걸리며 방송이 울렸다. 해당 지역에서 40km정도 떨어진 타이탄 베이스에도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을 들은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는 순간 머릿속이 벙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주변 상황의 긴박한 소리도 들을 수 없어서 다들 혼란에 빠진 상황, 누군가 세 친구들을 거칠게 두드리며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킬링 로봇에 탑승해! 나도 현장에 출동한다.”
아밀레아였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사이 수많은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들이 킬링 로봇이 배치된 격납고로 달려가며 필승을 외치는 장면이 루카스의 눈에 들어왔다.
사이렌이 타이탄 베이스와 주변 지역에 울려 퍼졌다. 대원들이 킬링 로봇에 달려가 신속히 탑승한 채 출격용 캐리어에 탑승하는 장면이 사이렌에 겹쳐 보이며 두려움과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다수고 상대는 하나다! 이길 수 있어!”
대원들은 서로 사기를 북돋는 말을 외치며 킬링 로봇에 탑승했다.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도 킬링 로봇에 탑승해 일체화 작업을 마친 뒤 서로 손뼉을 때리며 사기를 올렸다. 곧이어 세 친구들을 현장으로 실어 나를 거대한 캐리어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도착했고, 세 친구들과 동료 대원들은 캐리어에 탑승해 신속히 현장을 향해 출격했다.
캐리어는 감시망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전달받으며 자동 비행을 시작했다. 곧이어 F-8구역에 도착했고, 캐리어 내부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동시에 킬링 로봇에 감시망이 전송하는 침투자의 위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침투자까지 거리가 300미터 남았다! 전원 추격 시작!”
대원들은 일제히 킬링 로봇을 탄 채 침투자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는 폐허지대에서의 훈련 기억을 되살려 침투자가 더 깊은 지하 구역으로 도주할 것을 우려해 지하 구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경계하면서 추격을 진행하고 있었다. (F-8구역도 얕은 지하에 위치한 지하 구역이다.)
이미 경보가 울려서인지, 주민들이 방소 시설로 모두 들어가 숨은 F-8구역은 난장판으로 어지럽혀진 채 정적만이 남아 있어서, 흡사 폐허지대의 느낌마저 들었다. 주위 환경이 너무 조용했기에 대원들은 추격을 진행하되 요란하지 않게 침투자에게 접근했다.
‘놈들이 가까이 오고 있나? 여기서 더 움직이면 금방 들킬 텐데, 큰일이다.’
킬링 로봇들이 근접하자, 근처 건물에 숨어 있던 침투자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다!”
그 때, 킬링 로봇 하나가 외치며 플라즈마 건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플라즈마 건에서 뿜어져 나온 포가 침투자가 숨은 건물의 벽을 뚫으며 침투자의 위치를 노출시켰다.
“저게 뭐야?!”
침투자가 본 모습을 드러내자 대원들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변장해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푸른색 유동성 고체 피부가 온 피부를 덮고 있었는데, 이 피부의 세포들은 자유자재로 변해서 다양한 공격이나 변장을 할 수 있었다.
침투자가 순식간에 피부를 촉수로 변환해 자신에게 플라즈마 건을 쏜 킬링 로봇을 공격하자, 킬링 로봇 사이사이에 촉수가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 시스템을 파괴시켰다. 촉수들이 날카로운 돌기를 생성하자, 킬링 로봇의 장갑이 갈라지며 불꽃을 일으켰다.
침투자의 공격을 받는 위기 상황이 닥쳐오자, 몸싸움중인 킬링 로봇에 탄 대원은 이에 질세라 침투자를 꽉 붙잡은 채로 고온열선을 활성화했다. 뜨거운 고온열선이 자신의 피부를 태우고 녹여대자, 침투자는 당황한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몸부림치는 힘에서부터 밀리는 킬링 로봇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조건 붙들고 있어! 우리가 도와줄게!”
동료들이 침투자와 사투를 벌이는 킬링 로봇 대원을 향해 무전을 날렸다. 침투자는 피부를 이루고 있는 세포의 위치를 급소에 집중적으로 밀집시켜 고온열선으로부터 목과 머리, 심장을 보호한 후, 촉수를 이용해 자신을 붙잡고 있는 킬링 로봇의 고온열선 시스템을 조여서 파괴했다.
“이제까지 만났던 침투자들에 비해 재생력과 근력이 월등히 뛰어나! 킬링 로봇을 사용한다 쳐도 1대 1로는 버티기..”
시스템이 대부분 파괴되어 사투를 벌이던 킬링 로봇으로부터의 무전이 끊겨버린 그 때, 아밀레아와 뒤따라오던 대원들은 무력화된 킬링 로봇에 탑승한 대원을 공격하려는 침투자와 조우했다.
아밀레아는 플라즈마 건, 고온열선, 나이프를 능숙하게 번갈아가며 공격해왔고, 뒤따라오던 대원들이 합세하자 침투자는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저 로봇 하나 부수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지만, 절대적으로 내가 머릿수로 열세야. 게다가 내 목표는 전투가 아닌 정보 탈취 후 도주이니 여기에서 불필요한 체력과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어. 우선 도망가자.’
침투자는 고개를 돌려 빠른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한 그 때, 도주를 시작한 침투자의 눈에 깊은 지하구역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는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침투자는 지하구역으로 더 깊이 도주하면 북잡해지고 많아지는 건축물로 인해 자신을 찾는 수색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 터널 너머의 공간 안으로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더 깊은 지하로 도주하게 두면 안 돼! 무슨 수로든 붙잡아라!”
아밀레아가 다른 대원들에게 외치며 플라즈마 건을 머리에 발포하자, 공격받은 침투자는 잠시 주춤했다. 침투자의 머리를 두껍게 둘러싼 피부 보호막이 대신 녹아내리고 있었기에 큰 타격은 입히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 때, 지하구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경계하던 루카스, 앤드류, 마티가 튀어나와 침투자를 붙잡았다. 모든 일이 단 몇 초 사이에 일어났다. 세 친구들은 침투자의 한 팔 한 다리를 각자 붙잡고 꽉 붙들었다.
“나이프나 플라즈마 건을 활성화하면 내부 시스템이 드러나니까 오히려 위험해. 고온열선 으로 재생 한계치까지 세포를 녹여버리자.”
세 친구들은 급히 작전을 공유하며 침투자를 공격했다. 주변에 꽉 붙어 공격하는 세 대의 킬링 로봇, 그 뒤로는 플라즈마 건 발포 직전의 다른 대원들이 포진해 있자 침투자는 큰 위험을 감지했다.
‘아직 신체 재생에 필요한 잠재세포는 충분히 저축한 상태야. 우선 내 세포를 뜨거운 열선 으로 녹여대는 세 대의 로봇들을 공격해 무력화한 뒤 방패로 이용하면서 도주하자.’
상황 판단을 마친 침투자는 뒤에서 날아오는 플라즈마 건을 회피하기 위해 재빨리 신체 세포를 활발히 움직여 팔 다리 길이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세 친구들의 로봇 뒤로 숨어든 후, 촉수로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들을 꽉 붙들어 두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붙잡은 침투자의 팔다리가 마음대로 늘어나고 짧아지는 걸 본 세 친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지 말고 붙잡은 팔다리를 놓지 마! 내가 지원할게!”
세 친구들에게 무전을 날린 아밀레아의 킬링 로봇이 침투자를 붙잡으며 고온열선을 이용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제 터널 안에서 4 대 1로 근접전투를 벌이는 상황, 터널이 꽉 막혀 도와줄 공간이 없어진 후방의 대원들은 섣불리 터널에 끼어들어 공격하는 대신 빈틈이 나면 플라즈마 건을 발포할 준비를 했다.
‘일단 급한 상대는 네 대의 로봇. 게다가 이들은 꾸준히 내가 저축해 둔 세포를 파괴해서 재생력을 감소시키려 들고 있어. 만약 내가 이놈들을 모조리 무력화시킨다 해도 뒤에 더 몰려온 놈들이 총을 장대비처럼 난사하겠지. 어쩔 수 없이 확실히 도주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는 무사할 가능성이 없다.’
침투자는 무시무시한 완력을 발휘하며 자신을 공격하는 아밀레아와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었다. 도로를 조금만 더 진행하다 보면 지하 구역으로 향하는 호버들이 도로 없이 비행하는 구간, 즉, 지하 도시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 낸 절벽이 수백m 높이로 펼쳐져 있어 위험한 광경을 자아냈다. 침투자는 이 절벽을 보고는 절벽으로 도주하기 위해 촉수를 붙든 세 친구들과 아밀레아의 킬링 로봇을 매단 채로 절벽을 향해 움직였다.
“위험하다! 침투자가 절벽으로 도주하게 둬선 안 돼!”
아밀레아가 급히 무전을 발송하자 뒤에서 신중하게 발포를 대기 중이던 수많은 킬링 로봇들이 몰려와 힘을 보태주었다.
이제 완력에서도 밀리기 시작한 침투자는 순식간에 촉수를 흡수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절벽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아밀레아와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들이 발과 다리를 붙잡고 같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아밀레아는 침투자를 붙잡은 체 나이프를 이용해 절벽을 긁음과 동시에 부스터를 이용해 추락 속도를 늦췄고,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은 부스터를 발동하며 추락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침투자가 로봇의 손으로부터 떨어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붙잡으며 저지했다. 때문에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요란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덩어리가 절벽을 긁으며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덩어리가 주거 시설로 이루어진 벽을 마구 긁어대면서, 크고 작은 파편들이 요란하게 튀겨댔다. 그 파편들은 주로 발코니의 난간이나 광고판 조각 등이었다.
곧이어 뒤따르던 킬링 로봇들도 전투현장을 향해 속도 감축을 위한 부스터를 켜고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십 대가 넘는 킬링 로봇들이 일제히 부스터를 작동한 채 절벽 아래로 낙하하는 장면은 마치 5m 짜리 유성우들이 불을 뿜으며 떨어지는 모습 같았다.
침투자와 아밀레아,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히며 흩어졌다. 에큐메노폴리스에는 수십km도 능가하는 절벽구간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나마 이 절벽은 짧은 편이라 다행이었다.
세 친구들과 아밀레아의 킬링로봇을 뒤따라 바닥까지 하강을 완료한 킬링 로봇들이 추락의 충격에 비틀대며 일어나는 침투자를 향해 플라즈마 건을 쏘기 시작했다. 수많은 플라즈마 건의 발사로 주변 지역은 환해졌고, 그 폭발로 인해 침투자의 전신은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몸을 태우는 불꽃과 날아오는 플라즈마 건들의 광선이 침투자의 세포들을 대량으로 파괴시켰다. 몸이 뜨거워지고 세포들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침투자가 괴성을 지르며 건물 안쪽을 향해 몸을 숨기려고 하자, 아밀레아와 세 친구들이 침투자를 붙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침투자는 촉수를 뻗어 네 명의 킬링 로봇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주변에서 다른 로봇까지 공격에 가세해오자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한편 침투자가 최후의 힘을 짜내며 죄어드는 촉수에 단단한 킬링 로봇들의 장갑도 파손되기 시작했다. 침투자와 가장 가까이에서 전투중인 세 친구들과 아밀레아의 로봇 손상 상태가 가장 심각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고온열선으로 세포를 녹여가고 있었다. 고온열선의 공격과 플라즈마 건에 난사당한 효과로, 침투자가 축적해 놓은 세포들이 대부분 소멸하고 말았다.
침투자는 갑자기 온 몸의 세포를 변형시켜 구멍들을 만들어 내더니 무수히 많은 수의 밝은 섬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꽉 감아도 눈부신 섬광에 킬링 로봇을 조종하는 대원들은 팔로 얼굴을 가리거나 시선을 돌린 채 눈을 감아야 했고, 이는 아밀레아와 루카스, 앤드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 팔로 눈을 보호하고, 나머지 한 팔로는 침투자의 팔다리를 꽉 붙들고 있었다.
“나는 문제없어!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다들 어떻게든 침투자를 붙들어!”
마티가 눈에 보호막을 생성하고는 소리쳤다. 루카스, 앤드류, 아밀레아가 침투자를 꽉 붙잡아두는 사이, 마티는 플라즈마 건을 뽑아내서 침투자의 머리를 쏘기 시작했다. 침투자는 재빨리 머리를 방어하고는 촉수를 뻗어내 플라즈마 건을 우그러뜨렸다.
‘뭐 이렇게 질긴 놈이 다 있지?’
마티는 살짝 질리기 시작했다. 과감히 나이프를 활성화한 마티는 촉수를 있는 힘껏 잘라낸 후 몸통을 찔러서 침투자가 이동하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축적한 세포가 거의 다 떨어진 침투자는 촉수를 생성해서 마티의 킬링 로봇을 공격할 체력마저 떨어졌다.
‘여기에서 죽으면 안 된다. 아직 임무 수행도 시작하기 전이란 말이야.’
침투자는 최후의 힘을 짜내 자신의 심장을 향해 들어오는 마티의 나이프를 막아낸 뒤, 하체의 근육을 이루는 모든 세포를 사용해 촉수를 만들어 마티가 탄 킬링 로봇의 몸통을 공격 하자, 로봇의 장갑은 물론 마티의 복부까지 촉수에 찔리고 말았다.
마티는 고통을 버티며 부스터를 활성화시켜 나이프를 찍어 누르는 힘을 강화시켰다. 그 순간, 마티의 눈에 살고 싶다고 외치는 침투자의 눈빛이 들어왔다. 마치 그 순간에는 배를 찔러서 미안하다고, 혹은 너를 죽이게 되어 미안하다고 서로서로 대화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 근육 세포도 파괴되어 버틸 힘이 없다. 끝인가 보네. 그냥 여기서 힘을 빼자.’
침투자가 팔의 힘을 풀자, 마티의 나이프는 침투자의 심장을 관통하며 모든 전투는 종료됐다. 복부에 찔린 상처로 인해 힘이 빠진 마티도 이윽고 쓰러졌다.
“안 돼, 마티. 어떻게 된 거야?”
아밀레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황급히 일체화 상태를 해제하고 마티에게 달려가자, 곧이어 앤드류도 상황을 보기 위해 킬링 로봇에서 내렸다. 당황한 루카스도 급하게 일체화 상태를 해제해 로봇 출구를 연 뒤 일체화 블록을 빼내 바닥에 내팽개치곤 마티에게 달려갔다.
“여기는 F-8구역 동부 절벽 아래다. 모든 상황 종료, 부상자가 발생..”
아밀레아는 마티의 상처를 압박하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다행이 촉수가 주요 장기를 비껴나가서 치명상은 면한 모양이었다.
“하하.. 내가 최고 공신이다, 얘들아.”
마티는 그 사이에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치료나 잘 받아, 인마.”
앤드류가 받아쳤다. 마티에게 짓궂게 장난치는 앤드류였지만 이번 만큼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 묻어 나왔다. 곧이어 급파된 호버들이 절벽 아래로 집결, 대원들과 마티를 포함한 부상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했다.
“루카스, 바닥에 일체화 블록을 떨어뜨리면 어떡해.”
아밀레아가 바닥에 떨어진 루카스의 일체화 블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루카스가 미처 마스크를 벗지도 못한 채 일체화 블록을 가지러 가자, 아밀레아가 일체화 블록을 주워서 루카스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루카스의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일체화 작업을 할 때 볼 수 있는 물결치는 파동의 터널이 루카스의 눈앞에 펼쳐지자, 루카스는 돌발 상황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터널이 다 끝나고 나서 루카스의 눈앞에 남색 배경 안에 서 있는 아밀레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이일 적 기억, 행성 수비대에 들어가 혹독하게 훈련을 받아와서 우수생이 되었던 기억, 치열한 전투 중에 부상당하는 기억 등 아밀레아의 갖가지 기억들이 시간 순으로 루카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현재 루카스에게 일체화 블록을 주워주는 기억에 도달하자, 루카스는 아밀레아와 마주보는 상태가 되었다.
“루카스? 어떻게 된 거지?”
“저도 몰라요. 여기가 어디죠?”
“내 머릿속에서 네 모습이 보여. 소리도 들리고. 어떻게 된 거지?”
아밀레아가 당황해 일체화 블록을 놓치자, 모든 상태가 원상태로 돌아왔고, 루카스도 다시 맨 정신으로 돌아오며 쓰러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는지 주변에 서 현장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렸고, 앤드류도 이 상황을 어리둥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뭐, 뭐, 뭐죠? 이게..”
당황한 루카스는 아밀레아에게 더듬거리며 물어봤다. 아무래도 일체화 시스템의 작동으로 인해 루카스가 아밀레아의 정신으로 들어왔으나, 아밀레아는 로봇과 달리 자아가 있었기에 루카스가 아밀레아의 몸을 지배하지 못하고 서로의 자아가 마주친 듯 했다.
“아무래도 일체화 시스템의 오작동인 것 같아. 괜찮으니, 킬링 로봇을 끌고 호버에 올라타. 아무도 이상 없는 것 같으니 안심하고 복귀해도 좋아.”
아밀레아가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자 루카스는 안심하고 바닥에 떨어진 일체화 블록을 주운 뒤 다시 킬링 로봇에 탑승, 호버를 타고 타이탄 베이스로 돌아갔다. 아밀레아도 상황이 정리된 후 다시 킬링 로봇에 탑승한 뒤 호버를 타고 복귀했다.
‘근데 진짜 뭐지? 독심술인가?’
타이탄 베이스로 복귀하는 호버 안에서, 아밀레아 또한 당황한건 마찬가지였기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한 계급인 4등급 침투자를 사망자 없이 잡아냈다는 소식에 타이탄 베이스 내부는 잠시 축제 분위기였는데, 특히 침투자 제거에 앞장선 세 친구들과 아밀레아는 그 공로로 48시간 동안 타이탄 베이스 홈페이지에 그 얼굴이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엄연히 전시 상황. 4등급 침투자 좀 잡았다고 크게 공을 치하할 여유는 없었으며 타이탄 베이스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고, 파손된 킬링 로봇들도 신속하게 수리하거나 교체작업을 실시했다. 며칠이 지난 후 마티 또한 빠르게 의료치료를 받은 후 일상으로 복귀해 훈련을 조심스레 재개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킬링 로봇 전투 상황을 겪은 뒤라 많은 대원들은 행성 수비대원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세 친구들과 다른 대원들은 계속해서 전투기 훈련과 폐허지대 킬링 로봇 실전 전투연습에 참여해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반복되는 실전 연습 속에서 킬링 로봇을 다루는 능력과 순발력이 늘어나자 대원들은 자신감이 치솟았고, 군주, 즉, 제논이 출현한다 쳐도 무조건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시작했다.

10장 : 명령 수행자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A구역, 연합 위원회 본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의 대표가 원탁에 마련된 자리에 앉자, 원탁의 다른 자리에서 홀로그램이 작동되며 다른 에큐메노폴리스의 대표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록 홀로그램으로 구연된 회담이었지만, 그들은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최근에 프로타 지역에서 4등급 침투자가 발생했지만, 인명피해 없이 제거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참 잘 된 일이군요.”
에큐메노폴리스 – 제타의 대표가 프로타 측 대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자, 다른 에큐메노폴리스의 대표들도 동조했다.
“하하, 우리 행성 수비대 대원들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같이 기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로타의 대표는 감사인사를 짧게 건네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근에 일곱 에큐메노폴리스의 신호 부품을 최신 모델로 바꾼 뒤, 뉴런 프로젝트를 모두 완성하는 연합 작전, 다들 완료 했습니까? 당연히 코어 지역까지 모두 보수했겠죠?”
그러자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제타를 시작으로 모든 에큐메노폴리스의 대표들이 모든 작업을 이미 완료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제 제논이 온다고 쳐도 우리에게 대항할 힘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놈이 오기를 기다리는 입장 아닌가요, 여러분?”
에큐메노폴리스 – 감마의 대표가 의미심장하게 묻자, 반은 긍정적인 끄덕임, 나머지 반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아직 우리가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모르는 분들도 계시다니, 조금은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프로타의 대표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러분들은 에큐메노폴리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인류와 외계의 종족들이 우주를 개척하는 도중 서로 부딪혔고, 서로 평화 협정을 맺어 각종 행성에 연합 정부를 창설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결국 연합 정부는 불 호의적 세력들에 둘러싸인 채 성장 및 진출의 한계에 부딪혔고, 연합정부는 자신들의 행성을 중심부까지 난개발하며 파헤쳐 행성 채 도시로 바꾸었습니다. 이게 한데 모여을 이루었죠.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비록 우리에겐 비상 차원에서 만든 가 있긴 하지만, 그걸 함부로 다뤘다간 우리는 끝내 우주 사회에서 도태되어 결코 생존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더 이상 외계로의 진출은 꿈도 못 꾸고 과포화 된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살아 가다가 곪아터지겠죠.
그런데 보십시오. 침투자들이 몇 십 년 전부터 나타나 우리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에 등장, 무려 이라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오는 비행선들, 조사해 보면 루젠티윰을 포함해 온갖 희귀자원들이 도장되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철 덩이를 써대듯이 말입니다.
이제 모두들 파악이 되셨습니까? 우리는 모두 신호 부품을 최신식으로 체계화했고, 뉴런 프로젝트를 모두 종료했으니 를 신속하게,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논을 죽인 뒤 그들의 자원을 토대로 다른 세력들을 압도하고 선도할 일만 남았죠.”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프로타 대표의 말이 끝나자 에큐메노폴리스 - 엡실론의 대표가 물었다.
“모두 알다시피 1등급, 2등급, 3등급짜리 침투자들의 전투력은 막강합니다. 행성 수비대가 그들을 막지 못하는 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죠. 만약 그들이 정보를 탈취한 후 도주를 시도한다면, 약간의 겉치레식 공격을 하되 그대로 도망치도록 내버려 둬 보십시오. 그리하면 좌표를 받은 제논이 알아서 우리에게 올 것이며. 게다가 도주하도록 놔 둔 침투자가 강했던 건 사실이니 도주를 막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피할 수 있습니다.
마침 신호부품이 모두 최신형으로 개선되었죠. 그러니 뉴런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신호 부품에 명령어를 입력, 명령에 따라 주요 지지대들이 각 상황과 의도에 맞게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작업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요 지지대 아래에 묻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던 에큐메노폴리스 중심부의 코어가 노출되고, 를 목표 방향으로 설정한 뒤 덮개를 제거하고 제논을 죽이면 모든 게 끝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일렬로 공전 중이니 동시에 코어를 제논에게 가동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면 위력은 배가 되겠죠. 제논이 세운 제국도 의 힘에 무릎 꿇을 것이고, 우리는 그 지역에 진출하여 자원을 독점 채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질문에 에큐메노폴리스 – 제타의 대표가 답변을 하자, 모든 에큐메노폴리스의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에 찬성했다.
“만약에 1,2,3등급에 준하는 침투자가 등장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행성 수비대들은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겠죠. 그들은 침투자 제거에는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이니까요. 제논이 오기 위해서는 침투자가 도주에 성공해야 하니, 행성 수비대 측을 말려야 합니다. 각 에큐메노폴리스는 상황에 맞게 행성 수비대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법을 세워 놓도록 하십시오. 행성 수비대 장관에게는 우리가 세운 계획을 알려 줍시다. 이상입니다.”
프로타 대표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대표자들의 회의는 종료되었다.

그 시각, 우주 저편

저 먼 은하계의 우주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제논의 거대한 전함에서 침투자들, 즉, 제논이 세운 제국의 군 관계자들이 바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보낸 병사도 오지 않는 건가?”
“최근에 몇 명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어. 잇달아 실패만 계속 하는군.”
“생각보다 상대의 전력이 강한 걸 수도 있어. 아니면 목표 문명이 너무 멀리 있거나.”
그들은 계속해서 에큐메노폴리스로의 정보 수집 병사(침투자) 파견 작전이 실패하자 큰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일각에서는 건드리면 안 되는 강한 존재와 전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그 때, 안내방송이 전함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이 끝나자, 각 부서 책임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종족 신체 특성상 표정이 없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찰나의 분위기가 모두들 잔뜩 긴장한 채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함 곳곳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던 책임자들은 최대한 빨리 함교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각 부서의 모든 책임자들이 함교 아래쪽에 집합하자, 갑자기 주변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책임자들 모두 함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자신들이 차원의 문을 통해 제논의 코앞까지 이동한 것을 알아챈 책임자들은 제논 앞에서 자세를 맞추고 한 줄로 정렬했다.
“이때까지 보낸 병사들 모두 임무를 실패한 모양이군.”
함교 가운데에 위치한, 어두운 그림자에 둘러싸인 커다란 왕좌 위에서 불이 켜지듯 두 눈이 번뜩이기 시작하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바로 들려오는 느낌을 주어 위화감이 들었다.
“군주님, 면목 없습니다. 당장 추가로 병사들을 보내도록 하죠.”
한 명의 침투자가 두려움을 삼키며 대답하자, 왕좌에 앉아있던 제논이 몸을 일으켜 왕좌를 둘러싸고 있던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오며 그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5m의 키를 가진 제논의 몸은 아주 진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고, 얼굴에는 코와 귀, 입이 없었지만 두 눈은 건재하게 붉은 색 빛을 뿜어내며 위협적인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체내에서는 강력한 에너지가 생성되어 피부 바깥으로 아주 은은한 빛을 발산하여 마치 언제라도 폭발하듯이 활동할 것 같은 항성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제논이 천천히 걸어 나오자, 책임자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계속해서 병사들의 귀환이 실패하니, 나와 너희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나는 백성인 너희를 믿고 기다려 주었지만, 한편으로 나태하게 왕좌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믿어왔던 너희들은 무려 이십 년 동안 한 건의 임무도 완료하지 못했지.”
책임자들의 머릿속에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간다면 너희들이나 나나 불이익이다. 너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로부터 불신만 살 거고, 나는 계속해서 병사들을 잃어가는 상황이 반복 될 거다.
은하계를 모두 통합하고 내 세력 안으로 흡수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필수적인 과업과도 같은 일이다. 그걸 이루기 위해, 내가 직접 차원의 문을 열고 나가 탐사에 나서야겠다.”
제논이 신념에 사로잡힌 듯이 말하자, 책임자들은 제논의 선택을 말리고 싶어 했다. 제논이 직접 외계우주 탐사에 나선다는 것은 자신들의 신용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군주님,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십시오. 외계 은하에 존재하는 새로운 문명을 찾는 일은 가히 어려운 일입니다. 군주님도 아시잖습니까. 우리가 더 강한 병사를 파견할 테니 믿어 주십시오.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성과 없이 기어 들어오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믿겠다. 내가 차원의 문을 열 테니, 함교를 지키는 정예병 중 하나를 파견해라. 외계 문명과 그 좌표를 알아오는 임무를 필히 완수하라고 명령해라.”
전략담당 책임자가 간곡히 부탁하자 제논이 대답했다. 곧이어 책임자들을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차원의 문이 생성되었고, 책임자들은 함교 밖의 공간으로 빨려 나갔다.
“원거리 우주 문명 수색을 원하는 함교 경호병을 데려와라. 여럿을 데려와도 좋다.”
함교 밖으로 빨려 나온 군사 통솔 담당 책임자가 명령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우수 종족으로 구성된 세 명의 정예병이 모습을 보였다. 단단한 피부로 둘러싸인 몸은 회색빛을 띄었고, 그 사이사이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너희는 최대한 빨리 외계 우주 문명의 정보를 알아낸 뒤 돌아와라. 언어, 군사능력, 인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명의 좌표를 알려줘야 한다. 문명이 위치한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면, 위치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 속도까지 계산해야 된다. 명심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정예병들이 대답하자, 제논에 의해 차원의 문이 열리더니 에큐메노폴리스들이 있는 은하계로 정예병들이 빨려 나갔다. 이제 그들은 에큐메노폴리스의 정보를 탈취해 제논에게 전달하는 명령을 맡은 침투자가 된 것이다.
정예병들로 이루어진 침투자들의 신체는 강인해서 비행선 없이 우주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능숙하게 우주 공간을 누비면서 차원의 문 앞에 널려 있는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의 잔해가 퍼진 모양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차원의 문에서 나오는 시점에서 볼 때 좌우로 길게 늘어진 잔해들이 보였고, 이는 세타가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제논에 의해 파괴되어 파편이 좌우로 길게 나열되었음을 나타냈다.
“둘은 오른쪽으로 향해. 나는 혼자 왼쪽으로 수색을 진행하지.”
침투자 하나가 신호하자, 동료들은 그 의견을 따라 서로 흩어져 문명 수색을 진행했다. 왼쪽 방향으로 한참을 비행해 나아가던 침투자는 곧이어 고밀도의 암석 지대와 가스 지대를 돌파한 후, 저 멀리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으로 구성된 행성들이 일렬로 줄지어 공전하는 항성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스와 암석들을 뚫고 지나가야 문명들을 발견할 수 있군. 아무 문명도 발견하지 못했던 병사들도 실패한 이유는 있었네.’
침투자는 문명이 있는 항성계를 발견해 안도하며 생각했다. 그는 감각을 활용해 차원의 문 기준으로 좌표를 측정하며 에큐메노폴리스에 접근했다. 에큐메노폴리스의 형상이 확실하게 보일 때 쯤, 연합정부 지휘하의 함선들이 침투자의 눈에 들어오자 그는 추격을 피하기 위해 그림자가 진 지역, 즉, 야간 상태의 에큐메노폴리스 안쪽으로 비행해 숨어 들어갔다.
에큐메노폴리스의 대기를 통과할 무렵 행성 수비대 소속 정찰기가 따라붙자 침투자는 순식간에 에너지를 쏴서 정찰기들을 제거해 버렸다.
“이거 뭐야, 손도 못 쓰고 당했어!”
“재빨리 제거 명령을 내리고 수색에 돌입해! 침투자임이 틀림없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행성 수비대 측의 관계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찰기들이 추가로 출동할 때 즈음, 침투자는 이미 에큐메노폴리스 지면에 착지해 수많은 인파 속으로 숨어들어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외피를 바꾸고 있었다.
‘아직 이곳의 언어도 모르기에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 이미 이곳에 온 병사로부터 조금 정보를 얻어야겠어. 우리 동족 간에는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접선을 시도해보자.’
생각을 마친 침투자는 같은 에큐메노폴리스에 잠입한 다른 침투자들에게 고유 음파를 이용한 신호를 발생시키기 시작했고, 음파는 원거리까지 퍼지며 이미 잠입해 있던 침투자들의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음파가 인근에 위치한 누군가에 인해 받아 들여졌고, 침투자는 누군가가 위치한 장소로 발을 돌렸다. 외딴 지역으로 향하며 길을 걸어 인파가 거의 없어진 무렵 침투자는 먼저 잠입해 정보를 수집하던 동료를 만날 수 있었다. 과거에 일어난 다른 침투자들 사이의 접선들도 이렇게 고유 음파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당신은 함교 경호병 아닙니까? 군주님이 계신 함교를 지키는 정예병이 오다니, 문명 탐사 임무는 사실상 완료된 셈이군요.”
“군주님이 꼭 임무를 완료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경호병인 나를 보내셨다. 그 만큼 내가 진 책임과 기대가 막중하다는 셈이지. 가장 먼저, 네가 지금까지 알아온 정보를 내게 알려줘. 그 다음의 추가정보 수집은 나 자신이 알아서 하지.”
침투자의 요구에 동료가 손의 세포에 기억 세포를 이식한 후 나뭇가지 모양으로 변형하여 내밀자, 정예병은 동료의 변화된 세포들을 꽉 감싸 쥐더니 순식간에 동료가 그 동안 알아왔던 에큐메노폴리스 문명의 정보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잠시 뒤, 동료는 추가 정보를 정예병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곳은 일곱 개의 행성 중 하나인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입니다. 일곱 행성들은 다들 땅 끝까지 도시 상태인데, 다른 세력들에 영역 확장이 막혀 과포화 개발을 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중에서도 C-502구역, 중산층의 주민들이 주로 사는 곳이지만 병력 밀도가 높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침투자들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의 언어로 진행되었다. 동료가 정보를 나눠주는 중, 인적이 없어 조용해야 할 공간에서 사이렌과 함께 요란한 인기척이 느껴지자 침투자(정예병)는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네?”
동료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찰나, 수많은 플라즈마 건들이 발포되어 침투자 자신은 물론 동료까지 화염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동료는 순식간에 몸이 불타 사라졌으나, 정예병인 침투자는 공격을 모두 버텨내고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여긴 C-502구역. 정찰기를 파괴한 침투자를 발견했고, 현재 포위 중이다. 긴급 출동한 대원과 킬링 로봇 80대가 포위 중이니...”
행성 수비대 대원들이 무전을 주고받으며 침투자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인근 모든 길에서 행성 수비대의 무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선 도주를 선택하기로 한 침투자가 보도 아래의 하수도 맨홀을 열었지만, 그곳에서도 도주로를 미리 예측한 행성 수비대 대원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군사정보를 알아오라고 지시 받았는데, 직접 전투에 나서면 정보는 알아서 알게 되겠다.’
전투를 결심한 침투자는 외부를 향해 전신에서 에너지를 발사해 인근 지역을 집어삼키는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의 화염은 C-502구역의 태반을 순식간에 불태웠고, 그 충격파는 15km정도 떨어진 타이탄 베이스에 도달했다.
“쾅”
폭발의 섬광을 뒤따라 타이탄 베이스에 도달한 충격파가 굉음을 내며 공기를 뒤흔들어 놓았고, 그 충격에 타이탄 베이스 사방에서 유리가 울리며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전투기들의 소음 경보 시스템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폭발음에 놀란 타이탄 베이스의 관계자들, 그리고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도 소리의 진원지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km에 달하는 화염과 연기에 둘러싸여 처참히 붕괴중인C-502구역의 모습이 보였고, 그 위아래 대기에는 유성처럼 불꽃에 둘러싸인 크고 작은 파편들이 비가 오듯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멀리서 천둥이 연달아 치는 듯한, 도시가 파괴되는 크고도 둔탁한 소리가 멀리서부터 날아와 사람들의 고막을 울려댔다.
곧이어 사이렌 소리가 타이탄 베이스는 물론, B구역, C구역,D구역, E구역 등 사건현장과 이웃한 광대한 범위에 울려 퍼지며 행성 수비대 측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타이탄 베이스 내부는 패닉에 휩싸였다. 얼마 전에 침투자를 잡는 데 성공했다 쳐도 그 강함은 4등급으로, 1등급의 발끝에도 훨씬 못 미치게 약한 개체가 킬링 로봇들을 고전시킨 셈이었다. 현재 대원들이 마주친 침투자는 에큐메노폴리스 행성 수비대 전체가 제거에 나서도 이상하지 않은 1등급 침투자. 분명히 킬링 로봇을 탄 대원들은 1등급 침투자를 상대하지도 못하고, 마치 개미떼들이 커다란 홍수에 쓸려나가듯 처참히 죽어 나갈 게 뻔했다.
“두려워하지 마! 너희들은 시민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행성 수비대원들이야. 지금은 모두가 공포를 삼키며 출격하는 상황이다. 7등급 침투자 처리대원들은 전원 무장하고 군용 호버에 탑승해라. 5등급 침투자 처리대원들은 킬링 로봇들을 끌고 호버 캐리어에 올라타라.”
저편에서는 조교들과 지휘자들의 명령소리가 들려왔고, 그 위로는 전투기들과 소방용, 전투용 호버들이 현장으로 비행해 날아가고 있었다. 세 친구들은 재빨리 각자의 킬링 로봇에 올라타 일체화 작업을 끝낸 뒤, 현장으로 출동하는 호버 캐리어에 탑승했다. 그들은 같이 출동하는 아밀레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그녀마저도 긴장감 탓에 표정이 어두웠다.
C-502구역을 둘러싼 거대한 화염과 연기를 뚫고, 세 친구들을 태운 캐리어 호버가 현장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버의 창문 너머로는 거대한 화염에 둘러싸인 수많은 건물들이 굉음을 내며 붕괴하고 있었고, 도시의 대규모 붕괴로 인해 발생한 크고 작은 불똥과 낙진들이 캐리어의 장갑 위에 탁탁거리며 떨어졌다.
그 시각, 행성 수비대 연구소에서는 침투자로 인해 메달에 나타난 섬광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알아낸 침투자의 위치를 호버 조종사와 모든 대원들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침투자 주변의 감시 시스템이 모두 증발해 버린 관계로 메달 빛의 변화를 이용한 위치 추적을 사용한 것이다.
“잠깐, 메달의 빛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조심하세요!”
연락 장치 너머로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호버 조종사들은 화염 사이로 솟아오르는 침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변장을 해제하고 본 모습으로 돌아간 채 자신에게 접근하는 캐리어와 전투기들을 공격할 준비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다들 후퇴하라!”
파일럿들 사이의 무전이 시작되는 순간, 화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침투자는 킬링 로봇들이 탑승한 호버 캐리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더 다양한 군사 정보를 얻기 위해, 도주하는 대신에 계속 전투를 유도하며 어떤 군사적 무기가 등장하는지 알아보던 것이었다.
마치 솜덩이가 갈가리 찢어지듯이, 그 커다란 호버 캐리어들은 침투자의 공격에 처참히 산산조각 났다.
“충격에 대비 하십시오!”
침투자가 앞서 출동 중인 캐리어들을 전멸시킨 후 자신의 캐리어를 되돌아보자, 세 친구들의 킬링 로봇이 타고 있는 캐리어 조종사는 안내 방송을 함과 동시에 급회전을 시작했다. 그 덕에 침투자의 공격이 대부분 빗나가 당장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빗나간 침투자의 공격도 강력한 탓에, 루카스를 포함한 호버 안의 대원들은 킬링 로봇의 힘으로도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바닥을 굴렀다. 호버는 크게 요동치더니 옆에 서 있는 빌딩에 추돌했고, 크고 작은 파편들로 이루어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건물의 벽을 긁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캐리어는 건물 아래쪽으로 추락하듯이 착륙했고, 그 위로는 부딪혔던 건물의 잔해물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추락으로 인한 충격이 진정되자, 캐리어의 격납고 안에서 킬링 로봇에 탄 대원들이 쏟아져 나오며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그들 앞에는 1km가 넘는, 화염에 둘러싸여 붕괴 직전인 건축물들과 그것들이 불타며 뿜어내는 연기들이 놓여 있었다. 그 광경 안에서는 쿵쿵 거리는 크고 작은 폭발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전혀 앞을 볼 수 없잖아. 게다가 일격에 도시 하나를 이렇게 파괴하는 놈을 어떻게 이겨! 우리는 소모품에 불과한 꼴이야.’
루카스는 속으로 절망했다. 루카스뿐만 아니라 앤드류, 마티, 다른 대원들도 겁을 먹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호버에서 빠져나왔으나 어디로 발길을 돌릴지 대원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인공위성이 상공에서 침투자의 위치를 파악해 대원들이 탄 킬링 로봇에 알려주기 시작했다.
“저번에는 우리 타이탄 베이스의 킬링 로봇밖에 없었지만 무려 4등급 침투자를 이겼잖아. 이제는 타이탄 베이스 뿐 아니라 몇 개의 대구역에서 병력이 오고 있어. 우리는 절대 다수 고, 적은 하나야.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돌격하자.”
아밀레아가 전방에 나서면서 격려하자, 대원들은 조금씩 용기를 가진 채 로봇들을 이끌고 침투자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른 호버에서 내린 킬링 로봇 대원들도 가세해 그 수는 수백이 훌쩍 넘어가 마치 커다란 개미떼가 진격하는 것 같은 모습을 자아냈다. 킬링 로봇들 위로는 전투기들과 전투 호버들이 화염을 뚫고 날아와 포격을 하고 있었다.
킬링 로봇들은 불꽃이 타오르는 폐허가 된 C-502구역을 계속해서 달렸고, 어느새 침투자와의 거리는 200m 미만으로 좁혀졌다.
“이제 거리가 많이 좁아졌다! 화염 때문에 잘 보이진 않겠지만, 위성이 보내주는 위치가 보일 테니 그 곳을 향해 플라즈마 건을 발사해!”
아밀레아가 지시하는 순간, 수백m 위에 있다고 표시되는 침투자의 위치가 매우 빠르게 강하했고, 곧이어 하늘 위에서 강하하며 전투기 한 대를 잡고 땅에 내던지는 침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지금껏 본 침투자들 보다 강렬하고 인정사정없이 잔인했다.
침투자가 전투기를 잡아 내리꽂자, 땅이 무너지고 전투기가 폭발하며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큰 굉음이 몰아쳤다. 대원들이 폭발의 충격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침투자는 신체에서 조금의 에너지를 발산해 커다란 폭발을 한 번 더 일으켰고, 그 여파로 많은 수의 대원들이 치명상을 당하거나 졸도했다. 로봇의 장갑이 없었으면 출동한 대원들이 전원 사망했을 게 뻔했다.
루카스는 정신을 잃을 듯 말 듯 하며 다른 위치로 유유히 이동하는 침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하늘 위로 뛰어 올라가면 공격받은 전투기들이나 호버의 불붙은 잔해가 비 오듯 떨어졌고, 지면에서 대항하는 대원들은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침투자가 한 번 한 번 공격해올 때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먼지 구름이 몰려왔고, 대원들의 비명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아무리 대항해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가 과연 있기는 하구나. 우리는 군주도 이길 수 있다고 떠들어대며 훈련했는데, 그건 얼마나 자만한 태도였을까.’
루카스는 행성 수비대 대원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기지에 배치되었던 무기, 타키온과 플레어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것들만 있으면 충분히 저 괴물 같은 침투자를 제거할 수 있을 텐데.’
하며 루카스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 아밀레아, 그리고 수많은 킬링 로봇에 탑승한 대원들이 불길 사이에 쓰러져있는 현장 위. 소방용 호버들이 진화작업에 나서자 주변 온도와 불길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지구에서 날아온 구조 및 지원용 호버들이 신속하게 현장에 착륙해 쓰러진 대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구조대들은 무거운 타이탄 로봇에 탄 대원들의 일체화 상태를 해제하고 재빨리 그들을 호버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원 팀입니다! 아직 한창 전투가 진행 중입니다. 어서 여길 떠야 돼요!”
정신을 조금 차린 루카스에게 구조대원 한 명이 급히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루카스의 킬링 로봇은 이미 반파되어 전투 불가능 상태였고, 에너지 가동도 불가능해 일체화 상태마저 풀려버린 상태였다. 침투자가 일으켰던 폭발에 파손된 킬링 로봇의 장갑은 검게 타들어간 채로 내장 시스템을 훤히 노출시키고 있었다.
루카스는 구조대원의 손을 잡고 힘을 내 몸을 일으켰다. 구조용 호버 안에 들어오자, 다행이 온전한 상태로 정신을 차린 채 앉아있는 아밀레아, 앤드류, 마티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경우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호버 안에는 부상의 고통으로 끙끙대는 많은 대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호버는 대원들을 태운 채 타이탄 베이스로 재빨리 복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뒤로는 행성 수비대와 침투자 사이의 전투가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일단 부상자는 의료실로 이동시켜! 그리고 다치지 않은 대원들은 안내 방송에 집중하며 다음 지시는 어떤 내용인지 잘 들어야 한다. 다시 전투 현장에 동원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호버가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지구에 도착하자, 아밀레아가 호버에서 내린 대원들과 관계자들을 향해 지시했다. 타이탄 베이스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수백 명이 넘는 부상자들이 바쁘게 의료실로 향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전투 중 크게 파손된 호버들이 굉음을 울리며 어정쩡하게 착륙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온전한 상태의 전투기나 호버들이 전투현장을 향하여 출격하고 있었다.
‘저렇게 무작정 출동하기만 하면 죽음만 기다릴 뿐이야. 이번 침투자는 단순한 전투기들로 전혀 상대할 수 없어.’
루카스가 그 광경을 보며 생각하는 그 시각, 행성 수비대 장관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연합정부가 우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정부 측에서 침투자를 잡을 함대를 보냈으니, 괜히 공격하지 말고 침투자가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지시다. 이제 우주 공간에서 함대들이 침투자를 죽일 일만 기다리면 돼. 공격 중지 명령을 행성 수비대 기지에 방송해라.”
장관은 위와 같이 부하에게 거짓말을 했다. 공격중지가 연합정부의 지시내용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연합 정부는 제논이 직접 나타난 뒤 죽기를 원하는 입장이기에 도주하는 침투자를 공격할 함대는 준비하지도 않았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 출격 대기 중인 모든 대원들은 공포에서 벗어나 환호하며 안심했다. 마티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럴 리 없어. 저건 거짓말이야.”
마티는 루카스와 앤드류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마티?”
앤드류가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마티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저 하늘 위를 봐봐. 아무 불빛이 보이지 않지? 더군다나 연합정부의 함대라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대낮에도 뿜어내는 불빛이 보일 정도야. 지금은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연합함대가 뿜어내는 불빛의 흔적조차 전혀 볼 수 없어.”
마티는 다른 이들에 비해 시력이 우수하고 시각에 민감했기에 안내 방송의 이상한 내용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루카스와 앤드류는 마티의 말을 듣고 상황이 꺼림칙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전혀 새로운 병기가 등장하지 않네. 심지어 출전 병력도 끊겼어. 더 이상 정보를 얻는 건 무의미할 테니 돌아가자.’
침투자는 임무를 완수했다고 여기고 굉음을 내며 우주공간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우와 뭐야?”
침투자가 비행하는 소리에 다른 대원들이 놀랐고, 그 소리는 세 친구들도 들을 수 있었다. 침투자가 우주 공간으로 나와 차원의 문을 향하는 그 순간에도, 함대의 공격은 고사하고 함대가 뿜어내는 불빛조차 볼 수 없었다.
“안 돼! 함대의 출정이 늦나봐. 도망치게 둘 순 없어!”
루카스가 흥분하더니 침착하고는 앤드류와 마티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저번에 타키온이랑 플레어를 봤던 일 기억나? 그걸 이용하면 저 침투자를 죽일 수 있어.”
“그럼 타키온을 훔치자는 거야?”
“에큐메노폴리스를 위해 이용하는 거지. 시간이 없어! 봐봐. 함대가 출정 한다 쳐도 그쯤엔 이미 침투자는 저 멀리 도망쳤을 거야. 어디에 타키온이 배치되어 있었지?”
“제 7격납고. 우리가 조종할 수 있을까?”
“전투기 훈련도 조금 배웠잖아. 그 때 기억을 되살려서 한번 도전해 보자고.”
세 친구들은 긴박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 수습이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은 타이탄 베이스 분위기상 전투항공 지구 – 7격납고에 들어오는 과정은 순탄했다.
“저 전투기가 타키온이야.”
앤드류가 제 7격납고 한 가운데에 있는 타키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륙 직전까지 준비가 모두 완료된 걸 보니 침투자를 제거하기 위해 출격 준비를 하다가 공격중지 명령이 내려지자 이륙을 그만둔 모양이었다.
세 친구들은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타키온의 조종석에 앉았다. 조종석 내부는 마치 넓고 온갖 버튼들이 많은 스피더의 조종석처럼 느껴졌다.
“이봐, 이거 불법인 거 몰라? 어서 저지해!”
세 친구들이 타키온의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하자 상황을 파악하고 몰려든 관계자들의 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타키온의 해치가 닫히자 그 목소리도 끊겨 버렸다.
“뭐야, 격납고 입구가 닫히고 있는데? 나가기엔 이미 늦었어!”
마티가 소리치자, 앤드류는 양용포를 발사하여 격납고 문을 산산 조각냈다.
“모두 헬멧을 착용해. 조종에 필요한 신체 능력을 높여 줄 거야. 이제 출발하니까 긴장해!”
루카스는 앤드류, 마티에게 소리친 후 레버를 밀어 비행을 시작했다. 레버를 앞으로 밀면 전진, 가운데에 두면 중지, 뒤로 당기면 후진하는 방식의 조작 장치였다.
타키온이 초고속으로 대기를 뚫으며 무섭게 중력 가속도를 받기 시작하자 세 친구들이 착용한 헬멧이 근육을 수축시키고 폐 활동을 활성화시킴으로서 머리에 혈액이 부족해 지는 현상을 방지했다.
타키온은 스텔스 기능을 활용해 검문을 뚫은 뒤 침투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거리를 좁히며 추격을 시작했다. 루카스가 우주 공간에 있는 침투자의 위치를 파악해 쫒아가는 추적 기능을 설정하자, 타키온은 비행하는 침투자를 자동으로 쫒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약간 시간이 남으니 어떻게 플레어를 발사해야 할지 파악해야 해.”
마티가 말하자, 친구들은 급하게 플레어 발사 장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곧이어 루카스는 조종석 가운데에 위치한, 안전유리 상자에 둘러싸인 발사 버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요한 버튼이 아니면 굳이 유리 상자에 들어있을 이유가 없겠지?’
루카스가 생각하며 유리 상자를 열자, 타키온 조종석의 전등이 붉은 색으로 전환되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조종석 창문 윗부분에는 이라는 문구가 생겨났고, 중앙 부위에 십자 모양으로 생긴 조준화면이 떠올랐다. 침투자와 타키온의 거리 차는 10km정도였다.
“플레어 발사 장치를 찾아냈어! 이제 쏘기만 하면 돼!”
“여기서 발사하면 폭발에 휘말릴지도 몰라. 일단 조준을 모두 마친 뒤에 플레어를 발사해. 그 직후 후진을 빠르게 진행하면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어.”
친구들이 긴박하게 대화했다. 루카스가 십자 조준화면이 비행하는 침투자의 뒷모습 위에 오도록 조작하는 사이, 앤드류와 마티는 각각 플레어 발사 버튼과 레버에 손을 올려 공격 직후 회피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조준이 완료됐어!”
루카스가 소리침과 동시에 앤드류는 플레어 발사 버튼을 눌렀고, 마티는 레버를 뒤로 힘껏 당겼다. 타키온 왼쪽 미사일 사출구에서 발사된 플레어는 추진 장치를 활용해 엄청난 속도로 침투자를 향해 돌진했고, 그와 동시에 타키온의 엔진이 180도 회전한 뒤 출력구가 전방을 향한 채 급 후진을 시작했다.
‘커다란 에너지가 다가오는 게 느껴져. 위험한 건가?’
플레어가 근접하자 침투자는 위협을 감지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앞에는 발끝으로부터 단 몇 cm 거리로 접근한 플레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곧이어 침투자에 부딪힌 플레어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반경 수십 km에 퍼지며 그 안의 모든 물질들을 불태웠다. 빠르게 후진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안도함과 동시에 빛에 인한 실명을 위해 두 팔로 눈을 꽉 가렸다.
플레어가 폭발하며 내뿜은 빛이 주변을 비춘 직후, 복사열이 타키온을 강타했다. 때문에 타키온의 장갑이 붉게 달아올랐고, 세 친구들이 탄 조종석 내부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복사열이 창으로 들어온다! 아래로 몸을 숙여!”
앤드류가 소리치자 모두들 조종석 창 아래쪽 그늘진 공간으로 몸을 숙였다. 아주 잠시 받은 복사열도 너무나 뜨거워서 피부가 따끔거렸다. 단 몇 초라도 망설였으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을 게 뻔했다. 후진하는 타키온이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세 친구들은 폭발하는 플레어로부터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플레어의 폭발이 진정되자, 육안으로는 폭발구름이 남긴 거대한 흔적이 일렁이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키온은 침투자가 플레어에 맞은 지점으로부터 수십 km 넘게 떨어져 있었기에, 침투자의 정확한 생사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확인 사살을 해야 돼. 다행히 플레어가 하나 더 남았으니까..”
루카스가 앤드류와 마티에게 말하는 순간, 타키온의 장갑을 강타하는 굉음과 함께 모든 시스템이 작동을 중지했다. 헬멧 또한 출력이 끊겨서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EMP 포에 맞았어. 누가 이런 짓을..”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 세 친구들이 긴장감에 휩싸인 순간, 타키온의 배후에서 에큐메노폴리스 연합 정부의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함선이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가 타키온의 선체를 모두 집어삼켰다.
“제정신인가? 적어도 침투자가 제거되었는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해야 되는 거 아니야?” 연합함대 함선의 행동에 루카스는 분노와 혼란을 느꼈다.
함선의 격납고가 열리더니 거대한 로봇 팔 두 개가 빠져나와 세 친구들이 탑승한 타키온을 붙잡고 격납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격납고 안에는 다수의 관계자들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 사람들, 우리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어.”
앤드류가 루카스와 마티에게 의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타키온의 해치가 외력에 인해 강제로 열렸고, 무장 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행성 수비대 장관의 공격 준비 명령을 위배한 혐의로 당신들을 체포합니다.”
“잠깐, 저희는 1등급 침투자를 공격한 일을 했습니다. 오히려 추궁 받아야 할 쪽은 제때 함대를 출격시키지도 않은 당신네 쪽 사람들 아닙니까?”
칭찬이나 보상을 주진 못할망정 체포라니, 열이 뻗친 루카스는 홍조를 띠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리 대원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니 저희도 선택권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여기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 우선 지시에 따르십시오.”
무장대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 친구들을 포박, 타키온 밖으로 끌어내렸다. 세 친구들은 함선에 갇힌 채 타이탄 베이스로 끌려갔다.
함선은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기지에 착륙했고, 끌려 나오듯 함선 밖으로 나온 세 친구들의 눈에는 난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밀레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밀레아 플로레스 교관. 이번 일에는 교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녀 앞으로 행성 수비대 장관이 직접 나오더니 면박을 주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밀레아는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밀레아의 어두운 표정과 장관의 날카로운 표정을 보며, 루카스는 심히 불길한 감정에 휩싸였다. 애초에 처벌을 받으러 본부 재판실로 향한 게 아니라 타이탄 베이스로 복귀한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번 일은 엄중한 사건이기에 내가 직접 나와서 안내하는 거다. 여기 세 명의 대원들은 장관 측, 그 위로는 연합정부 측이 내리는 명령을 무시하고 플레어라는 대량 살상 무기를 함부로 사용했다. 당연히 허가도 없었고, 전투기 훈련을 완료하지도 못했지.”
장관은 아밀레아와 주변에 모여든 관계자들, 수많은 대원들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행성 수비대 측과 연합정부는 이들을 미래 대원들을 위한 본보기로 삼아 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장관의 말에 루카스는 움찔했고,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순종적인 모습으로 있던 아밀레아는 확 얼굴을 치켜들었다.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대원들이 명령을 어기고 탈출한 시점의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상공 상황을 타이탄 베이스 관측부서에서 모니터링 한 결과, 침투자가 도주할 때쯤 상공에 연합함대가 한 척도 대기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대원들은 상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 아닙니까? 저들은 일곱 에큐메노폴리스들을 구했습니다.
뭐요? 자격 박탈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저들은 이때까지 존재했던 어느 대원보다도 큰 활약을 한 셈입니다. 함대의 대형 함선들마저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이루었단 말입니다. 그 공을 치하하며 칭찬하거나 보도하는 태도마저도 시원찮을 지언정 자격 박탈이 마땅한 조치입니까?”
아밀레아는 장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론 펼치자, 장관은 단호한 표정으로 아밀레아에게 대답했다.
“저들이 출동하지 않았어도 침투자가 차원의 문으로 도망가기 전에 우리 함대가 추격한 뒤 제거했을 것이네. 게다가, 이렇게 명령을 물로 보고 함부로 대량 살상 무기를 발사하는 부주의하고 무모한 대원들이 미래에 사회에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지 생각해 봤나?”
“제발 좀 솔직하게 상황을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그건 무모한 게 아니라 용..”
“계속 죄인들을 감싸고 돌면, 자네까지 제명할 줄 알아.”
장관이 아밀레아에게 으름장을 놓자, 그녀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이 대원들에게 부여한 스피더를 모두 압수하고, 해당 킬링 로봇도 일단 배치된 대원이 없다고 처리해. 그리고 기숙사의 짐을 모조리 빼서 갖다 줘라. 지금부로 이 대원들이 쓸 수 있는 기숙사는 없다.”
장관의 말이 끝나자, 루카스 앤드류, 마티의 스피더는 모두 압수처리 되었고, 기숙사의 짐도 모조리 비워져 세 친구들 손에 쥐어졌다.
“지금까지 배급된 급여는 그대로 두고, 저들이 원래 살고 있던 곳에 데려다 주도록 해라. 우리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장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버 셔틀이 세 친구들을 각자의 목적지까지 이송하기 위해 전투항공 기지 위에 착륙했다. 무장대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루카스는 터덜터덜 호버 위에 올라탔다.
‘뭐? 내가 죄인이야? 사회 위험 요소라고? 그들은 나한테 이런 태도를 취할 자격이 없어. 나를 판단 할 만큼 잘한 짓도 없다고.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루카스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거듭 생각했다. 분함과 분노 때문에 손에 힘마저 들어가지 않았고, 눈은 빨갛게 충혈 되어 갔다. 루카스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접촉하기만 하면 폭발할 것 같은 화산과도 같아 보였다.
마티는 C-670구역에서 먼저 내렸고, 호버가 D-4구역에 도착하자 루카스와 앤드류도 내려 재개발 지역이 되어버린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재개발 공사가 임박한 듯 했다. 두 친구가 떠나기 전 내놓았던 가구들은 이미 누군가 처리한 상태였고, 앤드류가 키우던 토마토들은 말라죽은 지 오래, 심지어 텃밭마저도 다 파헤쳐져 있었다. 이제 황폐해진 아파트에서 마저도 쫓겨날 신세가 된 두 친구는 낙후지역 빼고는 당장에 살아갈 공간도 없었다.

11장 : 예고
근 며칠 동안, 두 친구는 재개발이 임박한 아파트에서의 삶을 이어갔고, 이전에 다니던 직장 측에 복귀를 허락받은 뒤 일을 다시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알리는 것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남는 시간 동안 아파트에서의 삶은 단순했다. 앤드류는 추후에 어느 구역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조사했고, 루카스는 행성 수비대에 미련이 남아 훈련생 신분으로라도 복귀할 수 있는지 일아 봤지만 잇달아 거절당했다. 애초에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데다 행성 수비대가 첫 직업이었던 마티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 마다 두 친구네 아파트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갔다. 마티 입장에는 아무 직업이라도 찾으려 노력 중이었지만, ‘행성 수비대 자격 박탈’이라는 빨간 줄이 그어진 이상 정상적인 직업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루카스와 앤드류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다시 일터에 돌아오도록 허락한 작업현장 감독들이 상당히 큰 관용을 베풀었던 셈이었다.

한편, 항성계의 우주공간

며칠 만에, 플레어의 폭발로 인해 가사 상태에 빠진 침투자가 정신을 차렸다. 온 몸의 피부는 뜯겨져 나가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선 고열에 말라붙은 신체조직들이 검게 붙어 있었다. 처음에 비해서는 아주 약간 신체 재생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몸은 망신창이라 멀쩡한 곳은 급소랑 상반신의 골격뿐이었다.
‘위험했다. 약간의 공격이라도 추가로 더 받았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 했어. 전신에 치명상, 게다가 하반신 골격은 산산 조각날 정도면 무시무시한 병기야. 빨리 보고하러 가야겠다.’
침투자는 비행을 하며 차원의 문으로 향했다. 상처가 매우 깊고 큰데다가 재생도 더뎌졌기 때문에 비행하는 행위 자체가 죽음을 무릎 쓰는 위험한 행위였다. 그는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가스지대, 암석지대를 비행해 통과했고, 차원의 문 앞에 다다랐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차원의 문을 간헐적으로 개폐하는데, 이번에는 정예병이 직접 출격하여 제논이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며칠 동안 차원의 문이 활짝 열러 있었다.
끝내 차원의 문에 도착한 침투자의 상태는 모든 몸을 이끌고 차원의 문 너머로 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고, 결국 그는 급소 부위랑 필수 조직을 제외한 신체를 분리해서 신체의 질량을 줄인 뒤 차원의 문 안으로 비행해 들어온 뒤 의식을 잃어버렸다. 침투자로서 두 번째로 외계문명 탐사에 성공한 셈이었다. 침투자의 몸이 제논의 위치와 가까워지자 제논은 침투자, 즉, 정예병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장하다, 정예병! 20년 만에 드디어 탐사를 성공했구나.”
감각 능력을 활용하여 정예병이 문명 탐사 임무를 완수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제논은 그 공을 치하했다.
“병사들은 즉시 의료 함재기를 출격시켜서 정예병을 회복시켜라. 그에게는 공에 맞는 큰 보상을 수여하겠다.”
제논의 명령에 수하의 병사들이 빠르게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제논이 탄 거대한 전함의 격납고에서 우주선 한 대가 출격해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정예병을 회수했고, 곧이어 신체 치유 시설로 들어온 정예병의 신체는 줄기 세포로 이루어진 액체가 담긴 특수 치유 큐브 내부로 담겨졌다.
대부분이 파괴되었던 신체가 70%넘게 회복되자, 자가 치유가 가능해진 정예병은 줄기세포 치료를 그만두고 큐브에서 빠져나왔다. 언제 생사를 오갔냐는 듯 정예병의 몸은 빠르게 치유되었고, 몇 초 안 지나 완전히 재생을 완료했다.
정예병 주변엔 밝은 형광 빛으로 빛나는 치유 큐브를 제외하곤 모두 어두컴컴한 방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저 앞에는 공간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두 눈의 주인이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직접 가지러 온 제논임을 알아챈 정예병은 복종의 표시로 꿇어앉았다.
“임무를 수행하느라 수고했다. 네가 알아온 정보를 알아가도록 할 테니 가만히 있어라.”
말을 마친 제논은 정예병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뇌 속에 무언가가 요동치는 느낌에 정예병이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제논은 에큐메노폴리스의 좌표, 언어, 군사정보, 시간 개념 등등 갖가지 정보를 학습했다. 그가 정보 학습을 끝내자마자, 정예병은 살짝 경련을 일으키며 힘을 풀었다.
“경련은 금방 잦아들 테니 안심해라. 임무를 성공한 네게는 추후에 공에 알맞은 보상을 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도 좋다.”
제논은 정예병을 뒤로 하고 차원의 문을 열어 함교로 돌아갔다. 차원의 문 너머로 제논이 사라지는 장면을 본 정예병은 몸과 정신을 회복시킨 뒤 함교를 경호하는 자리로 돌아갔다.
함교로 들어간 제논은 잠시 생각에 휩싸이더니 정예병이 전달한 에큐메노폴리스들의 좌표위치에 차원의 문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루카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먼저 아파트에 귀가한 앤드류와 마티가 같이 길가에 앉아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 홀로그램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심심한 나머지 아파트에서 떠나는 주민이 내다버린 텔레비전에 전원을 연결한 뒤 전파를 잡고 방송을 보는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냐?”
루카스가 옆에 앉자, 앤드류랑 마티가 전원을 끄려다가 머뭇거리며 그만 두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을 주제로 며칠 째 특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방송을 본 루카스는 물론 앤드류랑 마티도 표정이 굳어 버렸다.
“작전 중에 명령을 거부하여 자격 박탈되는 대원들도 몇몇 발생...”
방송이 감정의 레드라인을 넘자마자, 루카스는 얼굴 근육을 씰룩이더니 텔레비전에 다가가 억센 손으로 본체를 휘어잡았다. 앤드류랑 마티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귀를 막자마자, 루카스는 텔레비전을 바닥에 몇 번이고 내려쳐 산산조각을 내 버렸다. 앤드류와 마티는 분노하는 루카스를 잠잠히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텔레비전 위에 파리가 앉아 있었어.”
루카스는 앤드류와 마티의 시선을 의식하며 말하더니 앤드류 옆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왜 자격 박탈이 돼야만 했는지 생각하며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타키온을 타고 출동하자고 했던 자신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앤드류랑 마티의 삶도 망쳤다는 사실이 더 큰 좌절로 다가왔다. 그 두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이다.
“속보..니..다.. 현재 상공의 공가..이.. 불안저..”
갑자기 산산조각 난 텔레비전에서 홀로그램이 반짝거리며 속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현재 에큐메노폴리스 상공의 우주공간이 불안정하다는 뉴스임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전문ㄱ...은..차원의 문..상공에 열린 것으로”
방송이 들림과 동시에, 루카스는 전기로 지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두통에 머리를 붙잡았다.
두통이 루카스만의 증상은 아니었는지 앤드류, 마티도 괴로워했고, 도로에서는 호버와 스피더들의 교통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속보를 전하던 아나운서들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방송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무시무시한 두통이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의 모든 거주자들에게 발생하며 사회를 마비시켰다.
“나는 너희가 침투자들의 군주라고 부르는, 제논이다.”
모든 거주자들의 머릿속에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원의 문 너머에서, 목소리의 주인인 제논은 에큐메노폴리스에 사는 모든 거주자들의 정신에 침투하여 그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의 문명을 나의 제국의 속국으로 흡수할 예정이다. 하루의 유예를 줄 테니, 나에게 대항해 싸울지 아니면 항복할지 직접 선택해라. 내일 너희들 문명계의 중앙 행성 상공에서 나타나겠다.”
제논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모든 거주자들의 두통은 잦아들었고, 순식간에 사회에는 공포가 몰아닥쳤다. 이게 무슨 말일지 전혀 모르는 어린이부터 일반인, 그리고 행성 수비대원들까지 모든 이들은 공포에 기인한 정적을 유지했다.
“뭐야, 군주? 그 제논이라는 자가 군주야? 그러면 지금 종반전을 벌이겠다는 거 아니야?”
“루카스 네가 아니었으면 행성 수비대는 물론 연합 정부도 1등급 침투자를 막지 못했어. 저들을 믿을 수 있을까?”
세 친구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자신과 친구들의 자격을 박탈한 행성 수비대를 원망했지만, 이번 상황만큼은 그들이 제논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으리라 하며 믿고 있었다.
“며칠 전의 그 대원들이 침투자를 정확히 죽이진 못했나 보군.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우리 에큐메노폴리스 연합군은 제논이 온다고 해도 그를 제거할 힘을 가지고 있으니,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해라. 그들이 혼란에 휩싸이면 될 일도 실패한다.”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은 신속히 단합하여 시민들의 공포심과 혼란을 잠재울 수단을 강구했고, 곧이어 방송을 시민들에게 송출하기로 결정 뒤 명령을 내렸다. 연합정부 측에서 송출된 방송들이 에큐메노폴리스 전국에 울렸다.

연합정부의 방송을 듣고도 불안해하는 시민들이 있었던 한편, 대부분의 시민들은 안심하고 오히려 침투자와의 전쟁을 종결한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침투자들의 수장인 제논을 죽이면 다른 문명 세력들이 에큐메노폴리스 문명을 두려워하며 높게 평가하는 효과도 있었다.
“각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은 뉴런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주요 지지대들을 움직일 준비를 마치십시오. 또한, 군 관계자들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지대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일반 건축물들이 붕괴할 수도 있으니까요. 연합정부 함대와 행성 수비대는 모두 전시 상황으로 돌입합니다.”
“제논이 예고한 등장 위치를 분석한 결과, 우리 연합 행성계의 중앙행성 (에큐메노폴리스 - 델타)의 상공에서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뉴런 프로젝트를 활성화시켜서 지지대들을 움직일 준비를 하십시오. 그리고 를 제논이 출현하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회전시킨 뒤에 연합 구성 행성들이 동시에 발포, 제논을 제거하면 전쟁의 승패는 갈립니다.”
“코어를 이용한 공격이 활성화 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니 그 시간을 공군들과 연합 함대가 벌어야 해요. 사실 모든 공군 전력이 연합하면 화력이 엄청날 테니까 코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제논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각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은 실시간으로 회의하며 작전을 진행했다. 그들의 작전과 명령내용을 전달받은 일곱 에큐메노폴리스의 모든 연합 함대와 행성 수비대들은 모든 인원이 전투대기에 나섰고, 공군 전력을 출격시킬 준비를 완료했다.
이 날 밤, 군사시설을 제외한 모든 에큐메노폴리스의 산업 시스템이 정지했고, 시민들은 지하구역에 곳곳에 마련된 거대한 방공시설 안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마비되어 꺼져버린 도시의 야경을 대신 채워줄 지경이었다.

12장 : 초연합의 전투
민간인의 신분이 된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도 급히 대피 행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록 나름 지하구역인 D구역에서 대피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수의 인파로 인해 대피 행렬은 다음 날, 전쟁 당일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애초에 방공 시설에 국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실이기도 했다. 루카스는 과거 행성 수비대원 이었던 자신이 대피를 다니는 현실에 속으로 죄책감을 느꼈지만,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도망가지도 않고 버티다가 전쟁으로 죽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었다.
“이미 늦었어! 우리는 모두 전쟁의 불길에 휘말려 죽을 거야!”
대피행렬 곳곳에서는 공포에 차서 소리 지르는 사람, 혹은 행렬에서 이탈해 다른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는 사람 등 불신과 공포에 따른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시민들이 생겨났다.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행성 수비대 본부 상황실

“제논이 예고한 전투 시작 시각이 2시간 남았습니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상황을 알리자, 행성 수비대 장관이 명령을 내렸다.
“현재 대기 중인 모든 공군전력을 출격시켜라.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타키온 전투기에 플레어를 장착시켜서 대량 살상 병기를 이용한 총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해야 돼.
그 이후의 작전은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대표가 직접 실행할 예정인데 실행을 위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우리의 연합공군 대대들이 전투하며 시간을 벌어야 한다.”
장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행성 수비대가 가진 모든 전투기가 이륙 준비를 하였다.
“자동 시스템으로 대형이 만들어질 테니 그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
타이탄 베이스의 전투항공 기지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기 조종이 가능한 사람에 비해서 전투기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연합공군 1대대가 제논에게 총공격을 한 뒤 바로 2대대로 교대하여 공격을 하는 방식으로 출정이 이루어졌다. 아밀레아는 1대대, 그리고 전투기 훈련을 받았기에 출정하게 된 덱스터는 2대대에 소속되어 전투에 참여했다.
아밀레아가 헬멧을 머리에 착용하자, 전투기의 해치가 닫히며 출격 시작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일제히 이륙하기 시작한 타이탄 베이스의 전투기들과 함선들은 곧이어 다른 기지로부터 날아온 공군들과 합세했고, 대기권을 빠져나와 우주 공간에서는 모든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에서 나온 행성 수비대 공군전력과 연합함대와 합류했다.
일곱 개의 행성도시에서 전투기가 쏟아져 나온 만큼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마치 구름을 이루는 물 입자처럼, 크고 작은 전투기들과 전함, 물자 지원함선들이 대형을 갖추어 전투를 기다렸다. 멀리서 보면 마치 행성들을 감싸는 뿌연 구름처럼 보일 정도로 연합 전투대대의 규모는 그 전례가 없었다.
연합 전투대대의 우주선들이 뿜어내는 불꽃은 일곱 대낮인 에큐메노폴리스들의 하늘을 무수한 은하수처럼 수놓았고, 대피 행렬 중에 있던 시민들은 이 거대한 경관을 보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우리 연합정부를 이길 수 있을까!”

연합대대의 웅장함에 승리를 자신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에큐메노폴리스의 대기를 울렸다.
제논 출현 1분 전

아밀레아가 탄 전투기와 모든 연합 대대 함선들에 카운트다운이 울렸다. 연합대대는 제논이 나타날 예정인 에큐메노폴리스 – 델타 상공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사방을 경계한 채 언제든지 공격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시간은 무섭게 줄어들어 어느새 제논 출현 30초 전까지 흘러갔다.
“병사들은 나서지 말고 내가 앞으로 내릴 명령을 집중하며 대기해라.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애꿎은 병사들 목숨만 버리게 되니, 내가 혼자 문명들을 상대하겠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제논이 에큐메노폴리스의 위치에 차원의 문을 생성하기 시작하자, 델타 상공의 우주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제논이 나타나려고 한다! 위치는 항성을 정각으로 보고 10시 방향이다!”
대대 전체에 울리는 안내방송을 들은 아밀레아가 해당 방향으로 전투기를 돌리자, 저 앞쪽 우주공간의 공간 불안정을 알리는 전투기의 비상 시스템이 윙윙거렸다. 자신으로부터 수만km 먼 공간에 출현하는 제논을 쉽게 보기 위해 아밀레아는 특수 조준 시스템을 가동해 마치 망원경을 보듯 전방 시야를 확대했고,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우주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극도의 긴장감에 팔, 다리 근육이 움찔거렸고, 호흡도 흔들렸다.

제논 출현 시각

차원의 문이 열렸고, 그 어두운 배후 뒤로부터 제논이 붉은 색 눈이 번뜩이며 차원의 문을 넘어보는 장면이 연합대대 공군들의 눈에 들어왔다. 여태껏 보고 경험한 침투자와는 계를 달리하는 압박감과 이질감에 아밀레아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났다. 근처에 있어서는 위험한 생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생체 경보였다.

“전투 개시. 일제히 공격하라. 적은 제논 하나뿐이다.”

연합 대대의 사령함에서 방송된 명령이 떨어지자, 수백억 대가 넘는 무지막지한 수를 자랑하는 연합대대가 거대한 줄을 지어 제논에게 돌격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표현하기 힘든 수준으로 무수한 원거리 집중포격이 제논을 강타했다. 무수한 폭격의 연속으로 인한 폭발의 불꽃이 거대하게 솟아올라 제논을 집어삼켰다.
연합대대의 대형은 제논을 중심으로 지름 수천 km 원 모양으로 퍼져 있었기에, 연합대대가 폭격을 사하는 장면은 마치 사람들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 모여 중심부에 무수한 양의 돌을 던지는 광경처럼 보였다. 얼마 안 가 위아래 방향에서도 연합함대의 원거리 공격이 몰아치기 시작해 제논은 연합대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체 한 가운데서 공격을 받아내는 상태가 되었다.
곧이어 출격한 타키온들이 재빨리 제논에게 근거리로 접근한 후 일제히 플레어를 발사하자, 수백 개의 플레어 미사일들이 제논에게 부딪히며 마치 하나의 폭발하는 별처럼 보이는, 거대한 구채의 화염을 만들어냈다. 눈부신 빛이 폭발 지점으로부터 수천 km 밖에 있는 연합 대대까지 몰아쳤고, 그 빛에 아밀레아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플레어는 아무래도 제논에게 치명타를 입히거나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무기인 듯 했으나, 어째서인지 제논은 계속해서 무반응의 태도를 유지했다.

한편, 각 에큐메노폴리스들의 대표 관저

“뉴런 프로젝트를 내가 실행시킬 테니, 만든 마스크를 내게 가져다주게.”
각 에큐메노폴리스들의 대표들은 작전대로 연합대대의 전투가 진행되는 사이 뉴런 프로젝트를 동시에 실행하기 시작했다. 대표들이 뇌파 증폭장치가 달린 마스크를 착용하자마자, 신호 부품들에 명령어가 전달되었고, 주요 지지대들이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도 부근의 주요 지지대들이 남반구와 북반구로 쪼개졌고, 에큐메노폴리스들의 형상이 마치 두 개의 꽃이 위아래로 마주보는 모양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진동에 건축물들이 파괴되고 대피중인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땅이 요동친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
대피중인 세 친구들도 에큐메노폴리스 형태 변화에 인한 충격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상태였다. 그들의 시야에는 마치 대륙들이 통째로 이동하듯이 거대한 에큐메노폴리스의 변화 장면이 들어오고 있었다. 주요 지지대가 요동치며 에큐메노폴리스의 구성체 도시들을 통째로 움직였고, 그 이동의 규모는 수천km 상공까지 이어졌다. 형태가 변화하며 세 친구들의 대피행렬이 위치한 지하구역인 D구역도 우주 공간을 볼 수 있는 지면으로 노출되었고, 곧이어 하늘에서 펼쳐지는 제논과 연합대대의 전투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제논이랑 싸우고 있다!”
“저게 그럼 최종 전투야?”
전투장면을 목격한 D구역의 사람들은 그 규모에 놀라 대피 행렬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한편, 뇌파 증폭 마스크를 착용한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이 한 번 더 명령을 내리자, 해당 명령어는 에큐메노폴리스 중심부에 위치한 로 전달되었다. 명령어를 받은 는 자전축처럼 생긴 지지대에 고정된 채 제논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덮개가 제거되며 거대한 함포처럼 생긴 본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코어 가동이 준비되면 메시지를 보내 주십시오. 모두 코어를 가동할 준비가 끝나면, 연합대대에게 철수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코어가 가동하는 현장에서 대피도 하지 않다가는 순식간에 불타버릴 테니까요.”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은 동시에 코어를 발사하기 위한 메시지를 신속하게 주고받았다. 코어 가동이 준비되어가는 사이, 연합대대는 제논을 상대로 전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제논이 있는 위치에서 의문스러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논에게 발사한 무기 들이 폭발한 화염이 소멸하지 않고 마치 축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어나고 있어요. 계속 공격만 하다가는 위험한 상황이 몰아닥칠 것 같습니다.”
다수의 전투기 조종사에게서 발송된 긴급한 메시지들이 잇따라 지휘함에 도착하자, 사령관은 모든 연합대대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지금 제논 주변 상황이 이상하다! 즉시 포격을 중지하고 거리를 벌려라!
사령관이 보낸 메시지가 모든 연합 함대 구성 함선들에게 도착한 순간, 포격을 흡수하며 불어난 화염 덩어리가 움찔거리면서 팽창하는가 싶더니 무수하게 많은 불덩이로 쪼개져 연합대대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중심부에는 아무 타격도 입지 않은 제논이 건재하게 서 있었다. 전투기들의 전력을 다해 한참 대규모 폭격을 가해도 죽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를 모은 제논의 모습에 공군들은 공포심을 느꼈다.
‘뭐야, 저런 걸 어떻게 이겨?!’
크게 놀란 아밀레아는 즉시 전투기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백억이 넘는 수를 자랑하는 연합대대의 모든 함선들이 제논이 역으로 발사한 불덩이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 불덩이의 흐름을 조종하는 듯이 움직이는 제논의 손이 퍼지자, 불덩이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연합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에게 쏜 총이 자신에게 되돌아온 꼴이었다. 여태껏 발사했던 모든 포격이 제논에 의해 일제히 사방에서 터지자, 에큐메노폴리스의 낮 하늘이 주황색 불꽃으로 가득 메워졌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제논의 반격을 보고,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시민들까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루카스도 상황을 지켜보다가 전투에 나갔을 수도 있는 아밀레아가 걱정되어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이대로는 순식간에 전멸한다! 후퇴하면서 2대대로 전투기 조종사들과 교대해라! 한꺼번에 교대하면 제논에게 빈틈을 주니 프로타의 전투대대 순으로 교대를 시작해야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 지휘함에서 명령이 내려지자, 아밀레아는 2대대와 교대하기 위해 사방에서 터져대는 불덩이들을 피해가며 타이탄 베이스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뭐야, 에큐메노폴리스들의 형태가 변화했어?”
타이탄 베이스로 복귀하며 에큐메노폴리스들의 모습을 본 아밀레아는 적잖이 놀랐다. 게다가 형태의 변화로 인해 기밀사항으로 부쳐지던 의 모습까지 드러나니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에큐메노폴리스의 모양이 변화했지만, 타이탄 베이스의 위치를 알려주는 항로 안내 시스템이 있었기에 아밀레아는 순조롭게 복귀 항로를 밟을 수 있었다.
아밀레아의 전투기가 대기권을 뚫고 들어와 타이탄 베이스로 향하는 길, 형태변화의 진동으로 인해 일부가 파괴된 에큐메노폴리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피해는 심각해서, 전체 시스템의 7분의 1정도는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파괴된 일부 건축물들이 만들어낸 먼지 구름이 몇몇 골목과 도로들을 메우고 있었다.
다소 난장판이 된 타이탄 베이스에 아밀레아가 착륙하자, 아밀레아는 몇 분 전부터 계속 걸려오는 루카스의 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밀레아는 우선 자신의 전투기를 덱스터랑 교대하며 전화를 받았다.
“루카스, 무슨 일이야? 아직 대피 못했어?”
아밀레아가 전화를 받자, 안부를 걱정하던 루카스는 안심한 듯 대답했다.
“저랑 친구들은 모두 괜찮아요. 제논은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건가요?”
루카스의 물음에 아밀레아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자, 세 친구들은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없군요.”
“...그래.”
루카스가 말하자 아밀레아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게 한참 총공격을 쏟아 붙던 연합대대가 한순간의 일격에 난장판이 된 걸 보면 누가 대답한다 해도 아밀레아처럼 답했을 것이다.
“물리적으론 이길 방도가 안 보이지만, 아직 정신적인 힘으로 제논을 이긴 적은 없잖아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뭐?”
루카스의 제안에 앤드류와 마티는 물론 아밀레아까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소리에 전투기에 올라타던 덱스터가 아밀레아를 뒤돌아보고는 대화내용을 잠자코 엿듣기 시작했다.
“루카스, 저번에 제논이 모든 시민들의 정신에 침투해서 메시지를 전송했던 거 알고 있는 거지? 정신적 힘으로 제논을 이기려고 했다간 네 뇌랑 신경이 바싹 튀겨질지도 몰라.”
아밀레아가 아서라는 식으로 루카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뉴런 프로젝트를 이용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루카스가 지난날 일자리 감독에게 들었던 말을 상기하며 대답했다.
“제가 이전에 가진 일자리에 해당 프로젝트 관계자인 지인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뉴런 프로젝트에 쓰이는 뇌파 증폭기와 마스크를 제작하는 일을 했어요.
만약에 뇌파 증폭기를 사용한다면 일반 두뇌로 내릴 수 있는 명령보다 수천 조 배 넘게 강력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걸 활용한 명령을 직접 제논의 정신에 주입해 봐요. 뇌파를 증폭시킨 뒤에 제논의 자아를 복종시켜 그가 물러나거나 스스로를 공격하게 만들 수도 있잖아요.”
루카스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아밀레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저번에 교관님이랑 저의 자아가 일체화 장치를 통해 만났던 일, 기억하실 겁니다. 킬링 로봇 격납고에 들어가서 일체화 마스크와 블록을 가져가서 증폭기를 설치한 뒤에, 제논과 일체화 상태가 되어서 그의 자아를 정복하는 거죠.”
“네가 말한 방법밖엔 답이 딱히 없지만, 그건 곤란해. 지금 공군 전력만 전투에 필요하기 때문에 킬링 로봇 격납고는 굳게 닫혀..”
“콰아아아....”
아밀레아가 대답을 마칠 때 쯤, 이야기를 듣던 덱스터가 전투기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아직 출격 시점이 아닐 텐데?’
이상한 점을 눈치 챈 아밀레아는 잠시 전화를 끊은 뒤 덱스터가 전투기를 타고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하며 예의주시했다.

덱스터가 돌발 행동을 시작하는 순간, 다른 전투기들은 제논과의 전투를 위해 일제히 이륙을 하고 있었다. 그 반면 덱스터의 전투기는 킬링 로봇 격납고로 이동해 격납고의 문을 양용포로 부숴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아밀레아가 기가 찬 순간, 덱스터가 보내온 문자가 아밀레아의 휴대폰에 도착했다.

이윽고 덱스터는 전투를 위해 2대대 이륙행렬에 합류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타이탄 베이스에 남은 관계자들과 타이탄 족속들은 폭동이 일어났다고 외쳐대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그들을 향해 아밀레아는 우선 제논과의 전투에 집중하라고 말하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킬링 로봇 격납고 문제는 덱스터가 해결 했어, 루카스. 이제 증폭기를 구하면 되는데, 할 수 있겠어?”
“네. 증폭기는 구해 오겠습니다. 제논에게 타고 갈 우주선이 필요해요. 혹시 우주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전투기는 아니지만 기지 내에 우주선들이 있으니까 걱정 마. 시간이 없어. 서둘러!”
아밀레아와의 연락이 끝난 루카스는 증폭기를 얻기 위해 재빨리 감독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감독관은 뉴런 프로젝트 관계자로서 행성 수비대 본부에 나와 있었다.
“감독관님, 혹시 뉴런 프로젝트 제작현장에 다시 갈 수 있나요? 뇌파 증폭기가 필요해요.”
“루카스, 제정신이냐? 대피하지 않으면 죽어! 게다가 증폭기는 왜 필요한데?”
“제논이 우리를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아무리 튼튼한 방공호라도 가루가 될 겁니다. 뉴런 프로젝트의 뇌파 증폭기를 이용하면 제논을 이길 수 있어요, 감독관님. 상황을 봐서 아실 겁니다. 물리적으론 그를 이길 수 없어요.”
“증폭기 함부로 훔치면 징역살이야. 내 인생을 말아먹을 셈이야?”
“제논한테 지면 징역살이고 성공이고 뭐고 다 끝날걸요. 부탁합니다.”
루카스의 끈질긴 애원에 감독관은 한참을 고뇌하더니 결국 루카스의 부탁을 수용했다.
“좋아, A-1구역 행성 수비대 본부 앞에 나와 있을 테니 빨리 나와야 해. 비록 비상용으로 만든 여분 증폭기지만, 잘릴 각오로 빼돌리는 거니까 해고되면 네 책임이다?”
감독관은 속삭이며 말한 뒤 연락을 후다닥 끊어 버렸다. 통화가 모두 끝나자마자, 세 친구들은 대피 행렬에서 벗어나 행성 수비대 본부까지 타고 갈 교통수단을 찾기 시작했고, 그들의 목표는 주인이 버리고 가버린 호버로 정해졌다.
“호버 조종할 줄 알아?”
“전투기에 비하면 쉽지.”
호버의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간 세 친구는 작동을 시작하더니 금세 행성 수비대 본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탈취한 호버가 달려가는 길목마다, 과속 경고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저기 나와 있다!”
과속비행을 한 덕분에, 세 친구들이 탈취한 호버는 중요한 연락을 하기 위해 광장에 나온 척을 하는, 루카스를 기다리는 감독관을 만날 수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경비원들이 삼엄한 분위기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루카스가 호버에서 내려 광장에 나온 감독관을 향해 걸어가자, 감독관은 증폭기를 훔친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윙크를 하며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뇌파 증폭기가 아니라 다른 물건인척 연기해! 안 그러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감독관의 윙크가 루카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자네에게 맡기는 물건일세, 루카스. 나는 뉴런 프로젝트 제작 관계자라 전시상황에 대피하지 못하니까, 혹시 죽을지도 모르니 자네에게 맡기는 거야. 고조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보이니 꼭 소중히 다루도록 하게.”
“꼭 그 소중함 마음속에 묻어두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기하며 뇌파 증폭기 전달을 성공했다. 증폭기는 자그마한 칩 같은 형태의 물건으로, 다행이 킬링 로봇 헬멧 안에 쉽게 이식이 가능한 구조였다. 루카스가 다시 호버에 올라타 타이탄 베이스로 향하기 시작하자, 감독관은 꼭 작전을 성공시키라는 메시지를 루카스에게 발송했다.

곧이어 감독관을 부르는 호출이 행성 수비대 본부에서 들려왔고, 감독관은 재빨리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세 친구들은 다시 과속운전으로 호버를 몰아 타이탄 베이스 전투항공 기지 앞까지 도달했다. 입구에서 검문 호버들이 막아섰으나, 곧이어 아밀레아가 스피더를 타고 다가와 검문 호버들을 향해 안전한 사람들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밀레아의 설득 끝에 검문 호버들은 슬금슬금 입구를 내주었다.
전투항공 기지에 도착한 세 친구들은 아밀레아가 마련해 놓은 탐사용 호버 캐리어를 볼 수 있었다. 최대 수십 명이 탈 수 있는 규모로 미루어 보아 루카스가 내부에서 일체화 작업을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은 남아돌았다.
세 친구들은 킬링 로봇의 일체화 작업에 쓰이는 마스크와 블록을 가져오기 위해 덱스터가 부숴놓은 격납고의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는 불꽃을 튀기며 나뒹구는 파편들이 널려 있었고, 관계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파편들을 치우고 있었다. 제논에게 진다면 파편을 치우든 던지든 모든 일이 허사인데, 그들은 이성을 넘어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자신들이 할 일을 완수하고 있었다.
‘덱스터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다니. 그 친구 많이 변했구나.’
루카스는 자신이 사용하던 킬링 로봇의 마스크와 일체화 블록을 꺼내면서 독백했다.
‘덱스터처럼 한 번의 권면을 듣고 이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앞으로 훌륭하게 성장해 나갈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이다.
루카스는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기고는 격납고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사이 관계자들은 각자 바삐 일하느라 루카스와 아밀레아, 나머지 친구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쏟지 못했다.
제논을 저지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자, 비로소 긴장감이 찾아온 루카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내가 먼저 시작한 짓이니까, 나는 무조건 가야 돼.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냐. 누군가 도와줘야 해.”
루카스는 어렵게 입을 땠지만 정확히 누군가를 콕 집어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제논이 무슨 선택을 하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작전이기에, 루카스 마저도 작전을 취소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나는 우주복을 입고 블록을 제논에게 가져다주는 역할을 할게. 안 그러면 일체화 작업을 할 수 없잖아.”
아밀레아가 나섰다.
“마스크에 뇌파 증폭기를 설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건 내가 도와줄게. 물론 너도 할 수 있지만 말이야, 루카스.”
“나는 돌발 상황에 우주선을 대피시키는 걸 도와줄게.”
앤드류와 마티도 잇따라 작전에 동참했다. 친구들이 나서기를 기대했으면서도 아니기를 바란 루카스는 잠시 고마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작전에 나서기를 바라는 사람들 모두 거절해봤자 어떻게든 따라붙을 표정이었다.
“고맙다, 모두들. 자, 그럼 출발하자. 제논이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을 건들지 못하게 해 보자고!”
세 친구들과 아밀레아 넷은 캐리어에 탑승하여 이륙을 시작했다. 캐리어가 고속으로 상공을 향해 질주하는 순간, 하늘의 이 끝에서 저 끝이 엄청난 규모의 전기 충격파로 휩싸였다. 제 2 대대와의 전투도중 제논이 한 번 더 반격한 모양이었다.
‘무서운 건 제논이 철저히 방어 위주의 행동만 했다는 거야. 게다가 약간의 반격을 할 때 마다 치명적인 병력손실이 일어나고 있어. 만약 제논이 진정으로 공격할 거라고 마음을 먹는다면 연합 함대는 전멸할거야.’
아밀레아는 머릿속에서 비관적인 생각을 했으나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사실 아밀레아 뿐만 아니라, 우주선 안에 탄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 또한 연합 대대가 제논을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제논의 위치를 알고 있는 아밀레아가 캐리어를 조종하며 대기를 돌파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앤드류와 마티는 서로 도와가며 뇌파 증폭기를 마스크에 부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앤드류는 작업을 주도했고, 마티는 그 옆에서 앤드류의 작업을 보조해 주었다.
“세상에, 저걸 봐봐.”
캐리어를 조종하던 아밀레아가 놀란 듯이 중얼거리자, 세 친구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조종석 창문 넘어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절망’이라는 단어만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에 어울리는 단어는 없었다. 제논이 일으켰던 거대한 전기폭풍의 영향인지, 수백억 대에 달하는 제 2 대대의 우주선의 70%가 마비된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외의 우주선들은 고장 난 엔진에서 불규칙적인 불꽃을 뿜거나 공격도 감행 못해보고 해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주 공간을 떠돌며 다친 파리 마냥 발버둥치는 제 2 연합대대의 모습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수한 수의 먼지처럼 초라했다.
제 2 대대가 절망 속에서 최후에 치닫고 있을 때, 그들의 전투기 내부에 안내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 2 대대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한 루카스 일행은 주변 전투기들이 황급히 후퇴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제논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밀레아가 캐리어를 제논에게 몰아갈 때 마다, 루카스의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13장 : 은하계의 왕
“뇌파 증폭기를 부착했어요. 이제 블록만 제논에게 넘겨주면 됩니다.”
앤드류가 아밀레아에게 말했다. 루카스 일행의 캐리어는 어느새 제논의 수십m 전방까지 다가왔으나, 공격할 의지가 없는 상대일 것이라고 판단한 제논은 공격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공격하다가 모든 힘을 소비하고 지쳐 쓰러질 때, 비로소 몰아쳐서 완벽한 절망감과 함께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 제논의 전략이었기에 제논은 자신이 나설 시점을 신중하게 기다렸다.
“좋아. 내가 우주복을 입고 블록을 제논에게 던질게. 그가 블록을 잡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사가 결정 나겠지만 한 번 믿어보자. 루카스, 그 뒤는 네게 맡길게.”
루카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대답하자, 아밀레아는 일체화 블록을 챙기고는 조종실의 밀폐 문을 닫으며 나가 함 내에 구비된 우주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우주복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맨 채 우주복의 전원을 켜자, 마치 비늘이 온 몸을 뒤덮듯 우주복이 아밀레아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우주복도 입었고, 몸을 고정시키는 안전줄도 착용했으니 밖으로 나간다.”
조종실의 사람들을 향해 무전을 날린 아밀레아가 캐리어의 해치를 열자, 순간적으로 공기가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며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밀레아가 안전한 것을 확인한 루카스는 뇌파 증폭기가 설치된 마스크를 착용하고 제논과 일체화되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렸다.
우주 공간에 나온 아밀레아는 제논을 향해 일체화 블록을 던졌다. 아밀레아의 손에서 빠져나온 일체화 블록은 제논의 코앞까지 천천히 날아갔다.
“저 기계 장치는 어떤 거지? 나한테 날아오고 있지만, 위험요소가 감지되지 않아.”
호기심을 느낀 제논이 날아오는 일체화 블록을 손으로 잡자, 루카스와 제논과의 정신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일체화 상태에 돌입하며 서로의 의식이 만나는 순간, 루카스는 증폭기를 이용하고도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코피를 쏟았다.
“뭐야, 루카스! 괜찮은 거야?”
“잠깐, 아직 위험한 상태는 아니야. 상황을 더 지켜보자.”
루카스의 상태를 본 마티가 당황하자, 아밀레아가 침착하게 진정시켰다. 루카스의 신체는 코피를 쏟고 있었지만, 일체화 과정의 돌입하는 루카스의 자아는 작전에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눈을 부릅뜬 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파동으로 이루어진 터널이 끝나자, 갑자기 배경이 깊은 어둠에 잠기더니 우주 공간이 빠르게 루카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일체화 상태 속에서, 루카스의 자아가 제논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수만 년 전 먼 우주, 제논의 유래가 되는 종족은 특유의 강인한 신체 능력을 활용해 다른 문명을 집어삼켜 왔다. 종족의 머릿수는 상당히 적었으나, 그들의 강력한 능력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제국의 정부는 다른 문명 연합의 공격과 백성들의 대규모 반정으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멸망이 코앞에 닥친 제논의 종족은 변두리 우주의 초신성 항성계로 쫓겨났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초신성 근처에서 살아가던 제논의 부모는 되는 자들은 자녀가 초신성의 힘을 흡수해 자신 종족을 재건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졌고, 초신성 폭발 순간 서로의 세포를 우주 공간에 꺼내 조합하며 제논을 출생시키기 시작했다.
초신성이 폭발하며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방사능이 방출했고, 이는 분열 중인 제논의 신체에 파고들어가 부모의 뜻대로 그가 은하계 문명에서 군림할 수 있게 만들어준 강인한 힘을 얻게 만들었다.
초신성 폭발로 인해 쫓겨나 살아가던 항성계마저 잃어버린 종족들은 근방의 문명에 뿔뿔이 흩어져 생활했고, 이는 강인한 힘을 지녔으나 어리고 순했던 제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논 가족이 쫓겨난 행성의 문명 거주자들은 과거에 지배받던 기억으로 인해 제논의 종족에게 있어선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극도로 혐오했다. 게다가 코, 입이 없어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을 나타낼 수 없는 제논 종족의 얼굴 구조는 상대 종족들이 동정심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핍박하며 혐오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
어느 날, 제논이 살아가는 행성을 포함한 인근 우주의 모든 문명들이 과거 자신들을 무력으로 지배하던 제논의 종족을 뿌리 뽑는 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제논의 가족들과 다른 종족 구성원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렀다. 강인한 신체를 가져 다른 생물이 죽일 수도, 스스로 죽을 수도 없었던 제논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박해를 당해오다 끝내 가족과 동족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마음속에 글씨를 새기기 시작했다.
‘모든 우주의 문명을 나의 편으로 만들고, 반대파는 아주 철저히 말살시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겠다. 내 아래에 다른 종족들이 철저히 무릎 꿇도록 하겠다.’
제논은 가족들을 죽인 종족들에게 극도로 분노했고, 단신의 힘으로 해당 행성의 모든 문명이 재건 불능이 될 때까지 파괴했다.
제논에 의해 행성 하나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 문명들은 제논에게 무조건 복종했고, 제논은 그들을 수하로 부리기 시작하며 외계 문명들을 탐사하라는 명령을 내려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시작했다.
제논은 이웃한 행성, 이웃한 항성계의 모든 문명들을 흡수하고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나, 아직 문명 흡수와 지배에 대한 강박적인 야망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그는 차원의 문을 생성하는 능력을 학습하여 더 먼 외계 우주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했고, 수백 년에 걸친 차원의 문을 이용한 탐사 실패 끝에 제논이 보낸 병사는 에큐메노폴리스 – 세타를 찾아냈다. 그렇게 제논의 군대와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의 수십 년 전쟁은 시작되어 현재 최종 전투까지 이어져 왔다.
제논의 과거가 모두 지나친 뒤, 루카스는 어느 우주 공간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곳은 발밑에 투명한 바닥이 있고 중력이 작용하는, 호흡이 가능한 신비한 우주공간이었다. 루카스는 이 공간이 제논의 의식 속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네가 나의 과거를 본 느낌인데. 재밌었나, 루카스?”
루카스의 배후 저 뒤편에서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이 없는 대신 머릿속에 바로 울려 퍼지는 제논의 목소리와 그 에너지에, 자아 상태의 루카스는 뇌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천천히 제논의 에너지가 적응되어가며, 고통의 강도는 낮아졌다.
루카스가 뒤를 돌아보자, 우주 공간 저편 바닥에 서서 은하계와 은하계, 행성과 행성을 기다란 끈으로 이으며 융합시키는 제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은하계와 그 안의 행성들을 정복하려는 제논의 의지를 표현하는 듯 했다.
루카스가 본격적으로 뇌파 증폭기를 활용하여 제논의 자아를 정복하려 들자, 투명한 바닥이 붕괴하기 시작하더니 우주를 융합해 나가던 제논을 향해 날아가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붕괴한 조각들은 마치 거대한 지각 판이 움직이듯 제논의 자아를 짓눌렀고, 우주 공간에 있던 별들의 화염이 날아와 제논을 집어삼켰다.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 뇌파 증폭기의 효과가 있다!’
루카스의 자아가 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논의 자아는 루카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공격들 속에서 아무 반격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배후의 우주를 융합하는 끈은 붕괴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제논의 의지가 건재함을 나타냈다.
순간, 공격을 진행하던 루카스의 자아는 움직임을 멈추더니 알 수 없는 힘에 짓눌려 주저앉았다. 이윽고 거대한 잔해에 파묻힌 제논의 자아는 강렬한 섬광이 쏟아내며 힘을 쓰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에너지의 파장을 일으키며 자신을 짓누르던 사물들을 승화시켜 버렸다.
‘증폭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데? 내가 밀릴 리 없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루카스가 다시 공격을 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되려 제논이 조작하는 파편들과 공간으로 인해 루카스 자신이 공격받는 처지가 되었다. 마치 3차원의 공간이 일그러지듯이, 사방의 벽과 공간이 뒤집어지고 움직이며 루카스를 이리저리 던져댔고, 그 사이사이로 수많은 파편들이 비집고 들어와 루카스의 자아를 할퀴어 댔다.
일방적으로 공격만 당하던 루카스의 자아는 바닥으로 떨어져 극도의 격통과 메스꺼움에 헛구역질을 했다. 만약 증폭기를 달지 않았다면 제논의 정신적 공격에 과부하가 걸려 신체의 뇌와 신경까지 모두 불타버렸을 것이다.
“이 정도 공격에도 신경이 타 죽지 않았다니. 제법 잘 버티는구나.”
제논의 자아는 쓰러져 있는 루카스의 자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머리를 잡고는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루카스의 눈에는 제논이 보여주는 풍경이 들어왔다. 그 풍경 속에서는 은하계와 그 속의 항성계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며 끈으로 묶인 하나의 세상으로 융합되고 있었다.
“모든 우주의 문명이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큰 제국을 이룬다. 단 하나의 질서 속에서 더 이상의 전쟁도, 학살도 없다. 얼마나 질서 정연하고 안전한 세상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우주의 이상향이다.”
제논의 자아가 루카스의 자아를 붙잡고 말을 하는 사이, 루카스의 자아는 제논의 에너지에 서서히 타들어가며 어떤 장면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의 기억, 일터에서 앤드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 행성 수비대에서 훈련받던 기억, 침투자와의 전투 기억, 그리고 제논을 만났던 기억까지. 루카스는 죽음이 닥쳐오기 직전 자신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되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기억의 흐름 속에서, 루카스의 자아는 하나의 기억과 접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1등급 침투자와의 전투 기억이었다.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해서 행성 수비대 대원들은 물론 루카스에게도 공포와 절망감을 심어 주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아간 침투자에 대한 기억이 루카스의 자아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그런 우주를 꿈꾸는 너는,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학살과 전쟁을 유발하고 있어, 제논.”
루카스의 자아가 체력의 한계치까지 힘을 주어 말하자, 루카스의 눈앞에서 우주를 융합시키던 끈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네가 보낸 병사들로 인해, 우리 문명의 시민들은 수십 년이 넘도록 공포에 떨었고, 최근 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 제논.”
루카스가 의식을 겨우 유지하며 말하자, 제논은 묘한 감정을 느끼며 루카스의 머리를 거칠게 놓아 버렸다.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 루카스의 자아는 타들어간 부위를 회복시키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건 내 뜻에 순응하지 못하고 저항한 자들이 초래한 일이다.”
제논의 자아는 루카스의 자아를 앞에 두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 가족들과 동족들을 멸살한 자들도 마찬가지야.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저항심을 가진 자들이란 이야기다. 그들의 싹이 될 위험 요소들은 철저히 제거하거나 내 수하로 만들어 더 이상 내 주변인들의 희생이...”
제논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 말을 멈추었다. ‘자신의 편에 있던 자들의 희생’은 제논이 결코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논은 우주의 모든 문명을 찾아내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파견한 ‘자신의 편인’ 침투자들은 희생을 해오지 않았는가. 차원의 문을 통한 탐사 수백 년의 역사동안, 수많은 침투자들이 전투 중에, 혹은 조난당해 목숨을 잃어왔다. 제논은 자신의 행위와 목적 간의 괴리감을 느끼며 혼란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제논의 의식 세계를 지탱하는 투명한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 지하에서 푸른색 눈빛을 한 제논의 자아가 솟아올랐다. 자신의 행위와 목적 사이에 모순점이 있다는 점을 자각한 자아가 수백 년 동안 정복의지를 가진 자아에 눌려 있다가 힘을 얻고는 뛰쳐나온 것이다.
“뭐야, 제논의 한쪽 눈이 푸르게 변했어!”
제논의 의식세계 속 상황의 변동은 현실의 신체 변화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제논의 눈 한쪽 색깔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화하자 앤드류와 마티, 아밀레아도 제논의 의식세계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에서 뛰어나온 푸른 눈 제논의 자아가 에너지를 발산하며 자신의 힘을 강화하자, 붉은 눈의 자아는 푸른 눈의 자아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잃어왔던 가족과 동족들을 생각해. 그들을 죽인 이들을 향한 복수심과 혐오를 불태워라. 그리고 그 감정을 이용해서 다른 종족들을 철저히 정복해라.”
붉은 눈 제논의 자아는 푸른 눈 자아의 목덜미를 움켜잡으며 명령하기 시작했다. 우주를 정복하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의지를 불태워온 붉은 눈 자아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기에, 그가 가하는 에너지의 공격에 푸른 눈 자아의 신체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상대 자아 제압에 성공한 붉은 눈 제논의 자아는 루카스의 자아까지 공격하기 시작하며 말했다.
“루카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수백 년 동안 꿈꿔온 정복을 막지 못한다.”
붉은빛 눈을 가진 자아는 한 손에 푸른빛 눈의 자아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루카스의 자아를 잡고 에너지를 주입하며 파괴시키기 시작했다. 양 손에 붙들린 두 명의 자아는 무력화되어갔고, 그 신체의 외벽은 점점 증발하며 내부의 에너지들이 빠져나갔다.
붉은빛 눈을 한 제논의 자아가 가하는 공격이 뇌파 증폭기를 사용하여 견딜만한 한도를 넘어서려고 하자, 루카스의 자아는 위기감을 느꼈다. 다른 손에 붙들린 푸른빛 눈을 한 제논의 자아를 이용하는 수밖에는 상황을 타파할 가능성이 없었다. 루카스는 푸른빛 눈을 한 제논의 자아를 강화시켜 유리한 상황을 유도함과 동시에 붉은 눈 제논의 자아를 완전히 소멸시켜서 제논의 의식 자체를 바꿔놓아야 했다.
“제논, 네가 수백 년 동안 찢어지는 아픔을 마음 한쪽에 묻어두고 살아온 거 이해해. 나도 그런 네 과거를 보고 마음이 미어졌어.”
“하지만, 네가 그런 과거를 겪었기에 누구보다도 마음 속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제논, 네가 하고 있는 정복 전쟁이 오히려 너와 같이 불행한 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돼.”
루카스가 푸른빛 눈을 가진 제논의 자아에게 위로와 일침이 섞인 말을 하자, 말을 들은 제논의 자아의 신체 붕괴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붕괴된 신체가 재생하기 시작하더니,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해내며 붉은 눈 제논의 자아가 가하는 포박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푸른 눈 자아가 불안정한 목소리로나마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루카스, 네가 한 말이 맞다.”
푸른 눈을 가진 제논의 자아는 상대 자아에게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발사했고, 이윽고 거대한 힘의 충돌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 바닥이 에너지의 흐름에 불타며 갈라졌고, 배경을 이루는 우주의 모습도 크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푸른 눈 제논의 자아가 내 말에 힘을 얻고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어. 이 때 상황을 확실히 뒤집어야 해.’
루카스의 자아도 붉은빛 눈을 가진 제논의 자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과 함께 무수한 파편들이 붉은빛 눈을 가진 제논의 자아를 집어 삼켰고, 그의 신체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빛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피부가 증발하며 근육이 소멸하는 과정에서, 붉은 눈 자아는 골격만이 남아 움직이며 저항하고 있었다.
“이럴 순 없다. 내가 수백 년을 품고 온 강한 신념을 한낱 너희들이 소멸시킬 자격이 없단 말이다!”
붉은 눈 제논의 자아가 소리를 지르며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의 의지에 의해 끈으로 융합되던 우주의 모습도 완전히 풀어 헤쳐지며 허물어졌고, 곧이어 제논의 정신 속 모든 공간과 바닥이 뒤틀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논의 의식 세계가 완전히 붕괴되며 새롭게 고쳐지는 순간이었다.
“너는 여기 있으면 에너지의 폭주로 인해 자아와 함께 두뇌가 붕괴되어 죽는다.”
푸른 눈 제논의 자아는 루카스에게 소리친 후, 루카스의 자아를 자신의 의식세계 바깥으로 쫓아내 버렸고, 그 직후 루카스와 제논과의 일체화 상태는 해제되었다. 제논이 손에 쥐고 있던 일체화 블록을 손에서 놓은 것이다. 코피를 닦으며 우주선 안에서 정신을 차린 루카스는 두 눈이 모두 푸른빛으로 바뀐 제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 대표 관저

“제논 앞에 캐리어 하나가 떠 있습니다. 만약 코어를 작동하면 제논과 같이 파괴될 텐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관계자 한 명이 뉴런 프로젝트의 마스크를 통해 코어를 작동할 준비를 하던 대표에게 묻자,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지금 온 상황을 놓치면 제논이 다른 위치로 이동해서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리는 셈이다. 게다가 제논 앞에 멈춰 있는 저 캐리어를 보면 연합함대에 보낸 메시지를 받지 못하거나 제논의 공격에 마비되어 대피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저들이 희생을 하는 대신 제논을 죽여야 한다.”
대표의 의견을 전해들은 관계자가 자리를 나가자, 대표는 다른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이어 모든 에큐메노폴리스 대표들의 관저로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몇 초 후, 각 관저에 보내진 메시지 창은 동시에 꺼져 버렸다.

일곱 개의 에큐메노폴리스에 설치된 모든 코어에서 밝은 빛이 생겨나더니, 엄청난 섬광을 뿜어내며 광선기둥이 솟아올랐다. 하나하나마다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거대한 광선기둥 일곱 개가 제논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 빛은 대체 뭐야?’
‘잠깐, 이건 못 피해!’
코어가 발사한 광선이 엄청난 속도로 제논과 루카스 일행이 탄 호버 캐리어 코앞까지 다가오자, 아밀레아와 세 친구들은 비로소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멀게 할 듯이 밝은 빛기둥이 우주선을 집어삼키는 찰나, 제논은 순식간에 자신의 세포 덩어리를 대량으로 복제해 우주선을 둘러싸 버렸다.
우주선이 제논의 세포로 둘러싸인 직후 캐리어 내부는 어두워졌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아서 사람이 감각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곧이어 코어가 발사한 광선 기둥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폭발했고, 귀를 찢어버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캐리어 내부는 새하얀 빛에 둘러싸였다.
제논에게 발사한 광선의 폭발은 에큐메노폴리스에서 지켜봐도 가히 거대했다. 마치 하늘 위에 태양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의 향연에 에큐메노폴리스 시민들과 연합정부 측은 드디어 승리를 확신하고 환호했다. 수천 조가 넘는 시민들의 환호성이 에큐메노폴리스들의 대기를 진동시켰다.
“드디어 끝났다! 제논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지?”
대표들도 흥분하며 전투현장을 관측하던 연합 함대 전략 부서 상황 보고를 요청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연합 함대 관계자의 감탄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갑자기 전략 부서에서 요란한 목소리가 오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공포심에 사로잡힌 요란한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대표는 마스크를 내려놓더니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시민들에게 알립니다. 우리는 비밀 병기 를 이용한 연합공격을 완수했지만, 제논을 죽이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여객용 우주선들을 전국 각지로 파견했으니, 최대한 많은 시민 분들은 탑승하셔서 다른 문명으로라도 대피해 주십시오.>
비상 방송이 일곱 에큐메노폴리스 전역에 송출되자, 시민들은 다시 공포 속에 빠지고 말았다. 황급히 여객 우주선이 도착하는 곳을 알아보고 그 곳으로 향하거나 호버를 타고 도망치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제논에게 항복하는 게 낫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각, 루카스 일행의 우주선

코어가 일으킨 폭발이 진정되자 루카스 일행의 호버 캐리어를 둘러싼 세포들이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제논의 손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루카스와 아밀레아, 앤드류, 마티는 조종석 창 너머로 제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은 상처 하나 없이 건재했다.
“루카스, 네가 나를 이겼다.”
제논은 루카스의 머릿속에 나지막이 말하고는 차원의 문을 열어 자신이 있던 은하계로 사라져 버렸다. 모든 상황이 끝나자 주변 우주는 전쟁이 있었냐는 듯이 정적에 휩싸였다.

상황의 반전에 에큐메노폴리스 전역의 분위기도 같이 반전되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전쟁의 종전으로 인해, 모든 에큐메노폴리스들은 환호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루카스가 제논을 돌려보내는 것에 성공하자, 앤드류는 기쁨에 겨워 루카스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와! 루카스 이 자식 해냈어!”
루카스 일행이 탄 캐리어의 조종석도 마찬가지로 환호에 휩싸였다. 우주 저편에서 마비된 전투기 안에 갇힌 덱스터도 그 광경을 보며 작게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루카스 일행은 기쁨을 뒤로 하고 에큐메노폴리스 – 프로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루카스의 눈에는 전투를 마치고 비로소 안심하는 에큐메노폴리스 문명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건물들의 외벽에는 라고 자축하는 내용의 방송들이 줄지어 방영 중이었고, 사방에서는 연합 대대 전투기들이 승리를 기념하는 비행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형태를 변화시켰던 에큐메노폴리스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고,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복구공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우주 공간에 조난당한 공군들을 구조하는 작업이 실시되었다.
한편 자신의 제국으로 돌아간 제논은 전쟁은 끝났고, 더 이상 외계 문명을 찾아 나서고 정복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전 국민에게 선포했다.
침투자와의 전쟁이 끝나 불가피하게 필요성이 줄어든 행성 수비대는 감축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행성 수비대에서 나온 사람들은 연합 함대나 다른 직업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았다.

며칠 뒤, D구역 에큐메노폴리스 보강공사 현장

공사현장 입구 근처에 생뚱맞은 소형 주거용 호버 한 대가 날아다니더니, 공사현장 근처 골목에 흙먼지를 날리며 착륙했다. 웬 공사현장 근처에 주거용 호버가 착륙하다니, 인부들이 궁금증을 가지면서 그 주변을 살짝 흘겨보고 지나가는 사이, 작업복을 챙겨 입은 루카스와 앤드류가 호버의 해치를 열며 나왔다. 아파트가 재개발되어 살 수 없게 된 시점에서, 행성 수비대에서 받아 모은 봉급에다가 대출액을 더해 주거용 호버를 급히 마련하는 것이 두 친구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야, 루카스. 우리한테 어떤 메시지가 도착했다?”
앤드류가 화색을 띈 얼굴로 루카스에게 달려왔는데, 그의 상기된 표정을 보니 메시지의 내용은 긍정적인 듯 했다.
“뭐? 우리? 그럼 나한테도 메시지가 온 거야?”
“어. 듣자하니 마티한테도 메시지가 왔다던데? 한 번 읽어 봐.”
루카스는 앤드류의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는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생각보다 장문이었다.

발신 :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정부

제논과의 전투가 끝난 직후, 제논이 사라지기 직전 그의 앞에 서 있다가 복귀한 의문의 우주선을 추적하는 작업을 시행한 결과, 그 내부에 전 행성 수비대 대원인 루카스 엔더슨, 앤드류 그레이, 아르케나르 마티 씨와 훈련 조교인 플로레스 아밀레아가 탑승했던 것으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정확한 사건조사를 위해 아밀레아 플로레스 조교를 소환한 뒤 주변 목격자들과 증인들을 모집해 정황을 짜 맞추었고, 결국 우주선에 탑승한 이들 덕에 제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이들의 공으로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은 다른 문명들로부터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받았고, 그들과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계 문명과 대규모로 교류하며 발전을 이룩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우리 연합정부 측은 그 공로를 인정하여 아밀레아 플로레스 훈련 조교를 승급 조치했으며, 세 사람 루카스 앤더슨, 앤드류 그레이, 아르케나르 마티를 다른 문명과의 교류를 안전하게 감독하는 연합 함대에 무조건 파견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숙식은 충분히 무료로 지급돼
며, 세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공로를 크게 사 개인 스피더와 호버까지 수여할 예정입니다.
만약 이 제안에 동의하신다면 1주일 내로 문자를 보내 주십시오.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메시지를 읽은 루카스는 일터로 나가보려는 앤드류를 불러 세웠다.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어? 당장 동의 답변을 보내야지!”
루카스의 말에 앤드류가 응답했다.
“벌써 동의 답변은 보냈는데? 마티도 재빨리 동의했데. 이제 너만 선택하면 돼.”
앤드류의 답변에 루카스는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에큐메노폴리스 연합정부를 향해 답변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연합함대 출정일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는 각자의 짐을 싼 뒤 연합함대가 출발하는 공군기지로 향했다. 호버 버스를 타고 공군기지 앞으로 향하는 길, 행성 수비대에 지원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얘들아, 여기 봐봐!”
앤드류가 무언가를 보고 루카스와 마티에게 소리쳤다. 앤드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공군기지에 건설되어 있는 함선 착륙시설 안으로 대원들을 싣고 갈 거대한 연합함대 함선들이 기지에 착륙하고 있었다. 각 함선들의 크기는 수백m에 달해 마치 커다란 빌딩들이 비행하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호버 버스에서 내린 세 친구들이 공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자, 수십 척에 달하는 수의 연합함대 함선들이 그 규모를 드러냈다. 이 거대한 함대의 일원으로서 출정한다는 흥분되는 마음에 루카스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이번 함대의 출정은 에큐메노폴리스 연합과 서로 갈등하며 성장을 방해해왔던 외부 세력들과 서로 화해하고, 교류를 통한 공동 발전과 다른 거주 행성으로의 영역 진출을 꾀하는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기에, 에큐메노폴리스 시민들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다.
함대의 출정을 지켜보기 위해 공군기지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이 수십만 명이 넘는 거대한 무리를 이루었다.
루카스와 앤드류, 마티는 탑승할 함선을 안내받고는 해당 함선 앞에 줄을 서 대기하자, 비로소 연합함대의 출정을 축하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내 방송이 공군기지 전체에 울려 퍼지자, 함선들의 거대한 해치가 열리면서 대원들이 탑승할 수 있는 입구가 생성되었다. 저번에 타키온을 탑승한 채 강제로 연합함대 함선 내부로 끌려왔을 때와는 다른, 연합함대 소속으로서 함선에 탑승하는 상황에 루카스는 함선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모든 연합함대 대원들이 함선 안으로 탑승하자, 각 함선들의 주 엔진들이 푸른 불을 내뿜으며 점화 단계에 들어갔다. 연합함대 출정이 임박하자 세 친구들은 물론 지켜보는 시민들의 심장도 덩달아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행성 수비대 본부 안 아밀레아의 사무실

훈련과 작전수행을 자신과 함께했던 세 친구들의 출정 소식에 아밀레아는 잠시 자투리 시간을 내고는 생방송으로 그 현장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출정 시간이 되어 마침내 함선들이 하늘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순간 놀란 아밀레아는 살짝 움찔거렸다.
‘축하한다, 얘들아. 너희는 연합함대 대원으로서 출정할, 그 이상의 자격이 있어.’
아밀레아는 생방송 안에서 이륙하는 우주선이 화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며 진심으로 세 친구들을 축하했다.
연합함대가 대기권을 뚫고 우주 공간에 나오자, 함선의 창 너머로 무수한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장대한 크기의 은하수가 우주공간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장면이 펼쳐졌다.
마치 루카스를 환영하기라도 하듯이 은하수를 이루는 수천억 개의 별들 사이 공간을 다양한 가스 성분들이 장식하며 형형색색의 빛깔을 내었다. 창밖에 펼쳐진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은하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루카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행성도시 에큐메노폴리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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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3 01:34:28
    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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