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4월 월장원

  • 작성자 김선재
  • 작성일 2018-05-10
  • 조회수 433

4월 한 달 모두 잘 보내셨나요? 아무래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중간고사 기간도 있어서 소설 쓰기가 부담스러운 한 달이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달에 올려주신 작품 수는 조금 적었는데요. 심사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하신 두 작품 외에 총 4작품을 올려주셨습니다. 모두 고등부 작품들이었는데 각각의 작품에 댓글을 달기는 했지만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호기심을 조금 자극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에요.^^)

--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Lyeok)

-단편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짧습니다. 단편보다 짧은 분량에 이야기를 제대로 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저도 최근에 자주 느끼고 있어요. 압축의 미란 함부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깨닫고 있는 중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에 대해 제가 느낀 걸 말씀드릴게요. 우선 플롯에 대한 이야기에요. 아무리 짧은 소설이라도 플롯은 중요합니다. 이 소설은 과거의 어떤 한 지점을 회상하고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는 시간은 과거일까요 아니면 현재일까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전개되고 있는데 그(과거나 현재의) 행동(손자가 발견한 이니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 나이가 나이임에도 사람은 이런 유치한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었다"는 문장이 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어서 주인공이 회상하고 있는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 없습니다)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해 분명 숨은 서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독자로서는 그저 화자인 '나'의 행동을 막연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분량이 짧다고 해도 분명히 드러내야 하는 갈등 구조(과거의 '그'와 '나', 혹은 현재의 나와 나의 행동)가 있어야 하는데 그 또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시제에 대한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 당신의 모습이 역광으로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것이 인류최초의 비행이었다. 지금도 믿어의심치 않는다. 당신은 하늘 높이 날아, 영겁처럼 긴-어쩌면 찰나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만끽했다. 나 역시 마치 꿈결 속에 있는 듯했다.
아직도 고향의 옛 집에 머무는 동안이면 창고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당신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내가 갈무리한 당신의 날개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두에 등장하는 이 부분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과 현재의 '나'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제는 모두 과거형이에요. 이런 경우 앞의 경우(과거를 회상하는 진술부분)은 "물들고 있었다. 비행이었다. 만끽했다. 듯했다"로 뒷부분의 시제는 "보낸다 곳이다. 그것이다"로 정리하면 한결 깔끔하고 자연스러워질 것 같네요.

--

양치 (지일영)

* " 그 쌉사름하면서도 철가루 비슷한 그 자전거 쇠가 녹슬었을때 비슷한 맛이난다." – "쌉싸름하면서도 철가루 비슷한, 마치 녹슨 쇠에 혀를 갖다 대었을 때와 비슷한 맛이 난다."

* 이어서 후편을 쓰실 때는 띄어쓰기, 비문 등에 대한 퇴고가 좀 필요해 보이네요.^^ " 하지만 아침을 안먹고 나가기엔 너무 배가고프고 후자는 나의 귀찮음을 못이기고 양치를 다시하느니 그냥 생명에 직결되는 의 식 주의 '식'을 포기하는 일이다." – "하지만 아침을 안 먹고 나가기엔 너무 배가 고프고 후자를 선택하기에는(후자가 아침을 먹지 않고 가는 것이고 전자가 밥을 먹고 다시 양치를 하는 것입니다만) 나는 너무 게으르다. 밥을 먹고 다시 양치를 하느니 차라리 거르는 게 낫다."

=> 간혹 글의 서두만 올려주시거나 전, 후편을 나눠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되도록이면 전편을 다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문장이나 띄어쓰기, 맞춤법은 몰라도 전편을 다 읽지 않고는 플롯이나 캐릭터등, 섣불리 조언을 드리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

멜서리 다시 한 번 (비행선)

감각적인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글의 서두 부분에서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안 읽어 보셨다면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종종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왜 소설적 공간을 지금으로부터 먼 일제시대로 정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배경이 꼭 그때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가 히카루나 멜서리나 화열의 만남과 배경과 갈등과 우정이 그런 공간과 상관 없이도 그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그 공간(일제시대라는)이 이 작품에서 그닥 생생하게 그려지지도 않고요. 물론 멜서리가 가진 배경이나 화열의 배경이 일제 시대의 그것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지금'으로 옮겨 와도 무관할 거 같거든요. 이 작품 속 공간은 그저 주인공들의 배경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 설정한 추상적인 공간으로 보여요.
다음으로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소설도 서사가 다소 약해 보입니다. 감각적인 문장들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그 감각이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거든요.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밑의 낭큼낭큼 님이 말씀하신대로 감각적인 이미지로 쓸 필요도 있지만 세 주인공의 관계와 갈등을 분명하게 그릴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왜 멜서리가 갑자기 도심 한 복판에서 춤을 추다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는지, 멜서리와 화열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발전한 건지, 그 둘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가 모호하게 그려져서 결말 부분의 멜서리의 자살이 그닥 설득력 있게 보이지 않네요. ㅠ

"네가 조금은 소년일 때. 당신은 약을 가끔 먹고 자주 아프다고 했습니다." – "당신이 소년이었을 때(조금은 소년이라는 표현은 어색합니다), 당신은 가끔 약을 먹고 자주 아프다고 했습니다" 처럼 호칭을 통일할 필요도 있고요.

--

부서지기 직전 (Mono)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M0no님의 글에 타자가 등장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여태 쓰지 않았던 의성어들도 보이네요. 삐빅이라든지 꼬르륵이라든지 하는. 의성어는 가능하면 묘사로 대신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문 완료를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라든지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연신 보냈다 라든지 와 같이. 절대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의성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어쩐지 그 상황을 너무 쉽게 넘겨 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거든요. 각설하고, 이 소설은 열등감에 휩싸인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그런데 그 열등감은 성적에 기인한 것인가요? 아니면 영민이라는 인물에 기인한 것인가요? 그 둘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 작품 내용으로 보건대 나(성민)도 서울대에 진학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나가 시골에 살고 있는 이유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보다 사교적이고 활발하여 쉽게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마는 영민에 대한 적개심이 그리 크게 드러나지도 않는 것 같고요.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귀뚜라미들의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귀뚜라미를 죽여 버린 것으로 그 갈등을 해소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주인공의 내면이 설득력 있게 그려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

 

저는 가끔 단편 소설이 여러 개의 톱니바퀴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단어를 쓰는 순간 그 단어는 분명 그 소설 속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역할을 맞게 된다는, 그래서 정확히 톱니와 톱니가 정확히 맞물려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에요. 그리고 시계의 톱니가 두 개든, 세 개든, 숫자판은 언제나 1부터 12까지인데 게다가 시간은 정확해야 맞아야 시계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죠. 소재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든, 그게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상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충분히 이해와 공감이 가능한, 충분한 개연성이 있고 재미있는(새로우면서도 납득가능한)이야기여야 한다는 게 관건 거죠. 소설 쓰기의 어려움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여러분이 올려주시는 소설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납득 가능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거예요. 우선 소설을 쓰기 전에 머릿 속으로 자신이 구상한 얘기들을 펼쳐 놓아 보세요. 인물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여 어떤 사건과 마주치고 거기서 어떤 갈등을 만들어 어떤 결말에 이를 건지. 쓰는 건 그 다음 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들이 힘들겠지만 조금씩 익숙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꾸준히 작품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그런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지난 달에도 그랬듯 비행선님의 <멜서리 다시 한 번> 작품을 두고 고민을 했어요. 댓글에서도 얘기했듯 비행선님의 작품은 감각적이기는 한데 아직 서사가 약해서 소설적 완결성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아쉽지만 이 번 달 장원은 다음 달로 넘기겠습니다. 비록 작품을 뽑지는 못했지만 다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5월에 뵙겠습니다.

 

 

추천 콘텐츠

8월 월장원, 그리고...

안녕하세요. 뜨겁던 여름이 저물어 가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더위로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벌써 아득하게 여겨집니다. 다들 여름 잘 보내주고 계신가요? 새 학기를 맞아 모두들 분주한 마음이실테죠. 저도 그래요.^^ 8월에는 14편의,  꽤 많은 작품들을 올려주셨어요. 올라온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각각 그 작품을 쓰는 마음들을 함께 읽었습니다. 소설은 시와 달리 물리적으로 꽤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장르라서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을 맺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 시간 동안 인물을 고민하고 사건을 고민하고 플롯과 문장을 신경써야 하는 일들을 잘도 하고 계신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달에 올려주신 여러 편의 작품들을 읽고 간단히 제가 느낀 걸 말씀드릴게요. 소설은 막연한 감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다,라는 문장을 썼다고 가정해 볼게요. 소설은 한 편의 작품을 통해 그 이상적인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세상인지, 그런 꿈을 꾸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해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상"적이라는 말은 분명 존재하는 단어이지만 동시에 모호하기 그지 없는 단어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세계는 다 다른 모습일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내(인물)"인 내가 꿈꾸는 구체적인 "이상"이 드러나야 하고 그 이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설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과 배경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에요. 그걸 잘 하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분명 같은 곳을 응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20대인 인물과 80대인 인물이 보는 그곳은(같은 상황은) 같으면서 전혀 다를 거니까요. 물론 학업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여러분들의 처지에서 이런 요구는 분명 어려운 요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길 바라는 건 그 때문이에요. 소설은 본질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라는 막연한 단어가 여러분 각각의 일상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개별적이고도 특별한 삶이 됩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언듯 엇비슷해보이면서도 개성적인 시선이 담기는데, 그건 여러분 개개인이 익명의 다수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하고 개성적인, 단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막연히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에 머물지 말길 바랍니다. 모든 작품에는 그 막연함을 걷어내고 추상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그려보는 시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 쓴 후에는 제각각 자라난 나뭇가지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과 같은, 퇴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글로 움직이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서 쉽게 써지는 글은 자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달에 올려주신 총 14편의 작품들은 제각각 고유한 개성들을 가진 작품들이었지만 위의 문제들을 조금씩 다 갖고 있는 작품

  • 김선재
  • 2018-09-03
7월 월장원

무더위에 다들 무사하신가요? ㅠ 여러분에게도 처음 겪는 더위겠지만 저에게도 이런 더위는 정말 처음이에요. 극지방도 이상고온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지구를 너무 괴롭혀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들게 하는 나날입니다. 그 반성 끝에 저는 요즘 빨대와 플라스틱 컵 안쓰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요. 그건 분명 번거로운 일이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정말 자연에게 큰 코 다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이번 달에는 총 네 분이 작품을 올려주셨어요. - 최이수안 <신기루>, 혜시태그 <돛대>, 빛낢 <구로동>, M0no <이름 없는 도시> 이번 달에는 다시 인물의 얘기를 해 볼까 해요. 소설에서 인물은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죠. 같은 이야기도 인물이 어떤 캐릭터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플롯을 얘기할 때 동화의 예를 많이 드는 편인데, 오늘은 동화의 예를 들어 인물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해요. 백설 공주는 누구나 다 아는 동화일 거예요. 그렇다면 그 백설공주는 어떤 캐릭터를 갖고 있을까요? 제 기억에 의하면 백설공주의 캐릭터는 예쁘고 마음씨가 곱다는 것 정도에요. 그러나 그건 캐릭터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해요. 백설공주라는 동화가 디즈니사에 의해 여러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고 있는 이유는 우선 플롯 때문이기도 하고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되는 이야기이다보니(백설공주) 플롯을 다시 만들기가 수월하고 캐릭터가 흐릿하니 캐릭터를 시대에 맞게 바꾸기도 쉽다는 거죠. 제가 최근에 본 백설공주(영화)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난을 남의 손에 의해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직접 맞서 싸우는 캐릭터였던 거 같아요.   우리에게 모두 각각의 이름이 주어지듯 캐릭터 또한 각각의 개성이 있어야 해요. 단순히 착하고 순수하다,거나 못되고 이기적이다, 정도의 캐릭터로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소설에서의 인물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욕망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꿈을 꾸고 같은 상황에서도 각각의 대처법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문제를 직면하지만 어떤 사람은 회피하거나 도망치기도 하죠. 그건 그 사람이 가진 캐릭터에 근거하는 거예요. 또한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것에 나를 비추어 보는 것이 독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닭고기를 안 먹어요. 먹으면 두드러기가 난다든지 호흡이 곤란해져서 못 먹는 건 아니고 그냥 안 먹는 쪽이죠. 어렸을 때 닭집 옆에 살았는데 그때 닭을 잡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고 어떤 장면들이 너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서 닭고기를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 게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이처럼 누군가의 캐릭터를 이루는 것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할 지라도 '기억(트라우마를 포함해서)'에 의한 경우가 많

  • 김선재
  • 2018-08-04
6월 월장원

한 달 동안 모두 잘 지내셨나요? 저는 종강과 더불어 사는 곳을 옮기느라 조금 바빴어요. 창밖의 풍경이 변하니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6월에는 전달에 비해 꽤 많은 분들이 작품을 올려주셨습니다. 몇 년 전에 쓴 작품을 올려주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 바쁜 와중에도 비교적 단편에 어울리는 긴 작품들을 써 주셨네요. 글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고생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소설은 정말이지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빈 커서가 깜박거리는 텅 빈 화면을 9~10면 씩 채운다는 건 저에게도 무척 힘겨운 일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소설가들을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열심히 먹고 가끔 맨손 체조도 하고, 그러니까 체력을 길러한다는 말입니다. ^^   이번 달에 올려주신 10편의 작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들 글쓰는 실력이나 글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10편의 소설 모두 제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장을 다루는 솜씨들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어요. 1년 전 제가 처음 글틴에 가입해서 읽던 소설들도 좋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소설답게 소설을 쓰고 계신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달 장원은 윤별님의 '플루토 카니발'과 여전사 캣츠걸님의 '세미콜론', 그리고 모로님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개' 이 세 작품을 놓고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6월의 장원은 모로님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개'로 선정했습니다.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은 인물입니다. 그 인물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냉정하게 인물을 바라보고 그 인물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묘사와 진술을 충실히 이어나가야 합니다. 윤별님의 작품은 작가의 '냉정'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사캣츠걸님의 작품은 이야기의 틀은 신선해서 무척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인물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각각의 댓글을 확인해 주시길. 모로님과 더불어 작품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7월이 되길 바라며 7월에 뵙겠습니다.      

  • 김선재
  • 2018-07-0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