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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백단

  • 작성자 꽁보리
  • 작성일 2017-01-20
  • 조회수 720

착각 백단

 

 민희는 힘겹게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전거를 탄 소년이 그녀가 탄 버스를 유유히 지나쳤다. 꽉 막힌 아침 도로는 버스가 나아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녀를 포함한 승객들의 불안한 눈길이 시계를 힐끔거렸다. 야속한 시계는 그들의 조급함에도 개의치 않고 시간이 다 흐르면 다음 숫자로 넘어갔다. 버스는 조금 간다 싶으면 멈춰 서고, 이젠 가겠지 싶으면 또 멈춰 섰다. 버스가 그렇게 멈출 때마다 사방이 한숨 소리로 가득 찼다. 지각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었다. 민희는 억울했다. 심지어 평소랑 달리 더 일찍 나온 날인데, 도로가 이토록 막힐 게 뭐람. 그녀의 시선이 몇 초마다 한 번씩 시계를 훑었다. 계속 시계를 보다가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서 민희는 시계 보기를 그만두고 눈을 내렸다.

 그 대신 문득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의자에 앉아 잠이 든 한 여자였다. 무릎 위에 올려진 크로스백이 고스란히 열린 채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저러다가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민희는 그녀를 깨울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깨워서 기분이 나쁘더라도 돈을 도둑맞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어쩌지? 그래, 깨우자. 아니, 깨우지 말까?’

 한참을 고민하는데, 어떤 손이 잠든 여자의 가방 속을 잘 매만지고는 지퍼를 잠가 주었다. 카키색 모자를 눌러 쓴 남자였다. 남자는 여자가 깨지 않도록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지. 틀림없어, 백프로야. 둘이 사랑하는 사이구나. 참 좋을 때다. 민희는 두 다정한 연인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 때, 그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틀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당황스러움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머,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부끄러웠겠다. 미안함과 민망함에 그녀는 시선을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새 시간은 더 흘러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시 그녀는 창밖을 응시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버스가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동안에도 민희는 남자가 자신을 끊임없이 몇 번이나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져 괜히 멋쩍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내릴 차례가 되었다. 다른 승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간신히 지각을 면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일찍 나와도 도착 시각이 이래서야. 일찍 나왔기 때문에 오늘 같은 교통 상황에도 지각을 면한 것이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낑낑거리며 교통 카드를 기기에 찍고 밀려 내리는데, 옆에서 아까 그 여자가 함께 떠밀려 내렸다. 애인과는 다른 정류장에서 내리나? 민희는 무심코 그 여자가 앉아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창가에 팔을 올리고 손바닥을 눈가에 댄, 고개 숙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워낙 잠깐 본데다가 모자도 쓰고 있지 않아 아까 그 남자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민희는 부지런히 걸어 회사 건물에 다다랐다. 건물 문을 열고 막 들어가려는데, 바로 뒤에 상사인 김 부장이 서 있었다. 민희는 문을 열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나 김 부장은 정색한 채로 말없이 들어갔다. 무안해진 민희는 땅만 보고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부장은 ‘아, 최민희 씨! 좋은 아침이야!’ 하며 유쾌하게 받아줬을 텐데, 오늘은 영 찬바람이 불었다. 앙다문 입술과 부리부리한 눈빛이 무서웠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민희는 퇴근 전까지 몸을 사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희의 생각보다 부장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다시 해 와요.”

 “별로군.”

 “이것도 못 하나?”

 “자네, 회사 다닌 지 얼마나 되었지?”

  사무실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찍소리 못한 채 김 부장의 눈치만 살폈다. 특히 말단 사원인 민희는 조용히 잔심부름하랴, 눈치 살피랴, 숨 막힐 지경이었다. 대체 왜 저러실까, 잠깐 생각하던 와중 민희의 구두코가 쿵 소리를 내며 책상을 박았다. 적막을 가르고 울려 퍼진 소리에 온 시선이 민희에게로 쏠렸다. 김 부장 역시 예의 그 사나운 눈빛을 쏘았다. 그리고 하필 민희는 그때 김 부장에게 커피를 배달하러 가는 길이었다. 물론 일에는 엄격하지만, 유쾌한 분위기의 김 부장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평소라면 부드럽게 넘어가거나 잠깐 핀잔을 주고 말 일에 역정을 냈다. 그중에서도 민희는 유달리 자신에게 더 부장이 까칠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따로 잘못한 것이 있나 곰곰이 따져보았지만, 도무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커피를 부장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부장이 커피가 맛없다며 자신에게 커피를 뿌릴 것만 같았다. 민희는 자기 자리에 앉고 나서도 커피가 부장의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아닌지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았다. 김 부장은 한 번 입술을 축이기만 하고 커피를 내려놓은 후 손도 대지 않았다. 민희는 울분에 차서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 민희는 옥상에 올라와 캔커피를 따고 편의점 빵 봉지를 열었다. 오늘은 그녀에게 하필 교통 체증이 심하고, 하필 부장이 까칠하고, 하필 돈을 제대로 안 챙겨 온 날이었다. 아침 내내 지각 걱정으로 힘이 빠졌는데, 김 부장의 히스테리로 남은 기운도 빠졌다. 고작 오전 시간 동안 그녀의 정신은 한없이 피폐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에게서 온 전화가 참 반가웠다. 속에 있는 것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어 즐거웠다. 옥상 문밖에 누가 있지는 않나 확인해 볼 여유도 없이 빽 내지르고 말았다.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할까? 원래 안 그랬는데, 우리 부장 좀 이상해. 오전에 그 부장 때문에 내가 거의 자리에 앉아 있질 못했어. 뭐만 하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히스테리가 장난이 아니라니까? 말단이 죄지. 김 부장 그 자식도 오늘의 자기 같은 상사한테 당해 봐야 하는데. 그래야 지금 자기 히스테리가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알 걸?”

 민희는 씨근거렸다. 그 때, 뒤에서 끼익하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민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문 너머에는 지금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서 있었다. 마주칠 것으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기도 했다. 점심시간 좀 전에 거래처와의 식사 약속으로 먼저 나갔을 텐데, 왜 여기 있지? 민희는 친구에게 말도 없이 통화를 종료시켜 버렸다.

 김 부장의 얼굴은 오전 내내 봐왔던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날카롭게 그녀를 쏘아보는 듯한 눈에 민희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쏘아보는 강도가 왠지 오전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었네. 나 어떡해. 들었나 봐. 들은 게 틀림없어.

 “부장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민희는 고개를 숙였다. 김 부장은 묵묵히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날 선 눈빛은 여전했다. 정적이 맴돌았다. 민희는 미칠 지경이었다. 말을 안 하자니 못 견디겠고, 말을 하자니 오히려 침묵이 나을 것도 같았다. 인사를 하고 재빨리 자리를 피할 타이밍은 경악하는 동안 놓쳐버린 지 오래였다.

 부장이 담배를 피우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민희는 고개를 들었다. 잔뜩 굳은 김 부장의 옆얼굴과 다시금 마주했다. 김 부장은 다 피운 꽁초를 구석진 아래쪽 벽에다 지졌다. 이미 여러 번 담뱃불로 지져진 벽에는 새삼 새로운 흔적이 남진 않았다. 그 폼이 제법 익숙해 보였기에 청소부가 누가 이랬냐면서 짜증 내던 담배 자국의 주인공이 김 부장이었구나. 민희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담배 냄새를 오래 맡았더니 코가 매웠다. 민희는 무심코 코를 문질렀다.

 “최민희 씨.”

 민희는 화들짝 놀라 자세를 경직시켰다. 갑작스러운 부장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다급했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김 부장은 당황스러워했다. 초조함도 느껴졌다. 김 부장은 그녀를 불러 놓고 말이 없었다. 고민하는 듯했다. 민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추측했다.

 ‘아, 혹시 벽에 담배 지지는 걸 모른 척해달라는 건가?’

 이거구나! 습관적으로 담배를 지지다가 나 때문에 부장님이 당황하신 거구나. 그래, 직접 말하기는 좀 그러실 테니까 알아서 모른 척하는 게 센스 있는 부하 직원이지. 이런 걸로 점수를 따야 그나마 마음이 좀 풀어지실 거야. 민희는 은은하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그러고는 살짝 목례한 뒤 바로 옥상을 빠져나왔다. 민희는 시름을 놓으며 앞으로 뒷담은 절대 회사에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눈치 빠른 대처에 뿌듯해졌다. 사회 생활하면서 늘은 건 눈치밖에 없다니까. 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총총총 내려갔다. 청천벽력 같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김 부장은 미처 보지 못한 채였다.

 옥상에서의 일로 오늘의 불운이 좀 끊겼나 싶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허황된 기대였다. 여전히 김 부장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김 부장이 가끔씩 그녀를 지속적으로 훔쳐보았다. 역시 그녀 자신의 센스 있는 대처와는 별개로, 몰래 한 욕이 덜미를 잡힌 모양이었다. 민희는 모르는 척 일에 집중했다. 얼마 후, 이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민희 씨, 날도 덥고 일도 힘든데 편의점에서 직원들 마실 시원한 것 좀 사와 줄래요?”

 이 팀장은 ‘일도 힘든데’ 부분에서 김 부장을 슬쩍 보았다. 민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즉시 답답한 사무실을 빠져나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옆에 섰다. 김 부장이었다. 민희는 김 부장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열린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두 사람만 남기고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민희는 고개를 정면에 고정한 채 눈동자만 부지런히 굴려 김 부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층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민희는 의아했다. 게다가 여기는 아무 가게나 회사도 없는 빈 층인데. 문이 열리고 웬 젊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민희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민희를 보자마자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민희는 어리둥절했지만 김 부장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넘어갔다. 엘리베이터는 얕은 기계 소리를 내며 내려갔다.

  덜컥. 갑자기 발생한 이질적인 소음이 정적을 갈랐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도 사라지고, 움직이지도 없었다. 민희는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다잡고 관리실 호출 버튼을 눌러 상황을 설명했다.

 “곧 가서 열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관리인의 한 마디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 민희는 다시 부장을 슬쩍 살폈다. 그런데 부장의 얼굴색이 누런 똥빛을 띠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나마 누그러진 줄 알았던 부장의 심기가 다시금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장이 옥상에서의 일을 트집 잡는다면……. 민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금 부장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대놓고 흘끔거리면 부장이 눈치 챌까 두려워 부장을 훔쳐보는 세 번 중 한 번 정도는 부장 뒤의 젊은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와 여러 번 눈이 마주쳤다.

 ‘분명 나를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아니면 혹시 내가 자기한테 관심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왠지 초면인 그 남자가 낯익었지만, 민희에게는 지금 기억을 더듬을 여유가 없었다. 누렇게 질린 부장의 얼굴만 신경 쓰기에도 바빴다. 미치겠네, 미치겠어! 입고 있는 하얀 셔츠의 소매를 매만지며 눈동자만 부지런히 놀렸다.

*

 ‘젠장, 저 여자는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혹시 나 알아본 거 아냐?’

 소매치기는 배낭에 넣어 놓은 카키색 모자와 아침에 입었던 옷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얀 셔츠에 하나로 묶은 머리, 안경. 아침에 버스에서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가 확실했다.

 ‘저 여자를 만나서 오늘 하루가 꼬인 게 분명해.’

 소매치기는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겨우 삼켰다. 아침의 혼잡한 버스 안은 그에게 항상 알짜배기 사냥터였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이리 눌리고 저리 치여서 누가 뭘 건드리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오늘은 가방이 열린 채로 잠든 여자를 발견했다. 기척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쳐다봐도 손만 쓱 빼면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최고의 표적이었다. 버스에 사람들이 우글거리니 버스가 쏠려서 부딪혔다고 생각하고 말 테니까. 그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슬슬 여자의 옆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닫힌 눈꺼풀을 살피며 소매치기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일은 순조로웠다. 소매치기는 두둑한 지폐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손이 닿지 않은 것처럼 가방을 매만져 뒷정리도 깔끔하게 했다. 수익도 나쁘지 않아 소매치기는 입꼬리가 귀에 걸리려는 걸 간신히 참고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사람들 틈 사이로 그를 빤히 쳐다보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셔츠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고, 안경을 쓴 여자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소매치기는 생각했다. 젠장, 완벽한 줄 알았는데. 혹시 봤나? 본 거 아냐? 아씨, 본 것 같은데. 얼굴 외워 둔 거 아냐? 이번에 또 걸리면 얄짤없는데.

 여자는 고개를 돌렸지만, 소매치기는 그녀를 몇 번이나 힐끔거렸다.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옷에 벅벅 문질렀다. 도망가려니 버스는 속 터지게 느렸다. 그는 불안함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맹렬히 굴리던 와중,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그의 표적이었던 잠든 여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가방을 메고 버스에서 부랴부랴 내렸다. 지갑을 열지 않고 카드를 찍었으니, 이 버스가 가고 나서야 돈이 사라진 사실을 알 것이었다. 안경 쓴 여자한테 들킨 것만 아니면 완벽한 범행이었다. 소매치기는 돈을 훔친 그 여자의 자리에 재빨리 앉아 겉옷과 모자를 벗고 고개를 한껏 숙였다. 안경 쓴 여자가 얼굴을 본 시간은 아주 잠깐이니 이대로 도망친다면 안전했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삑 소리가 그치고, 버스는 전보다는 한결 빠른 속도로 다음 정거장을 향해 달려갔다. 소매치기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쾌감은 잠시였다. 훔친 돈으로 피씨방에서 대여섯 시간 보내고 나온 이후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내 허탕만 치다가 겨우 지나가던 행인한테서 두툼한 지갑 하나를 낚아챘다. 그런데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직 육상 선수를 건드렸나, 소매치기는 죽기 살기로 뜀박질을 했다. 건물 사이를 능숙하게 요리조리 지나가며 행인을 간신히 따돌린 소매치기는 가까운 건물로 들어가 비상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갔다. 뒤늦게 쫓아온 행인이 좌절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계단의 창문 너머로 보면서 지갑을 열었다. 소매치기는 튀어 올라오는 욕설을 애써 막지 않았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게, 그는 하필이면 쿠폰족 짠돌이를 건드린 것이었다. 돈도 거의 없으면서 뭐 하러 쫓아왔대. 소매치기는 씩씩거리며 천 원짜리 지폐 두어 장만 빼고 쿠폰들만 남은 지갑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달리기만 실컷 했네.

 소매치기는 투덜거리며 계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슬슬 배도 고파 왔다. 아침 버스 이후로 내내 허탕만 치다가 미친 듯이 뜀박질해서 얻은 게 몇 천 원뿐이라 짜증이 났다. 버스에 앉아 있던 여자의 지갑 안에서도 만 원 지폐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었다. 소매치기는 그런 자잘한 수익 말고 좀 두둑한 지갑을 원했다. 얼마 벌지도 못했는데 심신의 스트레스를 많이 얻었으니, 좀 쉽고 짭짤한 표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에 돈은 많으면서 지갑 관리는 허술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좋을 텐데.

 그 때, 소매치기 머리 위쪽에서 굉음이 났다. 비상구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였다. 위쪽에서 험악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왔다. 고딩 때 학주같이 생겼다며 속으로 빈정거리던 소매치기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움찔했다. 정장을 입은 채 땀을 흘리던 중년 남자는 소매치기가 앉아 있는 계단 근처에서 발걸음을 슬며시 늦췄다. 소매치기의 긴장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뭐지, 날 아나? 나한테 옛날에 당했던 놈인가? 소매치기의 머릿속은 점쳐 볼 수 있는 온갖 가능성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중년 남자는 소매치기를 잠시 보고는 바로 지나쳐서 걸음을 다시 빨리했다.

 ‘에이, 뭐야. 괜히 쫄았네.’

 소매치기는 김샌 표정으로 중년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 순간, 소매치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중년 남자의 부푼 주머니 속이었다. 헐겁고 큰 주머니 속에 제대로 접히지 않은 지갑. 그 안에는 두둑한 녹색 지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소매치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홀린 듯 일어났다. 그는 옆에 벗어 놓았던 카키색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죽인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는 한 층을 더 내려가더니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빈 층이었다. 허름한 교회가 있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소매치기는 중년 남자의 뒤를 따르면서도 그의 표정이 계속 떠올랐다. 소매치기의 느낌에는 그가 단순히 노기를 띤 게 아니고, 누군가를 정말 잡아먹을 것 같았다. 두려움이 소매치기를 엄습했지만 이미 발견해버린 먹음직스러운 표적은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중년 남자는 빈 층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매치기는 태연하게 그의 뒤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열었다. 중년 남자는 양변기 칸을 열다 말고 멈칫했다. 그러는 것도 잠시, 그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소매치기를 응시했다. 소매치기는 손을 비누로 문지르다 말고 돌연 긴장했다. 중년 남자는 형형한 눈으로 소매치기를 빤히 보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소매치기의 심장은 콩알만 해져서 펄떡거렸다. 그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따라 나갈까?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랫동안 얼굴을 노출시켰다. 이러다가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험성이 높았다. 수도꼭지를 잠그며 소매치기는 아쉬움에 몸부림쳤다. 차라리 아예 보지도 못했으면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소매치기의 눈앞에 녹색 지폐 더미가 어른거렸다.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바깥으로 나갔을 때 중년 남자는 그 층 어디에도 없었다. 소매치기는 혹시라도 비상계단을 이용했다가 그 남자를 다시 마주칠까 봐 엘리베이터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곤 버튼을 눌렀다. 못 먹는 떡과의 조우는 사양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타자마자 소리 없이 탄식했다. 엘리베이터에는 두 사람이 이미 타고 있었고, 하필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두 사람이었다. 특히 여자 쪽은 더 위험했다. 소매치기는 엘리베이터 한 쪽 벽에 기대어 선 중년 남자 뒤쪽으로 갔다. 무심코 중년 남자의 오른쪽 주머니에 시선을 준 순간, 소매치기는 손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전에 비상계단에서 자신이 봤던 것보다 더 손대기 쉬운 모양으로 주머니가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갑이 주머니 위로 삐죽 튀어나와 그를 향해 손짓했다. 나를 데려가. 나를 데려가. 소매치기의 손은 한순간에 지갑을 낚아 채 자신의 주머니 깊숙이 박아 넣었다.

 제 주머니 속에서 지갑을 꽉 쥐고 있는 소매치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중년 남자는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굳은 채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이런 상태라면 순식간에 슬쩍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나가기만 하면 잡힐 위험도 없었다. 중년 남자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던 아까라면 모를까, 지금은 의심하지도 못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기 지갑을 슬쩍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까.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하얀 셔츠를 입고 머리를 묶고 안경을 쓴, 아침에 본 여자. 소매치기는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힐끔거렸다.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날 기억하나? 아니면 방금 봤나?

 ‘내 몸에 가려져서 범행 순간을 보는 건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언제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소매치기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여자가 한눈에 아침 버스 안에서의 자신을 기억해 내고 중년 남자 옆을 지나치는 순간을 예의 주시했을 상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매치기는 지금까지의 어떤 범행보다도 후회가 치밀었다. 소매치기는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만 하면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뛰쳐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몸을 좀 사리고 있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하루에 두 번 마주쳤어도 마주친 시간도 짧고 옷차림도 매번 다르니, 여자가 신고하려 해도 제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벌벌 떨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는데, 갑자기 덜컹 소리가 나면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소매치기가 위안으로 삼던 모든 가설들이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여자는 계속해서 소매치기를 힐끔거렸고 그는 공황 상태였다. 지갑을 도로 남자의 주머니에 집어넣을까 하는 미친 생각도 들었다. 소매치기는 그의 소매치기 인생 최고의 고비를 만난 참이었다.

*

  김 부장은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아 엘리베이터 난간에 몸을 기댔다. 김 부장은 애써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고통으로 가득 찼던 오늘 하루를 떠올려 보기로 했다. 아침 잠결에 들었던 아내 목소리부터 떠올랐다.

 “여보, 일어나! 회사 늦겠어!”

 아내가 깨워서 일어난 김 부장은 일어나자마자 생각했다.

 ‘배 아프다.’

 하지만 그에게는 변기통을 붙잡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급히 일어나 아침 식사는 거부한 채 출근길에 나섰다. 차를 운전하는 와중에도 가죽 시트와 마찰하는 엉덩이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침 식사를 걸렀더니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긴 김 부장은 공원 근처에 잠시 차를 댔다. 그는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았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쾌적한 공기 속으로 고약한 공기를 부욱, 부욱 뿜어냈다. 걸으면서 ‘들어가라, 들어가라.’하고 속으로 빌었더니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김 부장은 다시 차를 타고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인사를 하는 것 같았지만 김 부장의 눈에는 오직 화장실만이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가자 남자 직원들이 손을 씻으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밝게 인사했다. 김 부장은 흠칫했다. 김 부장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양변기 칸에 들어가 똥 냄새를 풍길 수 없었다. 대충 손만 헹구고는 나왔다.

 김 부장은 스스로도 오전 내내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1초가 1시간 같았고, 시계만 수십, 수백 번을 확인했다. 심지어 오늘은 한식당에서 거래처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뭐라도 집어넣으면 터질 것 같아서 아무것도 먹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반찬을 몇 점 집어먹었다. 그런데 무심코 입에 넣은 것이 평소에 좋아하던 고구마 맛탕이었다. 김 부장이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멈칫하자, 거래처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구마를 꼭꼭 씹는 수밖에 없었다. 다량의 식물성 섬유를 함유하여 방귀를 뀌게 하는 고구마를. 왠지 아까보다 아랫배가 더 무거워진 것도 같았다. 거래처 사람들 앞에서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민망함과 자존심도 그 이유였지만, 족히 3~40분은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회사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문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거래처와의 점심 약속을 예정보다 빨리 끝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니 아직 점심시간이었다. 김 부장은 옥상에서 담배를 피며 방귀라도 시원하게 뀌어야겠다는 생각에 계단을 올라갔다. 식사 내내 모아둔 방귀가 공기 중으로 고개를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아침에 공원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던 걸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옥상에 도착한 이후에 해결해야 했다. 옥상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신경은 오로지 배와 엉덩이에만 집중되어 있어 소리가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문을 열었더니 부하 직원인 최민희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를 물면 알아서 나갈 줄 알았는데 최민희는 멀뚱히 서 있었다. 배에 한껏 힘주고 담배를 빨았더니 금방 길이가 짧아졌다. 회사에서 흡연자들의 암묵적 재떨이로 사용되는 벽 부분에 꽁초를 비볐다. 최민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너무한 것 같아 참았다. 젊은 사람이 센스도 없고 눈치도 지지리 없어.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지. 김 부장은 새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그 때였다.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배에 준 힘이 약해지고, 괄약근이 벌렁거리다가, 소리 없이 공기 중으로 독한 가스가 퍼진 것은. 여전히 대장 밑바닥까지 변이 고여 아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스가 조금 빠져나가 배는 한결 가벼워지고야 말았다. 그런데 최민희가 슬쩍 얼굴을 굳히며 코를 매만지는 게 아닌가. 그녀는 맡아버린 듯했다.

 그의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김 부장은 당황하여 헛기침을 하고 그녀를 일단 불렀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머리가 쪼개질 것 같던 차에 그녀의 얼굴이 미미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은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김 부장은 경쾌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심지어 최민희, 눈치 없고 입이 방정이라 더욱 골치 아픈 부하였다. 하늘이 온통 노래졌다.

 점심시간 이후 최민희가 다른 직원들과 웃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가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조용히 일만 했다.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은 한시름 놓았지만, 배는 여전히 무거웠다.

 오후가 되자, 김 부장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때 김 부장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떠오른 장소는 같은 건물의 비어 있는 층이었다. 가게나 회사도 없어서 화장실을 오래 써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김 부장은 다른 사람들이 최대한 관심 가지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 층을 향해 가는 동안 다행히도 회사 사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층까지 가는 동안 계단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발견해 잠시 멈칫했지만, 처음 보는 청년이었다. 그는 안심하고 청년을 지나쳐 그 층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마음 편히 있을 생각을 하니 괄약근이 급한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얼굴이 더 딱딱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화장실에 도착해서 양변기 칸을 열었는데,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화장실이다 보니 변기 커버에 오물이 묻어 있었고, 악취도 심했다. 결정적으로 휴지가 없었다. 김 부장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세면대에서 물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 보았더니 비상계단에서 본 젊은 남자가 손을 씻고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그 청년에게 다가가 휴지가 있냐고 물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휴지가 있어도 저런 화장실에서는 도저히 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에 있어서 그런 생각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휴지 없이는 어쩔 수 없었고, 회사에 다시 가서 휴지를 가져오는 행동은 너무 눈에 띄었다. 게다가 손을 씻는 저 청년이 우리 회사 사람의 지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집 화장실이 그리웠다.

 아, 집 화장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김 부장은 어리석었던 제 자신을 구박했다. 잠깐 급한 일이 있다고 하고 집에 다녀오면 되지. 병가를 내는 직원도 있는데. 김 부장은 당장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김 부장은 당장 회사로 돌아가 대충 책상을 정리하고 잠시 급한 용무를 해결하겠다고 이 팀장에게 알렸다. 좀 미안하긴 했지만, 틀림없이 급한 용무는 맞았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김 부장은 최민희가 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이 팀장이 카드를 건네는 걸 보니 편의점에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오늘 급할 때마다 엮이는구나.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비어 있는 층에서 멈추고 아까 본 청년이 탔다. 마음 편하게 집 화장실을 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 있는 두 사람은 신경도 안 쓰였다.

 그런데, 덜컥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섰다. 내려가지 않았다. 담당자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잠시가 언제까지야! 김 부장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싸한 기분을 느꼈다. 들뜬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니까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앉기라도 하면 물리적으로 누를 수라도 있는데, 선 채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버려서 매우 곤란했다. 화장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 들떴더니 좀처럼 주체되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인데다가, 하필 최민희가 함께 타 있었다. 방귀조차도 해결할 수 없었다. 김 부장은 온 신경과 힘을 엉덩이에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 빨리 열려라. 시간이 가던 대로 안 가고 기어가는 것 같았다.

*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지금 열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 부장은 팔에 힘을 꽉 주고 뒷짐을 진 채로 한 걸음씩 조심히 걸었다. 소매치기는 문이 열리자마자 조용히 욕을 중얼거리며 뛰쳐나갔다. 민희는 남자의 행동에 황당해하며 문을 열어준 관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관리인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엘리베이터 천장 선풍기도 청소할 때가 다 되었나 봐요. 냄새가 좀 고약하죠?”

 “그러네요.”

 민희는 영혼 없이 맞장구쳤다. 김 부장은 못 들은 척하며 서서히 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걸음 뒤로 구린 내가 은은하게 허공을 수놓았다.

꽁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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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볏짚 속에 웅크려 앉아 비를 피하는 소년과 소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눅눅한 풀냄새와 빗소리를 같이 공유하며 쑥스럽게 앉아있었을 소년과 소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소녀가 그렇게 떠난 뒤 소년은 어떤 눈으로 소나기를 바라보았을까? 처음엔 비만 내려도 어느새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볏짚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횟수야 갈수록 뜸해질 테지만, 그런 것만은 여전할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지금, 바깥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사를 갔다. 도시 안에서는 외진 편이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에는 같은 교복을 입고 집 근처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하필 좀 먼 곳으로 고등학교를 배정 받아서 같은 고등학교 교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내가 아는 한, 이사 오기 전부터 옆집에 살고 있던 오빠 한 명 뿐이었다. 늦잠을 자서 멀리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15분 간 뛰어가는 나와는 달리, 아침 일찍 출발해서 25분 정도 느긋하게 걸어 버스를 타는 그 오빠와는 마주친 적도 손에 꼽았다. 선생님이 ‘그 거리에 사는 애들도 일찍 잘만 온다.’며 나를 야단치실 때 가끔 생각나는 정도였다. 명찰 덕에 나이랑 이름만 알지, 마주쳤을 때 인사도 않는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그는 내 머릿속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무더운 날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늦여름인데도 무척이나 더웠다. 푹푹 쪄서 ‘비나 쏟아져라’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렇지만 진짜로 쏟아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렇게 많이 올 줄은. 어쩐지 슈퍼 주인 할머니가 무릎을 부여잡고 계셨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가려는 길에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건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그날따라 혼자였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힘겹게 도착한 근처 편의점에서 열어본 지갑엔 천 원짜리 지폐가 3장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우산 5000원’이라 써진 팻말은 꿈쩍도 안했다. 어두운 바깥 하늘은 여전히 우렁차게 물세례를 토해내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가방에는 중요한 책들도 많고, 그냥 맞고 가기에는 빗줄기도 너무 굵었다. 게다가 집까지 가는 길은 끝이 안 보이는 직선이었다. 중간 중간 비를 피할 조형물도 없는 쭉 뻗은 길이라 더 난감했다. 워낙 비가 세차게 내려서 가로수에서도 무성한 물 무더기가 쓰러졌다. 가방을 차라리 두고 올 걸 그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 종소리가 들리며 열리는 편의점 유리문 틈으로 흠뻑 젖은 사람이 들어왔다. 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항상 아침 일찍 다니고, 학원이나 도서관에 들러 밤늦게 돌아오는 단정한 사람. 간혹 보는 사람이지만 그 오빠의 흐트러진 모습이 신선했다. 주머니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주머니 속에서 덜 젖은 지폐를 꺼내는데, 조금 전 나처럼 낭패라는 표정이었다. 천 원짜리 지폐 2장. ‘우산 5000원’에 힐끗 눈길을 주었으나 팻말은 전처럼 도도하게 무시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던 난 팻말을 노려보기만 하다가 순간 떠오른 생각에

  • 꽁보리
  • 2015-02-22
해는 다시 뜬다

“쿽!” 남자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본인도 자신이 낸 괴성에 멋쩍은지 콧잔등을 긁었다. 옷에 찌든 술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거참, 뭔 놈의 꿈이…….” 남자는 혀를 차며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간밤에 꿨던 악몽이 끊긴 필름처럼 드문드문 재생되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시간이 흐를수록 끊김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남자가 눈곱을 대충 떼고 만화책을 대여섯 권 훑어볼 즈음엔 핵심적인 장면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꿈 따위가 어떻든 개의치 않고 책장을 넘기며 키득거릴 뿐이었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이미 예전에 몇 번 봤던 것이어서 질려갈 때쯤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하단의 시계는 오후 3시임을 알려주었다. 게임에 접속하자 온통 피바다인 게임의 시작 화면을 보고 남자는 불현듯 간밤의, 이제는 흐릿해진 꿈이 떠올랐다. 지금으로선 기억나는 게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었다는 ‘전체적인 느낌’뿐이고, 기억에 남는 광경은 딱 하나. 집 바닥 위에 피를 흘리며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그의 노모의 시신이었다. 바닥엔 남자의 죽은 어머니가 흘린 피로 가득했다. 다른 내용에 대한 기억은 백지가 되어버렸는데, 그 모습은 유달리 생생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왜 그 장면이 그렇게도 충격적이었을까. 어머니라서? 아니면 피를 한가득 흘리는 시체에 대한 것이라서? 남자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이도 저도 아닌 본인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달에 한두 번, 그것도 술에 취해 들어오는 자신과 자신이 오는 날이면 언제든 집에 있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남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뭐, 이번 달엔 세 번째인가. 어제 초저녁쯤에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지는 바람에 여기 오겠다고 전화하고 난리를 피웠으니.’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남자는 게임 플레이 화면이 뜨자 바로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손으로 옆을 더듬어 언제 땄는지 모를 미지근한 맥주로 목을 축이며 생각했다. 그냥 그저 그런 꿈일 뿐이야. 그래봤자 저 문 밖에서 자기 할 일 잘 하고 있을 양반인데. 악몽을 꿨으니 로또라도 사볼까. 남자가 게임에 열중해 있는 동안, 바깥에서 제 할 일 잘 하고 있을 양반이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안 들리는 것도 같았다. 스피커 소리 때문에 긴가민가한 거야. 들렸겠지. 남자는 무의식중에 그렇게 확신했다. 게임 하단에 ‘접속한지 4시간째’란 알림이 떴다. 눈도 뻐근하고, 배도 고프고 해서 남자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책상 위에는 빈 맥주 캔 두 개와 몇 번 떼어먹은 말라비틀어진 빵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남자는 무심코 한 조각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이 없었다. 곰팡이가 피었을 수도 있었다. 남자는 여기가 심부름꾼 노릇하던 술집도 아니고 집인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순이 노인네에게 뭐라도 있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의자에서 몇 시간 만에 몸을 일으켰다. 무

  • 꽁보리
  • 2014-12-21
표절작

한 달 전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죽었다. 경찰은 미친 듯이 추격하여 범인을 어느 공사장에서 발견했는데, 발견 당시 서 있는 범인의 주변은 온통 너부러진 시신들이었다. 그리고 범인은 미처 경찰들이 막기도 전에 미리 뿌려놓은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커져가는 불길 속에 그는 시신들과 함께 몸을 묻었다. 이상이 뉴스에서 본 내용이다. 여자 11명을 죽인 연쇄 살인 사건의 최후. 사건이 끝나고 경찰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난 소희가, 그 놈이 잡히기 직전에 가출한 내 동생이 그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다. 상습적으로 가출을 일삼다가 붙잡혀 와서 이번에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하나뿐인 혈육이. ‘저희가 그 놈 추격해서 간 공사장에서 화재 진압 중에 언뜻 교복을 입고 있는 시신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른 불 끄고 신원을 확인했는데…….’ 권소희 양이었습니다. 그 말에 손이 풀려 전화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시신 수습을 위해 언니 분이 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 머리 부분이 완전히 다 타버려서… 그…….’ 머뭇거리던 경찰관의 목소리는 내게 닿지 않았고, 소희의 머리 없는 시신 앞에서 오열할 때가 되서야 다시 그 말이 내게 닿았다. 그렇게 나는 피붙이 하나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 * * “아줌마, 저 여기 소주 한 병이랑… 안주는 뭘로 하지.” “권 작가님 왔어요? 되게 오랜만이네. 오늘 꼼장어 괜찮은데.” “그걸로 주세요, 그럼.” 난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권 작가님, 요새 왜 이렇게 안 왔어요. 우리 단골이시면서. 근데 신작 안 내셔? 우리 아들이 진짜 팬이라니까.” 포장마차 여주인이 병과 잔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래서 여기 오는 발길이 뜸해진 거였다. 정신없는 색감의 물건들을 보면 또 몰라, 새하얀 종이나 파일 화면을 보면 소희 얼굴이 어른거려서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죽었어도 세상은 아무런 문제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만 그 시간에 묶여 있었다. 난 씁쓸한 기색을 감추고는 나올 때 되면 나온다고 웃으며 대충 대꾸했다. “아줌마! 여기 술 한 병 더 줘! 베스트셀러 작가한테 술 주는 거 영광으로 알아…” 말이 뭉그러져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순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란 단어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만큼 헝클어진 굳센 머리칼을 손으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부랑자의 모습. 예컨대 술에 잔뜩 취한 새우 잡이 배의 선원 같은 외모였다.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술병을 가져다준 주인에게 잔을 채우며 말을 걸었다. “누구에요? 베스트셀러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는 개뿔이. 그냥 취객이죠. 처음 보는 손님인데, 몇 시간째 계속 앉아있어요. 자기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면서. 나도 안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거든? 근데 작가도 아니고, 자기 입으로 ‘베스트셀러로 데뷔할 작가’래요. 그냥 헛소리야. 작가님이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작가님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나. 아부성 짙은 그녀의 말을 흘려듣고 그 남자 가까

  • 꽁보리
  • 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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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재

    * "야속한 시계는 그들의 조급함에도 개의치 않고 시간이 다 흐르면 다음 숫자로 넘어갔다." - "그들의 조급함에도 개의치 않고 시곗바늘은 한 바퀴를 돌면 어김없이 다음 시간으로(숫자로) 넘어갔다." : 시계가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또한 '시간이 다 흐른다'는 표현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버스는 조금 간다 싶으면 멈춰 서고, 이젠 가겠지 싶으면 또 멈춰 섰다. 버스가 그렇게 멈출 때마다 사방이 한숨 소리로 가득 찼다." - "버스는 가는가 싶으면 멈춰서고, 이젠 가겠지 싶으면 또 멈춰 섰다. (그때마다) 사방이 한숨 소리로 가득 찼다." 앞 문장을 받아 다음 문장에서 다시 "버스가 그렇게 멈출 때마다"를 반복해서 진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소리내어 읽어 보세요. 소설 문장의 긴장감이란 단지 하나의 문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 "민희는 시계 보기를 그만두고 눈을 내렸다." - "민희는 시계 보기를 그만두고 눈을 내리깔았다." * "그 움직임이 어찌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지. 틀림없어, 백프로야. 둘이 사랑하는 사이구나. 참 좋을 때다. 민희는 두 다정한 연인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 "그 움직임은 섬세하고 몹시 조심스러웠다. 틀림없어, 백프로야, 둘이 사랑하는 사이구나, 참 좋을 때네, 민희는 두 다정한 연인을 흐뭇하게 지켜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그 때, 그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당황스러움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머,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나." - "그때, 그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민희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희는 자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본 모양이라고 자책했다." : 퇴고 과정에서 시점을 바꿀 때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처음에는 1인칭으로 썼다가 나중에 3인칭으로 바꾼 모양이네요. * "정말적인 심정으로 버스가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 "체념하는 심정으로 버스가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 쓰신 대로라면 지금 서술자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읽힙니다. 목적어가 빠지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 "사무실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찍소리 못한 채 김부장의 눈치만 살폈다." - "사무실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직원들 모두 입을 다물고 김부장의 눈치만 살폈다." : 이 문장도 마찬가지로 목적어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 각각 다른 상황과 입장을 가진 세 사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엮었네요.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내는 솜씨가 있어 보여요. 잘 읽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민희와 부장, 그리고 소매치기가 각각 설정된 인물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말단 직원과 부장, 소매치기이기는 하지만 그 인물들이 보편적인 인물이 아닌 좀더 개성적인 인물로 그려졌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민희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으로, 소매치기는 남과 눈이 마주치는 걸 못견뎌하는 아주 내성적인 인물로, 그리고 김부장은 아직 아내와도 방귀를 못 튼 그런 소심한 인물로 그렸더라면(물론 그런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낼 에피스드나 진술이 없습니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가 됐을 것 같아요. 첨언을 하자면, 김부장이 볼 일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그리 개연성 있게 그려지지는 않아요. 보리님 또래에서 그것은 무척 어렵고 난감한 일이겠지만 김부장 정도의 세대에서 그런 일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 있거든요. 그러므로 김부장의 상황에 개연성이 생기려면 김부장의 캐릭터가 좀더 부각되어야 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그런 결벽이나 강박, 혹은 극도로 소심한 성격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으로 그려지느냐 하는 것은 소설의 완성도와 상관관계를 가지니까요.

    • 2017-01-23 16:16:11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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