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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결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6-08-26
  • 조회수 832

여결의 세계는 닫혀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닫아놓는다. 여결의 세계는 잘 정돈된 방과 같다. 흡사 결벽증을 앓고 있는 십대 소녀다. 여결의 방은 여결의 세계와 닮아 있다. 넓은 방 안에 침대 하나와 책상과 의자 각각 한 개씩. 세계는 그렇게 넓지 않다고 여결은 믿어 왔다. 결코 작지 않은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책장의 반은 문제집이다. 나머지 반은 책이다. 여결의 세계는 활자로 이루어져 있다. 여결은 마치 정보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책을 먹어치운다. 하나의 정보가 뇌의 뉴런을 통해 대뇌피질에 전달되는 감각을 여결은 안다. 중독이라고 명명한 행위는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여결은 프랭클린 플래너의 제1사분면에 위치해 있는 몇몇의 행위들을 더듬는다. 절대 꺼낼 생각은 없다. 온통 흰 페인트로 뒤덮인 방.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가구들에는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않았고, 않고, 않을 거라고 여결은 생각한다. 흐트러짐 없는 방을 뒤로 한다. 문에서 반 발자국 가량 떨어진 곳에서 여결은 뒤로 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손은 투명하다.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매달려 있는 열쇠로 문을 잠근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도 꼭 그렇게 한다. 제1사분면이다.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몇 년 간 여결 이외의 사람은 없었던 집에서 여결은 자랐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여결의 엄마는 집에서 나갔다. 통장과 체크카드와 보안카드를 으리으리한 책상에 올려 둔 채였다. 그렇게도 애새끼가 중요한가 보지, 여결은 중얼거렸다. 그 흔한 쪽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열여섯의 여결은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무런 감흥 없는 눈으로 통장과 체크카드와 보안카드를 자신의 책상 아래 서랍장에 넣어두고 문을 잠갔다. 마지막 철컥 소리가 나기까지 두 개의 열쇠가 필요했다. 여결은 단 한 번 만에 멋지게 성공해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할 새도 없다. 뇌의 신경작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여결은 명석했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돌아온 엄마는 아무 말도 없다. 그녀는 조금 더 살이 쪄 보였고 조금 더 우악스러워진 것 같다. 한 손에 삼 년 전 들고 나간 것으로 추정된 흰 핸드백을 들고 있다. 머리는 며칠간 감지 못했는지 떡이 져 있었고 햇볕에 그을린 것 같은 자국이 스친다. 꾀죄죄하고 펑퍼짐한 옷은 이 완벽하고 균형 잡힌 집과 어울리지 않다. 펑퍼짐한 옷에는 굴곡이 져 있고 검댕이가 묻어 있다. 담배 냄새가 풍긴다. 세상에 담배는 여럿이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나는 냄새가 있다. 여결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 더 살이 찐 손으로 문고리를 돌려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쾅 하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이것이 여결이 단 십 초 안에 알아낸 것들이다.

인간의 직관은 어쩌면 개보다는 나을 수 있다고 여결은 생각한다. 여결은 물티슈 두 장을 뽑아들어 떨어진 담뱃재를 모은다. 그것은 여결이 친절하거나 고상하거나 아주 깔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가 전혀 아니다.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벅벅 닦아낸다. 물티슈를 제 손 안에서 구긴다. 다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더니(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에 물티슈를 던져버린다. 여결은 즉시 화장실로 들어가 오 분간 손을 씻는다. 이것으로 여결의 오 분은 손해를 봤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간단하다. 밥을 안 먹으면 된다. 여결은 자신이 먹으려고 차려둔 음식을 본다. 토스트에 토마토를 썰어 둔 흔한 영양부족 아이의 식단을 모조리 비닐봉지에 쏟아 부었다. 여결은 그것이 맞벌이 부부의 무관심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불명예. 여결은 비닐봉지를 낚아챈다. 내 세계에서 이 불명예스러운 것을 치워버리자. 어떻게? 여결의 초점은 뒷베란다로 향한다. 보폭이 크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여결은 베란다의 창문을 열고 던져버린다. 몇 초 뒤에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올 거라고 여결은 예측한다. 여결의 예측이 틀린 적은 없다.

여결은 사전을 보러 간다. 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일종의 의례의식 같은 것이라고 여결은 생각한다. 여결의 집에서 사전의 집까지는 버스를 두 번 환승해야 갈 수 있다. 여결은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버스의 번호를 외우는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 숫자와 숫자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 수열을 완성한다. 사전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여결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 하나를 꺼낸다. 이제 두 개비밖에 남지 않았다. 여결은 텅 빈 공간을 현실 세계로 옮긴다. 자신이 난 공간이 있다. 여결은 정류장의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는 것을 듣는다. 이 호로자식아, 니 어미가 너 그리 키우디? 여결은 노인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마지막 연기까지 들이마신다. 거의 다 탄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마지막 숨을 다하는 것을 본다.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 담배를. 여결이 노인 쪽으로 몸을 돌려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기 전에 버스가 온다. 여결은 씨발 것 하는 욕과 함께 또 청소년입니다와 함께 사라진다.

열여섯의 여결은 자신이 원치 않았던 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엄마는 여결을 키웠다. 비록 이틀에 한 번 꼴로 술을 마시고 사흘에 한 번 꼴로 여결을 때리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여결의 목을 조르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반자살을 하자고 매달렸지만 어쨌든 그녀는 여결을 키웠다. 여결의 자기보호본능 결여성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여결은 그래서 그녀가 나갔을 때도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외려 추악한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깔깔깔 웃었다. 그날 밤 여결은 편의점에서 처음처럼 두 병을 훔쳤다. 거실에서 검고 흰 다트판에 다트를 던졌다. 한 병도 다 못 마시고 기절했고 여결은 자신의 규칙성이 깨진 것에 대해 분노했다. 아마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꼬박꼬박 육아비를 통장으로 보내왔을 거다. 입금자명이 김성완이었기 때문에 여결은 확신한다. 여결은 김성완을 이해할 수 없다. 위자료로 집 사고 차 사고 평생 먹고살아도 남을 만한 돈을 줬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여결은 문을 두드린다. 사전이 문을 연다. 여결과 사전은 인사가 없다. 여결은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고 사전은 문을 닫는다.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 여결은 규칙성을 사랑하고 사전 또한 규칙성을 사랑한다. 사전은 모든 것들을 나열하는 습관이 있다. 군더더기 없이 내뱉는 무차별적인 언어들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흥적이고 기계적으로 배출되는 열거법은 코르셋처럼 꽉 조였고 여결은 그걸 먹는 데 익숙했다. 달콤한 프랑스제 컵케이크를 이천 사백 개쯤은 먹은 것처럼 여결의 입안이 달다. 여결은 무생물에게 이야기한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상관없다. 시체에게도 말을 줄줄 늘어놓을 수 있다.

씨발 존나 더워. 어 더워. 아이스크림 줘? 아니. 그래. 방학 끝나면 볼만하겠다. 학교 에어컨 안 틀어 주잖아. 씨발 내 아까운 세금. 니 세금이 아니라 니 부모님 세금이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사전은 입을 다문다. 정적.) 그래도 너는 대학 잘 갈 거잖아. 뜬금없는 개소리냐. 성적도 좋고. 선생님들도 예뻐하고. 씨발. 왜. 그 새끼들 나는 안 좋아해. (다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야. 왜. 엄마는? 어? 엄마는. 모성애 의무 책임 피폐 천착 집착 헬리콥터. 그게 다야? 그럼 더 뭐? 야. 어. 엄마 돌아왔다. 응? 집 나간 엄마 돌아왔다고 씨발. 잘됐네.

여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사전이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른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만 곧 사라진다. 언제나 여결이 우세하다. 언제나 여결이 이긴다. 언제나 여결이 전부 이긴다. 모조리 이긴다. 여결은 그렇게 재배되었다고 생각한다. 온실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실험실에서 자란 최초의 성공적인 실험체. 문학은 오답이라고 하고 윤리는 정답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 맞지? 여결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린다. 사전은 다른 책을 손에 들고 있다.

야. 어. 밥 안 먹냐. 어. 씨발. 왜. 나 밥 먹을 시간 칠 분 사십 초 넘었어. 너 만나러 여기 온다고. 사십이, 사십삼, 사십사. 내가 밥을 안 먹으면 이 집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 알아. 지금 나 존나 배고파. 어. 씨발.

사전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끄트머리에 있는 밥통을 누른다. 김이 뿜어져 나오며 사전의 안경을 뿌옇게 한다. 여결은 배고프지 않다. 사전이 하는 꼴이 우스울 뿐이다. 여결은 남청색 백팩에서 정석을 꺼낸다. 민트색 수학의 정석의 표지는 하드커버가 벗겨질 정도로 닳아 있으나 더없이 깨끗하다. 여결은 지우개를 들어 그 깨끗한 표지를 몇 번이고 더 지우고는 정석을 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오일러의 공식이라면 여결이 사랑한 수식은 이 세상에 증명된 모든 방정식들이다. 해가 하나로 떨어지는 미적분학은 아름답다. 모든 수학방정식은 아름답다. 답은 하나로 귀결되고 여결은 그걸 적어내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사전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빨리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전은 이따금씩 아주 빠른 속도로 문제를 푸는데 그럴 때마다 여결은 씨발 하고 욕을 한다. 여결은 흑연을 놀린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흑연이 부러진다. 씨발, 한 번 더 욕을 하고 여결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여결이 자신의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를 사전에게 넘긴다. 비닐봉지는 불결하고 척척한 유동식 비스무리한 것으로 차 있다. 규칙적인 대로를 밟는다. 어릴 적 보도블록의 붉은색만 밟는다던지, 횡단보도의 흰색 페인트만 발에 질척하게 묻힌다던지 하는 강박적인 행위들. 여결은 버스로 두 정거장을 환승해 사전의 집에 찾아온다. 방학 전에는 주말마다, 방학 후에는 매일. 이것도 프랭클린의 우선순위 중 제1사분면감이다. 여결은 왜 인간은 효율적이지 않게 태어났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니, 사실 매일 생각한다. 언어들을 도륙하며 여결은 왜 인간의 피부는 강철이 아닌지에 대해서 소고하고 피가 조금 더 빨리 돌지 않는가에 대해 고찰한다. 몸속 장기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마침내 이 쓸모없고 형편없는 몸뚱이를 왜 피조물로서 삼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다. 사전은 비닐봉지를 받아든다. 뜨뜻하고 무게감 있고 또 누르면 누르는 대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비닐봉지 안의 물체는 무엇인지 예측한다. 사전은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여결은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다.
뭐야? 그거 아기. 응? 죽은 아기. 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결은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사전의 낯은 조금 파랗다. 여결은 사전을 바라본다. 되풀이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 여결은 다시 입을 연다. 그러니까 낙태아. 사전이 간신히 숨 쉬는 것을 여결은 알고 있다. 여결은 미간을 찌푸린다. 무서워? 묻는다. 그것은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결은 이 현상을 설명할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해 입술을 깨문다. 피가 맺힌 입술을 본 사전의 낯이 조금 더 파래져서 고개를 젓는다. 숨은 다시 안정을 찾기 마련이다. 삼십 초간 쟤들은 가만히 있었다. 여결은 계속해서 어휘를 떠올려냈다. 사전의 연상능력이 부러워지는 시간이다. 저것은, 파랑. 여결은 관념어가 아닌 어휘들을 떠올려낸다. 파랑. 낯. 춤. 아, 여결은 한순간 사전의 표지에서 사람 둘이 끌어안고 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린다.

우리 춤출까? 뭐? 춤출까? 춤추자. 나 춤추고 싶어. 사전. 사전아. 우리 춤추자. 김여결. 나 핸드폰에 음악도 있어. 춤추자. 여결은 사전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린다. 여결이 몇 겹으로 꽁꽁 싸맨 탓에 흘러나온 것은 없다. 여결은 미디어 볼륨을 최대로 높여버린다. 이국적인 노래가 휴대폰에서 쨍하게 울린다. 여결은 사전의 손에 제 손을 얽고 스텝을 밟는다. 무감정의 극과 감정의 극이 섞이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서서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은 뇌의 쾌락중추를 건드린다.

그거 네 거야? 어? 네 애야? 아니. 그럼? 우리 엄마. …어?

여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춤을 춘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스텝은 영국의 사교계 파티를 연상하게 만든다. 입과 발이 따로 노는 듯이. 사전이 다시 되물으면 여결은 일 초 안에 대답한다.

우리 엄마. 엄마 들어왔다고 했잖아. 방안에서 피 냄새 나서 봤더니 엄마가 버리라고 하더라. 씨발. 뭐 약 먹었다나봐. 주기적으로… 야 스텝 꼬이잖아. 제대로 좀 해. 약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유산 된 것 같대. 사후피임약이었나. 아, 왜 약 먹었냐고? 아빠랑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데서나 하고 왔나 보지. 처치 곤란하니까 집으로 돌아온 거 생각하면 그거 고양이 습성일지도 모르겠고. 뭐, 어차피 태어났어도 그것 때문에 기형으로 태어났을 텐데. 비닐봉지에 두 번 더 쌌어. 나 그거 내용물도 봤다?

제3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딱딱하고 객관적인 구술은 어울리지 않다. 여결은 계속 스텝을 밟는다. 음악이 바뀌고 빠른 템포의 메트로놈이 귓전을 때린다. 여결이 갑자기 발을 빠르게 옮겨 사전은 거의 넘어진다. 여결은 손에 힘을 주어 사전을 끌어올리고 다시 춤을 춘다. 숨이 가빠진다.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겼다가 울렸다가를 반복한다.

근데 아기가 아닌 것 같앴어. 그냥 죽 같고. 빨갛고. 피에 절은 고기 느낌, 씨발… 존나 힘들어, 그래서 엄마 앞에서 그거 비닐봉지에 싸서 거기에 입 맞췄다? 키스했어. 혀는 못 섞었지만. 엄마, 이게 내 동생이야! (여기까지 얘기한 여결은 깔깔깔 하고 웃었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과 어떤 퇴폐적인 기분 좋음이 뒤섞인 웃음.) 엄마 방에서 냄새가 났어. 철 냄새, 비린내. 이것도 아마 펼쳐보면 똑같은 냄새 날 걸.

문득 여결은 사전의 표지에서 떠올리던 그 장면이 눈에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종잇장이 버석대는 소리에서 기인한 춤추는 여자들. 나체의 미친 여인 둘이 춤을 추고 있는 장면. 그리고 그것은 그것은 그들은 연인이었다 연인이야 둘은 입술을 부비고 혀를 섞고 탐닉하고 알몸으로 서로의 몸을 만지고 개구리처럼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 아 여결은 곧바로 사전을 밀쳐냈다. 손끝에 끈끈한 타액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지. 반발작용을 한다더라.

추기 싫어졌어. 내가 그거 물어봐서 그래?

여결은 휴대폰의 미디어 볼륨을 낮춘다. 빨리 낮춰지지 않자 여결은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진다. 사전은 휴대폰에서 여결로 시선을 옮긴다. 머무르는 행동은 오래 할수록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휴대폰이 배터리와 분리된다. 그 외에는 말짱하다. 여결은 제 몸에 쓰레기라도 묻었다는 듯이 제 몸을 연속적으로 털어낸다. 왼손으로 문제의 비닐봉지를 든다. 아니. 사전은 발작적으로 진동하는 몸을 추스른다. 종이 버석대는 소리가 난다. 여결은 휴대폰을 주워든다. 그래서 그거 어디, 에다가 버릴 거야? 사전의 목소리가 반쯤 갈라진다. 글쎄,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아주아주 깊은 곳? 여결은 다시 깔깔깔 웃는다. 해구를 떠올린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면 여결은 산호초 사이에 비닐봉지를 뭉개고 왔을 것이다.

여결과 사전은 다음 순간 길을 걷는다. 기온이 가장 높다는 낮 두 시. 여결은 걷는다. 지하철을 타기에는 비닐봉지가 거슬린다는 사전의 만류다. 여결이 앞에 서서 사전을 끌고 간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전은 아무리 애써도 여결의 근방 이 미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결이 귀신같이 뒤를 돌아본다. 왜? 사전은 고개를 젓는다. 사전의 뒷목부터 몸 전체를 적시고 있는 땀이 머리카락을 살갗에 달라붙게 만들었다.

석촌호수는 파랗다. 여결은 그것을 뜨겁다고 표현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 르네 마그리뜨나 라팔 올긴스키와 같은 사고회로를 머릿속에 박제한다. 여결은 바보같다, 고 말을 내뱉는다. 주어가 누락된 문장은 효력을 잃는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멍청이들. 여결은 뜨거운 호수에 해가 비치는 걸 응시한다. 구름이 잠시 비치다가 사라진다. 장본인은 여결이다. 여결의 그림자는 뜨거움에 녹고 있다. 여결은 잠시 몸부림치다가 땀으로 범벅이 된 손을 쭉 내민다. 달랑달랑 매달린 비닐봉지가 처량하게 녹는다. 다시 여결은 예의 감정 없는 표정으로 돌아와 있다.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셈하며 어느 쪽을 택할까 고민하는 그림자는 광대와 닮아있다. 우스꽝스러운 삐에로는 눈물과 웃는 입을 함께 그리지. 여결은 그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모순점은 점점 몸을 불리고 여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여전히 비틀린 낯으로 여결은 있는 힘껏 비닐봉지를 제 손에서 떼어낸다.

첨벙

덜도 더도 아닌 딱 한 번의 소리가 삼킨 비닐봉지가 가라앉는다. 사전은 숨을 다시 쉴 수 없다. 햇빛을 반사하는 여결의 살갗이 순간적으로 검게 변했다가 기괴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여결은 가라앉고 있을 비닐봉지 쪽으로 눈길 한 번조차 주지 않는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사전이 앞장선다. 여결은 사전의 등을 본다. 사전의 앞표지에는 나체의 연인이 껴안고 뒹굴고 춤추고 있었지. 뒷표지에 그려져 있을 피사체에 대한 호기심은 강력한 욕망으로 번져간다. 여결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한곳을 응시한다. 흰색 블라우스의 뒷면이 일렁이더니 원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여결은 단번에 손톱을 세워 사전의 등을 할퀸다.

악! 씨발, 소리는 왜 지르고 지랄이야. 여결은 왼손으로 사전의 입을 막는다. 사전의 등을 다시 한 번 긁어내린다. 칼과 손톱의 차이점. 칼은 깔끔하지만 손톱은 피부조직을 끊어버리는 것이라 흉이 쉽게 진다. 아물기도 그만큼 어렵겠지. 여결은 일련의 정보들을 끄집어내며 할퀴기를 계속한다. 너는 왜 내게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 책을 찢어버릴 기세로 달려든다. 미안. 여결의 입꼬리가 점 점 점 하늘로 치솟고 오른손의 난동이 멎는다. 사전과 눈을 맞대며 여결은 눈매를 접어내린다.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여결은 안다. 미안. 다시 한 번 여결의 쉘 핑크색 입술 사이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여결은 자신의 완벽한 방에 들어간다. 완벽하게 규칙적이고 잘 정리되어 있는 방. 두 개의 짐 중 하나는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완벽한 공간에 들어맞을 곳이 없다.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 여결은 남청색 백팩을 사정없이 할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쪽에 있는 내용물을 토해내게 한 다음 백팩의 목부터 조르고 왜 그렇게 태어났냐고 묻고 싶다. 여결은 백팩을 노려보다가 원래 자리에 거의 던지다시피 한다. 오늘의 붉음이 지고 있다. 언제나 지고 있지만 이렇게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잖아. 역겨운 기분이 든다. 방구석부터 질척한 시선을 던진다. 메말랐지만 꼼꼼하다. 여결의 시선이 지난 자리에는 달팽이가 있던 것처럼 점액이 남는다. 여결은 불쾌해진다. 모든 것이 규칙적이지 않아 보인다. 자리에 얌전히 있는 것들이 죄이다. 규칙적이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고 존재가치가 없으며 세상에서 말살당해야 한다, 고 여결은 늘 뱉어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데? 물음을 던지면 돌아오는 건 없다. 여결은 밖으로 나간다. 문고리조차 규칙성을 잃는다. 기하학적 문양이 짖어대었기 때문에 여결은 문을 쾅 닫는다. 메아리의 환청이 들린다. 차단된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방이 무너지는 건 아닐지 여결은 잠시 머뭇거린다. 여전히 이것을 명명할 도리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없다. 여결은 환기가 필요했다. 뇌를 빨아서 다시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온몸의 장기들을 빡빡 빨아 깨끗하게 한 다음에 다시 넣고 꿰매면 좋겠다. 실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는 마취를 하지 않는 거야. 여결은 문득 자신이 비명을 지를지 궁금해진다.

여결은 클래식 벽걸이 다트판 앞에 선다. 다섯 개의 다트를 손에 쥔다. 검정과 흰색이 교차하는 판이 여결을 압도한다. 여결은 다트가 세상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명과 암이 교차한다.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닮았다. 심오한 철학 따위는 없다. 여결은 다트판에서 다섯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빨강색 꽁지를 달고 태어난 다트를 여결은 던진다. 십 점. 여결은 완벽함을 추구한다. 퍽 마음에 들어 여결은 씩 웃는다. 쾌락적인 웃음이다. 저 다트판에서 흰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결은 생각한다.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니 얼마나 지루해. 여결은 자신이 건너던 횡단보도를 되새김질하다가 토해낸다. 역겨워. 손에 쥔 다트를 본다. 빨간 다트를 보고 여결은 흡족해한다.

비닐봉지에 싼 동생을 버릴 때 났던 소리다. 아니,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여결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아침에 들어왔던 그녀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온다. 그녀의 낯은 잿빛이다. 그녀의 눈은 붕어 눈깔처럼 퉁퉁 부어 있다. 여결은 하루에 흥미로운 낯빛을 두 개나 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뿐이다. 여결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여결의 브라운 홍채는 다시 다트판에 고정된다. 오십 점만이 평화로운 파동을 유지시켜줄 수 있다. 전체가 여결의 완벽으로 귀결된다.

버리고 왔어?

여결은 고개를 성의 없이 까딱인다. 조준하고 던지면 오십 점이다. 붉은색이 검정색을 죽이는 것을 보면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다트에 얹힌다.

어디에? 석촌호수.

여결은 엄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대답은 꼬박꼬박 해야 할 것 같다. 그녀는 말이 없다. 한층 무거운 호흡을 하는 아가미가 뻐끔거리는 것을 여결은 듣는다. 여결의 아감구멍은 닫힌 지 오래다. 육지로 올라온 지 하도 오래 되어서 아가미를 사용하는 법을 잊었다. 여결은 정신을 집중한다. 네 발 째다. 다시 오십 점을 노리고 던진다. 여결은 툭 하고 물음을 내뱉는다.

걔 아빠는? …….

엄마의 아가미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여결은 씨발, 하고 마지막 다트를 던진다. 여결은 파동이 흔들리는 것이 싫다. 다트판의 흰 부분을 맞춘 다트가 이십 오 점을 가리킨다. 씨발, 다시 한 번 여결은 소리치고 신경질적으로 뒤를 돈다. 완벽하지 못하다. 존재가치가 말소된다. 완벽이 없다. 존재가치가 없다. 여결은 숨을 급하게 들이킨다. 그리고 거기에 엄마가 있다.
그 여자는 아침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여결은 다시 눈으로 그녀를 훑는다. 아래까지 늘어진 원피스형 잠옷.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여전히 잿빛이다. 어쩌면 더 짙어졌을지도 모른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마네킹이다. 무기력함을 풍기는 것은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여결은 지금까지 혼자서 완벽하게 살아왔다. 악취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여결은 눈살을 찌푸리고 바닥으로 시선을 향한다. 다트판이 거기 있다. 다트의 붉은 꽁무니가 거기 있다. 정확히 말하면 빨간색 액체가 있다.
여결은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이어진 액체는 자신의 방문을 넘는다. 여결은 비로소 오늘의 괴리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여결은 무감정으로 뚜벅뚜벅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인간에게 다가간다.

엄마. 여자의 감정이 요동치다 못해 폭발한다. 아감구멍이 닫힌 걔는 무표정이다. 몽땅 다 죽여 버리고 싶다. 몽땅 다 죽여 버려야 한다. 인간이란 그런 족속이다. 오늘 석촌호수에 버리고 온 아기가 여자에게 오버랩 된다. 피로 점철된 고기죽과 여자가 합쳐진다. 피. 아기. 비닐봉지. 석촌호수. 여결은 단어를 나열한다. 단어들은 입안에서 맴도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너. 피. 아기. 석촌호수. 피. 여결은 완벽하지 않은, 아니 이틀 전까지만 해도 완벽했던 방에 들어간다. 서랍장을 뒤진다. 큰 약병에 야즈정이라는 활자가 매직으로 적혀 있다. 여결은 그것을 들고 여자 앞에 선다. 피. 낙태. 너. 아기. 여결의 입술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아가미가 떨어져 나가버린 여자는 이제 온몸으로 수압을 느낀다. 왜 너는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 있니? 숨이 여자의 입속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고 허파를 막아버린다. 여결은 한 손이 가득 찰 만큼 약을 움켜쥔다. 분홍색 원형 알약이 손에서 미끄러진다. 여결은 약을 여자의 입에 억지로 짓이겨 먹인다. 물을 퍼붓는다. 여자는 저항한다.

삼켜. 빨리.

여결의 강압적인 목소리는 여자를 굳게 하기에 충분했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해 버리는 순간 여자는 그대로 약을 삼킨다. 토하지 마. 여결은 한 손으로 여자의 목을 짓누른 채 부엌에서 칼을 꺼낸다. 여자는 휴대폰의 진동처럼 덜덜 떤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여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확인한다. 여결은 저항이 무의미해질 때까지 여자의 목을 조른다.

그러니까 왜 씨발

왜핏덩이를흘려서씨발균형을잃은건이제존재가치가없어너는왜내규칙성을파괴했니씨발너는씨발동생을죽이고아빠도없고왜아가미를떨어뜨려응그럼내가너를죽이고싶어지잖아애써참고있었는데죽이고싶어지잖아니차례가이렇게빨리돌아올줄은몰랐어미안해미안해미안해아니사실씨발좆도미안하지않아야그냥빨리죽어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왜너는여기에있어너저기석촌호수아래에가라앉아있어야할니가왜여기있어고기죽이되어야지너는내가너한테씨발키스도해줬잖아얌전히굴어야지씨발내세계왜죽였어

여자는 아가미가 떨어진 물고기처럼 파득거린다. 여결은 파동이 흔들리는 것이 싫다. 지진이 난 것 같다.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여결의 세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으나 오늘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여결은 손을 높이 쳐들어 칼로 배 한가운데를 내리찍는다. 칼을 비틀어 돌린다. 작은 구멍이 넓어진다. 구멍으로 피가 줄줄줄줄 흘러나온다. 여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여결은 축 늘어진 여자를 한손으로 받친다. 분홍색 알약을 손에 한 움큼 쥐어 구멍에 쑤셔 넣는다.

 

사전은 생각보다 빠르다. 인터폰에 비친 실루엣을 보고 여결은 문을 연다. 피비린내가 꽉 차 있지만 여결은 웃는다. 창고에서 꺼낸 아이스박스에 고기죽이 담겨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잘린 고기 위에 파인애플이 조각조각 얹어져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다. 고기는 이제 분해되기 시작한다. 파인애플 두 통을 다 썼는지 부엌에는 파인애플 꼭지가 두 개 내동댕이쳐져 있다. 핏자국이 방바닥에 선명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전의 동공이 확장된다. 여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낯으로 웃는다. 여결은 쾅 소리가 나도록 현관문을 닫는다. 문을 잠그는 소리가 둘 사이에 울린다.

뭐야…… 김여결. 뭐긴 뭐야. 고기죽. 장난치지 말고.

여결은 사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알아챈다. 낯이 파랗다.

우리 엄마.

사전이 뒷걸음질을 친다. 사전은 더 이상 사전이 아니다. 여결은 잠시 사전을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한다. 무어 고민할 게 더 있을까. 이름이 있지만 싫다. 여결은 단시간에 최대의 효율을 기록하는 재주가 있다. 여결은 쟤로 결론을 내린다. 아주 객관적인 대명사로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그러니까, 좀 도와줘. 처리해야 하거든.

사전은, 아니 쟤는 완전히 사색이 된다. 숨을 멎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뒤로 주춤거린다. 그러나 곧 벽에 막힌다. 쟤는 무너진다. 손과 발과 얼굴과 세상의 모든 장기들이 떨리는 느낌을 쟤는 경험하고 있다.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선명하다. 여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쟤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은 채로 여결은 쟤를 내려다본다.

야 너 손 떨려. ……. 입술 파래. ……. 설마 너 무섭냐. ……. 씨발.

순간적으로 여결은 자신이 이 감정을 명명해 내었다는 성취감에 희열을 느낀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여결은 씨익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덜 떨고 있는 쟤를 보면.

좆같네. ……김여결. 뭐. 담배 줘.

여결은 입 벌려, 라고 명령한다. 쟤는 입을 벌린다. 여결은 순식간에 라이터 불을 켜서 담배에 붙인다. 말보로 레드 세 개비가 빨갛게 탄다. 이제 담배는 남지 않았다. 툭툭 떨어지는 담뱃재를 여결은 불어낸다. 규칙적이어야 한다. 빨갛다. 사과 같다. 쟤가 사과 같다고 생각하며 여결은 쟤의 입에 담배를 처넣는다. 그리고 불이 옮겨 붙어 사전이, 아니 쟤가 전부 타 버리기를 간절히 빈다. 연기가 대신 쟤를 덮는다. 쟤는 캑캑댄다.

그래서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닌 것을 자신의 집에 놓아둘 이유는 없다.

여결은 쟤를 놓아둔 채로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경보음이 희미하게 쟤의 머릿속에서 울린다. 쟤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다리를 움직여 현관으로 향한다. 뛴다는 개념과 걷는다는 개념과 긴다는 개념의 차이는? 쟤를 보면 차이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쟤는 뛰고 걷고 긴다. 현관문 앞에서 쟤는 비명을 지른다.

악! 내가 소리는 왜 지르고 지랄이냐고 말 안 했던가? 여결이 쟤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 쟤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진다. 허벅지에 예리한 칼이 꽂혀 있다. 쟤는 차마 눈을 뜨지 못한다. 여결은 속삭인다. 눈 떠. 쟤는 눈을 뜨지 못한다. 여결은 칼을 뽑는다. 쟤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뜬다. 허우적대는 손이 애처롭게 공허를 잡는다. 여결은 제가 난 곳을 틀어쥐는 것 같아 공연히 쟤의 손목을 잡고 거실로 끌고 간다. 여결아, 제발…, 쟤는 이제 완전히 책의 본질을 잃었다.

여결은 다트판 앞으로 쟤를 끌고 간다. 쟤는 몸부림치지만 위협하는 여결에 의해 저지당한다. 여결은 주위를 살피다가 부엌에서 의자 하나를 끌고 온다. 쟤를 의자에 앉히곤 물음을 던진다. 사전아, 아니 쟤야. 쟤야. 검정색은? 쟤는 답을 하지 못한다. 입만 뻐끔거린다. 마치 죽기 직전의 여자와 닮았다. 아가미가 떨어질 것만 같이 위태롭다. 흔들린다. 여결은 다시 묻는다. 흰색은? 당연한 수순으로 쟤의 머릿속은 백지다. 여결은 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비틀린 웃음으로 응수한다.

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아가미 떨어진 물고기야. 뻐끔뻐끔거리면서 존나 시끄럽잖아. 또 나는 무채색이 존나 싫어. 근데 사람들은 나보고 씨발 무채색이래. 내 세계는 무채색이야, 맞아! 저기 다트판 보여? 야, 야 저거 똑바로 봐. 아파? 눈 똑바로 뜨고 봐. 도려내기 전에. 착하다. 옳지.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맞아, 그래서 내 세계는 저 다트판을 닮았어. 좆같지? 세상이 흰색이랑 검정색 두 개로만 보인다고 생각해 봐.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말라면서 내 세계는 저걸로 국한되어 버려. 재미있지 않아?

여결은 애원하는 쟤를 깡그리 무시한다. 재미있다는 듯이 쟤를 바라본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말살되어야 한다. 감정은 불필요하다. 넘쳐흐르는 감정은 독이다. 여결의 무의식은 어떻게든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여결은 복종한다. 여결이 웃는다.
나는 그래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거든. 있잖아, 쟤야. 내가 저걸 붉은색으로 물들이면 어떻게 될까?

여결은 쟤가 앉아 있는 의자의 주위를 돈다. 느릿하고 여유롭게 돈다. 아가미가 뻐끔거리면서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주인을 버리고 살아가는 아가미는 필요 없다. 쟤는 이미 아가미가 떨어져 나갔다. 아감구멍이 닫히지 않은 채로. 숨을 쉬지 못한다. 여결은 말을 이으며 쟤의 귓가에 속삭인다. 내 세계도 유채색이 될까? 유채색이 되면 균형을 이룰 수 없을까? 쟤야, 너는 내 완벽함을 깨뜨렸어. 여결은 만족한 듯이 숨을 들이킨다. 쟤는 이제 떨고 있다. 그만…, 여결의 손이 쟤의 입속으로 쑤셔 넣어진다. 쟤가 컥컥댄다. 목 졸린 관악기마냥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침 예쁜 붉은색 물감이 있는데. 여결은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는다. 여결은 손을 빼고 의자를 질질 끌어 쟤를 다트판 앞에 위치시킨다. 쟤는 몇 번이고 눈물을 삼키더니 악쓰며 소리친다.

너는 영원히 무채색일 거야, 김여결!

아… 쟤야… 사전, 아니… 너는…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나는… 나는…… 그러니까… 왜… 그렇게 생각…… 해… 나도…… 얼마든지… 유채색이… 아니…… 완벽해질… 유채… 완…….

여결은 넋이 나간 듯이 되뇌다가 비틀비틀 부엌으로 걸어간다. 쟤는 여결을 노려보고 있다. 여결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쟤에게서 다섯 발자국 정도의 간격을 둔다. 여결은 그 자리에서 비명을 뱉듯 소리를 지른다.

나도…… 유채색… 될… 수… 있어…, 쟤, 사전, 아니, 정희연, 말해. 정희연. 내가 유채색으로 물들 수 있다고 말해! 내가! 완벽하다고! 말해! 나는! 전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살고! 싶으면! 말해! 희연아, 빨리…….

여결은 입을 다문다. 울음을 간신히 참던 표정은 다시 미소를 거느린다. 여유롭게 여결은 다시 입술을 연다. 흘러내리는 웃음을 그대로 흘러내리게 놓아둔다. 여결은 다트를 던지듯 칼을 던진다. 한 번에 끊어진 숨을 바라본다. 인정받지 못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방식은 나름대로의 호의다.

쟤는 죽었다. 쟤는 인간이라서 죽은 거다. 사전 주제에 건방지게 인간 행세를 해서. 여결은 제 손을 바라본다. 칼의 감촉이 아직도 느껴진다. 다트와는 다르다. 곧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 김여결은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새 책을 구할 거거든. 모든 것을 지식으로 치환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여결은 자신의 몸을 감싼다. 혈관부터 활자로 변해간다. 온 몸의 장기들이 종이로 변하고 피부가 표지로 변한다. 그 안의 내용들은 대뇌에 저장되어 있는 지식들로 채워진다. 여결은 자신의 피부에서 이제 버석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인간이 되지 않을 거다. 저런 생은 필요 없다. 나는 규칙적이고 완벽하고 유채색으로 채워진 책이 될 거다. 책이 될 거다. 여결은 책으로 변한 제 몸을 끌어안는다.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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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터가 아무리 해도 안 되어서 pdf 파일을 첨부합니다. 글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니 꼭 pdf로 읽어주세요.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클릭  》 더 레드 더 레드 *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체온 사이의 서사를 옮겨 적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풍경을 글로 묘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써넣은 낱말이 이 세상에서 부드럽게 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그러면 어떤 세계에서든 언제나 가장 먼저 멸종할 단어는 빨강이다. * 피터, 하고 부르면 빨간 베레모를 쓰고 벤치에 앉은 203이 익숙하게 돌아본다. 그게 낯설어 나는 못내 아쉬운 투로 203을 발음했다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다시 한 번 피터, 하고 입술을 맞붙인다. 피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자를 비스듬하게 고쳐 썼다. 귀 뒤로 쓸어내려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카락이 베레모 그림자 아래로 구불구불 흘렀다. “이제 좀 익숙해졌어?” “여전히 내가 왜 널 피터라고 불러야 하는지 말해 줄 생각은 없고?” 피터는 한 손을 바닥에 짚어 무게를 실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피터가 종종 이상한 고집을 부리곤 했지만 번호 대신 이름을 불러 달라는 건 지금까지의 숱한 요구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테였다. “농담으로라도 익숙해졌다고 해 봐. 그럼 알려줄게.” 확신하는데, 214 네가 좋아할 만할 일이야. 피터는 그렇게 덧붙이며 가늘게 눈웃음을 쳤다. 이럴 때의 피터는 어렵다. 가늠하기도, 꺾기도. 이기지 못할 것을 예감한 나는 손을 뻗어 괜히 피터의 눈꼬리를 엄지로 꾹꾹 눌러댔다. 피터는 개의치도 않고 발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또 재촉한다. 알았어. 익숙해졌어. 이제 됐지?” 여전히 피터는 웃는 낯이었다. 나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터는 내 몸을 당겨 자기 몸에 바싹 붙였다. 몸이 피터 쪽으로 기울면서 새하얗고 빳빳한 교복 와이셔츠 칼라에 그늘이 졌다. 피터라는 이름보다는 훨씬 익숙했으나 여전히 몸에는 힘이 바싹 들어가는 게 척추부터 손가락 끝까지 느껴졌다. “책을 한 권 발견했어, 214.” “그건 우리 학교 도서관에도 많잖아.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아니야, 들어봐. 우리가 읽었던 책이랑은 다르단 말이야.” 피터는 자신을 밀쳐내는 내 손목을 쥐고 눈을 반짝였다. 뭔데. 나는 옅은 한숨을 쉬고 피터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피터는 그제야 내 손목을 놓고 뒤집힌 치마 끝단을 다시 뒤집어 정리하며 길게도 뜸을 들였다. 피터는 늘 침묵이 죄의 씨앗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만은 예외인가 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잖아?” “응, 레포트 쓸 때 많이 읽었지.” “세상에 배울 게 없는 책이 있다고 한다면 믿겠어?” “그런 책이 있을 리 없는 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네 직속선배 203이 집필부라며.” 그러면 이제 직속선배 203도 직속선배 203이 아니라 직속선배 피터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실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가 비를 다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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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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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흔

현상흔   빛이 꼭 은신한 뱀 같았다. 며칠 전 촬영의 대가로 얻은 손목의 통증과 불면이 두통을 몰고 왔으나, 무영이 앓는 환시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출사 날마다 빛은 사정거리 내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독사 꼴을 했다. 천변에서의 촬영은 지난해 겨울 이후로 처음이었다. 무영이 눈가를 가볍게 찌푸렸다. 갈색 홍채가 투명하게 비칠 만큼 날이 좋았다. 무영은 물에 반사되는 빛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길게 응시했다. 강물 위에서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오리배를 타고 있었다. 볕을 받은 빨간 줄이 무영의 손목을 한 바퀴 휘감아 마치 실팔찌처럼 보였다. 아픔을 몇 번이나 더 찍을 수 있을지를 무영은 흐릿하게 가늠했다. 한 번. 운이 좋다면 두 번까지. 무리해서 찍으면 손목이 온전치 못하리라는 걸 무영은 알았다. 사실 지금 잘린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상흔이 깊었다. 무영이 한숨을 쉬자 빛을 가려낸 손바닥 아래로 피사체와 피사체의 보호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앳된 여자아이와 한 쌍의 부부였다. “안녕하세요.” 무영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목에 걸린 카메라를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여자가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였다. 무영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리본을 매단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영의 볼 양쪽에 의례적인 웃음으로 만들어진 보조개가 움푹 팼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의 상반신만한 코커스파니엘을 품에 안고 있었다. “최대한 즐거운 감정을 담아 주세요. 천변에서 강아지랑 놀게 둘 거예요.” “강아지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여자가 잠시 여자아이 쪽을 바라보다가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침묵은 매미 소리에 묻혔다. 여자는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따가운 볕 때문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지는 알 수 없었다. 갈색 아이브로우로 진하게 그린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사이를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은 일처리에 능숙한 십일년차 사진사였다. 무영의 손이 카메라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여자는 여자아이의 갈색 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마지막이라고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남자는 자신의 딸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남자가 딸아이의 손에 빨간 막대사탕을 쥐어주고 나서야 무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선배의 목소리가 언뜻 스치는 것 같았다. 날이 좋은 날에는 노출값을 줄여야지. 감정을 놓치면 안 돼. 무영은 조리개를 조금 더 닫고 테스트 컷을 찍었다. 무영은 시시때때로 뒤바뀌는 초점을 좇았다. 피사체는 강아지를 따라 달렸다. 점박이는 샛초록색의 여름 잔디로 뛰어들었다. 피사체가 강아지를 겨우 따라잡고서 품에 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웃음소리에 묻혔다. 강아지의 꼬리가 쉴 틈 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무영은 여자아이의 가장 즐거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셔터에 손을 올렸다. 무영의 미간에 얼핏 주름이 잡혔다가 풀어졌다. 여자아이가 이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다가 갑작스럽게 강아지

  • 윤별
  •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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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재

    가독성이 좋은 소설입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끌고 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짧은 호흡의 문장들로 그것을 끝까지 끌고 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사용하는 명사나 표현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 오래 읽고 고민하고 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여결이라는 인물과 사전이라는 인물이 잘 표현되어 있는 점 또한 높이 사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서사 진행도 비교적 매끄럽다고 생각되고요. 그러나 서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습니다. 비록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에는 대상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뒤따라야 하고, 쓰는 동안의 나는 작품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그 서사를 장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작품을 써가며 그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은 소설을 쓰실 수 있을 거에요. 건투를 빕니다. ps. 결말의 마지막 두 문장은 탁월합니다.

    • 2016-11-03 21:30:54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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