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어떤 극劇]

 

 

 

 

나는 모른다

 

A(여자) : 그 사람들이 구덩이에 들어가 파묻힌 이후에, 그들을 추모하기 위한 상징이 생겨났어.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인데, 알다시피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하기 때문에 겹친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십자가의 아래쪽에 있는 길쭉한 부분을 세 갈래로 나눴어. 신성히 추모한다는 뜻이야. 다른 종교적인 상징물에서 파생시킬 수도 있었지만 이 나라의 국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걸로 정했다는 모양이네.

 

여자는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에 대해 설명했다. 한 참사에 대한 추모였다. 그 여자는 자신과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꾸준히 연회장 대신 추모식에 참여했다. 흰 꽃을 바쳤다.

 

Z(남자) : 왜? 난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펜던트, 반지. 장신구는 결국 쓸데없는 거야. 모든 사람들이, 때가 지나면 부끄러워하면서 내다 버릴 걸?

 

남자는 반박했다. 남자의 목과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결혼했으나 결혼반지를 맞추지 않았고 남자의 부인만 홀로 기념 반지를 맞춰 끼고 다녔다.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애당초 그는 참사에 관심이 없었고,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남자의 잘못은 아니었다. 남자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 그의 부모, 친척들이 질질 끄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남자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추모는 장례식처럼 사흘만, 하자는 것이 남자의 애초 생각이었다.

 

A(여자) : 전혀 그렇지 않아. 슬픔을 이끌어내자는 것은 꽤 중요해. 내재된 억압, 공포를 상징물로써 치환하는 것은 분노의 표출에 있어서 가장 평화로운 일이야.

Z(남자) : 그런 걸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좀 때려야 해. 그리고 그걸 뺏어서 고물상에 팔아버리고.

A(여자) : 왜 그렇게 생각하니?

Z(남자) : 아, 몰라.

A(여자) : 지적을 회피하는 태도는 잘못되었어, 미안하지만.

Z(남자) : 응~ 알았어. 난 모르니까.

 

A(여자)는 모든 것을 모른다고 말하며 가 버린 남자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질을 싫어하는 모양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과학자였다.

철학적 본질과 과학적 본질은 서로 다를까? 여자는 질문을 던지고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관객은 술렁였으며 그것에 대해 토론하기 바빠 보였다. 다른 누군가가 무대에서 나타났다.

 

C(사람) : 이 이야기는 현실에 본질을 두었습니다. 가상으로 치닫았지만 현실에서 본질을 찾아야만 할 거예요. 가상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상징물로 추모한다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것과, 토론을 회피하는 과학자에 대해 할 말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막을 내려야 하네요.

커튼이 내려왔고, 커튼콜이 열렸다.

 

그 남자, Z의 일생에 대한 편編

 

그는 남성으로써, 남성성에 대한 모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났다. 씩씩함, 늠름함, 사나움, 정열적인 정신을 가지고 그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어머니는 숭배할 만한 모성애로 그를 길렀고 가르쳤다. 그는 그 결과로 훌륭한 어린이, 훌륭한 성인, 훌륭한 어른이 되어 사회로 발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타의 모범이 되는 자였고 대기업의 사원이었고 어느 아내의 남편이었다. 결혼 반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장신구를 싫어하는 사람은 유별난 것이 아니므로, 그의 아내 또한 남편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다른 여성들, 그 자신보다 덜떨어진 남성들과 가끔 말다툼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남성우월 사회에서 그것은 Z의 우월함을 입증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가 말다툼을 회피하려는 것은 말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닌,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였고 말다툼에서 지더라도 그것은 일종의 아량인 것이었다. 그는 가장 뛰어난 남성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내려준 결론이었다. 그렇게 그는 일생을 보냈다.

그는 분명 유능했고, 똑똑했다. 기업의 부장까지 올라갔으므로 그 논제는 충분히 사회적으로도 입증된다. 하지만 몇몇 여성과 남자들은 그를 힐난하곤 했다. 대표적인 자가 C였는데, 그는 극작가로서의 긍지를 가지고서 그가 가장 멍청하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자라고 확신했다. 그는 그를 교양이라곤 없고, 뜬금없는 곳에서 실실 웃고,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 사회의 악이라고 못 박았다. 객관적 지표로 볼 때 C의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질적인 것을 추종하고, 철학과 예술을 배척하던 Z의 태도는 지탄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C의 의견이라는 것 또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에 대해 욕하던 Z를 보고 극작가 C가 화가 나 그런 뒷담화를 했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Z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생을 편히 산 뒤 그는 양지바른 곳에서 영원한 잠을 청했다. 평화로웠다.

 

커튼콜이 닫힐 무렵, 극작가 C는 한 등장인물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Z의 역을 맡은 이는 무대 위에서 몸짓으로 C의 설명을 재현하려 노력했다.

 

C는 악하다

 

어느 극작가의 일생은 이러했다.

 

그는 태어나 의무교육을 받지 못했다. 집안에는 이미 여덟 명의 사내아이가 있었으므로 가족들은 집안일과 효도와 열녀의 가능성의 삼위일체를 충족시켜 줄 고분고분한 여자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칼을 들고 아이의 머리맡에서 망설였다. 집 안의 그 누구도 그 행위를 말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결국 아이의 미간을 찌르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선해서가 아니라, 단지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어미는 배가 불렀는데 새로 태어난 아이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끔찍하고도 괴이한 것인 게다. 그렇게 그는 자랐다. 그는 무지했음에도 영민했는데, 극의 이해를 TV를 보며 깨우쳤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가 극작가가 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TV 연속극을 싫어했다. 뻔하면서도 판에 박힌, 그리고 새롭지 않고 예술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그는 단정 지었다. 그는 새로운 극에 대해 탐구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이는 당연했다. 그가 무엇을 하고 노는지 알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철이 들었다.

 

그러나 C는 악했다.

일곱째 아들은 기회주의적이었고 폭력적이었는데, 마침 그 집에는 때를 잘 맞춰서 태어난 열째 딸이 있었다. 열째 딸은 모든 아들들의 여성적 미모를 끌어다 핏속에 늘여놓은 것처럼 아름다웠고, 아주 여린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그 딸 또한 의무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그 대신 그녀는 두 살 때부터 걸레 짜는 법과 행주로 식탁을 닦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녀는 자주 울었고, 아팠다. 그것을 이용해 일곱째 아들은 틈으로 뱀처럼 들어갔다. 일곱째 아들은 열째 딸은 위로해 주었고, 부드러운 말들을 속삭여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금단의 사랑도 아니었으며 동정의 감정도 아니었다. 단지 폭력적인 성욕을 집안에서 합법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열째 딸이 웃음을 되찾기 시작할 무렵, 일곱째 아들은 그녀의 머리를 기둥에 박았다. 정신을 잃은 여자의 옷을 벗기고 그는 바지를 내렸다.

그에 맞춰져 내려진 형벌은 C였다. C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몰랐다. 장작 패는 도끼가 어디에 있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반쯤 끼워져 있는 일곱째 아들의 머리에는 벌이 내려졌다. 그 후 몸뚱아리를 C는 장롱에 반쯤 던져두었다. 열째 딸은 곧 정신을 차렸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게 되었다. 오열하는 여자에게 C는 밧줄을 건넸다. 그것은 단지 C가 악하고 새로운 것을 영위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열째 딸은 일곱째 아들의 시신 곁에서 죽었다. C는 집을 떠났다. 성악性惡은 C를 위한 철학적 개념이었다. 분명했다.

 

C는 본디 A의 일대기를 그리려 했다. 그 틈에서 어떤 치욕적인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무연고자가 된 남자, 특히 의무교육도 받지 못한 남자에게 주변인들이 주는 시선은 바늘과도 같기 때문에 글자로 담기도 실례되는 것이다. A는 유일하게 그를 믿는 자였다. 그러나 C는 A의 일대기를 그릴 수 없었다. 아무도 상영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A의 적인 Z의 일대기를 그려야만 했다. Z의 일대기를 그린 각본 중간에 짧은 콩트가 있었는데, 그것만이 A의 일대기에 있었던 유일한 원본이다. 커튼콜은 닫혔고 C는 감독석으로 돌아가며 외쳤다.

 

“다시, 2부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여자에 대한 비망록備忘錄

 

그 여자는 50년 전에 태어났다. 여자는 부유한 집안, 개방적인 사고의 부모의 아래에서, 물을 잔뜩 머금은 흙 위에 주저앉은 씨앗처럼 자랐다. 여자는 총명했고 뛰어났다. 부모는 그녀가 아주 훌륭한, 국가와 세계의 거목이 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대학 정문조차 밟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은 남학생들만 몰래 부른 뒤 대학 원서를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A는 대학원서가 언제쯤 자신의 손에 쥐어질 지 고대하며 공부를 했다. 시험일인 11월 11일이 다 되어 갔고, 그 여자는 선생에게 여쭈었다. 선생은 대답을 회피하다가, 세 번째로 이어지는 같은 질문에 버럭 화를 내며 그 여자를 밀어냈다. 교문 밖으로 밀쳐진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시절은, 여자는 경찰서에 가지 못하던, 여자는 법원에 가지 못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A는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학에 가지 못한 똑똑한 사람들이 하던 유일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법을 공부했다. 그 여자는 본디 과학에 재능이 있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판사가 될 생각이었다.

 

A는 만점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주변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부모가 기뻐하며 소를 잡아다 잔치를 열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그 여자만 응시하고 있었다. A는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임에도 그 날카로운 시선이 두려워 마당에 나서질 못했다. 시골은 그런 곳, 도시는 그런 곳, 세계가 그런 곳인 시절에 A는 태어나, 극심한 차별과 우울을 겪었다. A는 차후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되어서, 열심히 일을 하다 평화롭게 죽었다. 다행히 수많은 남성들은 A가 판사모判事帽를 쓰고 난 뒤에는 A에 대한 욕을 하지 않았다. A는 판사로 재임하던 사이 Z를 잠시 만났고, Z에 대한 탈세 혐의 사건을 판결했다. 어느 기업의 회장인 R이 사원들에게 임금을 체불한 사건에 대해서도 판결했고, 또한 수많은 남성 범죄자들을 옥에 집어넣거나, 풀어주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런 메모들은 극에 들어가지 못했다. A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주 짧았다. 바보스러웠으며 죽이고 싶어질 만큼 허무했다. C는 그래서 커튼콜이 닫힌 뒤 극장을 떠났다.

 

“2부 끝났습니다.”

 

끝난 것은 아니다

 

2부의 내용은 끔찍했다. 한 남자의 성공담이라는 표제를 보고 이끌려 온 관객들은 욕을 하거나, 극장 문을 열고 떠났다. 2부에 나오는 이는 Z를 연기하는 배우뿐이었다. Z는 수많은 독백을 했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고, 여자가 얼마나 멍청한지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고, 관객들을 모욕했다. 그 모욕은 틀림없이 더러운 종류였다. 관객들 중 몇 명을 뽑아, 그들의 외모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뒤 Z는 등에 날개를 달았다. 그러니까 무대 벽에는 흰 날개가 달려 있었는데, 그것을 뽑아 등에 둘렀다는 것이다.

Z는 웃었다.

“남성성의 만세!”

이렇게 외치는 배우의 얼굴은 웃음기로 가득했다. 그 후 Z는 무대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큰 붓과 흰 페인트가 있었다.

글자를 썼다. 男이라고. 이것은 순전히 C의 의도였으며 Z의 사견, 혹은 제3자의 의도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는 닫혔다. C는 나타나지 않았다. 관객들은 ‘아까 설명하던 이상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Z를 연기하던 배우와 A를 연기하던 배우가 잠시 나타나 떨어진 무대 자재를 주웠다. 아무것도 일어난 일은 없었다. 극장의 불이 켜졌고, 극장 직원이 연극이 끝났으니 얼른 나오라고 소리쳤다. C는 그때쯤 시나리오 원본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본디 2부에는 A가 등장해야 했다. Z가 독백하는 사이 A가 참견해 그 말들이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Z가 반박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A의 논리는 아주 허무하였고, 바보스러운 A의 논리를 Z가 격파하고 웃는 것으로 끝낸다. 그렇게 원본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C는 배우용 극본에 그것들을 뺐다. 그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냈다. C는 그렇게 쓰며 울고 있었다. 아마, 울고 있었을 것이다.

Z(남자) : (男이라는 글자를 최대한 그림처럼 그린다. 관객을 향해 몸을 틀고 ‘끝난 것은 아니다’는 표정으로 본다.)

 

(무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