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 작성자 그로잉
- 작성일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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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망쳤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정말, 어쩌다보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시험을 쳤고 거짓말처럼 15번을 풀고 있을 때 종이 쳤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2학년의 첫 시험은 끝이 났다.
시험이 끝난 학교는 썰렁했다. 친구도, 선생님도 모두 시험이 끝나고 찾아온 황금 휴일을 을 맞으러 학교를 떠나 집으로, 휴가지로, 시내로 나갔겠지. 하지만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언제부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놓쳐버렸는지. 하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엔 풀다만 수학 문제들이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였다. 시험 결과를 묻는 독촉 전화겠지. 내 핸드폰 화면에서 ‘엄마’라는 글씨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 벨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받았다. 시험결과를 묻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난 그냥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란 존재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물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지듯이, 그렇게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엄마는 조용한 전화너머의 나의 상태를 알아 챈 것일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행이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쩌다 나는 시험을 망쳐버린 걸까?
어쩌다 나는 문제를 번 까지 풀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다 나는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일까?
그러다 문득 나와 같은 점수를 맞고는 저번보다 올랐다고 좋아하던 내 짝꿍이 생각났다. 그 아이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든 것일까? 언제부터 나는 이 점수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을까?
그 아이는 나와 초, 중, 고를 같이 나온 10년 지기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10년 째 알고지낸 친구이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 아이를 ‘비교상대’로 두지 않은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말하자면 나의 비교상대에서 탈락한 것이다. 중학교를 거치면서 나와 그 아이의 차이는 두드러졌다. 나는 주로 맨 앞줄, 그 아이는 주로 맨 뒷줄에서 수업을 들었다. 나는 주로 학원에 있었고, 그 아이는 주로 시내에 있었다. 나는 주로 공부이야기를, 그 아이는 주로 영화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1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먹한 것은 당연한 일 이였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였다.
공부벌레, 전교1등, 엘리트, 계산기, 천재.
나를 따라다니던 별명 중에서는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진저’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 아이다. 얼굴이 까매서 영화 ‘슈렉’에 나오는 생강빵과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였다. 내가 가진 별명 중에 가장 아끼는 별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나의 성적과 관련되지 않은 별명이었다. 정말 나를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그 별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집에 와서도 괜히 실실 웃었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처음으로 올백을 맞았던 그때였다. 전교 1등을 하고 좋아했던 그때였다. 선생님께 성적으로 칭찬을 받았던 그때였다. 아쉽게 하나 틀렸다며 울음을 터트렸던 그때였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그 아이와 웃으며 지낼 수 있었을까?
비로소 내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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