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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루소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5-01-14
  • 조회수 346

깡, 깡. 망치로 정을 내리치는 소리가 빈 작업실에 스산히 울려 퍼졌다. 그 기이하고도 매몰찬 소리는 작업실이 꽉 차 있을 때는 마냥 생동적이다. 어떤 때는 마치 그 금속성의 소리들이 화음을 이루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한 것이었다. 소리에 소리가 겹쳐지며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울림들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 혼자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그 소리가 그리도 기묘하게 울리는 것이었다.

*

“미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회화의 경우에는, 느끼는 그대로 물감을 묻혀, 붓을 움직입니다. 그것이 역동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고, 잔잔한 움직임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분방함은, 추상파 작가 칸딘스키 특유의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추상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내려 애썼어요. 반대로 차가운 추상의 대가로 불리는 몬드리안은 감정을 절제하기로 유명하죠.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딱 맞아떨어져, 그의 연작(連作)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하학적, 때로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냉철해 보이는 그의 작품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하게 느껴지는 떨림 따위의 요소들이 눈에 보입니다. 결국 이는 '미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작품입니다.”

“교수님, 조각도 그런가요?”

“당연하지요. 조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부르델의 <헤라클레스 동상>은, 그의 열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는 조각입니다. 부르델의 스승이었던 로댕 또한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등 여러 걸작을 남겼죠. 로댕의 조각은 특히 감정 표현을 세밀하게 해 냄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으로 이 둘이 미술사에 길이 남는 조각가로 불리지요. 몸통뿐인 토루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리스 헬레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조각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폴로니오스의 <벨베데레의 토루소>는 역동적인 남성성을 내포하고 있지요.”

*

둔탁한 통증이 그의 발등에 느껴졌다. 실수로 망치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흔한 일이었다. 발의 통증보다는 한 쪽 팔이 더 아려왔다. 어릴 적 사고로 오랜 시간 작업을 할 때면 그 때마다 그랬다. 일종의 후유증이었다.

 

깡, 깡. 다시 기묘하고 으스스한 그 소리가 울렸다. 한 번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대리석 조각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울려왔다. 정과 망치의 마찰음이 교수님의 목소리 사이를 요상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법한 그 목소리는 상쇄되기는커녕 마치 서로 공명하는 것처럼 웅웅거리며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패여 나가는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렸다.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가고 있는 그 대리석상은 어딘가 요상했다. 보면 볼수록 기묘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형체였는지, 분위기였는지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제 성에 차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그는 제 하얀 얼굴을 찌푸렸다. 한참이나 그 석상을 보고 있던 그는 잠시 책상에 올려두었던 망치와 정을 다시 집어들었다.

 

깡. 석상의 팔을 내리쳤다. 팔 하나가 몇 번이나 내리치고 나서야 떨어져 나갔다. 다른 쪽 팔은 맥없이 바스라졌다. 붙어 있는 것이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리석을 눕혔다. 깡, 깡. 한 쪽 다리가 부서졌다. 나머지 한 다리도 몇 번 내리치자 쩌억 금이 가더니 갈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인물상’이라고도 칭하기 힘들 법한 인물상을 다시 세웠다. 비틀거리는 석상에 자신도 함께 비틀댔다. 간신히 중심을 맞추어 바닥에 고정시켜 놓고서는, 석상의 목에 날카로운 정을 대었다. 깡. 대리석이 무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힘이 셌던 것이었는지. 단 한 번의 망치질로 머리가 날아갔다. 석상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시야가 닫혔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작업실에 울렸다. 이번에는 예의 깡 소리가 아니었다. 망치와 정, 그리고 바닥의 마찰음이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있던 자리에는 토루소 한 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아니 토루소의 앞에는 그것과 흡사한, 아니 완벽히 같은 토루소 한 점이 나뒹굴고 있었다.

미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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