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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고하며

  • 작성자 창지자
  • 작성일 2012-01-30
  • 조회수 536

남자는 얼마 전 개통된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 햇살이 남자가 있는 플랫폼과 철길을 비추었다. 철길에는 비가 내리고 난 뒤라서 그런지 여기저기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그래, 이제 모두 안녕이다. 이 정들었던 땅도 하늘도.”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비가 그쳐 청쾌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날도 이런 날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그 날 그들은 헤어지기로 했다. 잠시, 잠시 헤어지기로 했다.

처음 남자가 커피숍에서 여자에게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했던 한 달 전, 여자는 남자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에게 차분하지만 목소리로서도 부풀어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톤으로 설명했다.

 

“말 그대로 여행을 갔다 오겠다는 거야. 그냥 이렇게 여기 있는 거 뭔가 아닌 것 같아서 말야.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그러나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내가 싫어. 그런 건 충분히 여기서도 할 수 있잖아!”

 

여자의 목소리에 커피숍 안의 사람들이 모두 남자와 여자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고작 반년 정도인데, 그건 군대 갔다 제대하는 것보다도 더 짧잖아.”

“그 소리로 해결될 문제야? 나 안 보고 싶어?”

“안 보고 싶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보고 싶지. 하지만 참고 성장하러 가는 거잖아. 이건 공부하러 가는 거니까 참아줘.”

 

여자의 반문에 남자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공부 좋아.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그것도 한 달 전에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아. 아마 이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제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으면서 빌었다. 제발 보내달라고. 하지만 여자는 끝끝내 남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남자가 서 있는 플랫폼으로 기차가 접근해 들어왔다. 남자는 기차가 플랫폼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기차에 올라탔다.

그 후로 여자는 남자의 전화와 문자 그 모든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가 기분 들으면 기분 좋아할 말들까지 동원했지만, 여자는 그 날 이후로 남자에게 어떠한 연락도 해오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가 떠날 날짜가 다가오고, 남자는 하숙집을 정리하고 집 안의 물건들을 처분했다. 그러다가 문득 하숙집 밖에 있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는 낡고 오래되어보였지만 기름칠만 몇 번 하면 못 탈 것도 아니어서 팔기도 뭐했다.

남자는 자전거의 처분에 대해 고심했다. 그러다가 여자에게 자전거를 주기로 했다. 이전에 남자는 여자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최근에는 여자가 자전거를 사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여자에게 자전거를 주기란 어려웠다. 자전거를 주려면 여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만, 여자는 지금 남자의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남자는 여자 몰래 여자집 앞에 자전거를 놓고 오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여자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가는 도중에 잠시 슈퍼에 들려 커다란 비닐을 하나 샀다. 그리고 여자의 집에 도착해서는 자전거가 비에 맞지 않도록 좀 전에 산 커다란 비닐을 자전거에 씌우고 짧게 메모를 남겼다.

 

‘미안해, 하지만 이게 최선이야. 너에게 주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야.’

 

그리고 그렇게 남자는 여자의 집에서 떠났다. 남자가 여자의 집을 떠나자 막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져 땅을 적시기 시작했고, 남자의 어깨도 적셨다.

남자는 터벅터벅 빗속을 걸었다. 혹시라도 뒤에서 여자가 달려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거였다. 여태껏 자신의 연락은 받지 않았으니까. 그 정도로 자신이 떠나는 게 싫을 테니까. 그런데 자전거 하나 선물했다고 자신을 찾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 돌아가서 목욕이나 해야겠다.”

 

남자는 그러면서 빗방울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항상 그렇다니까! 매번 자기 마음대로지.”

 

그때, 남자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숨이 차다는지 내신 헉헉거렸다. 남자는 그 목소리에 조심스레 뒤로 몸을 돌렸다. 그 자리에는 여자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뭐야, 왜 나온 거야?” “왜 나왔다니?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고작 자전거 하나 선물하면 내가 나는 기다릴 테니까 넌 무사히 갔다 돌아와 라고 할 줄 알았냐?”

 

남자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자가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랐고,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가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여자가 말했다.

 

“뭐, 하지만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갔다 와도 돼.”

 

남자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여자를 돌아보았다.

 

“뭐가 그리 놀라는 거냐고. 나도 그렇게 속 좁은 여자는 아니란 말야. 그리고 애초에 네가 갑자기 떠나기로 했잖아. 세 달 전도 아니고. 한 달 전, 그건 너무하잖아. 그래서 나 너 떠날 때 배웅 안 나간다. 그리 알아둬.”

 

남자와 여자는 그것을 끝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남자는 지금 기차에 몸을 싣고 플랫폼에서 많이 멀어져있었다. 그때 말한 것처럼 역에 남자의 배웅은 나오지 않았다. 괜찮았다. 그것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여자가 주는 작은 벌이었으니까.

이제, 기차의 차창에서는 더 이상 플랫폼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다. 드디어 남자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문자를 보낸 곳에서 답장이 왔다. 남자는 답장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안녕, 작별을 고하며.

  

작별을 고하며 by.페퍼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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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딩으로서의 마지막 글이네요. 이곳을 알게 된지가 2년,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네요.

 그래서 뭔가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고 사라지려고 해서 짧은 꽁트 하나를 올리려는데, 참 제목도 작별을 고하며 라니.... 웃기네요. ^^ 어쨌든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창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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