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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길 위에서.

  • 작성자 western
  • 작성일 2012-01-02
  • 조회수 162

청명한 하늘 아래, 시골 한 구석을 차지하기로 했다. 오후의 볕이 잘 드는 우리 집은 둘이 살기에 충분한 크기이고 세 끼를 너와 나를 위해 차리며 사랑을 한없이 나누며 살아가기로 약속했다. 내가 다 봐 놨으니까 걱정 마, 하고 그녀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많고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모두 그녀와 함께할 미래를 위한 것이기에 실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4월 17일,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미리 고른 가구와 짐을 부치고, 기차표 두 장을 끊어 난 계속 기다리고 있다. 곧 다가올 커다랗고 새하얀 행복에 사로잡혀 실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계속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까지 미룬 이 사랑이 이루어지리라 의심치 않았다. 우리의 결정을 어찌하실 수 없을 거야. 손을 마주잡고 우리만 견뎌내면 돼, 하고 속삭이기도 했다. 어쨌든 힘든 시간을 이겨내었다.

기차 시간은 3시 40분이었다. 30분 먼저 온 나는 의자에 앉아 트렁크 손잡이에 손을 포개어 턱을 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초조한 기분 이었다. 목이 마른 것 같아 잠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두 캔을 사서 다시 의자로 돌아왔다.

어쩌면 싸울 지도 몰라.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날 덮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에 그녀에 대한 의심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 혹은 아기의 출산이나 건강 같은 문제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했다.

시계는 어느새 3시 42분을 향하고 있었다. 10분 안으로 모두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직 오지 않은 그녀를 기다리며 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던 그녀의 나쁜 버릇이 생각났다. 그 문제로 많이도 싸웠었다. 꼭 째깍째깍 제 시간에 나오라고 하면 10분쯤 늦게 나오던 그녀가 얄미워서 나도 얄궂게 놀리는 말투로 말하다가 공원에서 한바탕 싸운 적도 많았다. 결국은 내 고집대로 제 시간에 도착한 그녀였다. 한번은 급하게 나왔는지 머리가 이리저리 뻗쳐 있었는데 그게 더 사랑스러웠었다.

계속 머리 위에서 명랑하게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에 맘이 조급해진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음성 녹음 멘트뿐이었다. 배터리 충전을 까먹은 탓일 거야. 자주 그러기도 하잖아. 열쇠가 손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찾아 헤매고, 케이크 속에 숨긴 반지가 바로 옆에 있어도 다른 곳을 파헤쳐 버리는 사람이니까.

생각해보면 그녀의 지각은 나와의 기억에서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전에 그녀도 말하길,

“나랑 만났던 남자들 중에 너만큼 길게 기다려준 남자도 없을 거야. 봐, 지금도 20분 늦었잖아. 나랑 사귄 시간 분에 네가 날 기다린 시간 계산하면 많이 차지할 걸? 너도 참 신기해.”

“네가 신기할 만큼 내가 많이 기다리긴 했지. 그래서 꽤 노하우가 생겼어. 나도 이제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오거든. 언젠가 네가 날 기다리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그 때 나는 그녀 못지않게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었다. 연애 초반의 그 싱그러움이 새삼 다시 느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기를 멈추진 않는다.

3시 50분. 내 삶의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무미건조한 기계음을 내며, 느려지라면 빠르게 빨라지라면 느리게 간다. 지금은 너무나 빠르게 약속시간에서 금방 10분이 초과되었다. 그녀의 핸드폰도 여전히 불통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조금 망설이다 까칠한 그녀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태연의 ‘만약에’였다. 그녀의 동생은 조울증이라 할 정도로 감정기복이 심했다. 언니가 결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순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난 양의 눈물을 한가득 쏟아내는 것이었다. 난 당황한 나머지 미안하다고까지 말했던 것 같다. 한 5분쯤 울고 나니 배가 고프다며, 미안하다면 갈비탕 한 그릇을 사줘요, 라며 도도한 걸음으로 갈비탕 집에 갔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자 갈비탕을 먹으면서 나와 그녀의 연애 사를 시시콜콜 캐묻는 것이었다. 웃긴 말도 수시로 해대는 바람에 배꼽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이 난다.

“형부가 웬일이야?”

냉정한 목소리였다.

“언니 있잖아, 어디 갔는지 알아? 전화를 안 받아서.”

“……몰라요?”

“뭘 말이야?”

그녀의 말줄임표에 생략된 말들이 무언의 압박을 해왔다. 난 나도 모르게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말해봐, 뭐야?”

지금 내 안달 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건 동생의 대답뿐이었다.

“언니 지금……저랑 같이 있어요.”

지금은 3시 58분. 나와 만나기로 한 이 시간에 왜 그녀가 그녀의 동생과 같이 있는 것인지, 난 솟구쳐 오른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소리쳤다.

“바꿔 봐, 바꿔!!!!”

격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의 눈물샘은 뜨거운 분노 한 방울을 흘러내리게 했다.

“…여보세요?”

그녀다. 안정되었지만 미안한 감정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왜 안 나왔어? 3시 40분이였잖아! 네가 분명 약속한 3시 40분이라고!”

“…미안해 민수 씨. 나 사실 가진 거 다 버리고 가족들 곁을 떠날 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나봐. 우린 공통점이 많았고 통하는 것도 많았지만 당신과의 사랑에서 난 자신이 없었어. 당신은 나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모습들에 난 부담을 느꼈어. 미리 당신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미안하다고, 당신의 사랑이 나보다 적었다고, 나와 함께 다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고 다 끝나는 건 아냐!! 모든 걸 버리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어!! 널 이해할 수 있어! 아니, 이해하게끔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우리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더 이상 나한테 실망하시는 부모님 모습 보고 싶지 않아. 버티는 나도 힘들고. 민수 씨도 힘들잖아. 그냥 여기서 끝내자.”

“서연아, 이러지 마!!”

“…나 지금 비행기 안이야. 곧 이륙해.”

그녀는 나와 반대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겉모양과 속마음은 다르다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나와는 뿌리 끝까지 달랐던 것이다. 난 그녀와의 말도 안 되는 미래를 꿈꾸는 등신이었고 그녀는 현실을 잘도 받아들이는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사람을 속까지 알면 알수록 내 마음은 곪아 들어갔다.

“앞으로는 나 같은 나쁜 년 말고 착하고 당신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그런 여자 만나. ……미안해, 상처 줘서.”

뚝, 전화가 끊겨지며 억센 쇠사슬 같을 줄 알았던 관계의 고리가 물거품처럼 씻겨 나갔다.

풀썩, 다리에 힘이 풀린다. 가슴 속에서 배신이란 단어가 어느 새 생긴 무덤 앞에 꽂혔다. 곁에선 하얀 나비가 훨훨 날고 있었다. 단지 한 마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시각, 4시 34분. 기차역의 넓고 큰 유리창에 청명한 하늘이 그대로 비춰졌다. 의자 다섯줄을 비추는 햇볕이 유난히 밝고 시렸다. 기차역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늘은 평일인데다 지금은 4시 반쯤 이니까. 내 트렁크에 눈길이 갔다. 갖가지 옷가지와 그녀를 위한 장미 한 송이가 담겨져 있는, 장미향이 배어있을 이 트렁크가 징그럽게 싫었다. 결국엔 지갑만 빼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아있을 트렁크와 기차표 두 장이 장미향을 번져오기 전에.

역에서 나와 걸어서 집으로 가려 했다. 걷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안 나니 말이다. 4월이라 그런지 벚나무가 여기저기 봄의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길 양쪽에 늘어선 벚나무에서 하얀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높고 따스한 하늘과 하얀 벚꽃,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에 그녀가 생각나는 건 뭘까? 또 눈물은 쪽팔리게 왜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손을 흔드는 것 같다. 화려한 봄에 시린 이별을 맞은 내게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흔들고 있다. 그에 나는 알 수없는 고갯짓을 젓는다. 비틀리는 걸음 때문인지 인사를 하고 있는 건지는 나조차도 모르겠다. 도대체 하나도 알 수 없는 세상일에서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지금이 아름다운 봄이라는 것과, 눈물이 난다는 것과, 집으로 가는 길이 무지하게 외롭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떠나보내기 힘든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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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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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stern
  • 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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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stern
  • 2012-10-27
향기

이 나라의 여인들은 향수로서 구분되어진다. 귀족들은 화려하고 짙게 남는 장미 향. 서민들은 은은하고 소박한 데이지 향. 또한 남자들은 엄지에 끼는 반지에 박힌 보석으로 구분되었다. 귀족들은 빨갛게 빛나는 핏빛 루비. 서민들은 하얗게 빛나는 수정. 나머지 하층민들은 향수와 보석 박힌 반지를 살 수 없었다.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음식점을 들어설 때도 사람들의 향수를 은밀히 맡는 사람들이 문 앞에 서있었고 그에 따라 대접받는 서비스의 질은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값싼 음식을 시켜야 하는 하층민들은 차라리 자기들끼리라도 편히 먹을 수 있는 전용가게를 차리게 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신분의 경계는 더 두꺼워지게 되었다. 어느 날, 일간 신문에 크게 실린 한 남녀의 결혼식. 귀족층과 하층민의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신분의 차이를 견뎌낸 그들의 의지가 적힌 글이었다. [ 전 이 여자를 사랑해왔습니다. 11살 때부터였죠. 그녀는 늘 우리 집 화단을 가꾸어 왔습니다.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매일 아침 새하얀 햇살을 받으며 물뿌리개를 들고 이리저리 세심하게 물을 주는 그 모습에 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빠졌나 봅니다. 하지만 그녀는 꽃들에게 물을 주고 나서 씻어야 했습니다. 그 향을 가져가려고 일부로 장미꽃 주변을 오랫동안 서 있다는 말을 제 누이가 어머니께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몸을 씻는 그녀가 안타깝고 가슴이 시려왔습니다. 신분의 굴레에 갇혀버린 그녀의 현실을 마주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전 귀족으로 태어나 부유하게 자라왔지만 그 사실이 절 부끄럽고 염치없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제 생각 그대로 말이지요. 처음엔 화가 나신듯 불거진 얼굴을 하시던 어머니는 차분히 설득하려는 제 노력과 마음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새빨간 장미 스무 송이를 정성스레 포장해 그녀의 팔에 안겨 주었습니다. 그 이후 제 누이와 그녀는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친한 사이가 되었고, 저와 그녀 또한 약간의 반대와 염려들을 딛고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향기들의 아름다움을 도대체 누구와 나누고 행복해질 것인지. 갈라진 사회의 계급이 도대체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는지. 화합과 평화의 사회를 외치는 귀족들의 우월의식은 이 나라가 붕괴하고 나서야 우아함이 아니란 걸 알 것인지. 이 정원은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매일 아침 행복하고 아름다운 향기와 모습을 선사합니다. 날마다 우리 모두는 대화하며 공유합니다. 이 정원의 향기로 인해 우리는 모두 같이 행복해지고 나누고 공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는 모든 이들의 생각에 조금씩이나마 제 마음과 생각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그 날 아침, 작은 변화 하나가 일어났다. 한 꼬마가 광장의 중앙에 장미 꽃 한 송이를 놓아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또 다시 장미꽃 세 송이를 두고 갔다

  • western
  •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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