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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헤매는 방법

  • 작성자 인남사
  • 작성일 2011-07-25
  • 조회수 334

 






갈림길에서 헤매는 방법









천천히 골라 보세요, 하고 누굴 농간하는 것처럼,

가판대 위에는 갖가지 간식거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네들 하나하나와 일일이 눈을 마주했다. 그네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그네들을 점찍은 만큼 살 수 있는 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진열대 뒤의 그것들을 최대한 오래 노려본 뒤에, 관찰할 때는 안중에도 없었던 크래커 하나를 집어 들고, 변덕스러운 선택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기 전에 계산대 위로 가져갔다. 돈을 내는 순간부터 이 선택은 바꿀 수 없다. 차라리 그렇게 되는 쪽이 편했다.

선택이라는 것이 싫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게 된다는 법칙 자체가 싫었다. 둘 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인데도, 그걸 저울질해서 스스로 한쪽을 버리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악랄하다고 생각했다. 얻는 것 때문에 후회하고 잃는 것 때문에 슬퍼하고, 하는 그런 일이 없는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 태어난 것 자체가 선택의 결과였다. 가만히 물러서 있는 것보다는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쪽을 택했고, 그래서 셀 수 없이 많은 선택 사이에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크래커 같은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하지만 그것도 자체로 선택이었고 얻는 것은 우유부단이라고 멸시받는 일뿐이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은 편의점 가까이 붙어 있었다. 머리 위는 맹물에다 우유를 섞어 놓은 것처럼 희부옜고, 비가 온 뒤라 땅이 젖어 거무죽죽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추위가 느껴졌다. 버스는 빨라야 오 분 뒤에나 올 것이었다. 그러면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뭘 고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았다. 얻는 것은 없지만, 잃는 것도 없었다.

바로 거기 놓인 벤치를 보고 있었다. 편의점 출입구의 유리문에서 몇 걸음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키 큰 남자가. 갑자기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서는. 가지 못해 서서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키 큰 남자가 말했다. 저기요,

돈 좀 빌릴 수 없을까요?

남자는 자기가 한 질문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손한 말투로, 공손하다기보다는 소심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그 질문에 담긴 뜻을 자세히 설명했다. 저, 차비가 없어서,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으면 집에 돌아가질 못하는데, 그래서 차비가 있어야 차를 타는데,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데, 저, 그래서 이천 원만 빌릴 수 있으면, 차를 타고 집에 갈 수 있는데, 저기, 어떻게 이천 원만, 실례가 되는 건 알고 있지만, 빌릴 수 없을까요?

그곳을 겨우 지나 다다른 곳은 또 여기였다. 여기서 이천 원을 주고 이 남자가 차를 타고 집에 가도록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자리에서 당장 택시를 잡아타고 먼저 집에 가 버릴 수도 있었다. 갈림길을 지나 또 다른 갈림길이었다. 가능하다면, 길 찾는 것 따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고 그 사람 뒤만 졸졸 따라서 집까지 가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 좁은 버스정류장 안에 사람이라고는 키 큰 남자와 그에게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람 한 명밖에는 없었다. 갈림길 앞에서 길을 찾는 방법 같은 걸 누군가 알려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누구한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모든 선택은 전부 스스로 해야 했다. 얻을 것은 스스로 얻어야 하고, 잃을 것은 스스로 잃어야 했다. 불쾌한 기분으로 대답도 아직 하지 못하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상대방의 얼굴에 떠오른 불쾌한 표정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혀가 굳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제가 사실 지금 돈이 안 되는데,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크래커를 하나 더 사고, 남자에게 이천 원을 준 뒤에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도 지갑이 비지는 않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돈이 실제보다 더 부족하다는 얘기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혀가 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말도,

일단 천 원만 드릴게요.

남자를 빨리 떼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도중에도 약간의 아량을 베풀 여유가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놀란 부분이었다. 남자는, 액수 문제는 차치하고 이렇게나 선뜻 긍정하는 대답이 나올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네, 괜찮으시다면.

지갑을 열고 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꺼냈다. 남자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이쪽으로 내밀었다. 키가 큰 만큼 손바닥도 컸다. 그 큰 손바닥 위에 천 원을 올렸다. 이 순간부터 선택은 바꿀 수 없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한층 더 소심해진 목소리로 몸을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자와 버스정류장에서 떠났다. 아무것도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내,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눈이 뜨였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도중에 잠이 깬 것은 마지막으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잠에서 깬 이유도 불쾌한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다가 한밤중에 깬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길을 잃었다고 할까, 기억이 없는 길 한가운데에 혼자 서 있을 때의 느낌이었다. 양쪽 길 사이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 그런데 거기에 길이 정말 단 두 개뿐이었을까?

침대가 붙어 있는 벽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크게 부풀어 펄럭이는 것을 보고 알았다. 평소에는 잘 열어놓지 않던 창문이었다. 매일같이 커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닫아 놓고도 닫혔는지 열렸는지 모르고 지냈었는데.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았었는지,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열린 그 창문으로 바깥에서부터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한기가 이불 속으로 스몄다. 잠이 들 때 약간 방해가 되는 정도기는 했지만, 잠을 자던 도중에 깰 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커튼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가로등 불빛을 향해 얼굴을 두고 있었다. 찬 공기가 벽을 타고 내려와 얼굴을 감쌌다. 갑자기 어떤 감정에 휩쓸리듯 앉은 자리에서 발돋움했다. 창틀을 붙잡고 상체를 바깥으로 내밀어 밤 공기를 받았다. 아래쪽에 누런 불빛으로 서 있는 가로등이 보였다. 그 불빛이 길을 따라 이 앞에서부터 양쪽 끝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로등 위에 다른 불빛은 없었다. 켜져 있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다 새카만 가운데 누런 가로등만이 빛나는 걸 보고 있자니 이상했다. 정말 가로등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몰랐다. 일단 바깥에 나가 보고 싶었다. 나가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신발까지 제대로 갖춰 신었지만 문은 잠그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은 그리 세게 불지 않았다. 비 온 뒤의 대기는 맑고 차가웠다. 가로등이 줄을 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더 누레지는 불빛을 몇 개나 지나왔는지 모른다. 길 양옆으로 비켜선 건물들은 가로등 불빛 뒤에 숨어 있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창 하나하나마다 그만큼의 밤을 담아 놓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저 죽 따라가기만 하던 길 앞을 또 하나의 길이 가로막고 있었다. 폭이 넓은, 새카만 길이었다. 아스팔트를 씌운 땅이 빗물에 젖어서 더 검게 보이는 것이었다. 길 반대편에 작은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서 큰길 반대편에 닿았다. 벤치가 놓인 자리 주변은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풍경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 건너온 쪽을 바라보니, 얼핏 아주 많은 길이 한 데 뒤엉켜 있는 것 같았다. 길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그중에서 걸어온 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길의 수만큼 많은 가로등의 대열이 제각기 다른 길을 따라가며 늘어서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로등 사이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였다.

문득 생각난 듯이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입에서 울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어느 길로 이곳까지 왔는지, 어느 길로 그곳에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갈림길 앞에서, 어쩌다 길을 헤매게 되었을 따름이었다. 몸이 들썩이며 앞으로 기울여졌다. 머리를 무릎 위에 얹었다. 언제부터인가 등을 다독여주는 손이 있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속에서 새어나오는 울음을 계속 쥐어짰다.

다 우셨어요? 키 큰 남자가 물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금 갈림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림길은 전과 같았지만 마음이 가벼웠다. 혼자 남은 것이 두려워 울든, 혼자 남으려고 여기 와서 섰든 길은 직접 골라야 하는 것이었다. 문득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키 큰 남자는 수줍어하며 웃었다. 아직 천 원밖에 못 모았거든요. 그가 벤치에 앉자 눈높이가 한층 낮아졌다. 이젠 그나마도 소용없게 되었네요.

가로등은 그렇게 한참을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편의점의 유리문은 열린 채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편의점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그보다 키가 약간 작은 진열대 사이를 거닐다가, 얼굴을 이쪽으로 향하고 자리에 섰다. 부스럭거리며 봉지 하나를 집어든 그는, 곧장 나오지 않고 계산대 앞에서 다시 한 번 멈췄다. 손에 그의 손바닥만 한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남자는 윗옷 주머니를 더듬어 지폐 하나를 꺼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아도 그가 낮에 받은 천 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계산대 위에 한 번 접은 지폐를 올려놓고 편의점을 나왔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돌아와 벤치에 앉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다. 울음을 밖으로 다 게워 내고 나니 텅 빈 배가 쓰렸다. 찬 공기에 어깨를 움츠렸다. 남자는 포장을 뜯었다. 비닐 포장 안에 남자의 손바닥만 한 빵이 들어 있었다. 남자는 빵을 두 쪽으로 나눴다. 서툴게 잘린 반쪽 하나가 눈앞에 내밀어졌다. 얼결에 받아든 빵은 남자의 손에 남아 있던 온기로, 조금은 따뜻했다. 가로등 불빛은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갈림길은 여전히 여기서 뒤엉킨 채였다. 길은 단 두 개뿐이 아니었다. 나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얻을 것이 있으면 잃을 것도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잃어야 했기에,

우리는 길을 헤매고 있었다.





=


문득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요정이나 새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약간의 변덕이었습니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얘기가 아니라 두 발로 직접 걸어 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만, 의도한 대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 때는 하고 싶었던 얘기였겠지만 지금은 긴가민가합니다.




인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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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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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남사
  • 20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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