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의 집
- 작성자 호치키스
- 작성일 201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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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워진 컴퓨터의 열기 주위로 거슬리는 파리 소리가 윙윙 거렸다.
“그 남자는 진짜 도대체 뭔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요. 현측과에서 그 남자 별명이
뭔지 알아요? 도마뱀이래요, 도마뱀. 뭐 좀 해보려고 하면 꼬리를 툭 끊고 도망가버린다구.
여간 사람이 독했으면 회식한 번 들린 적이 없다네요. 사람 자체도 워낙 퉁명스럽구.”
옆자리 오대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닥였다.
독고영수. 도마뱀으로 통칭되는 그 사람은 며칠 째 회사 안에서 장안의 화재였다.
우리 도시설계회사에서 현장측정을 맡고 있는 사람인데 사람이 워낙 제멋대로라 일을 하나
맡으면 회사를 놀러 다니는 듯 내킬 때만 한두 번 들리는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몇 년 간 밥줄을 철통같이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이 일하나는 제대로 해내는 덕분이었다.
요즘 그 사람의 뒤꽁무니가 떠들썩한 이유는 그 남자가 자기 형을 죽였네 마네 하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오대리는 콧등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닦아내며 수근거렸다.
“어쩐지 사람 눈매가 예사롭지 않고 찜찜하더라니. 오히려 그 남자 회사 안 나오는 게 다행이지 뭐에요. 보면 오싹할 것 같아요. 세상엔 왜 이리 이상한 사람이 많은지, 원.”
좁은 사무실 안. 28℃가 넘어가야 에어콘을 틀어주겠다는 부장의 으름장에 늙은 선풍기
몇 대만 털털털 아픈 소리를 내며 겨우겨우 바람 몇 조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지근해져버린 눅눅한 일회용 냉커피를 홀짝이며 오대리의 얘기를 듣자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워낙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얼굴은 한 번도 못봤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심증을 듣자 tv에서 본 흉악범의 얼굴이 그려졌다.
“요번에도 그 사람 무슨 일 맡지 않았나요?”
“맞아요. 그 사람 고향이 바다 쪽인데 주위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네요.
거기에 돌봄 센터를 짓는다는데 그 부지 현장측정을 맡았대요. 말이 돌봄 센터지, 그냥 정신병자들 집합소라는 말이 있어요. 섬에 다 몰아넣겠다는 얘기죠. 어쩜, 이런 게 적재적소지. 안 그래요? 거기에 여직원 한 명 붙인다는 말이 있던데 누가 하려고 할까요. 다들 밥 그릇 내놓고서라도 버틸 게 뻔하지.”
여직원 한 명이라. 나만 아니면 돼. 불길한 느낌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비록 심증이긴 하나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과 함께 일하기라니.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냉커피의 씁쓸한 맛만 입안을 맴돌았다.
2.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다음 날 회사에 갔을 때 부장이 생전 처음 보는 친절한 미소를 띠고 내게 다가왔다.
“미영 씨가 새 프로젝트 하나에 투입 돼줬으면 좋겠는데. 강화도 야구장 재 건립도 이제 끝났으니 여유롭잖아요.”
“네? 무슨...”
“이번에 간인도에 센터하나 자그마하게 짓는 프로젝트가 나서 말이야. 이번엔 설계부터 건축까지 다 우리 회사에서 맡아 하기로 했거든.”
“제가 경력도 얼마 안 되서 벌써 보조도 아니고 실전에 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기회 잘 없다, 미영 씨. 이참에 경험 쌓는 겸 해봐요. 알았죠? 해볼 만 할 거야.”
말 한 마디 할 때 마다 눈썹을 벅벅 긁는 부장의 정신 사나운 버릇 때문에 정신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런데 사실, 집안에 일이 있다느니 빈혈이 심해져서 당분간 현장은 못 다니겠다느니의 고질적인 핑계조차도 대보지 않은 건 왠지 해보고 싶은 용의가 조금 생겼기 때문이었다.
궁금했다. 그 속 시끄러운 남자는 누굴까.
부장에게 그 사람 집과 현장 주소를 받아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그 사람 고향이라는 해마리는 입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삼 짜증이 났다. 이 더운 날씨에 내가 뭐가 아쉬워 내 발로 찾아가야 하는지.
적막한 시골버스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산 쪽으로 걸어야 했다.
산중의 어울리지 않는 회색 아스팔트가 토해낸 더운 공기가 발바닥을 화끈거리게 했다.
매미우는 소리만 맴맴, 메아리 치 듯 산골짜기를 가득 메운 와중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걷고 걷다보니 얼떨결에 부장에게 들었던 주황색 지붕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청록빛의 대문은 이상하리만치 낮았고, 주황색의 지붕은 불에 그을린 당근색처럼 탁하면서도 오묘했다.
두려움 반 긴장 반으로 낮은 대문을 슬며시 여니 한 남자가 손님은 본 척도 않은 채 흙 묻은 발을 씻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남자가 흘끗 소리 나는 쪽을 보더니 이내다시 발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아지랑이로 공기까지 잡아 삼키는 여름 해 아래 이유 없이 기다리려니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머리는 뙤약볕아래 끝까지 데워져 저 주황색 지붕이 원래 주황색이었을까 아님 저 햇빛 때문에 주황색이 된 걸까 헷갈리기 시작할 정도로 오락가락 해질 무렵, 마침내 웅얼거리면서도 신경질 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로.”
“같은 회사 옆 팀 신입사원 우미영입니다. 간인도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하게 됐어요.”
“......”
남자는 또 아무 말 없이 아주 천천히 세숫대야를 헹궈 엎어놓는 일까지를 아무런 불편함 없게 끝내고는 그제 서야 한 번 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더운데 들어와서 얘기합시다.”
나는 허무함과 짜증을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쓰다만 종이들과 줄자, 커터 칼, 마카 펜 등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이 널려있었다.
남자는 처음 보는 회사동료가 자기와 얘기하기 위해 옆에 앉아있단 사실보단 줄 지어 가는 개미의 집이 어디있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짜증이 솟구쳐 올랐지만 그 남자 집의 벽을 가득 줄 지워 채운 사진들에 눈길을 돌렸다.
익숙한 모습의 날렵한 꼬리의 공룡이 눈에 들어왔다.
“드로메오사우루스.”
“저 공룡을 아십니까?”
남자가 마침내 개미를 쫓던 시선을 거두고 의아한 듯 말했다.
“물론이에요. 어릴 때부터 공룡을 가장 매력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죠.”
남자의 얼굴이 마치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알아봐주는 어른을 만난 어릴 적 비행조종사처럼 은근한 뿌듯함과 반가움으로 가득 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일었다. 어른의 세계에선 공룡에 대한 애정이란 아직
덜 자란 애송이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현존하지 않는 동물에까지 신경 써 주기엔 너무 바빴다.
“공룡이 매력적인 건 지금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알지 못하니까. 궁금하잖아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눈앞에 없으니까요.”
눈에 띄게 활기차진 남자가 대답했다.
“왜 완전히 사라져버렸을까요?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인남녀가 만난지 몇 분도 안 되어서 시시콜콜한 공룡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지만 나는 그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완전한 멸종이라. 이 지구상에서는 멸종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지구상에서 멸종한 이유는 그들이 달라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우주 어딘 가엔 살고 있다고 봅니다. 단지 이 지구를 떠났을 뿐이죠. 맞지 않아서. 저는 그 곳을 찾고 싶어요.”
정말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다시 보니 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보니 소년 같은 면모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잘은 모르지만 신비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몇 개월간은 같이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미영 씨, 간인도 일은 잘 되가요?”
오대리가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더니 말을 붙였다.
“네, 뭐 그럭저럭이요. 잘 되고 있어요. 이제 거의 끝나가요.”
“그 남자랑 같이 일해보니 어때?”
나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던 저 여자가 순간적으로 밉게 느껴졌다. 하지만 순간 나도 그 여자의 말을 듣고 그 남자를 두려워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스스로 민망해졌다. 나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리며, 얘기했다.
“네, 참 좋아요.”
“그래? 그 사람 죽였다는 소문 말이야, 알고보니까 형이 신장병으로 지병 때문에 죽은 거래.”
그렇겠지. 나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덥지 않은데도 손부채질을 했다.
“에게, 내가 원한 반응이 아닌데? 미영 씨, 알고 있었어?”
“네. 처음 그 사람 봤을 때부터요.”
오대리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잠시 어깨를 들썩이더니 자리를 떴다.
나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4.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7, 8월이 지나고 9월의 입구에 당도해 프로젝트가 끝이 나고 환자들이 짐을 들이기 시작했다.
무인도에 가깝던 섬은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햇빛도 한결 누그러졌다.
“간판이 좀 삐뚠 것 같지 않아요?”
“글쎄요. 미영 씨 마음이 삐뚠가 보네요.”
2개월여의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 우리는 장난도 칠 만큼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참 무뚝뚝하고 처음엔 정이 안가는 사람이긴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영수 씨 회사에서 별명이 뭔 줄 알아요?”
“글쎄요. 궁금하진 않습니다.”
“도마뱀이래요. 누군가 다가가면 꼬리를 툭 끊고 도망가 버린다고 그렇대요.”
“도마뱀이라.....재밌네요.”
한 간호사와 작은 할머니가 아까부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대화가 잠시 끊기고, 눈길이 할머니의 굽은 등과 간호사의 간절한 손짓에 닿았다.
“할머니, 빨리 들어오세요. 입원수속 밟으시러 따님 내외가 좀 있으면 도착하신다고 하셨어요. 빨리 이리로 오세요.”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경계 가득한 눈으로 간호사의 손을 뿌리치며 버티고 있었다.
둘의 실랑이가 딸 내외가 도착함과 동시에 고분고분해진 할머니의 작은 항복으로 끝이 나고 둘을 말없이 구경하던 다른 환자 몇몇도 흩어졌다.
산 뒤로 하루의 해가 하루의 삶을 끝내기 위해 뉘엿뉘엿 주황색으로 물들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마 이 섬을 둘러싼 저 나무도 곧 주황색으로 물들며 일 년의 삶을 끝낼 것이다.
“도마뱀의 집이네요, 여기는. 안 그래요? 꼭 당신 같은 사람만 모여있어요.”
나는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안도와 허무감에 무뚝히 장난스런 말을 건넸다.
“도마뱀의 집이라. 그보다 공룡들의 섬이라고 칩시다. 제가 그다지도 찾아 헤맸던.”
나의 농담에 사뭇 진지하게 그가 말했다.
“꼬리 끊고 도망쳤기보다는, 자신이 주변인으로 떠돌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젠틀하게 잠시 떠나 새로운 섬에 잠시 불시착 한 것 뿐 이에요.”
뭍에서 얻은 상처를 보듬으러온 사람들을 바닷바람이 감싸 안고 있었다.
“영수 씨, 그럼 우리도 마찬가지 일지 모르겠어요.”
“물론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죠. 모두들 잠시 떠나 큰 벽을 두른 섬에 살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의 섬이 있어요.”
“왜 하필 섬이람. 섬은 너무 외롭잖아요.”
그가 손위에 개미 한 마리를 얹어놓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섬 만큼 닿기 쉬운 곳도 없습니다. 사면이 들어가는 문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모든 관계와 시작의 가능성이 열려있죠. 누군가가 그 섬에 당도할 의지만 있다면 허약한 뗏목 하나로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요. 이 섬의 이름만 봐도 간인도잖아요.
그저 사람들 사이의 섬일 뿐입니다. 가장 멀고도 가까워요, 이곳은.“
“섬이라..... 재밌네요.”
“당신이 어느 날 작은 경적을 울리며 제 섬에 우연히 들어온 것처럼 사람들 사이의 섬이 조금만 더 가까워진다면...“
“지구상에 다시 공룡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청명한 바닷 내음을 타고 소용돌이쳤다.
주황빛 석양을 가득담은 초가을의 산뜻한 바람을 따라 도마뱀의 꼬리가 사랑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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