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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 작성자 강아지발바닥냄새
  • 작성일 2011-03-13
  • 조회수 501

*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 학원에서 돌아오니 동생 녀석은 내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솜뭉치-우리 집 개 이름-가 다섯 마리나 낳았다며 마치 자신이 새끼를 낳은 양, 자랑스럽게 말했다.

“누나, 누나. 하얀 개 네 마리에 알록달록 한 마리야!”

“알록달록 이라니?”

나는 동생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나 했다. 솜뭉치도 말티즈 견이고 교배시킨 개도 말티즈 견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 둘 사이에 ‘알록달록’이 나올 리 없잖은가. 그 때, 안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순종이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점박이가 나올 수 있어요? …뭐라고요? 이것 보세요. 우리 집 개는 110만원이나 주고 산 순종이라고요!”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의 목소리 톤이 저렇게 하이 톤이 되었는데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통화중인 것 같았다. 아마, 교배시킨 개 주인이겠지.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동생이 한 이야기도 마냥 헛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직 눈도 못 떴을 새끼들을 보기 위해 조촐한 산실이 있을 서재로 갔다. 동생은 옆에서 조용히 하여야 한다며 검지를 지 입술 위에 올려놓고 내게 주의를 시켰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 문을 열었다.

*

생전 처음으로 갓 태어난 생명들과 마주 앉았다. 눈도 못 뜨고, 털도 완전히 마르지 않고 핑크 빛 몸으로 꼬물거리는 생명들을 보자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웠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채 용기가 안 나 망설이고 있을 찰나, 동생이 속삭이며 한 녀석을 가리켰다.

“누나, 쟤야. 알록달록.”

그 녀석은 제 엄마의 배 주변에서 꼬물거리는 제 형제들과 달리 머리맡에서 꼬물거렸다. 솜뭉치는 그 녀석을 끊임없이 핥아주었다. 녀석은 핑크빛 몸에 짙은 갈색의 반점이 있는 걸 제외하면 제 형제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무늬는 동생의 말처럼 알록달록 하다기 보다는 얼룩덜룩했다.

“엄마가 강아지들 주변에 가면 안 된대. 왜냐면 개들은 엄마가 되면 엄청 예민해져서 엄청 사납대.”

옆에서 동생이 끊임없이 작은 목소리로 떠들어댔지만 그런 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갓 새끼를 낳은 개 주변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서재에 머무르는 것이 솜뭉치와 다섯 생명들에게 실례일 것 같아 동생을 일으켜 그 곳을 빠져나왔다.

안방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부엌에서 찬물을 연신 마시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왔니?”

“응.”

“개들 봤어?”

“방금.”

“그럼 그 점박이도 봤겠네.”

“응.”

“그것 땜에 교배시킨 개 주인이랑도 싸웠어.”

“왜 그랬어. 개가 점박이든 아니든 어떻다고.”

나는 엄마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점박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다섯 마리면 다섯 마리 다 점박이라 하여도 굳이 교배시킨 개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날카롭게 화를 낼 일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니? 완벽한 순종이랑 완벽하지 않은 순종이랑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엄마 그럼 그 강아지들 팔려고 한 거야?”

“그럼 그거 팔지, 그걸 다 키우려고? 어머, 얘, 내 등골 빠진다. 너희 둘에 개 하나라도 온몸이 죽을 것 같은데 거기다 개를 다섯 마리나 더 키우라고? 너 엄마 죽일 셈이니?”

엄마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고 나는 내심 실망했다. 다섯 강아지들이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젖 뗄 때 까지는 키워야하니까 두 달? 최소한 한 달 반 정도는 데리고 있어야지. 아, 진우한테는 말하지 마. 말할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어느 샌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뽀로로를 시청하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다섯 강아지들을 다 안 키운다는 사실을 동생이 안다면 아마 엄마의 옷자락을 잡으며 생떼를 쓸 것이다.

*

2주 정도 지나자 강아지들은 눈을 떴다. 하얀 털도 말라 뽀송뽀송했다. 알록달록은 짙은 갈색 반점이 선명해졌다. 솜뭉치는 우리 가족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지 우리가 지 새끼들을 슬쩍 만져도 우리를 빤히 쳐다볼 뿐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내 손보다 조금 큰 새끼들을 만질 때마다 촉감이 너무나 부드러워 나도 모르게 숨까지 멈추고 쓰다듬곤 했다.

어느 날 동생은 나에게 강아지들의 이름을 지었다며 나를 불렀다. 사실 우리 집 개의 솜뭉치라는 이름도 동생이 지었으니 이번엔 어떤 이름이 나올지 약간 기대되기도 하였다.

“누나, 쟤는 제일 덩치가 크니까 나중에 곰이 될 거야. 그니까 백곰이야. 그리고 쟤는 다른 애들보다 눈이 동글동글하니까 동글이구, 얘는 겨울이고 얘는 하양이야. 그리구 얘는 알록달록!”

동생은 손가락으로 강아지들을 하나, 하나 가리키면서 이름들을 말해주었다.

“얘는 왜 겨울이고 얘는 왜 하양인데?”

“음…겨울에 태어났고 얘 네는 하야니까!”

“다른 애들도 다 하얗고 겨울에 태어났잖아?”

“얘 네는 여자니까 이쁜 이름 지어줘야 하는 거야.”

겨울이와 하양이는 여자라 예쁜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는 동생의 원칙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겨울이랑 하양이 이름이 헷갈리면 어떡해?”

“아니야. 안 헷갈려. 왜냐하면 겨울이가 하양이보다 크거든!”

내가 그러냐며, 이름이 참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동생은 신이 나서 엄마에게도 이름을 가르쳐줘야 겠다며 뛰어갔다. 엄마는 알록달록의 이름을 듣고 이름이 너무 긴게 아니냐며 동생에게 타박을 주었다. 하지만 알록달록은 꼭 이름이 알록달록 이어야 한다는 동생의 고집에 엄마는 알겠다며 마음대로 하라며 기권을 들었다. 동생은 강아지들의 이름을 아빠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다. 그런 동생을 보다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생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항상 동생을 갖고 싶다고 했던 동생이었으니, 강아지들을 자신의 동생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틈만 나면 강아지들을 쓰다듬고 말을 걸기도 하니 말이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던 뽀로로 하는 시간도 잊고 강아지들에게 말을 가르치겠다며, 엄마들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강아지들의 눈을 마주치며 가끔 ‘엄마’나 ‘아빠’ 따위의 말들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사실 동생은 ‘엄마’나 ‘아빠’보다는 ‘형’이나 ‘오빠’라는 단어를 더 말하였지만 말이다.

며칠 전에는 엄마가 알록달록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혹시 병이라도 있어 피부에 갈색 반점이 생기고 털 색깔이 변한 게 아닌가, 해서였다. 하지만 의사는 알록달록이 건강하며 말티즈 견 사이에서 나왔다는 것을 신기해했다. 아마도 돌연변이일 것이라면서. 알록달록이 다른 말티즈 견과 다름없어지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던 엄마는 마음이 상해 알록달록을 싫어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엄마는 알록달록을 대놓고 차별하기도 했다.

강아지들이 엄마에게 애교를 피울 때면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잔잔한 미소를 띄웠지만 알록달록에게만은 아니었다. 다만, 귀찮게 여길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강아지들도 서로 장난치며 놀 때 알록달록은 혼자 낮잠을 자거나 강아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솜뭉치만이 알록달록의 옆에 있어주었다. 그런 알록달록을 나와 동생은 안쓰러워했다.

*

한 겨울에 내렸던 눈이 따뜻한 봄 햇살에 녹아들기 시작할 때, 강아지들은 젖을 다 떼고 알갱이가 작고 부드러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그 쯤해서 동생은 강아지들에게 말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매일 친구들을 데려와 강아지들을 자랑했다. 동생의 친구들은 강아지들이 신기한지 만지려고 했고 조심성 없는 그들의 태도에 강아지들은 겁을 먹기 일쑤였다. 게다가 낯도 가리는지 제법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주말이 되고 엄마는 나에게 외출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귀찮아서 안 나가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눈치를 주었다. 엄마가 눈치를 주었음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며칠 동안 동생과 나를 대놓고 차별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외출준비를 했고 엄마는 담요에 하양이와 백곰이를 감싸고 나에게 건넸다.

그걸 본 동생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강아지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고 엄마는 강아지들이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동생은 자기도 간다며 엄마의 옷자락에 매달렸고 엄마는 귀찮다는 듯, 동생을 떼어내고 “넌 친구들이랑 이따가 나가 놀기로 하지 않았냐, 그런데 강아지들을 예방접종 예약을 해놔서 지금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럼 왜 알록달록은 안 데려가? 알록달록은 병 걸려서 아파도 괜찮은 거야?”

“알록달록은 너랑 놀아주라고 남겨두는 거야. 알록달록도 며칠 후에 데려갈 거야.”

동생은 입을 삐죽 내밀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그런 동생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쉰 후에 다른 담요에 이미 감싸져 있는 겨울이와 동글이를 안았다.

*

엄마가 향한 곳은 자주 가던 동물병원이 아니었다. 애견 샵이었다.

“팔게?”

“판다고 했잖아.”

“알록달록은?”

“걔까지 데려오면 얘네 순종 값 못 받아. 잡종견인데 말티즈처럼 나왔구나, 이러지. 너 잡종이랑 순종이랑 가격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알아?”

엄마는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엄마 몰래 한숨을 쉴 뿐이었다.

“강아지 팔아서 돈 얼마나 받는 다구.”

“어머, 얘 좀 봐. 교배비 20만원 주고 이것저것 합해서 본전은 뽑아야지. 게다가 순종은 50만원 주고 팔 수 있어. 잡종은 그 정도 가격에 못 팔아!”

“어쨌든 엄마가 얘네 팔고와. 난 그냥 차 안에 있을래.”

“맘대로 해.”

*

집에 돌아와보니 동생은 스케치북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친구와 놀기로 했다면서 그 시간에 잠든 모양이었다. 알록달록도 동생의 머리맡에서 잠들어 있었다.

“얘는 감기 들면 어쩌려고.”

엄마는 잠든 동생을 안고 방으로 데려갔고 나는 동생의 스케치북을 바라보았다. 스케치북에는 솜뭉치와 다섯 강아지들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털을 빛내는 어린 강아지 네 마리와 덩치가 큰 한 마리. 그 중 한 강아지는 하얀 털 위에 색색 깔의 알록달록한 무늬를 뽐내고 있었다.

동생이 그린 그림 속, 이제는 볼 수 없는 강아지 네 마리를 보며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

그 날 밤,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이 깨버렸다. 정신이 들고 눈을 떠, 시야가 어둠 속에서 조금 익숙해지고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되자 그 새 멈추었던 소리는 다시 나기 시작했다. 나를 깨운 소리는 방문을 누가 긁는 그것이었다. 조금 겁이 났지만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자 문 앞에는 솜뭉치가 서 있었다.

“왜, 같이 자자고?”

무서움이 많은 솜뭉치가 가끔 내 옆에 누워 잠을 청했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솜뭉치는 거실 쪽으로 갔다. 이런 적은 없었기에 솜뭉치 뒤를 따라간 거실에는 알록달록이 누워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 거실 불을 켜고 다시 알록달록을 보았다. 알록달록은 토사물 옆에 누워 있었다. 알록달록이 많이 아픈 가해서 서둘러 다가가는데 순간, 겁이 났다. 어쩌면 알록달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엄마를 크게 불렀다.

“엄마? 엄마 일어나! 큰 일 났어!”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알록달록이 죽었으면 어쩌나, 그 동안 알록달록한테 잘해주지 못했는데, 하고 자꾸 후회가 되었다.

“왜 그래, 누나?”

그 때 동생의 방문이 열리고 동생이 두 눈을 비비며 나왔다. 평소 잠귀가 밝고 예민하여 내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금세 깬 것이다.

“알록달록이 이상해. 어떡해?”

“응?”

동생은 자다 막 일어나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답답함에 엄마를 한 번 더 불렀다.

“엄마!”

그 때 안방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왔다. 부스스한 얼굴로 실눈을 뜬 엄마는 무슨 일인데 그러냐며 날 바라보았다. 난 “엄마…알록달록, 알록달록.”하며 손가락으로 알록달록을 가리켰다. “알록달록이 왜”하며 내 손가락 끝을 바라본 엄마는 놀라 알록달록에게 달려갔다. 동생은 알록달록이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인지 엄마를 쫓아갔다.

“어머, 얘 왜 이래?”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울먹이고 말았다. 동생은 알록달록을 쓰다듬으며 알록달록의 얼굴을 응시했다.

“알록달록아, 아파? 그래서 토한 거야? 아프면 말을 했어야지. 형아가 병원 데려다 줄까?”

동생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알록달록아, 일어나아. 아프면 자기 전에 병원가고 약 먹어야해.”

또래들보다 체구가 작은 동생은 유독 마음이 약했다. 그래서 어쩌면 알록달록에게 더 마음이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었어, 이미. 차가워”

알록달록을 만져본 엄마는 한숨을 쉬고 알록달록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엄마가 알록달록에게 그렇게 쓰다듬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를 보고 솜뭉치는 알록달록의 몸을 핥았다. 마치 알록달록이 처음 태어났던 그 날처럼.

“아니야, 안 죽었어, 엄마. 알록달록 안 죽었어. 알록달록 안 죽었어, 안 죽었단 말이야! 내가 어른 될 때까지 알록달록이랑 같이 살려고 했단 말이야. 알록달록 지금 너무 아파서 코~ 자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병원 데려가야 해, 엄마. 응?”

동생이 엄마에게 매달리며 억지를 부리자 엄마는 그런 동생을 안아주었다. 동생은 그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나에게 왔다. 동생은 눈물과 콧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내 옷자락을 잡았다.

“누나, 엄마가 알록달록을 병원에 데려가기 싫은가봐. 누나, 누나는 알록달록 병원에 데려가 줄 거지? 그지?”

나는 그런 동생의 얼굴을 소매로 닦아주다가 동생을 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

“너 뭐해?”

“응? 아니야.”

친구의 머리핀을 사기위해 온 팬시점에서 한 노트가 눈에 띄었다. 마치 동생의 그림 속, 알록달록과 비슷한 무늬를 한 노트였다. 알록달록이 생각나 그것을 괜히 쓸어보고 있는데, 친구가 옆에 다가왔다.

“왜, 그게 맘에 들어?”

“그건 아니고.”

팬시점을 나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엄마야.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라 앉아있었다.

“어, 왜.”

-강아지 샀어.

“강아지?”

나는 한숨이 나왔다. 알록달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한숨이 엄마에게까지 들렸는지 엄마는 한 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랑 잠깐 어디 좀 들렸다 오는 길에 애견샵 지나쳤는데, 너도 알잖니. 진우 애견샵 그냥 못 지나치는 거. 시츄 한 마리가 알록달록 닮았다고 사 달라 그러더라.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니. 진우 아직도 알록달록이 그렇게 된 거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한 층의 죄책감과 그리고 한 층의 미안함으로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그 개 이름은 뭔데? 그 개도 혹시 알록달록이야?”

-진우가 아직 안 정했어. 너도 빨리 집에 와서 봐. 정말 보면 볼수록 알록달록 닮았더라.

“알았어. 곧 갈게.”

통화를 마치자 친구는 의아한 눈으로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나는 이따 말해주겠다며 다시 팬시점 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노트를 집어 들었다.

강아지발바닥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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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3
인형의 꿈

집으로 가는 학원 차에 몸을 실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mp3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학원에서 숙제로 내준 영단어 프린트는 하릴없이 내 손에서 뒹굴고 있었다. mp3에서는 최근 컴백한 여성아이돌의 후속곡이 흘러나왔다. 신나는 음악소리에 버스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묻혔다. 버스 안에는 음악소리와 나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나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어둑한 하늘과는 상관없이 화려한 밤거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교복무리, 노출이 심한 아가씨, 비틀대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아저씨 등이 화려한 밤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반대차선에는 교복무리로 한 가득 배를 채운 시내버스가 힘겨워 보이는 뜀박질로 학원차를 지나쳤다. 그리고 화려한 밤거리를 뒤로하고 학원 차는 걸음을 재차 재촉한다. 어느 덧, 학원 차가 한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지고 차 안을 반 절 가량 채우던 아이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차안에서 한껏 굽히고 앉아있던,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버스에서 내렸다.  ***   “성적표 갖고 안방으로 와.”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날카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엄마는 차가운 얼굴로 나를 쌩하니 지나지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 가방 속에서 하얀 종이를 들고 터덜터덜 안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앉은 엄마에게 하얀 종이를 내밀자 엄마는 종이를 거의 찢듯이 빼앗아 갔다. 나는 빈손을 힘없이 떨어트렸다. 엄마의 점점 굳어가는 얼굴을 바라보기 겁나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이걸 성적이라고 들고 온 거야?”언뜻 보이는 엄마가 쥐고 있는 하얀 종이 속 숫자들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엄마는 종이를 나한테 던졌고 종이는 나의 발 앞에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고등학교 갈 생각은 있니? 성적이 그게 뭐야! 것도 공부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어떻게 된 애가 그 모양이야!”엄마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50점대가 어떻게 나와, 어떻게!”지금 내 발 앞에서 형편없는 자세를 취하는 성적표에는 50점 대 과목이 둘이나 있었다. 수학과 미술. 엄마는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다 배운 거잖아, 배운 것. 수업시간에 딴 짓만 안 하면 다 맞을 수 있는 것들인데 왜 이 모양이야!”엄마 말은 맞았다.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 말대로라면 전교생 중 올백성적표를 들지 않은 아이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한다면 엄마 옆에 있는 베개에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았다. “엄마가 너를 보면 억울해. 정말 억울해. 가난한 농사꾼 부모 둔 게 그렇게 한이 될 수 없어. 내가 너보고 김매고 밭메라, 시키디? 소죽 쑤라고 해? 빨래며 청소며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 멕여주고 깨끗한 옷 입혀주는데 뭐가 불편해서 성적이 이 모양이야, 이 모양이! 엄만 너만할 때 니 외삼촌 업어 키우고도 맨날 1등 했어. 맨날 상타오구 100점 맞고. 집에서 공부할 시간도 없어서 정말 수업하나만 열심히 들었어. 문제집하나 보지 않

  • 강아지발바닥냄새
  • 200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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