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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로봇 그리고 M

  • 작성자 白魂
  • 작성일 2010-09-02
  • 조회수 500

 

 철커덕 철커덕.

 아침 6시. 인터B 공장의 불이 들어오면서 공장의 기본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봇 노동력들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가로 12줄, 세로 10줄을 맞추어서 섰다. 곧 그들 앞에 파란 홀로그램이 띠워지고 회장 B가 나왔다.

 “새 아침이 밝았다. 6시가 넘었기 때문에 바로 기계를 가동시켰는데 혹시 불만 있나?”

 회장 B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 B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역시 로봇들이군. 자 그럼 로봇 삼계명을 외치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하나!”

 회장 B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정신이 번쩍 뜨인 로봇 노동력들은 입을 열었다.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의 위대하신 손 밑에서 태어났다.”

 “둘!”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를 위해 평생 일 해야 할 임무가 있다.”

 “목소리를 좀 더 키워라. 셋!”

 “나는 발명자의, 발명자에 의한, 발명자를 위한 로봇임을 잊지 않는다.”

 로봇 노동력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행동을 했으며 같은 모양으로 입을 닫아 말을 끝냈다. 회장 B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됐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끝내도록 하지. 이상!”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로봇 노동력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

 적당한 체격에 군데군데 하얀 머리를 가지고 있는 회장 B는 한숨을 쉬며 비서1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그래, 어제 몰래 우리 회사에 들어온 아이가 있다 했지. 그 아이, 주입은 잘 되고 있나?”

 회장 B의 말에 비서1은 주춤거렸다.

 “아, 그게……사실은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6살 이상은 받지 않는 게 주입 원칙이지만 그 아이는 벌써 8살입니다. 강제적 개념주입기계인 멀티Q를 실행하려고 할 때마다 재빨리 알아차리고 도망가기 일쑤예요. 게다가 반항도 심하구요.”

 비서1의 말에 회장 B는 갑자기 화가 났다. 현재 인터B 공장은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면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 일들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비밀 체제로 바뀌게 되고 직원들은 해고가 되어도 영구적으로 남아있어야 하며 더 이상의 인력도 뽑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비밀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회사에 한 8살 아이가 무단으로 들어왔다. 만약 그 아이가 이 회사를 탈출해 모든 비밀을 말하고 다닌다면. 그 뒤는 벼랑 끝이었다. 무조건 생각을 주입시켜야만 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그 아이는 기계 모습이나 회사 구조는 물론이고 로봇 노동력까지 목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반항도 더 거세구요.”

 “누가 몰라? 이제 그만 나가봐! ……도대체 세계 1위 회사의 보안과 팀장은 뭐하고 있던 거야? 그런 조그만 어린애 하나 못 잡고…….”

 비서1은 회장 B의 말에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회사 보안은 20세 이상의 사람들만을 주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작고 어린 아이는 의심 받지 않을뿐더러 CCTV에 찍혔을 때도 보안요원 교대 시간이라 미처…….”

 “시끄럽다고 했잖아! 비서1은 왜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거야? 이 회사에 묻히는 꼴 보고 싶어? 나가! 당장 나가서 주입과 팀장 호출하고 커피도 가져와!”

 회장 B에 성화에 비서1은 당황했지만 할 말이 남았는지 듯 주춤 거렸다.

 “하, 하지만……회장님. 회장님 몸에는 이미 카페인이 많이 쌓여있는 터라 커피…….”

 “어서 나가! 썩 꺼지라고! 자네는 오늘부로 당장 해고야!”

 고개를 푹 숙인 비서1을 보며 회장 B는 한숨을 쉬었다. 밖에서는 세계 1위 기업이라고 우대해주는 사람들의 눈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는 부족한 점들만 넘쳐나 보였다. 게다가 회사에 오면 화만 폭발하고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혈압이 올랐다고 주치의 A는 얼마나 뭐라고 할까.

 '내가 나이가 몇인데 새파란 의사한테 욕이나 얻어먹고 있어야 되는 거야.‘

 툴툴대던 회장 B 앞으로 주입과 팀장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여기 커피 가져왔습니다.”

 팀장이 가져다준 커피를 본 회장 B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커피 양이 굉장히 적구만. 내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많은 양이 필요한데 말이야. 한 237컵은 넘게 먹어야 할거라구. 이유가 뭔지 이해가나?”

 “……네, 회장님. 무슨 말을 하실지 대충 예상이 갑니다만…….”

풀 죽은 팀장의 말에 회장 B는 팔짱을 끼며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예상이 간다구? 자 그럼 말해보게. 로봇 노동력을 사용하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 전부.”

 질타를 받을 줄 알았던 팀장은 뜻밖의 질문에 궁금한 얼굴을 했다. 회장은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잔에 있는 커피는 벌써 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 저희 인터B 공장은……세계의 속도에 발 맞춰 빠른 생산력을 보이고자 ‘로봇 노동력’이라는 걸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로봇 노동력이란……멀티Q라는 생각 주입 기계로 완성된 로봇형 인간을 뜻합니다. 즉 인간의 머릿속에 ‘나는 로봇이다’라는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서 무한한 노동력을 창조해낼 수 있도록 힘쓴 결과입니다. 덧붙여 로봇 노동력에게 회장님은 발명자로, 저희들은 관리 요원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눈치를 보던 팀장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세계에 알려질 경우 인권문제에 대한 소송 등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희 회사만이 알고 있는 일급비밀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또……각종 부작용이나 제한 등도 많기 때문에 길가에 버려진 6살 이상, 즉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실험했고 성공한 아이들을 로봇 노동력이라 칭하며 일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말 그대로 친인척관계가 전혀 없고 확인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무리 없이 일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팀장의 설명에 회장 B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 마셔버린 커피 잔을 바닥에 놓자마자 그 밝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우리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이번에 들어온 그 아이의 대한 설명이나 조치도 모두 맡길 수 있을 것 같군. 또 비서1보다 더 잘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아,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저은 후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회장 B는 따분한 표정이었다.

 “그 아이는 어딘가 회사의 뚫린 구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워낙 아이의 속도가 빨라서 화면에도 잘 잡히지 않았고 아이도 직접 말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아이는 저희 회사의 거의 모든 광경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로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으며 주입도 여러 번 시도 했습니다만……본래 주입은 안정적인 정신 상태에서 해야 하고 강제로 잠을 자면서 주입시키기엔 부작용이 워낙 커서……현재는 모두 실패하고 실험실 안 쪽 실험인보호소에 격리되어 있습니다.”

 회장 B는 낮고 강한 어투로 팀장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팀장은 회장 B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왜 말을 못하는 건가! 세계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고작 이 꼬마아이 하나 때문에 무너져야 해? 어서 방법을 찾으란 말이야! 뭐든 하라고!”

 팀장은 화를 내는 회장 B를 바라보지 못한 채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 방법이……제가 생각해낸 방법이 있지만……이, 이건…….”

 회장 B는 팀장의 자신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의 회사에 있는 직원들은 부족한게 뭐 이리 많은지 한 가지의 과제를 주기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소위 엘리트들만 뽑아온 직원들을 다 해고하고 로봇으로만 일을 시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팀장은 다시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주심이 어떨지 하고…….”

 팀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을 설명했다. 회장 B는 착잡한 얼굴로 다 마신 커피 잔을 바라보았다. 고작 그 조그마한 아이의 안정적인 뇌파 때문에 할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니. 수십 년간 연락을 끊어온 자식이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지 조금 착잡했다.

-

 로봇 노동력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딴 짓을 했다. 회장 B는 갈색의 안경으로 바꾸어 끼면서 비서2에게 말했다.

 “3-20번 로봇 노동력. 홀로그램 작동하지.”

 “네, 회장님”

 비서2는 버튼을 누르고 뒤로 조금 물러났다. 로봇 노동력 3-20번 앞에 홀로그램이 환하게 켜지자 잠시 기계의 작동이 멈췄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회장 B가 입을 열었다.

 “3-20번 로봇. 너는 발명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임무를 지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했던 속도보다 1.5배의 속도로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를 맞추도록 한다. 3-20번, 고개를 들어라. 발명자인 나의 말에 불복종 하겠나?”

 3-20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회장 B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홀로그램의 작동을 정지했다. 그리곤 버튼을 꾹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비서2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짜 수염을 들고 다가왔다.

 “회장님, 죄송하지만……이 수염도 붙이셔야…….” “뭐? 이건 뭐야! 누가 이거 붙이라고 했어?”

 하얗고 가지런한 수염을 보며 회장 B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서2는 고개를 숙였다.

 “저……그게 얼마 전 비서1이……이걸 꼭 하셔야지 할아버지처럼 보일 거라고…….”

 “뭐라고? 비서1은 해고당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청소 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회장 B의 놀란 얼굴에 비서 2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저 대답했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회장님께서 그 아이를 붙잡기 위해 할아버지로 잠시 변장한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회장 B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서2를 보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이왕 줄려면 깨끗하게 해서 주던가……줘 봐.”

 머뭇거리며 내민 수염을 받은 회장 B는 조심스레 얼굴에 붙였다. 지금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70대 할아버지였다. 물론 회장 B는 70대를 앞두고 있었지만 잦은 관리로 거의 50대 후반으로까지 보였다. 생명공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지금, 회장 B는 이제 인조적인 것 따위와는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업계와 생명공학 1위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효력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어야 했다. 회장 B는 엄청난 일을 했고 또 동시에 사람을 인조적으로 만든다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지금의 행동으로 세계 1위를 지켰지만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지금 내 모습……70대 할아버지 같나?”

 “아……네, 회장님. 집으로 오게 되는 손자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 같아요.”

 비서2의 말에 회장 B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속이 공허했다.

 “손자라……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날 떠난 자식 놈,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회장 B는 애써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자, 어서 옥상의 테라스로 올라가지. 거기에 아이가 있다고 했지?”

-

 회장 B는 나무 지팡이로 옥상의 문을 열었지만 문 앞 테라스엔 아무도 없었다. 회장 B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선가 몰래 지켜보고 있을 아이를 찾았다.

 “오, 마침 신문이 있군. 신문이나 좀 볼까?”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펴든 회장 B는 그렇게 30분도 넘게 신문을 읽었다.

 ‘아이가 여기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혹시……또 탈출한 건 아니겠지?’

 회장 B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회사의 직원들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퉁!

 

 어디선가 빈 통을 발로 차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회장 B는 고개를 돌렸다.

 “어……거, 거기 누구 있나?”

 곧 회장 B의 맞은 편 벽 쪽으로 얼굴이 빼꼼 나왔다. 회장 B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는 것을 느꼈다. 저 얼굴은 분명히 회사로 들어 온 그 꼬마이었다. 아이와 회장 B는 서로를 몇 분간 묵묵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회장 B는 조금 당황했지만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마치 자신의 어렸던 아들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때 아이가 걸어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진짜 할아버지 맞아요?”

 그리고 곧 아이는 울먹거렸다. 회장 B는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네가……내 손자다! 그런데 왜 우는 거냐?”

 더듬거리는 회장 B에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 눈가를 훔쳤다.

 “할아버지……흐흑, 왜 이제……왜 이제 온 거예요……흐흑…….”

 안기려드는 아이를 어설프게 안은 회장 B는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도대체 몇 년 만에 조그마한 아이를 달래주는 건지 시간을 되돌린 것 같았다. 그리곤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흐흑……흑……자꾸 친구들이 놀려. 흑…….”

 유치원으로 아들을 마중 나간 회장 B는 울면서 달려오는 아들을 품에 안았다.

 “왜 우는 거냐? 아빠가 사내 녀석은 잘 울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흑……애들이 아빠 유치원에 안 온다고 나보고 아빠 없는 애라고 놀려.”

 그 말을 들은 순간 회장 B의 가슴엔 큰 돌이 하나 쿵 떨어졌다. 아들의 유치원에서는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회장 B는 한 번도 가지 못해서 아들은 그 시간마다 항상 혼자였고 또 항상 슬펐다.

 “알았다, 미안해. 이번엔 아빠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줄게.”

 “정말? 아빠, 그 말 정말이지? 이번엔 진짜인거야! 꼭 와야 돼! 알았지?”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벌써 시간이 늦었구나. 자 어서 집으로 가자.”

 아들은 금세 밝아진 얼굴로 회장 B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회장 B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또 그 긴 시간을 아들 혼자서 보냈고 또 쓸쓸하게 울면서 보냈다. 회장 B는 왠지 모르게 품에 안긴 아이의 느낌이 그때 울고 있던 아들을 안아주던 느낌과 비슷했다. 아이는 붉어진 눈가로 품에서 나오며 말했다.

 “나 지금까지 가족 없는 줄 알았어요. 고아원에서 지낼 때 어떤 친구를 만났는데…….”

 “잠깐, 고아원에서 어떻게 나온 거야? 넌 아직 8살이잖니.”

 아이의 말을 끊은 회장 B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주춤거렸다.

 “……나왔어요. 아니, 날 나오게 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널 나오게 했다니? 고아원에서 말이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는 이내 끄덕였다. 회장 B의 얼굴엔 그늘이 보였다.

 “……내가 계속 가족들을 찾는다고, 나같이 찡찡거리는 아이는 필요 없댔어요. 그리곤 밥도 잘 안주고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그래서 나와 버렸어요. 친구가 고아원에 있는 우리는 가족 같은 건 없다고 했는데……나오자마자 걷고 걸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된 거예요.”

 아이는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본지 오래된 아이다운 순수한 웃음이었다. 회장 B는 그 모습을 보며 지금껏 자신이 본 웃음 중에 많은 웃음들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생각에 빠져있던 회장 B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참 애썼다. 그런데……이 곳으론 어떻게 들어온 거냐?”

 “아, 바람이 윙- 하고 도는 곳으로 들어왔어요. 밀었더니 쑥 뚫렸거든요!”

 방금까지 울던 아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회장 B는 피식 웃었다. 직원들과 자신이 그토록 찾던 원인은 바로 환풍구 이었던 것이다.

 “그래, 아주 잘했구나. 이 할아버지가 환풍구를 약하게 만든 건 아주 잘한 행동이었어.”

 회장 B가 미소 짓자 아이는 회장 B를 따라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곤 회장 B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둘 사이에는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수면제가 들어가 있는 과자가 있었다.

 “근데 이 할아버진 네 이름을 모르겠구나. 무엇인지 알려주겠니?”

 회장 B의 말에 갑자기 아이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할아버진데, 가족인데. 내 이름을 모르는 거예요?”

 “아……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난 네 엄마가 널 낳기 전 너의 아버지와 연락 끊었다.”

 회장 B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물론 아이의 아빠와는 부자지간도 아니었고 아이에게 한 말들도 모두 거짓이었지만 자꾸만 연락을 끊은 아들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 아이만 보면 아들의 어릴 적이 생각나고 전에 없었던 그리움 같은 것이 솟구치는 걸까.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아, 그럼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랑 싸운 거예요? 에이- 아빠랑 싸우지 말아요. 아빠랑 할아버지랑  잘 지내서 나도 아빠랑 다시 꼭 만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줄 거죠?”

 '무책임하게 어린 아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뭐가 보고 싶다고…….‘

 회장 B는 아이의 희망적인 말투를 들으며 고개를 잠깐 숙였다. 회장 B는 자신의 아들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가족들을 벌레 보듯 짜증내고 아이들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일이 잘 풀려 일찍 집으로 돌아가며 웃음소리가 넘치는 집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아들이 좋아하던 치즈맛과자도 한 봉지 사갔다. 하지만 아들은 집에 없었다.

 “너 이 녀석, 지금까지 무얼 하다가 온 거야! 늦게 들어오지 말라는 내 말은 귓등으로 들은 거냐! 그러고도 네가 내 아들이야! 이 녀석……이런 못돼먹은 녀석! 어서 나가버려!”

 새벽 2시가 넘어서 들어온 아들은 굉장히 오랜만이고 생소했다.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아들은 자신보다 키가 커 있었고 얼굴도 자신을 닮아 날카로웠다. 하지만 회장 B가 생각하기엔 그때 자신에게 던진 아들의 말이 더 날카로웠다.

 “……아빠는 절 오랜만에 보고도 그런 말 밖에 안 나와요? 내가 지금까지 늦은 밤마다 얼마나 아빠를 기다린 줄 알아요? 매일 밤 아빠 기다리느라 잠도 못 자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얼마나 아빠를 기다린 줄 알아요? 그래요, 나갈게요. 집에 들어올 때도 아빠 얼굴 절대로 안 보면서 들어올게요. 지금은 학생이니까……어쩔 수 없이 참는 거예요.”

 “그래도 너 이자식이!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아빠. 이젠 나에게 아빠는 껍질 같은 존재인 거 아시잖아요. 난 엄마의 품만으로도 잘 살아왔어요. 그리고……아빠가 이렇게 된 이후 전 치즈맛과자를 가장 싫어해요. 알긴해요?”

 그리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갔던 아들을 생각하며 회장 B는 다시 숨이 막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아파요?”

 아이는 회장 B를 아픈 생각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내 이름은 M이예요. 알려줬으니까 앞으론 절대 잊으면 안 돼요. 알았죠?”

 회장 B는 주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서 어릴 적 아들이 아른거렸다.

 “아, 할아버지. 나 배고파요. 이 과자 먹어도 돼요?”

 M은 배가 고팠는지 회장 B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과자를 입으로 가져다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라 맛있었는지 M은 싱긋 웃었다.

 “나 치즈맛과자 제일 좋아하는데, 역시 할아버지는 가족이라 말 안 해도 아는 거죠?”

하지만 밝은 표정의 M은 그릇에 있는 과자를 다 먹지 못했다. 회장 B는 고개를 들었다.

 “왜……좋아하는 거라면서……너도 이젠 맛없는 거냐?”

 “응? 아니요, 할아버지. 조금 졸려요. 아함-”

 M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그리곤 눈을 비비더니 탁자 위에 엎드렸다.

 “나 조금만 자도 되죠? 아까 어떤 아저씨가 말해줬는데 여기가 할아버지 회사라면서요? 그럼 할아버지가 제일 높은 사람인거죠? 헤헤, 나 이제 앞으로 여기서 편하게 잘 수 있겠다. 고아원에선 계속 이상한 꿈만 꿨는데……할아버지, 이따가 나 깨워줘요! 알았죠?"

 회장 B를 바라보며 웃던 M은 얼굴을 팔에 묻고 엎드렸다. 잠든 아이를 어서 직원에게 알려 주입시켜야함에도 불구하고 회장 B는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M의 모든 모습은 아들과 겹쳐보였다. 도대체 얼마만의 보는 아이이기에 이러는 건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엄청나게 답답했다. 어쩌면 회장 B는 지금 자신이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녀석……침대에서 자지 않고 왜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거야.”

 아들이 어른이 되고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회장 B는 아들의 방을 들어가 보았다. 스탠드의 불은 환하게 켜져있었고 아들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회장 B는 이불을 가져다 아들의 위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아들 옆에 있던 회사 합격통지서를 보았다. 조심스레 꺼내 읽어보던 회장 B는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아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너 이 녀석……이게 뭐냐! Y사라니!” “……왜 그러세요. 제가 떳떳하게 면접 봐서 합격한 회사예요.”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회장 B를 보았다.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어디서 이런 하급 회사로 들어가게 된 거냐! Y사는 현재 우리나라 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이렇다 할 대기업도 아니야! 그리고 이 기업의 미래도 밝지 못…….”

 “못하겠지만 내가 유일하게……아버지 빛에 가리지 않고 들어간 회사예요.”

 아들의 뜻밖의 대답의 회장 B는 순간 멍해졌다. 아들의 눈빛은 분노가 차올라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지금 초일류 대기업에 들어가길 바랐던 거죠? 아버지, 제가 다닐 곳이고 제가 일할 곳이에요. 왜 이렇게 간섭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요, 나도 대기업 면접 봤어요. 하지만 번번이 아버지의 이름만 거론될 뿐 나 자신으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아버지의 회사가 잘 나간다고 빌빌대는 면접관들이……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고요!”

 “너 지금 이게 무슨 말 버릇이야! 그럼 인터B로 들어오면 되는 거잖아!”

 회장 B의 말에 아들은 피식 웃었다. 회장 B는 마음 한 구석이 찌릿 거렸다.

 “아버지 회사요? 아버진 내가 죽을 때까지 새장 안에서 갇혀 살기 바라요? 아님 내가 아버지처럼 되길 바라요? ……죄송하지만 전 절대로 그렇게 못해요.”

 마침내 아들은 차가운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떨어진 이불을 주운 회장 B는 추웠다. 겨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라져버린 아들의 공허함 때문에 미칠 듯이 추웠다.

 ‘절대……절대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아들이 미련한 거라고!’

 회장 B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리곤 정신을 깨워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한 아이를 보았다. 지금 자신은 이 아이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아들은 왜 자신을 닮고 싶지 않다고 한 걸까. 한창 꿈을 가진 아이들을 회사를 번창하게 만든다는 변명아래 로봇으로 변하게 해서 그런 걸까. 회장 B는 멍하니 해가 져가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꼭 로봇으로 변해야 할까?’

 무전기의 기능을 가진 빅X가 울렸다.

 “회장님, 성공하셨습니까? 연락이 없으셔서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응, 마무리 되었네. 그러니 어서 올라와 자고 있는 아이를 데려가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 2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회장 B도 다시 혼자가 되었다.

-

 회장 B만 덩그러니 앉아있는 회장실에 홀로그램 수신 확인 창이 떴다.

 ‘주치의 A의 수신이 왔습니다. 연락할까요?’

 확인 버튼을 누른 회장 B의 앞으로 주치의 A가 모습을 보였다.

 “회장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감기기운도 조금 있으신 것 같은데요.”

 “……괜찮으니까 예정시간 외의 수신 걸지 마.”

 회장 B가 대답하자 주치의 A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들어올렸다.

 “괜찮으신 게 아닙니다. 잠이 드셨을 때 깊이 드시지 못했죠? 회장님의 뇌파를 분석해본 결과 렘수면이 모든 수면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

 회장 B는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홀로그램이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60년 넘게 살아왔으니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이건……아픈 게 아니라고.’

 뜨거워진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던 회장 B는 로봇 노동력의 모습을 확인했다. 모두들 같은 속도로 같은 표정으로, 일체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사람이 아니다. 회장 B의 손으로 그들은 로봇이 되어버렸다.

 “회장님, 주입과 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이 열리고 팀장이 다시 들어왔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서류를 회장 B에게 내밀었다.

 “……잘 마무리 됐구만. 아 그전에 몇 가지 우리 회사에서 실행해야 할 과제가 있네.”

 “이제 남은 20%, 그러니까 아이가 주입을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번 보안 팀과 주입 팀의 조합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그런데……다른 프로젝트라면?”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고아원에 대한 투자를 하기로 하지. 악덕 고아원 업체들 말고 정말로 아이들을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고아원들을 조사해오라고. 한 10곳이면 충분하겠지?”

 회장 B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아……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특별히 고아원을 고르신 이유라도……?”

 “그, 그냥……앞으로 인류가 더욱 발전할수록 모든 기업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은 부족하게 될 거다. 그러니까……우리가 먼저 나서서 그 아이들을 로봇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로 사용하자 이거지. 벼,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처음 보는 회장 B의 주춤거리는 모습은 팀장에게 미소를 주기에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일주일 안으로 조사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편안한 뇌파상태로 멀티Q를 작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깨어나야지만 주입을 시킬 수 있겠지만 혹시 아이가 다시 또 반항을 하게 될까봐 만반의 준비를 끝냈고요. 그리고 깨어나 아이가 불안해한다면 회장님, 즉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도록 계획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반응을 굉장히 크게 하더라구요.”

 팀장의 말에 회장 B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도 뭔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곧 회장 B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자네가 듣기에는 물론 이상한 소리일 수 있겠지만……아이에 대해선 내 뜻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네. 날 가족으로 믿고 있는 만큼 잘 따라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어진 회장 B의 말은 팀장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분명 예전의 회장 B의 모습과는 굉장히 달랐다. 그래서 익숙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차가웠던 회장 B의 마음속이 조금의 온기가 생긴 것 같았다. 긴 말을 한 회장 B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아들의 전화번호도 부탁하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던 먹구름들은 사라지고 환한 햇살이 창문을 넘쳐 들어왔다. 회장 B는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대신 차가운 물을 한잔 마셨다. 그때였다. 밖에서 회장 B를 찾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주입과 팀장님과 M군이 왔습니다. 들여보낼까요?”

 “그러지.”

 이윽고 문이 열리고 팀장과 M이 들어왔다. 팀장은 M의 어깨의 손을 올리고 들어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M은 로봇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팀장의 얼굴은 밝았고 M은 회장 B를 보자마자 곧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발명자님.”

 회장 B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너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로봇이라고 했지?”

 “네. 삼계명을 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의 위대하신 손 밑에서 태어났다. 둘,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를 위해 평생 일 해야 할 임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발명자의, 발명자에 의한, 발명자를 위한 로봇임을 잊지 않는다. 이상입니다.”

 M는 당당한 눈빛으로 말을 마치곤 회장 B의 미소를 만족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좋다. 자, 이제 6시가 넘었으니 나가서 일을 하도록.”

 회장 B의 말에 M는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손을 들며 말했다.

 “히히, 나 로봇 흉내 잘하죠? 물론 나보다 먼저 온 아이들의 로봇 흉내가 최고긴 하지만……알았어요, 할아버지! 나 이제 나가서 놀게요! 이따가 저녁에 봬요!”

 주입과 팀장과 M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비서1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회장님, M군에게 이 모든 로봇 노동력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놀고 있는 것이라도 설명해도 되는 걸까요? 지금은 아이라 잘 믿겠지만……M군이 커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어서 빨리…….”

 “비서1, 비서1은 도대체 복직 되서도 이렇게 말이 많은 건가.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설명해줄거고 또 스스로도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지는 저 아이와 날 내버려 두게.”

 비서1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물 한 모금을 마신 회장 B는 잠시 비서1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한 뒤 남은 물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096-0529-0722……역시, 도시에서 벗어나 살고 있구만.’

 회장 B는 몇 주 전부터 주머니 안에 접어져 있던 종이를 꺼내 숫자를 읽었다. 그 번호들은 회장 B의 옛날 기억들을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이 종이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몇 년 전일까, 회사 입구에서 한 꼬마 아이가 달려와 회장 B에게 종이를 건넸다. 회장 B는 본능적으로  종이를 받은 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너희 아빠가 누군데 이걸 나보고 전하라고 한 거냐.”

 “……아빠가 말하지 말랬어요.”

 회장 B의 엄한 목소리 때문일까, 아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반대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회장 B는 뭔가 그 아이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 아이가 건네준 종이를 펴보았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실까봐 데려왔습니다. 물론 그러시지 않으시겠지만 혹시……보고 싶어 하실까봐 전화번호 남깁니다. 기다릴게요. 096-0529-0722’

 자신의 아들이 남기고 간 쪽지를 본 회장 B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자신의 앞엔 아무도 없었다. 아이도, 아들도, 아들의 가족도 없었다. 회장 B는 왠지 모를 분노에 종이를 구겨서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때만 해도 자신은 아들에게 다신 연락 따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조금만 더 찾아보았다면……아니 아들에게 조금 더 살갑게 해주었다면…….’

 회장 B는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종이를 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이제는 해야 했다. 자신을 기다린 아들을 위해, 그리고 아들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만약 지금 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아들에게 영영 아버지가 되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뚜- 하는 소리가 회장 B의 귀에 들려왔다.

 ‘아들아…….’

 회장 B는 손가락을 버튼 위로 가까이 가져갔다.

-

그 뭐냐. 한글2007에다가 쓸때는 문단 띄어쓰기도 다 했는데

이리로 옮겨오면 꼭 다 사라져버리네요''

길게 쓰면 길게 쓸수록 문단 한칸씩 띄는 게 힘들어져요ㅋㅋㅋㅋ

혹시 몰라요. 문단 구분 안한 곳이 있을지도:)

白魂
白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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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인간은 정말 날 수 없는 걸까?" 난 날개를 보았다. "그니까 죽을때까지 땅에 쳐박혀서 살아야 되냐구" 난 대답했다. "아니." 걱정이 스며들던 날개의 표정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역시 M! 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다 안된다고 했는데... 그래, 난 날아볼거야." 내가 만약 그때 날 수 없다고, 땅에 쳐박혀 영영 살아야 한다고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날개는 정말 날아가버렸다. 아니 싸늘하게 죽어버렸다. ***  -2009년 5월 13일  "날개, 나와서 수행평가 한 번 발표해볼까?" 날개를 유독 좋아하는 국어선생님은 어김없이 오늘도 날개를 불러 나오게 했다. 날개는 주저하지 않고 나가 하얀 종이를 펴들었다.  [사람의 시조가 유인물이라는 건 그냥 사실에 불과하잖아?  내 생각에 사람의 시조는 새였을거야. 하지만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땅에서 쉬다가 바람 때문에 자신들이 날 수 있다는 걸 까먹은거지.  그래서 강하고 거친 바람대신 땅에서 쉬는 편안함만 추구했어. 그러다보니 어느새 불필요한 날개가 사라져버리게 된거야.  참 어리석은 행동이였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봐. 뒤늦게 날고 싶다고 꿈을 꾸고 있는 우리들 말이야.  아마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거야.  하지만 이제는 그 꿈 이룰때가 되지 않았나?]  날개는 조용히 발표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국어선생님은 그런 날개가 흐뭇한듯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야, 윤날개 맨날 발표하지 않냐? 별로 잘 한거 같지도 않은데……쟤네 엄마왔었냐?" "원래 저 봉봉이가 윤날개만 좋아하잖아. 공부 잘하는 애들 얼마나 아끼는 데- 너 몰랐어?" 봉봉이란 국어선생님의 이름을 딴 별명이었다. 소곤소곤 떠들어대는 아이들곁에 앉아있던 M은 한숨을 쉬며 날개를 보았다. 날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M은 슬슬 답답해져왔다. "이제 지겹다. 쟨 언제까지 저렇게 공부만 할거냐? 저러니까 왕따되서 친구도 없잖아." "친구가 없으니까 공부라도 해야될거 아니야. 진짜 재수없는거지. 아 근데 혹시 몰라? 이번 시험엔 M이 일등할지?" "더러워." M은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자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듣지 못한 듯 팝콘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 거기, 조용히 안해? 너희는 수행평가 얼마나 맞았다고 이렇게 떠드는 거야. 꼭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요." "야야, 또 봉봉이 생쇼한다. 할 말 없으면 맨날 공부타령이나 해대면서 뭐라는 거야. 아 띠겁네." M은 뒤를 돌아봤다. 투덜거리며 짜증을 내던 선영이 M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보였다. "응? 왜 M?"

  • 白魂
  • 2010-07-12
빠져들다

 7시 50분. 아직도 지하철은 달리고 있었다. 8시가 가까워져올수록 정현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 몇 정거장이나 더 남아있는데 8시를 넘기면 기자국의 팀장인 현창수가 얼마나 화를 낼까. 정현은 모든 걸 놓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기댔다. 기자라는 직업,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할까?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잘할수있고 하고싶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올바르게 전달하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기자국에 들어갔지만 상사의 짜증은 하루하루 힘들게만 만들었다. 발벗고 취재거리를 따와도 팀장이 안된다고 하면 곧바로 다른 주제를 찾아야한다. 기댈곳도 없고 하루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흘렀는지도 몰랐다. 정현은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먹었다. 정현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7분이나……진심으로 죄송합니다." 8시 7분. 정현은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동료기자들은 고개를 돌려 정현을 쳐다보다가 곧 자신의 일에만 열중했다. 예상했듯이 팀장인 이선우의 얼굴은 화가 잔뜩 나있었다. 정현은 슬금슬금 그의 자리로 다가갔다. 이미 푹 숙여버린 고개는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지금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7분이나 지각을 해? 기자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새벽까지 취채하다가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현이 당황한 얼굴로 사과했지만 팀장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던 팀장은 날카로운 눈을 뜨고 정현에게 말했다. "정현씨, 맡고 있던 취재거리 성준씨한테 넘겨." "네? 그게 무슨 말씀……." "정현씨가 하던거 그만하고 사이비종교에 대해서 취재해오라는 거야. 사이비종교가 뭔지는 알지?" 팀장에 갑작스런 결정에 정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돼, 새벽까지 그 기사 때문에 쉬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그만두라니. "어차피 제대로 못할거잖아. 일 그르치기전에 다른 기자한테 넘기라는 거야. 자, 더 할말없으면 그만 가봐." 정현은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지만 모니터만 바라보는 팀장에게서 돌아섰다. 한숨을 쉬며 털썩 자리에 앉은 정현을 동료기자인 미래가 쳐다보았다. "또 팀장이 뭐라고 했구나? 맞지?" 미래가 안쓰러운 얼굴로 커피를 건네자 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모금 마셨다. 금방 뽑은 것 같은 따뜻한 커피였다. "오늘 새벽까지 하던 취재 그만하래. 아예 쓰지말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까지 조사했던 거 다 다른 기자에게 넘기래." 정현은 고개를 숙였다. 한숨이 삐져나왔다. 미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럼 넌? 넌 무슨 기사 맡으라고 막 바꾸는 거야?" "사이비종교……아, 진짜 또 잘못쓰면 엄청날텐데. 게다가

  • 白魂
  • 2010-05-07
같은 것의 무의미

 "싫어, 다가오지마. 내 잘못 아니잖아. 제발……미안……정말 미안해……."  어둡고 축축하고 차가웠다. 사방의 벽들이 자신을 가로막아 가두고 있었다. 그 공간들은 점점 더 좁아지면서 성현을 숨막히게 했다. 그때 무엇인가 그 좁은 공간에 들어왔다. 성현의 엄마였다. 그녀는 문을 닫고 슬픈 표정으로 성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잡지 못했다. 갑자기 숨이 가빠왔다. 성현은 그녀 때문에 공간이 좁아지고 숨막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공간은 더욱더 좁아들고 공기도 희박해져갔다. 이 공간에서 공기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은 빠르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성현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어둡고 차가운 벽에 손을 대며 마침내 그녀를 찾은 성현은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땀에 젖은 손을 그녀의 목에 댔다. 그녀는 뭐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공간은 점점 더 좁아오고 공기는 더욱더 탁해져갔다. 그녀는 성현에게 손을 뻗쳤고 성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성현은 그녀의 목을 졸라버렸다.  "그만해!"  성현은 꿈을 뒤로하고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엄마의 목을 졸랐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자신과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그녀였고 이것은 한낱 꿈일뿐이었다. 성현은 더 이상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일어났다. 얼굴을 씻은 뒤 정장을 입고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들을 확인했다. 한성병원의 외과의사인 성현은 한성병원을 물려받을 사람으로 촉망받았다. 이런 성현에게 과거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그런 사람 있었던 적도 없었듯이 지금의 성현에게 꿈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윽고 병원 입구에 도착한 성현은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동료의사인 연준에게 찾아갔다.  "연준아, 안정제 좀 주라."  연준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성현은 머리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안정제 몇 알을 꺼낸 연준은 물이 담긴 컵과 함께 내밀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요즘따라 안색도 안 좋고 저번주부터 수면제나 안정제같은 약도 계속 받아가잖아. 몸에 안 좋아."  "나도 알지, 몸에 안좋은 건 아는데 요즘 자꾸 악몽을 꿔서 말이야. 되게 기분 나쁜 꿈이거든."  "그래? 무슨 꿈인데? 혹시 사람 죽이는 거 같은 꿈들이야?"  연준의 꿰뚫어보듯한 말에 놀란 성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연준이 말을 이었다.  "원래 외과의사들, 수술하다 환자가 죽으면 그런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넌 환자가 수술중에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 요즘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 아니야. 그런거 아니

  • 白魂
  • 20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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