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날개

  • 작성자 白魂
  • 작성일 2010-07-12
  • 조회수 647

 "인간은 정말 날 수 없는 걸까?"
 난 날개를 보았다.
 "그니까 죽을때까지 땅에 쳐박혀서 살아야 되냐구"
 난 대답했다.
 "아니."
 걱정이 스며들던 날개의 표정이 한순간에 환해졌다.
 "역시 M! 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다 안된다고 했는데... 그래, 난 날아볼거야."
 내가 만약 그때 날 수 없다고, 땅에 쳐박혀 영영 살아야 한다고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날개는 정말 날아가버렸다. 아니 싸늘하게 죽어버렸다.

***

 -2009년 5월 13일

 "날개, 나와서 수행평가 한 번 발표해볼까?"
 날개를 유독 좋아하는 국어선생님은 어김없이 오늘도 날개를 불러 나오게 했다. 날개는 주저하지 않고 나가 하얀 종이를 펴들었다.
 
 [사람의 시조가 유인물이라는 건 그냥 사실에 불과하잖아?
 내 생각에 사람의 시조는 새였을거야. 하지만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땅에서 쉬다가 바람 때문에 자신들이 날 수 있다는 걸 까먹은거지.
 그래서 강하고 거친 바람대신 땅에서 쉬는 편안함만 추구했어. 그러다보니 어느새 불필요한 날개가 사라져버리게 된거야.

 참 어리석은 행동이였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봐. 뒤늦게 날고 싶다고 꿈을 꾸고 있는 우리들 말이야.

 아마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거야.
 하지만 이제는 그 꿈 이룰때가 되지 않았나?]

 날개는 조용히 발표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국어선생님은 그런 날개가 흐뭇한듯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야, 윤날개 맨날 발표하지 않냐? 별로 잘 한거 같지도 않은데……쟤네 엄마왔었냐?"
 "원래 저 봉봉이가 윤날개만 좋아하잖아. 공부 잘하는 애들 얼마나 아끼는 데- 너 몰랐어?"
 봉봉이란 국어선생님의 이름을 딴 별명이었다. 소곤소곤 떠들어대는 아이들곁에 앉아있던 M은 한숨을 쉬며 날개를 보았다. 날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M은 슬슬 답답해져왔다.
 "이제 지겹다. 쟨 언제까지 저렇게 공부만 할거냐? 저러니까 왕따되서 친구도 없잖아."
 "친구가 없으니까 공부라도 해야될거 아니야. 진짜 재수없는거지. 아 근데 혹시 몰라? 이번 시험엔 M이 일등할지?"
 "더러워."
 M은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자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듣지 못한 듯 팝콘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 거기, 조용히 안해? 너희는 수행평가 얼마나 맞았다고 이렇게 떠드는 거야. 꼭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수업시간에 떠들어요."
 "야야, 또 봉봉이 생쇼한다. 할 말 없으면 맨날 공부타령이나 해대면서 뭐라는 거야. 아 띠겁네."
 M은 뒤를 돌아봤다. 투덜거리며 짜증을 내던 선영이 M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보였다.
 "응? 왜 M?"
 회오리 모양의 렌즈, 징그러웠다.
 "한선영, 시끄러워."
 선영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선영에게서 착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풍겨졌다.
 "어머, 그랬니? 미안해. 애들아, M 방해하지마."
 '더러워.'
 M은 한번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뒤는 조용해졌지만 이미 귓속으로 들어온 말들은 꽉 박혀셔 빠지질 않았다. 이윽고 수업이 끝이 났음을 알리는 종이 치자 인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M은 문득 날개가 생각났다. 날개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저러니까 애들이 공부만 한다고 욕하지…….'
 M과 날개는 반에서 1, 2등을 다투고 전교에서도 성적이 매우 좋은 아이들로 손꼽혔다. 하지만 M이 생각하기엔 날개와 자신은 매우 달랐다. 공부를 하는 방법도 달랐고 공부를 하는 표정도 달랐다.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고 반 아이들에게서 받는 시선과 선생님이 기대하는 정도도 달랐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평소의 모습이었다. 날개는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띄웠지만 M은 달랐다. 웃어본 적도 얼마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유없이 미소를 짓는것도 싫었다. 하지만 M은 뭔가 날개가 자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M은 천천히 날개의 자리쪽으로 다가갔다.
 "뭐하냐?"
 날개는 재빨리 종이를 팔로 가렸다. 동글동글하고 작은 글씨들이 가득 차있었는데 빠르게 가려버린탓에 무슨 내용인지는 보지 못했다.
 "왜?"
 날개는 당황한 얼굴로 M에게 물었다. 웃음기가 살짝 가시고 두려움이 채워진 듯한 표정이었다. M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냥……수업 끝나자마자 계속 뭘 적길래 궁금해서. 뭐 적고 있는 거냐?"
 질문이 끝나자마자 날개는 잠시 M의 눈을 응시했다. 이번엔 도리어 M이 당황해 눈을 피했다. 날개가 짧게 대답했다.
 "글 써."
 "글? 무슨 글? 너 글짓기 대회 나가?"
 M은 빠르게 날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날개는 종이를 책상속에 집어넣으며 M에게 부탁했다.
 "나 잠깐 옥상 좀 다녀올게. 그래서 다음 교시엔 늦게 올 수도 있어. 안 올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대신 선생님께 말 좀 부탁할게."
 날개는 환하게 웃고는 M을 지나쳐 교실밖으로 나갔다. M은 날개에 행동의 다시 당황했지만 아까 선영의 웃음을 보았을때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조금은 편안했다. 날개의 자리에 혼자남은 M은 문득 책상 속에 들어있는 그 종이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물론 수학문제를 풀던 종이나 다른 노트의 연습장일수도 있었지만 글씨가 가득 써져있는 종이는 왠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내뿜었다. M는 주위를 살펴보곤 허리를 숙여 두손가락으로 종이를 조심스레 꺼냈다. 보았던대로 많은 글자가 깨알같이 써져있었다. M은 눈살을 지푸리며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왜……왜 난 항상……이모양일까? 아무……도 모르게……. 뭐야?"
 조그마한 글씨를 해독하던 M은 깜짝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종이에는 환하게 웃던 날개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말들이 가득했다.
 [왜 난 항상 이모양일까? 아무도 모르게 하늘속으로 날아가고 싶다. 영원히, 그리고 오늘]
 비참한 분위기의 한 문장은 종이에 끝도 없이 반복되어 써지고 있었다.
 '뭐야……겨우 친구들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거야? 윤날개, 정말 자살하려는 거야?'
 M은 날개의 환한 웃음과 날개의 손으로 쓴 이 어두운 글이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심한 일이 있어도 웃고 있는 날개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줄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M의 마음속에선 이미 걱정이 조금씩 끓어오르고 있었다. 누가봐도 이 내용은 '죽음'에 관한 글이었다. 게다가 시점으로 보아 분명히 자살을 생각하고 이런 글을 쓴 것 같았다. M은 방금전 날개가 남기고 간 말을 생각했다.
 '나 잠깐 옥상 좀 다녀올게. 그래서 다음 교시에 늦게 올 수도 있어. 그러니까 대신 선생님께 말 좀 부탁할게.'
 그렇다. 옥상이었다. M은 재빨리 시계를 보았다. 쉬는시간은 4분정도 남아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 날개를 붙잡아 내려올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M은 꼭 자신이 이런 일을 막아야 하나라는 귀찮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날개를 막을 수 있는 건 이 글을 본 M 자신뿐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일에 M은 수업따의 안중에 없었다. M은 빠른 걸음으로 문 밖으로 지나쳤다.
 "M! 어디가? 나 이것좀……."
 선영의 목소리가 빠르게 지나쳐 아련하게 들려왔다. M은 뛰고 있었다.

 "윤날개!"
 저 멀리 날개의 고개가 돌려지는 것을 본 M은 빠른 걸음으로 날개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M의 생각과 반대로 옥상에는 죽으려고 하는 아이가 없어보였다. 날개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닥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M은 황당했다.
 "왜?"
 생각보다 심하게 날개는 태연했다. M은 잠시 주춤했다가 날개가 쓴 종이를 거칠게 내밀었다.
 "너 지금 죽으려고 하는 거야?"
 종이를 통해 서로를 마주본 M과 날개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몇초쯤 지났을까, 날개가 풋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 웃겨, 너 이 내용보고 내가 죽으려고 하는 건 줄 안거야?"
 날개의 물음에 M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괜히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면 뭐야! 게다가 옥상 간다는 데……왜 이런 글을 써서 사람 놀래켜!"
 M의 말에도 꿈적않는 날개는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물론 죽고 싶다는 내용……아예 틀리진 않아. 그래도 네가 와줬으니까 지금은 아닐거야. 걱정하지마."
 날개는 말을 마치고 다시 앞을 보았다. 바람이 한차례 불어 날개의 머리를 몰고갔다. M은 자신도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수업 얼마 안 남았잖아."
 M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날개는 조용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는 어떨까?"
 M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나 한번 죽어보고 싶어. 물론……'한번' 죽어보고 싶다는 건 말이 안되지만 말이야. 이렇게 살아있을바에는 그냥 저 위로 날아가버리고 싶어. 사람들이 말하잖아. 하늘나라로 가서 고생하지 말고 잘 지내라고.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난 그럴거야. 그리고 내 생명은 정말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 살면서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을 사람에게 말이야. 얼마나 좋아……난 하늘로 가고 그 사람은 땅으로 오고."
 웃음기대신 물기로 촉촉해진 날개의 눈가를 보면서 M은 조금 당황했다.
 "무슨 일 있어?"
 날개는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라 내가 태어남과 동사에 생긴 일이야. 난 공부를 잘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 공부를 잘해야만 해. 하지만……난 글을 쓰는 게 더 좋아. 글을 쓰고 있으면 정말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꼭 이럴 때 엄마나 아빠가 방문을 열더라. '날개야, 공부하니?' 난 그렇다고 무조건 대답해야 했어. 지겨웠달까, 내가 하고픈 걸 하지 못해야 하니까 말이야. 게다가 엄마아빠의 기대때문에 내 생활인 학교에서 이런 취급 받아야 되니까 한심하기도 하고."
 M은 공부를 잘하는 날개의 말에 의아해하면서 자신을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은 공부를 왜 한걸까?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명문 대학교에 가서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일까. 물론 그 길은 모두가 바라는 길이다. 성공의 길이고 경쟁의 길이다. 생각에 잠긴 M은 1등보다 글을 좋아하는 날개가 이해되지 않았다. 날개는 앞을 보았다.
 "넌 아직 이해 안될거야.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애들이 들어도 뭐라고 할 소리고. 신경쓰지마, 그냥 내 생각이니까."
 수업종이 울렸다. M은 날개의 눈치를 봤지만 도무지 날개는 일어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너 반에 안가? 종 울렸어."
 날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놀란 표정의 M을 툭 쳤다.
 "나 오늘만 빠진 거 아니야. 지금이 벌써 5월달이니까……거의 지겨운 날은 이렇게 빠져. 하늘 보면 좋기도 하고."
 "아, 그러니깐 난……네가 항상 공부만 하는 줄 알고……아무 말도 안 하길래."
 M은 지금까지 날개가 수업을 빠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 갑자기 미안하게 느껴졌다. 날개는 미소 지었다.
 "괜찮아, 나한텐 오히려 고마운거야. 아무리 빠져도 못 알아채니까 점수 깎일 걱정 없어. 그나저나 너나 빨리 들어가봐. 난 조금 있다 갈게."
 날개가 동글동글한 눈으로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M은 주춤주춤 일어서 어색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종 친지 3분은 넘은 것 같은데 웬일인지 전혀 화가 나지않았다.

 -2009년 5월 18일
 M은 눈을 떴다.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이 눈을 환하게 비추어주었다. 정규수업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잠이 오니. M은 답답한 마음에 볼을 여러번 두드렸다. 선생님은 아침자습시간이라 따분하게 몇몇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M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M! 오늘 첫시간 체육이야. 봉봉이가 어디 간다고 바꿨대나봐. 아까 잠자서 못 들었지?"
 선영이었다. M은 선영의 웃고있는 눈동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검은색이 섞인 파란색 렌즈는 선영의 눈에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M은 그 쓸모없는 광채에 눈이 부셔 짜증날 정도였다. 선영은 자신의 렌즈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M도 고개를 돌려 날개의 자리를 보았다. 또 다시 공책에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얼굴엔 희미한 미소를 간직한채로.

 "자 오늘은 공주고받는걸 연습할거다. 서로에게 적당한 높이로 공을 던지고 받는거니까 쉬울거야. 짝은 키 번호 순으로 두줄씩 서서 마주본다."
 "아! 선생님! 싫어요!"
 선영이 소리쳤다. 체육선생님은 가느다란 눈으로 선영을 보았다.
 "키 번호 말고 출석번호로 해요. 아 나 진짜 얘 싫다구요! 얼마나 못하는 지 아세요?"
 선영은 손가락으로 날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M은 평소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일이 날개가 끼어있자 고개를 돌리게 했다.
 "한선영, 조용히 하고 빨리 시작해. 지금 뭐하는 거야? 혼나고 할래?"
 체육선생님은 선영이 계속 버티자 손에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 모습을 보며 선영은 그제서야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영이 날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날개는 웃으며 공을 들고 서 있었다.
 "뭘 봐? 빨리 공이나 던져."
 날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선영에게 공을 던졌다. 선영은 그 공을 받고는 잠시 머무르더니 좋은 생각이 난 듯 조금 미소지었다. 그리곤 날개의 머리를 향해 공을 세게 던졌다. M이 봐도 그 속도는 고의로밖에 볼수가 없었다.
 "악!"
 날개는 받지 못하고 공을 맞았다. 넘어진 날개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선영을 올려다보았다.
 "아까부터 자꾸 뭘 보는데? 보지말라고, 내 말 안들려? 그리고 야, 너 이런 공도 하나 못 받으면서 무슨 1등은 1등이야? 시간이 남으니까 말해두겠는데 제발 선생님들한테 잘보이려고 좀 하지마, 진짜 역겹거든. 공부만 한다고 모두가 너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나본데 전교에서 너 좋아하는 애들이 몇이나 있을거 같아? 아무도 없을거야, M도 물론이고. 그런 네가 찌질이란 뜻이 뭔 줄 알긴 해? 그건 바로 너야 너, 윤날개 너라고.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쓰레기."
 말에 독을 품은 선영의 말에도 불구하고 날개는 아무 말도 없이 공을 주웠다. M은 저절로 날개에게 눈이 향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공을 쥐고 있는 손에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날개가 아프다. 선영은 비웃고 있다.
 "아악!"
 갑작스런 큰 비명에 모두들 선영과 날개를 보았다. 공은 선영의 주위를 굴러가고 있었고 아까와는 반대로 선영이 주저앉아있었다. 날개는 평소의 모습과 달리 싸늘하게 선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M이 그쪽으로 다가가자마자 선영이 소리질렀다.
 "야! 너 미쳤냐? 왜? 사람 죽이려고? 아 완전 욕먹고 싶어서 생쇼를 해요."
 선영은 앞머리를 제빨리 정리하며 M을 의식했다. M은 자신이 도와주길 바라는 선영의 눈을 피하며 날개를 쳐다보았다.
 "너 같은 거 한번에 죽일 수 있어."
 날개가 조용히 읊조렸다. 선영은 일어서다말고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겉에 가시만 잔뜩 세워놓은 너 같은 거 한번에 밟아버릴 수 있다고. 밟아버릴뿐만 아니라 그 가시들 모두 뽑아버릴수도 있어. 근데 네가 불쌍해서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 갸냘픈 가시하나 믿고 나대지마."
 날개는 차가운 얼굴로 강당을 나가버렸다. 체육선생님은 날개를 소리쳐불렀지만 이미 사리지고 없는 날개를 보며 M은 걱정되었다.
 "아 완전 짜증나. 어느 머린데 감히 공을 던져? 진짜 한번 밟아봐?"
 "선영아, 참아참아. 원래 덜 떨어진 게 덜 떨어진 행동 하는 거 잖아. 괜찮아?"
 진짜로 덜 떨어진 건 너희들이야. M은 경멸심을 그대로 눈에 내보이곤 생각했다. 선영이 다가왔다.
 "M! 나 완전 머리 아파. 아까 윤날개 그……걔가 공 던졌어. 봤어? 완전 나 죽이려고 했다니까?"
 "시끄러워. 안 죽었으면 된 거잖아."
 M은 공을 선영에게 주워주고는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걱정은 이미 산만큼 부풀었다.

 M은 살며시 옥상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아니나다를까 날개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앉아있었다. 날개의 등에선 금방이라도 날개가 솟아나와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M은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날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뒤를 보았다.
 "왜?"
 "아, 아니 그러니까……괜찮냐구. 아까 물론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너도 공 맞았을텐데."
 날개는 M을 잠시 응시했다. 당황한 M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날개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야? 아님……다른 애들처럼 알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갑작스런 날개의 물음에 M은 더욱더 당황했다. 간절한 표정의 날개는 M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 무언가가 부족한가봐. 그것도 엄청나게 부족한가봐. 처음엔 어른들이 나한테 그랬어. 부족하다고, 그래서 빨리 채우지 않으면 넌 버려질 거라고.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좋은 성적이였어. 난 버림받기 싫어서 엄청 열심히 했어. 그리곤 1등까지 했지. 그제서야 만족하던 어른들의 표정을 난 아직도 기억해. 정말 끔찍하고 무서웠어. 그런데……이제는 아이들이 날 버리려고 하고 있는거야. 도대체 난……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되는거야? 춤을 망치면 날 죽일거 같은데."
 날개는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M은 그때가 되서야 날개의 얼굴에서 눈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M이 주저앉았다.
 "늦은 거 같지만 미안해. 내가 그런 아이들 중에 하나였을지 몰라."
 날개는 M의 조용한 말에 고개를 다시 들었다. 맘속으론 그런 M이 조금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괜찮아, 그래도 넌……나에게 와줬으니까."
 

 - 뭐해?
 숙제를 하던 M은 조심스레 날개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나 공부하고 있는 데 방해될까봐 걱정했지만 예상외로 답장은 빨리 왔다.
 - 글 쓰고 있어. 왜?
 - 아니 그냥……심심해서. 무슨 글 쓰는 데?
 - 단편소설. 잘 쓰면 책으로 만들어준다길래 쓰고 있는데……너무 어려워
 M은 낮의 일은 없었다는 듯한 날개의 말투에 조금은 미안했다. 그리고 또 글을 쓰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
 - 그럼 공부는?
 - 그래서 지금 엄마 몰래 쓰고 있어. 인강 들으면서 글 쓰려니까 힘들다ㅋㅋㅋㅋ완성은 되겠지?
 - 완성되면 보여줘. 네가 쓴 글은 그 종이에 쓴 말밖애 못 읽어봤으니깐.
 날개는 천연덕스러운 M의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M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 알았어. 당선되면 꼭꼭꼭꼭 보여줄게
 - 당선 안되면 안 보여줄거야?
 - 응ㅋㅋㅋㅋㅋ미안하지만 당선안되면 민망해. 대신 당선되면 바로 보내줄게! 잘자
 날개의 약속을 받은 M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문자가 끝났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 M! M보고싶다. 뭐해!?
 선영이었다. M은 이맛살을 지푸리며 전원버튼을 꾹 눌렀다.

 -2009년 5월 19일
 지각한 M은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분명히 예비종이 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한자리에서 우르르 몰려가 웃고 있었다. M은 무슨일이 있나 하고 살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지켜보던 M은 그 자리가 날개의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하는 거야?"
 "M! M은 뭐 쓸말 없어? 얘 때문에 어지간히 스트레스 받았을텐데. 뭐라고 해줄까?"
 선영이었다. 날개의 책상은 매직으로 된 낙서들과 그 위를 덮은 밀가루와 계란으로 온통 어지럽혀져있었다. M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온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이거……누가 그런 거야?"
 M이 돌아보자 소위 노는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심인 선영은 자랑스럽게 M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나야 나! 왜? 잘했어? M- 나 M생각하면서……."
 "꺼져버려."
 M의 차가운 반응에 선영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M…… 난 네가 통쾌해할줄 알았는데……설마 지금 너 윤날개 두둔하는거야? 얘가 나 어제 공으로 때렸단말이야! 아프다구!"
 "괜히 나 때문에 그랬다고 입 놀리지마……진짜 더러워서 못 참겠네. 얘가 뭔 짓했다고 쇼야? 이게 취미냐? 취미 한번 역겹네……."
 M은 자신의 손으로 책상 위에 밀가루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순간 아이들은 밀가루를 피해 뒤로 물러났고 그 틈으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M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얗게 변해버렸다. 지금 자신과 있는 이 아이들도 하얗게 변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M은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2009년 5월 21일
 학교에 오자마자 M은 날개의 책상을 보았다. 먼지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듯 깨끗했다. 안심한 표정을 짓던 M은 갑자기 자신의 옆을 지나가던 선영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에게 귀찮게 말을 걸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선영은 화난 표정으로 그냥 지나쳐갔다. 게다가 선영은 M에게 화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 밝은 초록색의 렌즈를 끼고 있었다. M은 그 파란 눈과 마주치며 더욱더 진절머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날개는 보이지 않았다.

 -2009년 5월 30일
 "윤날개! 수업 끝났는데 어디가?"
 "어디 가긴 어디가……왜?"
 날개는 조용한 목소리로 M에게 되물었다. M은 대충 매고 있던 가방끈을 제대로 걸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냥……토요일이니까 수업도 빨리 끝났는데 바로 집에 가나 해서. 집에 가?"
 "응, 글 써야 돼."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부터 날개는 단답형으로 뚝뚝 끊어말했다. M은 자신에게까지 그러는 날개가 살짝은 서운했지만 예전처럼 잘 웃지 않는 날개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많이 썼어?"
 "다 썼어. 그리고 이젠 시험 준비도 해야되니까……넌 집에 안가?"
 M은 날개의 귀찮은 말투에 어색함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날개는 기지개를 한번 피더니 M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말했다.
 "난 이제 가야겠다. 너도 가서 공부해. 그래야지 이번에도 여자아이들의 기대를 맞춰줄 수 있잖아."
 날개의 차가운 말투에 M은 당황했다. 날개에게 자신이 뭔가 잘못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붙잡았다간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M!"
 M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선영이었다. M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지푸려졌다. 오늘은 갈색 렌즈.
 "한동안 삐져서 조용하더니……왜 또 달라붙고 난리야."
 "뭐야- 그런 반응. 그나저나 내일 너 생일이지? 자, 선물!"
 선영은 작은 빨간 상자를 내밀었다. 조금 놀란 M은 선물을 받아들었으나 분홍색으로 묶여있는 리본을 전혀 당기고 싶지 않았다. 날개 때문일까, 너무 잊고 있는게 많았다.
 "이런거 앞으로 주지 마."
 M은 상자를 둘러보더니 손끝으로 선물을 들었다. 그러나 선영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 네가 나한테 뭐라고 해서 화나있었는데, 선물 받아주니까 바로 풀렸어! 그러니까 나한테 앞으로 화 내지마. 알았지?"
 "그건 네 행동 보고 결정할거니까 뭐라 간섭하지마. 너 아직도 그 행동이 잘못된거라고 생각 안하는 거야?"
 M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본 선영은 재빨리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몰라 몰라. 근데 M, 윤날개랑 무슨 사이야? 혹시 좋아하는 거야? 설마……사귀는 사이?"
 "……무, 무슨 헛소리야. 그런거 아니니까 빨리 가. 선물 고마워."
 M은 선영의 반응을 보기도 전에 돌아섰다. 선영은 M의 그런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리쳤다.
 "그렇지? 사귀는 거 아니지? 그럴 줄 알았어! M! 잘가! 문자할게!"
 M은 태연하게 거리를 걸었으나 사실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왜 그렇게 날개를 챙겨줬던걸까? 문득 고개를 돌린 M의 눈에서 쓰레기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신의 손이 들고 있는 빨간 상자로 넘어갔다. M은 조심스레 다가가 상자를 떨어뜨렸다. 덜커덩! M은 조금이나마 홀가분한 마음을 느꼈다.

 -2009년 6월 27일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아침 10시. 자고 있던 M은 미리 꺼두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탓하며 눈을 떴다. 핸드폰은 진동을 울리며 발악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전화가 온 것인지 잠긴 눈을 가지고 들여다 본 M은 순간 잠시 확 깨었다. 날개였다.
 "여, 흠! 여보세요?"
 M은 헛기침을 하며 낮게 목소리를 깔았으나 날개는 M의 행동을 상관하지도 않고 소리쳤다.
 "나 됐어!"
 "뭐가 됐다는 거야?"
 "글 썼다는 거 말이야! 아 나 지금 완전 좋아! 어떻게 해? 아아아아……당선 됐어, 됐다구!"
 오랜만에 듣는 날개의 기쁜 목소리에 M도 살며시 미소가 삐져나왔다. 차갑게만 굴어서 섭섭했던 마음은 쏙 들어가버리고 없었다. M이 말했다.
 "윤날개, 그래서 지금까진 제대로 말도 안하다가 당선 되니까 전화하는 거냐?"
 "아 그, 그게 그러니까……알려주기로 했었으니까……."
 M의 장난스런 말투에 당황한 날개는 말을 더듬었다. M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상관없어. 나한테 당선됐다는 거 가장 먼저 알려준거지?"
 날개는 M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M은 날개의 웃음소리를 들을때마다 안심이 되었다. 날개가 정말로 날아가버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너랑 나밖에 모를거야. 아 진짜……날아가고 싶다! 금방이라도 날개가 솟아서 나올거 같아! 기분 너무 좋아!"
 "안돼, 너 날개 나오면 가버릴거잖아. 싫어, 영영 땅에서 살게 할거야."
 M은 부루퉁하게 말했다. 날개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건 날 죽이는 일이지만……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참아줄게. 아 그런데……가족들한테 어떻게 말하지? 분명히 혼날텐데……."
 날개는 M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자신은 가족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사는 건데 왜 공부만을 택해야 하는 걸까? 내가 잘할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그게 바로 자신의 삶 아닌가? 날개는 숨이 턱턱 막혔다.
 "괜찮을거야, 글 썼다고 성적 떨어진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엄마 기분 좋을 때 말씀 드려. 내가 잘 쓰는 방법인데 효과 좋아. 알았지?"
 M이 진지한 말투로 장난치자 날개는 다시 웃음이 나왔다. 반 아이들과의 사이 때문에 M에게 피해가 갈까 모른척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M과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날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M. 그래도 안된다면, 돌아갈 수 없이 찢겨진다면……나 날아가버려도 되겠지?'

 -2009년 7월 10일
 "윤날개. 윤다영."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한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배부되는 날이었다. M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날개를 시선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뒤에선 계속 선영이 M을 재촉했다.
 "아, 왜 자꾸 불러. 듣고 있다고 했잖아!"
 M의 큰소리에 날개는 다시 부루퉁해졌다.
 "뭐야- 왜 소리질러. 안 그런다고 했으면서……여튼 시험 잘 봤어?"
 "어? 시, 시험? 그렇지 뭐……."
 M은 자신에 손에서 구겨져 있는 성적표를 다시 피기 시작했다. 반에서 1등이었다. 선영은 고개를 앞쪽으로 쑥 내밀어 M의 성적표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어? M 일등이네! 와와! M 일등이야! 완전 축하해-"
 선영의 큰 목소리에 반 아이들이 자신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날개까지 자신을 보자 M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자신을 쿡쿡 찔렀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일등이라면 날개는? 날개는 몇 등이라는 거지?
 "야 M, 너 일등이냐? 역시 예상은 했지만……난 이등이다. 윤날개는 몇 등했길래 이등도 못한거냐?"
 반 회장인 진호는 날개를 보며 피식 웃었다. M은 진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선영이 크게 말했다.
 "이번엔 공부하다가 딴 생각이라도 했나봐? 나 죽일려고 생각한건가? 미친……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더럽고, 이제 앞으로 막막하겠네. 윤날개."
 M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영을 노려보았다. 선영은 M의 표정에 주춤하면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날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 시험 잘봤다며? 축하해."
 날개가 웃으며 M에게 다가왔다. 날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웃어야 할 M은 웃지 않았다.
 "뭐야, 시험 잘봤으면 기분 좋게 한 턱 쏴야되는 거 아니야? 뭐 사달라고도 못하겠잖아- 왜그래?"
 M은 날개의 물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문득 날개는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 내가 언제까지나 일등하길 바란거야? 난 착하니까 너한테 양보한거야……난 이번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12등했어."
 날개의 목소리가 전처럼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M은 두려웠다. 날개는 볼을 손으로 감싸며 바람을 맞았다. 더운 날씨에 바람은 신선했다.
 "아……이 성적으로 글 썼다는 거 어떻게 말할지 진짜 고민된다. 분명히 불같이 날뛸텐데."
 날개는 고개를 숙였다. M은 그런 날개의 모습을 보며 점점 두려움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정말로 날개가 날아가버리면……어떻하지?

 -2009년 7월 14일
 - 야 M한테 집적거리지마. 너 같은 쓰레기는 꿈도 못 꿔
 - 니가 계속 내 앞을 막으면 너 언젠가 죽여버릴거야.
 - ㅋㅋㅋㅋㅋ니 진짜 웃긴다. 머리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나대다간 끝도 없이 세상 못 볼줄 알아라. 그냥 구석에 쳐박혀 있어
 날개는 참다못해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분리했다. 몇일전부터 계속 오는 아이들의 협박문자는 날개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걸 보내는 아이들이 누군지는 알 수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막을수도 그들을 죽일수도 없었으니까. 날개는 머리를 무릎에 감싸안았다. 어두운 시야는 날개를 편안하게 했다. 도대체 자신은 언제부터 잘못되어온건지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아이들의 협박문자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날개는 이 시간들이 너무 무서웠다. 날개를 혐오하는 아이들에 맞선 자신은 처절하게 혼자였다. 가족도 선생님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족들은 필요없는 친구들에 시간 버리지 말고 공부나 하라며 자신을 쓰러뜨렸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라는 불필요한 충고밖에 해주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을 이렇게까지 썩게 만든 건 괴롭힘이 아닌 지독한 외로움일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날개는 순간 고개를 쳐들며 뛰쳐나갔다.
 "윤날개씨 맞으신가요?"
 "네……맞아요."
 "그럼 여기 본인 싸인 해주시구요, 소포 받으세요."
 날개는 집에 찾아온 택배원을 당황하며 쳐디보았다. 자신의 글이 담겨진 책들이 도착한 것이다. 택배원이 꾸벅 고개를 숙인뒤 문을 열고 나가자 방에 들어가있던 엄마가 나왔다. 날개는 책을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뭐가 이렇게 온거야? 인터넷에서 뭐 시켰니?"
 "아니, 엄마……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날개가 주춤거리며 말하자 날카로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엄마는 거칠게 상자를 돌렸다.
 "문학, 단편소설 수상작……윤날개, 너 이거 지금 뭐야? 문학이라니? 단편 소설이라니! 이게 뭐야!"
 엄마의 목소리가 날개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날개는 두눈을 꾹 감았다. 이 순간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죽어도 좋으니까.
 짝! 엄마의 손바닥이 날개의 볼을 향했다. 뜨거워진 볼을 감싼 날개는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자신이 눈을 뜨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윤날개! 대답해봐, 너 이거 글쓴거 맞지? 정말 기가막혀서……엄마가 너 이런 짓하라고 지금까지 학원보낸거니? 그깟 전교 일등도 계속 못하면서 이딴 잡쓰레기나 써대! 너 지금 미친 거 아니니? 너 곧 있으면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 가. 그래……이런 짓이나 해대니까 바닥을 빌빌 기지. 답답해 진짜. 내가 부끄러워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 그러면서 이런 글을 써?"
 "잡쓰레기 아니야……."
 엄마는 날카로운 칼 같은 말들을 계속해서 내뿜었다. 그 말에서 나오는 독들은 날개을 녹여버렸지만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내젓는 고개뿐이었다. 날개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새어나왔다. 등도 살짝 간지러웠다.
 "잡쓰레기가 아니라고? 그래, 네가 바로 쓰레기지! 엄마 아빠가 편하게 공부 하라고 먹을 거 입을 거 다 같다받쳐주는데 뭐? 너 이번에 12등했지? 어떻게 너같이 부족한 딸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네가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 얼굴을 들을 수가 없어!"
 엄마는 날개를 향해 얼굴을 붉히고는 손을 들었다. 날개는 피하고 싶었지만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오는 것 처럼 묘했다. 하얀색의 깃털이 조금씩 보였다. 날개는 찌뿌듯했던 등을 조금씩 폈다. 그때였다. 날개의 동생인 하늘이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엄마……왜 그렇게 시끄러워? ……잠 자다가 깼잖아."
 곰인형을 안고 있는 하늘인 엄마에게 다가가서 폭 안겼다. 엄마는 언제 화냈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꼭 안아주었다. 날개는 엄마의 그 모습을 보며 속에서 무언가가 꿀렁꿀렁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깃털의 여러가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엄마……언니 등에서 깃털나와! 하얗고 길어! 언니! 나도 깃털 나오게 해줘."
 하늘은 눈을 비비며 날개의 등을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날개를 잠시 노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하늘에게 말했다.
 "아니야 하늘아, 언니한테 무슨 날개가 있어. 하늘인 날아갈 수 있지만 언니는 영원히 여기서 갇히고 말거야. 자, 어서 가서 자자."
 "아닌데……언니 등에 날개 있는데……."
 "윤하늘, 언니 등에서 날개 보이지?."
 날개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늘의 어깨를 감싸안고 방으로 들어가던 엄마는 다시 날개를 노려보았다. 하늘도 고개를 돌렸다.
 "윤하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저거 안 갖다버려? 너 하늘이 때문애 산 줄 알아라."
 "하늘아, 언니 갈거야. 여긴 너무 무서워서 날개를 제대로 필수가 없어. 앞으로 언니 안보여도 울지 말고 학교에서 전교 일등 꼭 해."
 엄마는 살짝 숙였던 허리를 폈다. 어서 빨리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후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너에게 다 맡겨서 미안하지만……언닌 엄마가 너무 징그러워. 상위권만 바라는 사람들 죽여버리고 싶어. 근데……못하니까 가는 거야. 그 사람들이 안 사라지니까 내가 가는거야……잘있어. 내 동생."
 날개의 어깨에서 마침내 모든 깃털이 다 빠져나왔다. 하늘이 놀라며 본 날개의 날개는 아주 하얗고 컸다. 날개는 피식 웃었다. 이 정도의 크키라면 지긋지긋한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충분히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날개는 집 밖을 향해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윤날개! 어디 가는 거야! 빨리 안와?"
 엄마는 날개가 나가자마자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바깥의 하늘은 연보라빛이었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날아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윤날개! 날개야! 그만해! 그만하라구! 제발 그만해!"
 아파트의 계단을 뛰어내려온 날개와 그 뒤를 이은 날개의 엄마는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금새 붉어진 얼굴로 날개를 애타게 불렀지만 날개는 전혀 뒤돌아보지않았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디뎠고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날개는 영영 날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날개야! 알았어! 엄마가……엄마가 생각해볼테니깐……그만 좀 해!"
 '끝까지 명령이네……부족한 딸 알아서 간다는 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저러는 거야.'
 날개는 피식 웃었다. 자신의 앞에 큰 도로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날개와 날개의 엄마를 희한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날개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뛰어나가다보니 어느새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줄어들어져있었다. 날개는 환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날개가 기분좋게 펄럭였다. 날개와 눈을 마주치며 발걸음을 멈추던 엄마는 갑자기 날개 쪽으로 손을 들었다. 날개는 앞을 보았다. 앞에서는 큰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날개는 더 큰 웃음을 터뜨리며 땅을 힘차게 밟았다. 지금이다.
 "안돼! 날개야! 날개야!"
 날개는 순간 자신의 몸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보며 M을 생각했다.
 '가장 먼저 보여주기로 했는데……안녕, 언젠간 널 구해줄게.'
 날개는 그렇게 차가운 공기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

 M은 검은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연보라빛이였고 바람은 선선했다. 꼭 날개를 생각나게하는 날씨였다. M은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날개가 사라져버렸다. 정말로 날아갈까봐 두려웠던 날개가 정말 가버렸다. 사실을 알았을 땐 눈물이 나올줄 알았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선영에게 먼저 문자를 보낼 정도였다. M은 점점 그런 자신이 두려웠다.
 장례시장 입구에 도착한 M은 한 가족과 경찰들을 보았다. 날개의 가족이였다.
 "말도 안돼요! 어떻게 그게 자살이라는 거죠? 분명히……분명히 그건 사고였다구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저희가 말씀드렸잖지 않습니까, 분명히 빨간불이였고 따님은 그걸 알고도 건넌거라구요. 도대체 뭐가 의문이신겁니까?"
 "아아아아악!"
 날개의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움찔한 경찰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M은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당신들 다 날 속이는거야! 어째서 우리 딸이 죽었다고 생각해? 우리 날개……크게 될 아이였어. 환경도 아니았고 가족 때문에도 아니야. 성적도 아니고 친구 때문도 아닌데 당신들이 죽인 거야 알아? 불쌍한 우리 딸……흐으으윽윽……."
 날개의 엄마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날개 엄마의 울음 소리는 M의 마음 속 깊숙히 파고 들어왔다. 날개 엄마와 날개는 생각은 무척이나 달랐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같았다. M은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M은 경찰들의 사이에 있는 날개의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날개 친구 M이라고 합니다."
 뜬금없이 나타난 M의 모습에 날개의 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M을 보았다. 주저앉아 통곡하던 날개 엄마도 고개를 올려 M과 눈을 마주쳤다. M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날개의 아빠가 멱살을 잡았다.
 "네가……네가 정말 M이라는 거냐?"
 M은 날개 아버지의 분노로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날개 아빠의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 날개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M의 말이 끝나자마자 볼에 빨간 자국이 새겨졌다. 하지만 M은 충격으로 자신의 몸이 흔들리면서도 과연 자신이 '가장 친한 친구'였는지 궁금했다. 날개 아빠는 멱살을 놓고 날카롭게 말했다.
 "친한 친구였다고? 가장 친했다고? 넌……그저 우리 딸을 죽이게 한 사람들 중 하나야! 어서 꺼져버려!"
 날개 아빠는 품에서 그리 크지않은 공책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M은 천천히 그것을 주웠다.
 "날개가 지금까지 쓴 일기다. 그 안에 네놈 녀석 이야기가 있더군. 어떻게 했길래……어떻게 했길래 우리 날개가 깜빡하고 넘어간거냐! 이렇게 순진한 아이를 갖고 놀아서 뭐 하겠다는 건데! 너 같은 자식 때문에……왜! 왜 우리 딸이 죽어야 되냐고!"
 경찰들이 이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고는 돌아섰다. M은 공책을 주워들어 몇 장 넘겼다. 날개 아빠가 그랬듯이 M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난 날아보고 싶다. 이 땅은 너무나도 더러워서 계속 살다간 숨이 막혀 죽을것만 같다. 내 이름은 윤날개. 이름처럼 내 작은 어깨에서 날개가 펄럭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긋지긋한 이 곳을 벗어나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날아가버리고 싶다. 지금의 가족을 잃고, 지금의 성적을 잃고 나의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 제발 바람이 날 어디론가 데려가주었으면 좋겠다.
 난 M에게 물었다. "M, 인간은 정말 날 수 없는 걸까?" 난 그 물음을 할 때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M이 영영 날 수 없다고 해버릴까봐, 다른 사람들이 내 꿈을 짓밟았듯 M도 짓밟아 버릴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M은 달랐다. "아니." 답은 간단했지만 난 너무 기뻤다. M이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 난 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날아볼 수 없다고 해도 날아가버릴거다. 안녕 M. 널 두고 가긴 너무 싫지만……잘있어.」
 "이제서야 알겠어? 네가 날개를 죽인 걸?"
 "저, 전……아니예요……날개가 원하는 대답은 바로 이거였다구요!"
 한번더 날개 아빠의 손이 M에게로 향했다. 쓰러진 M을 다시 일으켜세운 날개 아빠는 한번더 때렸다. M은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날개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게 되었다. 더욱더 확실해졌다. M은 날개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았다. 그저 착한척하며 날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간 중 하나였다.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나도 서글퍼졌다. 혼란스러운 가운데에서 눈물이 목구멍에서 계속해서 올라왔다. M은 날개 아빠의 주먹을 맞으며 그 눈물들을 꾹꾹 눌렀다. 피를 닦던 M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 제발……날개를……한번만 보게 해주세요. 날개를……한번만."
 날개 아빠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때 날개의 동생인 하늘이가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시장안에서 뛰어나왔다. 날개 아빠는 거칠게 M을 놓고는 어색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안았다. 하늘은 동그란 눈을 뜨며 말했다.
 "아빠! 언니 친구 왔네? 오빠도 언니 보려고 온거야? 언니……우리 언니 기다릴텐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날개 아빠는 하늘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비교되는 표정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얼굴만 보고 바로 나와라. 너 같은 놈 날개 앞에 오래 세워놓기도 싫으니까……."
 M은 하늘에게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돌아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M은 날개의 사진을 보았다. 검은색의 테두리가 M을 점점 슬프게 만들었다. 그 테두리는 산 사람은 전혀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어떠한 경계선을 그려놓고 있었다. M은 자신에 얼굴에서 무엇인가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손등으로 닦아냈지만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어깨가 흔들렸고 눈 앞이 흐려져 날개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M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날개의 사진을 가지고 싶었다. 온 몸은 비틀비틀 거렸지만 날개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마침 주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그 사람들은 M을 문상하러 온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국화꽃들 위에 있는 검은색 액자를 든 M은 눈물을 흘리며 피식 웃었다.
 '역시 M! 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다 안된다고 했는데……그래, 난 날아볼거야.'
 M의 머리속에서 날개의 목소리가 울렸다. 혼자여서 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그때였다.
 짝! M이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날개 아빠는 다시 화난 얼굴로 M을 내려다보았다. M은 날개의 사진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쓰러진 M을 향해 계속해서 공격이 가해졌다. 하늘인 울면서 자신의 아빠를 붙잡았지만 날개 아빠는 전혀 하늘을 보지 않았다.
 "이 자식……날개 얼굴만 보고 온다길래 허락해줬는데……감히 날개를……죽어버려! 너 같은 건……너 같은 놈은……."
 "아빠……아빠 그만해- 아빠……"
 "저리가! 윤하늘, 빨리 저리로 나가있어!"
 하늘은 잔뜩 지푸린 얼굴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날개 아빠는 M을 공격하던 발길질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입을 열었다.
 "아빠 미워! 언니기……언니가 울고 있는데……아빠 미워! 언니는 아빠같은 사람 싫어해! 아빠 미워……."
 하늘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M과 하늘을 번갈아보던 날개 아빠는 결국 하늘에게로 가 달래주기 시작했다. M은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날개가 자신 때문에 울고 있다. 이젠 울고 있게 할 수 없다. 입 안에서는 비릿한 맛이 느껴졌지만 한번더 날개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일어서 사진을 하늘에게 안겨주었다. 하늘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M을 올려다보았다.
 "……잘 있어. 언니한테 네 이야기 전해줄게. 그러니까 울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하늘은 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 아빠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끼이이이익.
 M은 간신히 올라온 옥상의 문을 열었다. 하늘은 푸른빛을 거의 잃어가고 더욱더 어두운 색으로 탈바꿈해가고 있었다. M은 바람이 가장 잘 부는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날개는 지금 자신 곁에 없었지만 무엇인가 자신 옆에 꼭 붙어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버린 M은 아직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그 눈물들은 마치 날개의 눈에서 흐르는 것 같았다.
 "윤날개."
 M은 조심스레 날개의 이름을 읊조렸다.
 "전교 일등 윤날개, 글 쓰는 윤날개, 아이들이 싫어했던 윤날개……내가 우는 이유인 윤날개……정말로 날아가버린 윤날개."
 M은 쿨렁쿨렁 목에서 넘어오는 눈물들을 애써 막으면서 생각했다. 자신은 날개에 대해서 알고있는 것이 너무 없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날개와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날개를 좋아했는지 자신이 날개 때문에 우는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M의 머리속에서 정말 징그럽도록 새겨진 한마디가 M을 찔렀다. 날아가버린 윤날개. 그토록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았는데 날개를 펼쳐버린 윤날개. 너무 미웠다. M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날개와의 일들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인간은 정말 날 수 없는 걸까?"
 M은 그 질문을 다시 회상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친 상처들은 쓰리고 땅 바닥은 눈물들로 흐릿하게 보였다.
 "아니."
 자신의 대답에 환하게 웃던 날개가 너무 그리웠다. 그리곤 그런 못된 대답을 한 자신이 죽을만큼 싫었다. 만약 날개의 물음에 M이 반대로 대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은 영영 날 수 없다고, 이 땅에 있는 무엇들이 자신을 찔러서 피가 철철 난다고 해도 살아야 한다고. 날아가버리는 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면 날개는 포기했을까? 죽지 않았을까? M은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안았다.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날개 아빠의 말이 맞다. 날개는 자신이 죽인 거다. 날 수 있다는 못된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날개는 죽어버렸다. 모든 것은 자신이 원인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윤날개같은 나약한 아이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아아아아악! 왜! 왜 죽은 건데! 모든 걸 다 버리면서 왜 죽은건데!"
 M은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크게만 하면 날개가 들을 수 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죽으면 다 끝날줄 알았어? 그럼 이유라도 밝히고 죽어야 될 거 아니야! 내가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을 거 같았지? 내가 너 보고파할줄 알았지? 아니야……너 같이 무책임하게 가버린 얘 생각도 하기 싫다고! 진짜……말도 안돼 너……날아가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M은 계속 울었다. 싫다고는 했지만 왠지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순간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었다. 지금의 생활도 학교도 M 자신도. M은 고개를 들었다. 문득 무엇인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래……날개는 날아가버린게 아니야! 땅 속에 갇혀버린 거라고! 날아가고 싶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붙잡아버린거야. 그래서 가다가 땅으로 추락한거지……아님 혼자 그곳으로 떨어져버린건가? 말도 안돼……난 왜 이걸 지금 알게 된 거지? 진짜 멍청하다, 한심해 M……날개가 보면 뭐라고 하겠어?"
 M은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일그러지며 시선은 땅에 꽂혔다.
 "그런데……날개마저 땅에 처박혀버렸잖아……날개마저도 날아가지 못했잖아! 그럼 난? 난 이제 어떻게 살아? 아니야, 아니야……혼란스러워. 정리가 안돼……싫어……싫다구!"
 M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어떻게든 빨리 진실을 찾고 싶었지만 몸은 쉽사리 일으켜지지않았다. 짜증나고 화가 치솟아올랐다. 날개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왜 죽어버렸는지 원망만 점점 늘어갔다. 그때였다.
 '날아봐.'
 M은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M의 젖은 머리칼을 바람이 한 줄기 훑으며 지나갔다. 분명 날개다.
 '넌 날수있잖아.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올 수 있잖아.'
 귀를 기울인 M은 날개의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그렇게 보고팠던 날개다. 좋아했는지 기다렸는지도 모르는 날개다. 그런 날개가 지금 자신 곁에 와있다. M의 얼굴에선 전과 달리 희망이 감돌았다. 무거웠던 몸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M……나는 건 아주 쉬워. 하늘과 바람에 네 몸을 맡기고 잠시만 눈을 감으면 돼.'
 "하, 하지만……하지만 난……."
 날개의 목소리에 M은 살짝 망설여졌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바람은 날개가 정말 맞을까.
 '뭐가 그렇게 두려운거야? 아님 곁에 없는 나대신, 속물인 아이들하고 지내고 싶은거야? M, 믿어. 난 날개야. 널 날게해줄 날개라구.'
 "정말로……정말로 잠시만 눈을 감으면 날아갈 수 있는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날개의 목소리에 대답한 M은 다시 한번 바람을 맞았다. 차가웠지만 깨끗했다.
 '그럼. 넌 눈을 감자마자 나에게로 올 수 있는거야, 안전하고 편안하게 말야. M……이제 시간이 없어. 어서 날아봐.'
 자꾸만 얇은 바람들이 M을 밀었다. M은 날개의 말처럼 바람이 자신을 이끄는 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은 어지럽고 시야가 흐릿했지만 얼굴엔 자꾸만 미소가 떠올랐다. 옥상의 난관에 M의 몸이 부딪쳤을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M! 오늘 시간있으면 나랑 영화볼래? 공짜영화티켓생겼어^^^^
 M은 무의식적으로 그 문자를 확인한 후 얼굴을 찌푸렸다. 바람의 길을 선영의 문자가 방해한 것 같았다. 미간을 한껏 모은 M은 빠른 손놀림으로 답장을 보냈다.
 -한선영, 이제 그만해라. 너 역겨워
 1분도 안되었을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M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이야? 역겹다니? 너 갑자기 왜그래
 M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라니. 처음부터 선영은 싫었고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선영은 계속해서 M에게 문자를 보냈다.
 -M 너 무슨 일 있어? 너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띠리링
 -M! 왜 답장 안해! 빨리 대답하란 말이야! 너 어디야
 띠리링
 -너 윤날개 때문에 이러는 거야? 윤날개 죽어서 이러는 거냐구! M!
 M은 서서히 짜증남을 느꼈다. 선영에게 문자가 계속 올수록 바람은 더더욱 희미해져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나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알면서 이래? 그래도 되는 거야? 난 안보여?
 -실망이다……윤날개는 원래부터 죽어버렸어야 했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너 같은 거 진짜 질린다……M 너 답장 안하면 나 죽어버릴거야. 자살하기전에 답장 보내
 M은 분노한 모습으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던저버렸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핸드폰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튀어올랐다. 전원이 나가버린 핸드폰은 그제서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리지 않았다. 곧 M은 편안한 얼굴로 난간을 밟고 섰다.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았다.
 "윤날개……지금 너한테로 갈거야. 하나둘셋 다 세면 눈 감을거니까 눈 감자마자 데려가야 돼."
 대답을 해주듯 바람은 자꾸만 M의 곁을 맴돌았다. 미소를 지은 M은 숫자를 셌다.
 'M, 어서 셋까지 숫자를 세. 나 이미 네곁에 와있어.'
 "……하나, 둘……."
 M은 셋을 세기전, 즉 눈을 감기전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건물들은 M을 찌를듯이 노려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이 찔려서 죽기전 날개가 안전하게 자신을 데려가줄거니까. 같이 날아가서 앞으로 함께 계속 있을테니까.
 "셋,"
 M은 휘청거리는 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2009년 7월 23일

 선영의 엄마는 누워있는 딸 옆에서 하염없이 얼굴을 쓸어내려주었다. 벌써 몇일째 병원에 있는건지 조금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의 딸을 보면서 그런 마음들은 쥐죽은듯 고요해졌다. 창밖으로 햇살은 가득하게 흘러내리는데 아직도 선영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엊그제 잠시 깨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딸의 눈을 선영엄마는 생생히 기억했다.
 '왜 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거야.'
 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선영엄마는 느낄 수 있었다. 선영엄마는 딸의 손을 마주잡았다. 바로 밑에서 손목을 가로질러 그어져 있는 상처는 엄마의 마음을 계속해서 후벼팠다. 도대체 왜 이런짓까지 하게된것인지 선영은 말하지 않았고 엄마가 그 상처를 보는 순간 선영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곤 그 후로 눈을 뜨지도 밥을 먹지도 않았다. 물론 눈을 뜨기 싫어하는 것이었지만.
 "딸, 이제 일어나야지. 오늘도 계속 이렇게 잘거야?"
 딸의 앞머리를 쓸어올려주던 선영엄마는 무심코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마침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고 선영엄마는 볼륨을 조금 줄인 채 계속 지켜보았다.
 "몇 일전 일어났던 중학생 자살 소식에 대해서 계속해서 다른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장례식장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중학생 가명 이모군은 수사 초기,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자살로 미루어졌으나 이모군이 자살하기 3일전 죽은 윤모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선영엄마는 긴장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선영을 잠시 내려다보곤 다시 뉴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분명 저 '이모군, 윤모양'은 선영과 얽혀있는 아이들이었다. 갑자기 목이 탔다.
 "평소 윤모양과 이모군은 모범생으로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오다가 갑작스레 성적이 떨어진 윤모양이 먼저 차도에 뛰어드는 자살행동을 했고 후에 윤모양의 장례식에 갔던 이모군이 자살한 채 길거리의 시민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유와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때였다. 누군가 선영엄마의 옷을 잡아끌었다. 선영엄마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선영이 깨어나있었다.
 "……엄마."
 선영엄마는 갸날프게 빛나는 선영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꽉 막혔던 숨이 이제서야 풀리는 것 같았다. 선영엄마는 리모컨으로 빠르게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선영을 보며 미소지었다. 선영이 다시끔 희미한 소리를 내었다.
 "엄마……여기는……벼, 병……."
 "응 그래 선영아, 이제 다 괜찮아. 이쁜 우리 딸 엄마 말 듣고 잘 깨어났네."
 선영엄마는 선영을 꼭 안아주었다.
 "불필요한 것들은 버려버리는 거야. 이제부터 너에게 필요한 것들만 계속 쌓는거야. 쌓아오던게 무너져버렸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고. 우리딸, 잘 할 수 있지?"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병실의 열린 창문으론 깨끗하고 선선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白魂
白魂

추천 콘텐츠

B와 로봇 그리고 M

   철커덕 철커덕.  아침 6시. 인터B 공장의 불이 들어오면서 공장의 기본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봇 노동력들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가로 12줄, 세로 10줄을 맞추어서 섰다. 곧 그들 앞에 파란 홀로그램이 띠워지고 회장 B가 나왔다.  “새 아침이 밝았다. 6시가 넘었기 때문에 바로 기계를 가동시켰는데 혹시 불만 있나?”  회장 B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 B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역시 로봇들이군. 자 그럼 로봇 삼계명을 외치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하나!”  회장 B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정신이 번쩍 뜨인 로봇 노동력들은 입을 열었다.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의 위대하신 손 밑에서 태어났다.”  “둘!”  “나는 로봇이고 발명자를 위해 평생 일 해야 할 임무가 있다.”  “목소리를 좀 더 키워라. 셋!”  “나는 발명자의, 발명자에 의한, 발명자를 위한 로봇임을 잊지 않는다.”  로봇 노동력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행동을 했으며 같은 모양으로 입을 닫아 말을 끝냈다. 회장 B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됐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끝내도록 하지. 이상!”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로봇 노동력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  적당한 체격에 군데군데 하얀 머리를 가지고 있는 회장 B는 한숨을 쉬며 비서1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그래, 어제 몰래 우리 회사에 들어온 아이가 있다 했지. 그 아이, 주입은 잘 되고 있나?”  회장 B의 말에 비서1은 주춤거렸다.  “아, 그게……사실은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6살 이상은 받지 않는 게 주입 원칙이지만 그 아이는 벌써 8살입니다. 강제적 개념주입기계인 멀티Q를 실행하려고 할 때마다 재빨리 알아차리고 도망가기 일쑤예요. 게다가 반항도 심하구요.”  비서1의 말에 회장 B는 갑자기 화가 났다. 현재 인터B 공장은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면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 일들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비밀 체제로 바뀌게 되고 직원들은 해고가 되어도 영구적으로 남아있어야 하며 더 이상의 인력도 뽑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비밀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회사에 한 8살 아이가 무단으로 들어왔다. 만약 그 아이가 이 회사를 탈출해 모든 비밀을 말하고 다닌다면. 그 뒤는 벼랑 끝이었다. 무조건 생각을 주입시켜야만 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그 아이는 기계 모습이나 회사 구조는 물론이고 로봇 노동력까지 목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반항

  • 白魂
  • 2010-09-02
빠져들다

 7시 50분. 아직도 지하철은 달리고 있었다. 8시가 가까워져올수록 정현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 몇 정거장이나 더 남아있는데 8시를 넘기면 기자국의 팀장인 현창수가 얼마나 화를 낼까. 정현은 모든 걸 놓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기댔다. 기자라는 직업,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할까?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잘할수있고 하고싶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올바르게 전달하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기자국에 들어갔지만 상사의 짜증은 하루하루 힘들게만 만들었다. 발벗고 취재거리를 따와도 팀장이 안된다고 하면 곧바로 다른 주제를 찾아야한다. 기댈곳도 없고 하루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흘렀는지도 몰랐다. 정현은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먹었다. 정현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7분이나……진심으로 죄송합니다." 8시 7분. 정현은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동료기자들은 고개를 돌려 정현을 쳐다보다가 곧 자신의 일에만 열중했다. 예상했듯이 팀장인 이선우의 얼굴은 화가 잔뜩 나있었다. 정현은 슬금슬금 그의 자리로 다가갔다. 이미 푹 숙여버린 고개는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지금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7분이나 지각을 해? 기자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새벽까지 취채하다가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현이 당황한 얼굴로 사과했지만 팀장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던 팀장은 날카로운 눈을 뜨고 정현에게 말했다. "정현씨, 맡고 있던 취재거리 성준씨한테 넘겨." "네? 그게 무슨 말씀……." "정현씨가 하던거 그만하고 사이비종교에 대해서 취재해오라는 거야. 사이비종교가 뭔지는 알지?" 팀장에 갑작스런 결정에 정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돼, 새벽까지 그 기사 때문에 쉬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그만두라니. "어차피 제대로 못할거잖아. 일 그르치기전에 다른 기자한테 넘기라는 거야. 자, 더 할말없으면 그만 가봐." 정현은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지만 모니터만 바라보는 팀장에게서 돌아섰다. 한숨을 쉬며 털썩 자리에 앉은 정현을 동료기자인 미래가 쳐다보았다. "또 팀장이 뭐라고 했구나? 맞지?" 미래가 안쓰러운 얼굴로 커피를 건네자 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모금 마셨다. 금방 뽑은 것 같은 따뜻한 커피였다. "오늘 새벽까지 하던 취재 그만하래. 아예 쓰지말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까지 조사했던 거 다 다른 기자에게 넘기래." 정현은 고개를 숙였다. 한숨이 삐져나왔다. 미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럼 넌? 넌 무슨 기사 맡으라고 막 바꾸는 거야?" "사이비종교……아, 진짜 또 잘못쓰면 엄청날텐데. 게다가

  • 白魂
  • 2010-05-07
같은 것의 무의미

 "싫어, 다가오지마. 내 잘못 아니잖아. 제발……미안……정말 미안해……."  어둡고 축축하고 차가웠다. 사방의 벽들이 자신을 가로막아 가두고 있었다. 그 공간들은 점점 더 좁아지면서 성현을 숨막히게 했다. 그때 무엇인가 그 좁은 공간에 들어왔다. 성현의 엄마였다. 그녀는 문을 닫고 슬픈 표정으로 성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잡지 못했다. 갑자기 숨이 가빠왔다. 성현은 그녀 때문에 공간이 좁아지고 숨막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공간은 더욱더 좁아들고 공기도 희박해져갔다. 이 공간에서 공기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은 빠르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성현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어둡고 차가운 벽에 손을 대며 마침내 그녀를 찾은 성현은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땀에 젖은 손을 그녀의 목에 댔다. 그녀는 뭐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공간은 점점 더 좁아오고 공기는 더욱더 탁해져갔다. 그녀는 성현에게 손을 뻗쳤고 성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성현은 그녀의 목을 졸라버렸다.  "그만해!"  성현은 꿈을 뒤로하고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엄마의 목을 졸랐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자신과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그녀였고 이것은 한낱 꿈일뿐이었다. 성현은 더 이상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일어났다. 얼굴을 씻은 뒤 정장을 입고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들을 확인했다. 한성병원의 외과의사인 성현은 한성병원을 물려받을 사람으로 촉망받았다. 이런 성현에게 과거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그런 사람 있었던 적도 없었듯이 지금의 성현에게 꿈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윽고 병원 입구에 도착한 성현은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동료의사인 연준에게 찾아갔다.  "연준아, 안정제 좀 주라."  연준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성현은 머리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안정제 몇 알을 꺼낸 연준은 물이 담긴 컵과 함께 내밀었다.  "너 무슨 일 있어? 요즘따라 안색도 안 좋고 저번주부터 수면제나 안정제같은 약도 계속 받아가잖아. 몸에 안 좋아."  "나도 알지, 몸에 안좋은 건 아는데 요즘 자꾸 악몽을 꿔서 말이야. 되게 기분 나쁜 꿈이거든."  "그래? 무슨 꿈인데? 혹시 사람 죽이는 거 같은 꿈들이야?"  연준의 꿰뚫어보듯한 말에 놀란 성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연준이 말을 이었다.  "원래 외과의사들, 수술하다 환자가 죽으면 그런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넌 환자가 수술중에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 요즘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 아니야. 그런거 아니

  • 白魂
  • 2010-02-1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오우 길다..;

    • 2010-07-17 22:24:26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