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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찰칵보이
  • 작성일 2010-05-15
  • 조회수 334

1.

난 아마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콩을 싫어하는 사람들. 노콩.’

내가 그런 보잘것없는 벽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첫 번째는 내가 아마도 콩을 싫어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순전히 할 짓이 없어서였다. 아무것도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고, 심지어 싫어도 해야 할 일조차 없었다. 나는 길을 걷는 중이었다. 가야할 곳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스팔트는 까맸고, 해는 적당히 빛났다. 여러모로 지루한 길이었다. 비라도 왔었다면 그런 벽보따위에 관심 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그 벽보를 보고 관심을 가져 가입까지 하게 되었다. 노콩은 인터넷 카페에 불과했다. 회원은 5000명에 달했지만 등급은 겨우 새싹 등급이었다. 시시한 사이트였다. 커다란 빨간 글씨로 ‘까고 있네’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 까인 채로 으깨진 강낭콩 사진이 있었다.

게시판은 단순무식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끔찍한 강낭콩’, ‘재수없는 완두콩’, ‘더러운 땅콩’ 등의 분류였다. 글들은 공지사항 외에 별로 없었다. 채팅 중심의 카페인 듯 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채팅방에 들어갔다.

딸깍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대화하고 있었다.

3.

찰리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콩싫어: 안녕하세요

쌀밥사랑: 안녕하세요

찰리: 네. 안녕하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제가 어떻게 집을 나오지 않을 수 있었겟어요.

콩싫어: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저도 억지로 콩을 먹으라고 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학창시절에 스트레스좀 받았죠.

찰리: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콩만 먹으면 건강해지나요?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땅콩박살: 그래도 그렇지 겨우 콩밥 때문에 가출하는 건...

찰리: 무슨 이야기 중?

쌀밥사랑: 겨우 콩밥이라뇨? 땅콩박살님은 만약 엄마가 사람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면 집안에 붙어있을 수 있겠어요?

땅콩박살: 비약이 심하시네요.

콩싫어: 아뇨 저는 쌀밥사랑님의 비유가 그렇게 어긋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쌀밥사랑: 어떤 사람은 콩이 사람고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땅콩박살: 아뇨, 그래도 콩과 사람고기는,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고, 솔직히 좀 억지잖아요. 그리고 저는 콩밥안티님이 콩을 사람고기처럼 느껴서 가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콩밥안티: 저기요 님께서 제 생각을 어떻게 아시나요 땅콩박살님은 콩을 싫어하기나 하시는 분인가요? 안 싫어하신다면 나가세요. 왜 이 카페 가입하셨어요?

땅콩박살: 저는 콩밥안티님이 걱정돼서 그런거죠. 콩은 싫어합니다.

콩밥안티: 걱정되신다면서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왜 시비신가요?

찰리: 분위기 왜 이럼?

땅콩박살: 제가 언제 시비를 걸었나요...

콩밥안티: 제가 가출하는 거에 대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셨잖아요

땅콩박살: 그런게 아니라 저는 님이 정말 걱정되서, 그리고 콩밥 억지로 먹이는 것 때문에 가출한 거라면 그건 좀 아니고 님께서만 힘들어지실 걸 아니까.

콩싫어: 어떤 사람은 콩밥 먹는 게 가출해서 고생하는 것보다 힘들수도 있지요.

콩저주: 저는, 땅콩박살님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쌀밥사랑: 아 그래서 콩저주님은 콩밥을 억지로 먹이는 게 괜찮은 일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콩저주: 아니 그런게 아니라...

쌀밥사랑: 그런 게 아니면 그냥 조용히 계실래요?

찰리: 왜 그러세요...

콩저주: ...

땅콩박살: 하, 다들 억지가 너무 심하시네요

콩밥안티: 억지는 님이 더 심하시죠. 콩 싫어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왜 콩편 들고 지랄이세요?

땅콩박살: 나이도 어리신데 욕하지 마시죠.

콩밥안티: 인터넷에서 무슨 나이가 대순가요? 생각이 있어야 나이 먹은 사람 취급을 하죠.

콩싫어: 지금 나이가지고 협박하시는 건가요?

땅콩박살: 다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콩밥을 억지로 먹인다는 이유만으로 가출하기에는 너무 콩밥안티님의 삶에 좋지 않으니까, 빨리 부모님과 화해하고 집에 돌아가서 진지하게 콩밥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고요, 원래 콩 싫어했는데 님들 얘기 듣고 있으니까 콩편을 들게 되네요. 콩 먹고 죽으신 친척이라도 계시나요?

콩웩: 콩 먹고 죽으신 친척 있는 사람 여기 있으니까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마시죠

콩싫어: 헐... 지금 땅콩박살님 개념이 있으신건가요?

콩밥안티: 막말이 쩌시네요.

땅콩박살:...죄송합니다. 어쨌든 제 의견은 다 정리했고, 듣지도 않으시니 전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땅콩박살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콩웩: 별 이상한 사람이 다있네요

찰리: 정말 콩 먹고 죽은 친척이 계시나요?

콩싫어: 그러게요. 별 희한한 사람 다 보겠네요

콩밥안티: 안그래도 집에 들어가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저러니까 그냥 더 가기 싫네요

쌀밥사랑: 하하. 원래 그 나이 때는 하라면 더 하기 싫은 법이죠.

콩밥안티: 정말 사람마음을 모르는 분이었어요. 그죠?

콩웩: 마자요.

쌀밥사랑: 그런데 콩웩님, 정말 콩먹고 돌아가신 친척 분 계시나요?

콩웩: 그런 사람 없어요ㅋ

콩싫어: 헐 대박.

콩밥안티: 대박반전이네요. 근데 잘했음. 아 속이 다 시원하네요

콩저주:...뭐냐 미친놈들

콩저주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콩밥안티: 헐 미친년...

콩웩: 찌질하네요.

버린콩: 짠 다들 심각한 이야기 끈나셨나요?

콩싫어: 대충 마무리 된 것 같네요.

버린콩: ㅋ재밌었음

콩밥안티: 암튼 신성한 밥에다 콩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이해가 안감. 대체 뭐하러...

버린콩: 그러니까요. 무슨 음식 낭비도 아니고...

콩웩: 그거 학교 급식에 콩밥 나오고 잔반 없는 날일때, 아 진짜 영양사 죽여 버리고 싶음.

콩밥안티: 헐 대박 최악이다.

쌀밥사랑: 진짜...생각만 해도 짜증남.

콩싫어: 우리반엔 콩다이어트 하는 애 있는데 겁나 오크같이 생겨서 콩 맨날 열라 처먹음 죽어버리고 싶음.

콩밥안티: 헐.. 짜증남...

버린콩: 그냥, 콩은 그냥 싹 다 죽어버려야 함

콩밥안티: 없어져야할 생물임

버린콩: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던 거 김춘수 시인 ‘콩 너는 죽었다’ 그거 되게 좋지 않나요?

찰리: 어?

콩웩: 아, 그거 완전 최고임. 그거 볼 때마다 속이 시원함

쌀밥사랑: 졸라 좋음.

찰리: 김용택 시인 아닌가요?

콩밥안티: 아 그 시 대박이죠. 콩이 쥐한테 갉아먹히는 생각만 해도, 완전 소름 돋고 좋음

찰리: 김용택 시인인데...

콩싫어: 그냥 다 갉아 먹혔으면 좋겠음

쌀밥사랑: 쥐 너무 좋음ㅋㅋ

찰리: 아썅

콩밥안티: 찰리님 욕좀 하지 마시죠.

콩싫어: 개념이 없으신 분인가보죠.

찰리: ??

콩웩: 전 정말 두부도 볼 때마다 토나옴

버린콩: 엉? 전 두부는 괜찮던데

찰리: 관심 주신 거 맞나요? 제 말 보이나요?

콩밥안티: 저도 두부는 맛있던데, 너무 콩 싫어하시는 거 아닌가요?

쌀밥사랑: 알레르기 있으신가?

콩싫어: 아니면 두부 먹고 죽으신 친척이라도 계신가요?ㅋㅋㅋ

콩밥안티:ㅋㅋㅋ

쌀밥사랑:ㅋㅋㅋㅋ

버린콩:ㅋㅋㅋ

콩웩: 아니.. 너무 좋아서..토나온다고...

콩싫어: 아 저도 사실 두부 싫어해요

쌀밥사랑: 저도 두부 별로...

콩웩: 아, 그죠? 두부 맛없죠. 진짜 싫음.

버린콩: 뭐임ㅋㅋ

콩싫어: 콩웩님 이상하시네요

콩밥안티: 두부 싫어하시는건가요 좋아하시는건가요

콩웩: 싫어해요...

콩밥안티: 아까는 좋아하신다고...

콩웩: ...

쌀밥사랑: 아 졸라ㅋㅋㅋ

콩밥안티: 어이가 없네요

콩싫어: 콩웩님 콩 싫어하는 것은 확실한가요? 그냥 카페 들어오고 싶어서 콩 싫다고 한 건 아닌가요?

콩웩: 콩 당연히 싫어하죠...

콩밥안티: 님 말을 믿을 수가 없네요

쌀밥사랑: 알고 보니 콩 사랑하는 카페 그런 데에서는 또 콩 좋다고 난리치고 있을지도 모름

콩밥안티: 헐 정말인가요? 사실인가요?

콩웩: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죠...

콩싫어: 그렇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미 저희한테 믿음을 잃으셨네요

쌀밥사랑: 사과하시죠.

콩밥안티: 사과하고 콩 싫어한다는 거 증명도 하세요

콩웩: 미안합니다... 그런데 증명은 어떻게 하죠?

콩밥안티: 혹시 콩먹으면 토하시나요?

콩웩: 아뇨...

콩밥안티: 전 토하는데...

콩싫어: 헐 당연히 토하는 거 아님? 싫어하는 거 먹었는데

쌀밥사랑: 토 당연히 하죠. 콩 싫어하는 거 맞긴 함?

콩웩: 아, 네... 토 하는 것 같아요. 콩 싫어하는 거 맞아요

콩밥안티: 그럼 콩먹고 토한거 게시판에 사진 올려주세요

콩웩: ...어떻게

콩싫어: 그정도는 하셔야죠. 믿음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 줄 아세요?

쌀밥사랑: 박쥐같이 하셨는데 그정도는 하셔야죠.

콩웩: 알았어요. 10분정도 있다가 확인하세요.

콩밥안티: 안돼요. 저희가 콩 너는 죽었다 칠테니까, 그거 다 칠때까지 사진 올려주세요

콩웩: 네...

콩밥안티: 저님 빼고 나머지 분들이 번갈아가면서 한 연씩 치죠. 제가 먼저치고 콩싫어님하고 쌀밥사랑님, 아 그리고 버린콩님은 잠수인가요? 그럼 저희들끼리 하죠.

찰리: 저도 있는데.

콩밥안티: 콩, 너는 죽었다 김춘수

찰리: 김용택이라고...

콩싫어: 콩 타작을 하였다.

쌀밥사랑: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콩밥안티: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싫어: 콩 잡아라 콩 잡아라

쌀밥사랑: 콩 잡으러 가는데

콩밥안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콩싫어: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쌀밥사랑: 콩, 너는 죽었다

콩밥안티: 끝.

콩웩: 올렸어요.

콩밥안티: 헐... 더러움

콩싫어: 카페에 그런걸 올리시면 어떻해요

쌀밥사랑: 미치셨나요

콩웩: 아 개새끼들

콩웩님이 퇴장하셨습니다.

콩싫어: ㅋㅋ아 졸라웃김

콩밥안티: 그놈 토하느라 참 힘들었을 거임

쌀밥사랑: ㅋ박쥐년한테 알맞은 처벌이엇음 근데 다들 정말 콩 먹으면 토하시는 거 아니죠?

콩밥안티: 물론 아님

콩싫어: 아님.

콩밥안티: 아 배고픈데 집에나 들어가 봐야겠음. 이정도면 엄마도 반성하고 좋은 쌀밥 차려 주겠죠?

쌀밥사랑: 쌀밥만세

버린콩: 짠 심각한 얘기 다 끈나셨나요?

찰리: ...

찰리님이 퇴장하셨습니다.

3.

‘뭐야. 이게.’

채팅방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공허해졌다.

굉장히 재밌어보였는데 아무도 내 말에 주목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 학창시절부터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왜 항상 내 인생은, 사람 산다는 것은 이토록 시시한 걸까. 하, 비가 온다. 아까 왔었다면 이런 사이트 따윈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붉은 글씨의 ‘까고 있네.’ 까여 으깨진 강낭콩. 또 하나의 좋지 않고 따분한 기억이 늘었다. 이젠 내가 콩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더 모르겠다. 싫어하는 것 같긴 한데.

-

오랜만이네요

학교 백일장에 쓴 글인데 쓰는데 즐거웠어요.ㅎ

그런데 '콩깐다'라는 게 그렇게 야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걸 쓰고나서 찾아보고 처음 알았네요.;;

이 소설은 '콩깐다'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그냥 가볍고 웃긴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채팅으로 처리한 부분이 아쉽긴 하네요.

찰칵보이
찰칵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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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1. 난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당신도 하나쯤 있을 법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는 끔찍한 구멍이 마당에 뚫렸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지만 가보니 꽃밭밖에 없었다. 마당에 구멍이 뚫렸다니. 너무 싱겁고 어이없는 농담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건 오히려 내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문제로 아빠와 싸우고 나서부터 집을 나온 지 벌써 몇 년째가 돼간다. 이 마을에 온 지도 그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 이 거리는 익숙하지 않다. 구불구불한, 텅 빈 길. 좁지만 왠지 커다란 광장에 혼자 있는 듯한 공허감이 드는 불쾌한 길이다. 이 시간대의 거리는 특히 그렇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은 간신히 옅은 빛을 유지하고 있다. 가로등 사이의 어두운 공간을 걸을 땐 우주에 와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우주 안을 걸어 다닌다는 건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주인집도 이상하다.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이상한 집일지도 모른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화목하다. 주인집에는 4,50대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주인아저씨, 비슷한 나이대의 넉살 좋은 주인아줌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살고 있는데, 방음이 잘 안돼 아래 세들어 사는 내 방까지 대화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이런 식이다.   (여학생1)"ㅇㅇ이가 이번에 평균이 20점이나 올랐대요?" (주인아줌마)"어머머, 정말? 걔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 (주인아저씨)"우리 딸도 열심히 해라." (여학생1)"당연하죠. 제가 언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린 적 있었나요?" (주인아저씨)"하긴, 우리 소리가 일등만 하는 건 세상이 다 알지!" (주인아줌마)"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가면서 공부하렴." (여학생1)"아뇨. 별로 안 힘들어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릴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주인아줌마)"어유, 우리 딸 나도 사랑해." (주인아저씨)"내가 더 사랑하지!" (여학생1)"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오호호."   모든 대화가, '사랑해'로 끝난다. 무슨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있을까.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가정이다. 쾨쾨한 내방에 앉아 이런 대화가 들려 올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외롭다.   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모처럼의 외출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사업 때문도 있고, 원래 밖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렇게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모처럼 가로등이 온 힘 다해 길을 비춰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더 밖에 남아있고 싶었다. 이리저리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어 다니다 보니 마을 교회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작게 따라불러 보았다. 나도 한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교회에 갔었지.

  • 찰칵보이
  • 2009-12-26
구름

1. 하늘은 엷은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들에 묻혀, 마치 구름위에 하늘 조각이 떠다닌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 풍경이 예뻐서 감상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강동원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촉촉한 입술을 갖다 대는 강동원을 생각하며 마른 입술만 빡,빡,거렸다. "평화야, 무슨 생각해?" 구름이가 내 옆으로 와 털썩, 앉으며 물엇다. 짧게 자른 머리칼이 찰랑 흔들렸다. 지독히도 안 어울린다. "그냥……, 하늘구경?" 그리고 살짝 애수에 잠긴 눈으로 하늘을 바라봐준다. 뭐, 하늘 구경을 하던 건 아니었다. 매일 보는 하늘이 뭐가 좋다고. 그 사이 야동을 한 편 더 보고 말지. 다만 감수성 풍부하고 생각 많은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선 이 방법이 탁월한 법이란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 구름이도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너무 예쁘다." 내 말에 구름이는 "뭐? 내가 예쁘다고? 고마워." 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나도 히히히 웃는다. 정말 존나 유치하고 상투적인 말장난이었다. 뭐, 당연히 이 반응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지만, 안 웃긴데 자연스럽게 웃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하지만 내 친절한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구름이가 웃음을 멈출 때 쯤 나도 웃음을 멈춘다. 웃음을 멈춰도 미소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 난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구름이는 조용히 구름을 바라보다 입을 뗀다. "나, 구름이 되고싶다." "니가 구름이잖아." 농으로 던져 본건데 구름이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늘의 구름 말이야. 진짜 구름."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왜?"최대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빨리 급식실에 가서 밥먹고 싶었다. 배고팠다. 눈치도 없는지 구름이는 둥둥 떠가는 구름만큼이나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러니까, 저렇게 높은 곳에서 둥둥 떠가는 것도 부럽고, 왠지 깨끗해 보이고, 또, 햇살도 가까이서 쪼이고, 멀리멀리 갈 수도 있고, 또, 뭐랄까, 가벼워 보이고, 무엇보다도……." "응." 내가 니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흔적 하나. 구름이는 말을 이었다. "힘들면 아무데서나 실컷 울 수 있잖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뭐야, 그게, 엄청 감성적인 척 하는군. 구름이를 봤더니 하늘을 보고있는 착각인지 진짠지 몰라도 구름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정말 '척'하는 건지 헷갈렸다. 특히나 그건 구름이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딱히 위로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친절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서 "에이, 우리 구름이가 왜 이래! 배고프다. 밥먹으러가자!" 하고 구름이 손을 잡아끌며 급식실로 달려갔다.   2. 사람은 누구나 화장을 하고 사람을 대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추악한

  • 찰칵보이
  • 2009-10-10
진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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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칵보이
  •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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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포...폭풍을 까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으신가?!

    • 2010-05-16 15:45:2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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