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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 작성자 찰칵보이
  • 작성일 2009-12-26
  • 조회수 395

1.

난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당신도 하나쯤 있을 법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는 끔찍한 구멍이 마당에 뚫렸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지만 가보니 꽃밭밖에 없었다. 마당에 구멍이 뚫렸다니. 너무 싱겁고 어이없는 농담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건 오히려 내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문제로 아빠와 싸우고 나서부터 집을 나온 지 벌써 몇 년째가 돼간다. 이 마을에 온 지도 그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 이 거리는 익숙하지 않다. 구불구불한, 텅 빈 길. 좁지만 왠지 커다란 광장에 혼자 있는 듯한 공허감이 드는 불쾌한 길이다. 이 시간대의 거리는 특히 그렇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은 간신히 옅은 빛을 유지하고 있다. 가로등 사이의 어두운 공간을 걸을 땐 우주에 와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우주 안을 걸어 다닌다는 건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주인집도 이상하다.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이상한 집일지도 모른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화목하다. 주인집에는 4,50대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주인아저씨, 비슷한 나이대의 넉살 좋은 주인아줌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살고 있는데, 방음이 잘 안돼 아래 세들어 사는 내 방까지 대화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이런 식이다.

 

(여학생1)"ㅇㅇ이가 이번에 평균이 20점이나 올랐대요?"

(주인아줌마)"어머머, 정말? 걔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

(주인아저씨)"우리 딸도 열심히 해라."

(여학생1)"당연하죠. 제가 언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린 적 있었나요?"

(주인아저씨)"하긴, 우리 소리가 일등만 하는 건 세상이 다 알지!"

(주인아줌마)"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가면서 공부하렴."

(여학생1)"아뇨. 별로 안 힘들어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릴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주인아줌마)"어유, 우리 딸 나도 사랑해."

(주인아저씨)"내가 더 사랑하지!"

(여학생1)"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오호호."

 

모든 대화가, '사랑해'로 끝난다. 무슨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있을까.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가정이다. 쾨쾨한 내방에 앉아 이런 대화가 들려 올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외롭다.

 

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모처럼의 외출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사업 때문도 있고, 원래 밖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렇게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모처럼 가로등이 온 힘 다해 길을 비춰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더 밖에 남아있고 싶었다.

이리저리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어 다니다 보니 마을 교회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작게 따라불러 보았다. 나도 한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교회에 갔었지. 따스한 느낌이 손끝을 스쳐갔다. 오랜만에 한번, 하고 생각하곤 교회를 향해갔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기도시간이었다. 피아노 소리만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모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발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면서 맨 뒤 빈자리를 찾아갔다. 긴 의자. 엄마와 아빠는 이 의자의 구석에 앉아 기도를 했고, 어린 나는 그 무릎에 앉아 잠을 자곤 했다. 중학교 일 학년, 엄마가 돌아가신 뒤론 아빠는 교회를 그만뒀다. 일요일이 되면, 아빠는 방에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만 쳐다보았다.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아빠는 내가 집을 나간 뒤부터 다시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왜일까, 내가 돌아오길 기도했던 걸까. 어쨌든, 1년 전 영정사진으로 다시 만난 아빠는 천국에 가서야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기도가 끝나는 순서였던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일어났다. 앞쪽부터 돌아오는 아줌마들과 눈이 마주쳤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들도 인사하며 지나갔다.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아, 소리네 세들어 사는 총각."

"아, 그 백수 청년?"

"응."

"아휴,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한심하네."

"그러게, 이제 한 이십 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데 부모도 없나?"

"몰라, 그런데 우리 교회는 웬일이데?"

"몰라, 밖에도 거의 안 나온다던데 별일이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쳐다봤다. 다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얼른 눈을 피했다. 그래도 눈길들이 느껴졌다. 긴 의자 양옆의 공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아무도 내 옆에 앉지 않은 채로 날 바라봤다. 난 고개를 숙였다. 의자 밑에, 도토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개밥에 도토리 꼴로 회색의 예배당 바닥에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있었다. 왠지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주워들었다. 도토리가 이제야 친구를 만났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재떨이 중앙에 도토리를 놓고, 물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싹이 포옥, 하고 올라올 것 같았다. 위층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주인아줌마)"어머, 호호호 그게 정말이니?"

(여학생1)"글쎄 정말이라니깐요!"

(주인아줌마)"어이구, 우리 딸 장하다. 사랑해~"

(여학생1)"저두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주인아줌마)"그래, 우리 항상 사랑하며 살자~오호호"

 

그때, 도토리에서 싹이 포옥, 올라왔다. 난 그 광경을 보고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자라면 주인집까지 뚫을 수 있을지도 몰라. 흑갈색의 큰 줄기가 천장을 부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2.

도토리는 대나무처럼 빨리 자랐다. 며칠 새 천장에 닿아버린 도토리나무는 이제 사방으로 자리를 넓혀갔다. 수없이 뻗어가는 가지들이 천장을 덮었다. 이파리도 여러 개가 돋아나 형광등 불빛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었다. 스텐드를 켜고 지내게 되었다. 곧, 수많은 도토리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어쩌면 주인집 바닥을 뚫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켰다. 오늘도 내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내 홈페이지에 방문해 있었다. 반짝반짝 메뉴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홈페이지를 보고 그들은 도토리나무 그림자가 가득한 쾨쾨한 방을 짐작할 수나 있을까.

 

딩동,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재휜가? 하긴 찾아올 사람이라곤 재휘밖에 없었다. 문을 벌컥 열었다.

"재휘닝?"

그곳엔 재휘가 아니라 여학생1이 서 있었다.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를 가진 여학생1은 며칠 씻지도 않은 추리닝 복장의 나를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고 올라오시래요."

그리고 얼른 문을 닫고 뛰어올라갔다. 난 머쓱한 표정으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 닫는 바람에 쓸려 도토리 나뭇잎 몇 개가 잘랑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분명 입지 않을 촌스러운 디자인의 흰 티를 입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벨을 눌렀다. 디잉동-내 방 벨과 미묘하게 다른 늘어지는 음이었다. 문이 열렸다. 여학생1이었다. 나를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훑어보더니

"들어오세요."

라고 하며 안내했다.

처음 보는 주인집은 생각보다 화목해 보이는 분위기의 공간은 아니었다. 난 집안에 장미나 백합 같은 향기 가득한 꽃들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알로에 화분 하나만 베란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마저도 갈색으로 시들어 있어서 별로 향기가 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어서 와요."

주인아줌마가 앞치마를 손바닥으로 툭툭 털며 반겼다. 식탁 위에는 중앙에 고기가 놓여 있고 그 주변에 나물이며 김치며 반찬이 놓여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항상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웠기 때문에 이런 식탁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우리 딸이 학교 부회장이 돼서 급하게 차렸어요. 뭐, 많이 차리진 못해서 경호군이나 불러서 같이 먹을까, 하고 불렀어요. 아, 저기 앉아요. 여보~ 아랫집 청년 왔어요. 빨리 나와요~"

주인아줌마는 말하면서 용케도 그릇이나 접시를 나르거나 밥을 푸거나 하는 일들을 하였다. 주인아저씨가 한쪽 방문을 열고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어, 왔구만. 앉게."

난 엉거주춤 식탁 앞에 앉았다. 여학생1이 주인아저씨의 뒤로 와서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여기 우리 첫째가 학교 부회장이 돼서 말이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식탁을 바라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 부회장까지 하니, 부러울 데가 없어."

"아이, 아빤 참."

"왜, 사실인걸."

난 한번 미소 짓고 말았지만, 그 부녀가 한마디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기에 난 가까스로 힘을 주어가며 한마디를 했다.

"따님, 이, 참, 자랑스, 러, 우시겠어, 요오. 흐흠."

나의 느리고, 힘겨운 한마디를 들은 그들의 표정에서 내 말을 들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표정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당황과 동정의 눈길. 그리고 비웃음. 흠, 허허, 어색한 웃음을 먼저 뱉은 후 주인아저씨가 물음을 던졌다.

"흠, 말하는 게 힘든가?"

사실 말하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더 말하기가 싫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말하는 게 힘든 건 맞다.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확실히 똑바로 말하기는 힘들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힘주어 말하지 않으면 말버릇이 나와버린다. 아빠는 이 말버릇을 싫어했다. 물론 나도 싫어하긴 마찬가지다.

"안녕. 나능, 안경호양. 잘 부탁행"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자기소개를 듣고 애들은 크게 웃었다. 그때는 머쓱하여 웃고 말았지만 그 후 고등학교까지 계속된 놀림에 난 혀를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시달렸고, 결국 말이 별로 없는 아이가 되었다. 아빠는 이 말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수도 없는 매를 때리고 병원에도 데리고 갔지만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난 고등학교 이후로 약간의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개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도 그 이유가 적진 않았다.

주인아저씨는 말하기가 힘든 사람 앞에서도 계속해서 딸을 칭찬했다. 태어나기 전 태몽부터 오늘 식탁에 앉아 하는 안마까지 아주 딸의 모든 걸 나에게 칭찬할 기세였다. 난 그 입에서 나온 침이 고기에 떨어지지 않는가 유심히 살폈다.

반찬들과 밥이 나오고 식사준비가 끝났다. 아줌마도 여학생1도 식탁에 앉았다. 다들 식탁에 앉자 아줌마가 거실 왼편에 방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김가영, 밥 먹으러 나와!"

그러자 방 안쪽에서

"싫어! 밥맛 없어."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낯익지 않은 목소리였다. 분명 여학생2일것이다.

"손님 오셨잖아. 잔말 말고 빨리 나와."

덜컹. 단발머리를 한 츄리닝의 여학생이 문을 소리 내어 열고 나왔다. 그리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집 가족들의 눈과 뭔가 달랐다. 눈썹 가운데에 주름이 지도록 찡그린 눈이 슬퍼보였다. 외로워 보였다. 여학생2는 인사를 허리만 비뚤하게 꾸벅하고는 귀찮은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그 집 가족 모두의 눈이 그녀에게 쏠렸다.

 

식사시간 동안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 가족은 손님을 앞에 두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꺼리지 않았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여학생2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찡그린 표정으로 밥만 꾸역꾸역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여학생2의 목소리가 위층에서 들려온 적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은 잘 계신가?"

주인아저씨가 물어왔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 가셨, 습, 니, 다아."

주인아저씨가 그렇구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가족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다들 건강하니, 얼마나 좋아? 그렇지? 하하."

라고 했다. 기분은 별로 나쁘진 않았지만 묘했다. 이런 이야기를 금세 꺼낼 수 있을까. 여학생1이 거들며

"그러게요. 우리 살아있을 때 더욱 사랑하며 지내요."

이어 주인아줌마가

"그래, 우리 딸. 여보, 사랑한다."

라고 하였을 때, 느껴졌던 이질감. 불편하지도 않은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사가 이어졌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여학생2가 반절 정도 밥을 남긴 채로 일어났다. 여전히 찡그린 표정 그대로였다. 아니, 더욱 심해진 듯싶었다.

"잘먹었습니다."

"왜 좀 더 먹지?"

"싫어. 그리고 밥 먹을 때 조용히 좀 할 수 없어? 음식에 침 튀잖아."

난 살짝 놀랬다.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절대 밥상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였다. 반찬에 침이 튄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항상 자기 국을 따로 그릇에 담아 먹었다. 아빠는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식사때마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엄마가 아파 병원 밥을 먹기 전까지 그것은 자주 부부싸움의 소재가 되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여학생2는 방으로 걸어갔다. 턱, 턱, 턱. 발소리가 무거웠다. 그리고 그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난 보았다. 그녀의 방 가운데를 뚫고 나온 도토리나무 가지를.

뚫었다. 벅찬 무언가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쟤가 원래 저런 애는 아닌데……."

주인아줌마가 변명하였다. 확인해보고 싶다. 도토리나무가 천장을 뚫은 모습을.

"아, 그럼, 정, 이만, 일어낭, 보겠슴당."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학생1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언제나 들려왔던 비웃음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얼른 주인집을 나왔다. 자락자락, 도토리나무 이파리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집을 나오자마자 벅찬 마음에 재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통화연결음이 끝나고 재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급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양."

"어, 왜?"

"내강, 내강, 자랑할 겡, 있는뎅."

"하하, 그래. 뭔데?"

"내강 집안엥, 도토리나무를, 키우거덩?"

"도토리나무? 아, 참나무?"

참나무?

"뭐라궁, 참나뭉?"

"아, 참나무 열매를 도토리라고 하거든. 그런데 무슨 집안에 참나무를 키우냐? 엄청 커질 텐데, 야. 듣고 있냐?"

참나무 열매라고? 도토리가, 참나무 열매라구? 도토리나무가 아니었어?

"누구였더라, 아, 경호야. 듣고 있니?"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도토리가 도토리가 아니었다니. 자락자락, 애초에 도토리나무 같은 건 없었다. 그 나무도 참나무라는 모두에게 익숙한, 친숙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야, 나 여친때문에 끊는다. 언제 한번 소개시켜주마. 듣고 있냐?"

"으…응."

"끊는다. 나무 밖에서 키우고. 잘 지내라."

 

뚜, 뚜, 툭. 전화음이 끊겼다.

툭, 투둑. 집안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내 집이 아닌 느낌이었다. 딩동. 딩동. 그렇게 몇 번을 누르다가 문을 열었다. 

집 바닥은 온통 도토리, 아니 참나무 열매들로 가득 차있었다. 툭, 투둑, 툭. 당신도 한번 쯤 봤을 법한 참나무 열매들이 어서 자신들의 집에서 나가라는 듯 자꾸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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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작은 부분입니다.

찰칵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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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칵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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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1. 하늘은 엷은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들에 묻혀, 마치 구름위에 하늘 조각이 떠다닌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 풍경이 예뻐서 감상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강동원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촉촉한 입술을 갖다 대는 강동원을 생각하며 마른 입술만 빡,빡,거렸다. "평화야, 무슨 생각해?" 구름이가 내 옆으로 와 털썩, 앉으며 물엇다. 짧게 자른 머리칼이 찰랑 흔들렸다. 지독히도 안 어울린다. "그냥……, 하늘구경?" 그리고 살짝 애수에 잠긴 눈으로 하늘을 바라봐준다. 뭐, 하늘 구경을 하던 건 아니었다. 매일 보는 하늘이 뭐가 좋다고. 그 사이 야동을 한 편 더 보고 말지. 다만 감수성 풍부하고 생각 많은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선 이 방법이 탁월한 법이란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 구름이도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너무 예쁘다." 내 말에 구름이는 "뭐? 내가 예쁘다고? 고마워." 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나도 히히히 웃는다. 정말 존나 유치하고 상투적인 말장난이었다. 뭐, 당연히 이 반응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지만, 안 웃긴데 자연스럽게 웃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하지만 내 친절한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구름이가 웃음을 멈출 때 쯤 나도 웃음을 멈춘다. 웃음을 멈춰도 미소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 난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구름이는 조용히 구름을 바라보다 입을 뗀다. "나, 구름이 되고싶다." "니가 구름이잖아." 농으로 던져 본건데 구름이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늘의 구름 말이야. 진짜 구름."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왜?"최대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빨리 급식실에 가서 밥먹고 싶었다. 배고팠다. 눈치도 없는지 구름이는 둥둥 떠가는 구름만큼이나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러니까, 저렇게 높은 곳에서 둥둥 떠가는 것도 부럽고, 왠지 깨끗해 보이고, 또, 햇살도 가까이서 쪼이고, 멀리멀리 갈 수도 있고, 또, 뭐랄까, 가벼워 보이고, 무엇보다도……." "응." 내가 니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흔적 하나. 구름이는 말을 이었다. "힘들면 아무데서나 실컷 울 수 있잖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뭐야, 그게, 엄청 감성적인 척 하는군. 구름이를 봤더니 하늘을 보고있는 착각인지 진짠지 몰라도 구름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정말 '척'하는 건지 헷갈렸다. 특히나 그건 구름이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딱히 위로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친절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서 "에이, 우리 구름이가 왜 이래! 배고프다. 밥먹으러가자!" 하고 구름이 손을 잡아끌며 급식실로 달려갔다.   2. 사람은 누구나 화장을 하고 사람을 대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추악한

  • 찰칵보이
  • 2009-10-10
진흙

  1.수많은 흙들이 바람을 타고 자락자락거리고 있었다. 제 몸 겨누기 어려워진 구름이 빗방울 하나를 뚝, 떨어트린다. 빗방울은 흙들을 더욱 진한 갈색으로 물들이며 곳곳으로 파고든다.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흙 알맹이를 물들인다. 그런, 그랬던 진흙 속에 발을 디딘다. 비가 내린지 좀 됐는데도 푸욱, 빠진다. 쉽게 발을 떼기가 어렵다. 진흙이 신발에 잔뜩 들러붙는다."에이씨, 산 지 얼마 안됐는데."진흙길을 나와 아스팔트에 고인 물로 신발을 대충 닦아본다. 잘 닦이지 않는다."아, 짜증나. 빨아야겠네. 올해엔, 무슨 소나기가 이렇게 많이 내리나. 짜증나."올려다 본 하늘은 시치미 떼는 듯 맑기만 했다. 뜨거운 태양만 폭양을 내리쬐었다. 코허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스윽 문대어 땀을 닦는다. 부웅- 찻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뛰어가 노란 스쿨버스 위로 올라선다. 마른 흙이 발자국마다 흩뿌려져 있다. 버스 안을 둘러본다. 항상 타는 멤버가 항상 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쪼르르 뛰어가 항상 그렇듯 안녕, 인사를 주고 받고 명호 옆에 턱, 하고 앉았다. 명호는 잔뜩 젖어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는다."왜 그렇게 쫄딱 젖었냐?"명호는 핸드폰을 슥 열었다, 턱 닫고 말한다."아, 몰라. 짱나. 내가 나오니까 비 와서 다 젖고, 그래서 우산 가져오니까 비 멈춰 있잖아."명호 발 밑의 우산을 힐끔 보았다. 물 한방울 없이 깔끔하다."하, 역시 지 병신인거 인증하네. 아, 맞다. 수학숙제 다 했어?""당연하지. 내가 어제 밤 새서 했다.""오, 새끼. 나 보여줘.""병신새끼. 잠깐만 기다려봐라."명호는 가방을 열고 뒤진다. 달그락, 달그락. 철 필통 소리가 자꾸만 울린다. "어, 어? 뭐야?"명호가 아주 가방에 머리를 쳐 박는다. 뒤적뒤적 한참을 그러더니 "씨발."하고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안, 가져왔냐?"웃으며 물었는데, 명호는 진지하다.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정말, 고생해서 했나보다.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꾹 참고 명호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치며 말했다."괜찮아.""아, 씨발."명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얼굴을 감싼다. 이번에야말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입을 틀어막고 반대쪽을 본다. 1학년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고 있다. 끄덕, 끄덕. 리듬에 맞춰 긴 머리칼이 찰랑거린다. 예쁜 애다. 내가 멍하게 여자애를 바라보는데 옆에선 끅, 끅. 명호가 드디어 울먹이기 시작했다. 불쌍한 자식. 그래도 웃긴걸 어떡하냐. 큽.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는다. 얼굴이 빨개진다. 마치 은정이를 볼 때처럼.  학교에 도착하여 본 은정이는 오늘도 여전히 예뻤다. 그녀가 뿜는 그 강한 장밋빛 오오라에 난 또다시 장밋빛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천사처럼 웃으며 말했다."안녕.""으응. 안녕."아, 이런 애가 내 짝꿍이라니. 정말 천국에 온 게 아닌가 싶다. 두근대는 소리가 천사 귀에라도 들어

  • 찰칵보이
  •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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