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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 작성자 찰칵보이
  • 작성일 2009-10-10
  • 조회수 295

1.

하늘은 엷은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들에 묻혀, 마치 구름위에 하늘 조각이 떠다닌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 풍경이 예뻐서 감상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강동원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촉촉한 입술을 갖다 대는 강동원을 생각하며 마른 입술만 빡,빡,거렸다.

"평화야, 무슨 생각해?"

구름이가 내 옆으로 와 털썩, 앉으며 물엇다. 짧게 자른 머리칼이 찰랑 흔들렸다. 지독히도 안 어울린다.

"그냥……, 하늘구경?"

그리고 살짝 애수에 잠긴 눈으로 하늘을 바라봐준다. 뭐, 하늘 구경을 하던 건 아니었다. 매일 보는 하늘이 뭐가 좋다고. 그 사이 야동을 한 편 더 보고 말지. 다만 감수성 풍부하고 생각 많은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선 이 방법이 탁월한 법이란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

구름이도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너무 예쁘다."

내 말에 구름이는

"뭐? 내가 예쁘다고? 고마워."

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나도 히히히 웃는다. 정말 존나 유치하고 상투적인 말장난이었다. 뭐, 당연히 이 반응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지만, 안 웃긴데 자연스럽게 웃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하지만 내 친절한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구름이가 웃음을 멈출 때 쯤 나도 웃음을 멈춘다. 웃음을 멈춰도 미소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 난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구름이는 조용히 구름을 바라보다 입을 뗀다.

"나, 구름이 되고싶다."

"니가 구름이잖아."

농으로 던져 본건데 구름이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늘의 구름 말이야. 진짜 구름."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왜?"최대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빨리 급식실에 가서 밥먹고 싶었다. 배고팠다. 눈치도 없는지 구름이는 둥둥 떠가는 구름만큼이나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러니까, 저렇게 높은 곳에서 둥둥 떠가는 것도 부럽고, 왠지 깨끗해 보이고, 또, 햇살도 가까이서 쪼이고, 멀리멀리 갈 수도 있고, 또, 뭐랄까, 가벼워 보이고, 무엇보다도……."

"응."

내가 니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흔적 하나. 구름이는 말을 이었다.

"힘들면 아무데서나 실컷 울 수 있잖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뭐야, 그게, 엄청 감성적인 척 하는군.

구름이를 봤더니 하늘을 보고있는 착각인지 진짠지 몰라도 구름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정말 '척'하는 건지 헷갈렸다. 특히나 그건 구름이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딱히 위로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친절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서

"에이, 우리 구름이가 왜 이래! 배고프다. 밥먹으러가자!"

하고 구름이 손을 잡아끌며 급식실로 달려갔다.

 

2.

사람은 누구나 화장을 하고 사람을 대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추악한 면과 약한 면을 가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분을 발라댄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인냥 살아가는 것이다. 가까운 이들을 만날때도 하물며 비비크림이라도 바르지 않고서는 두려워서 견딜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누구나, 진심을 숨기고 산다. 이것이 17년 인생을 살면서,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게 된 부분이다. 난 그 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누구나 당연히 잘나보이고 싶고, 누구나 당연히 멋져 보이고 싶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그래서, 난 그 점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이왕 화장하는 거, 더 잘, 더 쌔끈하게 하고 살자는 게 내 인생관이다.

그런 점에서, 구름이는 내가 별로 좋아하는 인물상은 아니다. 털털한 척 하는 부류들. 몇군 데 어설프게 지운 화장을 가지고 마치 쌩얼인 것처럼 살아가는. '난 솔직해. 하나도 감추려고 하는 게 없지. 그게 내 매력이야. 블라블라.' 자신들이 진심을 감추고 있다는 걸 감추려고 모든 걸 꾸밈없이 드러내는 척 한다. 하지만, 그들도 별로 다른 건 없다. 똑같다. 아니, 오히려 더욱 지능적으로 자신을 감춘다. 자신을 숨기려고 숨기지 않는 척 하다니. 왠지 더 솔직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아닌가. 다른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름이를 좋아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햇빛 아래에서 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남자처럼 짧게 자른, 큰 눈에, 붉은 뺨을 가진 예쁜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와하하하 하고 웃거나 피구공을 휙 하고 던지고 머리를 쓸어올리면, 나같이 검은 색 단발 머리를 가진 평범하고 조용한 안경잡이보다는 확실히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뒤에 추악한 어두운 얼굴들을 알고있다. 보지 않아도 안다. 난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러운 존재다. 앞에선 하늘을 보며 와하하하하고 웃더라도 뒤에선 검은머리를 한 안경쟁이 머리채를 잡아채 던지며 와하하하하고 웃을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 아무도 모른다. 역시나 사람은, 누구나 화장을 하고 살아가니까.

 

3.

학교에 아빠가 왔다. 7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였다. 말끔한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뒷문을 드륵-여는 아빠를 친구들이 바라봤다.

"평화야. 아빠왔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아빠는 화장을 잘하는 사람이고 오늘도 깔끔한 복장으로 친절하게 웃으며 날 불렀으니깐. 오히려, 부럽다는 소리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두려웠다. 친절한 미소를 입에 띈 채 웃는 아빠는 무서웠다. 난 굳은 표정으로 조심조심 다가가

"아빠가 여긴 왠일이세요?"

라고 물었다. 아빠는 웃으며

"선생님이 상담하러 오라던데."

하고 말하곤 주변의 친구들 몇명에게 평화를 잘부탁한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곤 내 팔을 잡고 상담실로 향했다. 닫힌 교실문 뒤로 수많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한번도 웃지 않았다.

선생님을 앞에 두고 아빠는 웃으며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 행동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상담은 진로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도 이제 고2 후반에 접어들었고 진학과 진로에 대해 걱정해야한다며, 담임선생님은 5~6등급투성이인 나의 모의고사 점수를 여러장 책상에 펼쳐놓고 열변을 토했고, 아빠는 진지하게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난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삼십분 가량되는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과 아빠 그리고 나까지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왔을때 난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아빠는 내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아빠는 화가 나 있었다. 분명하다. 나는 힘을 주어 팔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난 그대로 학교를 나와 뒤뜰까지 끌려갔다. 팔목이 아팠다. 팔목이 너무 아팠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뒤뜰에 도착하자 아빠는 나를 땅에 넘어트린 후, 열이 받는 지 한동안 이마를 감싸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내 뺨을 쳤다. 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빠는

"내가 어떻게 널 길렀는데. 내가 응? 이런 씨발. 니 엄마 가고나선, 내가……."

하면서 나를 마구 치기 시작했다. 항상 그랬다. 아빠는 엄마에게도 그랬다. 엄마는 결혼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가 보기에도 주변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나 친절한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 사람과 결혼했다. 하지만, 아빠는 돌변, 아니 본색을 드러냈고, 매일같이 엄마를 때렸다. 매일 방문밖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소리와 잘못했다고 비는 소리에 난 침대에 엎드려 흐느꼈다. 그리고 2년 전, 견디지 못한 엄마가 집을 나가자 그때부턴 내가 타겟이 되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건지 아빠는 여전히 주변사람에겐 친절하고 유능한 남편이고 아빠로, 엄마는 참을성없는 못된 여자로, 나는 철없고 공부안하는 여자애로 인식되었다.

아빠는 나를 몇대 때리고, 집에서 보자고 말하고 학교를 떠났다. 난 그자리에서 흐느꼈다. 팔이 아팠다. 배가 아팠다. 볼이 아팠다. 아팠다. 그냥 아파서 웅크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고있는데 누가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놀라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구름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구름이는 당황하다가

"괜찮아?"

하고 말했다. 끔찍했다. 창피했다. 이런 모습을 어떤이에게 보였다는 게 쪽팔려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구름이의 손을 탁 쳤다. 저리가라고, 눈앞에서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울었다. 엉엉, 소리내서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구름이는 나를 안아주었다. 밀어낼 수 없었다. 밀어내기엔 내가 너무 아팠다.

 

한참을 울다 그치니 갑자기 창피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에게 내 더러운 쌩얼을 보였다는 생각, 그리고 그게 구름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끄럽고 짜증이 확 났다. 나는 일어나며 구름이를 확 밀쳤다. 구름이는 뒤로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져,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저리가."

구름이는 동그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왜, 왜 그래 평화야."

"너한테 위로해주라고 한적도 없고, 난 너 싫으니까, 가라구."

"왜 그래?"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는 구름이를 보고, 갑자기 답답했다. 가슴속의 뭔가가 돌돌돌뭉쳐져서 심장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딱 너같은 애였어."

너무 답답해서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중학교때, 딱 너같은 애가 있었어. 그래, 인기도 많고, 착하고 그랬어. 너처럼."

구름이는 아무말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눈을 피했다가, 다시 똑바로 바라봤다.

"친구들 앞에선 그랬어. 그래. 그런데 그 애가 뒤에서 맨날 날 때리고, 괴롭히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목이 탁 매였다. 나는 눈물을 닦고 구름이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다 착하다고 했어. 다 그애한테 착하다고……."

또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그년이 진짜 나쁜년인데, 씨발."

심장을 돌돌묶었던 끈의 어느 한 부분이 턱 풀리는 느낌이었다. 난 주저앉았다.

"난 아니야."

구름이가 내게 한발짝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라구? 날 정말 솔직하게 대하긴하니?"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구름이는 그말을 듣고 잠시 주춤하더니 갑자기 눈에 눈물을 고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훌쩍훌쩍 우는 것이었다.

구름이 다 개인 높은 가을하늘 아래에서 두 소녀가 그렇게 울었다.

 

4.

교실로 돌아와 종례를 받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구름이가 풍기는 싸늘한 분위기에 주변의 아이들 몇몇이 소곤거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구름이에게 문자가 왔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눈물도 그쳤고, 아픈것도 나아졌다. 알았다고 답했다. 우리는 모두 나간 교실에 나란히 앉았다.

"아깐 미안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냐."

하며 구름이는 날 봤다. 이상하게도 전에 그 눈을 봤을 때 느껴졌던 거부감 같은 게 전부 없어진 듯 했다. 오히려, 너무 따스했다.

구름이는 잠시 칠판을 바라보더니, 말을 시작했다.

"너한테는 말해야 될 것 같아서."

그리곤 고개를 젓고 날 보더니 다시 말했다.

"아니, 누구에겐간 말하고 싶었어."

난 아무말 없이 칠판을 봤다. 구름이 눈을 피했다기 보다는, 귀를 갖다댄다는 의미였다.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이는 책상을 몇번 긁고 두드리더니 말했다.

"나 사실, 여자좋아해."

잠시 놀랐지만, 왠지 모르게  이해해버렸다. 그냥 좋았기 때문에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좋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약한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사실이 좋았다. 화장없이,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쾌했다. 우린 서로를 바라봤다. 구름이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교실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맑았다. 와아아아-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구름이가 몸을 쫙 펴며 말했다.

"하, 누가 골 넣었나보네."

"그런가보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편안했다.

"나 오늘 너희집에서 자도 돼?"

내가 물었다.

"그래. 언제든지!"

밝게 웃는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담은 촉촉한 눈을 가지고 나도, 구름이도 웃었다. 창문 사이로 보이지 않던 작은 구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찰칵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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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아마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콩을 싫어하는 사람들. 노콩.’ 내가 그런 보잘것없는 벽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첫 번째는 내가 아마도 콩을 싫어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순전히 할 짓이 없어서였다. 아무것도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고, 심지어 싫어도 해야 할 일조차 없었다. 나는 길을 걷는 중이었다. 가야할 곳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스팔트는 까맸고, 해는 적당히 빛났다. 여러모로 지루한 길이었다. 비라도 왔었다면 그런 벽보따위에 관심 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그 벽보를 보고 관심을 가져 가입까지 하게 되었다. 노콩은 인터넷 카페에 불과했다. 회원은 5000명에 달했지만 등급은 겨우 새싹 등급이었다. 시시한 사이트였다. 커다란 빨간 글씨로 ‘까고 있네’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 까인 채로 으깨진 강낭콩 사진이 있었다. 게시판은 단순무식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끔찍한 강낭콩’, ‘재수없는 완두콩’, ‘더러운 땅콩’ 등의 분류였다. 글들은 공지사항 외에 별로 없었다. 채팅 중심의 카페인 듯 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채팅방에 들어갔다. 딸깍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대화하고 있었다. 3. 찰리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콩싫어: 안녕하세요 쌀밥사랑: 안녕하세요 찰리: 네. 안녕하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제가 어떻게 집을 나오지 않을 수 있었겟어요. 콩싫어: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저도 억지로 콩을 먹으라고 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학창시절에 스트레스좀 받았죠. 찰리: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콩만 먹으면 건강해지나요?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땅콩박살: 그래도 그렇지 겨우 콩밥 때문에 가출하는 건... 찰리: 무슨 이야기 중? 쌀밥사랑: 겨우 콩밥이라뇨? 땅콩박살님은 만약 엄마가 사람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면 집안에 붙어있을 수 있겠어요? 땅콩박살: 비약이 심하시네요. 콩싫어: 아뇨 저는 쌀밥사랑님의 비유가 그렇게 어긋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쌀밥사랑: 어떤 사람은 콩이 사람고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땅콩박살: 아뇨, 그래도 콩과 사람고기는,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고, 솔직히 좀 억지잖아요. 그리고 저는 콩밥안티님이 콩을 사람고기처럼 느껴서 가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콩밥안티: 저기요 님께서 제 생각을 어떻게 아시나요 땅콩박살님은 콩을 싫어하기나 하시는 분인가요? 안 싫어하신다면 나가세요. 왜 이 카페 가입하셨어요? 땅콩박살: 저는 콩밥안티님이 걱정돼서 그런거죠. 콩은 싫어합니다. 콩밥안티: 걱정되신다면서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왜 시비신가요? 찰리: 분위기 왜 이럼? 땅콩박살: 제가 언제 시비를 걸었나요... 콩밥안티: 제가 가출하는 거에 대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셨잖아요 땅콩박살: 그런게 아니라 저는 님이 정말 걱정되서, 그리고 콩밥 억지로 먹이는 것 때문에 가출한 거라면 그건 좀 아니고 님께서만 힘들어지실 걸 아니까. 콩싫어: 어

  • 찰칵보이
  • 2010-05-15
도토리

1. 난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당신도 하나쯤 있을 법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는 끔찍한 구멍이 마당에 뚫렸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지만 가보니 꽃밭밖에 없었다. 마당에 구멍이 뚫렸다니. 너무 싱겁고 어이없는 농담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건 오히려 내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문제로 아빠와 싸우고 나서부터 집을 나온 지 벌써 몇 년째가 돼간다. 이 마을에 온 지도 그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 이 거리는 익숙하지 않다. 구불구불한, 텅 빈 길. 좁지만 왠지 커다란 광장에 혼자 있는 듯한 공허감이 드는 불쾌한 길이다. 이 시간대의 거리는 특히 그렇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은 간신히 옅은 빛을 유지하고 있다. 가로등 사이의 어두운 공간을 걸을 땐 우주에 와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우주 안을 걸어 다닌다는 건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주인집도 이상하다.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이상한 집일지도 모른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화목하다. 주인집에는 4,50대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주인아저씨, 비슷한 나이대의 넉살 좋은 주인아줌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살고 있는데, 방음이 잘 안돼 아래 세들어 사는 내 방까지 대화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이런 식이다.   (여학생1)"ㅇㅇ이가 이번에 평균이 20점이나 올랐대요?" (주인아줌마)"어머머, 정말? 걔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 (주인아저씨)"우리 딸도 열심히 해라." (여학생1)"당연하죠. 제가 언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린 적 있었나요?" (주인아저씨)"하긴, 우리 소리가 일등만 하는 건 세상이 다 알지!" (주인아줌마)"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가면서 공부하렴." (여학생1)"아뇨. 별로 안 힘들어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릴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주인아줌마)"어유, 우리 딸 나도 사랑해." (주인아저씨)"내가 더 사랑하지!" (여학생1)"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오호호."   모든 대화가, '사랑해'로 끝난다. 무슨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있을까.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가정이다. 쾨쾨한 내방에 앉아 이런 대화가 들려 올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외롭다.   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모처럼의 외출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사업 때문도 있고, 원래 밖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렇게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모처럼 가로등이 온 힘 다해 길을 비춰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더 밖에 남아있고 싶었다. 이리저리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어 다니다 보니 마을 교회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작게 따라불러 보았다. 나도 한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교회에 갔었지.

  • 찰칵보이
  • 2009-12-26
진흙

  1.수많은 흙들이 바람을 타고 자락자락거리고 있었다. 제 몸 겨누기 어려워진 구름이 빗방울 하나를 뚝, 떨어트린다. 빗방울은 흙들을 더욱 진한 갈색으로 물들이며 곳곳으로 파고든다.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흙 알맹이를 물들인다. 그런, 그랬던 진흙 속에 발을 디딘다. 비가 내린지 좀 됐는데도 푸욱, 빠진다. 쉽게 발을 떼기가 어렵다. 진흙이 신발에 잔뜩 들러붙는다."에이씨, 산 지 얼마 안됐는데."진흙길을 나와 아스팔트에 고인 물로 신발을 대충 닦아본다. 잘 닦이지 않는다."아, 짜증나. 빨아야겠네. 올해엔, 무슨 소나기가 이렇게 많이 내리나. 짜증나."올려다 본 하늘은 시치미 떼는 듯 맑기만 했다. 뜨거운 태양만 폭양을 내리쬐었다. 코허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스윽 문대어 땀을 닦는다. 부웅- 찻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뛰어가 노란 스쿨버스 위로 올라선다. 마른 흙이 발자국마다 흩뿌려져 있다. 버스 안을 둘러본다. 항상 타는 멤버가 항상 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쪼르르 뛰어가 항상 그렇듯 안녕, 인사를 주고 받고 명호 옆에 턱, 하고 앉았다. 명호는 잔뜩 젖어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는다."왜 그렇게 쫄딱 젖었냐?"명호는 핸드폰을 슥 열었다, 턱 닫고 말한다."아, 몰라. 짱나. 내가 나오니까 비 와서 다 젖고, 그래서 우산 가져오니까 비 멈춰 있잖아."명호 발 밑의 우산을 힐끔 보았다. 물 한방울 없이 깔끔하다."하, 역시 지 병신인거 인증하네. 아, 맞다. 수학숙제 다 했어?""당연하지. 내가 어제 밤 새서 했다.""오, 새끼. 나 보여줘.""병신새끼. 잠깐만 기다려봐라."명호는 가방을 열고 뒤진다. 달그락, 달그락. 철 필통 소리가 자꾸만 울린다. "어, 어? 뭐야?"명호가 아주 가방에 머리를 쳐 박는다. 뒤적뒤적 한참을 그러더니 "씨발."하고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안, 가져왔냐?"웃으며 물었는데, 명호는 진지하다.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정말, 고생해서 했나보다.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꾹 참고 명호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치며 말했다."괜찮아.""아, 씨발."명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얼굴을 감싼다. 이번에야말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입을 틀어막고 반대쪽을 본다. 1학년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고 있다. 끄덕, 끄덕. 리듬에 맞춰 긴 머리칼이 찰랑거린다. 예쁜 애다. 내가 멍하게 여자애를 바라보는데 옆에선 끅, 끅. 명호가 드디어 울먹이기 시작했다. 불쌍한 자식. 그래도 웃긴걸 어떡하냐. 큽.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는다. 얼굴이 빨개진다. 마치 은정이를 볼 때처럼.  학교에 도착하여 본 은정이는 오늘도 여전히 예뻤다. 그녀가 뿜는 그 강한 장밋빛 오오라에 난 또다시 장밋빛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천사처럼 웃으며 말했다."안녕.""으응. 안녕."아, 이런 애가 내 짝꿍이라니. 정말 천국에 온 게 아닌가 싶다. 두근대는 소리가 천사 귀에라도 들어

  • 찰칵보이
  •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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