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진흙

  • 작성자 찰칵보이
  • 작성일 2009-09-06
  • 조회수 457

 

1.

수많은 흙들이 바람을 타고 자락자락거리고 있었다. 제 몸 겨누기 어려워진 구름이 빗방울 하나를 뚝, 떨어트린다. 빗방울은 흙들을 더욱 진한 갈색으로 물들이며 곳곳으로 파고든다.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흙 알맹이를 물들인다. 그런, 그랬던 진흙 속에 발을 디딘다. 비가 내린지 좀 됐는데도 푸욱, 빠진다. 쉽게 발을 떼기가 어렵다. 진흙이 신발에 잔뜩 들러붙는다.

"에이씨, 산 지 얼마 안됐는데."

진흙길을 나와 아스팔트에 고인 물로 신발을 대충 닦아본다. 잘 닦이지 않는다.

"아, 짜증나. 빨아야겠네. 올해엔, 무슨 소나기가 이렇게 많이 내리나. 짜증나."

올려다 본 하늘은 시치미 떼는 듯 맑기만 했다. 뜨거운 태양만 폭양을 내리쬐었다. 코허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스윽 문대어 땀을 닦는다. 부웅- 찻소리가 들려온다. 얼른 뛰어가 노란 스쿨버스 위로 올라선다. 마른 흙이 발자국마다 흩뿌려져 있다. 버스 안을 둘러본다. 항상 타는 멤버가 항상 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쪼르르 뛰어가 항상 그렇듯 안녕, 인사를 주고 받고 명호 옆에 턱, 하고 앉았다. 명호는 잔뜩 젖어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왜 그렇게 쫄딱 젖었냐?"

명호는 핸드폰을 슥 열었다, 턱 닫고 말한다.

"아, 몰라. 짱나. 내가 나오니까 비 와서 다 젖고, 그래서 우산 가져오니까 비 멈춰 있잖아."

명호 발 밑의 우산을 힐끔 보았다. 물 한방울 없이 깔끔하다.

"하, 역시 지 병신인거 인증하네. 아, 맞다. 수학숙제 다 했어?"

"당연하지. 내가 어제 밤 새서 했다."

"오, 새끼. 나 보여줘."

"병신새끼. 잠깐만 기다려봐라."

명호는 가방을 열고 뒤진다. 달그락, 달그락. 철 필통 소리가 자꾸만 울린다.

"어, 어? 뭐야?"

명호가 아주 가방에 머리를 쳐 박는다. 뒤적뒤적 한참을 그러더니

"씨발."

하고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안, 가져왔냐?"

웃으며 물었는데, 명호는 진지하다. 대답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정말, 고생해서 했나보다.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꾹 참고 명호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치며 말했다.

"괜찮아."

"아, 씨발."

명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얼굴을 감싼다. 이번에야말로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입을 틀어막고 반대쪽을 본다. 1학년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고 있다. 끄덕, 끄덕. 리듬에 맞춰 긴 머리칼이 찰랑거린다. 예쁜 애다. 내가 멍하게 여자애를 바라보는데 옆에선 끅, 끅. 명호가 드디어 울먹이기 시작했다. 불쌍한 자식. 그래도 웃긴걸 어떡하냐. 큽. 양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는다. 얼굴이 빨개진다. 마치 은정이를 볼 때처럼. 

 

학교에 도착하여 본 은정이는 오늘도 여전히 예뻤다. 그녀가 뿜는 그 강한 장밋빛 오오라에 난 또다시 장밋빛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천사처럼 웃으며 말했다.

"안녕."

"으응. 안녕."

아, 이런 애가 내 짝꿍이라니. 정말 천국에 온 게 아닌가 싶다. 두근대는 소리가 천사 귀에라도 들어갈까 싶어 얼른 가방을 두고 그 곳을 벗어난다. 두 세발짝정도만 걸으면, 천국과는 다른 칙칙한 세계가 있다. 남자들이 둥그렇게 모여있는 그 가운데에서 명호가 여전히 씨발대고 있다. 아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진 걸 보니 괜찮아 진 것 같다.

"아, 씨발. 밤새한 숙젠데 두고왔다니까."

"키킥. 병신."

"아, 닥쳐. 난 졸라 진지하거든."

"아, 그래요?"

안타깝지만, 내가 사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이곳이다. 사실, 다들 그렇다. 모두 각자의 천국을 갈망한다. 명호는 시은이를, 진철이는 수아를.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뭐, 대부분은 감추고 있다. 알아봤자 서로 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새 이야기는 대부분 씨발,로 시작한다.

"씨발, 근데 오늘 아침에 형오 그 병신이 어쨌는 줄 아냐? 아, 씨발 졸라 웃겨."

진철이가 온 몸을 흔들며 웃는다.

"뭘, 어쨌는데."

물으면서도 벌써 잔웃음이 나온다. 웃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형오이야기는 분위기가 칙칙하다 싶을 때 항상나오는 이야기다. 그만큼 쉽고, 다양하고, 재밌다. 남을 까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의 즐거움의 한 부분에 섰고, 우리들 세계에서는, 형오가 그 중심에 선 것이다. 으하하, 웃음이 터져나온다.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웃는다. 누구라도, 웃을거란 걸 알고, 다들 웃으면 정작 웃긴 것을 듣지 않았어도, 웃게 되는 것이다. 아니, 웃어야한다. 그게 바로, 단체생활이다. 웃지 않으면, 떨어져나가기 마련이다. 형오처럼 말이다.

 

형오는 어떤 그룹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애이다. 아니 그렇다고, 딱히 웃지 않거나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좀, 짜증나는 것뿐이다. 항상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이상한 냄새가 나고, 공부까지 못하는 주제에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싸가지까지 없어서 거의 학교 공식적인 왕따다. 하지만 우리가 그애를 왕따시킨다고 해서 너무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사람은 서로 맞는 사람끼리 놀기 마련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형오는 모두가 싫어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안노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사람만 우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 자신 있다면 어디 한번 던져보실랑가? 어쨌든 형오는 왕따 당해도 쌀만큼 더러운 자식이다. 화가 나는 건 그 자식이 주제파악 못하고 은정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안다. 그 자식이 항상 은정이를 바라보며 헤벌레하는 걸 보면,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저번에 친구들과 흠씬 두들겨놓았는데도, 아직까지 그런다. 왕따주제에 천국을 바란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도 웃긴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난 다시 한 번 웃었다.

 

2.

놀랄 일이었다. 모두가 놀란 일이었다. 달랑 연필 한 자루였지만, 은정이가 형오에게 '생일선물'이란 걸 준 것이다. 아니 생일이란 건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 뭐, 다들 태어났고, 태어난 날들이 있을테니까. 게다가 그 날짜들이 학교 뒤편 게시판에 크게 게시되어 있기 때문에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놀랄 일은, 아무도 챙기지 않은 생일을 은정이가 챙겼고, 분명 그녀는 착한 척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형오를 감싸는 부류가 아니었단 말이다. 오히려 그의 시선을 피하고, 한번은 그애의 면전 앞에서 심하게 욕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 내 천사가, 형오같은 변태새끼에게, 나에게도 한번 안 준 생일 선물을 준 것이다. 비록 연필 한자루지만. 그 광경을 눈 앞에서 보고 쓰러질 뻔했다. 과연 그녀가 형오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냐.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그럴리가 없다. 그냥 착한 척 한번 해 본 것이다. 아무리 자기위로를 해봐도 머리속을 훑고 지나가는 한줄기의 의심때문에, 자꾸 속이 막혀왔다.

형오는 그 연필을 가방 깊숙한 곳에 쑤셔 넣고 은정이를 쳐다보며 헤헤거렸다. 은정이의 표정을 보았더니 즐거워 보였다. 씨발. 뭐야 이거. 진짜, 좋아하는 건가. 수업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머리도 자꾸 아파왔다. 4교시 체육시간, 평소 같으면 가장 날뛰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그래서 양호실에서 쉬기로 했다. 누워있는데 양호실 천장에 은정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 은정아 넌 왜. 연필을 잡고 헤벌레 한 형오의 얼굴까지 상상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그 연필을 당장 뺏어서 부러트려 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교실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난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교실로 달려 올라갔다.

그런데 교실에는, 연필을 든 은정이가 있었다. 아까 형오에게 줬던 연필이었다. 은정이가 나를 돌아보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연필을 쥔 손을 살짝 흔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난 대답했다.

"으응. 안녕.."

은정이는 가만히 서서 양손으로 펜을 만지작거렸다.

"니가 왜 여길……."

"너는?"

은정이가 당황한 듯이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흔들렸다.

"난, 뭐, 양호실에 있다가 한번 올라와봤어."

"아……."

대답을 기다리며 은정이를 바라봤다. 원래는 부끄러워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는데 그녀가 뭔가 숨기고 있었기에, 조금 높은 위치로 올라간 기분이 들어서 인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때문에 똑바로 바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연필을 한바퀴 굴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주춤하고는 곧 입을 열었다.

"나는 조,좀 할일있어서."

"무슨 일인데."

보통 같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 아닌 그녀이기에, 뭔가 감추고 있는, 뭔가 감추려고 하는 그녀이기에, 왠지 나는 모질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 못했다. 나는 내가 무슨 취조관이라도 된 마냥 그녀를 닥달하였다.

"그 연필 형오한테 준 거지? 왜 니가 그걸 갖고 있어? 난 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했다.

"미안."

"뭐가 미안한데."

"응?"

그녀는 내눈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미안하냐고."

"어, 난 그냥 형오에게 장난……."

"그러니까 그게 왜 나한테 미안하냐고."

화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 뭔가 그녀의 행동이 내게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그녀의 말을 끊고 소리를 쳐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다시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또로, 록. 연필이 그녀의 손에서 한바퀴를 돌자, 뭔가 가슴속에서 뭉쳐있는 답답하고 뜨거운 게 올라왔다. 그리고 그게 천천히 입가 주위를 돈 다음, 입 밖으로 나왔다.

"나 너 좋아해."

하필 그때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발렌타인데이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나, 난 이만 갈게."

하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나는 괜시리 책상을 엎었다가, 다시 쏟아진 책들을 줍고 양호실로 가서 누웠다. 부끄러웠다. 잊어버리고 싶어서 이불을 걷어차고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자꾸, 그 말이, 은정이의 표정이 생각이 나서, 은정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얼굴이 후끈후끈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상하게 잠이 왔다. 

 

3.

잠에서 깬 건 점심시간도 지나고 5교시 시작할 때가 다 되었을 때였다. 문자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비몽사몽한채로 핸드폰을 열었다. 진철이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앜슈발누구냐ㅋㅋㅋㅋㅋ

 

졸린 눈을 비비고 답장을 보냈다.

 

뭐가ㅋㅋ

 

곧 답이 왔다.

 

아너이제깼냐형오병신새끼연필누가가져갔다ㅋㅋ존나

 

뜨끔, 가슴이 찔렸다. 은정이 얼굴이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른 교실로 뛰어올라갔다. 교실에는 애들이 두 세그룹씩 뭉쳐 떠들며 웃고 있었다. 형오는 교실에 없었고, 은정이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어, 왔냐? 병신아."

명호가 나를 보고 손짓했다. 은정이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래 고개를 휙 돌렸다. 나도 괜시리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룹에 꼈다. 애들은 한껏 들떠있는 표정들이었다. 진철이가 나를 쳐다보고 신나서 입을 열었다.

"씨발, 형오 그새끼. 막 찌질대다가 소리지르고 나갔다니까. 아, 졸라 웃기지 않냐?"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자 진철이가

"별로 안 웃기냐? 아, 니가 그걸 직접 봤어야 되는데……."

라며 아쉬워했다.

5교시는 수학이었다. 형오는 수업 중간에 들어왔고, 명호는 수학노트를 놔두고 왔다고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아 다섯대를 맞았다. 은정이는 내 눈치를 자꾸 봤다. 종례시간이 될 때까지, 형오는 수업내내 엎드려 잤고-가끔 훌쩍거리기도 했다.-명호는 다시 신이나, 떠들어 댔다. 은정이가 내게 '나도, 너 좋아해.'라는 쪽지를 주며 부끄러워했고, 그래서 난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조금 들뜬채로 애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은정이도 날 좋아한다던가 하는 건 말하진 않았다. 말해봤자 서로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았다.

종례시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화난 표정이었다. 들어와서 한참을 침묵했다. 분위기를 따라 우리들도 역시 그랬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담임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형오 연필이 없어졌다."

여기저기서 키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

담임선생님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안 웃진 않고 웃음소리를 죽였다. 난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은정일 바라봤다. 잔뜩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형오를 앞으로 부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겐, 연필 한 자루가, 정말 큰 것이 될 수도 있는거야. 그게 단지 연필 한 자루라고 생각하고 가져간 사람은 지금 당장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빌어라."

교실은 조용했다. 난 은정일 바라봤다. 은정이는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담임선생님은 한참을 그렇게, 모두를 믿는다고 말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범인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은정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애들은 점점 짜증나고 지쳐갔고, 은정이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창 밖에선 비가 오기 시작했다.

 

4.

5시 10분.

쾅!

선생님이 출석부로 책상을 내리쳤다. 놀란 애들이 몸을 움츠렸다.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너희들의 모습에 정말 실망이다. 오늘, 범인이 나올 때까지 종례없다. 너희들끼리 이야기하고, 선생님한테 가져간 사람은 사과하러 와. 부모님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한명이라도, 먼저 귀가하면, 전체 내일 기합 받을 줄 알어. 알았어? 이상"

선생님이 형오의 손을 끌고 앞문으로 나갔다. 교실은 웅성거렸다.

"뭐야. 미친. 담임 오늘 왜 저런데?"

"형오, 아 씨발 저새끼. 연필하나가지고 뭔 지랄이냐?"

"아, 미친. 도둑놈 누구냐."

짜증나 욕을 하는 애들부터 엎드려 자기 시작하는 애들까지 교실은 혼란스러웠다. 그 때 반장인 승윤이가 일어서서 소리쳤다.

"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고."

큰 소리들이 줄어들고 작은 웅성임만 남았다. 승윤이가 말을 이었다.

"야, 선생님 진짜 화나신 것 같으니까 분위기 파악 잘 좀 하고. 어쨌든 우리가 범인을 잡아야 되잖아."

"아 씨발. 어떻게 잡을 건데."

승우가 끼어들어 소리쳤다. 승윤이가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승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하자고. 의견 있으면 말해봐."

애들이 다시 웅성댔다. 창밖에서 비가 한껏 쏟아져 내렸다. 은정이는 애들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슬쩍 은정이 손을 잡았다. 손 가득히 땀이 고여 있었다. 은정이가 나를 바라봤다. 손을 놓진 않았다. 5시 30분이 지나자 회의분위기가 점차 잡혀갔다. 엎드려 자던 애들과 짜증내며 욕만 하던 애들도, 분위기에 맞춰 슬슬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서로 친구고, 우리 반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끝까지 참아보자는 의견과, 어떤 수를 써서라도 범인을 잡자는 의견으로 대충의견이 정리 된 것 같은데 더 자세한 의견들 있어?"

승윤이가 회의 내용을 정리했다. 이어서

선아의 발표가 이어졌다.

"솔직히 안 잡고 기다리는 건, 우리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잖아. 그건 좀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잡자고 하면 무슨 수로 잡냐고. 그러니까, 최대한 범인이 부담을 안가지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아 씨발, 그 새끼가 나올라면 진작 나왔지. 지금 그 개새끼가, 아, 씨발 지발로 걸어 나올 것 같냐. 아 좆나 욕 나와."

승우가 끼어들자 몇몇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개념 없다고 욕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은정이가 내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아 그럼 어쩌라고.  경찰이라도 불러?"

"조용히 해. 발언권 얻고 말하라고."

승윤이가 애들을 진정시켰다.  다시 선아가 손을 들고 발표를 시작했다.

"다 좋은데 욕은 하지마라. 기분 나쁘니까. 그리고 그, 범인이 나올 생각이 없다는 부분에 대해선 나도 인정해.  그런데 무슨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잖아. 아, 그리고 내가 연필 가져간 애한테 부탁하는데, 정말 이건 아니잖아. 솔직히 말하고, 우리 빨리 다 같이 집에 가자. 여기 있으면 너도 불편하고 우리도 불편하잖아. 그냥 쿨하게 이야기하고, 가자."

은정이가 선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약간 열이 받쳤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자기가 연필을 가져간 사람이라면, 그렇게 솔직하게, 쿨하게 말 할 수 있을까. 다수에 의해서 생각하고, 남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모습들이 정말, 역겨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은정이가 나쁜 짓을 한 건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은정이가 연필을 가져갔고, 솔직히 말하지 않은 것도 맞지 않은가. 나는 은정이의 손을 잠시 풀어 땀을 옷에 문댔다. 은정이가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다시, 은정이의 손을 잡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진철이가 굳은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진철이의 진지한 모습은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괜히 조용해졌다.

"야. 잘 생각해봐. 점심시간 전까지, 그러니깐 형오 그 새끼가 연필을 마지막으로 확인한게 체육시간 전이었어. 맞지?“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봐. 체육시간동안 우리 단체에서 벗어났던 사람. 누구있지?”

아이들에게서 은정이와 나의 이름이 불려졌다. 진철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은정이가 중간에 한번 갔었고, 기운이도 아팠었지.”

아이들이 조용히 진철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철이는 슬쩍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 점심시간. 개인 행동했던 사람은, 남자 중에선 명호뿐이었어. 기운이도 양호실에 계속 있었지. 승윤아 여자는?”

“다……같이 있었지. 아마?”

여자애들이 서로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이가 슬쩍 웃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뭐 됐어. 범인은 셋 중 한명이겠지. 이해 돼?”

애들의 시선이 나와 은정이, 그리고 명호에게 몰렸다.

“그럼, 선물을 준 은정이는 아니고, 기운이하고 명호중에 한명이겠네.”

승윤이가 정리를 했다. 훑어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땀이 삐질 흘렀다. 은정이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살짝, 나를 보았다. 고개를 돌려 명호를 보았다. 명호는 아냐, 아냐 하고 손까지 흔들어 가며 부정하고 있었다.

“기운이는 아니야. 내가 아까 이야기했는데, 뭔 일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어.”

“연기였을 수도 있잖아.”

“아냐, 그전부터 진짜 아파보였는데. 걔답지 않게 종일 힘도 없고…….”

“아 씨발, 그럼 명호네.”

갖가지 추측들이 당사자들을 앞에 두고도 쏟아져 나왔다. 분위기는 점차 명호가 범인인 것처럼 몰려갔다. 명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야. 씨, 아니라고. 아 나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었다고. 진짜 아니야. 아 씨발.”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명호의 숨통을 옭아매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뭔가를 캐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명호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채로 극도로 부정하고 있었다. 은정이는 긴장된 눈빛으로 주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찌 해야 될지 몰랐다. 창밖을 봤다. 이제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온통 깜깜하기만 했다. 난 은정이의 손을 놓은 뒤 번쩍 들고 말했다.

“명호는 아니야.”

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은정이가 흠칫 했다.

“명호는 아니야.”

다시 한 번 말했다.

“왜, 아닌데. 증거라도 있어?”

“그런건 아니지만……, 명호는 그런 애 아냐.”

“그럴 수도 있어.”

선아의 말에 애들이 맞다며, 동조했다. 여러 사람의 힘을 뒤에 지고 나서인지, 선아는 술술 말을 늘어놨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정말 친했던 친구가, 그럴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돼.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야. 친구의 잘못을 그냥 덮는 것도 좋은 친구는 아니라고 배웠잖아.”

그래, 그래. 하는 소리가 교실을 뒤덮었다. 난 그 자리에서 그냥 조용히 서서

“아, 아무튼 명호는 아니야. 아니라구.”

만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차마 은정이가 범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명호를 구해낼 어떤 대책도 난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했다. 다수의 거짓이 아주 작은 사람의 진실을 누르는 건 참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보호해야 할 친구가 있었지만 보호해야 할 여자도 있었다. 어느 쪽도 포기 할 수 없었다.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짜증났다. 화가 났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답답했다. 꺼내놓을 수 없는 진실을 가슴속에 억누르고 있다는 압박. 어느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외치고 싶었다.

명호가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봐도, 그 거대한 단체는 들을 시늉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다수라는 명분아래,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도, 명호도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린 작은 개인일 뿐이었다.

“야, 빨리 가서 사과해.”

“니가 그랬잖아. 씨발. 나 집에 가고 싶다고.”

명호는 점점 그들 사이에 갇혀버렸고, 난 손을 뻗을 수조차 없이 그들 사이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은정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끄덕. 끄덕. 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단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그 때 은정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끄덕, 끄덕.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이상하게도 별로, 예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흐흑. 흑. 나, 아니라고 씨발.”

명호는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웃을 수가, 없었다. 잔뜩 젖어든 내 친구,를 보고 웃을 순 없었다. 울먹이는 한사람 앞에서, 아이들은, 망설였다. 뭔가, 논리로 밀고 가는 이들에게, 감정이란 때론 큰 벽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 틈을 타 조용히 있던 찬희가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야, 너희들. 겨우 연필 하나가지고 이 지랄하고 있는 거 아냐? 미친, 사람한명 생매장 시키는 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니들, 졸라 병신 같애.”

순간,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드륵- 의자를 밀고, 찬희가 밖으로 나갔다. 조용한 가운데, 애들이 드륵- 드르륵-의자를 밀고 한 두명씩 나가기 시작했다. 곧, 교실엔 승우와, 승윤이와, 진철이, 선아, 나, 명호 은정이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호가 눈물을 닦고,

“씨발새끼들.”

하고 교실을 나갔다. 이어 승우, 진철이, 승윤이, 선아가 조용히 교실을 나갔고, 교실 안에는 나와, 은정이만 남게 되었다. 난 은정이를 바라봤다. 은정이는, 울고 있었다. 조용히 없는 듯이, 숨죽이고, 울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단체기합, 받을 텐데……. 역시, 말해야 될까.”

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교실을 나왔다. 6시 반이었다. 비는 멈춰있었다. 학교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진흙에 새 신이 푸욱, 빠졌다. 햇볕이, 흙 알맹이하나하나에 살포시 닿았다. 다시, 발을 뺀다.

 


그냥, 쓰고싶은 이야기었어요.

갈등이 드러난 이야기를 쓰고싶었고, 그게 작은 것을 통해서 생겨났으면 했어요.

오랜만에 완성한 소설이네요.

찰칵보이
찰칵보이

추천 콘텐츠

1. 난 아마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콩을 싫어하는 사람들. 노콩.’ 내가 그런 보잘것없는 벽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첫 번째는 내가 아마도 콩을 싫어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순전히 할 짓이 없어서였다. 아무것도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고, 심지어 싫어도 해야 할 일조차 없었다. 나는 길을 걷는 중이었다. 가야할 곳도 없었다. 그저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스팔트는 까맸고, 해는 적당히 빛났다. 여러모로 지루한 길이었다. 비라도 왔었다면 그런 벽보따위에 관심 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그 벽보를 보고 관심을 가져 가입까지 하게 되었다. 노콩은 인터넷 카페에 불과했다. 회원은 5000명에 달했지만 등급은 겨우 새싹 등급이었다. 시시한 사이트였다. 커다란 빨간 글씨로 ‘까고 있네’라고 쓰여 있었고, 그 아래 까인 채로 으깨진 강낭콩 사진이 있었다. 게시판은 단순무식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끔찍한 강낭콩’, ‘재수없는 완두콩’, ‘더러운 땅콩’ 등의 분류였다. 글들은 공지사항 외에 별로 없었다. 채팅 중심의 카페인 듯 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채팅방에 들어갔다. 딸깍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대화하고 있었다. 3. 찰리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콩싫어: 안녕하세요 쌀밥사랑: 안녕하세요 찰리: 네. 안녕하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제가 어떻게 집을 나오지 않을 수 있었겟어요. 콩싫어: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저도 억지로 콩을 먹으라고 하는 선생님들 때문에 학창시절에 스트레스좀 받았죠. 찰리: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콩밥안티: 그러니까요, 콩만 먹으면 건강해지나요?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땅콩박살: 그래도 그렇지 겨우 콩밥 때문에 가출하는 건... 찰리: 무슨 이야기 중? 쌀밥사랑: 겨우 콩밥이라뇨? 땅콩박살님은 만약 엄마가 사람고기를 먹으라고 한다면 집안에 붙어있을 수 있겠어요? 땅콩박살: 비약이 심하시네요. 콩싫어: 아뇨 저는 쌀밥사랑님의 비유가 그렇게 어긋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쌀밥사랑: 어떤 사람은 콩이 사람고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땅콩박살: 아뇨, 그래도 콩과 사람고기는,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다르고, 솔직히 좀 억지잖아요. 그리고 저는 콩밥안티님이 콩을 사람고기처럼 느껴서 가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콩밥안티: 저기요 님께서 제 생각을 어떻게 아시나요 땅콩박살님은 콩을 싫어하기나 하시는 분인가요? 안 싫어하신다면 나가세요. 왜 이 카페 가입하셨어요? 땅콩박살: 저는 콩밥안티님이 걱정돼서 그런거죠. 콩은 싫어합니다. 콩밥안티: 걱정되신다면서 위로해주지 못할망정 왜 시비신가요? 찰리: 분위기 왜 이럼? 땅콩박살: 제가 언제 시비를 걸었나요... 콩밥안티: 제가 가출하는 거에 대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셨잖아요 땅콩박살: 그런게 아니라 저는 님이 정말 걱정되서, 그리고 콩밥 억지로 먹이는 것 때문에 가출한 거라면 그건 좀 아니고 님께서만 힘들어지실 걸 아니까. 콩싫어: 어

  • 찰칵보이
  • 2010-05-15
도토리

1. 난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당신도 하나쯤 있을 법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는 끔찍한 구멍이 마당에 뚫렸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지만 가보니 꽃밭밖에 없었다. 마당에 구멍이 뚫렸다니. 너무 싱겁고 어이없는 농담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한 건 오히려 내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문제로 아빠와 싸우고 나서부터 집을 나온 지 벌써 몇 년째가 돼간다. 이 마을에 온 지도 그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역시 이 거리는 익숙하지 않다. 구불구불한, 텅 빈 길. 좁지만 왠지 커다란 광장에 혼자 있는 듯한 공허감이 드는 불쾌한 길이다. 이 시간대의 거리는 특히 그렇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은 간신히 옅은 빛을 유지하고 있다. 가로등 사이의 어두운 공간을 걸을 땐 우주에 와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우주 안을 걸어 다닌다는 건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집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주인집도 이상하다.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이상한 집일지도 모른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화목하다. 주인집에는 4,50대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주인아저씨, 비슷한 나이대의 넉살 좋은 주인아줌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살고 있는데, 방음이 잘 안돼 아래 세들어 사는 내 방까지 대화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대화란 게 이런 식이다.   (여학생1)"ㅇㅇ이가 이번에 평균이 20점이나 올랐대요?" (주인아줌마)"어머머, 정말? 걔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 (주인아저씨)"우리 딸도 열심히 해라." (여학생1)"당연하죠. 제가 언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린 적 있었나요?" (주인아저씨)"하긴, 우리 소리가 일등만 하는 건 세상이 다 알지!" (주인아줌마)"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가면서 공부하렴." (여학생1)"아뇨. 별로 안 힘들어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릴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주인아줌마)"어유, 우리 딸 나도 사랑해." (주인아저씨)"내가 더 사랑하지!" (여학생1)"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오호호."   모든 대화가, '사랑해'로 끝난다. 무슨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 가정이 있을까.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 못 할 가정이다. 쾨쾨한 내방에 앉아 이런 대화가 들려 올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리고, 외롭다.   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모처럼의 외출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사업 때문도 있고, 원래 밖에 나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렇게 나올 기회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모처럼 가로등이 온 힘 다해 길을 비춰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더 밖에 남아있고 싶었다. 이리저리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어 다니다 보니 마을 교회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작게 따라불러 보았다. 나도 한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교회에 갔었지.

  • 찰칵보이
  • 2009-12-26
구름

1. 하늘은 엷은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들에 묻혀, 마치 구름위에 하늘 조각이 떠다닌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히 그 풍경이 예뻐서 감상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강동원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촉촉한 입술을 갖다 대는 강동원을 생각하며 마른 입술만 빡,빡,거렸다. "평화야, 무슨 생각해?" 구름이가 내 옆으로 와 털썩, 앉으며 물엇다. 짧게 자른 머리칼이 찰랑 흔들렸다. 지독히도 안 어울린다. "그냥……, 하늘구경?" 그리고 살짝 애수에 잠긴 눈으로 하늘을 바라봐준다. 뭐, 하늘 구경을 하던 건 아니었다. 매일 보는 하늘이 뭐가 좋다고. 그 사이 야동을 한 편 더 보고 말지. 다만 감수성 풍부하고 생각 많은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선 이 방법이 탁월한 법이란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 구름이도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너무 예쁘다." 내 말에 구름이는 "뭐? 내가 예쁘다고? 고마워." 하며 키득키득 웃는다. 나도 히히히 웃는다. 정말 존나 유치하고 상투적인 말장난이었다. 뭐, 당연히 이 반응을 예상하고 한 말이었지만, 안 웃긴데 자연스럽게 웃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하지만 내 친절한 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선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구름이가 웃음을 멈출 때 쯤 나도 웃음을 멈춘다. 웃음을 멈춰도 미소를 잃지는 말아야 한다. 난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구름이는 조용히 구름을 바라보다 입을 뗀다. "나, 구름이 되고싶다." "니가 구름이잖아." 농으로 던져 본건데 구름이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늘의 구름 말이야. 진짜 구름."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나. "왜?"최대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빨리 급식실에 가서 밥먹고 싶었다. 배고팠다. 눈치도 없는지 구름이는 둥둥 떠가는 구름만큼이나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러니까, 저렇게 높은 곳에서 둥둥 떠가는 것도 부럽고, 왠지 깨끗해 보이고, 또, 햇살도 가까이서 쪼이고, 멀리멀리 갈 수도 있고, 또, 뭐랄까, 가벼워 보이고, 무엇보다도……." "응." 내가 니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흔적 하나. 구름이는 말을 이었다. "힘들면 아무데서나 실컷 울 수 있잖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뭐야, 그게, 엄청 감성적인 척 하는군. 구름이를 봤더니 하늘을 보고있는 착각인지 진짠지 몰라도 구름이 눈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정말 '척'하는 건지 헷갈렸다. 특히나 그건 구름이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딱히 위로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친절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서 "에이, 우리 구름이가 왜 이래! 배고프다. 밥먹으러가자!" 하고 구름이 손을 잡아끌며 급식실로 달려갔다.   2. 사람은 누구나 화장을 하고 사람을 대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추악한

  • 찰칵보이
  • 2009-10-1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우와 님아 좀 짱인듯!!!!!!!!

    • 2009-09-12 00:54:23
    익명
    0 /1500
    • 0 /1500
  • 초록불

    수정해 놓았습니다.

    • 2009-09-10 01:45:06
    초록불
    0 /1500
    • 0 /1500
  • 익명

    으악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네요. 퇴고를 꼼꼼히 못해서 그런가봐요ㅠㅠ 손들고 범인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범인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은정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승윤이가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진철이를 쳐다봤다> 승윤이가 눈을 꽉 감았다 뜨고 승우를 쳐다봤다 입니다. 으익 감사합니다

    • 2009-09-09 18:15:59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