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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 작성자 알파걸
  • 작성일 2008-11-12
  • 조회수 437

 열쇠가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쇠를 놓아둔 장소가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여행용 가방을 움켜쥐고 침대 구석에 주저 않았다. 진통이 오기 전의 며칠간이 가물가물해, 도저히 열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처럼 하얀 여행가방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안에 우리 아가의 신발이니 옷이니 하는 것들을 다 정리 해 놓았는데. 열쇠구멍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뱃속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몸을 아무리 웅크려도, 아직도 내 뱃속은 끔찍한 고통을 잊지 못하고 내게 상기시켰다.

 누군가 벨을 한참동안 눌러댔다. 나는 살며시 눈을 뜨고 인기척을 살폈다. 벨 소리가 요란하게 집안에 울리더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영아, 거기 있지? 문 열어, 엄마야! 김서방이 가보라더라. 나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조심스레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가 나를 왈칵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도 후유증이 안 없어지네. 하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잊어! 엄마가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나를 소파위에 앉혔다. 나는 또 다시 웅크리고 앉고 불안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런 나를 엄마의 촉촉한 눈이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우리 아가는? 엄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 마, 네 새언니가 봐 주고 있으니까. 세상에 태어나고 여태 엄마 품에 제대로 안겨보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정작 그 애를 직접 볼 때면, 제왕 절개 수술을 하던 그 때의 상황이 떠올라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 어린 아이를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잘못도 아니건만 아이가 밉기까지 했다.

 나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을 당시 ‘마취 중 각성’을 겪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의사가 내게 마취를 했을 때 나는 분명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 귀는 모든 상황을 의식하고 의사의 말소리와 움직임을 듣고 있었고, 내 몸의 촉각도 살아있었다. 나는 아직 마취가 덜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의 입에서 자, 준비 다 됐지? 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를 낳는 고통과 생살을 가르는 고통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입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하고 싶었다. 날카로운 칼이 내 배를 가르고, 깊숙이 쑤시고 들어왔다. 열쇠구멍을 찾는 열쇠처럼 칼은 계속해서 내 뱃속을 쑤셨다. 수술도구들이 내 뱃속에 닿는 느낌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쏟아져 내리는 피를 의사가 닦아내는 것도 느껴졌다. 순간, 칼이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췄다. 의사의 손이 내 뱃속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의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렸다. 아기가 울어대는 소리와 수술도구들의 부딪히는 소리가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대는 것 같았다. 탯줄이 잘리는 느낌과 함께 나는 결국 혼절했다.

 엄마는 저녁상을 차려 놓고 나를 식탁으로 데려왔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떠먹었다. 입안은 깔깔했다. 밥알 하나하나가 혀끝에 느껴졌다.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지질 않았다. 한참 숟가락으로 밥그릇만 휘젓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래, 어떻게 됐나? 엄마의 말에 남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내 같은 소리만 짓껄이죠, 뭐. 마취과 전문의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수술한 주제에 마취는 의사면허만 있으면 다 가능하다 어떻다 하면서. 미친 자식들, 사람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곤 누가 들을까봐 나를 끌어내더라고요. 남편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나는 내 배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뱃속을 수술도구로 휘젓고 있는 듯 고통이 생생히 재현되었다.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남편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꽉 잡는 게 느껴졌다. 여보,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의 말에 눈가가 시큰해왔다.

 다음날 아침에도 남편은 차를 끌고 나갔다. 남편이 직장이 아닌 병원으로 매일 출퇴근하게 된 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갔다. 하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병원 측의 변명과 형식적인 사과에 남편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서 퇴원을 할 때도 남편은 병원 앞에서 투쟁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안겨 있다시피하며 병원 문을 열었을 때, 피켓을 들고 병원 앞에 주저앉아있는 남편이 보였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작은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남편은 지하철 앞의 노숙자처럼 초라해보였다. 남편은 더위로 인해 빨갛게 익은 얼굴을 하고서 병원 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병원 측은 사과하라! 사과하라! 남편의 목에 핏대가 서 있었다. 나는 입을 가리고 눈물을 삼키려 했지만, 자꾸만 눈앞이 흐려왔다. 레지던트 몇 명이 달려와 화를 내며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밀어댔다. 남편은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질렀고, 레지던트들은 남편을 술 취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안방 침대에 앉아, 아기가 내 뱃속에 있을 당시 찍은 초음파 사진을 봤다. 새까만 사진에 아기의 작은 모습이 보였다. 입을 꽉 깨물어보지만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열 달을 내 뱃속에 품고 산 아이를 한달이 다 되도록 보지 않고 있었다. 녀석, 참 빨리도 크더라. 엄마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나는 초음파 사진을 한참동안 쓰다듬었다. 텅 빈 뱃속은 고통과 공허함만 남아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의 귀가는 늦었다. 남편이 병원로비에서 의사를 찾아가며 시위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배보다 가슴이 아려왔다. 오늘따라 김서방이 늦네? 오늘은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엄마가 식은 찌게를 다시 데우며 중얼댔다. 나는 엄지손톱을 깨물며 현관만 쳐다보았다. 그 때,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라는 생각에 전화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현태씨 집이죠? 지금 김현태씨가 폭행죄로 서에 와있거든요? 그 의사를 어찌나 패놨는지 이거 살인미수죄가 적용될 수도 있어요. 어쨌든 빨리 좀 와 주세요.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왜 그러냐며 내 팔을 붙들었다. 온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는 남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살인미수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남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날처럼 내 온몸의 근육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이번엔 주위의 목소리마저 깜깜하게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마취가 내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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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눈을 떴다. 깜깜한 어둠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벽에 붙은 디지털시계는 1시 25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게 오전을 말하는 건지 오후를 말하는 건진 알 수 없다. 내가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떡이 진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이 공간이 어두워도 나는 금세 컴퓨터 앞으로 가 전원을 킬 수 있었다. 전원 버튼에 불이 파랗게 들어오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심장에서 안락한 느낌이 잔잔히 퍼진다. 나 자신의 숨 쉬는 소리만큼이나 모터 소리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나는 컴퓨터가 다 켜질 동안, 싱크대로 가 간단히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티셔츠의 목 부근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싱크대에 걸쳐 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낸 후 티셔츠의 위쪽에 걸쳐 끼웠다. 컴퓨터는 이미 다 켜져 있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곧장 블로그로 들어갔다. 블로그 안에서 첫 번째로 갈 곳은 ‘안부게시판’이다. 안부게시판을 클릭하자 그녀의 닉네임이 보였다. 그녀의 닉네임을 보면, 내 심장엔 간지러운 물보라가 인다. 의자에 앉은 엉덩이는 가볍게 뜬 것만 같다. 오늘은 꼭 그녀에게 이런 내 맘을 전할 것이다.‘만화 잘 봤어요. 역시 방랑자님이에요. 조슈아는 언제쯤 지하감옥에서 탈출하죠? 아……. 날씨가 정말 좋네요. 오늘 같은 날은 꽃집에 손님이 많이 와요. 벌써 여섯명이나 후리지아 꽃을 사 갔다니까요. -물보라-’그녀와 나는 블로그 이웃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봐 주지 않는 내 블로그 만화를 봐 주는 유일한 독자였다. 처음엔 어쩌다 한두번 올리던 만화를 언제부턴가 그녀를 위해 매일 올리게 되었다. 그녀는 늘 빼먹지 않고 내 만화를 봐줬다. 그러길 벌써 254일째였다. 우린 안부게시판으로 만화말고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내 소울메이트란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모두 공유하고 이해했던 그 시간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 그녀는 최고의 파트너였다.나는 그녀의 블로그로 가 답을 썼다. 타자를 치는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그녀의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면, 꼭 그녀와 손을 잡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그녀는 아마 향기로운 꽃이 가득한 꽃집에서, 고운 손끝으로 꽃을 돌보고 있을터였다. 그녀를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녀를 명확히 상상할 수 있었다. 청순한 얼굴에 길고 다느라단 생머리, 친절한 미소와 새하얗고 고운 손……. 그녀는 내게 봄바람같은 사람이었다.‘조슈아는 곧 탈출할 거에요. 당신 같은 팬이 조슈아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물보라님의 후리지아 꽃이 보고싶네요. 그리고 물보라님도요. 같은 마음이라면 만날 수 있을까요? 아시겠지만, 물보라님이 좋아요. -방랑자-’엔터를 누르는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제 그녀의 대답만이 남아있다. 나는 긍정적인 답이 올 거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진정이 되질 않는다. 의자에서 일어서 컴퓨터 주변을 맴돌았다.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다. 엄지 손톱의 끝을 자근자근 깨물었

  • 알파걸
  •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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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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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1-13 16:46:0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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