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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곰팡이

  • 작성자 J에대한
  • 작성일 2007-10-13
  • 조회수 727

푸른 곰팡이

 

 

 은호냐. 조심스레 대문을 닫는 소리에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며 물었다. 그리고 곧, 눈이 마주친 자가 형이 아님을 확인한 어머니는 눈빛이 흐리멍덩해졌다. 나는 곧이어, 은호는 언제쯤 집에 온다더냐던 어머니의 말을 뒤로 한 채 작은 화실로 쓰는 방에 들어와 버렸다. 건조한 방 가운데에는 소나무가 그려지다 만 캔버스가 놓여있었다. 방문이 채 닫히지 않아 마당에 걸쳐 앉아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저 너머의 소나무를 또 바라보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큰아들이 생각날 적마다 개진 젖은 눈을 들어, 형이 좋아하던 소나무가 있는 곳을 바라보곤 하셨다. 비 오는 날 변변한 우산 하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겨울 빛줄기를 잘 못 본 것일까. 한줄기 가는 눈물이 어머니 뺨 위로 흐르는 것을 언뜻 본 것 같다. 밖은 모두 회색빛을 띄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바라보는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렀다. 지상에 고독하고 푸르게, 겨울로부터 유폐되어있는 소나무. 형은 소나무를 닮았다.


 4월 1일 만우절, 형이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고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이 거짓말인줄로만 알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캔버스의 같은 부분만을 스무 번 덧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뒤늦게야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스스로 이 상태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일종의 무의식상태 자살이죠. 국어책 읽듯 메마르게 의사는 말했다. 형은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고. 팔 년 전에 의사는 내게 그렇게 선고를 했었다.


 오늘도 멍이 하나 더 늘었다. 의사는 건조한 표정으로 형의 굳어가는 관절들을 만져보곤 했다. 형이 좋아하던 소나무처럼 형은 병실에 뿌리를 박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뿌리째 썩어가고 식물처럼 가벼워져서는.


 눅눅한 실내에 어눌했던 형의 음성이 들렸다. 네 형수는? 형은 집을 나간 형수가 돌아왔느냐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치매기가 있는 시어머니를 돌보다 형이 일하다 허리를 다쳐 일자리를 잃자 집을 나간 형수를 형은 내내 기다리는 것이다. 형수를 찾으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저렇게 팔 년을 식물인간으로 살아오면서도,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만날 바람결에 솔잎 향을 묻어내며 물어보는 것이었다. 네 형수는 돌아왔느냐고. 나는 그런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는, 오늘도 내일도 오지 않을 거예요.


 집에 돌아와 그리다 만 소나무를 그리고 있다. 소나무는 조금씩 푸른곰팡이가 되어간다. 눈알이 오랫동안 따끔거렸다. 은호는 언제쯤 돌아 오냐, 은수야. 며늘아기는 어디에 있기에 나 밥 안주는 게냐. 은수야, 나 배고프다. 밥 좀 주어. 어머니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형을 찾고 있었다. 어머니, 형은 돌아오지 않아요. 형수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나는 단단하게 메인 목을 겨우 쥐어짜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얘야, 은수야. 은호는 언제쯤 돌아오느냐. 빗소리에 묻혔을까, 어머니 자신이 못 들은 척 하는 것일까. 어머니는 계속 같은 말만 내뱉는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독하게 푸른 소나무가 창문 너머 보인다. 형수를 기다리는 형이나 형을 기다리는 어머니나, 저 짙은 소나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실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슴 속 깊이 가지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붓을 들었다. 소나무는 계속 푸른곰팡이가 되어간다. 뿌리를 깊게 박아 그 자리를 늘 푸르게 지키는 소나무. 그래서 자꾸만 푸름 곰팡이가 되어만 가는 소나무 세 그루를 완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돌아본 벽 위에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사진 속에 형수를 뺀 나머지는 영락없는 소나무들이었다.

 

 푸른곰팡이가 되어가는 지독히 푸른 소나무 세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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