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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단(弊端)

  • 작성자 월향유화
  • 작성일 2007-06-27
  • 조회수 349

폐단 [弊端]

 

 

"하악, 하악"
거친 숨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침대 시트를 그러쥐은 손등 위는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표정은 일그러 질대로 일그러졌는데 미영은 도통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을 더 몸부림 쳤을까 몸의 움직임이 잦아들었고, 순간 헉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멈추었다. 방안에는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더니……,
'번쩍-'
미영은 잠에서 깨어났다. 숨이 돌아오고 급하게 호흡을 고르던 미영은 온몸에 찝찝함이 느껴지자 욕실로 달려가 차가운 냉수를 그대로 온몸에 퍼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뿌려 대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고 쿵쾅거리던 심장이 진정 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미영이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누군가 계속해서 자신을 불렀다. 뭐라고 하는지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그 누군가의 고통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에 쉬이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것이 꿈이라는 것은 인식이 되었지만 깨고 싶어도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미영은 며칠을 꿈에 시달려야 했다.
'팟!'
텔레비전 자동 켜짐 장치에 불이 들어왔다. 미영은 언제나 혼자였기 때문에 집안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텔레비전은 항상 틀어 놓는 편이었다. 다만 보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채널이 전혀 다른 곳으로 돌려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혹시 아침에 늦잠을 자지는 않을까 싶어 오전 7시에 자동 켜짐으로 맞춰 놓은 텔레비전은 방송을 시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건강한 아침의 김은주 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우울증의 상태와 진단, 그리고 예방과 치료방법에 대해서 나누어 보도록 할 텐 데요. 한국대 정신과 교수로 계시는 황지석 박사님을 모셔서 알아보겠습니다."
텔레비전 안에서는 박수소리가 들려왔지만 미영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던 건지. 그것은 미영이 혼자 생활을 하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악몽 덕분에 일찍 일어나 어두운 가 했더니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오늘 하루는 계속해서 흐릴 것 같았다.

 

"미영아, 안녕?"
집 대문 앞에는 역시나 영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영은 잠시였지만 영미를 보자 두통인 듯, 멀미 같기도 한 것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자주 그랬다. 처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느꼈었다. 타이밍이 좋아서, 우연의 일치로. 하지만 그 꿈을 꾸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영미를 볼 때 머리가 아파 왔다. 아마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미영이 스스로 영미와의 거리감을 형성 한 것은. 겉으로 영미를 대하는 것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했지만……. 어쨌든 미영은 그 사실이 신경 쓰였다. 영미를 볼 때마다 오는 두통. 그것은 아마도 꿈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자신을 향해 번뜩이는 눈동자가 영미의 그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미영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그냥 두통이 좀."
미영이 인상을 쓰고 있자. 영미가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미영은 영미에게 이 사실을 말하진 않았지만 영미는 미영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었다. 미영이 과거, 미영의 성격, 미영의 행동까지도. 영미는 자신이 미영에게 있어서 최고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미영이 자신에게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미영은 그 꿈에 대해서  만큼은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영미는 작년,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년 이맘때쯤 친해진 친구였다. 친해졌다고 하기 보다 친할 수밖에 없는, 미영에게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사실 미영에게 있어서 영미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서로 너무나 닮은 점들이 많은 것도 그러했지만 왠지 영미와는 처음부터 서로 함께 있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미영에게 있어서 그 날은 운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영미를 만난 것은 작년 겨울, 학교 옥상에서였다. 우연찮은 기회에 학교 옥상 스페어 키를 갖게 된 나는 그 곳을 나의 안식처로 삼았다. 학교도 집도 모두 나에게는 고통과 슬픔만이 지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어느 곳 하나 나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이 사회에서 인식되어온 나란 존재는 이미 없는 것과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릴 정도로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다만 자유롭고 싶었다. 나를 억압하는 이 고통들 속에서.
그런데도 지금까지 내가 뛰어내리지 못한 이유는 그래도 죽지 않을 까봐, 아니면 죽을 때 바로 죽지 않아서 다만 몇 분, 몇 시간이라도 뛰어내린 후의 아픔을 느끼게 될 것 같아서였지 사는 것에 미련이 남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는 것만큼이나 아픔이나 고통 따위를 맛보는 것은 싫었다.
하긴, 옥상에서 뛰어내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떨어진 충격 때문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들었다. 그러면 뭐, 고통스럽지도 않고 깔끔할 것 같긴 했다. 개 같은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진 않았다.
난 좀더, 조금 더 하늘과 가까이 있고 싶었다. 이렇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 보다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위태로운 옥상 난간 위에 걸터앉아 하늘 끝까지 바라보았다.
"아- 하늘은 좋겠다. 자유로워서."
이제 누가 장난으로 슬며시 툭 치기만 해도 떨어질 것 같이 아찔한 상황.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탁- 하고 한발을 앞으로 내딛으려 몸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드디어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얘! 거기서 뭐해!"
하늘이 나를 미워 라도 하는 건지 하늘과 하나가 되려는 순간 나만의 공간에 찾아와 나를 방해한 이가 있었다. 영미였다. 영미 덕분에 끝끝내 나는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였다. 내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던 것은. 그 이후로 내가 옥상으로 올 때면 항상 영미와 함께였다. 학교와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 탓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우울해 지면 영미도 함께였다. 영미와 나는 언제 어디서나 함께였다. 영미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배려했다. 내가 하자고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려고 했으며 설사 그게 힘들다고 해도 영미는 언제나 나의 힘이 되어 주었다.
우리들은 서로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 학교와 사회. 심지어 집에서도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 그러했고 어딜 가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소심한 점까지 모두 비슷했다. 게다가 나와 영미는 이름마저 비슷했다. 미영, 영미 미영을 거꾸로 발음하면 영미가 된다. 정말로 그 이름처럼 나는 영미에게서 나를 비춰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나와 영미에게는 약간이지만 큰 차이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왜 그래 미영아?"
미영은 영미가 부른 덕에 지난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미영에게 있어서 이건 문제였다. 한번 생각에 빠지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한 다는 것. 다만 오늘은 덕분에 생각을 정리 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하였다. 미영은 자신이 영미를 멀리한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느꼈다. 영미는 자신에게 있어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이자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어줬던,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었던 단 한 사람인데, 헛된 꿈, 악몽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니…….
"쿡쿡."
미영은 허무한 감에 웃음이 나왔다.
"응? 왜 그래 미영아?"
"아, 아냐 그냥 옛날생각이 나서."
"음, 우리 처음 만났던 날 말이지?"
신기하게도 영미는 미영의 생각을 다 읽기라도 하는 듯 미영이 할말을 대신했고 미영은 그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미영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주는 영미가 신기하고 때론 이상할 때도 있었지만 친구사이는 늘 그런 거라고 영미가 말해주었다. 그 이후로 미영은 자신의 생각을 미리 알아챈 영미에게 고마워했다.

 

오늘따라 버스는 한산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물밀듯 넘쳐나곤 했었는데. 어쨌든 의자에 앉아 갈 수 있었기에 미영은 좋았다. 영미와 미영은 제일 끝자리로 가 나란히 앉았다. 언제나 의자도 함께 앉았기 때문이다.
"뉴스속보, 알려드립니다. 이 달 14일 5시경 경상남도 ㅇㅇ시에서 이모씨의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번 달 1일로 약 보름이 지난 후에야 인근 주민에 의해 알려졌다고 합니다……."
버스 안의 적은 사람 덕에 라디오 방송은 정확히 귓등 때려왔다. 미영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얼굴에서 비릿한 웃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미영은 그 기사를 되씹어 보았다. 그런 미영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었는지 영미가 돌아보았다. 미영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도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언제나 영미뿐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자."
영미는 역시나 미영이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꼭 집어서 얘기해 주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왁자지껄한 교실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아이들은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로 시끄럽게 재잘거렸고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도 돌아보는 아이가 없었다. 개중 두엇이 미영과 영미를 발견하긴 했으나 슬쩍 눈길만 보낼 뿐 다시 시선은 돌려버렸다.
무관심. 피식. 미영은 실소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뭐 예전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움츠러들었거나 했겠지만 이젠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언제나 단 한사람 영미만 곁에 있어주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아니 요즘 들어서는 영미도 자신을 채워 주지 못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미영은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휙휙 저었지만 영미를 향해 나타나는 불신과 두통은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 수업 중 누구도 미영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왜인지 씁쓸함이 느껴지던 차에 영미는 자신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하였지만, 미영은 그 말에서 위화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아직까지 미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를 죽여버려! 저런 놈은 쓸모 없어."
흐릿한 말은 또렷해진다.
"엄마가 원망스럽지? 밉지? 널 버린 그 여자, 죽여 버리고 싶지? 킥킥."
비웃음소리는 미영의 목을 옥죄어 오고 미영은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나는 네 원망을 다 알고 있어, 숨기려 하지 않아도 돼."
"아니야. 아니야!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듣지 않으려 애써 보아도 그 목소리는 귓가에 속삭이듯 정확하게 들려온다. 미영은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워낙 자주 꿈을 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이 콱 막힌 듯 머릿속에 안개가 낀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아악!! 싫어-!"
오늘은 정도가 더욱 심했다. 꿈에서의 그 여자는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 째려보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완연하게 들어 난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곤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 너무 어둡고 캄캄해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이 그 여자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목소리도 많이 들어 본 것같이 정확하게 들려왔다. 처음에 꿈은 5분내지 10분. 길면 15분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한 시간 내내 시달릴 정도였다. 최근 들어 몸무게는 5kg이상이나 빠졌다. 정말이지 잠들지 않고 살고 싶을 만큼 자는 게 두려웠다. 미영은 온몸이 찝찝했지만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이 더욱 급했다. 부엌으로 들어가 물병을 통째로 잡고 꿀꺽꿀꺽 마셨다.
"띵- 파악"
일곱시 정각. 여지없이 텔레비전은 켜졌고 여전히 같은 채널이었다.
"박사님 요즘은 연예인들이 우울증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요. 왜 연예인들이 특히 그 정도가 심한 가요?"
미영은 등을 돌려 욕실을 향했고 연거푸 물을 들이부었다. 등뒤에서 텔레비전 속 사람들의 말이 주절주절 들려왔다.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보통 스트레스라고들 알고 있죠.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경우에는 애정이 결핍되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우울증 환자들은 언제나 주변에서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죠. 연예인들은 항상 대중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사건에도 우울증에 쉽게 걸리곤……"
'팟-'
미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말로만 지껄이는 사람들. 자신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지껄이는지. 정작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떠들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자신을 이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따라 텔레비전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싫었고, 무시하면 될 그 말들도 정확하게 귓등을 때려왔다. 참을 수 없던 미영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꺼질 텐데도 불구하고 손수 텔레비전을 꺼버리고는 집을 나왔다.
요즘 들어 미영은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은 깨달았다. 평소라면 보지도 들리지도 않을 TV를 보고 열이 뻗친 것도 그랬지만 더 심각한 것은 꿈. 그 꿈. 요즘 들어 더 지독하게 나를 괴롭혀 오는 그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분명. 그 시선은…….’
“미영아!!”
“……!”
역시 오늘도 집 앞에는 영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영은 영미가 오늘은 여느 때와 달라 보였다. 영미를 본 순간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미영은 학교를 가는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계속해서 미영을 불러대던 영미도 오늘 미영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낀 건지 그 이상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미영과 영미는 서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학교로 향했다.
미영은 자신의 과민 반응 일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이건, 정말 이건 아니었다. 그 꿈속의 여자. 분명 영미였다. 한낮 꿈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렇게 계속되는 것은 분명히……. 미영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조금 떨어져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영미야 미안. 오늘은 나 먼저 갈게.”
학교생활 내내 미영과는 몇 마디,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미영은 오늘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기에 영미는 그런 미영의 의아스러웠다. 무슨 일인지 요즘 들어 그런 미영이 이상해 보였다. 영미가 의심쩍은 눈빛으로 미영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제 와서 나를 버리겠다고?”
영미는 미영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지나치게 반응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오늘 사실 들릴 때가 좀 있고 그래서.”
“안 돼. 나도 같이 가. 우리 함께 있기로 하지 않았어?”
참고 있던 미영도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한번쯤 떨어져 갈 때도 있는 거지 오늘따라 이렇게 집착하는 영미의 모습이 이상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영미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기만 해도 영미가 거기에 끼어 들어 방해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는 말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등뒤로 식은땀이 쭈욱 흘러내렸다. 미영은 최근 들어 영미 외의 사람과는 대화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 그제 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미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쨌든 오늘은 나 혼자 갈게. 따라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미영은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날카로운 영미의 눈초리를 뒤로한 채.
“바보 같은 짓 하지마 미영아…….”

 

미영은 이제 자신은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고 믿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거리, 그 어느 곳에서도 귀속되지 못한 채 터덜터덜 걷고 있을 뿐이라고 느꼈다. 자신이 왜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왠지 누군가가 내 머리를 침식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끔찍할 만큼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야, 이 자식아! 나오면 10원에 한대야!"
네온사인 불빛조차 모습을 감추어 버린 어두운 골목. 미영은 들어서도 안될, 듣고 싶지도 않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영의 발걸음을 멈추기엔 충분했다.
'퍽퍽-'
"악! 제발 그만해!"
어느새 골목 어귀에서는 여러 명의 무리가 한사람을 구타하는 모습이 비추어 지고 있었다. 미영은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하려 애썼다. 그 어떤 한 명을 향해 욕설과 함께 온몸의 내리 꽂히는 발길질과 주먹질 덕분에 미영은 어떤 환영이 일었다.
"윽, 잘못했어. 엉엉, 내일은 돈 가져 올 테니까…"
이젠 거의 빌다시피 하는 그 목소리에 미영은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미영은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발을 질질 끌어서라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바로 그때였다.
"미영아. 저건 네 모습이었어."
미영은 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얼굴을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였다. 역시 영미였다. 어느새 영미는 내게로 다가와 있었다.
"내가 구해줬어. 미영. 내가 널 저기서 벗어나게 해줬다고!"
'우욱-'
미영은 더욱 역하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영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미영은 영미를 피해 도망쳤지만 도대체 어디를 가야 영미를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절대로."
귓가에 영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칠 대로 지친 미영의 몸과 마음은 스르르 주저앉았다. 환영이 보였다. 영미와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기분이었다.
'아아- 난 아직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이 미친년, 미친년! 퉤! 재수 읎는 년. 니두 느이 엄마 따라 가! 썩 꺼지라고!"
아버지는 나를 향해 주먹세례를 퍼부었고 이리저리 발길질을 해댔다. 내 몸은 어디하나 빠지는 곳 없이 아버지의 타작용 보리가 되어야 했고, 아버지의 화풀이대상. 욕을 먹어주는 운명이어야만 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나를 향해 더러운 침을 뱉어냈고, 난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것은 벌써 몇 년도 더 전부터의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 아버지는 나를 탓했고 대신 너라도 때려야 내 마음이 풀리겠다 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엄마를 원망하진 않았다. 만약 엄마가 이 집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아마, 맞아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미는 나에게 항상 말했었다. 아빠에게서 벗어나야 해. 아빠에게 맞지 마!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는 참을 수 있었던 것이 오늘은 더욱 고통스럽고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 아니,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네가 돌았어? 네가 뭔데 날 때려! 이 개자식. 더러운 자식!"
이제까지 한번도 그런 적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난 더욱 심하게 반응하고 반항  했던 것 같다.
"뭐야? 이 씨발년이. 역시 넌 제정신이 아닌 게야. 후후, 미친개에는 매가 상책이지 매가. 크크크."
아버지는, 아니, 더 이상 아버지라 할 수 없는 그 개자식은. 이미 변태가 되어버린 그 미친 자식의 손에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쇠몽둥이가 들려있었고,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그런 눈.
본능이 외쳤다. 도망쳐야 된다고.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진 몸은 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그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라고, 안 된 다고 소리치려 했지만 목구멍만 뻐끔거려 졌다. 한 대만 잘 못 맞아도 죽는다. 분명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대로 죽는 건 싫었다. 정말 싫어.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마비가 되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의 몽둥이가 휘둘려 지려는 순간,
"안 돼!"
영미였다. 영미가 집안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향해 화분을 집어 던졌다. 덕분에 아버지는 정신을 잃었고 영미와 나는 집 밖으로 도망쳤다. 그 후였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감된 뒤로 나 혼자 이 집에 살았던 것은.
영미가 나를 살렸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 날 영미는 어떻게 우리 집에 올 수 있었을까. 마치 내가 그 날 아버지한테 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 때 마침.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서 나타난 걸까 영미는. 설마 처음부터 날 따라왔던 걸까? 느끼지 못했는데…….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정말 내 친구 영미가, 영미가 맞는 걸까?

 

미영은 꿈속의 목소리와 영미의 모습이 자꾸 겹쳐져 보였다. 그리고 끝까지 뜨려 했던 눈이 서서히 감겨 지는 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 빛나는 것은 영미의 눈빛. 분명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눈빛이 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눈. 바로 저 눈.'
미영의 눈이 완벽하게 감겨졌다.

 

또다시 어둠이 미영을 찾아왔다. 꿈속은 언제나 어두웠고, 안개 낀 형상처럼 흐릿한 물체가 보였다. 한두 번 겪어보는 게 아닌 이상 이제 이맘쯤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 수 있었다.
“킥킥킥.”
흐릿한 형상에게서는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영미야. 너 영미 맞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우린 친구잖아!"
또다시 비웃음이 느껴지나 했더니 이내 그 형상은 말했다.
“푸하하. 친구라고? 글세~ 미영아 내 얼굴을 잘 봐. 우리가 친구야?"
언제나 어두웠던 그 곳은 처음으로 서서히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미영은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왠지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이미 막을 수는 없었다. 언제나 흐릿했던 형상이 점점 윤곽을 드러내었다. 미영은 그곳에서 영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넌 나야 미영."
그 형상은 미영의 얼굴을 하고는 씨익 웃고 있었다.
"으아악-!”
미영은 눈을 감고 싶었지만 감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이, 이게 뭐야! 어째서 네가!"
영미는, 아니 미영의 또 다른 얼굴은 천천히, 천천히 미영에게로 다가왔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미 마비된 몸은 작은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혼자서 부르르 떨린다고 생각 될 뿐이었다.
“처음부터 영미라는 애 따윈 없었어. 우린 하나였어. 풉, 바보 같은 년"
영미가 미영에게 다가오더니 미영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마비된 몸에서도 시리도록 차가움이 느껴졌다. 스르륵. 영미는 그렇게 미영의 몸에 들어와 하나가 되는 게 느껴졌다.

 

미영의 눈앞에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늘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집 앞에 나가서는 혼자서 질문하고 대화하고,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 학교에서 늘 혼잣말하며 웃고, 장난치는 모습. 그런 자신을 동물 쳐다보듯 쳐다보는 반 아이들. 
"아악- 안 돼!"
마침내 미영은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중인격을 알아채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모습을. 미영 스스로 화분을 집어던져 힘겹게 달아나 경찰서로 향하더니, 거기서 사정을 말하는 것은 자신.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영미였다. 영미는 경찰서에서 온갖 증거를 들어 아버지를 교도소로 보낸다. 아버지가 말하는 딸의 이중인격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경찰서에서는 알콜로 인한 정신질환을 문제삼아 정신적 요양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영미는 씨익 웃어 보였다. 지금 자신을 향한 웃음처럼…….
영미와 자신의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위화감이었다. 아무리 표정이 다양하고 진실 된 척 했어도 영미의 모습은 모두 거짓이었고 연기였다. 왜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미영은 자신도 미쳐 가는 거라고 느꼈다.

 

'띵- 파앗'
아무도 없는 집 거실이었지만 7시 정각, 역시나 텔레비전은 켜졌다.
“오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군요. 우울증이란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서 초기에 빨리 알아채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 모두 잘 알고 계시죠? 이 우울증이 극대화되면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심각 겨우도 있습니다만.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또 하나 있죠. 바로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이라고도 하는 데요. 이것은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으면 무의식중에 정신이 분열하여 또 하나의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중인격이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치료도 불가능하고 극심한 공포에 내몰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내가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새 이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짜의 자아는 진짜의 자아를 위협하여 먹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둘 중 한 자아가 인격체를 완전히 잃게되어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른 한쪽의 자아는 영원히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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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써보는 글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

 

월향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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