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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

  • 작성자 『미르』
  • 작성일 2006-08-03
  • 조회수 829

 그 방




 # 0.


여름의 밤은 화려하다.


대체로 화려함이란 단어는 밤 보다는 낮 쪽이 더 잘 어울리는 단어라 해도 큰 지장은 없을 테지만, 도시의 밤이란 일상의 낮이 가진 것과는 다른 종류의 화려함을 물씬 풍긴다. 추위도 식히지 못하는 왁자지껄함 속에서 야하게 번뜩이는 네온사인들이 뿌리는 자극적인 원색의 빛들은 쉬지도 않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점멸한다. 그 선정적인 폭력 앞에서는 철저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파르스름한 달빛은 붉은 빛의 명멸에 취한 듯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종내에는 산산이 아스러진다.


────그 위에 떠 있는 이지러진 조각 달.


남자는 숨을 들이켰다. 공기는 몹시 탁하다. 지나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찌꺼기, 찌꺼기, 찌꺼기. 니코틴에 절은 폐 속을 한 바퀴 일주한 이산화탄소들은 대기 중에 잔류하고 있고, 일산화탄소를 머금은 담배연기조차도 그 독기를 옹골지게 머금었건만 그들은 형체도 유지하지 못한 채로 사정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사라진다. 그 정도로 공기는 탁했다.


담배연기들을 그렇게 만들 정도로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옅어질 만큼 옅어진 연기들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되지 못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오롯한 그들의 삶을 원했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진한 독기를 머금어 선명한, 혹은 치명적인 자극을 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을 잊지 못하도록. 그러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잊혀져, 죽는다.


남자는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담배꽁초는 숨 가쁜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 염증을 느낀 남자는 담배꽁초를 조애(阻隘)한 골목길 사이로 집어던진다. 실상, 골목길이라기보다는 그저 건물과 건축물의 틈새라는 쪽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터다.


"……조애(助哀)? 나 참, 웃기지도 않아."


그는 독백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남자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담뱃불이 아직 남아 있을 텐데, 그렇게 던졌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냐.' 따위의 말조차도, 아무도 하지 못했다. 누구도 타인에게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는 않았다. 남자의 같은 편으로 맞은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각기 오늘의 밤을 얼마나 유쾌하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토론이 지나간 자리에는 알콜의 냄새가 잠시 떠돌다 찢겨져 사라진다.


남자는 웃었다.


더없이 무력한 웃음이었다.



# 1.


"형님 오셨는데 뭐하냐, 썩 마중 나오지 않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투를 풀어헤쳐 방안에 늘어놓는다. 라면, 라면, 라면, 라면, 컵라면…….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핫초코 분말 통을 제외한다면 모조리 라면 일색이다. 그는 무심한 손놀림으로 그것들을 찬장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원룸에 마중은 무슨. 오호라, 그동안 이 형님의 손맛이 그리웠다 이거지?"


"어쭈, 나보다 두 달이나 늦게 태어난 주제에 형님의 손맛?"


그 남자 두 명은 서로가 상대의 '형님'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동안 티격태격하더니 어느 순간 둘 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익숙하다는 것 같은 태도들로 미루어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듯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침묵하며 게임 화면을 띄운다.


망막은 낡은 모니터를 비추고 있다. 꽤 오래 써온 것 인 듯 디자인이 상당히 구식이다. 오목한 브라운관에 비치는 것은 젊은 남자.  머리 관리는 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엉망인 검은 머리카락에 콧잔등까지 흘러내린 안경은 언제 맞췄던 것인지, 렌즈에 자잘한 흠들이 가득하다. 시야를 좁히는 앞머리를 귀찮은 듯 쓸어 넘기는 투박한 손놀림. 피부는 꽤 흰 편이다. 아니, 창백한 편이다. 하지만 콧잔등과 턱 곳곳에, 파릇한 수염들이 자잘하게 나 있어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질 않는다.


──우웅. 우우웅.


컴퓨터가 거친 비명을 쏟아낸다. 컴퓨터의 본체는 한쪽 면이 뜯겨져 있어서, 안에 품고 있는 여러 내장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엉키어 있는 것을 쉬이 확인할 수 있다. 부품들의 관리는 꽤 세심하게 하고 있는 모양인지, 제작사가 다른 여러 부품들에 끼어 있는 먼지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가 놓여있는 주변 환경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방은 하나의 방 치고는 넓다면 넓은 편으로, 열 평 남짓으로 보이는 이 원룸은 주인의 청결의식을 의심케 할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예외를 찾는다고 한다면, 예의 컴퓨터와 저 구석에 쌓여있는 책 더미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너절히, 그러나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자주 손이 가는 장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불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있고, 중간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책 한권이 이불 속에 파묻혀있다. 


“아아, 이게 자유라니까.” 


남자는 기지개를 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 옆에서 같이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남자, 창우는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러냐.”


“……뭐야, 너. 그 말투 맘에 안 들어.”


“낄낄. 아, 난 여기서 잘래. 피곤한걸. 이서현, 아무리 그래도 너도 적당히 해.” 


서현이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시간은 많을 테니까.”


“뭐, 그렇다면 그런 거고.”


“그래, 잘 자라.” 


창우는 기계적으로 컴퓨터를 종료했다. 어깨관절을 푸는 모양인지 천천히 돌리는데, 우두둑하는 소리가 꽤 크게 난다. 목도 좌우로 두 번. 마찬가지로 작지 않은 소리가 울린다. 


“이거 이거, 몸도 예전 같지 않다니까.” 


서현은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창우 역시 장난스럽게 씩 웃고는 몸을 눕힌다. 흐아암, 하는 하품소리가 나직이 들려오고, 곧 잠이 들었는지 나른한 적막이 열 평 원룸을 감싼다. 서현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 2.


전등조차 꺼져 있는 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뿌리는 것은 구형 모니터였다. 현란한 빛이 모여 춤을 춘다. 붉은 색. 빨간 색. 피 색. 색. 색. 그 빛들은 서현의 얼굴에 투영되고 있다. 서현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나, 정말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치켜 올리고, 습관적으로 콧잔등을 긁는다. 그러나 서현의 독백은 컴퓨터 옆에 달려있는 조그만 스피커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요란한 소음에 산산이 바스라진다. 서현은 그에 저항하려는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유일까, 자유일까…….” 


스피커는 여전히 침묵할 줄을 몰랐고, 곧 서현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그렇게, 정체된 시간이 계속해서 사라져간다.


그의 아바타는 쉴 새 없이 '적'들을 도륙했다. 그리고 죽었다.



# 3.


거의 울릴 일이 없는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창우는 아까 방구석에 마련된 좁은 잠자리로 걸어간 뒤로 벌써 세 시간째 자고 있었고,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책을 읽고 있는 서현은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잘못 걸려온 전화이리라. 서현은 그렇게 단정 짓고는 읽던 책에 몰두했다. 전화는 곧 끊겼다. 서현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린다. 금방이라도 그것 봐, 하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 삼십분쯤 흘렀을까. 손에 들려 있던 책은 이미 다 읽은 후였고, 이미 저쪽 구석에 쌓여있다. 서현의 게임 속 캐릭터는 캐릭터가 얻은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언제나처럼 게임 속 캐릭터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었으므로, 서현이 할 일은 없다.


서현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생활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으며― 사실은 이렇게 사는 것 외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이런 생활에 몰두했다. 눈뜨면 컴퓨터 앞에서 밥 먹고, 책 읽고, 그러다 잠들고. 그렇게 모은 게임머니는 현금으로 교환한다. 그게 서현과 창우의 생활비. 


“……좋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구속도 없고,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자유뿐이다, 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현은 깊게 숨을 들이키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후우, 하고 깊게 숨을 내쉰다. 왼손을 들어 두 눈두덩 근처를 문지른다. 계속해서 명멸하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던 탓일까. 하루 이틀 하는 일도 아님에도, 익숙해지지 않고 자꾸만 저려오는 눈이 야속하다는 눈치다. 서현은 창우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눈꺼풀이 서서히 닫힌다. 


먼저 눈을 뜬 것은 창우 쪽이었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따르르르.


“시끄럽게, 뭐야.”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폼이 흡사 시체 같다. 창우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머리맡에 놓아둔 안경을 꼈다. 초점이 모이지 않아 흐릿하던 시야가 명료해진다. 전화는 계속해서 울린다. 따르르르. 


‘웬 일로 전화가 다 오는 거야.’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들에게 전화 따윌 걸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혹 있다면, 사이버 상에서 거래를 할 대상자라거나, 뭐 그런 사람들 정도인데. 서현은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고는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무엇인가 전화가 필요한 거래는 하지 않은 것 같다. 애당초 그런 곳에는 서현이 창우보다 더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더 많았으니. 물론 사족이지만, 그 전화가 필요한 거래란 정상적인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불법. 


“뭐, 상관없지만.” 


불법이건 뭐건, 만끽하고 있잖은가. 자유를. 더할 나위 없는 완전한 방종을. 애당초, 우리를 이렇게까지 내몬 것은 그 법, 그 규칙, 그 엄격함, 그 사회가 아니던가. 그들이 우리를 비난할 자격은 없어. 창우는 히죽하고 웃음을 흘렸다. 


“여보세요.” 


수화기의 저편에서 배경음과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하는 기계적인 말소리에, 창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전화를 끊었다. 달칵, 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방해하지 말라고. 이런 쓸데없는 일로.” 


아무래도 낙오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냉담한 외면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이익의 추구를 위해 다시 낙오자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 싸늘한 사실을 자각한 창우는  순간 손을 멈칫거렸다. 


“하지만, 상관없겠지.” 


창우는 킬킬거리며 컴퓨터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아바타는 쉴 새 없이 '적'들을 도륙했다. 그리고 죽었다.



# 4.


언젠가 술에 된통 취한 창우가 서현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냐?”


“알게 뭐야.”


“그래? 아, 알 이유는 없는 거군. 좋은데? 낄낄. 좋아, 아주 좋아.”


창우는 크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병을 집어 들었다. 꿀꺽꿀꺽, 병째로 들이키는 자세치고는 허술하기가 비할 바가 없을 정도여서, 그 안에 들어있던 술은 창우의 얼굴을 따라,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서현은 그런 창우의 모습을 안경 너머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창우에게 수건을 건넨 서현은 컴퓨터 앞으로 걸어갔다.


좁은 방.


그 좁은 곳에서도, 시간은 차갑게 흘러갔다.


그렇기를 원하더라도. 그렇지 않기를 원하더라도.



# 5.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자던 서현의 몸이 순간 꿈틀했다. 추락감.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없이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꿈. 이미지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 아뜩한 공포가 잠과 달리 떠나지 않고 그의 몸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떨어지는 꿈이 키 크는 꿈이라던가. 키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대로였는데 말이지. 서현은 속으로 시답잖은 생각을 늘어놓으며 모니터를 보았다. 게임 아이템은, 하나도 팔리지 않은 채로 서현을 맞이했다.


“어이.”


창우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냐.”


창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될 때 까지.”


“그건 언제일까.”


“알게 뭐냐,”


결국은 이렇다. 알게 뭔가. 어차피 서현과 창우는 수많은 낙오자들 중 한명일 뿐이다. 패자답게, 도망쳐버리면 될 뿐이다. 도망치는데 이유 따윈 알 필요가 없다. 단지, 결국 지쳐 쓰러질 때 까지 도망치고, 거기서 유쾌하지 않은 게임오버. 아마도, 끝은 그렇게 되겠지. 난폭한 웃음. 실은, 처량한.


서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우는, 평소라면 무심히 넘겼을 텐데도 왠지 모르게 서현 쪽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현이 묵묵하게 그의 앞에 있는 모니터만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창우는 평소와 같이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바타는 차가운 바닥 위에 쓰러져 있다. 유쾌하지 않은 게임오버. 에라. 될 대로 되겠지. 오늘따라 왜 이리 게임이 안 되냐. 창우는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계기가 있다면.”


자신 없는 목소리. 계기가 있다면. 이번엔 서현이 창우 쪽을 보았다. 창우의 아바타는 지나가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부활한다. 서현은 다시 한 번 말했다. 방금 전과 같이, 하지만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계기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계기란 게 뭔데.”


“글쎄.”


서현은 주춤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서현의 아바타 앞에 모르는 사람의 캐릭터가 쓰러져있다. 서현은 그를 부활시켰다. 그, 혹은 그녀가 고맙다고 했다. 서현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렇게,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


계기란 건, 그리 커다란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서현은 중얼거리며 씩 웃었다. 그 사이, 서현의 ‘게임 속 캐릭터’는 죽어버린다. 평소라면 짜증을 냈을 테지만, 지금은 유쾌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쾌할 수 있을 것 같다────.



 

 

 

**

 

 

원래는 분량을 좀 많이 잡아서 구상했었습니다만, 지금 실력으로는 절대로 무리다! 해서 단편으로 줄였습니다. 으윽. 그러고 보니 좀 많이 어색하다 싶어서 일단 열심히 다듬었습니다. T_T

 

**

 

처음에 이걸 구상할때는 후후,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했을거야!

 

그런데 눈을 떠보니 하나도 아니고 두개나 있더군요. 뭐 옆나라에서 건너온 물건이긴 하지만, 그 당시의 좌절은 눈물 없이는 회상할 수 없었더랬습니다…….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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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겸이 님// 정말, 말로는 안나오죠. T_T

    • 2006-08-08 00: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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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을 다 쓰고나서 다른 글에서 내 글과 비슷한 글을 봤을 때나, 쓰려고 딱 마음먹고 스토리 다 짜놨을 때 비슷한 글을 발견하는 그 기분, 말로 표현 못하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 2006-08-07 10:45:5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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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shall 님// 그게, 야자랍시고 한 8시간 정도 죽치고 앉아 있으면 절로 별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답니다. (....) 포츈텔러 님// 전력으로 동감합니다. orz 로알드 박★ 님// 감사합니다. ^^

    • 2006-08-06 17:40: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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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츈텔러//맞아요.. 전 다른 분들이 쓰신 글을 보고 아,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던데... 제 상상력이 부족한거겠죠?

    • 2006-08-06 14:31: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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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음음.. 뭐랄까, 은근히 나만 이런 소제를 생각했을건데! 라고 열심히 쓰고나면, 다른 분들이 쓰신 비슷한 주제의 글이 많이 보이는 건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D

    • 2006-08-03 23:41: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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