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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옥상

  • 작성자 블루스
  • 작성일 2006-04-22
  • 조회수 656

 

[단편]옥상


“장래희망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하게 방 안을 울렸다. 그의 지루한 대답은 그렇게 계속되었고 그는 회사의 옥상 관리인이 되었다. 그가 앉은 건물 창 밖으로는 두꺼운 코트를 코 밑까지 꽉 껴입고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승용차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사거리 아래에서 흩어졌다. 전조등의 눈동자는 어둑어둑한 도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마침내 저 멀리까지 멀어져만 갔다. 그의 면접이 끝나갈 때 면접관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에게 말했다. “당신에겐 그 어떤 꿈이나 일말의 희망조차 없는 것 같군요. 그렇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우리 회사 건물의 옥상 관리직을 맡기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며 문을 나설 때 그는 문지방 앞에 서 있던 한 늙은 남자에게서 녹슨 열쇠를 받았다. 살짝만 닿아도 쇳가루가 묻어나는 열쇠 두 개가 둥근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잡음이 끓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은 목소리로 그것이 옥상 입구와 그 안에 있는 관리소의 열쇠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낡은 코트를 오른쪽 어깨에 걸친 모습 그대로 회사 정문을 나섰다. 왠지 모르게 외로운 향기를 풍기는 작은 체구의 노인을 바라보던 그는 계단을 오르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두 명의 안내인은 그에게서 열쇠를 받아 옥상의 문을 열었다. 홀연히 나타난 그 장소는 말 그대로 옥상이었다. 다른 건물과 여타 다를 바가 없는 낡고 외로운 옥상. 높게 쳐진 난간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고 그 위로도 초록빛 철조 벽이 옥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저 구석에는 수도꼭지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힘겹게 서 있었고 난간 옆으로 길게 쳐진 줄 위로는 이불 몇 장과 베게가 매달려 있었다. 옥상을 살펴보던 그의 뒤에 대고 안내인들은 “우린 이만 가요.”, “여기서 잘 사시게.”라고 각각 한마디 하며 등을 돌려버렸다. 문이 닫히고 그 외로운 공간에는 한 사람만이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일종의 감금이라고 생각했다. 옥상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그는 옥상 관리인인 이상 이곳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빨랫줄에 매달린 낡은 이불과 베게는 그를 더욱 두려움에 몰아넣었다. 당장에 이 더럽고 지저분한 감방 안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안내인들은 계단을 오르면서 오늘부터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는 안내인들이 준 인쇄지를 꺼내 글자를 읽었다. ‘옥상 관리인의 일과’라고 써져있는 그 종이에는 갖가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옥상 관리인은 7시 전에 기상한 후 옥상 바닥을 청소해야 하고, 가져온 짐들을 ‘이주’직후에 관리실 안 서랍장에 잘 정리해야 하며, 관리실은 관리인의 방이지만 다음 관리인이 무난히 사용할 수 있도록 청결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 대략 이런 식으로 적혀진 목록을 읽고 난 후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던 것은 그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며 이 일을 맡은 이유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것이 싫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노인에게서 열쇠를 넘겨받은 뒤였다. ‘옥상 관리인의 일과’ 맨 마지막 항에는 명확하게 ‘자신이 정식으로 물려받은 열쇠를 정식으로 다른 이에게 물려주지 않는 한 관리인은 옥상 관리직을 그만둘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운명의 족쇄에 사로잡혔음을 깨달았다. ‘이 말도 안돼는 규정을 어기면 분명히 법적 제제를 받게 되겠지.’그는 생각했다. 그는 적어도 진짜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철창이 있는 감방보다야 이곳이 낫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회사 식당에 내려가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칙칙한 분위기는 청소를 하면 금방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비가 내려도 가려줄 관리실이 있고,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관리실의 창문을 통해서 밤하늘의 별도 볼 수 있을 테고-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그는 계속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이곳이 자신에게는 최상의 보금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우울한 생각과 불신은 큰 반전을 맞았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게 평화를 주십시오.’

  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를 처음 맞은 것은 깊은 어둠이었다. 눅눅한 얼룩이 진 커튼에 가려져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밖에서 경험하지 못한 어둠에 움찔하다가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려 얼른 불을 켰다. 커튼을 걷자 한층 더 환해졌고 그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확 드러났다. 관리실 안에는 작고 낡은, 책장이 딸린 목조 책상과 의자, 먼지가 쌓인 TV와 여기저기 뜯겨진 흔적이 보이는 노란 소파가 있었고 소파 옆에는 무릎에 간신히 닿을 법한 작은 하얀색 쓰레기통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스탠드가, 책장에는 낡은 성서와 라디오가 얹혀져 있었다. 그는 소파 위로 털썩 주저앉아 방 벽에 진 검을 얼룩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위를 바라보니 시계가 있고, 바늘은 멈춰있었다. 그는 방을 정리하기 전에 리모콘을 찾아 TV를 켰다. 어두운 방 안에 곧이어 ‘틱’하는 소리가 울리며 밝은 화면이 비추었다.

수많은 얼굴들이 화면 위로 비추었다. 유명 연예인이니 재미있는 영화니 하지만, 세상사와는 어지간히 인연이 없던 그는 그들이 지껄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브라운관 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리는 수 시간 안에 끝났다. 관리실의 문 옆으로 그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쌓였고 그중에는 바늘이 멈춘 시계도 있었다. 정리를 끝내고 그는 자신을 안내한 사원들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이나 바깥에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던 그가 지쳐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의 시계는 이미 저녁 11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소파 위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는 잠들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감은 눈꺼풀 속으로는 자신의 앞을 지나간 작은 노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내게 무슨 조언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는 잠들기 직전에 그렇게 생각했다. 위축된 노인의 어깨를 연상하며 그는 잠들었다.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되면, 언젠가 나조차 그 사람처럼 변하지 않을까?’ 그는 꿈속에서 중얼거렸다.

다음날 아침, 파란색으로 물든 세상이 옥상 아래로 내려다보였고 새벽의 도로는 한적했다. 추위에 도망치던 인파는 모두 제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간 듯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멍한 그의 눈은 저 아래를 그곳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계라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손에는 ‘옥상 관리인의 일과’가 들려있었다. 그는 그것을 접어 비행기를 만들었다. 작은 종이비행기는 그의 손가락 끝에서 떠나 공허한 하늘을 날다가 새벽바람에 힘없이 추락했다. 옥상 아래 세상의 수심 속으로 빨려 들어간 비행기를 찾기 위해 그는 몸을 던졌다. 열어놓은 관리실의 창문 안으로 몰아친 바람이 일기장의 페이지를 마구 넘겼다.


“내가 이 옥상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찾은 희망은 이곳에 있으면서 내가 저 세상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이전까지 그 어떤 희망이나 꿈조차도 없이 살아왔던 내게 새로운 삶을 준 내 면접관님께 감사드린다. 내 새로운 꿈은 이 옥상보다도 높은 저 하늘 위에서 일해 보는 것이다.”


텅 빈 옥상 위로는 바람만 불었다. 이름모를 새 한 마리가 저 먼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의 열쇠를 가지고 다시 날아올랐다. 한 순간 ‘푸드득’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트리고는 다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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