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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추(介子推)

  • 작성자 동녘 담(東垣)
  • 작성일 2006-01-06
  • 조회수 264

※참고: 이 소설에 나오는 지명, 인물 등의 이름은 실제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Prologue

 

 서울시 종로경찰서 강력 2반 형사 윤동수. 이게 내 직함이다. 강력 2반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난 항상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와 함께하며 산다. 남의 목숨, 재산을 갈취하는 파렴치한 범인들을 잡아서 조서를 써서 제출할 때 마다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보람보다는 씁쓸한 느낌과 함께 조서를 작성하는 일이 빈번하다. 몰라볼 정도로 자살율이 높아져 우리 2반에 들어오는 사망 사건 넷 중 하나는 반드시 자살이 되었다.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적혀있다. 실연 때문에, 카드빚 때문에, 취업이 안되서 등등……. 나이 드신 분들은 고독감을 못이겨 자살하시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일을 왜 굳이 하려고 드는지 난 항상 자살한 사람들의 시체를 보며 연민의 정과 허탈감을 동시에 느꼈다. 얼마나 삶이 고달펐으면 그랬을까……. 생명이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도, 어리석게도 자살을 택하다니……. 그렇게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고는 조서에 마지막 도장이 찍히고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면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차츰 잊혀져 갔다. 그러나 아직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 노인의 자살 사건이 있다.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오후 8:15 (D-4)

 

 저녁을 먹으며 야근하던 동료 형사인 김현종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도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독거 노인들의 자살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어제 서울시 동대문구에서도 독거 노인 양모 할아버지가 천장에 목을 매달아 숨졌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할아버지의 유서에는 '아무도 내게 말동무가 되어주지 않는다. 너무 외롭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양모 할아버지가 고독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이런 독거 노인들의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은 이번 해 들어 서울시에서만 벌써 20여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차피 죽어나는 건 항상 우리 경찰이구만." 김 형사가 말했다.
 "아, 그런 걸 불평하기 전에 노인들이 자살 안하게 제도부터 바꿔야지. 생각해 봐, 나이 드신 분들이 소일거리 있고, 말동무 되어주는 사람들 있으면 왜 자살하겠어? 국가가 노인 문제에 조금만 더 신경 써야 저런 일이 없어지지."
 "하이고, 나라가 그럴 돈이 있으면 우리 월급이나 더 올려줬겠다. 그러나 저러나, 일요일과 광복절에 뭐 할거야? 자네 쉬잖아?"
 이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김 형사는 일하는 것은 잘 몰라도 노는 것 만큼은 종로경찰서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좋아하고 또한 열심히 한다. 마치 어떤 회사 직원이 일의 능률은 떨어지지만 휴가는 꼬박꼬박 다 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글쎄... 뭐 아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롯데월드나 한 번 같이 가줘야지."
 "흐흐흐, 모처럼의 연휴인데 쉴 수도 없겠구만."
 뉴스에서는 어느새 광복절 특사 이야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정부는 이번 제 6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불법대선자금 관련 정치인, 공안사범과 선거사범, 생계형 일반형사범 등 모두 422만 명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과 모범 재소자 가석방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참, 김 형사. 2년 전 쯤에 자네가 잡아 넣은 그 편의점 강도 있잖아. 광복절 특사로 나간다며?"
 "정확히는 1년 반이야. 참 나, 모처럼의 광복절에 기분 잡치게 그런 놈이나 광복절 특사로 내보내주고……. 생계형 일반형사범이라지만 정말 치밀하고 빨랐던 놈이었어. 만약 그 놈이 은행에 갔으면 금고를 완전히 털었을 걸? 편의점 강도짓하자고 무작정 뛰어든 것도 아니고 어떤 직원이 언제 오는지까지 파악을 했더라니까."
 "그 인간이 어떻게 잡혔지?"
 "캬, 그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지……."

 



2004년 2월 4일 수요일 오전 11:05

 

 "어서오세요." 편의점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은 얼굴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하고 약간 커보이는 손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워낙 날씨가 추웠기에 여직원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어, ☆☆(담배 이름) 한 갑 주세요."
 "잠시만요." 직원은 카운터 뒤에 있는 담배를 꺼내기 위해 잠시 몸을 돌렸다.
 뒤돌아서 손님에게 담배를 주려는 순간,
 "여기……. 헉! 왜, 왜 이러세요……?"
 손님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고 총구는 여직원의 이마를 겨냥하고 있었다.
 "계산대 열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열어!"
 직원은 겁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벌벌 떨며 계산대를 열었다.
 "좋아. 손 들고 입은 닥치고 있어!"
 '편의점 강도야!' 라고 직원은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워낙 인적이 뜸한 곳에 위치한 편의점인데다가,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오전 11시였기 때문이다. 강도는 계산대의 지폐를 모두 빼서 자기 가방에 넣은 뒤,
 "경찰에 신고하면 죽어!" 하며 얼른 달아났다.
 CCTV에 찍힌 강도가 떠나는 시간은 11시 9분. 강도는 단 4분만에 재빠르게 현금 150만원 상당을 훔쳐 달아났다. 그의 이름은 박정길. IMF 사태 이후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다가 겨우 월세 단칸방을 구했으나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제 갓 30을 넘긴 청년실업자였다. 그의 단칸방은 한 건물의 4층에 있었다. 그는 계단을 오르면서 돈을 세고 있었다.
 "21… 22……."
 그 때 박정길의 돈 세는 것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여보게 박군. 오랜만일세. 일자리라도 구했나?"
 박정길의 아랫층에 사는 이씨 성 가진 노인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물론 나야 안녕하지……. 근데 그건 웬 돈인가? 한 30만원은 됨직해 보이는데?"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진짜 일자리라도 구했나?"
 "네, 네……. 월급도 많이 주는 좋은데에요……."
 "그럼 지금 일을 하고 있어야지, 왜 집에 올라가는가? 내 박군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어디서 훔친 돈인가?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라네."
 "아… 아닙니다. 진짜 회사에서 준 돈입니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십시오."
 "박군!"
 박정길은 화들짝 놀라며 돈 다발을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 노인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말했다.
 "내 박군을 항상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착한 청년으로만 알고 있었거늘,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훔친 돈이 맞는가?"
 "……." 이 노인의 서슬퍼런 추궁에 박정길은 변명을 하지 못했다.
 "맞는 모양이구만……."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 뒤, 이 노인은 박정길에게 자수를 권했다.
 "나랑 같이 자수하러 가세. 자수하면 형량도 가벼워질테니까. 내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일세."
이 노인의 얼굴은 이제 한층 부드러워졌다.
 "……."
 대답없는 박정길을 보자 이 노인은 다시 역정을 내며,
 "박군! 그깟 돈이 소중한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얻어서 무엇하겠는가? 내 지금까지 80이 넘도록 살아왔지만 박군과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며 살다가 뒤끝이 좋은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네. 박군! 자네의 예의 바르고 착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는가? 자네가 이럴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닌 줄은 알고 있네. 자네에게 실망했어."
 "죄송…합니다. 돈에 미쳐서 그만……. 집주인도 방을 당장 빼라고 하고……." 박정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쯧쯧……. 도대체 몇 달치나 월세가 밀렸길래?"
 "거의 넉 달치가 밀렸습니다. 도저히…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박정길은 거의 울고 있었다.
 "음……. 넉 달치라고?"
 "예……."
 "내가 내줌세. 대신에 나랑 같이 경찰서에 가세나. 아마 당분간은 징역살이를 해야할 것이야. 자수를 하면 경찰에서도 선처를 해주겠지."
 "예……. 감사합니다……."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오후 8:40 (D-4)

 

 "그러니까 그 이 노인이 박정길이를 데려다가 설득해서 자수시킨거다?" 나는 말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냐. 그 편의점 직원이 경찰에 곧바로 신고해서 내가 현장에 출동했지. 인상착의는 선글라스랑 마스크를 썼다는 것 밖에 알 수 없었지만, CCTV로 놈이 향하는 방향을 알 수 있었어. 워낙 인적이 뜸한 곳이라 편의점 문을 나서자마자 어느 쪽으로 튀는지에 따라 어디 처박혀 사는지 다 훤히 알 수 있던 곳이었거든. 누상동이라 했던가? 거기는 단독주택이랑 조그만한 단칸방 월세집들 밖에 없어."
 "그래서?"
 "CCTV에 찍힌대로 놈의 뒤를 밟았지. 그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마다 인상착의를 설명해주며 목격자를 찾았어. 그러다가 그 이 노인이 그 놈을 데리고 자수하러 오는 길에 마주친거야. 그 놈 주머니에서 마스크, 선글라스, 계획서 다 나왔고, 자기 혐의도 다 인정하더라구."
 "음……. 그럼 자네가 한 일은 거의 없네? 그냥 서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제발로 왔다는 거 아냐? 하하하……."
 "뭐…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네? 그런데 말이야. 그 노인이 진짜 착하시고 80이 넘으셨는데도 정정하셨어. 알고보니 거의 매달 박정길이를 면회를 가셨더라구."
 "그래? 그런 분은 자살 같은 거 안하셔서 우리 죽어나지 않겠지?"
 "뭐야? 하하하……. 이 사람, 은근히 말꼬리 잡고 돌려대는구만."
 김현종 형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다.

 



2005년 8월 14일 일요일 오후 10:24 (D-2)

 

 TV 드라마를 보고있다가 갑자기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내일 롯데월드 갈거죠?"
 "응~."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아들 녀석이 항상 옆집 아이가 매주 그 애 아버지가 애를 데리고 놀이동산을 가는 걸 매우 부러워했기에 그동안 못 놀아준 것이 미안했다. 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처럼의 연휴에는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는 아버지로서의 사명감이 들어서 피로는 까맣게 잊은 채 아들과 같이 놀이동산에 가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잠시동안 드라마를 보다가,
 "아빠!  내일 태극기 달아야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벌써부터 국경일에 태극기 다는일에 관심을 가지다니…….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어떻게 알았니?"
 "학교 선생님이 그러랬어요."
 "그랬구나. 내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날이기 때문에 태극기를 달며 기뻐해야 한단다."
 "우리나라가 일본 거였어요?"
 "그랬단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 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자기네 땅으로 만들었단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그러니까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룩했단다."
 "와~ 그러면 정말 기쁜 날이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직접 태극기 달아볼래요."
 "하하하, 알았다. 윤씨 가문에 애국자 났네, 애국자 났어. 하하하……. 그러려면 오늘 일찍 자야겠지?"
 "네~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2005년 8월 16일 화요일 오전 11:00 (D-Day)

 

 "윤 형사! 사건이야, 같이 가자구!" 김현종 형사였다.
 "어… 그러지……."
 "어디 아파? 평소에 활달하던 모습은 다 어디갔어? 이거야 원… 쯧쯧……."
 "글쎄……. 몸이 조금 피곤하네. 어제 그냥 쉴 걸 그랬나……. 근데 웬일이야? 항상 사건이 터지면 내가 자네를 끌고 나갔는데, 이번엔 내가 끌려나가네……."
작게 웃음만 지어보이며 말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김 형사의 얼굴도 흐릿하게 보였다.
 "그런건 상관없고, 얼른 나와. 내가 운전할테니까. 그렇게 피곤해가지고 운전이나 하겠나?"
 "아함~. 어딘데?"
 "종로구 누상동!" 순간 나는 잠이 깼다.
 "뭐? 지난번에 자네가 얘기한 편의점 강도가 사는데 말이야?"
 "기억력 한번 좋구만. 그래. 게다가 그 놈이 살던 곳에서 사건이 터졌어."
 "무슨 사건?"
 "사람이 죽어있대. 노인이신데, 신원은 아직 파악이 안됐어."
 "혹시, 그 이 노인이라는 분 아닐까?"
 "아직 모른다니까. 그 곳에 사는 노인이 어디 한두명이어야 말이지."
 "그럼 얼른 가보자고."
 현장은 조그마한 3층 단칸방이었다. 그러나 단칸방 치고는 안의 물건들은 결코 단칸방 신세의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안마 의자와 고풍스러워 보이는 글씨 작품 한 점, 화려한 장식장을 봐서는 단칸방에 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 형사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이호섭 경사. 피해자는?"
 "아직 신원파악 중입니다. 다만 팔순을 넘기신 듯 보이는 노인이라는 것 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는 야윈 체구의 노인 한 분이었다. 눈을 감고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 노인이 맞아?" 나는 물었다.
 "…맞는 거 같네……." 김현종 형사는 좀 말을 더듬었다.
 그 때 감식반이 들어왔다.
 "피해자 신원파악이 끝났습니다. 이름은 이정식. 나이 85세, 1920년생입니다."
 "사인(死因)은?" 내가 물었다.
 "독극물 같습니다. 피해자 손톱과 얼굴색 변색 등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시안화칼륨인 듯 보입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있나?" 김 형사가 물었다.
 "피해자 손에 시안화칼륨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병이 있었습니다. 자살일 확률이 높습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이번엔 내가 물었다.
 "오늘 새벽 5~6시 경입니다."
 "목격자는 있나?"
 "저 쪽의 독거 노인 돕기 자원봉사자가 피해자를 발견했습니다. 목격자 이름은 김윤미, 22세입니다. 항상 말동무가 되어 드리러 왔었는데 오늘 아침 9시경에 와보니 피해자가 죽어 있어서 신고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 형사는 목격자랑 얘기 나눠 봐."
 "알았어."
 나는 이호섭 경사와 감식반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유서는 나왔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생활로 봐서는 매우 풍족해서 도저히 자살할 분의 집이 아닌데……. 어쨌든 사망자의 모든 기록을 다 뒤져봐. 방을 보아 하건대 재산을 노린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격투나 별다른 상해의 흔적이 없어 자살일 가능성이 유력합니다만……." 감식반이 말꼬리를 흐렸다.
 "단 0.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난 생각하네. 내 지시에 따라주기를 바라네."
 "예!"
 "피해자 연고자에 대한 기록은 지금 있나?"
 "에……. 기록상 친척은 커녕 처자식도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피해자 부모도 모두 죽었고요."
 "하기야 80 넘기신 분이 이렇게 단칸방을 꾸미면서 사시는데 처자식이 어디겠나……. 아, 그리고 여기 윗층에 살던 박정길이라고 며칠 전 특사로 출소한 놈 있어. 피해자가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수소문해서 참고인 자격으로 데려와 봐."
 "예!"
 "그리고 시체와 모든 증거물품 당장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현장에서 빠져 나오니 김현종 형사는 이미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목격자 심문 끝났어?"
 그는 잠시동안 담배 연기를 뻐끔 뻐끔 내뱉다가,
 "응……. 목격자는 한 서너달 전부터 자원봉사를 나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는군."
 "뭐 별다른 혐의점 같은 건 없어?"
 "전혀……. 피해자에 대한 원한 관계도 없고 부유한 집안 딸이기 때문에 아무런 모자람 없이 지내는 여대생이야. 물증은 커녕 심증도 없어."
 "참, 그리고 목격자가 이런 이야기도 하더군.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난 이분의 자살 동기를 전혀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이야기인데 그래?"
 "대충 그분이 뭐 독립군이었고, 역사 왜곡 반대 운동 시위를 가끔 하신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왜 하필 광복절 다음 날 자살하셨을까?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뜻 깊으신 날이었을텐데?"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2005년 6월 25일 토요일 오전 9:13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난 허겁지겁 방안으로 들어갔다.
 "학생, 오늘은 좀 늦게 왔구만." 할아버지가 자상하신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죄송해요. 뭐 좀 챙길게 있어서……."
 "뭐, 상관 없으이. 나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난 독거 노인 자원 봉사자로써 매주 2회 이 분의 집을 찾아간다. 이 곳은 종로구 누상동의 조그마한 다세대 주택의 단칸방이다. 이 분이 악착같이 벌으신 재산이 꽤 된다고 하시지만 왜 굳이 이런 단칸방에서 사시는지 이해가 잘 안됐다. 이 분은 독거 노인으로써 근 20년간을 혼자 생활하셨다고 한다. 웬만한 가정주부보다도 가사일 솜씨가 뛰어나시다. 음식은 내가 만들어 드려야 하지만, 거의 내가 얻어먹는 수준이다. 요리 실력이 나보다 훨씬 좋으시기 때문에 첫날에 내 서툰 요리 실력을 보시고는 안쓰러우셨는지 앞으로 요리는 당신께서 직접 하시겠다고 하셔서 지금도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봉사활동 온 사람이 오히려 얻어 먹는다는 건 무언가 석연치 않아 항상 식사시간을 피해 방문한다.
 "할아버지, 아침은 잘 잡수셨어요?"
 "잘 먹었네. 오늘은 그냥 밥이랑 김치랑 대충 그렇게 때웠지. 한여름엔 동치미 국물 맛이 일품이거든."
 "와, 맛있겠다……."
 "갈 때 한 봉지 싸 가지고 가게나. 우리 아랫집 사는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거일세."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 나 혼자 먹기엔 너무 많네."
 "네, 감사합니다. 참 그런데 항상 궁금한 게 있었어요. 혹시 이런 질문을 여쭈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이길래? 서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며 지낸게 거의 두 달인데 나와 학생 사이에 허물이 있나?"
 "재산이 꽤 되신다고 들었어요. 근데 왜 꼭 이런 단칸방에서 사세요? 좀더 넓은 집에서 사시지 않고."
 "글쎄……. 나한테 더이상 공간이 필요없어서 그렇고, 또 난 종로가 맘에 들어서 그러네. 그리고 내 돈은 날 위해 쓰기 보다는 더 좋은 데 쓰고 싶기 때문이지. 근 10년간 산 것들 중 가장 비싼게 아마 지난달에 산 저 안마의자 일게야. 하하하……." 할아버지는 베란다 근처에 있는 안마의자를 가리키시고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하셨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고 사신다. 벌써 팔순을 넘기신 것도 그 웃음의 덕택일지도 모른다.
 "자, 오늘은 아마 25일이지?"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네. 6월 25일이요."
 "오늘은 내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지. 지난 번에 학생이 들려줬던 국경초소 총기난사 사건 이야기에 대한 보답일세. 딱 시흔 다섯해 전에 이 땅을 폐허로 만든 전쟁이 시작 됐었지. 난 처음에 인민군이었어."
 "예?"
 "괜찮아.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근데 내가 원래 평안도 사람이라 인민군이 될 수 밖에 없었지. 학생,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고 있지? 내가 그때 인민군으로써 인천을 지키고 있었지. 30을 갓 넘긴 청년 장교 였어. 9월 즈음 해서 UN 연합군이 딱 인천 앞바다에 상륙하는 거야. 그 노도와 가은 공격 앞에 난 결국 포로로 잡혔지. 끌려가면서 난 참 비참한 광경을 봤어."
 "혹시 민간인 학살이었나요?"
 "그렇다네. 인민군은 점령지의 양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며 사상 교육을 시켰지.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시민들은 거의 일자무식이었고, 인민군 병사들 자체도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지. 사상 교육은 있으나 마나였네. 그리고 식량을 받아간 사람들을 모두 주민 명부에 올려놓았고. 그런데 국군이 인천을 점령하자 그 주민 명부를 보고 식량을 받아간 모든 사람들을 끌어다가 총살하거나 바다에 수장(水葬)시켰지. 단지 인민군에게 사상 교육을 받고, 양곡을 받아갔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도 듣지 않고 노인, 부녀자, 어린이 등을 닥치는 대로 '이 빨갱이 새끼!' 라고 외치며 학살을 했네. 당장 전쟁 때문에 자기네들의 삶의 터전이 폐허가 돼서 살 길이 막막헀는데, 점령군이 모이라고 해서 모이고 쌀 몇 말 씩을 나눠주겠다고 하자 얼씨구나 하며 그걸 받아간 게 죽을만큼 큰 죄인가? 이런게 자본주의라면 공산주의가 백배 낫다고 난 생각했었네. 물론, 공산주의는 잘못된 사상이긴 하네만."
 "6·25 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근데 포로로 잡히셨다면서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글쎄……. 운이 좋았지. 연합군은 인민군 포로들에게서 군사 기밀이나 정보를 고문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캐낸 뒤에 처형했지. 투항을 받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 그런데 난 다행히도 연합군의 국군 대대장 중에 내가 상관으로 모시던 분이 계셨지."
 "아, 광복군에서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지난번에 말해 줬듯이, 난 광복군 소위였지. 그 대대장님이 날 따로 부르시더니, '자네가 진심으로 인민군이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네. 어떤가? 국군으로 투항하는 것이?' 라고 물어보셨지. 난 이렇게 대답했네. '인민군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빨갱이로 몰아 선량한 시민들을 죽이는 짓을 하란 말입니까?' 자칫하면 내 목숨이 위험한 말이었지. 그러나 그 분은 날 잘 알고 계셨기에 이렇게 답하시더군. '사상범 처형 장면을 본 모양이구만. 이 소위, 그런게 바로 이념일세. 같은 피를 나눈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게 이념일세. 양민 학살은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닐세. 그러나 상부의 명령이야……. 상부가 내가 자넬 이렇게 따로 부르고 대접하는 걸 알게 된다면 나와 자네를 당장에 죽일 것이야. 난 내 목숨을 담보로 해서 지금 자네를 살리려고 하는 걸세. 같이 광복을 위해 싸운 전우를 개죽음하게 만들 수는 없으이.' 난 한동안 침묵을 지켰었어. 그러자 그 분은 '이 소위, 이념은 잊어버리게. 자네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싸우자 이 말일세. 세계의 20여개국이 우리 국군 편을 들고 있네. 인민군은 소련의 지원을 빼면 거의 시체야. 어느 쪽이 이기겠나? 난 당연히 국군이라고 보네. 자네가 광복군으로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곘다고 서약했다면 나를 따라주게나. 이 전쟁의 빠른 종결,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난 생각하네.' 이 논리적이고 우국충정에서 우러나오는 설득에 난 반박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지. 난 이렇게 해서 국군이 되었으나, 얼마 안 가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에 걸려서 제대를 했어. 그래서 세월이 흘러 내가 여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지."
 "할아버지, 말씀 중에 끼어들어 죄송한데요……. 광복군이면 독립군의 일종인데, 그럼 국가 유공자세요?"
 "아니……." 할아버지는 한숨을 조금 내쉬며 다시 말을 이으셨다.
 "인민군 전력 때문에 거부당했어……. 좌익 혐의가 있었다고 인정을 해 주지 않더군. 당시 독립군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웠을 뿐이었는데……."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난 처음에 광복군이 되기 전에 18세의 소년의 몸으로 학도병으로 만주의 허허벌판으로 끌려갔었지.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독립군 기지에 가까스로 입대를 했지. 그 때에는 광복군이 아직 창설되지 않았고, 자유시 참변 때문에 독립군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있었지. 내가 입대한 부대도 군대라기 보다는 거의 피난민 수용소 수준이었어. 부대장은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전 부대원을 이끌고 임정(臨政)이 있는 충칭으로 향했지."
 "죄송하지만, 잠깐만요. 자유시 참변은 뭐예요? 임정은요?"
 "자유시 참변은 우리 독립군들이 서로 합류를 할 때 주도권 싸움 때문에 내분이 일어나 서로 죽고 죽인 사건을 말한다네. 임정은 임시정부의 줄임말이고. 아까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충칭에 도착하자 2년 정도 군사훈련을 받았지. 그리고 첫 광복군으로 임관이 되었어. 이후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독립군의 본래 목적인 자주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 할아버지는 목이 메인 듯한 소리를 내시며 말을 끝내셨다.
 나도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만." 정적을 깨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11시를 넘기고 있네요……. 그럼 전 학교 강의가 있어서 이만……. 안녕히 계세요.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뵐게요."
 "응, 살펴 가게나." 얼굴이 많이 어두워지신 채로 날 배웅해 주셨다.

 



2005년 8월 17일 수요일 오후 1:00(D+1)

 

 "윤 형사, 뭣 좀 나온 거 있어?" 김현종 형사가 뭔가를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응. 금융 기록과 국과수에 맡긴 증거물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왔어."
 "차례대로 말해봐, 아 자네도 이거 먹고. 점심 안 먹었지?" 샌드위치였다.
 "어……. 그러고 보니 식사도 거르고 수사를 하고 있었네."
 "항상 자네야 그렇지 뭐."
 "고마워. 먼저 금융기록인데, 재산이 한 2천만원 정도 돼. 그 외에 특별한 건 없고."
 "국과수는?"
 "사인은 시안화칼륨 중독. 피해자가 손에 쥐고 있던 병에는 피해자의 지문 밖에 없었어. 그런데 병이 꽤나 오래되었다더군."
 "무슨 소리야?"
 "그 유리병에 뭔가 제조일자 같은 단서가 새겨져 있었는데, 날짜가… 1943년 즈음이래.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뭔가 석연치 않네……."
 "국과수의 의견은 100% 자살이라고 사건 종결 시키래."
 "유서도 없는 자살이라……."
 "아 참, 그 박정길이 있지? 오늘 자진출두 하기로 했어. 자네가 좀 심문해봐. 참고인 자격이라는 거 잊지 말고."
 "응, 알겠네." 김현종 형사는 아직도 뭔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김 형사가 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 사건은 대체 뭐야. 자살도 아닌거 같고, 타살도 아닌거 같고. 참 나…….'
 너무 답답해서 서 밖으로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 때, 건장해보이는 체구의 청년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무슨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죠?" 뭔가 어눌해 보였다.
 "사건 참고인이요? 어떤 사건이신데요?"
 "종로구의 단칸방에 사시는 노인 한 분이 죽었다는 사건인데……."
 "뭐요? 그럼 박정길씨이신가요?"
 "예……. 제가 박정길입니다."
 "제가 그 사건 담당 형사입니다. 절 따라오시죠."
 난 사무실의 김현종 형사에게 그 자를 데리고 갔다. 그 자는 김 형사를 보자마자, 약간 긴장한 눈빛이었다.
 "오, 참고인 오셨구만." 김 형사는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봐, 김 형사.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내가 주의를 줬다.
 "알았어, 알았어. 서로 구면인 사람을 만나서 반가울 뿐이야."
 "박정길 씨 긴장 안하셔도 됩니다. 단순한 참고인 자격이니까 조서만 꾸미고 가시면 됩니다."
 "예……." 조금 안정된 듯 보였다.
 "그럼 김 형사 부탁하네."
 "맡겨 둬."
 난 그길로 사무실을 빠져나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2005년 8월 17일 수요일 오후 7:00(D+1)

 

 오늘 내 앞의 책상에 놓인 것은 짜장면이었다. 매주 수요일 마다 항상 맛있는 음식을 살 수 있도록 반장님이 허락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무 젓가락의 흰 봉지를 뜯는 순간, 김현종 형사가 다가왔다.
 "참고인은 돌려 보냈어?" 내가 물었다.
 "응. 그냥 단순한 알리바이 확인과 조서만 꾸몄어."
 "알리바이는 의심 가는 거라도 있어?"
 "100% 완벽한 알리바이야. 목격자가 5명이 넘고. 출소한 날에 친구들과 같이 친구 집에서 술자리를 벌이다가 모두 잠들어 버렸대. 정확히 사건 당일 오전 5시부터 10시까지 함께한 사람이 5명이야."
 "그럼 국과수 말대로 자살인가?"
 "그렇게 종결 짓자고, 윤 형사."
 "알겠어."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 이정길 노인의 사망 사건은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다.

 



2005년 8월 19일 금요일 오전 8:00(D+3)

 

 출근을 해보니, 내 책상 위에 웬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겉봉에는 '윤동수, 김현종 형사님께 - 박정길' 이라고 적혀있었다. 왜 박정길이 편지를 보냈을까 궁금해하면서 난 편지 봉투를 뜯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정식 옹 사망 사건 조사 담당 형사 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전 박정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주택 경비원 분이 고인(故人)께서 제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물건이 있었는데 그걸 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고인께서 제게 남긴 유품은 그냥 단순히 '介子推 抱木燒死' 라고 적혀있는 쪽지였습니다.
 이게 혹 사건 조사에 참고가 되실까 해서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고인의 유산은 고인의 변호사가 고인 생전에 고인으로부터 직접 들었던대로 전액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되었습니다.
 박정길 배상'
 나는 김현종 형사에게 이 편지를 보여줬다
 "흠, 개자… 이건 모르겠고……. 포목…이것도 모르겠고… 나 원참……. 사?"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이 노인이 박정길한테 죽기 전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거면 무슨 유언장 같은 것일까?"
 "글쎄……. 어차피 종결된 사건이잖아. 그냥 잊어버려."
 "에이, 뭐 별 말 아니겠지. 한자로 쓰여져 있는 거 보면 무슨 인생에 관한 충고나 명언 같은 거겠지."

 



2005년 8월 21일 일요일 오전 11:07

 

 "아빠, 아빠~." 오늘은 오랜만에 푹 쉴려고 했더니 아들 녀석이 또 보챈다.
 "왜……?" 좀 피곤해 보일려고 일부러 늘어지게 말했다.
 "여기 이 글자 좀 읽어주세요. 나 한자 못 읽잖아요."
 "어떤 글자인데 그래?"
 "여기……." 아들 녀석이 자기 학습지에서 한자가 적혀있는 것 처럼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흐릿한 눈으로 그 글자를 여러번 쳐다봤다. 그러다 눈이 잠시 맑아지는 순간 그 글자를 보고는 잠이 확 달아났다.
 '介子推의 抱木燒死'
 "이 글자……. 어디서 나온 글자냐?
 "내 한자 학습지 중 한식(寒食)이라는 날이 왜 생겼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한자를 배우게 해주는 데서 나왔어요."
 "한식……이라고?"
 "네."
 한식. 그건 분명 고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두 번째 패자(覇者)인 진 문공(晉 文公)이 만든 날이었다. 진 문공은 자신 왕위에 오를 때까지 방랑생활을 하던 19년 동안 문공을 보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충신, 개자추(介子推)에 대한 포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개자추는 그냥 조용히 노모를 모셔다가 면상산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진 문공은 뒤늦게 개자추에 대한 포상을 까먹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나섰다. 결국 면상산에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어 친히 면상산으로 나아가 개자추를 찾으려 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를 않자, 진 문공은 다급한 마음에 면상산에 불을 질렀다. 불을 지르면 뜨거워서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이 다 꺼진 이후, 개자추는 나무를 끌어 안고 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를 두고 후세의 사람들은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고 했다. 개자추가 죽은 것을 슬퍼한 문공은 앞으로 개자추가 죽은 날에는 불을 쓴 음식, 즉 화식(火食)을 먹지 말고 찬 음식, 즉 한식(寒食)을 먹으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였다.
 이 노인은 왜 박정길에게 '개자추의 포목소사'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난 나름대로 이 노인이 박정길에게 남긴 일곱 글자를 곱씹어 보았다. 그 분은 청년 시절 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나라를 위해 독립군 등으로 싸우셨다. 그러나 국가는 그를 모른 체 했다. 이런 점에서 그 분은 개자추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노인과 개자추 나라를 위해, 주군(主君)을 위해 모두 목숨을 바쳤으나, 나라와 주군은 그 둘의 공을 인정해주지 않았다.그 분은 자신이 독립군 시절부터 지니고 다녔던 독약으로 자살을 하셨다. 아마 적군에게 붙잡힐 때를 대비해 부대에서 나눠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왜 하필 광복절 다음날 새벽, 그 60여년간 묵혀뒀던 약병의 뚜껑을 열으셨던 것이었을까?

 


Epilogue
2005년 8월 15일 월요일 오후 8:17 (D-1)

 

 "친일파 이재극의 후손 김모 씨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15000여m² 상당의 토지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김씨는 1999년에도 경기 포천군의 2000여m², 하남시의 660여m²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2000년 2월 승소했습니다. 김씨의 시조부인 이재극은 왕실의 종친으로서 궁내 동정을 친일파에게 알리는 등의 방법으로 을사늑약 체결에 협조하여 경술국치(한·일 합방) 이후 일본 천황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 이왕직장관에 임명됐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토지반환 소송은 지금까지 23건에 이르고 있으며 확정판결이 난 16건 중 절반에 가까운 8건이 원고의 승소 또는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기자가 처음보다 한층 격양된 목소리로 보도하고 있었다.
 한 단칸방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은 조용히 손때가 많이 탄 조그마한 갈색 유리병을 서랍장에서 찾아 꺼내 들었다.

동녘 담(東垣)
동녘 담(東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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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개자추는 소설을 자세히 읽으시면 나올텐데요? 10번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2006-01-13 01:54:2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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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개자추가 뭐에요?

    • 2006-01-11 19:04:0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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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틴에서는 내용보다는 표현기교 조금더 신경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어느 하나 떨어지면 안되겠죠. 초록불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표현기교 만으로, 내용 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수 없다네요 ;ㅁ;

    • 2006-01-07 20:53:0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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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서정적 글쓰기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한 중학생이 겁없이 소설 한편을 올려봅니다. 표현 기교 등 보다는 내용을 잘 봐주십시오. 비평글만 쓰다가 글틴을 한 2~3달간 쉬면서 계속 준비해왔던 작품입니다.

    • 2006-01-06 01:03:3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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