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주세요
- 작성자 다이아
- 작성일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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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22
맛있겠다.
세연이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 마라탕집에 온게 벌써 스무 번 째인데 이곳이 새롭게 느껴졌다.
동생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윤지 참 안됐어. 초딩밖에 안돼서 배탈이나 나고. 고작 초딩 2학년이 말이야.
그러자 다은이가 말했다.
누구나 배탈은 날 수 있어. 윤지는 평소에 뭘 워낙 많이 먹었으니 배탈이 날만도 해. 우리같은 5학년도 많이 먹으면 배탈 날걸?
세연이는 알아서 생각하라며 먼저 들어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이 마라탕집의 엄청난 인기답게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어찌나 많은지 우리집의 비좁은 다락방에 감금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했다. 우리 셋 모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답답함을 느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직원들도 많이 바빠 보였다. 숨 한 번 제대로 쉴 틈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한테 이리저리로 떠밀리면서 간신히 카운터로 가 주문을 했다.
혹시 기억나?
뭐가?
내 말에 다은이가 되물었다.
우리가 주문할 때마다 윤지가 옆에서 '마라탕 주세요'라고 했었잖아.
그 말에 세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늘 윤지가 같이 왔으면 틀림없이 그 말을 했을 거야.
그렇게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했다.
은정아, 뭐하니? 가서 마라탕 받아와야지. 응? 김은정!
내가 움직이지 않자 세연이가 소리쳤다. 아차, 벨이 울린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뛰어가서 마라탕을 받아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매워 보이네.
늘 그랬잖아.
국물을 한 모금 마셔보았다. 단계를 맞춰놔서 그런지 너무 맵지도 않고 적당히 칼칼했다.
맛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가는 맛이야.
우리는 10분도 안 되서 마라탕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워갔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집에 혼자있는 윤지가 생각났다. 배탈나서 아무것도 못 먹고 배고파하는 윤지가. 갑자기 마라탕이 맛없어졌다.
난 그만 먹을게 남은 건 너희 먹어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연이와 다은이도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자기들도 배부르다며 일어섰다.
곧장 집으로 달려갔더니 윤지는 잠들어 있고 조용했다.
그래, 피곤할 만도 하지.
나도 씻고 잠자리에 들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갖 생각들로 어지럽혀져 있었고 동시에 질문도 수없이 떠올랐다.
해외출장에 가 있는 엄마가 윤지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윤지의 소식을 듣고 엄마가 바로 오겠다고 할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엄마한테 동생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엄마한테 말 못한다고 아빠한테 얘기하면 뭐가 달라질까?
난 언제까지 혼자서 동생을 돌볼 수 있을까?
뇌가 터질 만큼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더 떠올려보려는데 그만 잠들어 버렸다. 자면서도 질문이 떠올랐다.
왜 우리집 가족은 항상 동생과 나뿐인 걸까?
흐아아아~
하품을 하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창밖을 보았다. 날씨도 맑았다. 시계를 보았다.
으악, 늦었다!
친구들이랑 마라탕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나는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 먹고, 양치하고, 옷 입고, 머리 빗고, 신발 신고서 밖으로 나갔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린 덕에 그나마 일찍 도착할수 있었다.
좀 늦었네?
그러게. 왠일이야, 맨날 일찍 오더니.
그 순간 나는 아차 했다. 윤지한테 나갔다 온다고 말하는 걸 잊은 것이다.
에이, 몰라. 지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윤지 생각을 떨쳐내고 마라탕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지? 아, 아니다. 저기 나오시네.
직원 한 명이 작은 문을 열고 나왔다.
저, 아저씨.
조심스레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내 말을 들었는지 우리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나 대신 세연이가 질문했다.
여기 오늘 쉬는 날이에요? 왜 직원이 한 명도 없죠?
직원 아저씨는 이제 마라탕집 문을 닫을 거라고했다.
네?! 왜요?
그 아저씨 말로는 이집 마라탕에서 머리끈이 나왔다며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네에? 마라탕에서 머리끈이 나왔다구요?
그렇단다.
우리 셋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실 수가 있어요!
직원 아저씨는 더 얘기하자는 우리를 놔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아니, 꿈이어야 한다. 무조건 꿈이어야 한다.
이곳은 우리 윤지가 제일 좋아하는 마라탕집이다. 그런데 이곳이 문을 닫아버리면 윤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 모든 마라탕집에서 마라탕에 문제가 생긴다면 윤지는 영영 마라탕을 못 먹을 것이다. 마라탕집이 전부 문을 닫아버릴 테니 말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은 계속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가 망해버리면 안 되는데. 윤지에게 약속했는데. 배탈 다 나으면 제일 먼저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했는데.
다은이가 나를 위로했다.
마라탕집이 여기만 있는 건 아니잖아. 다른 곳을 찾아보자. 만약 마라탕집이 더이상 없으면 직접 요리해 먹어야지 뭐.
나랑 세연이는 말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요리를 못한다. 학교 쿠킹클래스에서 쿠키 만들었을 때도 나 혼자만 싹 다 태워버렸었다. 그러니 마라탕은 직접 요리하려다가는 아주 제대로 망칠 게 분명하다.
이제 어디서 마라탕을 먹지? 여기는 왜 갑자기 망해버린 거야? 여기 마지막으로 온지 좀 많이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여기 엄청 인기 많았던 곳인데. 데체 왜....어째서.........
다은아, 좀 찾았어?
아니, 아무것도 안 나와. 근데 확실하지는 않을거야. 요즘 인터넷은 믿을 게 못 되잖아.
그래. 어딘가에 다른 마라탕집이 있겠지. 이따가 만나서 더 찾아보자.
전화가 끊겼다. 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제 윤지와 함께 갈 마라탕집을 영영 찾을 수 없는걸까?
아니야,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윤지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누워있는 윤지의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꼭 마라탕집을 찾아내겠어!
심심했던 나는 일어나서 윤지 죽을 끓여주기로 했다. 물론 토핑 하나 없는 흰죽으로 말이다. 윤지는 배탈이 심하게 걸려서 이제까지 먹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못 먹고 내내 흰 죽만 먹고 지냈다. 약도 꼬박꼬박 먹고 있는데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었다.
윤지야, 언니 잠깐 나갔다 올게.
또? 어제도 나갔잖아. 언니 숙제도 많은데 요즘 밖에서 뭐하고 다니는 거야?
숙제보다 더 중요한 거.
그제야 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지 책상 위에알약 두 알과 흰죽 한 그릇을 놓아주고 밖으로 나갔다. 세연이와 다은이는 먼저 와 있었다. 우린 만나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마라탕집을 찾으러. 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찾아본다고 했어도 갈 곳은 결국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제일 먼저 근처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곳에 있는 마라탕집은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여기는 없어.
'근처 시내'에 줄을 그었다.
다음으로는 좀 더 넓고 큰 시내로 가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문을 연 마라탕집은 없었다.
여기도 없어.
넓고 큰 시내에 줄을 그었다.
골목길로 가보았다. 그곳은 마라탕집이 무수히 많았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죄다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줄을 그었다.
이 정도면 실패한 거 아냐? 벌써 세 곳이나 돌아다녔잖아.
무슨 소리야, 일어나. 아직 안 가본 곳 많아.
세연이는 다은이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조심스레 일어났다.
이번엔 마라탕 거리로 가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아예 출입이 불가능했다.
왜 출입금지라는 거지?
공사중인가 봐.
마라탕 거리에 줄을 그었다.
나는 포기하지 말자며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자고 했다. 그런데 세연이와 다은이는 힘들었는지 먼저 가 버렸다.
나 혼자서라도 마라탕집을 찾아낼 거야!
또 다른 곳을 찾으려는데 비가 왔다.
흥, 이깟 비쯤이야. 나한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빗속을 해매고 다녔다.
언니! 언니, 일어나!
뭐야, 시끄럽게.
나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았다. 윤지가 내 침대에 앉아있는 것이아닌가.
윤지야! 다 나은 거야?
그런 거 같아. 신기하지?
나는 속으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동생이 다 나았다. 이제 같이 마라탕을 먹으러......아, 바로 그것이 문제다.
나는 일단 친구들한테 윤지의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은정아?
다은이 목소리다. 내가 말했다.
윤지 다 나았어. 이제 마라탕 먹어도 될 것 같아.
나와 세연이, 다은이는 오후 2시쯤에 모여서 함께 마라탕을 만들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1시간쯤 기다리고 나서야 친구들이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다은이가 근처에서 마라탕 재료 사 갖고 가자고해서.
내가 다시 물었다.
뭐 사왔는데?
푸주랑 치즈떡이랑 소세지, 청경채, 건두부, 목이버섯, 중국 당면 등등 많이 사왔지.
"잘됐네! 어서 요리 시작하자.
마라탕을 요리해본 적은 없지만 동생을 위한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은정아, 푸주 이렇게 써는 거 맞아?
은정아, 청경채 다음에 뭐 넣는 거야?
은정아, 매운 정도는 몇 단계로 할까?
은정아, 소세지 아직 멀었어?
세연이랑 다은이가 계속 질문을 해서 요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혼자 할 일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질문엔 어떻게 대답하라는 걸까. 너무 답답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도 몰라! 설명서 읽고 너희가 알아서 해봐!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설명서에 나와있는 대로 해야지! 안 그럼 맛이 이상할지도 모르잖아.
살짝은 다르게 해도 돼. 그리고 윤지는 매운 거 좋아하잖아. 고춧가루 정도는 꼭 들어가야 맛있다고!
아니거든! 설명서대로 하는 게 더 맛있거든!
이번에는 고춧가루를 넣을지 말지에 대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렇게 하다가는 오늘 안에 요리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몰라몰라, 그냥 넣어버려!
세연이가 고춧가루를 죄다 냄비에 털어넣었다. 뽀얀 국물이 무시무시한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언니들, 아직 멀었어?
윤지가 기다리다 지쳤나보다.
다 됐어! 지금 가져갈게!
내가 냄비를 집어들었다. 윤지 방 안에 들어오니 윤지가 해맑게 웃으며 냄비른 바라보고 있었다.
마라탕 주세요.
너무나 듣고 싶었던 반가운 말이었다. 윤지 앞 책상에 냄비를 내려놓았다. 윤지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푸웃!
윤지가 마셨던 국물을 죄다 뱉어버렸다.
윤지야, 왜 그래?
무지하게 매운데? 이거 재료 제대로 넣은 거 맞아? 게다가 간도 안 맞아. 또 푸주는 아예 있지도 않고.
아뿔싸, 아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재료 찾고 하면서 너무 정신이 없었나 보 다. 결국 요리를 망치게 되었다.
주르륵!
응? 언니, 그거 콧물 아냐?
앗, 카드놀이 중에 콧물이 나와버렸다. 으앙, 창피해!
아유, 더러워라. 이걸로 좀 풀어.
다은이가 휴지 한 장을 내밀었다. 휴지를 받아서 코를 풀었는데.......!
패~~~~~~~~~~~~~~~~~~~~~~~앵!
콧물이 내 손을 타고 흐를 정도로 나와 버렸다. 할 수 없이 화장실로 가서 콧물을 닦고 있는데 몸 어딘가가 좀 뜨거운 것 같았다.
뭐지?
혹시나 해서 이마를 만져보았다. 꽤 뜨거웠다.
언니, 왜 안 나오고 이러고 있어? 어디 아파?
나 이마가 뜨거운데?
윤지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이마에 손을 대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손을 거둬들이고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언니들! 우리 언니가 아픈 것 같아!
어떻게 아픈데?
이마에서 열 나. 아까 손을 대보았는데 뜨거웠어.
많이, 조금
아주 많이는 아니었어. 낮은 열 정도.
병원에 가봐야겠군.
그렇게 해서 나는 근처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 앞에 가 앉자마자 윤지가 흥분한 목소리로 내 증상을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또 콧물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 휴지 좀 주실 수 있나요?
의사 선생님께 받은 휴지로 코를 풀었는데도 콧속이 영 편하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풀었더니 코가 얼얼하고 쓰라렸다.
은정아, 너 그만 풀어. 계속하면 코가 더 아파질거야.
그걸 본 의사 선생님은 잠시 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하였고, 잠시 후에 감기라고 진단을 내렸다.
감기면 별것도 아냐. 좀 지나면 나을 거야.
세연이가 진단서를 손에 든 채 말했다.
나을려면 약이 필요하겠지?
다은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나갔다. 우리도 뒤따라 나갔다. 세연이가 가면서 필요한 약품 목록을 읽었다.
언니, 시끄러. 그만 읽어.
윤지가 핀잔을 준 사이 우리는 약국 앞에 서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불을 끄고 나와서 어두컴컴했다. 다은이가 짐을 내려놓고 불을 켰다.
나 손 좀 씻고 올게.
나는 짐을 놓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었다.차가운 물로 씻어서 그런지 손이 많이 차가웠다.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윤지가 약을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 윤지야, 약을 왜 지금 준비해?
응?
윤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 선생님이 저녁 먹은 다음에 먹는 거라고 하셨잖아.
아!
나는 속으로 어쩔 줄 몰랐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꺼낸 약을 도로 담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해야 할까?
에이, 어쩔 수 없네. 버리는 수밖에.
약을 버리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에는 허겁지겁 먹었는데 오늘은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이따 약 먹을 생각을 하니 밥이 영 맛이 없었다.
잘 안 넘어가는 거 알아. 하지만 아픈 때일수록 밥을 든든하게 먹어두는 게 중요해.
다은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근데 너희, 정말 홈스테이 할 거야? 나 나으려면 한참 걸릴 텐데. 굳이 안 있어도 돼.
무슨 소리야. 친구가 아플수록 같이 있으면서 간호해 줘야지.
세연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혹시 감기 옮을까봐 그래?
다은이가 물었다. 나는 얼른 아니라고 하고 밥을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저녁상을 다 치우고 나서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약 먹는 시간이었다. 윤지가 컵에 물을 따랐다.
뭐, 이왕 이렇게 됐으니 물약이 아니라 알약이어서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자.
세연이가 알약 봉지를 깠다. 알약 3개가 내 앞에 놓였다. 손이 너무 떨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약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알약이 입안에서 요리조리 헤엄쳐 다녀서 삼킬 수가 없었다. 물만 다 삼켜버렸다.
으악, 쓰다.....어떡하지? 뱉어야 하나?
왜 뱉어. 물 한 모금 다시 마시고 도전해 봐.
세연이가 응원해 주었다. 다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꿀꺽!
이번에는 다행히 삼켰다. 다은이가 폭풍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머지 알약도 물과 함께 삼켰다. 알약들은 물속에 잠겼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썼다. 이제 오늘 약은 다 먹었다. 좀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에 일어나서 또 약을 먹었다. 쓴맛은 여전했다. 다음 날에 일어나서 또 먹었다. 썼다. 또 먹었다. 계속 썼다.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었다.
약 먹는 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약이 아니라 기다란 뱀을 먹는 것 같았다. 끝이 없었다.
아, 진짜 지겨워 죽겠어. 이 약들을 데체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거야? 어우, 쓰다 써. 빨리 나아라 감기야.
어, 언니!
윤지가 내 이마에 손을 대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언니, 열이 없어! 열이 없다고!
뭐?
나도 손을 가져다 댔다. 정말 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전혀 뜨겁지 않았다.
다 나았나 봐! 히힛, 약을 열심히 먹은 보람이 있네.
주르륵!
음, 아직 다 났지는 않았구나.
나는 옆에 있는 휴지로 코를 풀며 말했다.
이 지긋지긋한 콧물은 대체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네.
내 말에 윤지가 웃으며 대꾸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제 그 쓰디쓴 감기약을 안 먹어도 되잖아.
그 말에 나는 쓴 약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윤지가 깔깔 웃었다. 나도 같이 웃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녕, 은정아?"
세연이와 다은이가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 근데 왜 왔어?
네 동생이 너 감기 많이 나았다고 놀러오라고 해서.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윤지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더니 핸드폰을 뒤로 숨겼다.
대체 전화를 언제 한 거야? 신기하군.
그보다 우리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 무엇일까?
나는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새로운 마라탕집을 찾았어.
그 말에 나는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없던 힘이 생긴 것 같았다. 세연이와 다은이가 내 대신 마라탕집을 찾은 것이다. 드디어.
윤지야, 언니들이 새로운 마라탕집을 찾았대.
정말? 우와, 잘됐다!
윤지가 뛸듯이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그런데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내 잘 먹고 오라고 하고 돌아섰다.
응? 언니는 안 가?
난 아직 감기 다 안 나았잖아. 나을 때까진 여기에 있어야지.
그러자 세연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깟 콧물쯤은 가면서 풀면 되지. 내가 휴지 넉넉히 챙겨갈게.
그래, 은정아. 같이 가자.
결국 난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갔다. 공기가매우 상쾌했다.
아, 오랜만에 마셔보는 공기네.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어갔다. 생각보다 마라탕집에 금방 도착했다. 예상대로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저기, 잠시만요, 잠시만요.
간신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 앞에 선 직원이 햇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
직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아름답게 들렸다. 메뉴를 가리키려는데 윤지가 한 마디 했다. 그동안 참 듣고 싶었던 반가운 한 마디를.
마라탕 주세요.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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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