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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신랑의 마음

  • 작성자 금안백
  • 작성일 2024-06-08
  • 조회수 315

존경하는 박XX 은사님께,

 

안녕하세요선생님저 진애에요. 20XX년 **고등학교 졸업생인 진애 맞아요다름이 아니라 제 결혼식이 오는 유월에 있어서요, 20XX년 졸업생치고는 꽤 빠른 편이긴 하죠그래도 과속한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결혼 소식을 알리는 목적만이 아녜요일종의 고민 상담을 청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써 올리는 거예요.

 사실 제 혼인 상대는 다름이 아니라 저와 마찬가지로 선생님 제자였던 김**이에요저는 3학년 때 선생님 제자였고그이는 1학년 때였지만 우연히도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진학하게 돼서 이어지게 됐어요저희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분반이던 터라 서로 얼굴과 이름만 겨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울이란 타지에서 유일한 향우이자 동창인 존재였기에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죠.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이의 가정 환경은 썩 그리 좋지 못했어요이미 시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셔서 말하는 건데 솔직히 두 분 다 좋은 사람은 아니셨죠약혼하기 전에 고작 두 번 만나 뵌 게 다지만 그 적은 만남으로도 느낄 수 있었어요그리고 알 수 있었어요제 신랑이 고등학생 1학년 시절왜 그토록 행동거지가 이상했는지를요.

 선생님도 기억하실 거예요저도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었지만(물론 같은 반일 수가 없었지만), 웬만큼 다 기억한답니다그이는 워낙 별난 사람이었죠걸음걸이도 이상했고말투도 어눌한 노릇에 목소리는 말이 계속될수록 기어들어 가서 도통 알아먹을 수 없을 지경이었죠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상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도대체 왜 그리 좋아했었는지.

 선생님은 모르셨을 수도 있겠지만 1학년 시절그이는 오덕이었다고 합니다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일본 애니메이션 좀 좋아할 수야 있죠저도 아주 어렸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던 기억이 나요그런데 그이가 스스로 말하길 그이는 여간 중증인 게 아녔데요쉬는 시간이 되면 같은 오덕들끼리 모여 한심한 얘기만 떠들거나 어떨 땐 일본 노래를 갑자기 흥얼거리기도 했데요저는 그 얘기를 듣고 왜 제가 그이의 첫 연애 상대인지 납득했어요그이 얼굴이 아무리 곱상한 편이면 뭐 해요행동거지가 워낙 붙임성 없고 음침했던 탓에 그나마 있는 친구도 비슷한 작자들(오덕들을 말하는 거예요)학교에서는 무시만 당했었다는데요.

 물론 지금은 일절 오덕과는 거리가 먼 제 신랑이에요실은 (이건 신랑한테서 직접 들은 저 말곤 아무도 모르는 건데신랑도 그런 걸 좋아하는 게 이상한 것임을 알아서 1학년 2학기가 반 정도 지나갔을 무렵부터는 달라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네요애니메이션도 끊고새 취미로 운동과 러닝도 시작해 보고옷에도 관심 좀 가져보고 하면서요.

 제 생각인데 신랑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란 음침한 것에 빠져든 것은 암만 봐도 시부모님 두 분 때문이에요제가 돌아가신 시부모한테 너무 예의 없다고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실은 제 신랑의 말을 빌렸을 뿐이랍니다제게 직접 저런 말을 해줬죠.

 그가 토로하길신랑은 어렸을 적 내내 집안에만 있었데요신랑의 집은 공장 지대 바로 앞 골목에 자리했었는데 그 주위에 다른 집이 없던 건 아녔지만또래 애는 그 근처엔 없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유아 시절노는 것은 부모님께 의지해야만 했는데 암만 떼를 써도 놀아주시지를 않았데요어머님은 주말이면 계속 누워 잠만 주무셨고아버님도 다를 게 없으셨나 봐요결국 신랑은 한창 놀고 밖에 돌아다니며 세상과 교감해야 할 시기에 집에서 장난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죠아마 근로로 인한 피로 때문이지 않으셨을까 싶지만안타깝게도 그 때문에 저희 신랑은 운동능력과 사회성이 또래보다 뒤떨어진 채로 학교에 올라가게 됐어요.

 신랑 말로는 고등학생 2학년 때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남들보다 운동능력이 확연하게 떨어졌었데요신랑이 운동을 막 시작했던 시절아침(주중엔 저녁)마다 러닝을 뛰었는데 처음엔 그 기록이 중학생 1학년 평균보다 약간 좋은 정도였다고 합니다물론 지금은 저를 번쩍번쩍 들 정도로 힘이 장사지만요.

 그런데 그이가 취미랑 운동능력을 고치고도 오랫동안 문제로 남았던 게 하나 있었어요바로 그이의 성격이에요사람이 내성적이라고 해서 비정상이란 건 절대로 아니지만그렇다고 소통이 안 될 정도로 붙임성이 없는 건 분명 문제라 생각해요얼마나 심각했는지 말하기 위해선 저희가 대학생 때 아직 얼굴과 이름만 알던 시절부터 사귀기까지의 이야기를 꺼내야겠네요.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강의를 들으려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였어요저희가 다닌 학과는 OT가 당일치기로 끝나서 말 그대로 얼굴만 알거나 대화 몇 마디 겨우 나눈 사람들밖에는 없어 일단 어느 자리에 앉을까부터 심히 고민이었죠저도 그이 못지않게 내성적인 편이거든요한 삼사 분을 둘러보던 중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제 뒤를 지나쳐 뒤에서 세 번째 줄에 맨 오른쪽 자리에 가 앉는 거예요그런데 그 얼굴이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싶었죠그래서 일단 빠르게 그 옆자리에 앉았어요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거든요.

 결국 강의가 시작되고 저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답니다머릿속에선 옆자리 남자의 정체를 밝히려 기억 상자를 뒤지느라 분주했고어차피 첫 강의라 별 얘기 안 할 거라는 판단 하였죠. (물론 나중에 진도를 따라가느라 조금 애먹었었지만강의가 시작하고 10분이 조금 지났을 무렵저는 어렵사리 옆 남자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답니다.

 그가 내 동창이란 걸 깨닫고 먼저 인사라도 건네볼까고민이 많았어요그러나 앞서 말했듯 저도 내성적인 편인지라 가끔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그렇게 3주 동안 저희 사이에선 말 한마디가 오가지 않았죠내내 옆자리였는데도요.

 그러던 어느 날저는 발견했답니다열심히 교수님 말씀을 필기하던 와중 갑자기 오른쪽에서부터 은밀한 눈빛이 느껴졌어요저는 그쪽을 힐끔 보았죠그리고 분명 저와 그이의 눈이 마주쳤어요대략 0.287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그이는 저와 눈이 마주치자 모른 척하고 다시 제 공책에 시선을 두었고저도 그냥 어쩌다 마주쳤거니 여기고 다시금 필기에 집중했죠그러나 그 0.287초간의 눈맞춤은 제게 그이에 대한 자국을 남기기 충분했답니다.

 딱 한 번 그이와 눈을 마주친 후로 저는 무의식중 그이에게 시선을 주는 일이 많아졌어요뚫어지게 노려보는 것보단 가끔 힐끔거리는 정도로요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건 그이도 마찬가지였나 봐요.

 그이는 정말로 귀여웠어요제가 곁눈질로 그이를 힐끔거리면 이따금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그럴 때마다 그이는 부끄러워하듯 냉큼 시선을 피했죠그러면 제 마음속은 어떤 감정으로 꽉 차지 않을 수 없었어요결국 저는 저보다 훨씬 내성적이던 그이와 사귀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답니다.

 입학하고 딱 3주 차가 되던 날저는 그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어요그리고 2주가 더 지나고 저는 처음으로 그이에게 따로 놀러 가자고 일렀죠. 6주가 더 지나서 처음으로 손을 잡았고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나고선 드디어 그이와 입을 맞출 수 있었답니다이 모든 일들은 다 제가 주도하고 이끌고 간 결과에요가뜩이나 저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실 거예요어떻게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로맨틱해진다 싶으면 자꾸만 그 분위기를 피하려 했던 신랑 탓에 정말 애먹었었죠글쎄 키스하려고 준비 중인데 실없는 농담이나 하는 남자가 어딨어요뭔가 낭만적인 구절을 노래해도 모자랄 판에.

 

신랑은 자주 자기 부모님의 흉을 봤어요학원도 안 보내주면서 성적을 바랬다던가어렸던 자기 앞에서 부부 싸움을 했다던가그래서 자기 성격이 이따위가 됐다던가. (원인이 그것만은 아니었겠지만그렇게 신랑이 시부모님에 관한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저는 스스로 이 사람과 진정 결혼해도 괜찮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제 부모를 욕하는 사람을 누가 좋게 생각하겠어요그러나 그이의 부모즉 저의 시부모님을 직접 뵌 후에는 어느 정도 신랑 맘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시부모님과 대화할 때면 늘 눅눅한 냄새가 났어요그건 근로하며 흘린 땀 냄새와 이십여 년 동안 한 집에 정착하면서 어느새 몸에 눌러앉은 그 집 냄새가 뒤섞인 정다우면서도 어딘가 애처로운 향이었죠.

 시아버님은 전형적인 구시대의 아버지상이셨어요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야구 모자를 눌러쓰신 채 뒷짐 지고 길을 걸으실 것만 같은 외모셨죠또 머리도 잘 보면 희끗희끗했던 것이 마치 시아버님의 쌍팔년도식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고요미래의 며느리 맞는다고 염색도 하고 나오셨더라고요다만 바뀐 시대에 적응하려 가치관이나 행동에 변화를 주려 했던 시도가 대화하던 내내 보였어요특히 결혼식과 관련해서요스몰 웨딩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거든요내심 서운해하시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요.

 그런데 그 스몰 웨딩 말이 꺼내졌을 때부터 문제는 시작됐어요시어머님이 극구 반대하셨거든요물론 반대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기에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안됐답니다서로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가치관이 차이 나는 건 당연합니다그러니 저희는 저희의 입장을 제대로 전하고 타협과 설득을 하려 했죠하지만 상대방이 귀를 아예 막고 자기 말만 한다면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져요저희는 저희의 생각을 말씀드렸고돈 문제는 나중에 애를 낳으면 돌잔치를 열어 그때 해결하겠다고 대안까지 제시했건만 시어머님은 그동안 낸 축의금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것과 식에 지인들을 부르지 못한다는 것에만 생각이 매몰돼서 아주 악을 쓰셨죠나중에는 스몰 웨딩하는 걸 내심 서운해하셨던 시아버님도 흥분하신 시어머님을 말리느라 저희와 한 고생하셨고요.

 시부모님과의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 만남으로부터 일주일 지나고서였습니다저는 그때까지도 시부모님에게 막 엄청 나쁜 인상은 없었어요그저 살아온 시대가 달랐고갑자기 천만뜻밖의 스몰 웨딩이란 소리를 들으신 탓에 진정이 안 되셨겠거니 하고 여기려 했죠한 마디로 저는 최대한 시어머님을 이해하려 노력했어요그런데 시어머님은 저희를 이해할 생각도 들지 않으셨나 봐요어쩌면 그럴 능력이 없으셨을 수도 있죠.

 시어머님의 태도는 여전히 막무가내였어요결혼식이 너네만의 잔치라고 생각하냐는 둥우리 생각 안 했을 거면 진작 연을 끊지 그랬냐는 둥 정말 자기 생각하는 사람 같았죠결국 참다못한 신랑이 한 마디 화를 내니깐(그이가 화를 낸 건 그날 처음 봤었어요워낙 속이 여린 사람이라서요부모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땍땍거리는데 정말 제 속에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죠신랑은 그 말에 지지 않고 부모도 그 노릇을 해야 부모지 어딜 부모답지도 못한 주제에 자식한테선 대접받으려 하냐고 맞섰죠그러자 시어머님은 아주 속이 뒤집히는 듯 신랑한테 그럼 널 낳고키우고입힌 게 누구냐며 소리를 빽빽 지르셨고신랑도 물러나지 않고키울 거면 잘 좀 키우지라며 그간 쌓인 부아를 터트렸죠.

 그런데 저는 이 상황에서 시아버님의 행동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속으로는 신랑을 조심히 응원했던 저도 중재하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시아버님은 처음엔 말리려 하다가 얼마 안 가 이젠 다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무책임하게 화장실로 도망갔죠.

 동거하던 집으로 향하던 택시에서 두 번의 만남 동안 있었던 일들특히 말리기는커녕 화장실로 도망가시던 시아버님의 모습을 되새겨 보면서 저는 어린 신랑이 살았던 가정의 모습을 그려보았어요너무 불행해 보였답니다막무가내로 어린 신랑을 혼내는 시어머니분명 해명해도 듣지도 않고 매질만 했을 거예요시아버님은 그 옆에서 시어머님의 기에 눌려 말리는 둥 마는 둥 해대고또 사춘기 땐 어땠겠어요무언가 둘 사이에 언쟁이 있을 때면 시어머님은 논리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말만 했을 거고 사춘기였던 신랑 속엔 온갖 부아가 치밀었겠죠시아버님은 역시 좀만 말려보다가 결국 다른 데로 피신 갔을 게 뻔하고요정말 신랑이 삐뚤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가끔 가출 청소년 기사를 볼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시부모님은 저희가 결혼식을 강행하기 사흘 전에 돌아가셨어요시장을 가다가 트럭과 교통사고가 났다는데 사인이야 어쨌건 덕분에 결혼식 분위기는 아주 초상집 분위기였죠.

 그날 신혼집에 들어가면서 저는 시부모님의 흉을 봤어요물론 감정이 너무 상한 탓에요저도 그 짓이 잘못됐단 건 알아요어떻게 죽어서까지 이러기냐고결혼식을 망치고 그 설움에 딱 이 한마디만을 했는데 신랑은 정말 불같이 화를 냈죠급기야 제게 주먹질하려다 겨우 참기까지 했습니다-하고 현관문이 닫히던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그날 저녁우리는 서로에게 용서를 빌었어요저는 돌아가신 시부모님의 흉을 본 것을신랑은 저를 때리려 했던 것을요그리고 그이는 제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결혼식을 한 번 더 하자고요저는 흔쾌히 수락했죠하지만 두 번째 결혼식은 일반적인 결혼식으로 열 수밖에 없었어요아이러니하게도 스몰 웨딩이 일반 결혼식보다 돈이 더 나가는 탓이었죠.

 그런데 두 번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문제가 좀 있어요신랑이 너무 힘들어한다는 거예요처음엔 잘 받아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모 생각에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아만 집니다밤만 되면 몰래 눈물을 훔치는데 그 새는 소리에 저도 절로 구슬퍼져요.

 사실 가슴으론 이해해도 머릿속으론 잘 이해되지를 않아요그렇게 흉보고 미워했던 자기 부모님인데 어쩜 그렇게 슬플까요신랑 베개가 눈물로 젖은 날만 벌써 넉 달이에요머리로 이해가 안 되니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게 어렵습니다그저 단순한 위로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또 신랑 맘이 그런데 부부 관계 맺는 날도 당연히 희귀하디 희귀할 수밖에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어떻게 해야 신랑 맘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부모를 떠나보낸 슬픔을 제가 어찌 헤아리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아내로서 가만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그래서 저보다 훨씬 경험이 많으시고 사람에 대해 보다 이해가 깊으실 선생님께 조언을 빌리고자 이 편지를 올립니다.

 두 번째 결혼식에선 지인들과 먼 친척들도 모두 부를 거예요그네들한테는 사정을 숨길 예정입니다사실 이런 사정을 얘기한 것도 선생님이 처음이에요첫 번째 결혼식 때 선생님을 부르지 못한 걸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 않으셨으면 해요첫 번째 땐 제 부모님한테도 청첩장이 가질 않았거든요원래 스몰 웨딩도 부모는 부르는데 저희가 몰래 결혼식을 강행하느라 정말 말 그대로 숨어서 식을 열 수밖에 없었거든요업체에서도 당황했었어요저희랑 주례를 부탁드린 신부님 말고는 온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청첩장이 아직 안 나와서 편지에 동봉하진 못해요나오면 바로 부쳐드릴게요오랜만에 선생님을 뵙는 건데 이런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로 찾게 돼서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20XX년 1월 XX일

*진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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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4
은행열매

은행나무가 나란히 늘어선 등굣길에는 이미 그 많던 노란 잎들이 어디론가로 치워진 뒤였다. 진혁은 자신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채로 은행길을 지나 벚꽃길로 들어섰다. 그곳까지 지나면 학교로 올라갈 언덕이 나왔다. 학교는 언덕 위에 있어서 아침부터 학생들은 덜 깬 몸으로 그곳을 올라가느라 고생이었다. 그 고등학교 주위에 초중교는 대부분 그곳과 비슷하게 언덕 위에 지어져 그곳들을 나온 학생 대부분은 약간의 불평만 있을 뿐이었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둘 다 평지에 있는 곳을 다녔던 진혁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올랐다. 진혁은 땀으로 엉망이 된 앞머리를 만져대며 정문에서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위에서 쉭쉭 지나쳐 가는 여학생들의 얼굴 혹은 다리나 가슴을 눈으로 훑으며 학교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진혁이 2층과 3층 사이를 오르던 때였다. 뒤에서, 진혁아, 하며 자신을 부르는 묘하게 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은 돌아보지 않고도 그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용태의 목소리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용태가 목소리보다도 맹한 얼굴과 표정으로 있었다. 용태는 입학했던 어제에 만난 아이였다. 입학하고 나서 학생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어색한 공기에 다른 반을 들르기까지 하며 전부터 알고 있던 아이들하고만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기에 결국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그래서 학기 초에는 다들 천성과 맞지 않을 정도로 과하게 친절히 대하며 적어도 좋은 인상이라도 심어주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그 이유는 학기 초에 그렇게 해야 친분을 쌓고 그 친분을 토대로 친구나 무리를 얻을 수 있어 학교에서 겉돌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첫날에 얼마나 반 아이들과의 말을 트는가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혁은 이 일에 실패하여 말을 좀 튼 상대가 용태뿐이었다. 전부터 친했던 이들은 다들 다른 학교에 배정받은 처지였다. 그가 다른 아이들하고 말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뭔가 어색하고 아이들이 자신하고는 같이 다니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태와 말을 건 것은 용태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을 걸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혁은 다른 아이들 대부분하고 말을 못 트이고 끝내 하굣길을 혼자 가야 할 처지에 이르자 급한 대로 옆자리에 모르게 앉아있던 용태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용태는 아이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대화에도 끼어보고 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들 모두 마지못한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피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용태는 말을 거는 이도 거는 일도 없이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다들 왜 용태에게 자신에게보다도 더 차갑게 굴었는지는 진혁도 그와 하굣길에서 얘기해 보면서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일단 그는 대화하는 게 어색했다. 실은 학기 초에는 다들 스스럼없이 얘기하지는 않으니 어느 정도의 어색함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용태의 어색함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의 어색함은 천성적이라고도 느껴질 만큼이었다. 거기에 그는 말하는 게 불안하고

  • 금안백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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