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냄새의 비누
- 작성자 김백석
- 작성일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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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때없이 맑은날이었다. 가방을 매고 출근을 하고 차들은 지나가고. 모든것이 일상적이었다. 쏟아지는 햇살 만큼이나. 그러나 한가지 달라진게 있었다. 나는 챗팅어플을 깔았다. 어느날 뉴스에서 떠드는 기사를 봤다. 성매매의 온상이 된 랜덤채팅. 이름 부터 자극적이 제목에 나는 욕정이 솓았다. 그래서였다. 내가 랜덤채팅을 깔 마음을 먹은 것은.
그러나 실행에 옮긴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너무나 따분해서. 발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인다.
여자예요?
내가 아니라고 하자 상대는 바로 나간다. 나는 계속 그렇게 쫓겨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정말 처음으로 안녕이라는 챗팅이 날라왔다.
나는 현재 이 랜덤채팅이 상주하는 온갖 더러운 남자들과 다르게 일상적인 대화만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응 난 서진이야
그래 나는 두진이야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마침 서진이는 인디락을 좋아했고 나도 좋아했다. 우리의 대화는 끊길 줄 몰랐다.
진작에 회사에는 도착한지 오래다. 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툭하면 화장실에 가서 챗을 보낸다. 퇴근이 기다려졌다. 하루의 일과가 완전히 채팅에 묻혀버리자 시간은 금방도 갔다. 나는 한 걸음에 원룸방에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계속 대화를 나눈다.
반복 된 대화에 소강상태에 빠졌다. 나는 불현듯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상한 설렘이 가슴에 차오른다.
혹시 전화할래?
읽음이 뜨고 손이 떨린다.
그래
내 전번은 010 3637 8343야
나는 당장 전화를 걸었다. 진짜 여자일까. 뭐랄까 이상한 설렘이 느껴진다.
여보세요?
분명한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꽤 듣기 좋은 목소리다. 흥분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기쁨의 웃음이 나온다.
처음에는 어색한 목소리로, 음악이야기가 나오자 흥분되고,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번주에 있을 인디 락 밴드의 공연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같이 갈래?
그녀는 수락했다. 기쁨이 올라온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만난다니. 선을 넘고 있다는 묘한 쾌감이 전신을 자극한다.
그녀와의 챗팅 속에서 일주일은 진탕 취한 것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드디어 만나는 날이다. 공연이 있는 소극장 앞 스타벅스에서 보자고 우리는 약속했다. 나는 설레는 맘으로 약속시간 보다 10분정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린다. 일종의 불안감들이 설렘 위를 떠다닌다. 못생기면 어떡하지, 돼지면 어떡하지.
시간은 금방가고 한여자가 내쪽으로 다가온다. 직감적으로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짙게 패인 쌍커플과 작은 키 그리고 낮은 코. 그녀의 몸에서 나는 비누냄새. 아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척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전화하던 그때처럼 금방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수 있었다.
카폐에서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은 금방갔다. 우리는 같이 소극장에 들어가 즐겁게 음악을 즐겼다.
무대가 끝나니 대략 9시가 되었다.
우리는 무대의 흥에 취한채로 걸어 나온다.
나는 무언가 될거 같은 직감을 느낀다. 입에서 어색한 말이 나온다.
한잔할래?
그녀는 무엇가 미묘한 표정으로 승낙했다.
우리는 11시까지 술을 마시다가 어쩌면 목적지 그 자체였던 모텔로 함께 들어갔다. 그녀는 발그레진 얼굴로 옷을 벗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버린다.
처음 얼굴을 본 사이가, 서로에 대하여 겨우 개미 똥만큼 아는 사이가.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렸을때 우리는 서로에게 민망한듯 배시시 웃었다.
여러 대화가 오갔다. 그동안은 넘을 수 없었던 대화의 선이 이제는 말끔히 사라진것처럼.
우리는 같이 아침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두개사고 김밥을 하나 사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간략한 식사를 했다. 그때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고등학생인것을 고백했다. 그리고 집을 나온것 역시도. 그녀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걸래같은 여자였다. 그녀의 눈이 처음으로 독기로 찬다.
나도 고백을 시작한다. 고아로 태어나서 무던한 삶을 살았다. 조용하고 재미없는. 처음부터 없었기에 빈자리를 느낀적은 없었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비를 입어 문다. 불이 붙고 연기가 뿜어진다.
나도.
그녀는 빨던 담배를 들이킨다. 연기는 중천에 뜬 하늘과 함께 뿜어진다.
니코틴에 의해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러나 한쪽으로 피가 몰린다. 무언가 이상한 확신이 차오른다.
우리집에 들어와 살래?
죄악은 무엇일까. 미성년자와 동거하는것은 분명한 죄일 것이다. 관계하는 것는 분명한 악일것이다. 그러나 입은 멈추지 않고 던져진 말을 주어 담지 않는다.
그녀는 딱히 거절하지 않는다.
하루 뒤에 그녀는 내가 보내준 주소로 작은 가방과 함께 도착했다.
퇴근이 기다려졌다. 집에 오면 그녀는 나를 맞이하고 그녀가 부친 계란 후라이을 저녁으로 먹고 같은 방에서 함께 잤다.
때때로 관계했다. 부끄럽지만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은 오래된 연인들이 sm 플레이를 즐기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때때로 콘돔없이 사정했다. 그녀는 그때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몇주가 지났다. 몇주는 특수한 상황이 나라는 항상성 안에 소화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 미성년자와 관계한다는 사실에 어떠한 죄책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확신 만이 살을 붙여 갔다.
때없이 맑은날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여느 날과 같이 출근했다.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집에 있을 그녀에게 점심먹었어? 라고 연락을 보낸다. 다시 일에 집중하고. 시간은 금방간다. 나는 집으로 향해간다.
다시 버스를 타고 유리창에 기대서 핸드폰을 본다. 문득 점심때 보낸 연락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그녀의 연락이 없다. 무언가 미스테리한 확신이 든다. 직감적인 느낌이든다. 나는 버스에 내리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뛰었다. 비번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없었다. 창문은 열려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짐을 가지고 냄새마저 날려버리며 처량하게 떠나 버렸다. 식탁 위에 자그만 쪽지가 있다. 마지막 예의 일까.
미안해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것같아.
새삼 그녀가 어디에 사는 지 조차 모른다는게 떠올랐다. 봄날은 간다. 찾아 갈 수 조차 없었다. 찾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에 성인 남친이 오면 그녀는 걸래 취급 당하겠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이고. 연기는 불꺼진 원룸 아래로 천천히 꺼진다.
하루에 담배 한갑씩 태우는 나날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 평소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사를 같이 다니던 경리누나가 내게 카톡을 보낸 순간 부터.
회식 후에 그녀를 바래다줄때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고 우리는 그때부터 사겼다.
맑은 날이다. 어느 연인들이 그러듯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점심시간에 잠깐 나왔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열심히 이유를 찾아 보면 날이 맑아서, 여름꽃이 활짝 피어서.
우리는 맑게 웃으며 산책로를 걸었다. 거센 태양빛을 받아서 꽃들은 밝게 빛났다.
그때 두명의 학생이 우리를 지나간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서로의 손을 꽉 잡고 뛰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 여학생도 뒤를 돌아 봤다. 순간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처럼 그녀는 배시시 웃고 있어서.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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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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