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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의 항해자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4-02-25
  • 조회수 527

성간의 항해자

별이 윤슬처럼 흐르며 사라지길 반복한다끝없는 바다 위로 비친 별이 짙은 황홀경을 품고 나아갔다.

나는 황금빛 노를 잡고 바다를 밀었다내가 아닌 바다를 움직이는 항해자의 심상(心象)으로검은빛에 수놓인 별을 비추는 바다에 파문을 드리웠다그 파문은 작은 고리를 그리더니 이내 별들 사이로 밀려가 소멸했다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고 끝없이 파문을 그렸다파문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수많은 동심원을 형성하며 내가 지나온 길들을 축복했다나의 길은 빛나는 고리들로 가득해졌다.

밀려나는 바다에 한 잎 별똥별이 서렸다이윽고 수많은 별들이 기나긴 꼬리를 남기며 낙하를 시작했다.

유성우였다.

나는 잠시 노질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빛의 덩어리들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몰려와 사라지길 반복했다그것은 나를 띄운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라서별하늘의 찬란함은 위아래로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며 끝없고 아주 긴 여정을 시작했다.

나는 그 유성우의 작은 천체 하나와 같은 존재였다무한한 우주의 바다를 밀고 나가서이내 영원한 미래의 고향을 향하는 항해자였다바다의 끝은 없을 것이었다하지만 그 끝의 고향은 분명히 존재했다나는 그 고향을 향하여 영원히 바닷물의 별기운을 밀어낼 것이었고 그 바다 위에서 잠들 것이었다그랬기에 나는 성간의 항해자영원한 항해자였다.

나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존재였다나의 작은 황금빛 배는 저 하늘의 별과 같아서 그 반짝임의 순간이 영원과 같은 빛을 내뿜었다이 배가 인도하는 물길을 따라 나는 언제까지고 바다를 여행했다.

바다는 우주와 같았다그것은 무한히 넓고 저 바다의 빛을 흡수해 또다른 빛으로 뱉어냈다그것의 깊이는 측량할 수 없는 신의 궁전과도 같았고 그것의 너비는 한없는 고랑을 자아내는 저 지평선과도 같았다그래서 바다는 또 하나의 우주였다나는 그 우주를 유영해 다른 우주로 나아갔다.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나의 첫 기억은 폭발하는 천체의 기억이었다그것의 초신성(超新星)은 미친 듯이 밝아서 나는 그 안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그러고도 나는 그것을 보았다휘황한 오색을 품은 단 하나의 백색이 저 우주를 삼킬 듯 뻗쳐 가는 모습나는 그것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우주에는 가끔 초신성이 제 모습을 비췄다하지만 내가 본 것 같은 거대한 것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나의 초신성은 무엇보다도 밝고 넓어서 정말로 우주의 한 부분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나는 거기서 나의 배를 얻었다바다에 수장될 듯 위태롭게 수영하던 나는 황금빛 배를 얻고 노를 저었다보석으로 이루어진 돛을 펴고 영원히 꺾이지 않을 흑요석의 돛대를 매단 나는 그날부터 지칠 줄 모르고 우주의 웅대함을그 안의 무한한 찬란함의 축복을 여행했다.

나는 바다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어느새 별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돛을 접고 닻을 내렸다그 닻은 어딘지 모를 바다 밑으로 무한하게 가라앉을 수 있었다비록 방금 전에 물에 담겼지만 그 닻은 시간을 초월해서 무한에 닿아 있을 것이었다.

나는 별의 폭풍을 바라보았다그것은 순식간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수만 개의 보석들이 폭풍에 휘말린 듯한 거대한 형태가 다가오고 있었다저것은 한없이 깊은 별의 소망이 지쳐 끊어질 때 생겨나곤 했다그 별의 소망이 자아내는 거대한 인력(引力)이 주변의 별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폭풍이 되어 회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별 하나의 소망은 영원히 별들을 이끌 만큼 깊지 못해서그 폭풍은 머지않아 저물 것이었다별들은 산란되는 빛의 파편들로 나누어져 여전한 빛을 뿌릴 것이었고그 깊었던 소망은 영원한 우주에 녹아들어 나의 바다의 하나가 될 것이었다.

이내 나는 폭풍을 맞이했다나는 돛대를 팔로 감고 배의 바닥에 앉았다배의 힘 없이는 저 거대한 소망에 이끌려 무구한 어둠에 잠길 것이었으며그 끝은 또다른 항해자의 노에 밀려 지평선에 파이는 결말일 것이다.

사실 나 이외의 항해자는 없었다나는 이 우주에서 오로지 하나였다그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우주의 끝에서 나는 배를 얻었고 그곳의 배는 하나였다우주의 끝에서 끝으로 유영하는 나는 오로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는 유한하지 않고 무한해서 내가 온 거리는 무의미했다무한의 관점에서 나는 출발도 하지 못한 존재였다하지만 나는 이미 무한한 세월을 거쳐 바다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며수많은 별의 말로를 목격했다그랬기에 나는 이미 무한한 거리를 이동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어쩌면 나의 고향은 무한의 너머에 있을지도 몰랐다.

폭풍의 끝이 저물고 있었다나는 마지막으로 사라져가는 별의 소망에 조의를 표했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슬프고 고귀한 죽음이었다별의 소망은 무엇보다도 창대했기에 그랬다나는 이내 하나의 검은 덩어리가 되어가는 소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간마저 삼키는 검은 덩어리였다그것에 닿은 모든 것은 강력한 중력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만다그것의 띠를 이루는 사건의 지평선 이후로의 시간은 없었다나는 별의 고래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별의 고래는 죽은 소망을 먹고 자라는 별이었다그것은 별이면서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윤곽선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들이었다그 안에 있었어야 할 빛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그들은 영원히 별들의 소망을 먹으러 세상을 유랑했고 그 자신을 채우려 했다하지만 죽은 별들의 소망은 오히려 그들의 내부를 더 깊게 비워낼 뿐이었다.

별의 죽음은 그랬기에 더욱 슬펐다그들의 마지막은 채워지지 못할 자신을 채우는 고래에게 먹혀 그들에게 소화되고 만다그리고 고래가 죽으면 그제서야 우주가 아닌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 마리의 고래를 보았다그 텅 비어 있는 눈을번쩍이는 윤곽선을 나는 보았다그 슬픈 별은 깊은 갈증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을 터뜨리고는 죽은 별의 소망을 삼켜 버렸다.

그렇게 하나의 별이 졌다.

나는 다시 배 위에 섰다나는 다시금 저 바다를 유영해야 했다닻을 끌어 올리고 노를 잡았다나의 황금빛 노는 폭풍 속에서도 스스로 떠내려가지 않았다.

다시 노로 바다를 밀었다다리로 몸을 받치고양팔로 힘을 줘서 바다를나의 배를 앞으로또 앞으로 밀어냈다.

우주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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