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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꽃잎 속의 형제들 -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고

  • 작성자 파르페
  • 작성일 2023-08-13
  • 조회수 794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무대화시킨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다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세혁이 연출하였고이진욱 작곡가가 작곡시인 김경주가 극작을 맡았다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을 재해석해 원작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는 작품이다특히 문학성이 뛰어난 가사들과 강렬한 멜로디는 이 작품의 대표적이면서도 독보적인 특징이다극의 관념적인 구성 때문에 다소 불친절하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 모호함이 관객들에게 매력으로 가닿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극의 핵심적인 줄거리만 요약하자면 대강 이렇다평생 방탕한 삶을 살아온 러시아 지방의 지주 표도르 까라마조프에게는 첫째 아들 드미트리와 둘째 아들 이반셋째 아들 알료샤와 넷째 아들이자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약칭 스메르)의 네 아들이 있다그러던 어느 날 표도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아버지를 죽이겠다 말하고 다닌 첫째 아들 드미트리가 용의자로 의심받는다그렇게 형제들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을 때집안에서 하인으로 부려지던 스메르는 평소 자신이 유일하게 따르는 사람이었던 이반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추궁해오자 아버지의 죽음을 바란 당신의 뜻을 따라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한 뒤 자살한다스메르의 죽음 후 재판에 드미트리와 이반이 서게 되고이반은 스메르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처럼 아버지를 죽인 이는 스메르이나결국 자신 역시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지만 참작되지 못한다그렇게 네 형제가 단상 주위로 모여 있는 모습 뒤 서 있는 아버지를 보여주며 극은 막을 내린다.

서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창작물들이 으레 그렇듯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도 중심 이야기는 존재한다아버지의 죽음과 형제들 중 그 죽음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그러나 이 작품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형제들 내면의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인다모두들 서로 너무나도 다른 특성을 지닌 네 명의 인물들이 형제라는 하나의 핏줄로 묶인다는 것이 그들 개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여기서 형제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되는 특성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이중성이다이 글에서는 각 인물들의 넘버와 대사를 살펴봄과 동시에 네 명의 형제들 각자에게 그 이중성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아버지 날 버리지 마세요

발 없는 새가 되어

나는 하늘을 날고 있어요

쉴 곳 없어서

날고만 있죠

발이 없는 작은 새는

날 때부터 너무 슬퍼요

울고 있어요

아무도 나를 오래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발이 없는 새라서

저 아래가 두려워

나 땅에 닿는 날은

죽을 때 뿐이죠

아버지 이제 나를 놓아주세요

 

- <M13. 발 없는 새가사 전문

 

먼저 까라마조프가의 첫째 아들 드미트리의 솔로 넘버 <발 없는 새>부터 살펴보겠다퇴역 장교인 드미트리는 네 형제들 중 표면적으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그는 아버지처럼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버지와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해 아버지와 가장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증오한다심지어는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며 떠들고 다니기까지 한다스메르가 아버지를 죽인 뒤 살인의 용의자로 자신이 처음 지목되자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난 살인자는 아니다라며 부정하지만극의 후반부 재판에 서서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사실이기에 그 죄를 인정하겠다고 말한다그와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그렇기에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심을 내뱉는다한 대상에게 사랑과 살인충동이 공존할 수 있다니이러한 드미트리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넘버가 바로 <발 없는 새>.

넘버의 가사는 초입부터 의미심장하다. ‘아버지 날 버리지 마세요’.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 이야기하던 그가 아버지를 향해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궤변처럼 들린다그러나 그저 망나니처럼 보이는 그의 겉모습만이 아닌 본심을 들여다본다면이 넘버가 드미트리라는 인물에게 입체성즉 그의 이중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드미트리의 행실은 형제들 중 가장 나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고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이반에게 대신 사과해달라며 무릎 꿇고 부탁하는 등 자신이 느끼는 것에 있어 숨김과 속임이 없다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가장 순수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렇지만 형제들 중 내가 제일 버러지지’(<M3. 나는 그런 남자야>), ‘어쩌다가 난 개가 인격을 가진 건지도 몰라’(<M18. 우린 까라마조프>) 등의 드미트리의 가사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이 순수함이 그 자신을 향해 있을 때만큼은 자기혐오로 작용된다이 넘버의 발 없는 새는 드미트리 자신이다발 없이 날개만 주어진 채 태어난 새는 평생을 날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땅에 닿을 수 있다여기서의 은 보편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부모와의 유대감사랑을 뜻한다그는 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거나 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닌 나 땅에 닿는 날은 죽을 때 뿐이죠라는 가사처럼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 없다는 죄책감으로 발화된 아버지 날 버리지 마세요라는 그의 일말의 희망이 담긴 말 앞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지며 그 희망조차 사라지고 아버지 이제 날 놓아주세요라는 체념의 목소리만이 남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란 자신의 마음을 속죄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죄를 묵묵히 짊어지는 쪽을 택했다가장 야만적이고 거친 것처럼 보이는 인물만이 자신의 과오를 온전히 인정했다는 것이다비록 극중에서 그의 이야기는 그닥 중요히 다루어지지 않지만아무리 무절제한 삶을 살아온 사람일지라 해도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또 <발 없는 새>의 멜로디는 강렬하다기보다는 슬프고 처연한 쪽에 더 가까운데이는 자기합리화나 거짓 없이 무결한 그의 내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당신에게 묻고 싶어

당신의 야만은 어디서 시작된 거야

인간에게 자유를 준 이유가 뭐지

인간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이유는 결국 하늘에 닿기 위해서잖아

우리가 이렇게 나약해진 존재야

당신은 악마와 손을 잡고 우릴 버렸어

입이 있으면 말해봐 발이 있으면 흔들어봐

영혼이 있다면 내 몸으로 들어와서 흔들어

이곳은 이제 의식만이 넘쳐서 지옥 투성이야

당신은 말했어 신은 우리들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우리의 고통들이 아버지의 몸속에 산다고 악마는 속삭여줬어

잘 보아라 인간들아 진짜로 죽이고 싶은 건 저 아버지다

분노가 생긴다 분노만이

살아있는 거야 고통이 좋아서 살아있는 거야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어

모든 것을 견뎌내는 아름다운 나의 고통 고통에 머물며 나는 행복하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일이면 좋아

이제 당신은 인정해야 해 당신은 악마와 손잡았어

그건 정말로 아니잖아 결코 그래선 안 되잖아

인간을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하고 우리에게 자유를 준 거잖아

이제 당신은 인정해야 해

자유가 생겨서 이렇게 난 악마와 가까워진 거잖아

당신의 고통 이해할게

자신의 허튼소리를 사랑하고 있어 아무도 안 들어주니 헛소릴 한 거야

아무도 사랑을 하지 못해서

자신의 헛소리들을 사랑하잖아

이제는 몰려와 나의 고통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 행복한 이 순간

 

- <M16. 대심문관 1> 가사 전문

 

이번에는 까라마조프 가의 둘째 아들 이반의 솔로 넘버 <대심문관 1>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이반은 집안의 유일한 지식인이며매우 오만하고 이성적이다방탕한 일만을 일삼으며 살아왔던 자신의 아버지를 멸시한다또한 극 중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는 않지만섬망증을 앓고 있다온갖 논문이나 잡지 따위에 무신론과 관련된 글을 기고하는 무신론자라는 점에서 견습 수도사인 동생 알료샤와 매우 대조되는 인물이기도 하다이반의 이러한 무신론적 사상은 단지 신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무얼 믿고 있냐는 알료샤의 물음에 악을 믿어확실한 악을하지만 악도 없어증거가 없으니까.’(<M4. 무얼 믿는 거야>) 라고 답하는 등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 회의적인 수준이다그의 신념은 극의 중반부까지 꿋꿋이 유지되지만아버지의 죽음을 바란 당신의 뜻을 따라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 죽였다는 스메르의 말을 시작으로 발현된 혼란 때문에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그리고 그 혼돈이 정점에 이를 때가 바로 <대심문관 1>의 시점이다.

원작 소설에서의 <대심문관 1>은 이반의 신과 종교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가 담긴 서사시이지만뮤지컬의 넘버 <대심문관 1>은 그와 다소 궤를 달리하고 있다극의 초중반부 스메르의 손이 자신의 옷깃에 닿기만 해도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던 이반의 오만한 모습과는 대비되게온몸을 떨며 종잇장들을 마구 찢어대는 무너진 이반의 모습즉 이반의 이중성이 나타나 있는 넘버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 넘버의 가사를 살펴볼까가사 속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신을 뜻하는데가사의 첫 번째 부분인 당신에게 묻고 싶어에서부터 이반의 모든 이야기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 채 진행된다이상하지 않은가증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악도 믿지 않던 이반이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기도하듯 말을 건네기까지 한다니바로 이 지점에서 이반이 그동안 지녀왔던 사상이 부서진다실체가 없는 신을 조롱함과 동시에 원망을 퍼붓는다. ‘자유가 생겨서 이렇게 난 악마와 가까워진 거잖아라는 가사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이반의 길고 긴 절규가 그가 신에게 지닌 원망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여기서 그의 무신론적 사상은 결국 신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더러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수치심과 자신만은 고귀하다는 오만이 대립하며 결국 그 모든 것의 결론과 책임은 자신의 삶을 내려준 신을 향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가장 처음 아버지의 몸속에 살고 있었다는즉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생겨난 이반의 죄책감인 이 고통은 이반에게 가닿은 뒤 분노와 모든 것을 견뎌내는 힘으로써 변화하는 단계를 차례대로 지나 끝내 환희로 재탄생한다이는 결국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죄책감과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기대가 이루어졌다는 기쁨이 섞이며 더욱 고조된 정신적 혼란이 재판에서 자신이 한 이야기에 대해 이건 헛소리가 아니야섬뜩할 만큼 정상이야.’라는 대사를 내뱉는 확신을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의 차원에까지 다다르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허물어진 그의 현실 판단력이 일궈낸 세계 속에서만은 그 힘이 오랫동안 지켜온 무신론에 대한 믿음은 결국은 신에 대한 원망의 오인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요소이자결국 이반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라는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게끔 만드는 불변의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극 중에는 이반 도련님은 인간의 성질 가운데 가장 강렬한 감각은 이율배반이라 하셨어요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죠.’라는 스메르의 대사가 등장하는데,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가장 극명한 이중성을 지닌 인물은 바로 이반이다그러한 이반의 면모가 잘 드러나다 못해 폭발하는 이 넘버 <대심문관 1>은 그 자체로 강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더군다나 거센 울림을 전해주는 추상적인 가사와 귀에 곧바로 꽂혀 들어오는 선명한 선율이 더해지며 넘버의 상징성은 배가 된다.

 

외로워도 믿음을 잃지 마

무서워도 두 눈을 떠야 해

나약하다는 건 아직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내 몸속에 눈뜨고 계실 거야

내가 나서 모두를 사랑할게요

눈 감으면 사랑이 보여

아직은 내 마음 악마들이 보지 못할 테니까

 

- <M2.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까라마조프 가의 셋째 아들이자 수도사인 알료샤의 경우 다른 형제들처럼 그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넘버가 한 곡 있는 것이 아닌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변화가 생기며 이중성이 드러나는 인물이기에 여러 넘버를 한번에 살펴보도록 하겠다가장 먼저 살펴볼 넘버는 그의 첫 넘버인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건>이다이 곡의 가사는 부정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희망적인 믿음을 품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다짐을 보여준다이처럼 극 초반의 알료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는 전형적인 수도사의 모습을 보여준다그러나 나약하다는 건 아직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그의 희망과는 다르게 넘버의 제목은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건이다이는 그의 말을 뒤집어 보면 곧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약함을 뜻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앞으로 이어질 그의 변화를 암시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을 하고 싶지만

당신과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다면

단념할래요

이렇게 사는 걸 선택해버린 나

누구나 사랑을 하면 아픈가요

 

- <M8. 사랑을 하고 싶지만

 

이번에 살펴볼 알료샤의 넘버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이다곡이 시작되기 바로 전 알료샤는 자신이 꾸었던 꿈의 이야기를 꺼낸다꿈속에서 그는 황제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총으로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이 넘버는 그에 대한 대답의 역할을 한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은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뒤섞여 부유하는 꿈에서의 대답을 담은 넘버인 만큼낙관적인 다짐으로 숨기려 했던 알료샤의 본심이 드러난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가까이 갈 수 없다면 단념하겠다는 그의 말은 용기를 내기보다는 회피하는 쪽을 택하는 그의 성격을 드러낸다또한 이렇게 사는 걸 선택해버린 나라는 가사처럼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 역시 쉽사리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알 수 있다.

그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한 여자가 자신을 사랑한다 고백하자 그녀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자신 역시 그렇다며 거짓으로 사랑을 말했던 적이 있는데이내 그녀의 날 동정하지 말라는 대답을 듣고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모두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던 걸까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이것에서의 사랑은 단지 이성 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남을 포용하고 베풀 줄 아는 마음의 사랑이자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 포괄적인 개념을 뜻한다그리하여 아무도 사랑해본 적 없다는 말은 수도사로써 모두에게 그 사랑을 건네주어야 할 그가 정작 사랑을 받은 적도준 적도 없다는 모순을 보여준다이 깨달음은 자신의 숨겨진 진심과 마주했던 <사랑을 하고 싶지만>에서의 그의 상태와 긴밀히 연결되며이것이 곧 그의 더 큰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어머니 말해줘 내 아버진 누구인 거야

당신의 배에서 나온 게 누구인 거야

이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당신이 물려준 발작이잖아

 

(중략)

 

언젠가는 나조차도 당신처럼 미칠 거야

그래서 난 수도원에 간 거잖아 두려움에

미칠까 봐 떠난 거야

 

- <M11. 헛소리

 

네 형제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헛소리>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는 넘버이다형제들이 숨기려 했던 그들의 본심이 한데 모여 폭발하며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곡인데이 넘버에서 알료샤의 가사즉 그의 본심만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어머니 말해줘 내 아버진 누구인 거야라는 가사에서부터 그가 자신이 지닌 일명 더러운’ 까라마조프 가의 혈통을 혐오하다 못해 그 혈통을 물려준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고 부정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또한 언젠가는 나조차도 당신처럼 미칠 거야 그래서 난 수도원에 간 거잖아 두려움에 미칠까 봐 떠난 거야라는 가사는 그가 신을 따르는 길을 택한 이유가 단지 신앙심뿐만이 아닌 까라마조프 가의 저주받은 핏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음을 보여준다이러한 것들이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건>에서의 알료샤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며 그의 이중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된다가장 신실하고 거짓됨 없어 보이는 수도사라는 그의 가면은 결국 회피와 자신을 향한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난 보고 있어

악마는 신과 싸우는 게 아니야

아름다움과 싸우는 거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그 사랑이 인간에게 갇힌 세계니까

당신이 침묵해버린

 

- <M16. 대심문관 2> 

 

<헛소리>에서의 고백과 자신을 사랑한 한 여자의 말로부터 생겨난 깨달음을 통해서 가슴 깊은 곳에 애써 숨겨놓고 있던 속마음을 마주하다 못해 깨닫기까지 한 알료샤는 이제 더 이상 신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 아닌자신 스스로만으로도 온전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게 된다그리고 그 결심의 완전체가 담긴 넘버가 바로 <대심문관 2>극의 초반부이반은 알료샤에게 한 아이가 돌을 가지고 놀다가 장군의 사냥개에게 상처를 입히자 그 장군이 아이를 잡아다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뜻을 품고 있니?’라는 말을 건네는데이때의 알료샤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그러나 넘버 <대심문관 2>가 시작되기 바로 전이반이 알료샤에게 같은 이야기를 또다시 건네주자 이번에는 구원받을 수 없어그 장군은 사형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는 등 같은 상황 속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다 명확히 내보인다그 상태로 넘버 <대심문관 2>가 시작되는데알료샤는 자신의 결심을 탄생하게 한 그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악마는 신과 싸우는 게’ 아닌 아름다움과 싸우는 거라는 말을 한다여기서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은 개개인이 옳다고 믿으며 따르려 하는 이상을 의미한다과거의 그에게 그러한 이상은 단지 신이라는 존재로만 대표되는 것이었지만신의 그림자를 벗어난 현재의 그는 신이 아닌 다른 형태로도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그렇기에 알료샤는 자신의 또 다른 아름다움’, 즉 이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시발점으로 수도복의 로만 칼라를 빼낸다그와 동시에 앞으로 더더욱 장대해질 그의 뒷이야기를 남겨놓은 채 까라마조프 가와 신의 품 모두를 떠난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본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세 형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무대에서 퇴장하지만 오직 알료샤만은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퇴장한다이는 알료샤가 혁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원작의 끝내 집필되지 못한 설정을 반영하는 것이자 극의 완전한 종결 직전까지도 결국 가장 큰 변화와 성장을 이룩한 인물은 오직 알료샤뿐이라는 사실을 내보인다.

 

이렇게 늙은 고양이들을 죽이곤 했어

새끼 고양이는 파득거리다 쭉 뻗곤 했어

사람들의 죄를 바라볼 때 행복해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해

어린아이들을 사랑해

어린 고양이들도 사랑해

자신에게 복수하는 건 즐거운 일이야

내가 발작하면 아무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아

마음이 괴롭고 불안해지기 때문이지

내가 이해하는 유일한 고통이야

내 몸에서 수증기가 퍼져 흘러내려

짜릿하고 경련하고 뒤틀리다 침이 흐르지

믿기지 않겠지만 그건

상쾌한 기분이야

 

(중략)

 

발작이 시작되려나 봐 내 몸속에 악마의 침

간질이 내 몸에서 다 빠져나오나 봐

짜릿하고 경련하고 뒤틀리다 침이 흐르지

그건 너희와 나누지 못하는 유일한 현실

믿기지 않겠지만 내 몸에만 들어가 사는 신앙이니까

밤이 되면 몸이 제자리로 돌아오곤 해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러내렸어

그날 밤 아버지를 죽이고 나서도 그랬어

왜 내가 눈물을 흘렸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보았어

그건 내가 이해하기 힘든 유일한 고통이야

이건 정말이지 헛소리가 아니야

손에 닿는 것은 똥칠이 되어버리는 까라마조프가

내 몸이 틀어질 때 뼈마디 비명은 내 아들이니까

내 육신에서 나온 육신 발작

오 귀여운 아들아 스메르 네놈에게 침을 뱉을 거야

내 육신에서 나온 육신 발작

이놈이 제 아들입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제 혈육입니다

인간은 신보다 기적을 믿는 존재야

그래서 내가 기적을 만든 거야

당신의 헛소리는 멋지지만 너무 나약해

너도 신을 죽여라 방해하지 않겠다

당신이 이렇게 말해주었어

당신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어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당신은 까라마조프가의 힘을 내게 알려주었으니까

 

- <M14. 발작

 

이번에는 까라마조프가의 넷째 아들인 스메르쟈코프의 메인 솔로 넘버 <발작>을 살펴보겠다그는 거리의 거지 백치 여인이 낳은 집안의 유일한 사생아이자자식 취급을 받지 못한 채 까라마조프 가의 하인으로 부려진다그와 동시에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기도 하다다른 형제들과 달리 그의 성격과 이야기는 그리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데그 여백을 채워주는 넘버가 바로 <발작>이다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불안한 곡조와 스메르 역을 맡은 배우의 고난도 발작 연기가 어우러져 솔로 넘버임에도 불구하고 깊고 남다른 여운을 안겨준다그러나 불친절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전체적인 흐름처럼 <발작역시 서사적인 전개를 유추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넘버는 아니다피아노가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불협화음과 추상적인 가사는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타인의 시점에서 관찰한 뒤 잘 다듬어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직 스메르라는 인물의 심리만을 완전히 투영하고 있다.

가사의 초반 부분부터 살펴볼까자신이 죽이고 놀며 즐거워하던 고양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궤변에서 스메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일에 있어 굉장히 서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자신을 낳자마자 죽어버린 어머니자식들을 남보다도 못하게 대하는 아버지자신을 형제로 인정해주지 않은 채 경멸과 무시를 일삼는 형제들이들 사이에서 스메르는 행복이 무엇이고 슬픔이 무엇인지증오가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했다그렇기에 색색의 물감들이 한데 흩뿌려지면 탁하고 텁텁한 색이 만들어지듯이 그의 감정은 각각의 것을 구별할 수 없게끔 전부 다 섞여버렸다그와 유대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마음의 감각을 일깨워줄 마땅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이 감정의 무감각은 끝내 슬픔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 흘러내렸어’)이자 아버지를 죽이고 나서 눈물이 흐르자 왜 내가 눈물을 흘렸을까라는 명쾌한 답 없는 의문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넘버의 제목이자 극 속에서 스메르가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또 행하는 행위인 발작은 까라마조프가의 피로 상징된다다른 장면을 살펴보면 극 내내 까라마조프의 일명 더러운’ 핏줄을 부정하는 알료샤는 발작을 하고 쓰러질 때마다 살아있는 것 같아 무서워’(<M16. 대심문관 2>) 라던지 요즘도 발작을 하냐는 형 이반의 물음에 이제 발작 같은 건 안 해라는 답을 내놓는 등 자신이 물려받은 아버지의 피즉 발작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그러나 나도 당신의 형제야라며 까라마조프의 핏줄로 인정받길 원하는 스메르는 요즘도 발작을 하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저는 정기적으로 발작을 합니다저는 발작을 좋아합니다라는 대사를 내뱉는다이 발작은 스메르의 솔로 넘버 제목으로 쓰인 만큼 스메르의 정체성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관념으로 기능한다곡 내내 발작을 계속하는 스메르의 모습은 넘버 <헛소리>에서 알료샤의 스메르쟈코프 난 네가 두려워 넌 아버지를 닮아있어라는 가사처럼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사생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아있는 스메르의 캐릭터성을 전면에 배치한다또한 다소 혼란스러운 스메르의 심리 상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가 바로 이 발작이기도 하다.

<발작>은 스메르의 모든 정서를 압축해 담아낸 넘버답게 스메르가 거의 유일하게 따르는 인물인 둘째 형 이반에 대한 언급 역시 등장한다스메르는 극의 후반부에 다다르기 전까지만 해도 이반에 대한 추종만을 드러내지만 아버지를 네가 죽인 거냐며 묻는 이반의 말에 당신이 죽였잖아라는 답과 함께 자신의 손으로 이반에 뺨에 피를 묻히던 순간부터 그 추종은 정체 모를 기묘함으로 변화한다그 상태에서 이반이 스메르의 목을 졸라 죽이려 하면서 넘버 <발작>은 시작되는데스메르는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이반의 팔을 붙잡고는 이반의 당황과 공포 섞인 표정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큰 동요 없이 곡을 전개한다스메르가 이전에 나타내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바로 이 장면에서, ‘제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건 당신이 오만했기 때문입니다라는 잠시 짧게 스쳐 지나갔던 스메르의 대사처럼 충성적이면서도 적대적인 그의 이중성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특히 넘버의 극후반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이반을 지칭하는데, ‘당신의 헛소리는 멋지지만 너무 나약해라는 가사는 이반에 대한 스메르의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이어지는 당신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어라는 가사는 야만적인 아버지를 지식인으로서 경멸하는 이반에게 당신 역시 그의 아들이기에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다소 공격적인 속내를 내보이지만 바로 뒤에 따라붙는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당신은 까라마조프가의 힘을 내게 알려주었으니까라는 가사는 아버지를 죽인 스메르의 살해 행위의 궁극적이면서도 순수한 동기는 바로 당신의 기대’, 즉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이반의 기대에 화답하기 위해서였음을 알려준다이러한 역설에서 그동안 극을 진행해오며 층층이 쌓여왔던 스메르의 이중성은 정점을 찍는다.

<발작>이 끝난 직후 스메르가 본인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점에서이 넘버는 비단 스메르의 심리뿐만이 아닌 스메르가 살아온 모든 삶지녀온 생각스쳐 지나간 상념 모두를 한 번에 아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스메르의 삶 속에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이 넘버 속에서 누군가의 연보를 읊듯 하나로 길게 이어져 그의 온전한 심상을 완성한다.

 

지금까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속 네 명의 형제들이 지닌 이중성이 각각의 인물에게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그들의 이중성은 단지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극 전체의 주제로 아우러진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공연되는 동안 거의 매 순간 등장하는 중요한 소품인 붉은 장미는 여러 장의 꽃잎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장미의 형태처럼 층층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형제들 내면의 이중성을 상징한다형제들 저마다의 속마음들이 한데 모이고 이리저리 섞여 결국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낱개로 분리된 장미의 꽃잎들이 무대의 단상 위로 함께 흩뿌려진다또한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이중성이 비단 작품 내 인물의 특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 인간 모두가 지니고 살아가는 공통적인 관념이라는 사실을 내비친다종국에 그들의 이야기는 십자가 모양의 벽을 통해 들어오는 흰빛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듯 사라져버리지만까라마조프 가의 혈류에 깊숙이 깃든 발작처럼 신비로운 이 작품의 인상은 관객들의 뇌리에서 좀처럼 증발하지 못할 것이다.


파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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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르페
  •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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