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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 보존의 법칙(장류진 - 「도움의 손길」)

  • 작성자 김캐슈넛
  • 작성일 2021-01-08
  • 조회수 1,538

현대 사회는 엄격하고 차가운 경제원리로 집단을 감싸 쥔 채 정확한 시각으로 향한다. 합리적인 인간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이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랑, 관계는 더 이상 독립을 열망하지 않는다. 시스템 안에서의 공생이 이들의 변경된 목적지이다. 장류진의 소설은 소설을 통해 굳이 말하고자 하는 고리타분한 교훈이나 눈물 나는 감동은 없다. 대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지속적인 실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존재한다. 소설 속에서 행동하고 움직이는 각 개인 -소시민- 은 가장 평범하고 특출난 것 없다. 그러나 현대인의 ‘선'을 명민하게 파악하고 관계 속의 희로애락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센스를 체득한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소설의 메인이다.

 

「도움의 손길」에서는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딩크족 기혼 여성이 등장한다. 그는 ‘대출을 끼고 있긴 했’(130p)지만 자신 명의의 집을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리모델링한다. ‘백화점 리빙바이어로 일함’(130p)으로써 높아진 수준의 인테리어는 여태껏 자신이 소유해 보지 못한 중압감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 집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내 것 같지 않았’(130p)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것을 ‘손님의 시선’(130p)으로 본다는 낯섬이 마치 갓 구매한 귀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행동과 겹쳐보인다. 누구나 새것 특유의 곧 사라질 깨끗함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로 ‘그 청결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131p)다고 생각했다. 가사도우미를 고려해보았지만, 자신도 피고용자의 처지에서 누군가를 ‘부린다’(131p)는 것이 내키지 않아 보류 했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 동료들의 선험을 목격하고, 회유와 설득에 끌려 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했다.

 

이 불안한 소유 감각과 이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은 기대치에 맞지 않아 바꾼 세 명의 도우미를 넘어 온 네 번째 아주머니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 네 번째 도우미는 다른 도우미와 다르게 말을 하는 중 ‘대뜸 팔뚝을 때리기’(133p)도 하고, ‘은근한 반말과 아는 척’(134p)을 하며 부정적인 인상을 새겼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완벽한 청소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저 성격이 나와 다른 도우미로 생각하려는 찰나, “근데, 애는 왜 없어?”(136p)라는 질문으로 사(私)의 경계를 밟는다. 뒤끝이 찝찝한 그는 ‘청소만 잘하면 그만’(137p)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도우미의 침범은 계속된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141p)기도 하며, ‘출근하는 시간이 늦’(147p)어지고, 자신의 오해로 생긴 일을 적반하장 하며 책임 전가를 하기도 하는 등, 도우미는 계속해서 고용-피고용자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겨짚는 일을 계속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당을 칼같이 챙기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창틀 청소를 추금 1만 원에 화색이 돌며 무리 없이 해 나가는 모습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돈을 주면서도 불만이 쌓여가는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는 그의 급한 미팅으로 도중에 외출하여 돌아왔을 때 급격히 무너진다.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퇴근한 것을 시작으로 샷시 구석에 뭉쳐있는 먼지, 청소기 안 남겨져 있는 먼지들, 터질듯한 쓰레기봉투, 심지어 자신이 먹고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편의점 빵 봉지, 바닥에 까맣게 쌓여있는 먼지는 하나하나를 찾을 때 마다 그를 더욱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화장실의 광이나는 수도꼭지와 대비되는 욕조와 세면대의 더러움이다. 솔직하지 못한 채 꼼수를 쓰는 도우미를 더 이상 참기 힘들었던 그는 도우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그 다음 돌아온 “격주가 아니라 매일 와달라는 집이 있어서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못 오겠”(155p)다는 대답과 “...대충 먹을 거는 주고 그래야 아줌마들이 좋아해. 새댁이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155p)는 마지막까지 그에게 답답함과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남겨 둔 채 그를 떠났다.

「도움의 손길」은 나에게 고용-피고용을 넘어 모든 사람과 계층, 집단 간의 관계는 젠더, 계급, 세대, 환경, 자본의 문제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듯하였다. 이 복잡한 조건하에서 사람의 관계는 호(好)와 불호(不好), 내(內)와 외(外)와 같은 이분법적 결정으로는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우리가 아르바이트생이 사업장에서 현금을 절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체로 나쁜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결과의 과정에서 수많은 상황과 결정을 선택했어야 했고, 그 사람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요즘 저널리즘계에서 가장 유명한 용어 두 개가 있다. 가짜뉴스(Fake news)와 팩트체킹(Fact-checking)이다. 거짓 정보로 여론을 오도하고 조작하는 일과 올바른 사실만을 정립하고 오보를 정정하는 일이 주요 논점으로 부상한 것은 이미 우리가 경색된 시각을 갖고 더 이상 확장하지 않으려는 시도를 사회가 포착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더는 선의의 피해자와 악의의 수혜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들 간의 적극적인 합의와 앎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김캐슈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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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김캐슈넛님 안녕하세요. 여지없이 김캐슈넛님의 독해와 글쓰기 실력이 잘 드러나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장류진 작가님은 참 천원, 만원에 사람 마음이 손쉽게 종종거려지는 디테일한 상황을 잘 묘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김캐슈넛님이 지적해주신 부분부분들에 유의하며서 이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만원에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공적인 관계 맺기와 그 허들을 한 번 넘자 사적인 영역으로 점차 침범해오는 상황이 종교, 반찬, 출산 등의 참견의 영역들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이 소설에서 잘 드러나서 읽을 때 가슴에 실금이 그어지는 기분을 느꼈었는데 김캐슈넛님도 같은 감상이셨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어쨌든 중산층 새댁의 시점을 통해서 가사도우미일을 하는 중년 여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계급적인 짜증들이 묻어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이 두 여성은 고용관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사 모녀관계 같은 지점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중년 여성의 존재는 화자에게 끊임없이 불편함을 촉구시키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김캐슈넛님께서도 지적해주셨다시피 이 가사도우미 여성을 결과적으로 진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 시점 축소에 대해서도 한발짝 떨어져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겠죠. 만원에 준하는 노동을 했는지 점차 팩트 채킹에 골몰하게 되는 화자가 자신을 합리적인 소비자로 성립시키며 이 중년 여성을 불합리한 노동자로 보이게 하니까요. 넘쳐나는 가짜 뉴스 시대에 팩트체킹에 대한 강박이 시야를 확장하지 않으려는 반응이라는 김캐슈넛님의 지적에 상당히 공감이 많이 했습니다. 장류진 작가님이 이 소설 이후에 연수라고 하는 소설도 내셨는데 젊은 여성과 중년기 여성에 대한 다른 관계성을 그려낸 작품이라 나란히 읽어보며 비교해보면 독서의 재미가 더 더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답니다. 근래 여러 차례 김캐슈넛님의 글을 보면서 여러모로 작품을 분석하시는 방식이 날카롭다고 많이 느꼈는데, 앞으로도 이 게시판에서 식견 나눠주시면 제게도, 다른 글티너 분들께도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또 다른 글로 만나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 2021-03-14 13:57:03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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