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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만 불편해? - 한강, 『채식주의자』

  • 작성자 김캐슈넛
  • 작성일 2020-12-29
  • 조회수 1,000

나는 트위터를 자주한다. 다른 많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고 왜 트위터를 먼저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의 특색, 강하게 느껴지는 공동체성, 비주류의 사람들이 콜로니의 형태로 모여 있는 그곳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채식주의’라는 것을 밀접하게 느낀 곳도 이곳이었다. 스스로 채식식당을 공유하고, 레시피를 공유하고, 비윤리적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안타까워하고 육식에 저항하려는 움직임, 그 행동이 매우 흥미롭게, 마치 길가의 잡초처럼 생존의지가 보였다. 이것이 내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게 된 계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 하나를 꾸게 된 이후 비건(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이 된다. 그 새벽에 가만히 나와서 냉장고를 서 있는 장면과 그 다음날 아무런 내색 없이 집 안의 고기를 전부 버리는 것 은 독자로 하여금 약간의 소름이 끼치게 한다.

‘고기를 수 없이 먹어왔던 집안에서 길러진 사람이, 식성이나 체질이 그런 것도 아닌 사람이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느낌으로 시작된 소설은 문체와 전개의 흡입력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하였다. 그녀의 꿈의 이야기는 마치 공포게임처럼 그로테스크 해 보였다. 요새는 심리적으로 공포를 주는 게임도 있지 않는가, 마치 그러한 느낌이었다.

18면과 19면의 그녀의 꿈을 보여주는 문단은 왜 그녀가 채식을 시작했는가. 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꿈은 계속 변화되고 확장되어간다. 고기를 먹는다― 라는 일차적인 것부터 점점 처음으로, 태고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흐름을 보면서 질문은 변화되어갔다. “인간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을까? 사회적 구속을 제거한 상태의 인간은 어떠한 모습인가?” - 그녀는 메말라갔다. 더욱 쇠약해져 갔다. 그녀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또 하나의 의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마치 나무뿌리처럼 그녀를 지배해 나갔다. 천천히 뿌리 내리지만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도록 변해간다.

 

나는 그녀의 폭력의 과거, 같은 과거 – 다른 기억 의 괴리, 어긋난 부정(父情)이 쌓이고 모여 터뜨려진 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과 그 시초라고 생각한다. 자기 딸을 문 개를 잡아 음식을 만드는 기억은 아비로써는 딸을 위한 마음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붉은 거품을 문 개가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며 고기, 육식과 존귀한 생명의 상대성이라는 비윤리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혐오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곧 그 숨겨둔 의식은 요리를 하던 중 피를 맛봄으로써 쌓아둔 둑이 터지는 듯이 외부로 표출된다. 그 행동의 주된 표적은 가족과, 그녀의 남편이 된다.

그녀의 남편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아주 수직적 구조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것을 통해 나는 ‘그’를 정형적 사회의 형상의 비유로 생각하였다. 그녀의 지향성에 걸림돌이 되는,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 이 되는 것이다. 남편의 말 중,

“오늘 잘 해야 돼. 사장이 부부동반 모임에 과장급을 부른 건 내가 처음이야. 그만큼 날 잘 보고 있다는 거야.”

는 우리가 가장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의 도회적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 영혜는

‘웃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은 채 그 여자의 우아한 얼굴을 쳐다보’

면서 자신과 - 사회와 관계에 대한 단절을 이끌어나가고, 식물화(植物化)를 진행하는 것이다. 일련의 사건과 퍼포먼스 행위로 영혜는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진행한다. 이 행위의 예측된 결과의 마지막 장면, 마치 사람들이 가장 많은 병원 입구의 ‘물이 없는 분수’ 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마치 식충식물 처럼 동박새를 잡아 베어 먹은 그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사회를 초월하려 노력한 영혜의 노력과 그 비참한 결과를 책에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육식을 하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며, 이 소설에서의 ‘폭력’을 의미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만으로 화를내고, 뺨을 때리고, 거짓말을 한다.

나는 위의 생각과 더불어 텍스트 오컬트 적으로 해체하여 읽어나갔다. 영혜의 탈사회적(脫社會的)행동을 마치 그녀의 무병(巫病)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꿈을 꿨어.”라는 대사 자체에도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정형의 형태인 꿈 이란 형태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받는 그녀의 행동과 태도가 더욱더 신빙성을 주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는 우리가 밤에 꾸는 꿈이 제 3의 존재 – 신 – 과 연결된다는 이야기의 글을 읽은 적 있다.

영혜 – 꿈 – 신

으로 연결되는 그 통로에서 여럿 정리되지 않은 형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혼란해하는 모습을 소설 내 퍼포먼스로 나타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요소에 가장 걸맞은 사람은 영혜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내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주 조용히,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그녀가 이미 이 세계에서 커다란 식물이 되어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장 고요한 산 속에서, 가장 크게 물구나무 서 있는 영혜를 생각한다.

한없이 힘들지만 꿋꿋이 존재하는 그녀, 아니. 나무.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 한강,「나무 불꽃」 중에서.”

김캐슈넛
김캐슈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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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 보존의 법칙(장류진 - 「도움의 손길」)

현대 사회는 엄격하고 차가운 경제원리로 집단을 감싸 쥔 채 정확한 시각으로 향한다. 합리적인 인간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이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랑, 관계는 더 이상 독립을 열망하지 않는다. 시스템 안에서의 공생이 이들의 변경된 목적지이다. 장류진의 소설은 소설을 통해 굳이 말하고자 하는 고리타분한 교훈이나 눈물 나는 감동은 없다. 대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지속적인 실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존재한다. 소설 속에서 행동하고 움직이는 각 개인 -소시민- 은 가장 평범하고 특출난 것 없다. 그러나 현대인의 ‘선'을 명민하게 파악하고 관계 속의 희로애락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센스를 체득한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소설의 메인이다.   「도움의 손길」에서는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딩크족 기혼 여성이 등장한다. 그는 ‘대출을 끼고 있긴 했’(130p)지만 자신 명의의 집을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리모델링한다. ‘백화점 리빙바이어로 일함’(130p)으로써 높아진 수준의 인테리어는 여태껏 자신이 소유해 보지 못한 중압감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 집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 내 것 같지 않았’(130p)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것을 ‘손님의 시선’(130p)으로 본다는 낯섬이 마치 갓 구매한 귀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행동과 겹쳐보인다. 누구나 새것 특유의 곧 사라질 깨끗함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로 ‘그 청결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131p)다고 생각했다. 가사도우미를 고려해보았지만, 자신도 피고용자의 처지에서 누군가를 ‘부린다’(131p)는 것이 내키지 않아 보류 했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 동료들의 선험을 목격하고, 회유와 설득에 끌려 도우미를 고용하기로 했다.   이 불안한 소유 감각과 이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은 기대치에 맞지 않아 바꾼 세 명의 도우미를 넘어 온 네 번째 아주머니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 네 번째 도우미는 다른 도우미와 다르게 말을 하는 중 ‘대뜸 팔뚝을 때리기’(133p)도 하고, ‘은근한 반말과 아는 척’(134p)을 하며 부정적인 인상을 새겼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완벽한 청소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저 성격이 나와 다른 도우미로 생각하려는 찰나, “근데, 애는 왜 없어?”(136p)라는 질문으로 사(私)의 경계를 밟는다. 뒤끝이 찝찝한 그는 ‘청소만 잘하면 그만’(137p)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도우미의 침범은 계속된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141p)기도 하며, ‘출근하는 시간이 늦’(147p)어지고, 자신의 오해로 생긴 일을 적반하장 하며 책임 전가를 하기도 하는 등, 도우미는 계속해서 고용-피고용자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겨짚는 일을 계속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당을 칼같이 챙기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창틀 청소를 추금 1만 원에 화색이 돌며 무리 없이

  • 김캐슈넛
  • 2021-01-08
비틀린 사회와 끊임없는 연대 - 이혁진, 『누운 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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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캐슈넛
  •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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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김캐슈넛 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서평을 남겨주셨는데요. 이 책을 접하게된 계기와 감상, 그리고 분석들까지 잘 적어주셔서 김캐슈넛 님께서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압축적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김캐슈넛 님께서 잘 지적해주신대로 이 소설은 가부장적인 가족 사회 시스템과 채식주의의 관계를 통해 정상가족 내의 한 여성이 어떤 파괴적인 욕망을 품게되는 지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개를 무참히 살해하여 잡아 먹은 영혜의 아버지, 시종일관 명령조로 아내를 대하는 영혜의 남편,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영혜의 남동생, 취약한 영혜를 예술의 소재로 삼아 성적으로 유린하는 영혜의 형부 등 이 가족 내의 남성 구성원들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모습과 영혜가 거부하기 시작한 육식주의 문화와 유비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 많은 생명들을 비윤리적으로 도육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또한 억지로 교미를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사의 폭력적인 관계들을 의문에 부치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데요. 그 점이 이 소설에 잘 나타났기에 많은 사람들이, 또 김캐슈넛님께서 이 작품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김캐슈넛님께서는 영혜의 꿈이 제3의 존재, 즉 신과 맞닿아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써주시면 글이 한층 더 분석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적인 비평에서 꿈은 억압된 것이 귀환하는 무의식의 장소로 보통 해석이 되는데요, 이 소설에선 영혜의 유년시절의 폭력적인 장면과 이와 결합한 욕망의 영혜의 꿈 및 환상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을 통해 드러나는 영혜의 이 비틀린 욕망들이 굉장히 급진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문명 세계의 질서에 대응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적인 것이라 해설해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 연작의 두 번째 소설에 형부가 영혜의 이런 욕망들을 포르노 예술의 소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폭력을 거부하는 여성의 몸짓, 김캐슈넛님의 표현대로 이 신적인 행위들이 현실 사회에서 다시 폭력적으로 유통되는 맥락도 고려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작품인데 꼼꼼히 읽고 자신의 목소리로 소설을 독해, 분석하고 또 이 게시판에 글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이 소설을 꺼내어 읽었네요. 그럼 또 다음 글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랍니다.

    • 2021-02-14 22:34:21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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