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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그날의 기억(‘미카엘라’를 읽고)

  • 작성자 핸지니
  • 작성일 2020-11-11
  • 조회수 811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그날의 기억(‘미카엘라’를 읽고)

10122 이예린

 

글을 쓰는 나에게, 한 작가님이 이런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있었다. 우울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는 오히려 담담하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소설가 최은영은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참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가이다. 그녀의 건조한 문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카엘라는 이별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인 미카엘라와 어머니는 이별의 당사자가 아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는 이별의 이야기는, 한 발짝 물러서 있기에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엄마는 교황님을 뵈러 서울로 올라오고, 미카엘라는 그런 엄마가 달갑지 않았다. 아는 언니네서 자겠다고 말한 뒤 미카엘라의 집을 떠난 엄마는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고 미카엘라는 그런 엄마를 찾아 떠난다. 광화문의 세월호 농성장, 엄마는 왜 그곳으로 가게 된 것일까.

잠잘 곳이 없는 엄마는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찜질방을 찾는다. 엄마는 찜질방 탈의실에서 만난 노인과 교황님이라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친구를 찾아 헤매는 노인을 따라 세월호 농성장으로 향한다. 엄마를 찾아 떠난 미카엘라는 엄마와 꼭 닮은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아가씨,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내 딸을 잊지 마세요. 잊음 안 돼요.”

우리 모두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만, 매일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날 죽은 아이의 이름도 미카엘라였다는 얘기를 듣자, 남의 일이라 느껴졌던 세월호 사건은 ‘나’의 이야기가 된다.

김동혁, 김지윤, 내 친구들 중에도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이름이 있다. 최은영 작가는 그로서 나도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되도록 만든다. 김동혁도, 김지윤도, 이예린도 모두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다.

 

왜 아무리 뉴스에서, 책에서, 영화에서 세월호 사건을 호소해도 내 마음 깊은 곳까진 와 닿지 않았던 걸까? 이제까지 나는 세월호 사건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저, ‘세월호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 하지만 최은영의 소설은 나를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가 되도록, 유가족이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로 인해 세월호 사건은 내게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도 그날 배에 있을 수 있었다고, 그날 배에 있던 사람이 우리 엄마였을 수도 나의 친구였을 수도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최은영의 건조하고 담담한 문장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우울함이 헤집어지는 것 같아 불쾌감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왜 내가 최은영의 소설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건지 알지 못했다. 최은영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록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고, 그로서 독자는 수많은 우울한 이야기들의 당사자가 되어야만 했기에, 어린 나는 그것을 견뎌내지 못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최은영의 문장들이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서평 초반부의 문장을 고치고, 이 소설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문장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주인공인 미카엘라와 어머니는 세월호 사건 당사자였다.’

‘미카엘라는 여자아이들의 흔한 세례명이었다.’

핸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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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핸지니님, 안녕하세요. 글틴 게시판에서 소통하고 있는 오은교에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서 정말 반가워요! 핸지니님 글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최은영 작가의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특히나 핸지니님께서 이 소설이 당사자가 아닌 많은 이들을 연루시키고 있으면서도 손쉽게 비극으로만 빠지지 않는다는 표현에 참 공감했어요. 저희는 비록 희생자나 생존자나 유가족 당사자가 아니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났었던 많은 부조리한 사건들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 공감했고, 함께 연대했었어요. 이를 통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주체로 결집되고, 현실의 많은 것들을 바꾸기도 했던 지난 몇 년이 주르륵 떠오릅니다. 비극을 완전한 비극으로만 묘사하지 않으려했다는 핸지니님 말씀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유가족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수 년 동안 많이 노력했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쳤던 영향력이 생각하면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이 무력한 피해자만으로 재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아마 그 마음에서 이 소설도 참사의 구체적인 순간을 세세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주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소설과의 연장선에서 김애란 작가의 입동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에 대한 세간의 시선들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설이에요. 혹시 이와 연관하여 독서를 이어나가고 싶으시면 함께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핸지니님 덕분에 최은영 작가의 소설책을 다시 펼쳤다가 완전히 빠져들어 모든 소설들을 다시 정독하게 되었어요. 본격적인 강추위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 혹독한 겨울을 맞으며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과 어쩐지 잘 맞는 책인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이 잊혀지는 것 같을 때마다 이 책을 읽고 싶네요. 좋은 책 상기해주셔서, 또 이렇게 감상까지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저희 글로 또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2020-12-20 14:38:43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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