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블랙홀 수감생활 ─ 미나토 가나에, 『고백』, 비채, 2007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8-12-30
  • 조회수 1,189

블랙홀 수감생활

─미나토 가나에, 『고백』, 비채, 2007

 

 

 

 

우주의 탄생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두었어요.(58p)

빅뱅(Big Bang)이란 어쩌면 이런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1학년 B반의 선생님을 맡았던 모리구치 유코의 고백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시간은 정지한 것만 같았고, 모두가 공포에 질렸던 순간. 유코의 딸, 마나미의 아버지가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유코 스스로 밝혔을 때, 학생들이 뒤늦게나마 HIV에 감염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숨을 멈췄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신의 딸을 죽인 두 소년 A와 B에게 직접적으로 HIV 감염을 조장했다는 유코의 고백은 반 전체가 도망치려고 할 정도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유코는 끝까지 덤덤하고 잔인하다. 학급 교체는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공포와 두려움, 경악만이 뒤섞였던 초기 우주에서 교실 전반을 감돌던 에너지는 급격하게 팽창하며 눈에 띄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여러분도 유익한 봄방학을 보내세요.”(59p) 말을 끝맺은 순간 유코는 우주의 반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셈이었다.

 

유코는 의도적으로 우주를 전부 생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껏 엔딩 화면에 나오는 몇 학년 몇 반 학생들이라는 자막이 고작인, 그 외 수많은 학생들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15p) 나머지 절반을 만들어내는 건 이듬해, 2학년 B반이 된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B반은 착실하게 그 역할을 이행해간다.

폐쇄적인 반은 정보 공유가 빠르다. 누구도 소년 A와 B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소년 A가 와타나베 슈야이고 소년 B가 나오키 시모무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둘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학교에 나와 따돌림을 감내하거나,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자를 택한 슈야가 새 학기 첫 날 학교에 나옴으로서 입자들 사이에 반입자가 생성되었고, 우주를 만들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었다.

입자들이 결합하면서, 교실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분위기는 점점 주류가 되고, 동참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배제해 슈야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사회적 소멸과도 같은 일이었다. 등교를 하지 않는 나오키에게 보낸 평범한 롤링페이퍼가 사실은 죽음을 강요하는 메시지였다는 걸 고백하던, B반의 반장 미즈키가 했던 말처럼. 다들 비정상적인 공기를 즐기기 시작했던 겁니다.”(81p)

 

 

 

블랙홀: 자그마한 거품이 하나, 톡 터지는 소리가 났다(232p)

 

그러나 모리구치 유코는 가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원시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는 블랙홀 안에 갇힌 가장 큰 피해자이며, 그 블랙홀은 소년 A와 B, 즉 슈야와 나오키로부터 만들어졌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57p)

블랙홀은 어떤 천체의 내부 압력이 천체의 자체 중력을 상쇄시킬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결혼을 약속한 상대가 HIV에 걸려, 아이를 위해서라도 결혼하지 말자는 통보를 받은 모리구치 유코에게 삶을 버텨나가게 하는 힘은 딸인 모리구치 마나미뿐이었다. 유코에게 마나미는 어떻게든 지켜야 할 대상이었고 동시에 모든 삶이었다. 그것이 허무하게 파괴되었을 때, 유코라는 하나의 별은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유코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 감금되었다. 어떤 물리법칙도 통용되지 않는, 지평선으로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무한히 느려져 결국에는 멈춘 것 같이 보이는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코는 살아있었다.

일 초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 유코는 슬픔에 온전히 빠져 있지 못했다. 주위의 환경이 유코의 나약함을 비난했다. “역시 엄중히 주의를 주지 못했던 교사가 나쁜 걸까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35p)

분명히 사건을 실행에 옮긴 것은 학생인데도 오히려 관리 소홀로 징계를 받는 동료 교사와,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지역 신문에 실린 마나미의 수영장 추락사 사인과, 마나미가 밥을 주러 다니던 개집에서 발견된, 개조된 솜토끼 지갑 따위의 것들은 유코에게 마음껏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책임은 자신의 아이 관리에 소홀했던 유코에게 돌아갔다. 범인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코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선을 공유하지 못했다. 의지하거나 기댈 사람도 없이 홀로 감내해야 했던 그 영원의 시간 동안 유코는 마나미의 살인사건을 끊임없이 본인에게 상기시켰다. 고통에 무뎌진다는 건 통점이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단지 익숙해질 뿐이었겠지만, 자신의 딸을 살해한 두 소년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유코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28p)

 

유코의 이야기는 지면에 담긴 것보다 지면에 담기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유코가 끝없이 자신을 좀먹으며 마나미의 죽음을 목격하고, 사고사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모든 이야기를 신난 범인에게 생생하게 듣고, 마나미를 살해한 소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2학년 B반의 교사 요시키 데라다와 만나고, 마나미의 아버지이자 전 결혼 상대인 마사요시 사쿠라노미야의 혈액을 채취하고, 그 혈액을 우유에 주사하면서, 그 모든 과정 동안 마나미의 죽음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이야기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너무 큰 고통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그것을 의도했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유코의 간단한 고백으로, 강단에 선 단단한 유코의 뒷모습에 담긴 엄청난 공허와 슬픔을 독자의 온몸으로 느끼게 유도한다.

유코는 목소리가 떨리는 일도 없이, 주저하지도 않고 덤덤히,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사람은 본인의 반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털어놓는다. 마사요시 사쿠라노미야나 자신의 죽은 딸에 대한 도를 넘어선 질문이 들어와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눈을 뜰 때마다 이제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 보드라운 뺨이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같은 답을 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미루지도 않고 요연하게 진행한다. 마나미와 함께 본인의 감정마저도 살해당한 것처럼.

 

그래서 유코의 이야기에는 쓸데없는 사족이 없다. 물론 고백의 첫머리는 산만하고 장황하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모두 귀결되어 연결된다는 점에서 세밀하고 정교하다. 그건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블랙홀과도 닮아있다. 주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본인은 타격을 입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더하여 유코의 이야기는 청자를 제한한다. 상대와 눈을 맞추며 대면하거나 목소리를 들려주는 직접적인 화법은 유코의 반 아이들이 그러했듯,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29p)를 비롯하여 숱한 질문과 의심을 동반하며, 손을 들고 반박당할 수 있는 위치이므로 보다 치밀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유코는 그것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러나 나머지 네 챕터의 인물들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별들처럼 요동친다. 고백을 하는 내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주저하고, 불안해한다. 자기 회고적인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망설임과 함께 드러나는 감정들의 대부분은 적나라하고 날것이다. 물론 열다섯 아이의 미숙함을 탓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치 채 정리하지 못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며 억지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고백의 수단 또한 인물들의 불확정성을 내보이는 데 일조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화법을 내세운 유코와는 다르게, 살인에 직접 참여한 슈야와 나오키는 각각 개인 홈페이지와 해리성 회고를,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소년들과 함께 무너지는 나오키의 어머니와 미즈키는 각각 일기와 문예지에 제출하는 원고를 매개로 택한다.

이 매개의 방식들은 타인에게 본인을 다각도로 조명할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직접적인 비난을 받지 않는다.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무의식적이고 자기방어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완벽하게 객관적이며 논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슈야 역시도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 이들은 더더욱 무너지기 직전처럼 굴었고, 실제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꼭 별이 펑, 하고 터지려는 것처럼.

별의 폭발, 즉 초신성이 생성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Ia형 초신성은 에너지를 한계 이상으로 받아들였을 때 생성된다. 전자 축퇴합(electron degeneracy pressure)으로 중력붕괴를 이겨내는 백색왜성이 찬드라세카르 한계─유체 정역학 평형에 있는 백색왜성의 최대 질량─에 도달하면, 별은 더 이상 플라스마 대부분을 유지할 수 없어 붕괴하기 시작한다. Ia형 초신성이 아닌 초신성은 질량이 큰 항성이 어느 순간 핵융합이 불가능해져 자체 중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중심핵이 붕괴하면서 만들어진다. 물론 중심핵 붕괴 현상은 서로 다른 기작을 통하여 일어날 수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차차 유코의 우주가 타인의 우주에 간섭하여 어떻게든 그들의 별이 무너지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소리. 슈야가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때 들었다던 소리. 이는 곧 별이 폭발하는 소리다. 자신이 폭발하는 소리다. 아무것도 견디지 못하고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을 때 들리는 소리. 아마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를 더 이상 용서하지 못할 때 들리는 소리.

모두가 각자의 고백을 할 때, 어디에서나, “물거품이 투두둑 터지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267p)

 

유코의 고백이 유언 같은 고백이라면, 다른 이들의 고백은 자기정리의 수단에 불과할까. 잔인하고 안타깝지만, 유코의 고백의 서늘한 명료함과 대비되는 고백은 그렇게 보인다.

 

 

 

별의 일생: 네게 나를 벌할 권리가 있어?(91p)

 

블랙홀을 관측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다. 우주는 원래 그렇다. 눈앞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말 그대로 불가사의하고 믿기 어렵다. 여러 물리공식들과 관측되는 현상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일궈낸 블랙홀에 대한 추측은 무수하나, 아무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으며 가까이 간다고 할지라도 관측에 앞서 모든 통신장비가 블랙홀이 방출하는 에너지들로 인해 고장날 테고,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의 기술력으로 블랙홀에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추측이 옳은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측정 불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그렇기 때문에 블랙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살인 사건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전개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중학생이 담임교사의 딸을 살해했다는 매력적인 소재라면 더더욱. “이건 지금까지 별로 유례가 없는 유형이다”(245p)는 슈야의 말대로, 블랙홀처럼 흥미롭고 신선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어갈 힘도, 가능성 또한 넘쳐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나토 가나에는 블랙홀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의 지분을 줄였다. 대신 유코의 우주가 간섭하여 결국 부서지고야 만, 다른 우주들의 일부와 별들에게 집중했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빅뱅 이전의 우주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동원된다. 개중 타 물리학 현상들의 허점을 보완하는 유력한 이론은 다중 우주론(multiverse)이다.

매우 작지만 0이 아닌 길이를 지니며 10차원에서 정의된 끈이 진동함에 따라 만물을 구성하는 끈이론(string theory)과 끈이론을 11차원까지 확장시켜 다양한 막─근원적 끈들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할 때는 한 차원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는 판단 하에 더 이상 끈이 아닌 막으로 불린다─을 도입해낸 M이론(M-theory)이 다중우주론을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엮어낸다. 이 M이론이 적용된 선대폭발이론에 따라, 마나미의 죽음에 의해 발생한 블랙홀은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

 

유코가 블랙홀 발생 초기부터 그 안에 갇힐 운명이었다고 해도, 블랙홀이 집어삼킨 것은 적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다른 우주와 충돌한 탓에, 자신의 붕괴를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우주를 함께 붕괴시켰다. 유코의 치밀한 설계가 아니었더라도 소년 A와 B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필연적으로 유코의 우주는 나오키와 슈야의 우주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테였고, 소년들은 앞으로 평범한 삶과는 먼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 하던 슈야는 본인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높이 날다가 그것을 부정당하는 순간 자멸했을 테고, 뭐 하나도 잘 하는 게 없어 실패작이라고 불리기를 두려워하는 나오키는 타인이 수시로 당기는 트리거에 본인은 살인자라는 내면화가 겹쳐져 버티지 못했을 테였다.

그러나 그것은 간접적인 나비효과이다. 마치 북반구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남반구에 태풍을 일으키듯. 태양이 뿜어내는 플레어가 지구에 잠시간 통신장애를 비롯한 불편함을 일으키듯. 게다가 나오키와 슈야는 특정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나마 파멸을 예견할 수라도 있는 것이지, 소설 밖으로 나와 보면,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어깨를 펴고 다니는 가해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솜방망이 처벌도 비일비재한 현대사회에서, 심지어 범죄자가 소년법에 의해 보호받는 어린아이라면 소설 속의 청소년 존속살인범, 루나시처럼 “아동 자립 지원 시설 같은 곳에서 작문이나 깨작거리다가, 몇 년 후 뻔뻔한 얼굴로 사회에 복귀할 게 뻔했다.”(33p)

이것이 유코가 다른 우주를 부수기로 결심한 이유이다.

 

그러나 다시, 유코는 가해자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나토 가나에는 부서진 우주 자체를 조명하기보다는 붕괴되기 전의 우주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인이 아닌 타인을 서술자로 내세워 잔인함을 더했다. 맹목적인 믿음에서 파생되는 파멸은 필연적이다.

미즈키의 고백은 본격적인 소년들의 고백에 앞서, 정말 슈야와 나오키만이 나쁜지를 묻는다. 미즈키는 소년 A가 아닌 슈야를 알았고 소년 B가 아닌 나오키를 알았으며, 그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었다. 등교거부를 하는 나오키에게 원거리 언어폭력을 가하는 아이들과, 등교를 한 슈야에게 직접적인 따돌림이 가해지는 광경과, 그 따돌림에 동참하지 않는 자신에게까지 가해진 제제, 본인을 베르테르라고 지칭하며 오히려 나오키를 지옥으로 밀어넣는 B반의 담임교사 데라다까지. 그 모든 것이 이상하고 기괴했으며 자신 나름의 신념과는 정확히 반대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유코가 설계해 둔 우주의 일부인지도 모르고.

유코 선생님, 나오키와 슈야가 살인자라면, 여기 있는 아이들은 무엇입니까?”(92p)

미즈키는 물었다. 거기 있는 아이들이 유코의 체스말인지도 모르고.

 

물론 마나미를 살해한 소년들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존재했다.

와타나베 슈야에게는 뛰어난 어머니가 있었다. 슈야를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나, 슈야를 낳기로 한 결정 때문에 뛰어난 연구자였던 본인의 커리어를 모두 버려야만 했고, 억압된 감정과 욕망을 잘못된 방식으로 슈야에게 풀곤 했던 어머니.

““너만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매일같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계기는 뭐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227p)

그러나 슈야는 어머니의 앞길을 가로막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무의식에 뿌리 깊은 죄책감을 심어두었다.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227p), 하고 합리화를 하면서. 어머니가 아동학대 때문에 접근금지 처분을 당했어도, 더 이상 보지 못해도, 어머니가 원하던 대로 우수한 인재로 자라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슈야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아이야.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뤄줄 사람은 슈야뿐이란다.”(226p)

다만 그 꿈은 굉장히 한정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어서, 슈야는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온통 뒤틀린 마음을 지녀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유년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비틀린 감정이 슈야의 내면세계를 장악했고, 결국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재앙이 되었다. 무엇이든 태워 목숨을 연명하는 항성같이.

시모무라 나오키는 백색왜성을 닮은 소년이다. 내세울 것 없는 세간의 실패자. 애당초 가지고 태어난 능력도 중간을 웃돌지 못했으며, 어떻게 발버둥을 쳐 봐도 테니스부에서는 라켓을 한 번도 잡지 못했고, 어머니마저 다른 칭찬할 거리를 발견하지 못해 ‘착하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칭찬할 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착하다는 말로 둘러대는 것이다.”(167p)

나오키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감했으나 죽어도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다른 아이들과 자신이 어쩌다 비교될 때마다 비참했다. 특히 자신을 과보호하는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더더욱. 나오키는 수시로 땅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마치 동족혐오를 하듯, 나오키는 자신을 이용하려고 들었던 슈야의 실패를 조롱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멍청하긴. 사실은 실패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189p)

인정받고 싶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실패작이 되고 싶지 않다. 쌓여만 가는 욕구들은 나오키의 안에서 몸집을 불려갔고, 그 욕망을 풀어낼 적절한 공간 또한 없었다. 그것이 나오키를 곪게 만들었다.

그만해! 나는 실패작이 아니야! 실패작이 아니야!”(215p)

 

각각의 우주들은 잘 짜인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왜곡된 인정 욕구, 다른 하나는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 살인 동기 또한 이토록 명징하다. 독자를 소설 안으로 끌어와 살인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과 어쩌면 일말의 동정심을 부여한다.

소년들은 꼭 본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독백을 이어간다. 합리화와 정당화가 한데 뒤섞인 고백을. 나는 이렇게 힘들었으니, 살인쯤은 저질러도 괜찮잖아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살인을 저질렀지만 사실 이래서였는걸요. 끝끝내 무너지면서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만 같다. 소년들의 사고방식과 영악함은 이미 열다섯을 넘어섰으나, 가끔씩 목소리에 비명처럼 배어 나오는 것 같은 두려움은 그 나이 또래의 생각처럼 보여 더더욱 이질적이면서도 안쓰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토 가나에는 이 둘의 상황에 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미화될 수 있는 소재를 외려 그들에게 과하게 이입된 두 명의 다른 인물─미즈키와 나오키의 어머니─을 등장시킴으로서 거부감을 들게 만듦과 동시에 계속해서 독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린다.

소년 A와 B를 동정하고 옹호한다면 너는 소년 C가 되는 것이라고.

혹은 소년 A와 B의 손에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미즈키나 나오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반대로, 유코는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유코 본인을 가해자로 타자화한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말을 맥락을 제하고 본다면 한없이 따뜻하고 정의로우나, 자신이 저지른,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일들을 스스럼없이 나열하고서 뱉어낸 말은 오히려 반어법으로 들릴 정도로 섬뜩하고 공포스럽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종이팩에 든 우유라 가능했던 일이지만,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놓았어요. 제 피가 아닙니다.

[…]

두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나미에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그리고 학급 교체는 없으니 모두 결코 두사람을 몰아내지 말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주세요.”(58p)

“K대학 이공학부 전자공학과 건물 제3연구실. 그곳이 폭탄을 세로 설치한 장소입니다. 폭탄을 제작한 것도, 스위치를 누른 것도 와타나베 군 본인입니다.

어떤가요, 와타나베 군.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자, 와타나베 군의 갱생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286p)

유코는 결코 본인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으면?’ 그렇군요, 부디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말해두지요.”(58p) 유코에게서는 감추지 않는 살기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갱생이라는 명목으로 저지르는 일들이 악행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만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행동한다. 블랙홀로 소년들의 우주가 찢긴 채 빨려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웃을 사람은 본인인 것처럼.

아이러닉하게도, 분명 학생들에게 제제라는 명목을 쥔 가해자는 유코이다. 그러나 이유 있는 당당함, 나쁘게 말하면 목표를 설정한 광기는 유코를 소설의 도입부터 끝까지 피해자의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같은 복수극인 『상처투성이의 악마』(2017, 야마기시 산타)의 원 피해자, 후지츠카 유리아가 이전의 피해를 빌미로 가해를 무리하게 정당화하던 것이 불쾌함과 함께 눈에 띄던 것과는 반대다. 오히려 미나코 가나에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잔혹할지언정 훨씬 깔끔하고 덜 폭력적이다.

 

 

 

종말과 종말 사이

 

아마 모든 우주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터지거나 쪼그라들 것이고, 그러기 전에 블랙홀로 여러 성운들과 별들은 흡수될 것이다. 한때 존재했던 우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다른 우주는 빅뱅을 맞이해 팽창할 것이고, 다시금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블랙홀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모두는 서서히 무너질 것이고, 그건 『고백』의 인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 중 한 명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블랙홀에 갇혀 버린 모리구치 유코이기를 바란다. 『고백』이 초반부터 꾸준히 시사하듯, 유코의 복수는 사실 유코의 몫이 아니다. 응당한 처벌은 사회와 법이 결정할 일이지만, 연일 가십거리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 사회라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악의에 상관없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형을 선고하는 법이라면, 과연 마나미는 누구에게 보호받아야 했는가. 유코는 누구에게 정의를 바라야 했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는가.

유코의 블랙홀은 아직도 다른 우주에 간섭하면서 부여받은 임무를 거센 중력으로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아마 자신이 증발해 우주와 함께 사라지기 전까지는. 혹여나 자신이 사라진다고 한들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라지는 순간까지 무엇 하나라도 더 앗아가려고 들 테다.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복수는 이토록 잔인하고 아프다.

그러니 이왕 엉망으로 망쳐 버릴 거라면, 온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리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방법이라면. 나오키도, 슈야도, 유코에게 제제며 갱생을 강요한 이 세계도, 전부. 어차피 지금 당장 유코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지원군은 어디든 있어도 없으며, 사건의 지평선 외부에서는 유코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 법이니까.

윤별

추천 콘텐츠

재능의 입증과 분류

재능의 입증과 분류 ─On point 기사에 대한 반박을 바탕으로   Abstract 우리는 재능이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바로 옆을 둘러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보인다. 재능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의 영향은 크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재능을 믿는 것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이 소논문에서는 그러한 기사들 두 개를 선정하여 논리적 허점을 파헤치며, 그 후 이상적인 재능분류의 모델을 설정하고 나아가 그렇다면 재능을 인정하면서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소고한다.   I. 서론 1. 연구동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경쟁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가 기본 토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의 기준이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해도 사회의 시선에 따른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일종의 계급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군가는 훨씬 발전해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머물러 있다. 완벽히 같은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을 임의추출하여 연구해도 둘의 연습시간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다. 노력이 전부라고 주장한다면, 노력하고도 실패한 모든 사람들의 실패원인이 노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것을 안다. 소위 재능이 노력한 방향으로 발달해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재능은 있으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노력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어’ 따위의 허황된 이상을 제시함으로서 독자들-특히 독자들의 연령층이 청소년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객관적으로 성인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신의 주관보다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린다-의 판단력을 저하시키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원인이 전부 노력이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하한다. 이것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문제점이다.   2. 연구목적 이 소논문에서는 On point에 실린 재능에 관련된 기사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서 배척되었던 재능의 기준을 바로 세운다. 선정한 기사는 On point 3에 실린 Are Malcolm Gladwell's 10,000 hours of practice really all you need(by Dan Vergeno, 2014, National Geographic Creative)와 The truth about talent: Can genius be learned or is it preordained?(Matthew Syed, 2011, the independent)로, 모두 재능과 노력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기사들이다. 이로서 인정해야 할 재능에 관한 이야기는 인정하고,

  • 윤별
  • 2017-12-31
우리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 김사과, 『천국에서』, 창비, 2013     0   “여기는 천국이야. 그런데 왜 나는 울지? 이건 결국 같은 얘기야.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지?”(천국에서, 337쪽)     1   <02>와 <미나>에 이르기까지 김사과의 작품들은 일관된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화를 주체할 수 없거나 무력하거나 슬프고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각자의 외줄을 타고 결국에는 끊어지기에 이르렀다.   “머리가 아파. 우울해. 죽고 싶어.”(미나, 40쪽) “나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울었습니다.”(02, 98쪽) “안 죽은 거 다 알아! 일어나 이 씨발년아!”(미나, 292쪽) “우리는 슬프네. 자꾸만 슬프네. 날이 저물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 그래서 우리는 기쁘네. 우리는 기쁘네.”(미나, 308쪽)   쉬어갈 틈조차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거지들은 지극히 명료하고 객관적인(척하나 굉장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김사과 특유의 문체로 서술되곤 했다. 각 인물들이 주장하는 폭력의 당위성은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어느 쪽에도 치중되지 않은 깔끔한 공연을 선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 찬찬히 살펴보면 감정을 온전히 배제한 문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미나>의 ‘이수정’이나 ‘김미나’, 혹은 <02>의 ‘이나’나 ‘나’가 문장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묻어 있다. 이야기에 매혹되어 김사과의 목소리를 따라가면 어떠한 모순도 없이 김사과가 의도했던 결말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정말 이것들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인지 작품 밖에서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그렇지 않다, 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현실을 완벽에 가깝게 투영한 김사과의 작품 속 배경과 인물들의 빈틈없는 설정들과는 달리, 극단에 가까운 사건들은 대부분 인물의 (불안정하고 날카로운) 심리 상태에 주로 의지하여 전개된다. 각별했던 친구를 죽이고 그 친구의 손윗형제와 행복하게 웃어 보인다던가, 인물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충동으로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 두 명을 연달아 죽이는 것은 이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사과가 그토록 표출하던 분노에는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화는 나는데 정확히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니 인물의 갈등을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정보만큼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타자화된 감정이나, 전작들의 소설적 배경이 되었던 입시 사회의 답답한 현실에 울분을 터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러면 김사과가 지향하는 세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굳이 답한다면, 어차피 이 세계는 썩어빠졌으니 모조리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며 그

  • 윤별
  • 2017-12-31
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사회에게 외친다 : 김사과, 미나 (퇴고)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숨겨지는 순간이 있다. 존재의 부재가 정상으로 판단되는 순간이 있다. 특히 타인에게 보이는 면모를 중요시하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이 이상현상들이 숨겨지고, 은폐되고, 또 공공연하게 포장되어 집단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문제점은 죄악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하고 마침내는 그들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든다. 여기 닫힌 입을 벌려 소리치는 작가가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눈앞에 들이밀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외면하고 싶어했던 진실, 이라고. 김사과가 지금까지 투고한 작품 중 걸작을 꼽으라고 하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미나>를 택한다. 물론 <02>와 <천국에서> 또한 그에 준하는 수작이나 미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표현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 선정이 천재적이라고 평해도 아깝지 않다. 신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영이>를 발표하던 시절부터 김사과의 독창성은 빛났고, 피크에 도달했을 때의 작품이 <미나>라고 볼 수 있겠다. <미나>는 이상향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이상향이 유토피아, 즉 미의식을 자극하는 순수함을 불러일으켰다면, 김사과가 펼쳐내는 이상향은 어지럽혀지고 멸종 직전의 세계인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병리학적 지점에서 <미나>의 주인공 수정은 정서적 결여와 분리장애, 그리고 경계선 인격장애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대체적으로 지니고 있는-그러나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각하는 행위조차 죄악으로 여기는-정신분석학적 문제들이다. 김사과는 이러한 사회의 염증을 그대로 직면하고 돌파한다. 또 다른 주인공 미나 또한 수정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둘 다 현대사회의 부조리함과 모순점을 인지하고 염증을 느끼며 증오와 경멸을 품고 있는 동시에 무관심한 태도를 내비친다. 둘은 사회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은 서로를 이해한다.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해관계에 기초한 관계이다. 명민한 미나와 수정은, 더 나아가 아이들은 세계에서 비추어지는 핑크빛 미래가 허상과 허영과 가식과 황홀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렇기에 세계가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개념과 질서와 규칙과 법률들을 배반하고 무시하고 증오한다. 아이들은 세계에서 감각을 제거하는 행위로서 연명한다. 세계에 대해 냉소적으로 일관하는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감각을 제거했거나, 무뎌지고 무뎌져서 이제는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수동적인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경멸이다. 경멸과 무관심으로 대응함으로서 아이들은 세계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성을 인정한 이들은 낙오자로 치부한다. 셔터를 내리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 윤별
  • 2017-02-1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선우은실

    윤별 님 안녕하세요? 추운 겨울 잘 보내고 계신가요. 먼저 윤별 님의 글은 분명히 이 작품이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러한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한편 글에 대한 글쓴이의 주장이 얼마나 잘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별도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오늘은 비평 기술의 방법(?)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작품의 인용은 인트로로 쓰이기도 하지만 비평 안에서의 인용의 큰 역할은 글쓴이가 이 작품을 읽어낸 것에 대한 적절한 ‘근거’입니다. 때문에 소설의 경우는 앞뒤 맥락이 함께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탓에 글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또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이 내용을 다 설명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겠으나 소설의 일부를 설명해주거나 소설 전체의 내용을 축약해서 알려주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은 독자를 누구로 설정하고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해요. 그러나 특수한 상황-이 글을 읽는 독자가 모두 해당 작품을 읽었음이 확인되는 경우. 가령 스터디-이 아닌 이상 ‘일단은 작품을 읽지 않았을 경우’를 우선 고려하게 될 텐데요, 그렇다면 대략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죠? 때문에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아예 장면의 일부를 가져와 직접 보여주기(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작품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판단에 따라 ‘재구성되어 소개되는 작품’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어요. 예컨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백설공주’를 읽더라도 그것을 요약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그것은 ‘백설공주’를 말할 때 중요한 사건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는 점을 글쓴이가 판단하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윤별 님이 이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을 때, 이미 윤별 님의 관점이 반영된 것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든가, 핵심적이라 생각되는 책의 내용을 가져오는 것 역시 관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와 글쓴이가 한 작품에 대한 어느정도의 정보를 고루 나눠가지고 적어도 작품의 큰 얼개에 대한 ‘공통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 쪽이 그렇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어떨까요? 어떤 설명들이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즉 ‘(인용하는 것에 대한)맥락’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글의 문체가 상당히 유려하고 문장이 비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분명 윤별 님 글의 특장점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인용된 우주론과 나비효과와 같은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지, 만약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일종의 비유적인 이론인데 이것을 여러 차례 글에서 적용시켰을 때 어떤 효과를 줄까를 재차 생각해볼 때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소설 자체가 하나의 ‘직조된 세계’라는 차원에서 비유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의 핵심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비유적인 것’을 가져왔을 때 이것이 작품의 의미와 글쓴이(윤별 님)의 의도를 명징하게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면 다소 걷어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드려보아요. 사실 첫 부분과 끝 부분의 ‘우주’에 빗댄 것을 살리고 그 사이 본문에 배치된 ‘우주론’ 부분을 다소 감추고 글을 읽었을 때 글이 더 명료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령 “고백의 수단”과 “인물의 불확정성”을 비교한 부분은 ‘우주론’의 비유 없이도 충분히 잘 읽혔습니다. 또한 유코가 가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서도 인물을 통해 어떤 윤리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그에 대한 판단 또한 분명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점 참고해주시기를요. 비평은 글을 적확하게(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쓰는 것이라고 언젠가 배운 적이 있어요. 이는 매우 단순하고 당연한 말 같지만 사실 하나의 작품으로서 비평을 쓸 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비평의 아름다움이 반드시 아름다운 문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듯 무엇보다도 작품분석이 얼마나 적절한가, 비평하는 자의 관점이 얼마나 뚜렷하고 또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보아요. 윤별 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고민입니다^^

    • 2019-01-05 23:11:24
    선우은실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