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오감도 제 10호 - 나비 의 해석
- 작성자 맛없는쵸코맛
- 작성일 201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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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시인 이상(李箱)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가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그런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상의 대해서는 베일에 싸여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오감도(烏瞰圖)의 경우는 당시 사람들에게 크나큰 반발을 불러와 연재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가 해석을 시도하고 있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은 특유의 난해함과 신비로움은 필자에게는 이끌림의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미천한 지식과 견문이지만 감히 이 시에 대하여 지극히 피상(皮相)적인 추측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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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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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저진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幽界에絡繹되는秘密한通話口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鬚髥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通話口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안젓다일어서듯키나비도날아가리라.이런말이決코밖으로새여나가지는안케한다.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그것은 유계에 낙역되는 비밀한 통화구다.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어서듯이 나비도 날아가리라.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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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1934년 8월 3일 개재된 「오감도 시제 제10호 나비」이다. 이 시를 관통하는 시어는 나비이다. 화자는 벽지에서도, 거울 가운데 수염에서도 나비를 본다. 주목해볼 만한 부분은 거울 가운데 수염에서 본 나비이다. 시인으로 활동하던 이상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화자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수염이 검고 긴 날개를 가진 나비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입을 꿈틀거릴 때 수염의 움직임에선 나비의 날갯짓을 보았다.
하지만 화자가 처한 상황에서 그런 날갯짓을 보일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찢어진 벽지를 가진 방 안에서, 화자는 침묵한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단순히 대화를 원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잠깐 바로 전작인 9호의 일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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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니나는銃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배앗헛드냐.
그러더니 나는 총을 쏘듯이 눈을 감으며 한 방 총탄 대신에 나는 참 나의 입으로 무엇을 내뱉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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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화자는 입으로 무엇을 내뱉었는지 의문을 가지며 총을 쏘 듯하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하는 말이 총알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10호의 첫마디, 즉 벽지에서 본 나비가 유계(저승)로 가는 통화구인 이유이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근대화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사람 간에 말이 있어도 그 말이 날카롭게만 느껴지고 따스하게는 느끼지 못했던 화자는 자신조차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게 될까 봐 삼가고 있다.
하지만 화자는 그런 관계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런 세상에 슬퍼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던 시절,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한 화자에게 변해가는 세상은 슬프기만 하다. 찢어진 벽지의 가난과 냉랭한 세상에서 소외된 데에 대한 한탄은 입김이 되고, 이슬 같은 눈물은 흘러내린다. 나비는 그 눈물을 먹고 있다. 그 외로움에서도 화자는 이런 속내를 내뱉고 싶지는 않아 한다. 죽음을 이 상황에서의 돌파구로 보기도 한다. 화자는 앉아있다 못해 수렁에 빠져있었다.
그런데도 화자는 이를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아 한다. 돌파하고 싶은 의지는 있다. 화자의 나비는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주변에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드러낼 사람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일로 돌아올지 두려워하고 있다. 화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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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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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어려워하고 필자보다 더 전문적인 연구인들이 아직까지도 해석에 매달려 있는 이상의 시를 감히 해석하여 보았다. 해석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지극히 피상적일 수 있다. 심지어 필자는 이상의 작품도 몇 작품 읽어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분의 시를 해석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리고 위 글에서는 화자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는데, 이 시에서 화자는 사실상 작가인 이상과 동일시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이상을 단순한 천재로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 또한 천재, 미치광이 이전에 인간이다. 그의 삶과 경력은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굴곡진 삶 속에서 의지할 사람도 몇 없다는 것. 자신의 배운 근대 문물과 전통과의 갈등.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 소외를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오던 그의 기괴해 보이는 작품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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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맛없는쵸코맛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상은 독자로 하여금 해석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매력적인 시를 많이 썼지요. 그래서 지금도 많은 비평가와 국문학 연구자가 이상의 시를 분석하는 데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기에 맛없는쵸코맛님의 견해도 더해진 것인데요. 저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시라는 당부를 담아 두 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1) 이상의 시를 해석한 선행 연구를 참조하기 앞서 언급한 대로, 이상은 한국문학사의 중요 시인입니다. 그의 작품도 꾸준하게 연구되고 있지요. 그렇다면 지금 이상에 대해 어떤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탁월한 선행 연구를 독해하고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문을 쓸 때의 첫 번째 순서도 선행 연구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검토하기입니다.) 예컨대 이상 연구의 권위자인 권영민 교수의 『오감도의 탄생』과 『이상 문학의 비밀 13』, 신범순 교수의 『이상의 무한정원 삼차각나비』, 황현산 교수 외 여러 명의 연구자가 오감도를 해석한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등을 열심히 읽어봐야 합니다. 선행 연구를 자기 것으로 전유한 바탕 위에서, 오감도에 대한 맛없는쵸코맛님만의 문제의식―독특한 시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2) 텍스트의 컨텍스트를 고려하기 컨텍스트(context)는 ‘맥락’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인데요. 텍스트와 연관되는 주변 상황을 가리킵니다. 제가 갑자기 왜 컨텍스트 개념을 거론하느냐 하면, 이상이 살았던 식민지 시기에 쓰인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1930년대라는 굴절된 시대 상황 속에 이 시는 분석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의 오감도가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매도되어도 우리는 그를 변호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을 단순한 천재로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 또한 천재, 미치광이 이전에 인간이다. 그의 삶과 경력은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굴곡진 삶 속에서 의지할 사람도 몇 없다는 것. 자신의 배운 근대 문물과 전통과의 갈등.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 소외를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구절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맛없는쵸코맛님이 분명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 문장은 주장의 나열일 뿐, 거기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감도라는 텍스트를 둘러싼, 컨텍스트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하셔야 합니다. 더불어 이상의 시에 등장하는 ‘나’를 과연 ‘화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인지도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권혁웅 선생은 『시론』이라는 책에서 단일한(전통적) 화자를 대신하는, 분열적(현대적) ‘시적 주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상에 한해서는 화자보다, 시적 주체라는 용어가 어울린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맛없는쵸코맛님이 더 많이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제 관점을 흥미롭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행 연구의 경우 다양한 해석을 미리 접하지 못한 점은 저도 문제가 있을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 글에 근거가 부족한 것도 사색중 갑작스런 하나의 번득임으로 해석한 글이어서 일겁니다. 선생님의 말을 기회로 삼아 더 좋은 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제 어투가 좀 이상하네요. 너그럽게 보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