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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시인의 《새 1》에서 발견한 ‘시의 공백’

  • 작성자 슈슈엘
  • 작성일 2016-06-25
  • 조회수 930

박남수 시인의 <새 1>에서 발견한 ‘시의 공백’

 

 

<새 1>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쭉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박남수 시인의 <새 1>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시인 지망생으로서 ‘나도 이런 시를 써 보았으면’ 하고 동경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동경 때문에 나는 <새 1>을 아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새 1>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 <새 1>은 두 가지의 큰 강점을 갖추고 있다. 첫째로는 메시지의 전달과 감각적 이미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교훈만을 전달하는 시도 아니며, 풍경 표사만으로 이루어진 시도 아니어서, 이 시를 읽는 독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생생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둘째로는 내용이 특정 시대나 장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짧은 인생에서 아직 많은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나도 이 시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새 1>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강점들을 갖추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이 시가 일정한 내용 요소를 불확실하게 표현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표현 방식에 내 나름대로 ‘공백’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불확실하게 표현된 내용 요소가 빈 칸처럼 뚫려 있다는 뜻이다.

나는 <새 1>에서 두 가지의 공백을 찾아냈다. 그 중 첫 번째는 ‘판단의 공백’이다. 이 시에서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인식은 드러나지만,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 판단은 명확히 나타나지 않으며, 화자의 정서나 주장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교훈이 없는 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분명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것은 시인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적 상황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이 사진 작품이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이해했다. 사진은 그 자체로는 지극히 객관적이지만,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특정 장면을 골라 찍으면 감상자는 자기 나름대로 작가가 그 장면을 고른 의도를 추측하면서 교훈을 얻어낸다. 이 시도 마찬가지로 시적 상황을 관조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독자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시적 상황을 판단, 평가하고 감정을 느끼고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판단의 공백’을 두고, 많은 분량을 판단, 평가 대신 감각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이 시가 감각적 이미지와 교훈적 의미를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분량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균형을 잃지 않은 것은 ‘판단의 공백’ 덕분이었던 것이다.

<새 1>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공백은 ‘배경의 공백’이다. 이 시는 특정 시대나 지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소재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새’와 ‘포수’가 등장하는 시적 상황도 현실이라기보다는 우화적인 상황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시대, 나이, 직업 등을 초월해 어떤 독자라도 이 시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시적 배경이 선명하게 드러난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보니 이 시에서 ‘배경의 공백’이 하는 역할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살펴보았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군부 독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그 당시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흘러나온 애국가와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는 새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시는 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만 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대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내용을 이해하기 다소 어려웠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시대 상황을 이해한 뒤에도 공감은 잘 가지 않았다. 시의 시대적 배경을 확실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독재 정권을 경험하지 않은 나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이 된 것이다. 농촌 문제를 다룬 신경림 시인의 <농무> 또한 농촌 지역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시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 문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세대와 사회 집단을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즉 특정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닌 나 같은 경험 짧은 독자까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새 1>과 같이 ‘배경의 공백’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배경의 공백’을 사용하면, 독자들이 자기가 여태까지 한 경험 중 시적 상황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떠올린 뒤 그것을 ‘공백’ 안에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릴 적에 작은 동물을 사냥한 뒤 죄책감을 느껴 본 독자라면 그 어릴 적 기억을 통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준 독자라면 그러한 사랑의 경험을 통해 <새 1>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배경의 공백’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다양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새 1>에 대해 탐구하며 시에서 ‘공백’이 하는 많은 역할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꼼꼼히 감상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 형태 전반에 대한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탐구의 경험이 앞으로 나의 창작 활동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슈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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