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4월 첫째주 주장원

  • 작성자 케이k
  • 작성일 2015-04-09
  • 조회수 340

 

지난 주 두 편의 글이 올라왔는데요. 두 편 모두 각각의 사소한 단점을 덮는 장점이 더 커보여서 두 편 모두 주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다음 리뷰 참조해주세요.

 

* 배배, <내 인생의 조언자, 데미안>

첫 대목이 좋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싱클레어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데미안인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이 소설 제목은 흔한 1인칭 주인공 소설에 대한 흔한 기대를 벗어난 제목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배배 님의 글에서 잘 풀어냈다시피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듯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문제제기. 배배 님의 글을 세 번째 보는 셈이지만, 에둘러가지 않고 핵심으로 바로 직핍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스타일이 글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그 점이 좋았네요. 스토리라인보다 관념서술에 방점이 찍힌 소설이었음에도 줄거리 정리를 잘 한 점도 좋았고요.

전체적으로는 다소 평범한 느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성장/교양소설 독법으로 읽어낸 점이 무난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자아’가 진공의 산물, 무균질의 산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의 산물임을 짚어낸 대목이 설득력 있었고요.

조금 아쉬운 것은 마지막 문장이 다소 급하게 끝난 듯하다는 점이에요.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내 인생에서의 조언자, 데미안을 만난 것 같았다.” 이 뒤에 왠지 한 단락 정도는 뭔가 부가 내용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렇다 해도 확실히 이번 글은 ‘피가 돌고 살이 붙은’ 글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입니다. 이후 글들도 또 기다려보죠!

 

* 아그책, <외딴 우리>

작가의 ‘외딴 방’과 ‘나의 외딴 방’이 서로 틈입하고 경계를 희미하게 의도한 글로 읽힙니다. 이제까지의 아그책 님의 글들도 이런 식으로 대상 텍스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지우려는 의미에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번 글은 확실히 신경숙 <외딴 방>이라는 소설 특징과 잘 매치되는 그런 글쓰기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챕터 제목들이 흥미로웠는데, 약간의 조정은 필요해 보입니다. 소제목들을 나열해보자면, 1)방문 앞에서 2)방으로 들어가서 3)방안에 서서 4)갈등 5)외딴 그녀 6)나의 방 7)나의 방. 이러한데요. 여기에서 1)번은 머릿글에, 6)7)번은 마무리글에 해당하고 3)4)5)는 소설과 작가 이야기, 즉 본론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각 제목들이 다소 두서가 없는 느낌이에요. 소설 <외딴 방>과 ‘나’의 감상의 경계를 지우면서 어떤 하나의 유기체처럼, 또는 소설과 감상문(평론)의 경계를 지우려 한 의도 같은 게 느껴지는데, 그게 소제목들 속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네요.

그리고 ‘외딴 우리’라고 한 제목의 의미가 사실 명료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물론 이 글 전체와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해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독자에게 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해요. 역시 글쓴이가 좀더 친절히 풀어주거나 명료함을 보여주는 게 좋겠지요.

마지막으로 지엽적인 얘기인데요. 중간중간 소설 인용한 부분을 따옴표(“”) 사용을 하지 않아서 다소 가독성이 떨어져요. 혹시 이 역시 의도한 것일지라도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던 듯 하고, 가독성 측면도 고려해야 하므로 문장부호는 챙겨주는 게 좋을 듯해요. 또, 단행본 소설의 경우 『외딴 방』으로, 단편소설 하나인 경우 「외딴 방」으로 표기해주는 것도 덧붙여 지적합니다. 아그책 님만의 ‘외딴 방’에서의 이어질 건필, 늘 기원합니다!

 

추천 콘텐츠

작별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 첫 매미소리가 들린 날입니다. 조금 빠른 것 아닌 것 여겨집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이 여름도 곧 지날 것이고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겠지요. 지난 2년 동안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많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고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는지. 여러분들의 글 속에서 지금의 저와 과거의 저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어서, 여러분에게 오히려 고마움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 있고, 그것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과 욕망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종종 쉽게 지치고, 때로는 포기합니다. 무엇이든, 우리 스스로의 삶이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꿈, 욕망이란 그  도정에 놓인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삶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에 놓인 존재일테니까요. 글을 쓰고자 하는 여러분이 너무 조급함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 스스로의 역량과 에너지를 소진해 버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글쓰기이건, 어떤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건, 결국은 '완급조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하게 '비평'이란 말이 이 게시판 제목에 붙었기는 하지만, 사실 모든 비평 감상의 첫출발에는, 내가 너무 좋아서 누군가에게 그걸 전하고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욕망이 있다는 점, 부담없이 이곳에 와주기를 다시금 강조하고 싶어요. 건강, 건필하세요!

  • 케이k
  • 2015-07-10
5월 마지막 주 주장원 발표

* 배예진!! 님의  <새는 새는 나무 자고> 를 5월 마지막 주 주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다루고 있는 책의 성격 때문일까요, 책의 제목 때문일까요, 글쓴이의 안정된 문장과 차분한 톤때문일까요. 따뜻한  느낌이 넘치는 글입니다. 본격적인 서평이나 감상,비평문은 아니지만, 인종,언어,종교,국적 등이 달라도 인간은 함께 공감하고 그것을 나누어야 하는 존재임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더불어 산다는 것의 가치가 점점 소중해지는 지금 시대에, 소박한 일깨움을 던지는 글로 읽혔습니다.동네의 북까페도 더불어 궁금해지게 하는 글이었네요. 늦었지만 5월 마지막 주 주장원으로 선정합니다.  

  • 케이k
  • 2015-06-16
4월 넷째주 주장원 발표 및 리뷰

4월 넷째주 장원은 슈뢰딩거 님의 <진실의 파괴력(영화 ‘오이디푸스 왕’과 ‘스토커’의 비교>로 선정했습니다. 다음 리뷰 참조해주세요.   * 슈뢰딩거, <진실의 파괴력(영화 ‘오이디푸스 왕’과 ‘스토커’의 비교)> 다루고 있는 영화 두 편이 모두 어려운 영화들이었네요. 게다가 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사고와 감성의 동물인 한 영원히 탐구될 주제이기도 하겠고요. 그 어려움에 한 번 빠져 헤매기 시작하면 좀처럼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데, 슈뢰딩거 님의 글은 대체로 이 문제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두 편의 영화 각각에서 공통적으로 도출되는 문제, 영화 속에서 그것을 풀어가는 양상, 그리고 각각의 다른 결론과 의미. 좀더 풍부한 영화 속 사례들과 분석이 제시되면서 이 이야기들이 전개되었으면 훨씬 설득력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 명료화한 것도 중요한 장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두 영화를 각각의 방식으로 의미부여하고 주제화한 것이 큰 무리 없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고려했다면 논의가 더 풍요로웠을 것이고, 어쩌면 다른 결론의 글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오이디푸스의 자기 탐구와 <스토커> 속 인물들의 자기 찾기는 애초에 그 인물들의 존재 자체가 놓인 장소가 달랐다는 점인데요. 즉, 같은 ‘진실의 파괴력’으로 두 인물들이 이야기될 수 있다 해도, 애초에 그들은 다른 조건 속의 존재였다는 것인데요. 가령 오이디푸스가 애초에 신탁에 의한 정해진 <운명>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비극적 인물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 그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문제, 그의 내면의 고통은 단지 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는지. 이런 것이 영화 <스토커>의 현대인들과 얼마만큼 공유되는 조건인지도 비교되었다면 훨씬 더 깊이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면 진짜 어려워졌을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이 글의 맥락에서 조금 비껴나는 이야기일지라도, 어떤 의미에서건 ‘진실’은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 우리미, <파닥파닥(padak)-홍보를 잘못한 수작> 이 게시판에서 처음 만난 우리미 님의 글입니다. 단락 구분이 안 되어 있는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문장도 좋은 편이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하고, 생각도 잘 정리되어 있는데, 그것이 단편적으로 나열만 되어 있어서 어떤 <글>이라는 느낌을 잘 주지 않아요. 제목도 내용도 공감되는 바가 많은 글이었는데, 끝부분을 읽으니 이 아쉬움은 역시 이 게시판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 같네요. ‘절절한 감정’은 지금 이 글에서도 잘 전달이 됩니다. 그러나 역시 좀더 풍부한 영화 이야기나 인터넷 후기의 아이들 반응 등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다음 글은 문장을 나열한 메모 느낌이 아니라, 단락으로 형성된 글을 기대해도 되겠지요?! ^^

  • 케이k
  • 2015-05-1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