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12월 3,4주 장원 발표 및 리뷰

  • 작성자 케이k
  • 작성일 2014-12-31
  • 조회수 511

2014년 12월 15일부터 28일 사이의 주장원은 韓雪, <허상-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선정했습니다. 아래 리뷰를 참조해주세요.

 

* 푸르딩딩, <영화 ‘카트’와 메모들>

각자 글쓰기 방법이 있을테지만 ‘여러 버전의 메모->그것을 토대로 한 내러티브 만들기->완결된 글쓰기’ 이런 순서로 가는 것은 거의 비슷할 것 같습니다. 푸르딩딩 님의 메모는 글쓰기의 이 첫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단순메모라기보다는 번호 18번이어야 할 내용이 동음이의적 효과를 통해 글쓴이(글 쓰려는 이)의 파토스를 배가시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조만간 영화 <카트>에 대한, 아니, 이 영화를 통해 엿보게 된 이 세계의 한 단면에 대한 완결된 글, 생각들을 읽을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 韓雪, <허상-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앞부분에서 화두로 꺼낸 ‘실상과 허상’ 이야기, 그리고 그에 관련된 우리 삶의 부조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다루려고 한 소설과 연결이 되어서 좋습니다. 중간에 소설 줄거리를 언급하는 대목이나 인용구절은 다소 길지만, 그건 장편소설을 다루는 글이므로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고요. 그리고 카프카, 반스의 소설들과 교차점을 발견한 것이 좋습니다. 좀더 분량을 할애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감상문과 비평문을 장르로 구별하는 것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저 스스로도 회의적입니다만, 적어도 여러 객관적 근거들이 풍요롭게 제시될 때, 그것을 좀더 비평문으로 여길 수 있게 되지요. 아무튼 언급하는 이름들(데카르트, 카프카, 반스)이나 텍스트들이 현학적 나열이 되지 않고 설득력있게 전달된 것이 좋습니다.

나아가,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21세기 현재의 소설 지형 속에서 짤막하게나마 평가한 것도 좋습니다. 다루는 소설에 대한 분석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이 컨텍스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지엽적인 분석글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 뜨뚜, <언론의 문란함에 대하여>

짧은 글이지만 논지가 분명하네요. 이 글은 우리는 ‘방송과 신문의 노예로 남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미디어는 우리의 생각을 알게 모르게 조종한다는 아젠다 세팅’ 이론을 토대로 미디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세계와 언론 환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언론의 편집 뒷면까지 꿰뚫어 보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매우 뚜렷하고 올곧은 요지의 이야기들입니다만, 역시 기본적 문장쓰기나, 글의 형식적인 부분들, 스타일이 좀더 다듬어져야할 것 같습니다. 가령 중간 부분에 “최근에도 유병언 사건을 관련해 허위기사들을 내어 대국민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쳤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 ‘대국민 사기극’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주체의 조력자는 누구인지, 어떤 팩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언론 보도가 이루어졌는지, 그 이해관계에서의 수혜자는 누구인지 등등등. 정확히 사실관계를 다루어야할 내용이 많은 사례를 단 한 줄로 처리한 것은 이 글 전체의 설득력을 반감시키기까지 합니다.

내용이 분명하고 설득력있는데 비해, 그것을 담는 그릇이 잘 갖춰지려면 역시 많이 쓰는 수밖에 없겠지요. 다시 이 게시판에서 글로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 러블리아, <끝일 줄 알았는데 행복이었네 – 다큐멘터리 영화 감상문>

단순한 남극 다큐영화 감상문은 아닙니다. 동심 속의 남극 이미지와 그 변천-영화 속의 인상적이었던 장면들과 감상-탐험의 장소로서의 남극 이미지와 나의 꿈 등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어떤 형식이나 스타일을 의도하면서 쓴 글은 아니지만 앞에 언급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겹쳐지고 있는 것이 편안하게 읽힙니다.

하지만 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혹은 하나의 강조점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가령, 중간에 언급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서의 ‘식물을 키우는 언어학자’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기도 하고요. 남극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즉, 나열의 느낌을 상쇄시켜줄 어떤 소주제 같은 것들을 좀더 부각시켜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

장원을 선정하고 코멘트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글에서 다루는 대상 텍스트에 대해 먼저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올 경우 대체로 제 과거 독서목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굳이 찾아볼 일이 적지만, 영화에 대한 글이 올라올 경우는 사정이 좀 달라서 그때그때 찾아서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연말에는 그 덕택에 두 편의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는데요. 왠지 이곳 들르는 분들에게도 이 두 편은 추천을 하고 연말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영화 <카트>와 <세상 끝과의 조우>. 여러분, 기회가 되면 한 번 꼭 보세요. 그리고 밝아오는 2015년 새해에는 더욱 건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추천 콘텐츠

작별인사가 늦었습니다.

올해 첫 매미소리가 들린 날입니다. 조금 빠른 것 아닌 것 여겨집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이 여름도 곧 지날 것이고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겠지요. 지난 2년 동안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많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고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는지. 여러분들의 글 속에서 지금의 저와 과거의 저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어서, 여러분에게 오히려 고마움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 있고, 그것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과 욕망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종종 쉽게 지치고, 때로는 포기합니다. 무엇이든, 우리 스스로의 삶이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꿈, 욕망이란 그  도정에 놓인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삶을 누리기 위해 이 세상에 놓인 존재일테니까요. 글을 쓰고자 하는 여러분이 너무 조급함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무 스스로의 역량과 에너지를 소진해 버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글쓰기이건, 어떤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건, 결국은 '완급조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하게 '비평'이란 말이 이 게시판 제목에 붙었기는 하지만, 사실 모든 비평 감상의 첫출발에는, 내가 너무 좋아서 누군가에게 그걸 전하고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욕망이 있다는 점, 부담없이 이곳에 와주기를 다시금 강조하고 싶어요. 건강, 건필하세요!

  • 케이k
  • 2015-07-10
5월 마지막 주 주장원 발표

* 배예진!! 님의  <새는 새는 나무 자고> 를 5월 마지막 주 주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다루고 있는 책의 성격 때문일까요, 책의 제목 때문일까요, 글쓴이의 안정된 문장과 차분한 톤때문일까요. 따뜻한  느낌이 넘치는 글입니다. 본격적인 서평이나 감상,비평문은 아니지만, 인종,언어,종교,국적 등이 달라도 인간은 함께 공감하고 그것을 나누어야 하는 존재임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더불어 산다는 것의 가치가 점점 소중해지는 지금 시대에, 소박한 일깨움을 던지는 글로 읽혔습니다.동네의 북까페도 더불어 궁금해지게 하는 글이었네요. 늦었지만 5월 마지막 주 주장원으로 선정합니다.  

  • 케이k
  • 2015-06-16
4월 넷째주 주장원 발표 및 리뷰

4월 넷째주 장원은 슈뢰딩거 님의 <진실의 파괴력(영화 ‘오이디푸스 왕’과 ‘스토커’의 비교>로 선정했습니다. 다음 리뷰 참조해주세요.   * 슈뢰딩거, <진실의 파괴력(영화 ‘오이디푸스 왕’과 ‘스토커’의 비교)> 다루고 있는 영화 두 편이 모두 어려운 영화들이었네요. 게다가 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사고와 감성의 동물인 한 영원히 탐구될 주제이기도 하겠고요. 그 어려움에 한 번 빠져 헤매기 시작하면 좀처럼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데, 슈뢰딩거 님의 글은 대체로 이 문제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즉, 두 편의 영화 각각에서 공통적으로 도출되는 문제, 영화 속에서 그것을 풀어가는 양상, 그리고 각각의 다른 결론과 의미. 좀더 풍부한 영화 속 사례들과 분석이 제시되면서 이 이야기들이 전개되었으면 훨씬 설득력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 명료화한 것도 중요한 장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두 영화를 각각의 방식으로 의미부여하고 주제화한 것이 큰 무리 없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고려했다면 논의가 더 풍요로웠을 것이고, 어쩌면 다른 결론의 글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오이디푸스의 자기 탐구와 <스토커> 속 인물들의 자기 찾기는 애초에 그 인물들의 존재 자체가 놓인 장소가 달랐다는 점인데요. 즉, 같은 ‘진실의 파괴력’으로 두 인물들이 이야기될 수 있다 해도, 애초에 그들은 다른 조건 속의 존재였다는 것인데요. 가령 오이디푸스가 애초에 신탁에 의한 정해진 <운명>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비극적 인물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 그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문제, 그의 내면의 고통은 단지 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는지. 이런 것이 영화 <스토커>의 현대인들과 얼마만큼 공유되는 조건인지도 비교되었다면 훨씬 더 깊이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면 진짜 어려워졌을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이 글의 맥락에서 조금 비껴나는 이야기일지라도, 어떤 의미에서건 ‘진실’은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 우리미, <파닥파닥(padak)-홍보를 잘못한 수작> 이 게시판에서 처음 만난 우리미 님의 글입니다. 단락 구분이 안 되어 있는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문장도 좋은 편이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료하고, 생각도 잘 정리되어 있는데, 그것이 단편적으로 나열만 되어 있어서 어떤 <글>이라는 느낌을 잘 주지 않아요. 제목도 내용도 공감되는 바가 많은 글이었는데, 끝부분을 읽으니 이 아쉬움은 역시 이 게시판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 같네요. ‘절절한 감정’은 지금 이 글에서도 잘 전달이 됩니다. 그러나 역시 좀더 풍부한 영화 이야기나 인터넷 후기의 아이들 반응 등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요. 다음 글은 문장을 나열한 메모 느낌이 아니라, 단락으로 형성된 글을 기대해도 되겠지요?! ^^

  • 케이k
  • 2015-05-1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