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언제부터 문학이 눈뜬 자의 전유물인가

  • 작성자 유현우
  • 작성일 2012-11-18
  • 조회수 1,024

 2012년 5월 14일, 임태형 감독의 영화 ‘안녕, 하세요!’가 개봉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타임 킬링용으로 보게 된 이 영화는 나의 진로마저 바꿀 정도로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영화의 내용은 인천 시각장애인 학교인 혜광 학교의 초등, 중등, 고등부 학생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담은 영화로 평점 9.8에 2만여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히트 하기도 했다. “세상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궁금해요.” 라고 말하는 한 학생의 말에 나 역시도 감동받아 일반 학교 국어교사에서 시각장애인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바뀌게 해준 영화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심을 한 후에 금세 직면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시각장애인에게 문학을 어떻게 이해 시키겠느냐의 문제였다. 물론 맹인 학교에 간다 할지라도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야가 좁아 전방만 볼 수 있는 학생도 있었고, 빛의 형태 정도만 볼 수 있어 색을 구별해 낼 수는 있는 학생들 등등 완전한 맹인만이 있는 것은 아니긴 했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어 ‘녹빛 신록의 계절’이라는 시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완전히 한치의 앞도 볼 수 없는 맹인이 문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골치 아픈 문제다. 녹색빛을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것이라 설명해 줄 수 도 없으니 말이다. 대체 보인다는 것은 뭘까. 색을 넘어 심지어 밝고 어두운 것을 구별할 수도 없는 맹인들은 현재 예술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술 중에서도 음악이나 미술은 힘겹게라도 할 수 있지만, 문학으로부터는 완전히 차별 당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각장애인 대표기관으로 서울특별시립 노원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있다. 이곳은 ‘넓은 마을’이라는 시각장애인 전용 통신망을 구축해 센스리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입력된 전자도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이 이곳에서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고 현재 재가봉사로 문학 입력봉사를 하고 있다. 교육 후 첫 입력 도서는 시각 장애인 측에서 신청한 책 중 한 권을 반드시 입력한 후에 시작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다. 28기 교육 때 굉장히 다양한 책들이 있었는데 경영학 도서, 철학 도서, 심지어는 라이트 노벨(시드 노벨, 판타지 문학 등의 대중문학을 이르는 말) 까지도 있어 시각장애인의 독서 욕에 놀라게 되었다. 내가 입력하게 된 책은 황지우의 ‘게 눈 속의 연꽃’이라는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이었다. 이것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문학을 선사 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리던 중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華嚴光州’라는 시로 이승하의 ‘이 사진 앞에서’라는 시와도 같이 사진을 개재한 시였다.

- 이승하 ‘이 사진 앞에서’ 전문

 

 대체 이 시는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을까. ‘화엄광주’라는 황지우 시인의 시도 사진 2장이 추가된 시였고, 작가가 필요에 의해서 일본어나 한문을 혼용한 경우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한글로 표기해야만 했다. 맹인들은 이 시에 사진이 있는지, 혹은 다른 문자가 사용되고 있는지 등은 전혀 알 수 가 없었다.

 생각을 확장해보자. 같은 맥락에서

 

문()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해간다.식구(食口)야봉()한창호(窓戶)에더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서리가내리고뽀족한데는침()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을헐어서전당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이매어달렸다.문열려고안열리는문열려고.

-이상 ‘가정’ 전문

 이 시 역시 어지 읽어야 할까. 이상은 자신의 거의 모든 시들과 소설 ‘지주회시’에서도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는데 이를 시각장애인에게 이해시키기엔 어려움이 있다. 센스리더라는 프로그램은 속도를 아주 느리게 하지 않는 이상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어 내리기 때문에 적응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녕, 하세요!’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는데 무미건조한 컴퓨터가 속사포로 시를 읊어대는 상황에서 과연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무척이나 의문이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절망의 산,

대가리를밀어버

,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 산, 침묵의

,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희생의

,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폭발적인

,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황지우 ‘무등’ 전문

황지우의 ‘무등’역시 삼각형의 산 모양으로 시어를 배치해 높은 예술성을 평가 받는 작품이지만 이를 센스리더에 돌리기 위한 아래파일로 변환한다면

절망의산,

대가리를 밀어버

린,민둥산,벌거숭이산

분노의산,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증인의산,죽음의산,

부활의산,영생하는산,생의산,희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그러나 현실의산,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 어머니

이러한 모습이 된다. 어차피 센스리더가 음성으로 변환하면 이상의 띄어쓰기 없는 시마냥 읽게 될 터이지만 시를 이렇게 바꿔서 입력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 인가에 대해 항상 의문이 생긴다.

역시나 정지용의 ‘바다1’도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어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들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정지용 ‘바다1’ 전문

 ‘오’라는 글자를 파도가 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판단해 쓴 시인데, 맹인은 부다가 파도 치는 것이 왜 ‘오’글자와 비슷하다는 것인지 도통 알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글자의 배열에서 문제가 생겨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하는 데 차질이 생기는 문학은 이를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센스리더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일절 할 수 없으니 설명을 보탤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생기는 문제는 바로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자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들겠다. 여기엔 ‘트로이의 목마’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옛 성()의 모습도 상상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속담 중엔 盲人摸象(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있을 정도인데 장님에게 말()의 형상을 어찌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며 말을 거대한 나무로 형상화한 트로이 목마는 또 어찌 상상 할 수 있을까. 역시나 불가능하다. 고전은 시대를 되돌아보며 상상하며 읽는 것이다. 즉 옛날에만 존재했던 풍경들을 우리는 삽화를 통해서, 또 사진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맹인들은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셋째의 문제는 안개, 달 등 자주 쓰이는 소재지만 시각장애인이 느낄 수 조차 없는 것들의 문제가 있다. 영화 ‘안녕, 하세요!’ 속에서도 ‘해는 따뜻하니까 느낄 수 있는데 달은 그렇지가 못하다.’란 말이(대사?) 나온다. 우리는 헬렌 켈러가 물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는지 영화와 책을 통해서 알고 있다. 결국 헬렌 켈러는 물을 만져봄으로써 그것을 느끼고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데, 이렇게 형체가 없는 것들은 느낄 수가 없다.

넷째로 색을 볼 수 없어 생기는 문제가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의 가슴에 살포시 젓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전문

 도대체가 이 시의 중요 문구 중 하나인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이라는 구절을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넘어갔던 부분들이 누군가 에게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되어있다. 이 깨달음에 나는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 주지적인 글은 이해 할 수 있을까? 역시나 어렵다. 주지적이고 관념적인 시는 보통 암흑, 즉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대해서 다룬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는 온통 어둠뿐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物像)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勞動)의 시간(時間)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으로 타는 태양(太陽)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박남수 ‘아침이미지’

 이 시를 읽으며 크게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쉽게 눈을 떠서 사물을 보면 되지만 시각 장애인들은 아침이미지가 열리지 않는다. 철학적인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문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아직까지는 이에 대해서 자세한 주석을 다는 것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 문학이 눈뜬 자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볼 수 없는 이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글틴으로부터 시작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수 있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유현우
유현우

추천 콘텐츠

왕유를 기억하며 그를 읽다.

 중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당(唐)대. 당시를 이끌었던 세 시인을 꼽으라하면 이백과 두보를 꼽힐 것임은 누구나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세 번째 거장인 왕유(王維)는 잘 모른다. 이들은 제각기 주력으로 하는 시적 장르가 다른데 이백이 낭만시를, 두보가 사회시에서 특히 재능을 보였다면 왕유는 자연시에서 그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학사적으로 동진의 도연명 이후로 자연시문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며 훗날 송나라의 소동파가 ‘ ’라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듯하다.) 예찬했을 정도인 왕유지만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에 가려 그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한국어로 번역된 왕유 시집은 4-5권에 불과할 정도니(이백, 두보는 셀 수조차 없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왕유의 시들을 자연시, 송별시, 은거시, 불교적인 시 로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15편의 시를 소개해 볼까 한다. 필자는 박삼수 번역의 왕유시선(王維詩選)을 주로 참조했는데 가장 번역이 말끔하여 이를 밝혀둔다. 고로 이 글을 읽고 왕유의 시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상으로 왕유를 짤막하게 소개해 보았는데 더 말할 것 없이 왕유의 시를 보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이 첫 번째로 삼은 카테고리는 바로 자연시로, 당시중에서 왕유만의 특색이 가장 짙고 쉽게 감상 할 수도 있는 시 장르다.   荊溪白石出 형계의 시냇물 줄어 바닥 흰 돌 드러나고 天寒紅葉稀 날씨 차가워 어느덧 단풍잎도 드문데 山路元無雨 한적한 산길에는 본디 비 내리지 않았건만 空翠濕人衣 빈 산중의 짙푸름은 사람의 옷을 적실 듯하다. -‘산중에서(山中)’ 전문, 왕유  왕유를 소개할 때 소동파 시인이 왕유의 시를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듯하다.’라고 평했다 했는데 소동파가 왕유를 예찬하며 예로 든 시가 바로 ‘산중에서’이다. 사람의 옷을 적실 듯한 청량한 가을 산 속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흰 바위와 붉은 단풍들이 보이는 시적 풍경을 상상해보면 절로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왕유는 자연시를 쓸 때 색채묘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 내리지 않았건만 사람의 옷을 적실 듯’ 하다며 표현했듯이 그 풍광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어 시를 자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시인의 정서를 공감하고 마음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왕유는 산 속 은거 생활을 좋아하여 ‘망천’이라는 산골짜기에 ‘망천장’ 이라는 별장을 지어놓고 한때는 그 주변을 돌며 20여 편의 시를 지어 ‘망천집’으로 엮기도 했었다. 망천집은 그의 시우(詩友) 배적과 함께 망천이십경을 돌며 각각 20수 씩 총 40수의 오언절구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秋山斂餘照 가을 산은 석양빛을 거둬들이고 飛鳥逐前侶 나

  • 유현우
  • 2012-09-27
우리가 대선 후보를 믿지 않는 이유

 이제 곧 대선 철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등 올 대선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은 많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성년들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불신과, 정치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런 인식은 무투표로도 이어져서 저조한 투표율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한 국가의 수장을 뽑는 투표에 있어서 이러한 무책임한 의식이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심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시각으로는 경험론적 시각에 기인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투표로 총수를 뽑아도 말뿐인 공략을 내세웠다 던지 하는 부정적인 면을 보고 신뢰감을 잃었을지 않을까하고 가정해 보았다. 실제로 이승만 독재정권과 2번의 군사정부체제를 겪은 정치판에 현대 민주정치가 자리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감사원과 각종 청문회 등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세대로부터 과거의 민주적이지 못한 정치를 들은 자녀가 많아졌을 것이다. 거기에 각종 촛불 시위와 데모(시위와 같은 말이지만 반복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 시위를 대신하기로 하자.) 등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고 각종 매체를 통해 (SNS, 아프리카TV, 등등 무궁무진하다.)정치 비판을 접해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남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물며 일부 정치색이 강한 전교조 교사들은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입장에서 여당이 저지른 문제들을 극히 강조하기도 하는 등 얼마든지 정치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선대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러한 비판에 노출된 국민들은 그 정치적 피해가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공감을 통해서 간접경험으로 정치를 불신하게 되었을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입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투표 인증 샷’으로 인해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감이 있다. 젊은 세대들 중에도 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없이 투표 인증 샷을 올린다. 경험을 통해서 정치판의 더러움을 알게 되었다면 오히려 투표 인증 샷을 남기면 “쟤 왜 저래? 저거다 부질없는 일인데”하며 반응할 것이고 이 유행은 자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치 불신현상이라는 심각한 문제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두 번째 시각으로 선험적 결과를 생각해 보았다. 투표를 경험하기 이전, 즉 고등학생 이전에 정치와 투표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는 최근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는데 아직 고등학교 2학년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증을 받는 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당장에 술, 담배를 살 수는 없지만 이제 내가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고 점차 나의 권리와 의무가 생겨간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수를 해도 포용해 주던 미성년을 지나 행동 하나하나, 말과 글 하나하나에 의미가 생기게 되었단 생각에 나에게 있어 주민등

  • 유현우
  • 2012-09-16
13년 논술은 악재다.

 이번 주 중앙일보의 언론플레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연일 대입 논술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 졌음을 꼬집으며 무려 11장의 지면을 배치하고 사설까지 작정하고 써내었기 때문이다. 21일 화요일엔 1면에 실은데 이어 이튿날 대학이 중앙일보의 사견을 수렴했다는 기사를 1면에 내건 중앙일보의 언론 플레이는 가히 놀랍다. 이것은 4일간 각 대학들을 돌며 매일 대입논술을 주제로 인터뷰를 다녔다는 말이 된다. 안 그래도 쉬운 수능으로 이번 13학년도 대입논술은 각축전이 벌어지리라 예상해 이에 대해 써볼까 했었는데 중앙일보가 올해 논술 시험이란 불에 끼얹은 기름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보자.    우선 중앙일보는 앵거스 그레이엄, 윌 킴리카 등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상가들의 저서, 그리고 SSCI급 논문들이 지문으로 쓰이고 있다며(중앙일보는 SSCI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 상당히 강조하는데, 논술의 개념어들이 어렵다 비난하면서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이란 단어를 반복한 의도도 잘 모르겠다.) 서강대학의 논술지문을 뽑아놓고 국립국어원에 의뢰해 번역투 비문을 조목조목 들쑤시고 너무 어려워 고교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러면서 “교수인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학원가로 가서 학생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학교에선 논술을 대비하기 어려워 대치동 논술학원으로 왔고, 제발 지문이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푸념 따위는 애초에 들을 필요가 없다. 교수들도 듣도 보도 못한 사상가들이 나오는데 어찌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학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수비영역에 들어와 있는 논술 문제와 만나고 싶고 학원생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을 중앙일보가 좋다고 받아들이다니 조금 과장하자면 어디 뒷돈이라도 받았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논술에 있어 어려운 지문이란 다다이익선(多多而益善)이다. 성균관대학의 양정호 교육학과 교수는 학원에선 “존재=니체, 자살=뒤르켐”과 같이 가르치므로 논술지문이 어려워져야 함을 주장했는데 나는 이 말에 극히 동의한다. 중앙일보는 근본적으로 논술고사가 왜 존재하는지 무시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논술전형을 정시로 입학 가능한 학교보다 한 단계 높은 학교를 가기 위해 응시한다. 대학 측에서 볼 때 자기네 학교의 기준(소위 ‘클래스’)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유입 될 소지가 다분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논술고사는 왜 실시하는가? 논술 시험은 학생들이 장차 대학에 진학한 후 만나게 될 여러 논문들과 난해한 고전들-개중엔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속할 수도 있는-을 독해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고 그 능력이 있는 자를 합격시키는 제도다.  추천도서에서 지문을 내지 않았다 힐난하는 것도 어이없는 주장이다. 하나의 대학에는 약 60여개 이상의 학

  • 유현우
  • 2012-08-2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韓雪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가, 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드네요. 그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그런 문학…에 대해서 조금 숙고할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 2012-11-19 12:16:39
    韓雪
    0 /1500
    • 0 /1500
  • 익명

    이승하의 사진 앞에서는 그림을 첨부했는데 안보이네요.. ㅠㅠ 필요하신분은 검색으로.. 죄송합니다

    • 2012-11-18 22:07:12
    익명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