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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를 기억하며 그를 읽다.

  • 작성자 유현우
  • 작성일 2012-09-27
  • 조회수 3,286

 중국 시문학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당(唐)대. 당시를 이끌었던 세 시인을 꼽으라하면 이백과 두보를 꼽힐 것임은 누구나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세 번째 거장인 왕유(王維)는 잘 모른다. 이들은 제각기 주력으로 하는 시적 장르가 다른데 이백이 낭만시를, 두보가 사회시에서 특히 재능을 보였다면 왕유는 자연시에서 그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학사적으로 동진의 도연명 이후로 자연시문학을 완성했다고 일컬어지며 훗날 송나라의 소동파가 ‘ ’라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듯하다.) 예찬했을 정도인 왕유지만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에 가려 그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한국어로 번역된 왕유 시집은 4-5권에 불과할 정도니(이백, 두보는 셀 수조차 없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왕유의 시들을 자연시, 송별시, 은거시, 불교적인 시 로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15편의 시를 소개해 볼까 한다. 필자는 박삼수 번역의 왕유시선(王維詩選)을 주로 참조했는데 가장 번역이 말끔하여 이를 밝혀둔다. 고로 이 글을 읽고 왕유의 시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상으로 왕유를 짤막하게 소개해 보았는데 더 말할 것 없이 왕유의 시를 보도록 하자. 앞서 말했듯이 첫 번째로 삼은 카테고리는 바로 자연시로, 당시중에서 왕유만의 특색이 가장 짙고 쉽게 감상 할 수도 있는 시 장르다.

 

荊溪白石出 형계의 시냇물 줄어 바닥 흰 돌 드러나고

天寒紅葉稀 날씨 차가워 어느덧 단풍잎도 드문데

山路元無雨 한적한 산길에는 본디 비 내리지 않았건만

空翠濕人衣 빈 산중의 짙푸름은 사람의 옷을 적실 듯하다.

-‘산중에서(山中)’ 전문, 왕유

 왕유를 소개할 때 소동파 시인이 왕유의 시를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듯하다.’라고 평했다 했는데 소동파가 왕유를 예찬하며 예로 든 시가 바로 ‘산중에서’이다. 사람의 옷을 적실 듯한 청량한 가을 산 속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흰 바위와 붉은 단풍들이 보이는 시적 풍경을 상상해보면 절로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왕유는 자연시를 쓸 때 색채묘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 내리지 않았건만 사람의 옷을 적실 듯’ 하다며 표현했듯이 그 풍광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어 시를 자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시인의 정서를 공감하고 마음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왕유는 산 속 은거 생활을 좋아하여 ‘망천’이라는 산골짜기에 ‘망천장’ 이라는 별장을 지어놓고 한때는 그 주변을 돌며 20여 편의 시를 지어 ‘망천집’으로 엮기도 했었다. 망천집은 그의 시우(詩友) 배적과 함께 망천이십경을 돌며 각각 20수 씩 총 40수의 오언절구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秋山斂餘照 가을 산은 석양빛을 거둬들이고

飛鳥逐前侶 나는 새는 앞선 짝을 쫓아가는데

彩翠時分明 고운 비취빛 이따금 뚜렷이 빛나며

夕嵐無處所 저물녘 이내 정처 없이 떠돈다.

-‘목란채(木蘭柴)’ 전문, 왕유

 두 번째로 선정한 시 ‘목란채’는 망천집에 실린 작품으로 목란채 앞 가을의 저녁녘의 풍경을 묘사한 시이다. 작품 속의 ‘이내’는 사전적 정의가 ‘저녁나절에 멀리 산 위로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라고 하는데 붉은 노을이 진 하늘 위로 새들이 정답게 날아가고 이따금씩 선명해지는 이내를 바라보는 서정적 자아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어 두 편의 망천집 속 작품을 더 감상해보자.

 

空山不見人 빈 산중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 말소리만 들려오는데

返景入深林 저녁 놀빛 깊은 숲 속으로 들어와

復照靑苔上 다시 파란 이끼 위를 비춘다

-‘녹채(鹿柴)’ 전문, 왕유

 

獨坐幽篁裏 그윽한 대숲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거문고 타다 길게 휘파람을 부는데

深林人不知 깊은 숲 속이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明月來相照 밝은 달빛만 살며시 다가와 비추어준다

-‘죽리관(竹里館)’ 전문, 왕유

 깊고 고요하지만 마냥 적막하지만은 않은 사슴 울짱과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거문고와 휘파람을 불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왕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 위를 비추는 저녁노을과 밝은 달빛이 더해져 왕유가 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하늘도 구경이 오는 듯하고, 시를 읽는 사람도 가슴이 설레게 하지 않는가? 사람의 손길을 타 약간 소란스럽던 녹채에서 오밤중 조용한 대숲에 나와 그 초탈적 정취를 즐기는 고요의 미학. 이를 느끼며 왕유의 시를 즐겨본다면 결코 그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은거하는 자급자족의 고달픈 삶 속, 하루를 마치고 달빛 아래서의 정취를 왕유는 무던히도 사랑했나보다. 그의 자연시 중에서 상당수가 밤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우인 배적의 산장 누대에서의 경험을 시로 쓴 ‘배적의 작은 누대에 올라서’ 부분을 들며 왕유의 자연시를 마치고 다음 카테고리인 송별시를 느껴 보자.

 

不見此詹間 이 처마 사이의 정취를 알 수 없으리라

好客多乘月 주인장은 손을 좋아해 늘 달빛 속에 노니나니

應門莫上關 문지기 아이야! 빗장을 걸어 두지 말아라

-‘배적의 작은 누대에 올라서(등배적수재소대작)’ 부분, 왕유

 

 명나라 시인 호응린은 ‘성당(盛唐) 절구의 압권(壓卷)’이자 ‘송별시의 절창’이라고 평가한 왕유의 시가 바로 ‘안서로 출사하는 원이를 송별하며’인데 당나라 시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7언절구 송별시란 의미다. 7언절구란 시의 원작은 한문으로 쓰였는데 각 행의 글자 수가 7자씩으로 나눠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시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渭城朝雨浥輕塵 위성의 아침 비 가벼이 날리는 티끌을 적시고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에는 파릇파릇 버들 색 새로운데

勸君更進一杯酒 권하노니, 그대 다시 한잔 술을 다 들게나

西出陽關無故人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이제 다신 옛 친구 없으리니

-‘안서로 출사(出使)하는 원이를 송별하며(送元二使安西)’ 전문, 왕유

 워낙에 이 세상에 송별시가 많고 또한 너무나도 사적인 내용의 송별시는 장르 특성상 뛰어남을 잘 알기 어려운데 이 ‘증별’, ‘위성곡’ 등으로도 불리는 이 시는 부슬부슬 봄비 내리는 객사에서 벗에게 한잔의 술을 권하는 왕유의 시를 보고 나는 왕유가 시작에 있어 뛰어난 부분엔 송별시 역시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떠나기 전에 마셔라 부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 심후함이 왕유의 송별시를 더 애달프게 만들지 않는가 싶다.

 

下馬飮君酒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한잔 술을 권하며

問君何所之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君言不得意 그대 말하네, 세상에서 뜻을 얻지 못해

歸臥南山陲 남산 기슭으로 돌아가 은거하리라고

但去莫復聞 그저 떠나기만 하오, 다시 더 말하지 말고

白雲無盡時 산중엔 자욱한 흰 구름 다할 날 없으리니

-‘송별(送別)’ 전문, 왕유

 또, 어느 날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거하려는 벗을 보고 말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그러자 친구는 흥분된 목소리로 답한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질 못하니 군자가 아닌 나로서는 더 못 버티겠다고. 그러자 왕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술 한 잔을 건넨다. 그의 가치를 잘 알기에 세상에서 실의한 벗을 동정해서 인지, 혹은 전원의 삶이 좋은 걸 알고 그에게 은거생활이 약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왕유는 친구에게 영미권 사람들이 그러하듯 ‘Good bye’가 아닌 ‘Good luck’의 의미로 마지막 구를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시 속 하나하나가 벗이 떠나간다 할지라도 (곧 그를 앞으로 안 볼 사이라 할지라도) 진성으로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道難知兮行獨 삶의 진리는 알기 어려우메 행하기도 외로워라

悅石上兮流泉 돌 위로 흐르는 맑은 샘물을 열애하고

與松門兮艸屋 솔숲 사이 허름한 소나무 문과 초가집을 친애하리라

入雲中兮養雞 구름 자욱한 산속 깊숙이 들어 닭을 기르고

上山頭兮抱犢 산봉우리 높이 올라 송아지를 기르노라면

神與棗兮如瓜 신선이 주는 대추 참외만큼 크고

虎賣杏兮收穀 호랑이가 살구 팔아 곡식을 거둬들이리라

愧不才兮妨賢 재능도 없이 현재의 앞길을 막음이 부끄럽고

嫌旣老兮貪祿 이미 늙어서도 벼슬을 탐함이 싫어진다.

-‘산속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송별하며(送友人歸山歌)’ 부분, 왕유

 마지막으로 선정한 송별시다. 산 속에 묻혀 자연을 사랑하며 늙어가니 벼슬도 탐하기 싫어질 것이라니 이것이 곧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외로운 삶의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 시가 말년에 쓴 시라고 하니 왕유의 은거 경험이 진하게 베어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가 삶의 이치(본문에선 도로 표현됨)를 깨닫게 된 은거 생활 당시를 담은 시들로 넘어가 보자.

 

靑雀翅羽短 콩새는 날개가 짧아

未能遠食玉山禾 멀리 날아가 옥산의 벼를 먹을 순 없지만

猶勝黃雀爭上下 참새들 먹이 찾아 오르락내리락 다투는 것보단 낫나니

喞喞空倉復若何 시끄럽게 지저귀며 빈 창고에서 무얼 어쩐단 말이냐

-‘콩새(靑雀歌)’ 전문, 왕유

 

斜光照墟落 비낀 석양 촌락을 비추며

窮巷牛羊歸 구석진 골목으로 소와 양들 돌아오고

野老念牧童 시골 노인은 목동이 걱정스러워

倚杖候荊扉 지팡이 짚고 사립문 앞에서 기다린다

雉雊麥苗秀 장끼 울 제 보리 이삭 패고

蠶眠桑葉稀 누에 잠들 제 뽕잎도 드물구나

田夫荷鋤立 농부들 호미 메고 돌아오다간

相見語依依 서로 만나 담소하며 헤어질 줄 모르나니

卽此羨閑逸 이를 바라보며 못내 한일함이 부러워

悵然吟式微 서글피 <식미(式微)> 시를 읊조린다

-‘위수 가의 농가(渭川田家)’ 전문, 왕유

 송별시로 소개한 ‘산속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송별하며’에서 벼슬을 탐하기 싫어진다 하였던 것처럼 ‘콩새’는 속세의 세속적 욕망을 떨쳐내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를 확인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콩새’가 왕유의 은거 생활의 모토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겉으로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들어간 것처럼만 보여주면서 속으로는 이처럼 고고한 뜻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위수 가의 농가’는 그러한 은거 생활로 빨리 돌아가고 싶음을 노래하고 있다. 흔히 왕유의 시들을 역관역은(亦官亦隱, 몸은 벼슬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늘 피세의 은둔의 정취를 동경하고 추구하는 삶)이라는 네 글자로 압축하곤 한다. 이 시 역시 역관역은의 모습이 강하게 보인다. 사람을 걱정해 주고 기다리는 시골 동네의 순박한 인정미, 또한 조용하고 편안한(한일한) 해거름의 풍경을 그리면서 시경 속 ‘식미’라는 작품을 삽입해 그 감정을 확장시킨다.

 

式微, 式微 쇠미하고 쇠미하였으니

胡不歸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시경(詩經) 패풍편 ‘식미(式微)’ 부분(운자), 작자미상

 “식미, 식미, 호불귀” 라고 시를 읊조리며 하루 빨리 은거 생활을 하고 싶다는 왕유의 모습은 빨리 수능을 보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일부 고3들의 모습과도 닮은 듯하다. 관리가 일은 안하고 다른 곳에 정신 팔려 있다고 비난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시를 통해서 간접경험으로나마 접한 그 풍광과 피어오르는 정서들이 너무나도 빼어나 나도 가보고 싶을 정도인데 왕유는 얼마나 그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을지 나는 이해가 된다.

 

淸川帶長薄 맑은 시냇물 긴 숲을 굽이돌아 흐르는데

車馬去閑閑 거마 타고 떠나는 마음 한가롭고도 즐겁다

流水如有意 흐르는 냇물은 정의를 머금은 듯 하고

暮禽相與還 황혼녘 새들은 서로 더불어 둥지로 돌아간다

荒城臨古渡 황성은 옛 나루터를 면해있고

落日滿秋山 석양은 가을 산에 그득하다

迢遞嵩高下 아득히 높디높은 숭고산 기슭으로

歸來且閉關 돌아왔으니 이제 문빗장을 걸리라

-‘숭산으로 돌아가며(歸嵩山作)’ 전문, 왕유

 뜻을 품은 듯 흘러가는 시냇물, 하늘에는 새들마저도 둥지로 돌아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왕유는 가마에 타 숭고산으로 돌아와 은거하려 하고 있다! ‘위수 가의 농가’에서 드러난 역관역은의 설렘은 시의 마지막에선 빗장을 걸고 세속과 단절하리라는 넘쳐흐르는 의지로 전환되기 까지 하는데 이를 통해서 왕유가 얼마나 은거의 삶을 그려왔는지 알 수 있다.

 

屛居淇水上 기수 가에서 한가로이 은거하는데

東野曠無山 동쪽 들판엔 광활히 산 구릉 하나 없거니

日隱桑柘外 서산의 해는 뽕나무 너머로 숨어들고

河明閭井間 석양에 물든 강물은 촌락 사이로 밝다

牧童望邨去 목동은 마을을 향해 가고

田犬隨人還 사냥개는 사람을 따라 돌아가거니

靜者始何事 고요를 즐기는 자가 달리 또 무얼 하리요?

荊扉乘晝關 사립문 낮에 닫고 한적함에 젖으리라

-‘기수 가의 전원 풍경(淇上卽事田園)’ 전문, 왕유

 드디어 왕유는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한다.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정취가 피어나는 촌락에서 ‘위수 가의 농가’, ‘숭산으로 돌아가며’등에서 그렇게도 바라던 은거생활은 낮부터 고독과 친구를 맺고 한적함에 젖어있다. 그 한가한 전원생활을 보며 가슴이 뛰지 않을 도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왕유는 은거하면서 그저 멍하니 지내지만은 않았다. 그는 은거생활 당시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 빠져 지냈는데 자연시를 통해서 도가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늙어서는 불교를 선택하고 그에 빠져들었다. 특히 그는 시불(詩佛)이라는 호가 붙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이제 마지막 카테고리인 불교적인 시를 봐 보도록 하자.

 

中歲頗好道 중년에는 자못 도를 좋아하였고

晩家南山陲 근간에는 또 종남산 기슭에 살거니

興來美獨往 흥취가 일면 매양 홀로 나서서는

勝事空自知 마음이 흔쾌한 일들을 혼자서만 알 뿐이다

行到水窮處 마냥 거닐다 흐르는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선

坐看雲起時 앉아서 구름이는 때의 장관을 바라보며

偶然値林叟 어쩌다 숲 속의 노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談笑無還期 더불어 담소하느라 돌아갈 줄 모른다

-‘종남산 별장(終南別業)’ 전문, 왕유

 중년 이후 불교에 심취해 불도를 찾는 즐거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나보다. 한가로운 자연을 바라 볼 수 있는 은거생활에 불도까지 함께 라니 흥취가 안 날 수 없고, 또 흥취가 나 홀로 마냥 걷다 만난 숲 속 노인과 삶의 이치에 대해서 열띤 토론도 해보는 생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그득하니 당연히 돌아갈 줄을 모르지 않을까?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數里入雲峰 몇 리를 걸어 흰 구름 자욱한 봉우리로 든다.

古木無人逕 고목만 즐비하고 사람 다니는 길조차 없는데

深山何處鐘 깊은 산속 어디에선가 은은히 종소리 들려온다.

泉聲咽危石 산골짝을 흐르는 샘물 소린 기암괴석 사이로 흐느끼고

日色冷靑松 그윽이 비치는 햇빛은 푸른 솔숲 사이로 차가운데

薄暮空潭曲 저물녘 적막히 굽어진 연못 기슭에선

安禪制靑龍 고요히 선정에 들어 독룡을 제압하누나

-‘향적사를 찾아서(過香積寺)’ 전문, 왕유

 왕유는 향적사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지만 숲속 은은하게 울려 펴지는 종소리를 따라 찾아간 곳에 향적사가 있었다고 한다. 시의 해설을 빌리자면 인적이 드문 숲은 정적인 이미지를,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동적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러한 정과 동의 기법으로 불교의 선을 (일종의 수행과 같은 의미) 노래한 것이라 한다. 시의 끝부분에 나타나는 독룡 역시 불교 용어로 분별을 하지 않는 경지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왕유가 마음의 경지에 이르고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상으로 왕유의 시들을 둘러보며 그의 자연시와 송별시 그리고 은거시와 은거 할 때 가까이 했던 불교적인 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꽤 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본 왕유는 실로 역관역은이라는 단어로 압축 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자연시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가치 있는 시를 남겼다는 것이다.

 끝으로 왕유 만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흰 눈 내린 겨울밤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며’를 통해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날로 여위어가다가 설경을 보고 벗들을 생각하는 왕유를 기려본다. 자연시문학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왕유가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글을 읽고 왕유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거나 최소한 한번이라도 그를 기리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寒更傳曉箭 한기 어린 경고 소리 새벽 시각 알려올 제

淸鏡覽衰顔 맑은 거울에 여윈 얼굴 비추어 보도다

隔牖風驚竹 밤새 들창 밖에서 거센 바람 대나무를 놀래더니

開門雪滿山 새벽녘에 문을 여니 백설이 온 산에 가득하다

灑空深巷靜 눈발 흩날리는 하늘에 깊은 골목 한껏 고요하고

積素廣庭閒 소복이 쌓인 흰 눈에 넓은 뜰 더욱 한가롭다

借問袁安舍 궁금하구나, 빈약한 선비 원안의 집엔

翛然尙閉關 태연자약하게 아직도 사립문을 닫아 놓았을까?

-‘흰 눈 내린 겨울밤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며(冬晩對雪憶胡居士家)’ 전문, 왕유

유현우
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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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문학이 눈뜬 자의 전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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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현우
  • 2012-11-18
우리가 대선 후보를 믿지 않는 이유

 이제 곧 대선 철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등 올 대선에서 거론되는 후보들은 많지만 사실 대한민국의 성년들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불신과, 정치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런 인식은 무투표로도 이어져서 저조한 투표율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한 국가의 수장을 뽑는 투표에 있어서 이러한 무책임한 의식이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심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시각으로는 경험론적 시각에 기인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투표로 총수를 뽑아도 말뿐인 공략을 내세웠다 던지 하는 부정적인 면을 보고 신뢰감을 잃었을지 않을까하고 가정해 보았다. 실제로 이승만 독재정권과 2번의 군사정부체제를 겪은 정치판에 현대 민주정치가 자리 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감사원과 각종 청문회 등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세대로부터 과거의 민주적이지 못한 정치를 들은 자녀가 많아졌을 것이다. 거기에 각종 촛불 시위와 데모(시위와 같은 말이지만 반복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 시위를 대신하기로 하자.) 등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고 각종 매체를 통해 (SNS, 아프리카TV, 등등 무궁무진하다.)정치 비판을 접해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남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물며 일부 정치색이 강한 전교조 교사들은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입장에서 여당이 저지른 문제들을 극히 강조하기도 하는 등 얼마든지 정치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선대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러한 비판에 노출된 국민들은 그 정치적 피해가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공감을 통해서 간접경험으로 정치를 불신하게 되었을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입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투표 인증 샷’으로 인해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감이 있다. 젊은 세대들 중에도 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없이 투표 인증 샷을 올린다. 경험을 통해서 정치판의 더러움을 알게 되었다면 오히려 투표 인증 샷을 남기면 “쟤 왜 저래? 저거다 부질없는 일인데”하며 반응할 것이고 이 유행은 자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치 불신현상이라는 심각한 문제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두 번째 시각으로 선험적 결과를 생각해 보았다. 투표를 경험하기 이전, 즉 고등학생 이전에 정치와 투표에 대해서 불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는 최근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는데 아직 고등학교 2학년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증을 받는 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당장에 술, 담배를 살 수는 없지만 이제 내가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고 점차 나의 권리와 의무가 생겨간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수를 해도 포용해 주던 미성년을 지나 행동 하나하나, 말과 글 하나하나에 의미가 생기게 되었단 생각에 나에게 있어 주민등

  • 유현우
  • 2012-09-16
13년 논술은 악재다.

 이번 주 중앙일보의 언론플레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연일 대입 논술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 졌음을 꼬집으며 무려 11장의 지면을 배치하고 사설까지 작정하고 써내었기 때문이다. 21일 화요일엔 1면에 실은데 이어 이튿날 대학이 중앙일보의 사견을 수렴했다는 기사를 1면에 내건 중앙일보의 언론 플레이는 가히 놀랍다. 이것은 4일간 각 대학들을 돌며 매일 대입논술을 주제로 인터뷰를 다녔다는 말이 된다. 안 그래도 쉬운 수능으로 이번 13학년도 대입논술은 각축전이 벌어지리라 예상해 이에 대해 써볼까 했었는데 중앙일보가 올해 논술 시험이란 불에 끼얹은 기름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보자.    우선 중앙일보는 앵거스 그레이엄, 윌 킴리카 등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상가들의 저서, 그리고 SSCI급 논문들이 지문으로 쓰이고 있다며(중앙일보는 SSCI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 상당히 강조하는데, 논술의 개념어들이 어렵다 비난하면서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이란 단어를 반복한 의도도 잘 모르겠다.) 서강대학의 논술지문을 뽑아놓고 국립국어원에 의뢰해 번역투 비문을 조목조목 들쑤시고 너무 어려워 고교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러면서 “교수인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학원가로 가서 학생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학교에선 논술을 대비하기 어려워 대치동 논술학원으로 왔고, 제발 지문이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푸념 따위는 애초에 들을 필요가 없다. 교수들도 듣도 보도 못한 사상가들이 나오는데 어찌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학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수비영역에 들어와 있는 논술 문제와 만나고 싶고 학원생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을 중앙일보가 좋다고 받아들이다니 조금 과장하자면 어디 뒷돈이라도 받았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논술에 있어 어려운 지문이란 다다이익선(多多而益善)이다. 성균관대학의 양정호 교육학과 교수는 학원에선 “존재=니체, 자살=뒤르켐”과 같이 가르치므로 논술지문이 어려워져야 함을 주장했는데 나는 이 말에 극히 동의한다. 중앙일보는 근본적으로 논술고사가 왜 존재하는지 무시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논술전형을 정시로 입학 가능한 학교보다 한 단계 높은 학교를 가기 위해 응시한다. 대학 측에서 볼 때 자기네 학교의 기준(소위 ‘클래스’)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유입 될 소지가 다분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논술고사는 왜 실시하는가? 논술 시험은 학생들이 장차 대학에 진학한 후 만나게 될 여러 논문들과 난해한 고전들-개중엔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속할 수도 있는-을 독해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고 그 능력이 있는 자를 합격시키는 제도다.  추천도서에서 지문을 내지 않았다 힐난하는 것도 어이없는 주장이다. 하나의 대학에는 약 60여개 이상의 학

  • 유현우
  •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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