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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그림으로 만든 퍼즐, <노란 개를 버리러>

  • 작성자 naR
  • 작성일 2012-02-19
  • 조회수 527

잭슨 폴록의 그림으로 만든 퍼즐, <노란 개를 버리러>

- <노란 개를 버리러>(김숨 지음, 문학동네 출판) 를 읽고



 나는 '이상한' 책들을 좋아한다. 내가 말하는 ‘이상한’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조금은 ‘낯설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몽환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범위가 퍽 넓어서, ‘이상한’ 작가라고 하면 김숨, 주제 사라마구, 마르케스, 보르헤스, 한차현, 김중혁 등등이 포함된다.) 단언컨대, 이 책은 내가 읽은 '이상한' 책들 중에서도 최고층에 있는 책이다. (덧붙이자면, 내 기준에서 이건 굉장히 호감 가득한 표현이다.)

 원래부터 김숨 작가님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처음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작가님의 이리저리 책에 대한 글들을 찾아봤다. 책 뒤표지부터 시작해서 한결같이 '부조리극'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 를 언급하는 글도 제법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정말 재밌게 읽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책을 펼쳐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고도>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우리는 노란 개를 버리러 가야 한다." "우린 노란 개를 버리러 가는 길이다." "우린 그걸 잊으면 안 돼요." 따위의 말을 반복하며, 노란 개가 짖는다는 둥, 짖지 않는다는 둥, 노란 개는 트렁크에 있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찬 페이지들을 보며, <고도>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오늘은 고도가 올까?" "올 거야." "고도를 기다려야 해."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노란 개를 버리러>(이하 <노란 개>) 는 <고도>와 명백히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도>의 부조리 속에서는 해학성이 두드러진다면 <노란 개>의 부조리 속에서는 그로테스크가 빛난다. <고도>를 읽으며 피식피식 헛웃음이 나왔다면, <노란 개>를 읽으면서는 얼굴 근육이 땅길 만큼 심각한 표정을 풀기 어려웠다.

 <노란 개>는 분명 정신없는 부조리극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스토리가 없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노란 개를 버리러' 가는 부자(父子)가 중심적으로 제시되는 가운데, 조각조각 드러나는 사건의 편린들과 기괴하고 몽환적이고 혼란스러운 묘사들을 읽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대한 사건 전개 양상'이라 부를만한 것이 나오기는 나온다. 이런 일이 있었고, 이 일의 원인이 된 것은 저 일이며, 저 일이 일어날 때는 그 일이 있었다, 따위의. 그러나 또한 이 '스토리'는 지극히 김숨 작가님답다. 김숨 소설 전반에 흐르는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이, <노란 개>에도 역시 가득하다. 넘친다. 조금 음울할 뿐 일상적으로 정리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데도, 김숨 작가님의 손길을 거치자 놀랍도록 비틀리고, 섞이고, 그로테스크해진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섬세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조리극은 '김숨'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이런 부조리극이 나올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 한국 문단의 추세가 점점 마이너틱해지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분위기인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박민규 작가님이시고, 이외에 김중혁, 배명훈 작가님들 등등) 김숨 작가님 역시 그 안에서 굉장히 뚜렷한 색깔을 보여준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성, 30대 여성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숨을 토해내는 듯한 문장들. 이 책에서는 내가 지금껏 지켜봐 온 '김숨' 고유의 면면이 고스란히, 200% 발휘된 것 같다. 전작 중에 가장 비슷한 느낌을 찾자면, 단편집인 <침대>를 꼽고 싶다. 보르헤스, 마르케스와도 닮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이야기들, 그러면서도 김숨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성으로 가득 찬 이야기들. <노란 개>를 읽으면서, 그래서 <침대>가 많이 떠올랐다.

 김숨 작가님의 문장을 읽으면 언제나 '숨을 쉰다'는 느낌이 든다. 문장이 쓰인 방식이 그러하고, 읽는 느낌이 그러하다. 그런데 <노란 개>에서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숨을 다루기는 하되, 숨을 '쉰다'기보다는 뭐랄까, 숨을 '붙잡아 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이라거나, 일분일초를 다투는 매우 급한 상황이라거나,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거나 화를 터뜨릴 듯 격앙된 감정이라거나, 그런 것들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섣불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부조리극 특유의 불편함, 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글쎄, 나로서는 김숨 작가님 특유의 '숨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숨을 쉬게 하는 것이나, 숨을 붙들어두는 것이나, 독자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항상 느끼는 바지만, 김숨 작가님의 필명은 정말 글과 잘 어울린다.

 <노란 개>를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멍하다. 정신을 뒤흔들며 펼쳐졌던 사건들이 페이지가 넘어가며 마침내 어떤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나 싶은데, 그러면서도 결국 마지막 장면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형상이다.

 책을 다 읽고, <노란 개>는 꼭 "잭슨 폴록의 그림으로 만든 퍼즐."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언뜻 봐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이것과 저것이 연결될 듯하고, 동시에 무엇도 연결되지 않을 듯도 하다. 그러나 하나하나 대어보다 보면 조금씩 틀이 잡히고,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빈 곳을 메워간다. 그림을 보고 맞춘다기보다는, 퍼즐 조각의 모양을 보고 하나 둘 맞추면, 언젠가는 결국 퍼즐을 완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퍼즐을 보면? 이 또한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내가 퍼즐을 제대로 맞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다 맞출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맞추기 전이나 맞추고 나서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완성한 뒤에는 사각형이라는 형체만이라도 그럭저럭 확신할 수 있을 뿐. <노란 개>도, 그런 느낌이다.

 잭슨 폴록의 그림을 처음 보면 이게 뭔가, 낙서인가, 이런 거면 나도 하겠다,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그 안에 담긴 나름의 미학이 보인다. 따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노란 개>를 처음 보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 놓은 것 같다. 동어 반복과 패러독스가 가득한 것만 같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보인다, 이미지가 보인다. 별생각 없이 동어 반복이리라, 강조이리라 지나쳤던 텍스트들이, 한참 뒤에 등장한 텍스트들과 이어지고 겹쳐지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반드시 인과적 서술이 아닐지라도, 그러한 퍼즐 맞추기는 퍽 즐겁다. 무엇보다 그 난해한 이미지 하나하나가 내게로 다가와 박히는 그것이 즐겁다.

 아무튼 <노란 개>는, 범상치 않다. 읽는 이에 따라 헛소리로도, 흥미로운 소설로도, 심지어 철학적인 질문으로도 읽힌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고, 그 생각들로부터 재미를 얻을 수도 있는 책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 번 읽는 것보다는 여러 번 읽을수록 재밌는 책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미 이 책을 서너 번은 더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용문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오늘의 인용문은, 책 본문이 아닌 해설 글에서 가져온다. 내가 책을 읽고 느꼈던바, 그러나 부족한 문장력 탓에 집어내지 못했던 부분을, 정확, 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가깝게 표현해준 부분이다.

 그러나 김숨의 소설을 읽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의 조각들을 다시 조립해서, 『노란 개』가 어떤 사건을 담아내고 있는지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다. 퍼즐 조각을 다시 맞추는 것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다기보다, 순간순간 독자의 의식을 서늘하게 만드는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감각하는 것에서 어떤 더 많은 텍스트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노란 개를 버리러>(김숨, 문학동네) 374~375쪽, 해설 - 죽음보다 낯선(강동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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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
  • 201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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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윤스리 님 //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좋아합니다. 아직 '우리의 선조들' 시리즈는 밖에 못 읽었는데, 마침 집 근처 새로 생긴 도서관에 민음사 전집이 풀 세트로 들어와 있어서 시간 내서 읽어보려고요^^

    • 2012-02-19 17:11: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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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글 잘 봤습니다. 저도 희곡을 좋아해서 의 베케트, 에드워드 올비, 유진 오닐 등 유명한 극작가들의 대표작은 탐독했는데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좋은 책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해요 ㅎ 아 그리고 이탈로 칼비노도 '이상한' 작가라 사료되는데 혹시나 읽으시지 않았다면 강력추천합니다.

    • 2012-02-19 14:18: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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