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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은 스스로 아파할 능력이 있는가

  • 작성자 김션
  • 작성일 2010-05-22
  • 조회수 1,695

 파란만장한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인해 한반도의 거의 모든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전 국토가 초토화가 되었었다. 전쟁 직후 한국은 전쟁고아, 미망인, 상이군인, 거지 등이 들끓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파괴와 무질서의 나라로 세계 최하위의 빈민국으로 외국인에게 알려졌었다. 이러한 시절을 거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발전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이자 IT, 선박업의 최강국의 위치에 있다. 한국은 이렇게 지금도 계속되는 변화와 발전을 갈구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을 이끌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로 부터 뜨거운 교육을 받고 있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빈부에 상관 없이 학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교육령을 지금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높고 멋진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과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스스로 아파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며 그 어떠한 상황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 그 무엇보다 아이의 심성,인성 교육을 통한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 우리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하게 되는 집단은 가족의 품 속인 가정이다. 가정에서 아이는 사회구성원으로써 기초적인 심성과 예의를 배워나아가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자긴 파랑새를 가슴 속에 키우게 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마음 속의 파랑새는 철장에 갇혀 서서히 죽어간다. 아직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영어공부를 하고 영어유치원에 간다. 심지어 뱃속의 태아시절 부터 동화책을 영어로 듣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초등학교에 간 아이들은 자신의 파랑새를 지켜볼 어떠한 여유도 없이 명문학교 입학을 위한 입시교육을 받는다. 매일밤 늦은 시간에 한참 꿈나라에 있어야할 아이들이 학원버스에서 내린다. 지친몸을 이끌고 겨우 잠이 들면 얼마 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하교 후에는 영어, 수학, 한문, 바이올린, 피아노, 한문 등 학업을 배우고 밤늦게 집에 온다. 과연 이러한 가정에서 어떤 대화가 있겠으며 자신의 꿈과 목표를 키우고 창조적이고 씩씩한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으로써 명문대를 진학한다고 해서 남은 것은 목적이 없다는 허탈감이거나 사회의 기초적인 요소를 모르는 마마보이 혹은 폐륜아 밖에 될 수 없다. 또, 우리는 교육의 목적이 사회의 명문대 진학에 있는 듯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에도 눈살을 찌푸려야한다.

인천광역시 정신보건센터가 지난해 '청소년 우울 및 자실 사고의 심각도'를 주제로 지역 중학생 1천 739명과 고교생 3천 914명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6.5%가 '우울성향'을 보였고 비율상 5명 중 1명은 '우울 자살 생각 위험군'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입시, 경쟁, 공부 스트레스, 놀이문화의 변질 등 사회교육환경 문제가 자살 발생 위험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건강한 정서 함양과 인지 발달을 저해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되는 것이며 가족 지지 체계의 약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정은 어린아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충분한 대화를 통한 정서적 안정감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입시위주의 암시식 공부가 아닌 창조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현 정부의 교육분야 핵심 공약인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도입된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입학식도 열기 전에 부정입학 논란에 휘말려 130여명의 입학이 취소되는 등의 문제에 이어 '교육의 다양화'가 아닌 '입시 학원화'를 부축이고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자율'을 명분으로 지나치게 입시위주의 교육을 한다는 지적은 자사고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 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자사고의 경우 보충수업시간에 교과진도를 나가는가 하면 2학년 과정을 1학년에 미리 배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창의적 재량 활동 10시간 가운데 7시간을 영어, 수학 수업에 배정하는 등 교육과정의 특성화가 아니라 입시화를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사고 뿐만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이념인 지(智), 덕(德), 체(體)는 허울로써만 남고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과 대입전문교육 집단으로써의 명문이 되고자하는 학교 스스로의 처량한 모습만이 보인다. 학생이나 학교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도 이미 미술, 음악, 체육, 기술/가정 등을 기타과목으로 치부하고 국어,영어,수학 위주의 학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또,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노력은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을 무료 공교육에 입각한 "EBS" 강의과 교재에서 출제하겠다는 정책에서 보여졌지만 이 역시 결국은 암기식 입시 위주의 학습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EBS"를 심화 교육하는 사교육이 늘어나고 학교에서 마저 "EBS" 교재를 교과서로 택하는 등 교과서의 필요성을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실태가되었으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입시위주의 암기식 학습법이 이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제도가 되며 잘못된 교육열이 일어나고, 사교육이 커지고 점점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미주 중앙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985년 부터 2007년까지 아이비리그를 비롯해 14개 미 명문대학에 입각한 한인 학생 1400명 중 학과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학생은 784명(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 학생들의 중퇴율은 같은 기간 미국 학생 전체의 평균 중퇴율 34.6%보다 훨씬 높았다. 입시위주의 암기식 학슴에 익숙한 우리 학생들이 미국대학의 창조 능력을 요구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규칙 아래 문제와 답안의 유형을 암기하는 형식의 수업을 받아왔다. 이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로박는 큰 장벽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학교제도나 입시제도가 상상력과 창의성을 갖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한다. 일정 범위 내에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창조력을 막아서고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사고와 답안을 요구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고범위가 제한되지 않고 깊이 사고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과 실패는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교육인 창의적인 창조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이자 국가의 미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3월 10일 우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에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예슬양이 쓴 '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자퇴선언서가 붙었다. 이어 3월 27일에는 서울대에 재학 중인 채상원 군 역시 대학을 거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며 지금 한국 사회의 교육과 대학을 비판했다.

소위 SKY라 불리는 이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이 누려야할 모든 자유를 유보한 채 학업에 매달리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 학생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두에게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지성의 전당'이라 불렸던 대학이지만 현재의 대학은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며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도 더 심한 무한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에 대학 생활 내내 스펙을 쌓는데 열중하고 비싼 등록금 벌이를 위해 험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대학은 이러한 대학 본질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CEO형 총장을 우대하고 기업경영하듯 학교를 운영하는게 선진적인 보습인 양 내세운다. 더 좋고 강한 기업의 후원을 갈구하고 그러한 후원으로 짓는 건물을 늘어가지만 정작 학생의 복지를 지원해 주는 데는 인색하다. 하지만 더욱 비참한 것은 무한 경쟁 속에서 피어난 '대학의 기업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맹신하는 우리 사회와 학생들의 태도이다. 지난 2001년 성균관대학교가 삼성 그룹에 인수된데에 이어 2008년 두산에 인수된 중앙대학교가 최근 학문단위 구조조정안을 최종 확정 지었다. 그 결과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학과는 '유럽문화학부'로 중국어, 일본어과는 '아시아문화학부'로 통합되었다. 사회적 수요거 변하듯 대학의 학문단위도 변해야 한다지만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경쟁과 실용을 강조하며 기초학문은 위기에 놓이고 취업에 유리한 학과는 집중육성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여 반대운동을 하던 학생을 중앙대학은 퇴학처분하고 현재 중앙대학교의 총학생회과 학생들 간의 대립이 심화되기도 하여 많은 중앙대생들은 퇴학당한 학생의 평소 사생활문제를 예로 들며 오히려 동문의 퇴학을 조소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지금의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과거 대학생들의 용기있는 불굴의 투지와 꿈과 열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여 부당한 현실에 붙어서 오히려 이에 저항하려는 학생들을 조롱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중앙대 교지인 <중앙문화> 58호가 기사 중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배포된지 3시간만에 학교본부가 전량을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성균관대학의 교지인 <성균> 역시 삼성그룹 재단에 비판적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전량회수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엄연한 언론 탄압이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사회의 악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에도 자본주의적 황금만능주의의 병폐에 허우적거리며 기초학문을 무시하고 경쟁적 선지화라 정당화 시키며 대학의 기업화에 박수를 보내는 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권력기관이 학생들을 고문하고 시국선언서명 교수들을 대량으로 해직시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대학에는 살아 있는 정신이 있음을 알았었기에 대학인들을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작년에는 대학교수들이 전국적으로 수천명이나 시국성명을 통해 국가권력의 부당함을 비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완전한 묵살였다. 서울대학교의 한정숙 교수가 말했듯 연구비와 건물 한 두개면 대학구성원들의 입쯤은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본과 권력기관의 확신의 있었기에 이러한 묵살이 가능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학 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공공성을 파괴하는 결정을 막아내지 못한 대학구성원들스스로의 책임이 역시 크다.

중앙대학교의 김누리 교수는 "대학이 대기업의 지배를 받게 되면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 본연의 기능을 잃게 쉬워진다. 이렇게 대학이 온전한 기능을 못하면 진보적 담론의 형성은 점차 말살되어 갈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학생이 대학을 향해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라고 외치는대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묵살해버리는 대학이 있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대학은 어떠한 시대에도 기초학문을 무시해서도 안되며 영원한 지식과 자유의 전당으로 남아 대학생들의 학문탐구와 꿈과 열망을 키워야하는 시대의 진정한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카뮈는 "반항인"이라는 책에서 진정한 반항인은 혁명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기보다는 불의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인간이라고 했다. 우리의 사회 역시 부정한 현실에 박수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닌 자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저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화, 이익추구 집단화가 되어가는 대학, 자본에 휩쌓여 사회의 부정당함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거부되어야 마땅하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이 사회는 기억해야 한다.

 

 유대 민족은 지금까지 170여 명의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지능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지능지수는 95점으로 세계 29위인데 한국인은 106점으로 세계 2위이다. 유대인이 노벨상을 많이 맏는 이유는 좋은 질문을 좋은 답변보다 더 많이 하도록 하는 이스라엘의 창조능력 배양 중심의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과 우리들은 분명,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전 세계에 이를 증명해 보인 적도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또 다시 그러한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 핵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정에서의 충분한 대화와 인성교육을 통한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지식과 창조의 단절을 극복하는 교육 그리고 의식있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존재함을 기초로하고 더불어 심화된 국사교육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대한민국국민 양성과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자리이타적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더 큰 도약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는 진정한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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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관계의 중요성

들어가는 말    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말했듯, 세계는 제4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제 4의 물결은 세계화이며 이는 미래사회의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세계는 활발한 국제공조와 다양한 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에서 모든 국가가 전 인류적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평화를 가장하며 강대국 간의 패권싸움이 진행되는 현실적이며 부정적 측면을 가진다.  결국, 세계화에서는 세계의 중심을 자국으로 옮겨오기 위한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전이 치열해질 것이다. 소련의 해체 후 세계의 중심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의 패권을 가진 미국과의 활바란 외교와 민간교류는 현재 자국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일방적인 미국에 대한 의존적 외교는 현재 눈앞의 이익만 쫒는 어리석은 일이여 미래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필자는 미국 외의 새로운 정치/사회적 동맹관계를 구축해야함을 역설하며 그 중에서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조하려 한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와 소련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며 러시아를 망한 부자의 나라 혹은 사회주주의 근원지인 악의 축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향저 시각은 결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와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국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현재는 경제가 침체되고 사회가 불안정하지만, 푸틴 정권 이후로 사회는 빠른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아직까지 군사, 시초과학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우리는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현실적/ 잠재적 러시아의 국력을 의식하며 한러 관계의 숙명성을 인지해야할 시기이다.   가) 한*러 관계, 왜 침체 되었을까   ㄱ. 냉전적 시각의 어두운 잔재    1991년 해체된 소련의 법적 계승국이 러시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 후 시장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한 러시아를 아직도 소련으로 호칭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국제정치적 현실감각 지체현상이기도 하며 강렬한 소련의 그림자가 남긴 영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소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냉적적 시각이다. 러시아를 소련의 연장에서 아직도 냉혹한 사회주주의 근본지이자 북한의 공산체제와 연결시키며 악의 제국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국의 국익에 거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러시아는 소련의 법적 계승국이지만 소련은 아니다. 소련 중앙정부의 권력 약화에 따라 70년 동안 주도 민족인 슬라브족에게 밀려왔던15개 구성 공화국들이 주권 독립을 선언하며 소련은 해체되었다. 우선 러시아는 소련과 국가체제의 성격이

  • 김션
  • 2010-09-13
영화<웰컴, welcome 2009>을 보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번이라도 심장이 진정으로 뜨거웠던 적이 있을까? 바쁜 일상을 보내고 하루 하루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되돌아 본 적이 있는가? 흔히 영화나 소설 그리고 위인전에서 등장하는 가슴시린 사랑, 뜨거운 우정 , 조국애, 야망 등을 실제로 살아가며 단 한번이라도 도전하고 이루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해나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며 그 꿈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시절 자신의 꿈이 작가, 과학자, 선생님, 소방관이란 분홍빛 동심은 점점 더 많은 월급과 명예를 지향하게 되며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대기업입사 등 으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린채 살아간다. 살아가며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잊고 그저 육체적으로 풍족하게 살아가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절대로 환영받지 못한 일이다. 진정한 뜨거운 가슴이 없이는 절대 자신의 인생으로 부터 'welcome'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 뜨거운 가슴 속 불꽃은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릴때 꺼져버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우울증에 사로잡혀 수험을 앞둔 시험기계로 살아가며 우연히 <월컴>이란 영화를 보았다. <웰컴>은 제목처럼 환영의 인사를 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청년 쿠드르인 '비랄'의 영국을 향한 밀항이 계속해서 실패하면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영국으로 떠나자 그녀를 만나기로 작정한 비랄은 4000km의 사막을 건너 프랑스에 도착해서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밀항을 시도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는 수영을 배워서 35.4km의 도배해협을 헤엄쳐 사랑하는 여자인 '미나'를 만나려고 한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수영코치를하고 있던 시몬에게 레슨은 받게 되며 시몬은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촬영내내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비랄의 사랑을 조용하면서도 잔잔히 보여주면서도 불법이민자들의 서글픈 삶은 조명하기도 한다. 항구에서 집단적으로 있으며 사회봉사자들이 주는 한끼의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며 돈이 있어도 매장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인종차별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더럽고 물건을 훔칠 수도 있기 때문이란 이유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모습은 보는 내내 인간으로서의 존중감을 생각하게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나 6.25전쟁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중국,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넘어가 불법체류자가 되었을텐데 그 시절 우리 민족 역시 저런 모욕과 탄압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시치고 지나가며 가슴을 시리게 했다. 영화 속에서 시몬은 수영레슨에 집착하는 비랄에 호감이 생기고 그렇게 알아가며 그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갈 곳없는 그와 친구를 집에서 한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러한 장면에서도 이웃들의 방해와 경찰의 조사 등 많은

  • 김션
  • 2010-01-25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를 읽고-인간 사회와 언어

모국어와 외국어 미국의 매래학자 앨빈 토플러에 의하면 세계는 제4의 물결이 흐르고 있고 제4의 물결은 세계화아고 했다. 국가와 언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지구촌 모두가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화의 흐름은 인류역사의 한 흐름일 것이고 그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에서도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은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분명 세계화의 흐름에서 언어의 순수성만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 조선후기 사회 근대화기술의 무조건적인 배척에 의해 국력의 약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현실로 이어진 어리석은 사례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언어의 순수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외래어의 수입을 허용하란 말 역시 모순이다. 언어에는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때 조선어말살정책을 편 것도 이것 때문이다. 분명히 반세기의 우리 조상의 삶이 담긴 언어는 소중하고 지켜야하는 것이 틀림없다. 세계화 시대가 진행되어간다고 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아무런 근본의식 없이 세계화에 몸을 담는 것은 어쩌면 세계화시대를 이끄는 강대국의 정신적 노예가 될 수 있는 위험한일이다. 즉 민족의 혼 즉 우리말을 잃고 세계화시대에 발을 들려놓으면 일본에 의한 강점기가 아니라 세계화에 의한 정신적 강점기가 찾아올 것이다. 고1 국어시간에 배우는 최재천의 '황소개구리와 우리말' 에서처럼 황소개구리가 참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그에 발맞춰 살아가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래어와 우리말과의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말의 순수성을 머리 속에서 모두 지워서는 안된다. 민족의 순수성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혼합된 새 시대의 언어를 들여오는 일은 우리 개구리들을 돌보지 않은 채 황소개구리를 드려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래어와 혼합된 현대의 언어를 받아들이되 학교 교육과정에서 언어의 문법을 가르치는 단원에서 순수한 우리말을 상기시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언어, 인간사회의 표현 문학이란 언어를 재료로 인간의 삶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가치를 드러내는 언어예술이다.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는 의사전달과 감정 표현의 수단, 현실과 사실을 재현함, 선전과 설득의 기능이 있다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면 인간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아왔으며 세계화 시대가 흐르는 현재 미래에도 줄기차게 번영할 것이다. 우선 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인간의 감정은 무한하며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연적 욕망이다. 그래서 몇몇 문학작품들과 본인(김시헌) 창작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사랑)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쉼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라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

  • 김션
  •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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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지적했군요. 교육열은 높지만 본질적으로 인성과 창의성을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라 공감이 갔어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공감할 수 있었지만 너무 광범위한 내용을 한 편의 글에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정교육, 입시 교육, 대학의 현실 모두가 중요하게 다뤄져서 각각 독립적으로 한 편의 글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오타를 바로잡아 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야 매끄럽게 읽히기 때문이지요.

    • 2010-05-24 03:27:3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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