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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을 읽고

  • 작성자 프리러브
  • 작성일 2009-09-27
  • 조회수 2,378

김승옥, 『무진기행』

 

때때로 사람들에겐 일상을 탈출해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가 너무나 많을 때, 일이 뜻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기타 등등... 표면적인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결국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것이다.

 

‘무진기행’의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약회사의 전무로의 승진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을 겸 일주일간의 무진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나’의 도피 공간이자 고향인 무진은 이상하게도 긍정적인 곳이 아니다. 언제나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 헤쳐 버리고 싶은 안개가 명산물이고, 서울과는 달리 엉뚱한 상상과 공상만을 하게 되는 곳이다. 젊은 날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 당시 어머니에 의해 참전은커녕 골방에 숨어 일기를 쓰고, 수음하기만 했던 무진에서의 ‘나’나 4년 전 동거하던 여인이 떠나고 직장에서도 잘렸을 때의 ‘나’는 모두 상당히 무기력한 인물이었고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진으로 떠나온 ‘나’는 무진에서 여러 명의 인물들을 만난다. 먼저 중학교 후배였던 ‘박’과, 동기였던 ‘조’, 그리고 음악 교사인 ‘하인숙’이다. 박은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조는 세무서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인숙은 무진 사람들에 의해 성악을 전공했음에도 유행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나’로 하여금 무진의 냄새를 맡게 하는 인물이다. 나는 이 인물들을 보며 아주 작은 반전들을 느꼈다. 얌전한 줄만 알았던 박은 알고 보니 좋아하는 하인숙에게 적극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었으며, 세무서장인 조는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부인을 잘 만나 ‘나’와 같은 삶을 살려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나 또한 ‘나’와 같이 느껴 안타까워했던 하인숙도 조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잘 잡아 서울로 가려는 인물이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드러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는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의 내면적인 모습으로 봤을 때 ‘나’는 박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진실한 것을 추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하인숙과의 대화를 보고는 시간과 나이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한 사랑을 추구했던 옛날과는 달리 현실적인 부와 만족을 가져다주는 지금의 아내도 다른 면으로 사랑하고, 만족한다고 했지만 그런 모습이 정말 사랑인지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전보를 읽은 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보를 피하여 쓰는 편지, 즉 하인숙에게 쓴 ‘사랑하고 있습니다.…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찢어버림으로써 옛날의 자신과 하인숙을 지워버리겠다는 주인공의 심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무진읍을 떠나며 서울로 가는 주인공은 아마도 무진에서의 모든 생활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나마 떠올렸던 과거의 모습, 어머니와 무진 사람들 그리고 하인숙... ‘나’가 마지막에 느낀 부끄러움은 ‘나’가 처한 서울에서의 현실에서 벗어나서인지, 엉뚱했지만 보다 자유롭고 자신에 충실했던 주인공을 다시 잃게 될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을까. 서울로 돌아가 제약회사의 전무로서의 삶을 살며 속물적으로 살아갈 자신에 대한 비판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김승옥이 1964년에 발표한 ‘무진기행’에는 현실적이고, 어쩌면 속물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이 등장한다. 김승옥이 23세의 나이에 쓴 이 소설에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당시 ‘무진’이라는 가상의 작은 도시에서마저도 지나치게 현실화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는 것 같다. ‘안개 나루’라는 뜻의 무진은 안개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욕망과 일탈을 꿈꾸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공간이 아닐까. 현실 도피의 공간에서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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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다만 전체적인 줄거리를 소개하고 단상을 부차적으로 소개하는 것 보다는 작품 속의 인물에 대한 지지나 비판의 관점이나 대안제시의 관점 등의 독자평을 써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엉뚱했지만 보다 자유롭고 자신에 충실했던 주인공을 다시 잃게 될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을까.''라는 지적에서 그치지 말고, 그런 나의 행위에 대한 독자의 입장은 무엇인지, 다른 줄거리를 제안한다면 무엇인지, 왜 그런 줄거리를 제안하는 지, 그렇게 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입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2009-10-02 00:06:29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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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안개처럼 몽롱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이 작품에서도 해처럼 밝고 눈부시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 내기란 쉽지 않은 접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이마다 약간은 다른 여러 가지 의미를 해석하게 해내는 측면에서 무진기행은 읽어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9-10-02 00:05:53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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