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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무엇에 열광하나?

  • 작성자 마법의 펜
  • 작성일 2007-06-10
  • 조회수 507

 

[ 일본문화, 무엇에 열광하나? ]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다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그 위기는 다가오다 못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유명 서점의 베스트셀러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의 약70%가 일본소설인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경향신문」에서는 이것이 어려운 표현과,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권위만을 찾는 한국문학의 특유의 색채 때문이라 비판한다.

또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만화의 영향이 지금의 젊은 층 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사고를 주입시킴에 따라 사람들이 자연히 감정이입이 쉽고, 가볍게 읽기 좋은 일본문학을 선호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일본 문학을 좋아하며,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나의 주장을 밝히기 전에 친일파적 관점이라 비판을 가할 사람들을 향해서 미리 한 마디 해 두겠다. 나는 일본을 싫어하며, 시간이 흐른 이 상황에서 조차 과거의 일본을 증오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문학, 우리 문화가 일본에게 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제 2의 식민지화 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사실 하에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선정적이고 화려한 그림체가 일본 만화를 돋보이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일본에서는 작가의 그림체가 아닌 그 만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CLAMP  라 불리는 4인조 만화가 집단의 작품들이다. 그들이 그린 원화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독특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지만, 그들의 작품이 내 놓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웬만한 작가들이나 평론가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단하다. 개개인의 삶이 타인과 얽혀 들어가는 과정을 어린 아이들조차 받아드릴 수 있게 구성한 내용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현사회의 문제점에 빗대어 한 번 더 쉽게 제시해 줌으로써 만화의 끝마다 생각의 단원과 상상의 문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 간단한 세계가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개방적인 그들의 사상이다. 다양한 미신과 종교가 존재했던 일본은 그것을 강압적으로 누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것들을 한쪽구석으로 밀어 놓는 우리나라와 달리, 엄연한 전통을 가진 종교로 쳐주고 있다. 그런 자유로운 생각의 풍선들이 전 세계적인 폭풍을 불러일으킨 오바타 타게시, 오바 츠구미의 만화 DATH NOTE를 만들어 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그들의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청소년 문학의 핵심을 찌르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나 ‘모래밭 아이들’ 요시모토 바바바 나 에쿠니 가오리의 읽기 편한 소설들, 한국에서 영화화 된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도 마찬가지로, 친근하고 현실적인 문체로 사회의 핵심을 짚고 들어가면서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내일과 자신에 대하 생각할 계기를 부여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나의 성장에는 일본 만화가 커다란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 속의 내용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학생들에게는 되도록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구멍 뚫린 현실을 적나라하고도 흥미롭게 지적하며 약육강식이라는 말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지금 한국 문학의 위기기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문제를 근본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 문화의 침범을 받고 있는 것은 문학 시장만이 아니다.

엄청난 관객 수를 자랑하며 흥행에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도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것이며, 대다수의 청소년 들이 그야말로 「일본」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예전에 그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이 그랬던 것처럼, 묶인 실의 매듭을 칼로 잘라버리면 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오’ 다.

우리나라 문학이 일본의 문화에 밀리는 것은 바로, ‘대충대충 때우기 식’의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경향 신문은 어려운 표현과 형식을 고집하는 것에 문제를 두었지만, 사실 그런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내용」 인 것이다.

아무리 가벼운 문체로 쓰여  진 글도, 인간의 문제를 부드럽게 파고드는 일본문학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학은 빙빙 돌려 가며, 비슷한 말만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주제 없이 되는대로 쓰는 글의 표현이 아무리 멋지다고 할지라도, 누가 그런 글을 환영 하겠는가? 머리 아픈 책이 바로 이것이다. 물음표를 제시하는 문학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은 흐릿한 물음표가 아닌, 명확한 물음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라! 그리고 나서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최소한 우리는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일본 문학을 닮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 문학이 가야할 길.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포장만 번지르르한 두꺼운 책을 쓰거나 읽는 것이 아닌, 그 모든 겉 치례 장식을 떼어 버리고, 가장 핵심적인 한 단어에서 시작해야 한다. 독자를 헛갈리게 하고 빙빙 돌리는 문학이 아닌, 생각의 문을 뒤흔드는 문학.

 

"진심" 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말이다...

 


마법의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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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펜
  • 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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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펜
  • 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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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의 펜
  • 200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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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일본문화의 장점을 구체적인 만화와 소설 작품을 들어 논증하였군요. 그런데 바로 뒷쪽에서 한국문학의 문제점을 말할 때는 너무 간략합니다. 논거가 약하다는 말씀입니다. 댓글에서 박완서나 공지영의 예를 들기는 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예를 들지 못했습니다. 소재나 관점, 구성방식, 문장의 예 등을 인용하여 증명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여 주시면 더욱 설득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 2007-06-17 22:56:50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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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공통적인 문제점이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자체는 읽기 쉽고 가벼우나,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독자들에게 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흥미 수준에서 끝나 버릴 수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2007-06-11 19:25:3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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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재미 속에 담긴 의미가 흐릿한 물음표 처럼 모호하다는 것에 문제를 담은 것이며, 소수의 작가들이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궂이 한문을 붙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골라잡는 형식의 어려운 글을 비판한 것입니다. 빙빙 돌려가며 쓴다는 말 역시 내용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글이 전달되는 방식을 지적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식인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가벼운 소설 속에 담긴 의미가 더 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궂이 예를 들자면, 제 입장에서는 공지영님과 박완서님 등의 현 작가분들의

    • 2007-06-11 19:24: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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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문학이 쉽기 때문에 읽는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표지핥기 식으로 그들의 글을 읽는다면,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기 쉽고 편한 그 문장이 오히려 타인의 마음에 새기는 색채가 강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 편함 안에 내포된 의미를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제 의견을 덧 붙이자면 저는 재미 위주로 쓰는글을 높이 잡고, 어려운 책을 비하시킨 것이 아닙니다.

    • 2007-06-11 19:20:5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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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일본문학은(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읽기 편하고 짧고 쉽기때문에 잘 팔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리고 우리나라 문학이 빙빙 돌려가며 쓴다는것에 대한 예좀 인용해 주시면 어땠을까 하네요. 우리나라소설도 재미 위주로 쓰는 책들이 많이 있고, 상당히 직설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우리나라 문학은 번역만 간지나게 된다면 노벨문학상 받을 분들이 넘처난다고 생각하는 1人입니다.

    • 2007-06-10 19:21: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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