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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잊은 현재에 필요한 메시지(원고료 이백 원- 강경애)

  • 작성자 금안백
  • 작성일 2024-07-07
  • 조회수 429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한 강경애 단편선 <지하촌>에 수록된 작품 <원고료 이백 원>을 읽고 이 글을 쓴다.

 

이 작품은 서간체 소설로서 주인공이 동생 K에게서 받은 연애관과 결혼관을 물어본 편지에 대한 답장의 형식이다주인공은 직접적으로 그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답변을 대신하는데 그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처음에 주인공은 자신의 옛 학창 시절을 이야기한다형부한테서 지원받는 돈으로 겨우겨우 식비와 월사금을 대가며 학업을 이었던 것과 그 적에 받았던 설움까지 토로한다그러고 나서 비교적 최근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며 만주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현재를 말하기 시작한다최근 한 신문사에 장편소설을 연재한 대가로 원고료 이백 원을 받을 주인공그 전날 밤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상하의 모두 단벌에 신발은 지인에게 (그것도 신던 것을선물 받은 형편이라 본래는 물질적인 욕망이 크지 않음에도 목도리나 금반지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주인공 부부는 어쩔 줄 모르게 기뻐한다하지만 주인공과는 다르게 그녀의 남편은 그 원고료를 같이 만주에 사는 상황이 어려운 대한 동포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을 낸다의견을 들은 주인공은 자기가 벌어 가져온 큰돈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하자는 남편이 밉기도 하거니와 결혼반지도 하나 못 맞춘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그 설움에 한밤중 울음을 터트린다그러자 남편은 주인공의 뺨을 후려갈기며 주인공의 물욕을 비난하면서 주인공을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밖으로 내쫓겨진 주인공그리고 방 안에서 홀로 남은 그녀의 남편주인공은 처음에는 설움에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면서도 막상 시간이 지나자 가라앉은 감정에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이 옳은 것이다단벌이긴 하지만 헐벗지는 않은 주인공과 남편보다 더 힘든 궁지에 처한 동포들이 많은 터결국 주인공은 남편에게 사과한다실은 남편도 주인공과 같은 물욕이 앞선 생각이 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그런 생각에 대한 반발과 같은 죄책감 때문에 주인공에게 그리 서럽게 군 것이었다부부는 쌀과 장작과 옷 한 벌씩만 사고 나머지는 동포들을 위해 쓰자는 의견을 맞추게 된다편지는 지금 만주와 조선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빈곤을 언급하고 만주의 비참한 상황을 환기하는 것과 더불어 물질주의에 대한 경고를 K에게 보내면서 마무리된다.

 요즘 약자에 대한 적대적인 관점이 많이 보인다안 좋은 형편인 사람들에게 왜 네가 노력을 안 해놓고 나라에게 바라는 게 많냐고 하면서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것이다그리고 아마 이러한 생각은 이 작품이 쓰인 일제강점기 때도 존재했을 것이다강경애는 이러한 주장을 이 작품으로 확실하게 반박해 냈다.

 작품에서 말하는 형편이 어려운 이웃 동포들은 모두 개인의 잘못에서가 아닌 거시적인 힘에 의한 피해자로 묘사된다감옥에서 심장병을 얻은 이와 감옥으로 남편을 보내고 굶주리게 생긴 모자그리고 만주로 넘어와 빈곤에 괴로워하는 다른 동포들까지 모두 거시적인 힘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또한 처음에 식비와 월사금만 겨우 해결하고 다니던 주인공의 학창시절을 비춤으로써 운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격차를 부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K에게 만주의 비참한 현실을 서술하고너의 교환적 가치만을 기르지 말고 사회적 가치를 기름에 노력하라는 조언으로 개인에게 필요할 공동체 의식 개선을 강조한다생각해 보면 K란 알파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를 칭하는 것이며 이 마지막 조언들은 강경애가 대한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물질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개인주의를 경계하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하지만 이 두 주의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마지막에 사람이란 인격상 취하는 방면도 이러한 두 방면이 있다는 것을 네게 알려주고자 함이다.’하고 작품이 끝남으로써 판단은 편지를 받을 K에게 맡기는 듯한 뉘앙스를 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러한 점은 내가 이 작품을 훌륭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이다이 작품이 공동체주의를 강조하고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 문장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작품의 공격성이 최소화됐고 작품이 극단적인 메시지를 표하고 있다는 느낌이 희석됐다고 생각한다오히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신뢰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서간체 소설이기에 문장이 뜬금없이 느껴지지도 않다.

 사실 이런 메시지가 이 작품의 가치로 환원되지는 않는다작품성만 보더라도 이 작품은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이 소설은 인간을 제대로 담아냈다주인공이 양산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자 실실 비웃으며 망가진 양산을 선물한 학교 친구와 그 망가진 양산을 선물 받아 기분이 몹시 불쾌하지만 막상 그 망가진 양산을 버릴 수는 없던 주인공의 심리평소엔 물욕이 적다가도 큰돈이 쥐어지면 온갖 사치를 부릴 생각부터 하는 심리평소 힘들었던 것에서 오는 보상 심리감정이 격양된 상태에서 인물들의 심리와 대사그리고 서로 감정이 가라앉고 화해하는 장면까지 작품 전반적으로 인간이 아주 잘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이 <원고료 이백 원>이란 단편 소설은 그 작품성과 더불어 현재에까지 적용되는 메시지까지 담긴 정말 훌륭한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우리 사회에 주인공 부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많아질 것을 희망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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