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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도시 속으로 드리운 인간의 욕망이라는 그림자 - 희곡 <카포네 트릴로지>를 읽고

  • 작성자 파르페
  • 작성일 2024-06-28
  • 조회수 73

제이미 윌크스의 희곡 <카포네 트릴로지>는 고전적인 느와르 장르의 전통을 완벽하게 이어간다등장인물들의 유형은 어딘가 낯이 익고 그들의 이어질 행동은 쉽사리 예측이 가능하다느와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코미디서스펜스하드보일드라는 세 가지 장르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며 하나의 장르가 지닌 고유적 특징의 재현을 선보인다그러나 뜻밖에도 이 작품은 단지 클리셰의 반복적 양산에 그치지는 않는다절묘하게 배치된 이미지들은 작품의 배경인 20세기 초중반 시카고의 어둡고 냉혹한 이미지를 촉발하며 대사 속의 함축된 의미는 배신과 복수관음과 비밀사랑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관념의 장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로키루시퍼빈디치의 총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세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각각 다르나 공간적 배경은 모두 시카고의 렉싱턴 호텔 661호로 동일하다첫 번째 이야기인 코미디 장르의 로키는 쇼걸 롤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결혼을 앞둔 롤라는 어느 날 꿈에서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이때부터 롤라의 현실과 거짓의 경계는 불분명해진다그 과정에서 롤라는 의도치 않은 살인을 몇 건 저지르고후반부 시점에 극의 흐름은 다시 처음의 장면으로 되돌아와 앞으로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는 암시를 건넨다두 번째 이야기인 서스펜스 장르의 루시퍼는 알 카포네 조직의 2인자인 닉과 그의 아내 말린말린의 사촌이자 카포네 조직과 경쟁 관계에 있는 또 다른 마피아 조직의 우두머리인 조조의 아들인 경찰 마이클의 이야기를 다룬다닉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조조가 계속해서 위협을 가해오자 결국 조조가 타고 있던 차를 폭파해 버리는데사실 이 차에는 조조뿐만이 아닌 마이클의 아이들까지도 타고 있었다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결국 닉과 몸싸움을 벌이고끝내 둘은 함께 창밖으로 추락한다마지막 이야기인 하드보일드 장르의 빈디치는 제목 그대로 빈디치라는 이름을 지닌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빈디치는 과거에 경찰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아내 그레이스를 죽게 만든 경찰청장 두스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스의 딸인 루시가 어째서인지 빈디치를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표하고둘은 두스에게 고문을 가하는 데에 성공한다하지만 빈디치는 두스의 말을 통해 그레이스의 죽음에 루시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분노에 차 루시를 살해하고마지막엔 자신 역시 독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한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여타 다른 느와르 작품들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은 트릴로지’, 즉 삼부작이라는 이야기 구성 방식에 있다세 이야기는 각각 독립되어 있으며 어느 한 편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내용 이해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시카고의 렉싱턴 호텔 661호라는 단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세 개의 서사는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요소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바로 공간의 상징성이다렉싱턴 호텔 661호는 단지 평범한 객실로써 머무는 것이 아닌공간 자체가 일련의 필연적 운명과 결부되어 있는 초월적 존재가 되어 그 투숙객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비극을 맞이한다그 비극은 이미 예정된 것이지만 형태와 결말또 그 결말이 불러올 파급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이것은 도시괴담이나 그를 토대로 한 창작물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어떤 저주받은 공간의 모티프와 일정 부분 유사성이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며오히려 인물들의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투숙객들에게 일말의 선택권을 준 채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관망한다이 방은 살의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총을 들게 만들거나 방금 전까지 생긋 웃고 있던 사람을 느닷없이 자살하도록 부추기는 작위적인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사실상 투숙객들의 비극은 그들 내면의 욕망이 도화선이 된 것이며 호텔은 그저 그 욕망이 새어나가거나 휘발되는 일 없이 본래의 크기를 유지시키는 데에만 기여할 뿐이다롤라는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안정된 삶을 살던 닉의 비극은 결국 그가 조조를 살해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빈디치는 복수를 행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끝내 복수에 대한 집착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마저 잃는다한 개인이 본래 지니고 있던 잠재적 비극의 징조가 렉싱턴 호텔 661호를 만나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이렇듯 이 방에 어떠한 욕망을 지닌 사람들만이 묵게 된다는 점 역시 일종의 운명이며호텔은 그들을 수용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만들어준다물론 그들이 얻게 될 것들의 끝에는 항상 파멸이 자리하며 엔딩은 결코 아름다운 형태로써 잔존할 수 없다공간은 시간을 가로질러 시대를 관통하고 종국에는 나약한 개인이 처참히 무너지는 모습을 말없이 목도한다언제나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남아 수없이 많은 이들의 잿빛 눈물 방울 끝에 걸리는 희미한 전등 빛을 간직하면서부패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드리운 어둠 속 끝없는 불멸의 고리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특정 공간에 상징을 부여해 그것을 인물들의 서사와 연관지으며 인간의 욕망이 초래하는 비극을 탐구하는 일에 열중한다비록 작품 내에는 오직 세 개의 이야기만이 존재하지만이러한 공간의 흐름은 연극이 막을 내린 후에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여다볼까음울한 화려함으로 치장된 카포네의 도시당신은 지금 렉싱턴 호텔 661호의 문 앞에 서 있다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면당신은 오랫동안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당신 내면의 실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당신은 비극을 향해 무한히 달려가고 있는 길 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그 슬픈 결말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공간의 기묘함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고그 문을 열게 된다면 이내 곧 다시 공간의 힘이 당신을 벗어날 수 없는 깊은 구렁텅이로 유인할 것이다이제 선택할 차례이다낡아버려 마구 삐걱대는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이미 당신은 서서히 죽음에 잠식되어 가는 불행한 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파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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