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는 머리카락과 인권
- 작성자 밥공기
- 작성일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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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217
- 조회수 12,376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가는 복도에 수많은 머리카락이 잔뜩 떨어져 있다.
선생님은 손에 가위와 바리깡을 들고 있다.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은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 짓고, 마침내 짧아진 머리를 감싸고는 퉁퉁 부어버린 허벅지 때문에 교복이 허벅지에 스칠라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교실에서는 뜨거워진 허벅지를 식히기 위해 책상다리에 허벅지를 대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또 다른 풍경이라 하겠다.
두발규제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건 더 떠들면 입이 아플 정도로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행해졌던 단발령을 학생에게 강요하는가?
일제 강점기를 우리 역사의 크나큰 치욕으로 남기면서 말이다.
당시 조선에게 강제로 단발령을 내려 칼을 들고 조선인의 상투를 자르는 일본 순사의 모습과 억울하게도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눈 앞에 두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마치 지금의 그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대체 왜 어른들은 학생의 머리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어디 변명을 한번 들어보자.
"학생들이 머리가 길면 학업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들의 가장 흔한 변명이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냉철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이런 발언을 하는 건 좀 우스운 일이라 하겠다.
머리가 긴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고 머리가 짧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통계가 어디 있던가.
공부 잘하는 엘리트들이 많다는 '외고'는 상당수가 두발자유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학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여 학생들의 머리를 자르는게 정당한가?
일부 선생님과 어른들의 생각은 인권보다 학업이 우선인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야 할 것이 인권이라 배웠다. 선생님들에게 말이다.
"학생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학생의 본분은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인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가? 라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와 머리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머리의 길이와 가방끈의 길이는 반비례 하지도, 비례하지도 않는다.
단지 머리의 길이는 머리의 길이일 뿐.
"학생들의 머리가 길면 학교의 위상이.."
많은 보수적인 어른들은 길거리에 머리가 긴 학생들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찬다.
예컨대 "학생이 무슨 머리가 저렇게 길어가지고 무슨 학생이람..쯧쯧" 따위 말이다.
학교는 어른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해 다니는 곳이지 어른들에게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신체 일부분에 불과한 머리카락 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면 학생은 과연 국민이란 말인가?
헌법은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나라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교칙은 학교를 위해 존재하고,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학생들이 최우선시 되어야 할 학교에서 왜 학생들이 당연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일에 그토록 기를 쓰며 반대하는가.
"천부인권"이라는 말이 있던가.
인간이라면,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인간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리이다.
살인자와 같은 범죄자의 천부인권도 지켜주는 세상이다.
학생들에게 천부인권은 어디로 갔는가? "학생"이라는 이름이 살인자라는 이름보다 큰 죄악을 지닌 이름인가?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살인자보다 못한 존재인가?
흔히들 학생을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기둥이라고 한다.
나라가 미래의 기둥에게 범죄자보다 못한 만큼의 인권을 주는데 어떻게 기둥이 버틸 수 있을까.
학생들이 빨간 머리에 폭탄 맞은 머리를 한다고 해서 그게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는가?
학생들의 머리가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그 이유 때문에 학생들의 머리를 규제하는가?
10대가 하면 죄요, 20대가 하면 무죄인가?
일부, 아니 대부분의 어른들과 선생님들이 가진 고정관념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그들을 무참히 짓밟는다.
"폭력은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유난히 선생님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교편에 대해 존중해주길 바란다면, 선생님들 역시 학생이기전의 하나의 개인에게 최소한의 인권 정도는 보장해주어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는가?
상호존중은 민주주의 사회에 큰 덕목이 아니겠는가. 왜 그토록 좋은 일을 선생님들이 기를 쓰고 막는지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권리를 먼저 존중해주어라. 라고 분필을 들고 칠판에 적었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수업이 끝난 후 분필이 아닌 바리깡을 들고 친구들의 머리를 잘라버리던 선생님 말이다.
왜 학생들은, 아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범죄자조차 인정받는 인권조차 존중받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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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말해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대드는 꼴입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학생으로서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것은 그들에대한 격렬한 저항으로 낙인직혀서 성장하기도 전에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갈고 닦으며 그들과의 절충안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완벽한 자유는 없습니다. 학생이란 신분은 가르침을 받는 신분입니다. 학교의 규범 아래에서 토론을 거쳐 절충안을 이끌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배워나가는 것이지요.
또 하나 말하자면 동양문화에서 교욱과 서양문화에서 교육은 그 근본 사상 자체가 다릅니다. 물론 어느 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는 법이지요. 동양은 폭포를 존중하며 흐름은 거스르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를 취한 반면 서양은 분수로서 도전하고 의의를 제기 하는 등 그 근본적인 사고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산업혁명과 개항 이후 지금은 우리의 교육도 많은 면이 서구식으로 바뀌었지만 한국의 반만년의 사상속에 박힌 동양식 교육의 방식은 아직도 사회 깊숙히 남아 있으며 그것이 지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양의 가르침은 스승에 대한 예의를 제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그 스승이란 집단은 사회의 보수적기득권 층입니다. 당장 코앞에 있는 취직이나 입시의 면접에서도 그들의 사고는 문제와 정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학생과 살인마를 비교한 주장은 다소 비약적 논리입니다. 또 분명한 것은 우리 학생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입니다. 이런 사고를 하고 주장을 하는것은 분명 우리의 사고가 자라고 있다는 한 과정의 역사일 것입니다. 님이 반박하신 다른 모든 주장을 떠나서 학생은 미완성체이므로 가르침과 사회를 통해 커나아가는 것
입니다. 그런 사회는 지금 우리에게 단정한 두발이란 가르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입장으로서 우선 그렇게 적응해서 살아남으십시오. 그렇게 성장하셔서 그것이 옳았다 싶으면 계속 후대에게 가르침을 주면 되는 것이고 틀렸다 싶으면 대선해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도 불리며 예절을 중시했던 우리나라의 사상은 여전히 남았으며 여전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런 예절이 현대사회는 단정한 머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르침을 받는 , 성장해나아가는 학생으로서의 위치나 단계에서 아직은 그 가르침을 뿌리칠 단계는 아닙니다.
자유의 의미와 자유방임주의 개념과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자유는 말 그대로 사회의 규범 안에서 허용된 자유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두발을 단정히 하라난 의미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 학업에만 치충하라는 영수국 위주의 우리사회의 병폐에 입각한 주장이기도 하겠지만 현대 집권층과 수천년을 내려온 예절이 만들어낸 덕목 중 하나입니다. 무조건 비판을 가해야할 것도 아니며 무조건 따라야할 것도 아닙니다. 박노자교수는 ''갈등과 비판이 없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것과 같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