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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번째

  • 작성자 당근매니아
  • 작성일 2007-09-05
  • 조회수 208

  글을 쓰는 사람이 글 속에서 스스로를 지칭할 때 흔히 필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말 그대
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외부에서 볼 때 하나의 글을 쓰는 사람은 한 명뿐이고 이
는 위키피디아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실이다. 때문에 필자
라는 말은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작용할 수 있다. 비슷하게 사용되는 말로 타자나
본인 따위의 말도 있지만 필자만큼 대중적이진 않다. 한국인의 뿌리가 실은 유대인이라는,
놀랍고도 유머 넘치는─글을 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학설을 펼치는 또라이
부터 세계 수준을 자처하는 석학들과 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두루두루 애용된다.
물론 앞 문장에 쓰인 필자는 지금 글을 쓰는 필자─어법에는 어긋나는 표현이지만 양해 바
란다─를 가리키는 필자가 아니라, 일반 명사로서의 필자다.

  각설하고, 필자는 저 필자라는 표현에 질렸다.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건만 필자는 필자를
필자라고 지칭하는 글을 너무 많이 썼고, 이제는 연필로든 타자로든 필자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 질렸다. 그러니 필자는 필자를 대체할 새로운 단어를 고민해야 했지만 다들 알다시피
언어에는 사회성이란 것이 존재한다. 필자가 멋대로 필자를 asshole 같은 단어로 대체한다
면 필자가 구제불능의 성도착증 환자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필자는 필
자가 16년도 넘는 세월동안 강제로 교육 당했던 수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6살 때 처음 마
주대했던 수학은 26년 만에야 사용처를 찾은 셈이다. 이제 필자라는 단어는 A로 치환되고
문제는 해결된다. A는 성도착증 환자로 취급될 여지를 없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스물두 번이나 나왔고 이번에 나오면 스물세 번째가 되는 지겨운 필자라는 단어를 보지 않
아도 된다.

  자, 이야기를 시작하자. A는 지금 32살이고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A는 입사 3년 차이며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영화 전문 기자가 되었고 영화 평론을 쓴다. A는 미혼이고 성
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왕성한 편은 아니고 한때는 일반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할 생각도 있었지만 인생의 절반 동안 사랑했고 3년 전부터 사귀어서 결혼 직전
까지 갔던 첫사랑이 웬 개뼈다구 같은 자식과 놀아난 뒤 도피하듯 유럽으로 훌쩍 날아가자
남은 생을 솔로로 살기로 결심했고 사람 관계에는 좀 서툴고 감정표현은 더 서툴고 그래서
차였고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심정으로 영화 보고 글 쓰고 밥 먹고 적금을 깨고 AV시스템
과 컴퓨터 부품과 콘솔 게임기를 사 모으는 데 월급을 가져다 박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그러
나 이 모든 건 그다지 중요치 않다. A의 이런저런 무의미한 특질 중 중요한 건 A가 Z라는 소
년을 알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 점을 뺀다면 이 글에서 A는 전혀 의미가 없는 존재다. 당장
죽어도 좋은 산송장이다. 그러니 우리는 A에게 존재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Z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는 것이다. A는 지금 이야기를 시작하고 우리는 A의 이야기가 전부 끝
난 뒤 그의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자. 이번 A는 열 넷. 아니 열세 번째 A다.

  A가 아는 Z는 건방진 녀석이다. Z는 아침잠이 많은 중학교 2학년생이고 공부는 어느 정도
하고 하지만 특목고에 갈 생각은 없고 나름대로 진보를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신봉자
이며 무신론자이자 회의론자이나 아직 맑스나 그의 유물론은 모르고 있었고, 운동은 전반
적으로 잘 못하고 고작 몇 달 전에 자위를 알았고 사랑을 해본 적은 없고 매일 아침 하드렌
즈를 꼈고 자존심은 쓸 데 없이 강하면서 책읽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햇살이 점점 강해지는 유월 초이고 학기를 시작한 지는 삼 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
이다. 반에서 존재감이 특히 옅은 서너 명 정도를 제외하면 웬만큼 다들 서로 이름과 특징을
파악하고 있을 때다. 사실 Z는 그 서너 명에 들어도 별 무리가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Z는
내성적이었고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발표를 할 땐 조리 있게 말했지만 평소에는 대화에 끼
기보다 한걸음 뒤에서 다른 녀석들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저장하고 분석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하는 동안 Z 자신은 자기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건 Z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Z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과묵했고 입 안에서 말이 다 완성되지 않는 한 섣불리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은 경우 말이 정리되기 전에 화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Z가 말할 기
회는 사라졌다. 때문에 Z와 반 친구들과의 인식에 괴리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에서 Z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명제가 A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A는 그렇게
기억하고 그렇게 말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Z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돌림
이라고는 하나 왕따 수준의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따돌림을 주도하는 것은 네다섯 명 정도
의 무리였고 이외의 인간들은 그냥 방관자들이었다. 그들은 나서지도 않았고 막지도 않았
다.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다면 그들은 딱히 배우를 쓸 필요도 없이 그냥 배경용 그림에
그려놓아도 좋을 법한 존재들이었다. Z는 그들을 혐오했지만 미워하지는 않았다. Z 또한
그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Z에게 중요한 건 자신을 먹잇감으로 삼은 병신 같
은 자식들에게 그네들이 먹잇감을 잘못 찾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1학년
때 누렸던 관찰자 역의 안락하고 홀가분한 생활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Z는 천성적으로 긴
장된 삶을 싫어했다. Z는 이미 50일이 넘게 지속되어온 이 적대 관계가 대단히 귀찮았다.
슬슬 떨쳐버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극이 필요했다.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함을 보여
줄 건수가 필요했다. 자신이 강자임을 보여주면 그치들은 자연스레 떨어져 나가리라고 Z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Z가 제일 애용하는 공격 방법인 성적으로 줄
세우기가 통하지 않았다. 분명 Z는 그 패거리들보다 공부를 잘했다. 상당한 차이로 Z가 앞
서고 있었다. 하지만 Z가 놈들에게 패배감을 심어주는 데에는 문제가 존재했다. 녀석들은
아직 미세한 성적 차가 불러올 미래의 신분 차이─물론 이게 언제나 맞는 법칙은 아니다─
에 대해 생각할 만큼 성숙한 인간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교 5등을 찍은 성적표도 별 의
미가 없었다. 아니, 성적에 굴복하지 않는 미개인들이 이 세계에 실존하다니. 이 예상치 못
한 반응에 Z는 당황했고 곧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Z는 더 큰 문제를 찾아냈다. 공부를
제외하곤 Z가 딱히 그들은 앞선 게 없다는 점이었다. Z는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기보다
는 방 안에서 뒹굴 거리며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그 덕에 잡다한 상식은 풍부했지만 운동
에는 언제나 젬병이었다. 잘라 말해 운동으로 놈들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0이었다. Z는
나름대로 상황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하려 노력했다. 축구 같은 건 임팩트가 약하니 역시 강
함을 뽐내기 위해서는 격투가 최고라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에 소질이 없는 Z가 쌈질이라
고 잘할 리가 없었다. 1대 5는커녕 1대 1도 버거웠다. 상대는 반에서 나름대로 쌈박질 좀 한
다는 녀석들이었다. Z는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때문에 기말고사 때 더 등수를
올려볼까를 잠시 고민했지만 무의미하다는 걸 곧 알아차렸다. 저 치들은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져가도 그 의미를 모를 것이다. 결국에는 물리적인 방법이 최고라는 결론만 반복해서 도
출되었고 Z는 그날 밤부터 생전 안하던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자기 전
10분간의 이미지 트레이닝도 잊지 않았다. Z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었고 때문에 폭력 사태에
여러 번 말려들거나 이쪽에서 먼저 물리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A의 말처
럼 Z는 건방졌고, 건방진 만큼 그 건방짐을 윗사람들이 알면 문제가 된다는 걸 충분히 인지
한 채 행동을 결정했다. 실로 건방진 중2였다.

  기회는 한 번, 저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어왔을 때에 한해서. 한 놈만 골라서 패되 무기를
직접 손에 들어선 안 되니 장소를 교실이나 점심시간 때의 복도로 한정해 책걸상이나 알루
미늄제 급식차 모서리에 우연인 양 얼굴을 갖다 찧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정 아래 Z는 이
미지 트레이닝을 수행했다. 그 ‘이미지’ 안에서 Z는 교묘한 솜씨로 상대의 코나 눈을 찍었
다. 코뼈가 부러지거나, 외신경이 끊어진 눈알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건방지게도 Z는 언제
나 천하무적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건만 기회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대도
일이 커지면 곤란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Z의 기대와는 달리 괴롭힘은 대단히 유치
한 형태─체육 시간의 실수를 요란하게 비웃는다든가 자잘한 물건을 부순다든가 책상에 엎
어져 자는 Z의 의자를 뒤로 뺀다든가 하는 식으로 나타났다. Z는 몇 번이고 녀석들의 골을
의자로 찍어버리고 싶었지만 매번 그 강렬한 충동을 훌륭히 참아냈다. 그런 짓을 하면 선생
이나 법, 교칙에게 외면 받는 결과를 불러오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Z는 생각했다. 그
리고 그런 견해는 대체로 옳았다. Z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5월 말 드디어 그 날은 밤손님
처럼 조용히 찾아왔다.

  여기까지 말하고 A는 목이 말랐고 냉장고에서 페트병을 꺼내 인스턴트 식혜를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조금 흘렸다. A는 곧장 화장실로 가서 걸레를 안장 꺼내와 바닥을 훔치고, 혹여
나 끈끈함이 남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했다. 발로 몇 번을 바닥을 건드려 봐서 식혜가 제대로
닦였음을 확인한 뒤에야 A는 안심했다. A는 약간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벽의 대상
은 대체로 더러움보다 귀찮음이었다. A는 귀찮은 일─아까 같은 경우 개미가 꼬인다든지─
이 생기는 걸 극도로 꺼렸다. 반면 더러움에 대한 역치는 높은 편이어서 실제로 다른 사람이
불쾌하다고 느낄 집안 공기에도 A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간의 방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
도의 침실을 치우지 않고 있는 것도 증거 중 하나다. 어쨌건 무기력한 A는 다시 의자에 앉고
건방진 Z에 관한 글을 쓴다.

  사건의 발단은 급식이었다. Z가 간접적인 무기로 활용할 궁리를 했던 급식차에 담겨오는
음식 말이다. 이 경우에는 급식을 옮기는 용도로 사용하기에 그 알루미늄 밀것을 급식차라
부르는 거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건 Z에게도 A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Z는 그 주
급식당번이었고 급식차에서 음식들이 든 통을 꺼내 배식대 위로 올려놓았다. 밥, 반찬, 국
순서로 통들이 줄을 서고, 배경에 그려진 반 친구들도 흐늘거리며 반짝이는 식판을 하나씩
들고 나란히 줄을 섰다. 그 날의 메인 메뉴는 미트볼이었다. 급식 당번은 가장 마지막에 밥
을 먹는 대신 음식을 스스로 퍼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트볼은 한 사람당 7개씩 배
식하라고 되어있었지만 양을 보아하니 당번인 Z에게는 10개도 넘는 양이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치킨만큼은 아니더라도 Z는 미트볼을 좋아했다. 어차피 싸구려 고기를 쓴다면 어
쭙잖은 불고기보다 이쪽이 차라리 나았다. 여느 때와 같이 20분 정도 만에 배식은 끝났고
예상대로 미트볼은 충분한 양이 남았다. 급식 당번들은 한 명씩 자신의 음식을 덜었고 Z도
마찬가지로 식판을 들고 음식을 덜었다. 문제는 Z가 미트볼을 국자 가득 떴을 때 일어났다.
Z를 저지하고 나선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Z의 숙적들이었다. 그들은 학급 내에서 방
약무인하게 행동했고 그런 태도는 급식을 받기 위해 곧게 늘어선 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지라, 다른 배경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선 뒤에도 그네들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맨 앞자리에
끼어들곤 했다. 배경들은 방관자들이었고 자신들이 당한 부당에 대해서도 화내는 법이 없
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가장 먼저 급식을 받아 처먹은 패거리들은, 이번엔 남은 음식들을
좀 더 먹어보려는 욕심에 기어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때마침 Z가 있었다.

  적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배식량이 7개였으니 너도 7개를 받고 들어가서 얌전히 다 처먹
은 다음 다시 나와서 또 받아 처먹으렴.’ Z의 대답은 이러했다. ‘싫어’. 좀 더 풀어서 말하자
면 ‘조까라 마이싱’이다. 그 말을 듣고 상대는 격분했다. Z의 식판을 Z와 적 중 하나가 잡은
상태로 잠시 힘겨루기가 벌어졌고, 다른 녀석이 국자를 잡은 손을 꺾었다. 잠시 끙끙대던 Z
는 이것이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Z는 순식간에 선빵을 맞을 수 있는 시나리
오를 완성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식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것이다. 균형을 잃은 식판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고, 낙하면서 자신이 품고 있던 국을 허공에 흩뿌렸다. 물
론 Z가 아닌 그 맞은편에. 식판을 잡고 있던 적1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힘껏 쥔 주먹이 노딜
레이로 날아들었다. Z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피할 능력도 없었지만─ 맞았다. 점심시간
의 급식 차 옆, 먼저 때리지 않고 합법적인 폭력의 구실을 만든다는 조건들이 전부 클리어
됐다. Z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직 Z의 싸움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적
은 셋이었다. 첫 타를 맞은 이후로 Z가 기억하는 건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는 것뿐이다. 적
1, 2, 3은 Z를 둘러싸고 무참히 린치를 가했다. 덩치 좋은 적 2의 실내화가 Z의 왼쪽 눈을
찼고 눈두덩이 곧 부어올랐다. 역시 덩치가 있는 적 3의 주먹이 연방 Z의 등짝을 후려쳤고
몸이 작은 적 1은 옷에 튄 국물을 욕하면서 바디 블로우를 날렸다. 그 짧은 시간에 적 1은 씹
과 좆에서 파생된 창의적 욕설을 스무 개도 넘게 쏟아냈다. 그야말로 창의력 대장이다. Z는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았고 덕분에 자신이 엎은 식판의 코를 박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행히
도 교실에서 교무실까지의 거리는 채 30m가 되지 않았고, 복도의 이상을 눈치 챈 선생들이
뛰어왔다. 그 중에는 Z가 증오하는 체육 선생도 껴있었고 Z를 아끼는 담임선생도 있었다.
몇 초 되지 않아 적들은 교무실로 끌려갔고 Z는 양호실로 내려갔다.

  다른 곳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적 2가 이천수 프리킥 차듯 힘차게 발로 찬 왼쪽 눈은 시퍼
런 멍이 들었고, 붓기 때문에 눈동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편리한─통신이 발달된, 혹은 다들
핸드폰의 노예인─ 현대 사회답게 네 명의 엄마들이 금세 학교로 달려왔고, Z의 참혹한 얼
굴을 본 Z의 엄마는 기겁을 했고, 적 1, 2, 3은 사건 진술서를 썼고, 그 광경을 본 적 1, 2, 3
이 엄마들도 기겁을 했다. 일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Z는 점심시간을 양호실에서 보내고 5교
시 종이 치자 짐짓 태연하게 교실로 올라가 수학 수업에 들어갔다가─세보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결국 끌려나와 병원으로 이송되어 엑스레이를 찍고, 안과로 가 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부은 것 빼고 별 이상은 없었지만 Z는 당분간 렌즈를 끼지 못하게 되었고
다다음날 있는 운동회에 불쌍 사나운 얼굴로 나가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당연히 그날 오후
수업은 공쳤고 Z는 집에 돌아와 간소한 점심을 들었다. 미트볼은 없었다. 학교 수업이 끝날
시간이 좀 지나자 적 1, 2, 3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대강 사과를 했고 Z는 적당히 받아
주었다. 이후 Z는 이때의 대응에 대해 약 7년 간 후회하게 되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문을 닫
았어야 녀석들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튼 그때의 Z는 거기
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미트볼 생각도 없었다.

  Z가 정말 분노하게 되는 건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교실에 들어선 Z를
반기는 나쁜 소식 둘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적들의 어미가 교육청에 학교를 신고했다는 것이
었다. 이유는 ‘죄에 걸맞지 않는 과대한 처벌’이었다. Z가 양호실에서 혼자 분개할 때 적들
은 2학년 교무실에서 나란히 엎드려뻗치고 있었고 이후 교내 봉사와 반성문을 요구 당했다.
1대 1 쌈박질이면 모를까 린치는 교칙에서도 죄질이 상당히 나쁜 축에 들었고, 거기다 맞은
상대는 시험마다 전교 순위권에 드는 Z였다. 그 정도의 처벌은 차라리 관대했으나─Z는 그
렇게 생각했다─ 적들의 꼴난 어미들은 눈에 팬더 무늬 새겨진 정도 가지고 뭔 벌이 그리 막
중하냐고 교육청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글은 졸문이었지만 중요한 건 글의 질이 아니었고
학교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그 덕에 Z는 상황 진술서를 쓰게 되었다. Z는 사실 진술만을
했고 자신이 린치를 당하는 부분의 서술에서도 냉정함을 보임으로서 도덕적 상위를 선점했
다. 그리고 그날도 조퇴를 한 Z는 잔뜩 화가 난 엄마와 함께 집 앞 가정의학과에 가서 진단
서를 끊었고, Z의 엄마는 어찌 인간들이 그럴 수 있냐며 열을 냈다. Z는 몰랐지만 적 1의 어
미가 어제 저녁에 전화를 해 애가 괜찮냐고 물어봤었다는 것이다. Z의 엄마는 당연히 예의
상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적들의 어미는 그걸 진담으로 간주했고 교육청에 올라간 글에 ‘아
니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학교에서 왜 지랄이니’ 라는 구절이 추가되었다. Z는 그 안하무인
에 잠시 분노를 느꼈지만 이건 아무래도 좋았다. 곤란해진 건 학교였고 진단서를 끊는 돈은
Z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었던 탓이다. 참고로 Z의 멍은 전치 3주로 진단서에 찍혔
지만 실제로는 5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Z의 얼굴을 점하고 있었다.

  Z가 진정 열 받은 건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교실의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 놈들은 여전히 시시덕대고 있었고, 배경들은 여전히 배경 역할만 충실히 하고 있었고, 아
무도 Z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쳐 맞고 얻은 결과가 고작 이건가 하는 생각
을 하자 Z는 골이 빠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섣불리 표출해
서 좋을 게 없었던 탓이다. Z는 어제 적 1에게 배운 창의적 욕설을 마음속으로 죽어라 외쳤
고 나중에는 스스로 바리에이션도 몇 개 만들었다. 창의력 소장이다. 그리고 Z는 조퇴를 했
고 가정 의학과에 가서 거금 5만원을 들여 진단서를 끊었다.

  집에 돌아온 Z는 혼자 침대 위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돼지 같은 어미들은 학
교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Z는 교실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향상되지 않는 데에 대해서만 관
심이 있었다. 이유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계획대로라면 적들을 무참히 학살해야했을 Z
가 적의 피를 보기는커녕 세 명에게 몰매를 맞았다. 반의 분위기는 당연한 것이다. Z는 고민
하고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저녁을 먹는 중에도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잠자
기에 들기 전 Z는 모든 결론과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했다. Z는 중학생에 어울리지 않는
건방진 표정으로 웃었다. 자신이 세계의 일인자라도 되는 양.

  Z가 세운 계획의 이름은 ‘돼지 사냥’이었다.

  A는 불안한 표정이다. Z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
럼 안절부절 못하고 문장은 갈수록 조잡해진다. A는 자신의 필력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가 잠시 고민한다. A가 쓴 평론은 인기가 있는 편이다. A는 영화평에 철학적 분석 따위를 넣
는 것을 혐오한다. 감독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사소한 부분과 소품에 의미를 부여하
는 작자들을 경멸한다. A의 평론에는 철저히 구조론적인 이야기만이 있다. 캐릭터는 매끄럽
게 움직이는가, 개연성은 있는가, 플롯의 완성도는 어떠한가, 화면 구성은 어떻고 쇼트는 적
당한가, 미학적인 면은 충족되었는가. A는 영화의 메시지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글에 쓰
는 법이 없다. 그리고 A는 문득 자신이 이런 글을 써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아, 그래서
였군.

  Z는 준비에 착수했다. 집에는 알리지 않고 학교를 조퇴했다. 2교시에 조퇴했으니 Z는 5시
간 이상을 번 셈이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Z는 포박용 밧줄과 철제
와이어, 볼트와 너트 수십 개, 두꺼운 철제 봉 몇 개, Z의 팔 힘으로 겨우 휠 수 있을 정도의
알루미늄 바, 대형견용 목걸이 하나, 개밥 한 포대, 새 먹이용 말린 벌레 한 봉지, 싸구려 바
늘 한 쌈, 주사기 두 개와 링거용 바늘, 포도당, 압정 한 상자, 포장 테이프. 통장에 있는 얼
마 안 되는 돈을 털어 Z는 그런 것들을 샀다. 물건은 Z가 사는 동네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상가와 30분 정도 떨어진 할인 매장에서 샀다. 장소는 이미 정해놓았다. 학교 구석으로 뚫
린 좁은 샛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면 버려진 공무원 저택이 있었다. 한 때는 수십 세대가 입
주해 살았지만 이제는 흉물일 뿐이다. Z의 계획에는 아주 적당했다. 거기는 가끔씩 결투에
쓰이는 장소였고, 1대 1로 붙자고 하면 의심 받지 않고 1대 1 대면이 가능하다. Z의 책상 위
에는 2년 전 과학관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만든 쥐 내장 표본이 있었다. 비장과 정낭관을 넣
은 병은 작았지만 거기에 보존액으로 집어넣은 것은 순도 높은 포르말린이다. Z는 포르말
린이 외부와 접촉하지 않게 하기 위해 병 입구를 정성들여 봉인했었고, 지금도 병 안에는 그
역겨운 화학 물질이 변성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비장에서 새어나온 검붉은 피가 거슬
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써먹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 정도 양의 포르말린이면 사람 몇 명을
쓰러뜨리기엔 충분하다. Z는 공무원 주택 2층 14호에 자리를 잡았고, 미리 사온 것들을 용
도에 맞게 정리했다. 알루미늄 바를 휘어 손목 두 개와 발목 둘이 나란히 서서 고정되게 하
는 기구를 만들었다. 여기에 사지를 고정시키고 빔의 양 끝을 밧줄로 묶으면 자력으로 탈출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자세는 그 자체로도 고통스러운 데다가 적당한 높이의 책상 두 개만
있다면 예전 안기부에서 흔히 사용했던 고문의 재현도 가능했다. 몸을 굴려 벽 모서리 따위
에 대고 밧줄을 끊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장치는 주변에 압정을 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Z는 정리를 계속했다. 적을 죽일 수는 없으므로 링거를 지속적으로 맞춰준다. 하지만 링거
는 배가 차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Z가 노리는 건 셋 중 식탐이 가장 강
한 적 2였고 그건 적 2가 적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녀석이었던 탓이다. 여튼 적 2가 허기를
호소하면 Z는 먹을 것을 줄 것이다. 개밥과 벌레를 섞은 진수성찬을 말이다. 먹기 싫다 버티
면 억지로라도 입 속에 구겨 넣은 뒤 다시 팬티나 물고 있으라 하면 된다. 소음을 막기 위한
장치는 녀석이 입고 올 냄새나는 팬티 한 장과 포장 테이프면 충분하다. Z는 즐거웠다.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했다. 꼼짝 못하고 징징대는 적 2의 허벅지에 바늘을 깊게 찔러 넣고,
더러운 돼지의 피를 뽑고, 그 불룩한 배때기에 와이어를 칭칭 감아 만든 낙인을 찍고, 적 2
의 목에 개목걸이를 건 채 방안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입 안 가득 너트와 볼트를 채운 뒤 테이
프로 봉하고 적 2가 했듯이 얼굴을 차버리면 입 안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이빨은 뿌리째
뽑힐 것이다. 삼일 밤낮이면 충분히 녀석의 인격을 박살낼 수 있으리라 Z는 자신했다. 물론
Z는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고, 머리카락이나 터럭 따위가 떨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더위에도 불구하고 긴팔 긴바지를 입은 채 머리는 두건으로 꽁꽁 감쌌
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준비도 나름대로 끝냈고, 희생물이 Z를 알아보는 걸 막기 위해
키높이 구두를 신고 얼굴에 쓸 가면도 준비했다.

  Z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적 2에게 보낼 결투 신청서를 작성했다. 편지는 3일
뒤에 녀석의 집 우편함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결투 날짜는 4일 후 저녁 6시, 이름은 당연히
무기명이다. Z는 이후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학교를 빠졌고, 편지는 삼일 째 되는 밤 녀석의
집에 몰래 찾아가 직접 넣고 왔다. Z는 덤불 뒤에 숨어 적 2를 기다렸다.

  A는 사실 지금 이 뒤를 쓸 기분이 아니다. 아까부터 느꼈던 불쾌감이 더욱 구체적인 모습
으로 다가오고 있다. 거울에 비춰본 A의 혈색은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 글은 완성되어야한 하는 이유가 있다. 때문에 A는 이렇게 다시 펜을 든다. A는 이
제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다. 어린 시절 A는 나비를 잘 잡지 못했다. 날아다
니는 것은 물론이고, 가만히 꽃대 위에 앉아있는 녀석들도 A가 잡으려고만 하면 손가락 사
이로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가끔 시도가 성공할라치면 꼭 마지막 힘 조절에 실패해 그 하늘
하늘한 날개가 끔찍하게 뭉개졌다. 그리고 나비는 다시 날아오르지 못했다. A는 지금 그 나
비를, 분가루만 손바닥에 남기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나비와 손 안에서 애처롭게 퍼덕이
던 망가진 나비를 떠올린다. 모든 건 다 나비의 탓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Z는 쌩돈만 날린 셈이 되었다. 적 2는 오지 않았다. Z는 완벽히 무시당했
다. 저녁 10시까지 기다린 후에야 Z는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준비해 놓은 것들은 그대
로 214호실 바닥에 널려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대체 어디를 싸돌아다니다 왔냐는 질
타가 시작되었지만 Z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니다. Z의 머리가 부글부글 끓는 마
그마로 가득 차 있어서 Z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 패배감과 굴욕감을 지울 방법이 없
었다. 뭘 때려 부술 수도 없고 발정난 개처럼 자위를 할 수도 없었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는
탓이다. 방에 틀어박혀 천천히 생각을 하니 이 뻘짓을 하느라 쓴 돈도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몇 만원을 들여 완벽한 준비를 했는데 Z는 그걸 하나도 써먹지 못했다. 일부러 낯선 동네에
서 사들인지라 환불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물건이 많은 것도 아니
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Z의 속은 참기 힘든 분노로 끓어올랐다. Z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한
참을 버둥거렸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Z는 이 화를 단숨에 날려버릴 방법이 필
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Z는 방안을 둘러보다가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물건을 발
견했다. 그리고 Z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포즈로 주먹을 메다꽂았다. 원투! 거울이 깨지며 요
란한 소리를 냈다.

  Z는 그 일로 팔목부터 팔뚝까지 길게 찢어진 상처를 얻었고 그걸 꿰매느라 다음 날도 학교
에 가지 못했다. 때문에 그 다음 날에야 Z는 그 날 적 2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Z
가 등교하지 않았던 며칠 새에 일이 커졌던 것이다. 교육청 쪽에 글을 올렸던 일─적 2 어미
의 이름으로 올라갔다─이 Z가 정확히 모르는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상당히 커졌고, 적 2
가 더 이상 이 학교를 다니지 불편한 상황까지 발전했다. 그런 와중에 결투장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듯 했다. 그리고 Z가 등교한 날 출석부에는 이미 적 2의 이름이 없었다. Z는
원래 세 놈을 전부 박살낼 생각이었지만 적 2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자 흥이 깨졌다. Z
는 혼자 공무원 주택으로 올라가 사놓았던 물건을 다 때려 부쉈다. 그렇게 그는 현실로 돌아
왔다. 적 2는 떠났지만 서너 명의 적이 아직 남아있었고, Z는 또다시 몇 달인가를 시달렸다.
사건 전보다 그 강도는 현저히 약했다 하나 Z가 원하는 평온은 2학기가 돼서야 Z를 찾아왔
다.

  이야기를 끝난 A는 타이밍 좋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잡지사 편집장의 전화다. 원래 A는
오늘 5시까지 이번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의 시사회 평을 전송했어야 했다. 그러나 A는 그
저께 있었던 시사회에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다. 평소의 그라면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
을 터이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이러면 어쩌냐’는 편집장─
그는 A의 대학 동아리 선배였다─의 한숨에 A는 한 음절만을 내뱉는다.

  “썅”

  나지막하게 깔린 욕설을 들은 편집장은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당황과 분노가 섞인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A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수화기를 전화기 옆에 사뿐
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A는 뚜벅뚜벅 걸어 자신의 침실 쪽으로 걸어간다. 문고리에 채워 놓
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 순간 뭐라 형언하기도 어려운 악취가 A의 코를 찌른다. 거실에서
느껴진 묘한 냄새의 진원지는 여기였다. 배설문과 피와 포르말린과 암모니아와 토사물양이
믹스된 냄새다. 방바닥에는 압정이 가득 널려있고, 밧줄과 절제 와이어와, 너트와 볼트와 철
제봉과 알루미늄 빔과 대형견용 목걸이와 개밥과 말린 벌레와 바늘과 주사기와 빈 포도당
봉지와 포장 테이프가 오물에 범벅이 되어있었다. 방구석에 눌러 붙은 빗자국이 시커먼 것
을 보면 이런 상태가 열흘은 족히 지속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A는 촘촘히 늘어선 채 하
늘을 보고 있는 압정을 치우며 전진해 방 중앙으로 나가간다. 거기에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도 민망한 물체가 알루미늄 빔으로 고정된 자세로 늘어져있다. 입안, 허벅지, 등, 배를 할 것
없이 피딱지가 몸을 덮은 형상은 본시도 빌라도 통치 하에서 고난을 겪으신 예수보다도 참
혹하다. A는 링거 쪽을 확인한다. 2초에 한 방울 씩 포도당 주사는 흘러들고 있다. 거 덕에
뼈밖에 남지 않은 이 송장의 심장이 뛰고 있다. A는 무심한 표정으로 <b>적 24</b>의 귓가
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뱀처럼 속삭인다. 쉬익쉬익, 쉬익쉬익.

  “그러게 왜 남의 여자는 꼬셔다가 지구 반대편에 가져다 놔 이 개새끼야, 응?”

  진득한 목소리. 반송장은 이제 한계였고 A는 삼십 분 뒤에 반송장이 송장이 되었음을 확인
했다. 이제 A에겐 할 일이 없다. A에게는 이제 분노도 열망과 갈증도 쾌락도 없다. 때문에 A
는 느긋한 걸음으로 베란다를 향한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A의 오른쪽 팔에는 길게 찢어진
걸 꿰맨 흉터가 보인다. 유리 조각에 찢긴 상처. A는 어기적거리며 베란다 난간을 넘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번에 나오면 스물네 번째가 되는 필자의 몸이 낙하한다. 이 앞에도 뒤에도 스물다섯 번
째는 없다. 날개가 돋아나지 않는 것도, 저 하늘로 솟구쳐 오르지 못한다는 것도,
전부 나비 때문이었다.

 


────────────────────────────────────────

 

 

오랜만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니 글을 올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입니다.

염치 없이 자유게시판에 퍼질러놨는데 해도되는 것인지 안되는건지.

대학 휴학계 내고 지금은 반수 생활 중인데

역시나 수험 생활을 해야 글이 써지네요.
내일이 모의고사인데 오늘도 석장 정도 쓰고 자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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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블로그에서 읽고 또 읽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2007-09-06 19:24:2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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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문장/창작광장/ 공모마당에 응모해보심이?

    • 2007-09-06 15:50:55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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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