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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酒)와 색(色), 경계에 서다」외 1편

  • 작성일 2023-10-18
  • 조회수 568

주(酒)와 색(色), 경계에 서다

전병덕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 했던가. 전립샘 비대증 검사를 마친 의사의 발기 부전 치료를 곁들이라는 처방에 쾌히 응했다. 그때부터 1~2주 간격으로 약을 바꿔 가며 달포가량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야간뇨도 급박뇨도 발기 부전도 그대로였다. 다만 얼굴에 홍조가 드러나고 코가 막히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음주에 대해 별말이 없던 의사는 대학병원 진료 의뢰서를 작성하며 혼자 머리를 갸웃거렸다.

   술과의 인연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청북도 최북단에 위치한 면 소재지 중학교는 ―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분기하는 특성으로 ― 이삼십 리쯤 되는 먼 곳에서의 통학생이 상당히 많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초봄이었던 것 같다. 마을에 회갑 잔치가 있다는 한 친구의 제안에 네댓 명이 어울려 몰려갔다. 교복 차림인 채 골방에 둘러앉았는데 한 아주머니가 소반에 음식을 한상 차려왔다. 술 주전자까지 곁들였다. 어느 순간 술 주전자가 비워지고 진풍경이 벌어졌다. 큰소리로 제 말만 늘어놓는 놈, 우는 놈, 노래를 부르는 놈, 쓰러져 자는 놈 그야말로 각양각태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남보다 술이 세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음주는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왔다. 직장생활 때에는 일주일에 네댓 번쯤 얼추 통음에 가까웠고 퇴직 후에도 집에서 혼자 습관처럼 거지반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술은 시(詩)이자 멘토였으며 결단력의 화신이었다. 술에 취하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으며 ―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 혼자라도 권태롭지 않았다. 심각한 딜레마 등에 처했을 경우 훌륭한 조언자와 안내자로 방향을 제시했고 일도양단의 기개로 매듭짓는 과단성도 곁들였다.

   아내와 거리가 느슨해진 건 정년퇴직 즈음해서였다. 알게 모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더니 욕구도 덩달아 급격히 떨어졌다. 가끔 억지로 시도해 보았지만 거개 수포로 끝나고 환멸과 자괴감만 더할 뿐이었다. 차츰 부부관계는 그러려니 하며 의례적으로, 마치 오누이 사이처럼 변모해 갔다. 각방을 쓰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칠순을 서너 해 앞두고 서재로 잠자리를 옮겼는데 첫날 아내는 아들을 분가시키는 것만큼이나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병원 의사가 톤을 높여 몰아붙였다. 발기 부전을 치료하려면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순한 태도가 갑자기 거칠게 돌변한 터였다.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느냐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을러대는, 이마가 벗겨진 의사는 오십 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감정을 추스르며 한동안 잠자코 바라보자 의사가 무안해진 듯, 목소리를 낮추며 양단간 결정을 해야 된다는 말로 진료를 마쳤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말 술을 끊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초유의 돌발 사태였다. 그렇다고 금주의 기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삼십 대 중반 십이지장궤양으로 두어 달 간, 삼십 대 후반 승진 시험공부를 하며 일년여간, 오십 대 후반 손가락 인대 파열로 서너 달 간 술과 담배를 일시 단절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문득 회자되는 ‘백세시대’란 말을 떠올렸다. 동시에 아직은 술항아리만 끌어안은 채 사랑을 잊을 나이가 결코 아니라는 오기도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래, 한 번 끊어 보자. 상념을 정리하자 오랜 숙제를 끝낸 것처럼 금방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 식탁에서 앞으로 5년 동안 절음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 속으로는 10년으로 정했다 ― 아내가 웃으며 한 달만이라도 끊어 보라며 못 미더워했다.

   본격적인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주를 시행한 지 삼칠일이 가까워지자 팔다리의 근육통을 시작으로 손발이 쑤시고 저린 아픔, 인후와 눈동자의 통증, 관자놀이의 지끈거림에다가 알레르기성 습진의 발효까지 증상도 다양했다. 발등과 종아리 부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습진은 3년 넘는 치료에도 완치되지 않고 숙지다가 돌출하기를 반복해 오던 중이었다. 나이가 들어 그만큼 면역력이 저하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노년의 삶에 대한 경구를 종종 듣는다. 단순한 덤이나 잉여로 치부하고 지족하라는 설득이다. 과연 그럴까. 꼭 그렇지만 않다는 게 개인적 지론이다. 서른에 서른의 꿈과 사랑이 있다면 일흔에는 일흔의 꿈과 사랑이 실재하는 법이다. 비록 석양에 기댄 여정일지라도 현재 지금보다 더 중요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한 존재로서의 부각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중심이 되고 자신만의 주인공이 되어, 진한 유화는 아니더라도 담담한 수채화는 그려 볼 일이다.

   체질 변화를 기대해 본다. 60여 년을 하루같이 길동무해 온 술과의 절연이 어떻게 변화가 없겠는가. 발기 부전의 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알레르기성 습진 정도는 가히 평정되리라. 주(酒)와 색(色)의 경계에서 전격적으로 유턴한 노익장의 각오는 새삼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 예순 전후까지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거나 주인공은 아니지만 아주 특별한 존재로 단정해 왔다. 그러나 착각이자 허상이었으며 오만이었다. 10여 년을 금주 기간으로 정하면서 스스로는 세상의 중심이거나 주인공은 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데 새롭게 방점을 찍는다.











어느 붕어의 하루



   제법 묵직했다. 김 노인은 비닐봉지를 열어 보이며 ― 얼핏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붕어 몇 마리가 보였다 ― 피로감 가득한 가운데도 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주말마다 2급수 이상 청정 저수지 등을 찾아 밤낚시를 다니는 전형적인 낚시광이었다. 지난 연말 모임에서 지나가는 투로 한 부탁을 잊지 않았던 게다. 받아들며 돌연 질겁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한 부탁을 했나 하는 후회가 살짝 일어났다.

   물고기 잡기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충청도 두메에 살던 중학교 시절, 매년 여름방학 때 하루와 벼 베기를 마친 늦가을 하루를 택해 물고기를 잡았다. 여름에는 동네에 하나뿐인 탑골 방죽의 수로를 퍼냈고 늦가을에는 웃골 논의 샘을 펐다. 두어 시간 넘게 걸리는 고된 노동이었다.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 방게, 새우, 논우렁이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한꺼번에 넣고 매운탕을 끓이면 ― 모내기나 벼 타작 때나 겨우 구경했던 ― 꽁치조림 토막보다 더 맛깔스러웠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아내가 눈을 흘겼다. 집에는 가져오지 말라며 거듭 엄포를 놓았다. 그럴 요량으로 앞마당에 있는 공동 수돗가로 갔으나 배관이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더운물로 녹이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해거름이 가까워진 데다 찬바람마저 불어오고 왠지 청승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쩔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아내가 저녁 산책을 간다며 집을 나섰다. 불문곡직 재빨리 거실 목욕탕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 의자에 걸터앉았다. 옆에는 주방 가위와 과도가 나란히 놓였다.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셈이다. 비닐봉지 입구를 조심스럽게 펼치자 붕어 다섯 마리가 지그재그로 누워 있었다. 모두가 연신 주둥이를 뻐끔거리며 꼬리지느러미를 파닥거렸다. 호기롭게 왼손으로 한 마리를 덥석 움켜쥐었다. 일순 손 안이 그득해졌다. 제일 큰 놈이었다. 오른손에는 힘주어 가위를 쥔 채였다.

   얼결에 붕어와 눈이 마주쳤다. 붕어가 젖은 눈으로 무언의 말을 건넸다. 자기네들은 용왕의 아들과 딸인데 살려 달라는 말이었다.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어디에 놓아주면 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집 주변만 맴돌 뿐 ― 집에서 100m 남짓 되는 지점에 자못 깊은 개천이 있었고 1km쯤 되는 거리에 작은 저수지도 있었다 ― 도무지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뭇 멍해져 있다가 그 놈을 내려놓고 다른 놈을 집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두 눈을 질끈 감고 가위로 가차 없이 대가리를 도려냈다. 아가미 쪽과 등 쪽에 각각 한 번씩 가위질을 하자 대가리가 댕강 잘려 나갔다. 어떤 오기와 결기에 찬 중차대한 의식처럼, 입술까지 앙다문 무의식적 행동의 반복이 이어졌다. 연달아 꼬리지느러미를 자르고 등지느러미를 자르고 배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까지 잘라 냈다. 과도로 비늘을 벗겨 내고 배 속 내장까지 전부 훑어 냈다. 마지막 붕어의 손질까지 마치는 내내, 잘려 나간 대가리 하나가 입을 뻐끔거리며 시종일관 노려보았다. 붕어의 동체(胴體)를 수돗물을 틀어 놓고 씻고 또 씻어 냈다.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와 전신을 휘감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붕어를 부탁한 것은 땀 흘려 물고기를 잡았던 아득한 기억과 그 매운탕 맛을 잊지 못한, 중학교 시절 향수에서 연유했을 터였다. 그때 붕어 손질은 손톱만으로 가능했고 힘들지도 않았다. 물론 대가리를 도려내거나 지느러미를 잘라 내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 온 식구들이 둥근상을 펴고 멍석에 둘러앉아 서둘러 숟가락질을 했던 추억만이 또렷했다. 동화 속 용왕 이야기는 아예 상상 밖으로, 그만큼 붕어가 작기도 했지만 당시 붕어는 당연한 먹거리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손질한 붕어를 싱크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담아 놓았다. 개수대에서 가위와 과도를 주방 세제로 몇 번이나 씻고 또 씻어냈다. 짧은 겨울 해는 벌써 산등성이 너머로 기울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갑자기 허탈해졌다.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 입을 뻐끔거리며 빤히 노려보던 붕어 대가리의 잔영이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는 잔뜩 주눅들고 기진맥진한 모습을 감지했는지 아무 말 없이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붕어매운탕을 앞에 놓고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커다란 유리그릇에 누워 더운 김을 뿜어내는 붕어의 동체들이 흡사 생물처럼 금방이라도 파닥거리며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무젓가락이 마치 절굿공이라도 된 양 손가락을 짓눌렀고 입속이 오뉴월 가뭄처럼 바싹바싹 메말랐다. 민물고기 손질이 중학교 졸업 후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오십 대 즈음 미꾸라지를 두어 번, 붕어를 한두 번 손질한 전력이 있다. 그때마다 아내는 몇 번씩이나 끝이라는 다짐을 두었고 ― 나 또한 순하디 순하게 ― 그러마 하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낯설다.

   무언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하루였다. 장자(莊子)는 호접몽(胡蝶夢)에서 호랑나비와 자신의 진위를 혼란스러워 했는데 오늘 내가 꼭 그랬다. 붕어가 내게 홀린 건지 아니면 내가 붕어에게 홀린 건지 좀처럼 가늠되지 않았다. 아내가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된다며, 정색을 하고 다시 못을 박았다. 선뜻 수긍하자 검은 구름처럼 뒤엉켜 내처 머리를 짓누르던 붕어의 환영이 비로소 사라졌다. 임인년(壬寅年) 새해 둘째 날, 일흔한 살 저녁 무렵 생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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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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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5
「상처가 주는 울림」외 1편

상처가 주는 울림 공화순 페북을 끊은 지 서너 달이 지났다. 가끔 궁금하고 친구요청 알림이 뜨면 어쩌다 휙 눈팅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낯익은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를 쉬이 털어버리지 못할까? 아니, 상처는 왜 쉬이 아물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어릴 적 실수로 정강이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일곱 살 즈음의 일이다. 안마당에 무를 담아놓은 고무 대야가 하필 어린 계집아이 눈에 띄었다. 대야 안에 가득한 무와 함께 커다란 부엌칼도 눈에 확 들어온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고무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커다란 칼을 집어 들었다. 무를 잘라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를 힘껏 내리쳤지만, 힘에 부쳤다. 칼은 무에 박혔고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았을 땐 순식간에 칼끝이 정강이를 깊이 도려내고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눈 깜짝할 새 정강이 살점이 파이고 하얀 뼈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보다 정강이가 더 놀란 듯, 피도 나오지 않고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명도 눈물도 없었다. 뒤미처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광목천을 두르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얼마 후, 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리를 처맨 것을 보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놀이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상처는 아직도 깊숙한 자리로 남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곤 하는데 상처를 치료했던 기억이 없다. 병원놀이가 며칠째 계속되자, 엄마가 벗겨봤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뒤였다고 한다. 상처를 제때 치료했다면 흉터가 가볍게 남진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도 해봤다. 정강이의 깊은 상처는 사춘기 시절 내내 치마 입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게 했다. 크도록 짧은 치마를 입는 데 불편을 겪었다. 치마를 입을 때마다 스타킹은 필수요건이 돼버리고 겨울엔 두꺼운 스타킹과 부츠를 신으니 차라리 편했다. 페북의 그도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넘어져 앞니 두 개를 잃고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 상처에 붙들려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 한두 개쯤 지니고 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쉬이 상처를 아물리고 다독이며 잘 살기도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강이 상처를 의식하고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 상처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써 50년을 넘게 내 몸에 지녀온 상처인데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몇 년 전, 잡지에서 배에 있는 수술 흉터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찍은 모델 사진을 보았다.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는 꽤 도드라졌다. 그것이 내게 신선한 도발이었다. 부조화에서 온 변화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너무 지루한 고요 속에 쨍하고 금을 긋는 울림 같았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시내에서 꽤 알아주는 의상실에서 교복을 맞춰 입었다. 학생들 무리에서 몸에 곡선을 매끈하게 빼준 교복 덕에 선배들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다행인지 남들보다 치마 길이가 길게 맞춰져서 정강이 절반 아래로 날씬한 다리만 보이고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쩌다 내 정강이 상처를 발견하면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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