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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수박의 이중주(二重奏)

  • 작성일 2023-10-18
  • 조회수 388

양파와 수박의 이중주(二重奏)

전병덕


   대수롭지 않은 시작의 엉뚱한 결과였다. 점심 식사를 하며 가볍게 촉발된 종교적 논쟁이 기어이 선을 넘었다. 아내에게 말대꾸하지 말자는 종심(從心)의 속다짐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흔적조차 없고 식탁에는 거친 고성의 파편만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다. 단세포적 외골수 성향이 근본적 요인이기는 하나 타이르는 듯한, 아내의 은근한 교시성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일과성에서 점진적 진화와 더불어 하루하루 다르게 ― 정년퇴직 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 노골화되어 가는 데 있다 하겠다.

   아내와 난 언뜻 닮은 듯하면서 사뭇 다르다. 겉으로 단정하고 결곡한 품(品) 등이 일견 흡사해 보이나 속내는 아주 딴판인 데가 많다. 특히 시간관념과 정리정돈 등 사안에서 더욱 그렇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 나는 하루 전 준비를 마쳐야 되는 반면 동작이 굼뜬 아내는 당일 시간이 촉박해서야 허둥거리고, 금방 소용치 않은 물건일 경우 나는 즉시 버리는 데 반해 ―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을 때도 있다 ― 아내는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어디에라도 챙겨두어야 하는 성격이다. 말하자면 내가 텅 빈 여백을 호감하는데 반해 아내는 꽉 찬 실용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유비(類比)하자면 양파와 수박으로 보면 타당할 것 같다. 아내가 시종일관하면서도 결과 무늬가 다른 껍질로 겹겹이 쌓여있는 양파인 반면 나는 일편단심의 총합인 수박의 적나라함이다. 아내가 까도 까도 또 다른 유사한 껍질로 변장하고 변환하는 양파의 재주를 가진 데 반해 나는 그냥 저돌적이고 단순하며 고지식한 수박의 일방향성에 그친다. 아내가 다양한 지적 호기심과 색다른 풍경 등에 수시로 관심을 갖는 반면 나는 주위 환경이나 정세 등 변화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내가 에두르는 은인자중 형인데 반해 나는 직설적이고 솔직담백한 편이다. 하여 어떤 결론을 내릴 때도 아내가 사실을 열거 취합하는 베이컨(Bacon, Francis)의 귀납법 쪽을 택하는데 반해 나는 명제를 전제로 하는 데카르트(Descartes, René)의 연역법을 선호한다.

   한번 뒤틀린 앙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둘도 없는 지기로 자존심 상한 일도 어렵잖게 터놓던 상대가 일순 적으로 돌변하여, 반목하며 서로의 가슴을 저미고 있는 중이다.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하루가 지났다. 두 사람의 안온한 공간이었던 집안은 냉기만 흐르는 절해고도가 된지 이미 오래다.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눈짓 한 번 마주치지 않았고 먼저 말을 건넬 생각은 아예 세상 밖의 일이었다. 다소곳이 시선을 내리깐 아내의 얼굴 또한 새초롬하고 무표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문득 장성한 아들의 얼굴을 떠올린 건 바로 그때였다. 사춘기 시절 아들은 ― 가출에서부터 또래끼리 싸움에 이르기까지 ― 한동안 꽤나 애를 먹였던 터였다. 당시 아들을 이해하고 용인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의외로 유아기 시절 기억이었다. 첫걸음마를 시작으로 아장아장 걸으며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일, 퇴근을 하면 방긋방긋 웃으며 제일 먼저 안겨오던 일, 고사리손으로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던 일, 눈만 마주쳐도 꺄르르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던 일 등등, 한동안 얼마나 많은 기쁨과 웃음을 선사해 주었던가. 해서 어린 시절 한두 해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준 추억으로 ― 사춘기 시절 애를 태운 말썽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 마음을 추스렸던 것이다.

   아내의 기억 또한 다르지 않다. 산길을 걷다가 가슴에 두 손 얹고 주저앉아 몽롱한 시선으로 할미꽃을 내려다보거나, 콧노래를 부르고 맨손 곤봉 체조를 하며 긴 그늘 터널 속에서 자박 걸음을 옮기던 일, 홀짝술임에도 가끔 저녁상에 술병을 챙겨와 커다란 소리로 씩씩하게 자작을 하던 일,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흥겨워지면 양손을 들어 지휘자 흉내를 내기도 하고, 발랄한 곡을 따라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며 막춤을 추던 일 등등, 소년에 가까운 모습은 굼뜬 동작과 교시적 편향 등에 따른 반감이 눈 녹듯 사라지며 ― 함께하기에 가능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 보호본능에 가슴이 저릿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는 말이 있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 아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항산임이 분명하다. 한눈을 팔거나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저력, 항심을 깨우고 채워 주는 무이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아내는 보이지 않는 어둠조차 두려워지지 않는 ― 하나하나의 추억을 꺼내 고성의 파편을 억누르는 데 꽤나 감내와 포용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환하게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절대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오늘 지금도 양파와 수박의 이중주(二重奏)는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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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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